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한국교회의 진짜 문제, ‘정치적 이슈’보다 ‘신앙 모티브’”(2012.12.31)


[신년대담] 은준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지난해 한국교회는 주요 연합기관을 비롯해 각 교단, 교회 내부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목회자 윤리선언문 발표나 구호·봉사 단체들의 계속되는 섬김 등 희망적인 소식도 적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리더십이 교체됐고, 경제위기와 자살률 증가 등 우울한 소식이 주를 이뤘다.

계사(癸巳)년 새해가 밝았다. 2013년에는 교회적으로 무엇보다 오는 10월 제10차 WCC 부산 총회가 예정돼 있어 찬반 양측의 논쟁이 더욱 거세지고, 2014년으로 예정된 WEA 준비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사회적으로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합과 민생 정부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지, 북한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될지 등이 관심의 대상이다. 크리스천투데이는 신년을 맞아 은준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과 만나 지난 한 해를 평가하고,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올해 팔순을 맞는 은 총장은 ‘20세기 기독교교육자 160인’에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으며, 실천신대를 통해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은 은준관 총장과의 대담.

▲본지와 2013년 신년대담을 가진 실천신학대학교 은준관 총장.
[대담=류재광 편집국장, 정리·사진=이대웅 기자]

지나친 이데올로기화로 인한 극단적 갈등, 민족적 과제

-2012년 한 해가 가고 대망의 2013년이 밝았습니다. 한국 교회와 사회에 있어 지난 한 해를 평가하고 다가올 한 해를 전망해 주신다면.

“제게 있어 지난 한 해는 매우 격렬했다고 느껴집니다. 얼마 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일어났던 갈등 뿐 아니라, 기독교계에서도 너무 많은 갈등이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걱정되는 건 격렬했던 것까지는 좋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좌우 이데올로기가 지나치게 한국 사회를 양 극단으로 갈라놓았는데, 목회자이자 교육자로서 걱정스럽습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안철수 신드롬’이 그 과정을 더욱 자극했고, 대한민국을 지나치게 정치화시켰어요.
거기다가 소위 토론 과정에서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박정희 프레임과 노무현 프레임을 내세우면서 정치적 이데올로기화를 자극했습니다. 이는 좋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상으로, 결국 2030과 5060의 세대 갈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영·호남간 갈등도 여전해 대선 후 굉장한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이정희 신드롬까지 포함하면 앞으로 누가 어떻게 이를 해소할 수 있을지……, 박근혜 당선인 혼자서 할 수도 없는 민족적 과제입니다. 대통합을 내세웠지만 이는 정치적으로만 해결되긴 힘들고, 국민 의식 밑바닥에서부터 교류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니까요.

기독교 쪽에서도 여러 문제로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연말에 ‘마야 종말론’까지 등장했지만, 어쨌든 지난 한 해도 하나님 은혜로 잘 넘어갔다는 생각도 듭니다.”

봉사도 헌금도 잘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묻지 않아
이게 안 되니 설교·건축·쇼·프로그램으로 유도하려 해

▲은준관 총장은 ‘실천의 부재’는 현상적 문제일 뿐, 근본적으로는 ‘신앙의 모티브’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론이 극단적으로 분열된 현실에 기독교 인사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씀이시군요. 본지가 총장님을 대담자로 선정한 것은, 여러 설문조사나 전문가 비평 등을 통해 봤을 때 기독교의 신뢰도와 성장세가 자꾸 떨어지는 이유로 결국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 신앙이 가장 많이 지적되기 때문입니다. ‘실천신대’ 총장으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나만 꼽기는 어렵지만, 실천 없는 신앙이 문제임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입니다. 필연적으로 생겨난 결과라는 거죠. 그것보다 깊은 차원에서 저나 학교측에서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한국 교계에서 ‘실천 없는 신앙’이라는 현상이 일어난 근본 이유는, ‘신앙의 모티브’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의 신앙 동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신앙이라는 건 어떻게 표현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죠. 신앙이라는 행위가 가진 깊은 관계성, 하나님과의 관계, 역사와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이걸 묶어서 하나의 신앙 모티브나 동기로 볼 수 있는데, 한국교회가 이러한 다양한 차원의 관계 구조 속에서 동기, 모티브를 잘못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모티브(motive)’ 자체가 굉장히 신학적 개념일 수 있는데, 설명하자면 하나님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도 하나님과 관계의 그 마지막 초점이 내게 있는가 하나님께 있는가, 이것을 보면 됩니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제가 보기엔 모티브가 잘못돼가고 있습니다. 동기가 굉장히 자기 중심적이에요. 내가 복을 받아야 되고, 내가 출세해야 되고, 우리 교회만 커야 되고……,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나의 신앙 모티브를 하나님께 두지 않아요. 바로 거기서부터 실천 없는 신앙이라는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현상을 말하기보다, ‘한국교회의 신앙이 무엇인가? 모티브가 무엇인가?’ 이것부터 물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 잘 하고, 헌금 열심히 내고, 다 좋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숨어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티브가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위대한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모티브’이지 않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파도, 한기총도, WCC도 아닙니다. 이는 모두 정치적인 사람들이 이용하는 이슈일 뿐이에요. 진짜 문제는 700만이든 1,200만이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세우는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목회나 제도, 예배나 에너지가 여기에 집약돼야 합니다. 교회가 얼마나 커지느냐가 아니라, 신자 하나 하나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게 안 되니 유명한 목사, 설교 잘 하는 목사, 건축 잘 하는 목사, 쇼 잘 하는 목사, 다양한 프로그램 이런 것으로 신앙을 ‘유도’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자 입장에서는 뭔가 열심히는 하는데, 하나님과의 만남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피곤해져요. 프로그램 열심히 참여하고 구제도 잘 하는데 영적으로는 계속 피곤해져 갑니다. 이게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내면의 가장 큰 위기입니다. 모티브, 동기를 하나님께 두고 있느냐? 우리가 신자 하나 하나의 영혼 깊은 곳에 물어야 합니다.”

세계 수준의 한국 신학대들, ‘현장’과의 공백이 약점
하나님나라가 임재하는 곳은 교회 아닌 ‘전(全) 역사’

-신앙의 모티브가 잘못돼 있고, 이로 말미암아 실천의 부재라는 현상이 드러난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런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총장님과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저희 학교는 8년이라는 짧은 역사이고, 어떻게 보면 작고 가난한 학교입니다. 설립한 저 자신부터 교수 출신이라 재정적 뒷받침을 많이 하지 못해, 뜻을 같이하는 ‘개미 군단’들이 힘을 모아가는 중이에요. 고마운 것은 열두 교파 목회자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저희는 신학생이 아니라 각 교파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 2년 이상 목회 경험이 있는 현직 목회자들만 공부하고 있습니다. 30대 중반부터 4-50대 중반의 목회자들이 오시는데, 굉장히 절실한 물음들을 갖고 오십니다. 현장에서 개척교회는 되지 않고, 기존 교회도 교인이 늘지 않으며, 대형교회에 그마저도 자꾸 빼앗깁니다. 어린아이와 청년들도 떠나고 있습니다. 사회적·교회적 여건이 개척교회 뿐 아니라 교회 운영 자체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어떻게 하면 빨리 발전할까가 절실히 요구되겠지만, 여기선 그걸 알면서도 못합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신앙의 모티브’를 살리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북 치고 장구 치는 목회의 기술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기쁨을 찾아주자’, 이를 바탕으로 실험적인 커리큘럼을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한국 주요 신학대학원들이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커리큘럼이 성서신학·조직신학·역사신학·실천신학이라는 이 4중직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해요. 물론 장점이 있지만, 가장 큰 약점은 이렇게 학점을 따고 학위를 취득해도 목회에서 큰 틀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의 기본은 목회자 양성인데, 여기에 공백이 있고 갭(Gap)이 큽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과 구라파, 미국 신학교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신학교육과 교회현장 사이의 공백 말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아직 무한한 잠재력이 있고 높은 신학 수준이 있는데, 이 공백을 누군가 메워야 한다는 생각에 신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실천신학이라는 과제로 다리를 놓자는 목적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여기까지 왔어요. 이 독특한 커리큘럼의 초점을 어디에 둘까 하는 고민을 2-3년간 해서 나온 결론은 ‘교회론에서 시작하자’ 였습니다. 교회론이란 엄밀한 의미로 성경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적 교회론이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가 모티브가 돼야 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생명은 교회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부속 사건일 뿐입니다.

실천신대에서는 사회가 교회 어떻게 보는지부터 시작해
마지막엔 분석·토론으로 각자의 ‘교회 모형’을 만들어가

그래서 ‘하나님 나라 사상’이 학교의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이 됐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할까’부터 시작해 이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까지 치열한 논쟁을 펼친 결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계를 자기에게 화해하신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전 역사 속에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주권’이라면, 그 임재의 자리가 어디인가? 교회가 아니라 전 역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깨달은 사람들이 부름받은 곳입니다. 그냥 모인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세우셨습니다. 가르치시고 떡을 떼시고 세우신 다음, 하나님께서는 이를 증거하도록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들어오면 종교사회학부터 시작합니다. 사회가 교회를 어떻게 보는지부터 거꾸로 분석하기 시작하죠. 왜 교회를 불신하는지 사회학적 원인을 따지고, 그렇다면 교회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그 후에 목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를 생각합니다. 이런 작업을 한 학기 동안 하고 나면 다음 학기에는 예배와 설교, 세번째 학기에는 교육과 소공동체, 네번째는 선교와 봉사를 각각 가르칩니다. 마지막에는 논문을 쓰고 자기 교회의 모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걸 끝내야 박사 과정으로 갈 수 있어요. 한 학급에 교수 2-3명이 동시에 ‘팀 티칭(Team Teaching)’을 합니다. 1시간 30분 가량 강의가 끝나면, 목회자와 교수들이 1시간 남짓 현장의 문제를 진단·분석하고 대안을 찾아 격렬한 토론을 벌입니다. 현재 170여명이 졸업해 전국에서 목회하고 있는데, 여러 모형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변화의 가능성들이 감지되고 있어요.”

▲은 총장은 기독교 교육학자로서 한국교회 주일학교의 현실도 염려했다.
-현장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소수정예로 훈련시키면서 그들이 현장으로 나가 성경에 근거한 실천 모형들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지금 현장에서는 첨단 기술과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신앙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펴라고 하면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목회자들도 스마트 기기와 SNS 등 때문에 기도와 말씀묵상 시간이 줄어들어 영성을 상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을 끌어안아야 하는 교회가 그들과의 소통 수단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요,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요.

“좋은 지적입니다. ‘스마트폰’은 한국교회가 특히 어린 세대와 씨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싶네요. 제가  1960년 미국으로 유학갔는데, 가자마자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이 미국 3억 인구 중 64%가 개신교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교회가 피크에  올랐었죠. 저는 전쟁 끝자락에 신학교 졸업하고 배고픔을 면치 못하던 시기였는데, 낙원과 같은 분위기였지요. 그런데 종교사회학자들이 추세를 따라 예측한 결과 미국의 2050년 개신교 비율이 18%에 불과할 것으로 나왔어요. 100년 만에 메이저에서 한참 마이너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1985년에 1,200만여명을 이야기했고, 지금은 700만이라고도 하지만 한 900만 정도는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10년 후에는 급격히 줄어 500만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또다른 위기는 2030과 어린이가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농촌 교회 절반 이상에 교회학교가 없어졌습니다. 어린이와 2030 없는 교회가 수두룩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없는 한국교회가 10년 뒤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노령화는 가속화되는데, 아래에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끝납니다. 저도 목회자이지만, 우리 목사님들이 너무 안일해요.

스마트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시대적 흐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지만 목회자들이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따라가는 정도일 뿐이죠. 거기서 나오는 긍정적인 것만 이야기할 뿐, 역작용을 이야기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미래학자들이나 하는 거라 이거죠. 이 역작용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대단히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과 미국 종교사회학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사람들입니다. 기성 교회는 싫고, 혼자 영적으로 살겠다는 거에요. 스마트폰보다 더 중요한 현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에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해요. ‘가나안 성도’가 많아진다고 하는데, 아십니까? 거꾸로 하면 ‘안 나가’입니다(웃음). 예수님은 믿는데 교회는 안 나가는 ‘가나안 성도’가 늘고 있습니다. 요새 새로운 게 하나 더 나왔는데, ‘노마드(nomad) 신도’입니다. 한 교회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 저리 계속 옮겨다니는 게 유행이래요. 이 사람들 마음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기성 교회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 제도, 목사님의 권위도 다 싫으니 혼자 영적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집에다가는 교회 간다고 하고 아이패드 들고 가까운 카페로 가서 실시간 중계로 예배를 본다고 합니다.”

기독교 교육 30년이 실패… 1주일 고민 후 ‘신학적 회심’
신앙이란 형성되는 것인데, 교회학교는 교수식으로 전락
‘스마트폰’은 도구일 뿐, 교회는 ‘신앙 내면화’ 고민해야

▲“교회학교를 교회 부설기관이 아닌 교회 속 작은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은준관  총장.

-기독교인은 줄어들지만 오히려 가톨릭 신자는 늘어나고 있고, 불교나 명상체험 등을 찾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역시 영적인 것엔 관심이 있지만 기성 교회는 기피하는 추세 때문이라고 보시는지요.

“거기는 적어도 프로그램으로는 승부하지 않으니까요. 2030과 어린이 감소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그래서 저는 ‘어린이 교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학교를 어린이 청소년 교회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21세기 들면서 교회학교가 급격히 감소했어요. 기독교 교육자로서 제가 책도 굉장히 쓰고 30년간 교육을 했으며, 교사대학만 1천회 넘게 다녔는데 결국 실패한 거죠. 왜 그랬을까 1주일 고민했습니다. 신학적으로 회심을 했달까요? 저의 신앙고백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저와 동갑인 존 웨스터호프(John H. Westerhoff) 교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히피에요. 1970년 미국에서 만났는데, 저를 보자마자 ‘교회학교가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토론하면서 싸웠어요(웃음). 그 친구가 <내일의 어린이를 위한 가치>, <어린이들이 신앙을 가질 것인가>를 썼는데, 그 핵심이 미국 교회학교가 100년간 미국 기독교인 90%를 양성했지만 지금은 죽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신앙이라는 건 가르치는 게 아니지 않냐는 것입니다. 신앙은 형성되는 것이고 이는 모태에서부터 한평생 관계를 통해 진행돼야 하는데, 교회학교는 왜 신앙을 형성하려 하지 않고 자꾸 성경교재를 만들어 선생이 자꾸 가르치려 드는가 이거에요. 교회학교가 스쿨, 교수식으로 전락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0년 뒤 이 친구 예언이 맞아떨어졌어요. 갑자기 교회학교가 죽어가기 시작한 거죠. 1962년 美 연합감리교에 590만명의 어린이가  있었는데, 20년만에 230만명으로 줄었어요. 지금은 그마나도 없어졌죠. 한국교회는 아직 괜찮았기 때문에 처음엔 이 친구를 비판했지만, 우리 교회학교도 줄어들면서 다시 읽었어요. 그 친구 얘기가 맞더라고요. 그러한 전제 아래, 학교식으로 가르치는 교회학교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막연했죠. 이 친구는 아예 교회학교를 포기하자고 했지만, 저는 아직 희망이 있으니 전환하자고 했습니다. 신앙은 형성해야 하니, 교회학교를 교회 부설기관이 아니라 교회 속 작은 교회로 만들어 아이들의 신앙 영역을 독립화시키자고 했어요. 어린이들은 피교육자도 가르침의 대상도 아니고, 하나님 백성이니 그들의 신앙 경험을 독립시켜 주자는 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아이들 하나하나가 신앙의 주체로서, 어려서부터 독립적인 신앙 경험을 갖게 하자는 것입니다. 교사가 계획하더라도, 예배 순서부터 아이들과 함께 짜면서 디자인해야 합니다. 올해 근처 20개 감리교회에서 실시했는데, 굉장한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내년에는 분당 지역에서도 참여해 100개 교회가 초교파로 함께합니다. 담임목사가 지원하고 교사와 교회학교 교역자들이 열정만 가진다면 한국교회를 바꿔나갈 수 있어요. 아이들 변화가 이렇게 폭발적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대학원 사역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 어린이 사역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무엇을 말합니까? 교회가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이, 신자들을 끌고가려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신앙의 주체로 여기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만나야지, 교회와 만나려 해선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 음성을 듣는 도구이자 통로일 뿐이에요. 이런 자세로 어린이 청소년들을 신앙의 주체로 세우면서, 거기에 예배와 교육, 선교 등 3차원을 경험시키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천신대도 세계적으로 유일한 시도이지만, 이 어린이 교회도 마찬가지로 세계 어디에서도 실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말씀하셨지만, 이것도 하나의 도구일 뿐이죠. 스마트폰이 아니라, 아이들은 삶과 신앙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 질문을 들여다봐야 하고, 아이들을 세움으로써 응답해야 합니다. 노마드 신자가 왜 늘어납니까? 신앙의 주체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시 ‘신앙의 모티브’ 얘기로 돌아가는데, 자기 신앙이 아니라 교회가 내놓은 상품은 더 이상 매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내면화시키느냐, 교회는 이것을 놓고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전도도 안 되고, 청소년들은 떠나가고 어른들은 고령화되고 있지만, 거꾸로 어린이들이 웃음꽃 피는 교회에 초점을 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시한부 종말론의 가장 큰 오류는 하나님을 재단하는 것
“세상은 더럽고 우리만 옳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은 위험
역사를 하나님 안에서 재긍정하는 것이 ‘역사적 종말론’

-며칠 전 ‘마야력 종말론’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정통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종말론’은 무엇인가요.

“성경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역사를 창조하시고 이끌어가시는 자체가 사실 종말론적이에요.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신 일도 종말론적입니다. 성경 해석이 잘못되기 시작하면 시한부 종말론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여호와의 증인이었죠. 계시록의 14만4천을 들고 나오면서 때를 정했는데, 해가 넘어가니 다시 정하고를 반복합니다. 마야력이 말한 그 날에도 결국 멸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신학생 시절 박태선 장로의 전도관에 수십만 명이 모였어요. 1957년 가을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하니 금비녀 금가락지 다 내놓았지만, 결국 오시지 않았죠. 시한부 종말론의 가장 큰 신학적 오류는 방법론에 있습니다. 성경을 인용하지만, 인간이 정한 시간을 바탕으로 일정을 정해서 하나님의 창조를 재단하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어요. 결국 또 신앙의 주체화와 관련된 것이죠. 성경에는 이외에 묵시문학적 종말론도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에세네파의 쿰란공동체 같은 경우, 종말이 온다며 동굴에 들어가 있었어요. 하나님의 마지막 때를 말하면서, 더럽고 멸망하는 곳이라며 이 세상을 부정했어요. 자칫 시한부 종말론보다 더 위험한 것이 종말을 위장한 이원론적 세계관입니다. 세상은 더럽고 우리만 옳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했지만, 그들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이 세상을 저주하지 않았어요. 이 세상 죄에 대해 심판을 말씀하셨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에서도 바벨론을 빗대 종말을 얘기했지만,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온 세계를 자기에게 화해하시려 했다고 했어요. 이것이 ‘역사적 종말론’입니다. 역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재긍정하는 종말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나도, 심지어는 교회도, 신앙도, 정치도 마찬가지이니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를, 세상을 모두 부정하는 게 아니라, 나를 부정하면서 하나님과 역사를 긍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이 이뤄져야지, 내 뜻이 이뤄져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실천신학대학교 은준관 총장이 본지 류재광 편집국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한국교회의 무한한 가능성, 지도자들이 왕국화해선 안돼
이스라엘은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기억 깨어질 때 타락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꼭 기억해야

-한국의 교회와 사회 앞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더 있으시다면. 그리고 대담을 통해 여러 묵직한 화두들을 던지셨는데, 마무리를 부탁드립니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무한한 축복을 받은 교회입니다. 저는 한국교회를 ‘하나님께서 마지막 남겨놓은 남은 자’라 표현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남겨 주신 잠재력이자 가능성일 뿐이므로, 우리 목회자들이나 지도자들이 왕국화 또는 자기화해선 안 됩니다. 한국교회의 엄청난 가능성을 하나님의 공동체로 역사 속에 세우는 일에 나 자신이 어떻게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는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지 이 무한한 가능성을 내 것이라 여겨선 안 됩니다. 하나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라는 데서부터 종말론이 시작됩니다. 청지기로서 위임받아 관리할 뿐이죠. 지금 한국교회가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지 못하면 영원히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긴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에는 신앙의 모티브와 연결되고, 종말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제 타락했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들을 해방시키셨고, 여기서 민족이 탄생됐어요. 그 다음에는 언약을 맺어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셨죠. 이스라엘을 민족 되게 한 유일한 근거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단 한 번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3300여년 됐는데, 회당과 가정에서 우리 선조들이 노예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고통을 보시고 풀어 주셔서 민족을 만드시고 하나님 백성 되게 하셨다는 이 민족적 정체성 아래 출애굽 사건을 기억했어요.

그런데 이 역사적 기억이 깨어질 때 타락했어요. 사사기에 넘어오면서부터 이게 깨어졌어요. 성경을 보면 여호수아까지는 ‘여호와께서 함께하사’ 이렇게 나오는데, 사사기로 넘어가면 ‘여호와께서 진노하사’라고 합니다. 평화로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부터 출애굽을 잊었어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건을 기억하는 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되고, 이는 종말론적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사건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 모두가 죄 사함을 받았고,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행위가 신앙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려 노력하면서 감사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걸 기억하는 한 우리의 신앙은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 또한 종말론적이지요. 그런데 이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한다면서도, 이걸 이용해서 어떻게 출세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장사를 잘 할 것인가를 따지기 시작하면 이 종말론적이고 역사적인 기억이 깨어지고 맙니다. 신앙의 모티브가 어긋나는 것이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실 6·25 참전용사로, 학생 유격대 출신입니다. 요즘 NLL 이야기가 나오는 곳의 한 섬을 지키느라 학생 유격대원 1,000명 중 400명이 죽었어요. 거기서 살아남았는데, 그렇게 지켜낸 대한민국이에요.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나라이지, 누가 지켰다고 할 수 없어요. 미국이 우리를 구원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낙동강까지 밀렸는데, 하나님께서 미국을 도구로 쓰셔서 우리 민족을 구원하셨어요. 평화로울수록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 못지 않게 우리 민족에게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6·25라는 민족의 비극을 통해 하나님께서 민족을 구원하셨다는 이 사건을 우리 민족은 기억해야 합니다.”

-새 임기를 시작하는 대통령에게 바라거나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으신지요.

“대통령 당선인이 이념 갈등을 정치적으로 잘 해결하리라 믿습니다. 대통합이라는 슬로건을 내놓았잖아요? 에큐메니칼 용어 중 유명한 것이 ‘다양성 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입니다. 하나로 묶어두는 게 아니라, 다양성 가운데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죠. 정치 쪽에서도 다양성 속의 일치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대통령직을 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복지 이야기, 분배 이야기, 대통합 이야기를 하지만, 제게는 모두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치적 프로그램이나 이데올로기 싸움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다 단절됐어요. 동네 사람들끼리도 다 파벌이 있어요. 농촌운동 하면서 목회 잘 하던 목사가 학교에서 한 말입니다. 그나마 평화로웠던 마을이었는데, 지역 발전을 위해 나라에서 5억을 지원하면서 마을이 완전히 둘로 갈라졌다는 거에요. GNP가 올라간다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이 가난하든 부유하든 삶의 긍지를 찾아가는 민족이 되는 일이지요.”

은준관 총장은

1933년 황해 옹진에서 태어나 교회 주일학교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고, 6·25가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참전,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며 하나님을 체험했다. 서울농고와 감신대를 졸업한 후 미국 듀크대 신대원(Th.M.)과 버클리 태평양 연합신대원(Th.D.) 등에서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동안 시카고한인교회에서 목회했으며, 귀국 후 모교인 감신대 교수 및 기독교교육연구소장, 정동제일감리교회 담임목사, 연세대 신과대 교수, 교목실장, 신과대학장, TBC성서연구원(舊 한국교회교육목회협의회) 원장, 실천신학대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신학적 교회론>, <실천적 교회론>, <기독교교육 현장론>, <기독교 교육사(이상 한들출판사)> 등이 있다. 북미 기독교교육학회 선정 ‘20세기 기독교교육자’에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으며, 美 버클리 태평양 연합신대원에서 학교를 빛낸 동문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실천신대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김병태 칼럼] 南 싸이와 北 김정은, 유명과 악명 사이(2012.12.31)


새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어떻게 남길지 고민하자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파스칼은 특이한 허리띠를 차고 다녔다고 한다. 안쪽에 못이 많이 박혀 있는 허리띠를. 왜 그런 허리띠를 차고 다녔을까? 명예에 대한 유혹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을 칭찬하는 편지를 읽거나 찬사의 말을 듣고 마음 속에 명예욕과 자만심이 고개를 쳐들고 일어날 때마다 팔꿈치로 그 허리띠를 강하게 눌렀다고 한다. 그때마다 못이 자신의 몸을 찔렀다. 그래서 그는 명예욕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파스칼은 명예에 대한 욕망이야말로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명예욕이야말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만 더 심해질 뿐임을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마음 중심엔 부귀나 명예, 쾌락 등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의 사랑으로라야 채워질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명예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채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수록 자연스레 명예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명예욕은 인간을 추하게 만들기도 한다. 온갖 추태가 명예욕 때문에 온다. 명예욕 때문에 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산다. 그렇기에 우리는 명예욕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사실이 있다. ‘건강한 명예심’도 있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이름 석 자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일생이 이름 석 자에 압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노력,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려는 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을 한 차원 더 고상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수단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는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최근 미국 CNN 방송은 네티즌을 대상으로 ‘올해의 흥미로운 인물’ 투표를 실시했다. 홈페이지에 발표된 최종 집계 결과가 흥미롭다. 1위는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한국인 싸이(박재상)가 10위 안에 진입해 있다는 사실! 싸이는 ‘강남스타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에서 조회수 10억 건을 돌파하기는 강남스타일이 처음이라고 하니,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우리 주변에는 ‘악명 높은 사람’도 많다. 같은 이름 석 자이지만, 가치는 엄청나게 다르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진행된 ‘악명 높은 사람’ 인터넷 투표는 또다른 흥밋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2위를 압도적인 표차로 눌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지난 1년 동안 악명을 떨쳤다.’ 이것을 조선중앙통신은 이렇게 보도했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타임이 ‘2012년의 명인’으로 모셨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우리는 유명과 악명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동일한 이름 석 자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가치는 천양지차이다. 지미 카터, 그는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다. 어째서? 대통령 자리를 물러난 후에 의미있는 봉사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때는 별 볼 일 없었으나 어떤 계기로 인해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생존시에는 무명에 가까웠으나 사후에 새롭게 평가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의 이름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펼쳐졌다. 당신의 이름 석 자를 떠올려보라. 유명과 악명,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까?

“나는 죽을 때까지 야구인이다. 야구를 통해 받았던 모든 것을 야구를 위해 환원해야 한다.” 언젠가 유소년 야구 발전을 위해 리틀 야구장을 조성한다는 취지로 자신의 땅을 내놓으면서 김응룡 야구 감독이 한 말이다. 가치 있는 일, 의미 있는 활동을 위해 이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어보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내 이름의 가치 역시 달라질 것이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나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죽은 후에 내 이름이 어떻게 기억될까? 아니,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어떻게 평가하실까 하는 거룩한 두려움이 아닐까?

아시아 시대 … 다시 대한민국(2013.01.01)


문명의 축이 아시아로 옮겨 오고 있다.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다. 생명체의 기원인 물이 튀어 오르며 태극기를 품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물방울 속의 태극기 문양이 선명하다. 캐논 EOS-1DX, 100㎜ 매크로 렌즈, 셔터 스피드 1/5000초. [김도훈 기자]

이어령 본사 고문
2013년 새해 아침의 태양은 어김없이 동쪽에서 떴다. 하지만 그것은 1년 전 그 태양이 아니다. 달력으로는 한 해 차이지만 문명의 책장으로 치면 한 세기의 차이가 될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올해의 덕담은 늘 들어 온 것이 아니라 백 년 이백 년 서구의 산업문명을 넘어서는 레룸노바룸(Rerum Novarum·교황 레오 13세가 밝힌 노동회칙)의 메시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891년 혹심한 유럽의 경제 불황 속에서 레오 13세 교황이 내린 개혁 메시지는 “자본주의의 폐해와 사회주의의 환상”에 대한 경고였다. 그리고 100년 뒤 요한 바오로 2세의 레룸노바룸은 한 경제학자의 제안처럼 “사회주의의 폐해와 자본주의의 환상”으로 반전된 메시지였다. 우리는 그러한 종교적 시각이 아니라도 산업혁명 이후 서구 문명이 누려온 번영 뒤의 모순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다 같이 안고 있는 폐해와 환상,그것을 동시에 넘지 못하면 슈펭글러가 예견한 ‘서구의 몰락’,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진단한 ‘대붕괴의 시대’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리먼 쇼크 이후 그 몰락과 붕괴 현상이 가속되면서 우리는 지금 문명의 축이 서에서 동으로 급격히 옮겨오는 징후를 체감하고 있다.

가위바위보 삼항 순환구조의 아시아 모델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앞으로 아시아 지역에 통합된 국가가 생겨날 경우 일본과 중국이 그 중심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그때의 수도는 베이징도, 도쿄도 아닌 서울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정감록 같은 예언이 아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050년 구매력 평가(PPP) 베이스의 1인당 GDP에서 미국을 100으로 할 때 한국은 105에 다다르고 일본은 58로 후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5년 뒤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과 맞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2010년 인간개발 지수(HDI)에서도 일본은 한 단계 떨어진 10위이고, 한국은 무려 14단계가 오른 11위였다. 중국은 향상되긴 했으나 아직 18위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단순한 숫자놀이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등장으로 중국·일본의 이항 대립구조가 가위바위보의 삼항 순환구조로 바뀌게 되리라는 점이다. 서로 물고 물리는 가위바위보의 게임 상태에서는 누구도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없게 된다. 그것은 무역구조에서처럼 한국은 중국에서, 중국은 일본에서, 그리고 일본은 한국에서 각자 흑자를 내고 있는 상생의 순환 모델 같은 것이다. 독식은 없다. G2의 중국, G7의 일본, G20의 한국처럼 피라미드 구조로 된 아시아가 아니다. 그것은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이 아시아로 읽히는 동그라미다.

대통합은 문화 원리의 소프트 파워로 

아시아의 새 지도자 가운데 한국 초유의 여성 대통령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손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다. 한국이 당면한 다섯 가지 위협 요소를 추려 보면 ① 북한 변수 ② 저출산에 의한 잠재 성장률 저하 ③ 구조적인 내수 취약성 ④ 비정규 고용 증가 등 분배상의 양극화 현상 확대 ⑤ 소득 불안정에 의한 가계부채 증가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을 풀어가려면 양극으로 갈린 국민들을 통합하고, 그 갈등과 상처를 보듬어 안는 모성애적 사랑이 필요하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폐해와 사회주의의 환상”, 그리고 “사회주의의 폐해와 자본주의의 환상”을 넘어서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세계가 놀란 한국의 산업화는 자유경쟁의 경제 원리에 의해 이뤄낸 번영이었으며, 반면에 남들이 칭찬하는 민주화의 평등사회는 정치원리에 의해 피 흘려 쟁취한 전리품이었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등의 두 이념이 노출되고 그 모순이 충돌을 일으킬 때 사회의 모든 현상에 균열이 가고 양극화로 분열되는 비극을 낳게 된다. 그래서 프랑스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자유와 평등의 모순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제3의 문화 원리인 우애(fraternit )가 그 해답이 된다.

산업화의 땀, 민주화의 피를 용해하는 생명화의 눈물이 필요하게 된다. 한류 현상에서 보듯 한국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는 중국과 일본을 능가할 수 없었지만 문화의 소통과 생명력, 그리고 그 공감의 힘에서는 싸이의 말춤처럼 10억 명 이상의 세계인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어 온 것이 가부장적 남성들의 하드 파워였다면 이제 그것에 사랑과 생명을 불어넣는 소프트 파워는 새로운 여성 대통령이 해야 할 몫이다. 영토 분쟁과 내셔널리즘에 발목을 잡혀 동트는 아침 해를 바라보지 못할 때 그들의 손을 잡아 수천 년 동안 한·중·일 3국이 공유해 온 수퍼밈(문화유전자)을 함께 배우는 슬기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서구문명이 풀지 못한 레룸노바룸의 숙제를 함께 풀어가는, 2013년 아시아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신년칼럼] 패배가 아닌 실패, 퇴보가 아닌 진일보(2012.12.31)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소진증후군을 극복하고 냉철함을 되찾아야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베리타스 DB
흑룡의 해라는 격동의 임진년이 지나가고 2013년 새해가 시작된다. 대선 이후 한국사회의 진보진영 안에 신경성 질환 같은 ‘소진증후군’이 열흘 남짓 한반도를 전염병처럼 휩쓸더니, 이제 조금씩 조금씩 절망의 저기압권을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소진증후군’(Burnout Syndrome)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어떤 일에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몰두하다가, 기대하던 그 일이 갑자기 실패로 끝나던지 아니면 심리적, 정신적인 극도의 누적된 피로감 때문에 무기력증, 자기염오, 직무거부, 열정상실, 의미상실 감정 등 소위 말하는 심리적 붕괴(멘붕)를 경험하는 정신질환 증후군을 말한다.
 
신문도 TV도 보기 싫고, 누구에게 전화를 걸기도 싫고 받기도 싫다. 신경은 민감해지는데 일에 집중력은 떨어지고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짜증도 잘나고 이유없이 가까운 집사람에게 화도 낸다. 정권교체 실현운동에 앞장선 열심도 내지 않았던 필자도 열흘 남짓 ‘소진증후군’을 앓았는데, 하물며 이번만은 새 시대, 새 정치, 새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고 온몸을 던져 헌신한 문재인 후보자를 비롯한 민주인사들, 그리고 새 정치 출현을 앙망하던 시민들과 기독교계 진보적 신앙인들의 ‘멘붕’ 충격이 얼마나 클 것인가 생각하면 ‘소진증후군’이라는 신조어 심리학 용어가 현실적으로 실감난다.
 
그러나,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소진증후군 병리현상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않된다. 지나친 오랜 기간 동안 그 증후군에 빠지면 정말 병자가 된다. 극단의 경우엔 절망적인 삶의 포기에 이르기도 한다. 대선결과 이후, 4명이나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사회 양극화 현상의 심각성이 얼마나 극한적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는가의 표징이다. 그러나,  ‘생명’이란 살라고 하는 지고한 명령이다. 경박한 현실수용이나 비겁한 현실타협이 아니더라도 다른 제3의 길이 있다.

패배가 아닌 실패, 역사퇴보가 아니라 진일보

정권연장과 정권교체 양단간 싸움에서만 보면 2012년 대선결과는 한국의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의 승리요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인 민주통합당의 패배라고 말한다. ‘대권투쟁’이라고 부르는 민주주의 선거방식의 밑바탕에 놓여있는 정치철학엔 그 나름대로 논리와 명분이 있겠지만, 유권자 51.6 % 획득정당은 승리요, 48 % 득표정당은 패배라고 부르는 용어자체를 필자는 받아드릴 수 없다. 이것은 완전히 ‘승자독식’의 정글의 논리이지 민본주의 논리는 아니다. 진보세력은 집권에 실패한 것이지 정치적 이념이나 비전이나 미래의 희망의 씨앗 뿌리기에서 절대로 ‘패배’한 것이 아니다.
 
‘실패’(失敗)란 일이 뜻한바 대로 되지 못하거나 그릇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말한다. 실패의 반대는 성취이거나 성공이지 패배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패배(敗北)란 싸움이나 겨루기에서 짐으로써 스스로를 포기하고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다. 패배주의가 더욱 해로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시 한번 분명하게 구별해두자. 한국사회의 진보세력은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 혹은 시대교체에서 실패한 것이지 패배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실패와 패배를 혼동하면 유권자 48%라는 절반 가까운 깨어있는 시민의 정신과 성의와 열망을 너무나 쉽게 짓밟고 무시하는 태도인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겨 실현하려는 그분의 뜻이 그 당시 현실조건에서 당장은 ‘실패’로 보인 것뿐이지 사실은 실패가 아닌 것이다. 더욱이 ‘패배’란 더욱더 아니다. 예수가 정말 실패했거나 더욱이 패배했다면 숨을 거두며 “다 이루었다”(요19:30)는 선언은 패배자의 구차한 자기변명이란 말인가?  필자는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한 이유를 철저하게 성찰하고 바르게 원인 분석하는 일은 절대로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패배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절대금물이라고 본다.
 
자기 밥그릇과 부동산값 하락과 투자주식의 주가하락을 염려하여 보수정권의 집권연장을 선택한 50-60대 유권자들의 현실적 욕망과 집단이기심을 ‘대의’(大義)와 ‘공의(公義)’로서 설득해내지 못한 정성의 부족은 진보정당이 철저히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타협하거나 아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을 마치 ‘현실정치 감각 부족’이라고 자괴하는 자기기만을 저질러서는 않된다. 정치정당은 그렇게 할런지 모르지만 진보기독교 집단은 다수 대중의 뜻이 반드시 옳거나 천심이라고 보지 않는다. 예언자정신은 대중의 소리와 하나님의 뜻을 혼동하지 않았다.
 
더욱이나 진보진영의 입장에서 볼 때 대선 실패결과를 놓고 마치 역사가 방향을 잃고 후퇴하였다고 섣불리 단정한다거나 역사엔 뜻이 없고 오직 양육강식의 힘의 논리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역사냉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자세히 보면, 정당정치중심에서 집권투쟁에서 분명히 실패했지만, 역사는 분명히 지난 대선 기간중 한발자국 앞으로 전진하였다.
  
2012년 1년 동안 한국 언론계(MBC,YTN,KBS,국민일보)에서는 동시다발적인 장기간의 언론노조투쟁이 있었다. 똘똘 뭉친 수구보수언론의 집단적 마취약 투여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흐리멍텅하게 잃지 않고 정권교체와 시대교체와 정치패러다임 전환을 주체적으로 참여하면서 뜻을 모아준 1480만표의 의미를 결코 가볍게 해석해서는 않된다.
  
말이야 바르게 말하지만 김대중정권이나 노무현정권의 집권방법처럼 보수와 진보정당의 합종연횡(合從連衡) 결과물도 아니었다. 새로운 정치의 출현을 갈망하는 자생적 안철수 지지 시민세력과 민주진보세력의 ‘대의와 미래역사 비젼’에 대한 공감대로서 이뤄진 정치연합운동이었다. 이것은 역사의 퇴보나 역사방향의 실종이 아니라 비록 집권엔 실패했지만 역사의 뚜렷하고도 의미 깊은 ‘진일보’(進一步)로 보아야 한다. 역사과정엔 우연은 없다. 향후 5년 후에 또 한 번의 변혁을 시도한다면 1480만명의 역사의 진일보를 전진시킨 그들의 살과 혼 속에서 새로운 꽃이 피어날 것이다.

수구언론의 자기반성 없고, 기회주의자를 내세운 국민대통합의 문제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재집권 일등공신은 개인이 아닌 한국의 수구보수언론 단체들임을 깨어있는 씨알들은 모두 알고 있다. MB권력은 보수정당의 집권연장을 위해서 지난 5년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장악에 공을 들였다. 필자는 대선결과를 심층분 석하는 정치학자나 정치가들 그리고 사회저명 인사들의 집단좌담 속에서 ‘한국 수구언론 권력집단’의 공과에 대하여 아무런,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한국사회에서 언론인으로서 재야지도자였던 함석헌 옹이 어디에선가 말하기를 오늘날 언론의 사명과 영향력은 중세기 종교가 하던 일을 감당할 만큼 중요하고 지대하다고 했다. 동시에, 그러므로 언론의 타락과 권력야합과 여론조작과 국민기만은 국민의 판단능력에 혼동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의 두뇌 속에 서서히 마취약을 투입해서 정상적 판단을 못하도록 만드는 마약상 같은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기능을 한다고 혹평한바 있다. 

어차피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통해서 집권당을 결정하는 한국의 현질서 에서 박근혜 정권의 탄생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당선자 박근혜님에게 두 가지만을 진심으로 권고하고 싶다. 진정으로 국민대통합을 이뤄보려 한다면, 새누리당의 집권의 일등공신인 수구보수 언론기관을 국민전체의 눈과 귀가 되도록 제자리로 돌려놓도록 하시라. 문재인씨를 지지한 유권자의 48%를 다분히 ‘친북성향, 좌빨 집단’이라고 너무나 쉽게 몰아붙이는 수구보수언론을 그대로 놔둔 채 국민대통합은 절대로 불가능하며,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둘째 권고는, 국민대통합 위원회의 중책자 담당자로서 호남출신 정치인 한모씨와 김모씨를 임명하셨는데, 그러한 인사정책과 주위의 추천 조언자들을 옆에 두고서는 국민대통합은 불가능할 것이다. 앞서 거명한 두 분의 개인적 정치역량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박근혜님을 지지하지 않은 광주시민 유권자 90%중 거의 모두는 국민대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 명단을 보고서 박근혜님이, 대선에서 표를 주지 않은 48%의 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지, 알고도 아예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국민대통합을 위한 첫발걸음으로서 화해의 손내밈은 강한 권력에 의해 피해당하고 상처받은 약자들의 집단과 피해자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권력을 쥔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그렇게 스스로 손을 내밀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진정성을 진솔하게 삶과 행동으로 보이면서 기다리는 일 뿐이다. 더 이상의 적극적 유도나 선도는 강제요 꾸밈이요 선전이요 제3류 연극이 될 뿐이다.
  
마지막으로 진보적 기독교계 진영이 진지하게 생각할 점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 자신들도 모르게 빠져든 흑백논리, 선악 이원 캠프론, 빛의 자녀들/ 어둠의 자녀들 등등 이분법적 도식에서 우리스스로 해방되어야 하겠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죄인이다.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라인홀드 니버가 경고한대로 도덕적 유토피아니즘에 빠지지도 말고 정치적 냉소주의에도 빠지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전13:6). 현실에서 불가능한 사이비 중용론에로 도피하지 말고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2)는 성경의 말씀을 순명해야 한다.
  
진보적 기독교 사회운동 동지들이 분명하게 의식해야 할 것은 1970-80년대의 시대가 지나갔고, 분명이 30년을 단위로 하는 한 세대가 지나고 새로운 세대가 이미 동텄고 진행되고 있다는 역사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30년 한세대의 중심화두는 ‘민주화, 인권, 민족화해’이었다면 지금 새 세대의 화두는 ‘생명, 평화, 정의’이다. 신학적으로 높고 숭고한 이 화두를 현실정치 언어로 번역하면 ‘민생, 보편복지, 공공성’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로 압축되는 높고 숭고한 비전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항상 구체적인 현실정치의 정책적 이념인 ‘민생, 보편복지, 공공성’ 보다는 ‘생명, 평화, 정의’라는 화두가 추상적으로 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걸어온 그 길을 가야한다.
  
모두가 맨 처음에 그랬듯이 모두가 빈 맘으로, 초연 초탈한 자유인으로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선언하시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예수를 바라보며”(히12:2) 다시 신들매를 고쳐 매고 서로서로 손을 내밀어 마주잡고 일어서서 걸어 나가야 한다.

[단독] 北주민 비밀영상 봤더니 "김일성을…"(2013.01.01)


[CROSS media]
"하나님 점점 비참해집니다, 우리에게 자비를" 北주민 비밀예배 영상 첫 공개

 북한 청진의 지하 교회 교인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 밑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 여성은 기독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뒤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USA 제공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나라 공민(국민)들의 앞길이 점점 더 비참해지는데 왜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아니합니까. 김정일이 살아 있는 한 진짜 이 나라 공민들은 밝은 세상 볼 수가 없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존 당시 북한 주민이 비밀리에 예배를 보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31일 본지가 입수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도 상당수의 기독교인이 존재한다는 관측이 많았지만 그들의 '비밀 예배'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북한 선교단체인 '서울USA'가 본지에 제공한 이 영상은 65분짜리로 2007년쯤 촬영됐다고 한다. 주로 함경북도 청진의 주민이 집에서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15~20㎡ 정도 되는 방안엔 빛바랜 꽃무늬 벽지와 커다란 거울이 보이고 한쪽 벽에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가 두 쌍 걸려 있다.

가족으로 추정되는 남자 2명과 여자 1명은 인민복 차림의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벽에서 떼내 바닥에 뒤집어 놓은 채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입 벌리기만 하면 내일은 잘산다, 내일 내일 하면서….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일년 나마(넘게) 기도를 드리건만 왜 자비를 안 베풀어 주시는지…."

이 영상에는 혼자 기도하는 여성도 등장한다. 그는 "이 나라는 독재정치가 살 판을 쳐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감옥에 들어가 매 맞고 병에 걸려도 약을 쓰지 못하고 죽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당신의 아들 딸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왜 구원의 손길을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했다.

서울USA의 폴리 현숙 회장은 "영상에 등장한 교인들은 2007년 모두 붙잡힌 뒤 연락이 끊겼다"며 "이들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처형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김진의 시시각각] 문재인, 사과할 용기 있나(2012.12.31)

문재인 후보는 3.6% 졌다. 자신이 2% 더 얻었으면 박근혜 후보 표가 2% 줄어들어 결국 0.4% 이겼을 것이다. 그가 이를 놓친 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선거에는 말없는 다수가 있다. 이들은 품성을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여긴다. 인권·예의·배려 같은 인간적 가치를 얼마나 잘 지키는지 조용히 보는 것이다. 문재인은 이 대목에서 졌다.

 문재인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막강한 후보였다. 그런 인물이 TV처럼 공개적인 곳에서 특정 개인을 공격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노무현 정권 때 있었다. 대통령이 공격하자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한강에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다.

 비극은 2004년 3월 11일 일어났다. 남 사장은 대통령 형에게 3000만원을 주고 사장 유임을 청탁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TV 생중계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

 남 사장은 TV를 보고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이름이 생방송에 나와 범죄자가 됐는데 어떻게 낯을 들고 살겠나. 내가 모든 걸 책임지고 가겠다.” 문재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 사건을 겪었다. 문재인은 나중에 노 대통령에게 남 사장 실명을 거론한 건 잘못이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매우 후회했다고 한다.

 실명 거론 이전에 대통령의 언급 자체가 근거 없는 것이라고 유족은 주장한다. 노 대통령이 자살하기 수개월 전 유족은 고소했다. 남 사장이 김해로 대통령 형을 찾아간 적도, 직접 돈을 건넨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문재인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근거 없이 당하는 억울함’을 생생히 목격했을 것이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어떠한 증거가 없이 단순한 제보를 가지고 했다. 감금하고 가해를 한 것은 옳지 않다.” 뒤늦게 나온 이런 고백은 정말이지 충격적이다. 이 고백에 따르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후보’가 근거도 없이 많은 국민이 보는 앞에서 28세 여성을 ‘피의자’로 몰아붙인 셈이다.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문재인은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른다. 당원들이 여직원 오피스텔을 봉쇄했을 때 문재인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어야 했다. “국정원 여직원이라고 해서 제보만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 건 부당합니다. 당원들에게 촉구합니다. 철수하세요. 그리고 경찰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이렇게 했으면 1%가 올랐을 것이다.

 수사 결과 여직원 컴퓨터에 비방 댓글 흔적이 없는 것으로 경찰이 발표했다. 문재인은 바로 수사결과를 인정하고 여직원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당에서 경찰을 비난해도 그는 부모를 찾아가 큰절로 사과했어야 했다. 그러면 또다시 1%가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로 갔다.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언론이 결탁해 정권을 연장하려 한다고 외쳤다. 그는 외계인이었다.

 이는 가장 문재인답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얼마나 많은 이가 억울함으로 고통 받는지 그는 잘 알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28세 미혼여성’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봉황 그림에 취했던 것이다. 이는 국가지도자는 차치하고 변호사 자격조차 의심스러운 행동이었다.

 지도자의 진면목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다. 설사 수십만 표를 얻지 못해도 ‘28세 여성의 인권’ 편에 섰다면 문재인에게는 100만 표가 왔을지 모른다. 말없는 다수는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 후보가 이 사건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았다. 근거도 없이 젊은 여성을 피의자로 몰아붙이는 대통령 후보를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재인은 여직원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에게 그런 용기가 있는지 많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로앤처치]분규교회, "사람이 교회이다"(2012.12.30)

사람이 교회가 되기위해서는 노회의 행정지원받아야
황규학 (414)
치리회나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교회이다. 분규교회 현장을 가보면 다수파가 소수파를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물리력으로 막기위해서는 나름대로 정당성을 갖고 있다. 정당성을 갖고 반대파 신도들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다.

이는 봉천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리력으로 교회당을 장악하려 했던 소수파들에 대해 다수파는 교회정관까지 통과시켜, 아예 소수파들을 못들어오도록 용역을 고용하면서까지 막고 있다.

▲     © 황규학


강북제일교회같은 경우 소수파가 사회법정에서 들어가라고 판결이 났어도 교회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법원도 속수무책이다. 예배당 출입은 막지말라고 하면서도 간접강제는 기각했기 때문이다. 간접강제가 나온다 한들, 수백명이 돌아가면서 막는다면, 무한대의 소송은 끝이 안보일 것이다.

교회당을 장악한 강사모는 "강사모를 신천지로 매도한 자들은 증거를 가져오라"며 반강사모측 사람들을 아얘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있다.

▲     ©황규학


시흥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방수성목사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교회당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막고있다.

▲     © 황규학

▲     © 황규학


결국 교회당에 못들어온 측은 소수로 전락하고 말거나 끝내는 포기하고 다른 교회로 가기 때문에 교회당건물을 장악한 다수는 투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길거리 예배는 한계가 있고 교회밖에서 싸우는 측은 세를 결집하기 어렵다. 한국교회 양상은 교회당을 장악하는 측은 노회나 총회의 지지를 받거나, 다수 신도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노회나 총회의 지지를 못 받아도 다수 신도들이 있으면 결국 수색 성은교회나 광성교회처럼 다수파가 교회당을 장악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광성교회     © 황규학

 
그러나 다수파는 무조건 막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사과를 하거나 증거를 가져오면 들어오라고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봉천교회 다수파는 교회당폭력에 사과하는 사람들은 들어 오라고 문호를 개방하고 있고,

▲     © 황규학


시흥교회도 방목사 적극지지자 10여명 이외에 나머지는 출입을 허용하고 있고,

▲     © 황규학

 
강북제일교회 역시 반강사모30여명이외에 나머지는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강북제일교회 강사모가 출입을 배제시키는 이유는 남삼욱을 앞에 세우고 용역을 고용하여 물리력으로 교회당을 장악하려 했고

▲     © 황규학



▲     ©황규학


신천지로 이단조작행각을 했기 때문이다.

▲     © 황규학



강북제일교회 사태 해결, 수습전권위 파송해야

광성교회 사태는 노회나 총회가 수습전권위파송을 하지 않아 교회가 몰락했다. 강북제일교회사태 해결은 노회 수습전권위원회이든, 총회 수습전권원회이든 속히 파송해야 교회의 무질서를 잡을 수 있다. 현재 중지된 당회원권은 해지된 상태이지만 실제적 당회역할이 불가능한 식물당회로 전락했기 때문에 수습위가 파송되어 당회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봉천교회와 시흥교회는 소속 관악노회가 교회당을 장악하고있는 다수파를 지지하고있고, 강북제일교회가 소속하고 있는  평양노회는 현재로서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강북제일교회는 당회원들이 있으나 신도들로부터 존경심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당회가 신도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들이 신뢰를 상실한 것은 1) 장창만목사체제를 계속 유지하려고 했던 것, 2) 서현철목사의 지도를 계속 받은 것, 3) 용역과 남삼욱을 끌어들인 것, 4) 최삼경을 끌어들여 강사모를 신천지로 매도한 것 등이다. 장창만, 서현철, 남삼욱, 최삼경목사가 개입해서 교회사태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있다. 

강북제일교회는 당회파들이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어도, 3,000여명의 신도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교회당 문을 개방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잘못하다가는 교인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000여명의 신도들이 이들을 장로로서 인정하지 않고있는 것이다. 당회와 신도들이 따로 논다. 특히 대다수의 중직자들은 강사모에 속해 있어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총회이든, 노회이든 수습전권위가 파송되어야 강북제일교회의 사태수습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치리회가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교회이다

시흥교회의 상황으로 볼 때, 총회와 사회법정에서의 승소가 물리력으로 막는 정당성을 가져오고, 봉천교회는 교단법정의 승소로 물리력으로 막는 정당성을 갖고있고, 강북제일은 광성교회처럼 다수 신도들의 지지로 소수파를 물리력으로 막는 정당성을 학보하고있다. 민법적으로 교회는 비법인사단이기 때문에 교인들 다수의 결집이 가장 중요하고 다수측이 결국 승리하게 되어있다. 이는 수색성은교회, 광성교회, 전주 성덕교회, 전주 성암교회, 서부제일교회 에서 잘 나타난다.

아무리 노회가 소수파의 목사를 지지한다 한들, 교회는 다수 교인에 의해 끌려가기 마련이다. 노회나 총회나 당회가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강북제일교회 당회원들은 치리회(당회)가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교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회가 아무리 성명서를 발표하고 행정행위를 하려해도 교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교회됨도 노회나 총회라는 상회치리회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소수파의 한계

천교회 박의관장로측의 투쟁의 한계는 일단 소속노회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다수교인들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당 다수파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회법정의 판결만 갖고서는 교회당을 장악하기 어렵다. 교회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교단법정승소판결이나 다수의 신도가 있어야 한다.

이성곤목사측은 다수의 신도와 사회법정의 승소로 교회당을 장악했다. 사회법정에서 승소했다 하더라도 다수의 신도들이 없다면 교회당장악은 불가능하다. 황형택측도 마찬가지이다. 분당중앙교회도 소수파가 결국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소수파가 교회당을 장악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제자교회 역시 사회법정에서 승리하고 교단에서도 지지를 받고 명분을 확보했다고 할지라도 소수파가 교회당을 장악하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다수파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노회나 총회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소수파의 노회, 총회지지는 한계이다. 사람이 교회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다수파가 노회의 행정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광성교회의 소수파(잔류파)가 깨진 것은 당연한 순리이다. 소수파로서 노회의 행정적 지원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수파는 노회의 행정적 지원을 받더라도 어려운데, 그나마 행정적 지원도 받지 못한다면 추락하는 것은 뻔한 일이다. 봉천교회, 시흥교회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다수파가 노회와 총회의 행정적 지지를 받으면 상당히 안정적이다.

그러나 다수파는 상회치리회의 지원을 받을 정도로 명분이 있어야하고, 윤리성이나 도덕성에서 벗어난 부패한 목사를 지원하면 명분을 상실하고만다. 

그러므로 강북제일교회의 다수파가 살기 위해서는 부패하고 독선적인 당회나 부패한 목사를 지지하지 말아야 하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노회와 총회의 행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수파의 신앙적 정당성을 전제로 사회법정이 아니라 노회나 총회의 행정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천투데이]‘주일예배’에 급급한 교회, 그것만이 존재 이유인가?(2012.12.30)


공동체성 회복하고 성경적 교회론 논의해야 할 때

▲교회가 주일예배라는 프레임 안에만 갇히면서 교인들이 개인화되고, 구별된 교회로서의 거룩함도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상기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음). ⓒ크리스천투데이 DB
직장인 K씨는 요즘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있다. 바쁜 일상에 지쳐 자꾸만 메말라가는 모습에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다. 대학생 땐 이렇지 않았다. 수업에 취업 준비에 정신 없이 바빴어도 K씨는 그가 가입한 기독교 동아리 활동엔 빠짐 없이 참석했다. 물론 그의 열심도 있었지만 동아리에 늘 모임이 있었던 까닭이다.

K씨는 “처음엔 힘들었지만 나중엔 동아리 모임에서 얻은 힘으로 빠듯한 학교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며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가 깊어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모인 친구들과 매일 교제하면서 그들로부터 또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K씨도 자연히 동아리와 멀어졌다. 이젠 매주일 교회 예배에만 나가고 있다. 그 외엔 모든 시간을 직장과 집에서 보낸다. 가끔 수요예배나 금요철야기도회에도 나갔지만 지금은 뜸해졌다.

그는 “대학생 때 주일예배는 한 주간 이어진 신앙생활의 연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일예배 때만 신앙인이 된 느낌”이라며 “교인들과도 자주 만나기 힘들다 보니 그저 인사만 하는 정도다. 동아리 모임과 단순 비교하는 게 무리지만 그 때 만큼 뜨겁게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지역교회(Local Church)들은 주일예배에 모든 것을 집중시킨다. 이는 교회들이 대형화된 오늘날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로 인해 “요즘 목사들은 주일예배 설교만 잘 하면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교회 다닌다’는 말은 ‘주일예배 드린다’는 말과 같고, 예배는 으레 주일예배를 뜻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이를 빗댄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도 생겼다.

이렇다 보니 ‘교회=주일예배’라는 등식이 고착화되고 있다. 많은 평신도들이 일주일에 한 번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신앙적 의무를 다했다고 믿는다. 따라서 평일 교회 활동은 없거나 있어도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의 참여에서 끝난다. 평일, 교회 건물이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주일예배라는 프레임 안에만 갇히면서 교인들이 개인화되고 구별된 교회로서의 거룩함도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결대 배본철 교수(역사신학)는 “교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성도들 간 교제다. 이것을 코이노니아라고 하는데, 현대 교회에서 이것이 매우 약화됐다”며 “주일예배 중심으로만 교회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교인들끼리 서로 친밀해질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배 교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유기체적인 공동체”라며 “그 안에서 성도들은 사랑과 희생을 배우고 비로소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 성장해간다. 그런데 교회가 이런 공동체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그 안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자칫 이들이 이단에 빠질 우려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경적인 건강한 교회론을 하루 빨리 구현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신학자들은 교회론을 언급하며 성경 사도행전 2장 43~47절을 그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꼽는다. 특히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는 단순히 주일예배만이 교회 생활의 전부가 아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게 신학자들의 권면이다.

한국공동체교회협의회 김현진 목사는 그의 논문 ‘한국 기독교 공동체 운동의 역사와 현황’에서 “교회사에서 기독교 공동체운동이 나타난 것은 교회가 제도화되고 세속화됨에 따라 교회의 생명력이 상실되면서부터였다”고 밝혔다. 현대 교회가 직면한 비판들 중 ‘세속화’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김 목사의 언급처럼 오늘날 교회가 그 만큼 공동체성을 상실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같은 공동체운동으로 가톨릭의 수도적인 모습을 차용한 동광원이나 예수원,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등이 개신교 안에 나타났다고 설명한 김 목사는, 많은 교회들이 성장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일명 ‘셀 교회’ 역시 사실은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의 일환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초대교회부터 약 200년 동안 교회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며 “그러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교회는 점차적으로 로마의 정치 구조와 흡사하게 계급화·제도화되면서 초대교회가 가졌던 공동체성을 상실해갔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교회가 성경적 교회론을 보다 활발히 논의하고 이를 실제 목회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해설교자로 유명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책 「영광스러운 교회와 아름다운 종말」에서 “교회론은 성경의 교리를 다루는 책에서 완전히 빠져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 교회론이 중대한 것이 아니라면 신약 성경이 교회에 대한 진리에 그처럼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교회에 관한 교리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다. 복음의 메시지와 그것이 오늘날 세상에서 가진 중요성에 깊은 관심이 있다면, 교회론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2012 국민일보 선정 기독교 10대 뉴스(201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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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독교 핵심 종자연 실체 드러나

기독교를 지속적으로 음해해 온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의 실체가 밝혀졌다. 종자연은 기독교 교세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불교 신자들이 중심이 돼 조직한 시민단체로 2005년부터 종교다원주의자 등과 손잡고 한국교회를 종교 편향 집단으로 몰아세웠다. 특히 대한불교조계종의 지원을 받으며 기자회견, 세미나 개최, 여론조사, 소송, 입법청원, 헌법소원심판청구, 진정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부당한 기독교 편향 논리를 유포시켰으며, 대광고 사태, 사랑의교회 건축문제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반기독교 여론을 조성했다.

내분 수습못하고 한기총·한교연 분열

지난 3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떨어져나오면서 한국교회 연합 기관의 분열이 가시화됐다. 금권선거·이단 연루 논란 등 내분을 수습하지 못한 한기총이 결국 둘로 쪼개지면서 한국교회 연합 기관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비롯해 3개로 늘었다. 주요 회원 교단들이 탈퇴하면서 한기총의 위상이 추락했고 한교연도 출범 반년 만에 사무총장 해임을 둘러싼 법정 공방으로 실망감을 안겼다. 한기총 분열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양 기관 간 치열한 ‘이단 정죄’ 논쟁도 한국교회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담임목사직 대물림 논란과 금지법 제정

지난 6월 김창인 충현교회 원로목사가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준 것을 공개 회개하면서 ‘담임목사직 대물림’에 관한 논란이 촉발됐다. 9월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국내 개신교단 최초로 대물림 금지를 명문화했다. “교회를 사유화한다”는 비판을 불러온 담임목사직 대물림을 교회법으로 제한한 것이다. 예장통합 평양노회도 대물림 금지법을 내년 총회에 헌의키로 했다. 교회 밖에서는 이 같은 결정을 환영했지만 교계 일각에선 능력 있는 2세 목사로의 대물림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논란 속에서도 일부 중대형 교회에선 대물림이 이뤄졌다.

총회장에 용역 동원·가스총 등장

지난 9월 대구 성명교회에서 개최된 제97회 예장합동 총회에서 용역이 동원되고 가스총이 등장하는 등 개신교 총회 사상 유례없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게다가 총회장이 갑작스럽게 파회 선언을 하면서 총회는 대혼란에 빠졌다. 이 사건은 모두 총회장 등의 노래주점 출입설 의혹 때문에 촉발됐다. 다수의 총대는 총회 개혁을 요구하며 ‘총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총회는 이 문제로 공전을 거듭했으며, 임원회조차 열지 못하다가 3개월 만에 겨우 총회록을 채택하고 실행위원회를 구성했다.

신천지 발호에 한국교회 차단 총력

한국교회는 ‘신천지’(무료성경신학원, 예수교증거장막성전 등으로도 불림) 침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교회와 성도를 보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상당수 교회에는 신천지 추수꾼의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나 포스터를 부착했다. 대학의 기독 동아리도 신천지 경계령을 내렸다. 인천 기독교계와 시민들은 ‘신천지’의 본부 건물 이전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부산 교계도 신천지 집단의 실상을 공개하고 법률팀, 상담팀 등 신천지 대책기구를 조직했다. 국민일보와 CBS 등 언론들은 신천지의 폐해를 알리는 기획 기사를 냈다.

미션스쿨 종교교육 지키기 적극 나서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에는 신앙의 자유, 종교교육의 자유, 종교집회결사의 자유가 포함된다. 하지만 대광고 사태에 뛰어든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은 학생의 신앙 자유만을 부각시켜 신앙교육을 대폭 위축시키는 대법원 판결과 학생인권조례를 이끌어냈다. 종자연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미션스쿨의 존립 근간을 흔들기 위한 내용을 수립하기 위해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관련 용역을 수주했다. 이에 따라 교계는 미션스쿨 종교교육권 보장을 위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성명서 발표, 인권위 항의방문, 연구조사 거부 등으로 적극 대처했다.

안티 기독교에 조직적으로 적극 대응

교계가 안티 기독교에 대해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한 한 해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가칭)한국기독교옴부즈맨’을 구성, 언론과 인터넷 매체 댓글을 분석해 한국교회를 비방·음해하는 세력에 대해 강력 대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안티 기독교 방지를 위한 인터넷 선교사 10만명 양성 계획도 밝혔다. 중보기도 단체인 에스더기도운동,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 등 기독 단체와 대형 교회들도 최근 인터넷 선교사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반 기독세력에 대응하는 개별 인터넷 사역자들 간 네트워크 형성도 이뤄지고 있다.

교회와 교회 시설에 세금 폭탄

서울 강남구가 지난 6월 ‘비과세 대상 부동산 이용실태 감사’를 벌여 소망교회 등 교회 10곳과 밀알복지재단에 5억여원의 재산세와 취득세를 추징하면서 종교기관 과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종교기관은 실비 정도의 수익만 발생한 데다 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영리 사업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것은 지나치다며 행정소송 등의 조처를 취했고 과세 당국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종교시설에 대한 세금 논란에 이어 사실상 개신교 목회자들을 겨냥한 종교인 납세 문제까지 계속 논의되고 있다.

목회자 자정·윤리선언 잇따라

일부 목회자들의 돈과 성에 대한 일탈 문제는 급기야 목회자들의 자정 선언까지 이끌어냈다. 15개 교단 목회자 협의체인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는 11월 목회자 윤리선언문을 발표하는 한편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를 발족했다. 중견 목회자들의 연합 기구인 미래목회포럼도 ‘목회자 자정 결의문’을 채택하고 교회와 목회자의 도덕성 회복을 다짐했다. 이밖에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는 올해부터 목사고시에 인성검사를 도입하는가 하면 예장합동 교단도 ‘목회자윤리실천강령’을 제정하는 등 목회자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국제 관심 끈 교과서 진화론 삭제·수정

‘진화론의 패배’라고 기록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교진추)가 지난해 11월과 올 4월에 각각 교육과학기술부에 청원한 ‘시조새’(사진) ‘말의 진화’ 등 국내 과학 교과서의 진화론 내용 수정 및 삭제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해당 교과서 출판사들은 지난 3월과 5월 시조새와 말의 진화 내용에 대해 내년부터 과학 교과서에서 수정 또는 삭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과학 전문지 네이처는 한국의 진화론 반대자들이 주류 과학계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끌었다.

2012년 12월 29일 토요일

[기독시보]류광수 목사 공개청문회 열려(2012.12.29)


28일(금) 오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홍재철, 이하 한기총) 회의실에서는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대한 공개청문회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위원장 이건호, 이하 이대위) 주관으로 열렸다. 이는 억울하게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을 가려내겠다는 한기총 이대위의 선언 후 처음 있는 일로, 교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rgs.jpg공개청문회에서 신앙고백문을 낭독하고 있는 류광수 목사(맨 오른쪽)

기자들에게 공개 된 이번 청문회는 한기총 이대위원들과 류광수 목사가 질의응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류 목사는 그 동안 이단으로 몰렸던 자신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았다면서 해명했고, 잘못된 오류나 주장에 대해서는 실수였다고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했다. 또 공개청문회 마지막에는 신앙고백문을 낭독했다.

한기총은 지난 21일 "1,200만 한국교회 성도님들께 드리는 글"이란 주제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상적인 절차로 검증해 억울한 이들은 누명을 벗겨주고, 다소 문제가 있으나 정통 기독교의 지도를 받아 수정할 의사가 있는 이들은 바른 길로 권면하고, 문제가 있음에도 수정할 의사가 없는 이들은 엄히 다스릴 것"이라고 했다.

이번 류광수 목사에 대한 공개청문회는 한기총 이대위의 이러한 의지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또 이번 공개청문회는 한기총 창립 교단이며 해체된 류광수 목사의 다락방 전도총회를 영입한 예장 개혁총회의 정식 재심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류 목사는 그 동안 여러 교단에서 이단 혹은 이단성으로 배척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한기총 이대위는 21일 성명을 통해 또 "억울하게 이단 또는 옹호자 등으로 정죄된 단체나 교단, 개인에 대해 재심 기회를 주고자 한다"며 "한기총에 소정의 절차를 따라 재심 청원을 해 주기를 바란다"고 전하기도 했지만,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 혹은 개인들이 한기총에서 이단이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면 상호 충돌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계 한 관계자는 "초대 교회의 이단 규정도 권위 있는 공의회에서 이뤄졌는데 성도들을 이단사이비로부터 보호하려는 교단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신학적 입장이 분명히 다른 교단들 각자가 누구를 이단이다 아니다 결정한다는 것은 약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억울한 이들을 보살피는 것은 좋은 의도이나 현재의 교단 이대위 역할을 한기총 이대위가 대신 해낼 수 있도록 신뢰를 쌓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국민일보]‘다락방’ 류광수 목사, 한기총서 이단 공청회… “한국교회 지도 받고 겸손히 전도”(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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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 통합, 예장 합동 등 다수의 교단으로부터 이단 지목을 받고 있는 예장 전도총회 세계복음화전도협회(일명 ‘다락방’) 회장 류광수(사진) 목사가 28일 “20여년 이단과 관련한 오해를 풀기 위해 한국교회의 지도를 받겠다”고 다짐했다.

류 목사는 이날 오전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주최한 공개 공청회에 참석해 이대위 위원과 전문위원, 교계 기자들로부터 ‘다락방 전도운동의 신학’에 관한 질의를 받고 이같이 말했다. 지난 해 예장 개혁 총회(총회장 정학채 목사)에 영입된 전도총회는 17개 노회와 820여개 교회, 성도 수가 3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도총회는 지난 해 6월 개혁 교단 영입 직후 해체했다.

류 목사는 이날 오른손을 들고 11개 항목의 신앙고백문을 발표했다. 그는 “신구약 성경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행위에 대해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임을 믿는다”고 선서했다. 또 “하나님은 한분 하나님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로 영원토록 존재하심을 믿는다”고 밝혔다. 류 목사는 “앞으로 겸허하게 전도운동을 실천하겠다”며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가 되고 30여년 전도운동을 하게 됐다. 과정에 물의가 있어 걱정을 끼치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한다. 작은 힘을 모아 겸손히 전도운동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시면 고치고 한국교회의 지도를 받겠다”며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친 것을 다시 한번 사과드리며 오해된 부분은 철저히 고치겠다”고 거듭 밝혔다.

한기총은 내년 1월 3일 오전 서울 코리아나 호텔에서 열리는 24회 정기총회에서 류 목사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베리타스]한기총, 재심청원에 다락방 류광수 목사 공개청문회(2012.12.29)


류 목사 “질문 자체 맞지 않아” 답답함 토로

▲28일 오전 11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의실에서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된 바 있는 다락방전도운동 류광수 목사 공개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다. ⓒ베리타스
다락방전도운동(이하 다락방) 류광수 목사가 이단 관련 공개청문회에서 “질문 자체가 맞지 않다”는 말을 반복하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28일 한기총 회의실에서는 류광수 목사 이단 관련 조사 질의 청문회가 공개적으로 진행됐다. 한기총 회원교단인 예장개혁 총회의 재심 청원으로 진행된 이날 청문회에서 류 목사는 배석한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하 이대위, 위원장 이건호) 위원 및 전문위원들이 준비한 질문을 받고는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문답 과정에서 류 목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처음 듣는 얘기” “그런 용어를 쓴 적이 없다” “더 이상 해드릴 말이 없다”는 등의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대개 2차 자료에 근거해 질의를 이어나가던 이대위원들 중 일부는 헛기침을 하기도 했다. 이들 이대위원들은 주로 최삼경 목사와 총신대 박용규 교수가 류 목사를 비판한 내용, 즉 2차 자료를 근거로 질문을 던졌다.

최 목사와 박 교수의 문제 제기로 류 목사는 20여년 전 ‘박옥수 구원파의 구원론’ ‘김기동의 귀신론’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 재영접설’ 등과 유사한 신학적 입장에 서 있다는 이유로 주요 교단들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된 바 있다.

이대위원들은 먼저 류 목사에게 박옥수, 김기동, 위트니스 리 등과 무슨 관계냐고 먼저 물었고, 류 목사는 "일면식도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그들로부터 (자신의 신학 사상 등이)영향을 받았느냐’고 재차 묻자 그들의 집회에 참석한 바도 없으며 "그들의 신학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고 했고, 이어 다만 "전도를 하면서 구원을 강조하니 그것을 (박옥수 구원파의)구원론이라고 하고, 무속인들이 전도돼 그들에게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그것을 귀신론이라고 하고, 복음을 누리라고 하니 그것을 위트니스 리라고 했다"고 답했다.

▲공개청문회 시작 전 류광수 목사가 자신의 소개를 기다리며 초조해하고 있다. ⓒ베리타스
그러면서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잡지 등 출판물에)내버렸다"며 "나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오늘 처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이대위원이 ‘당시 문제를 제기한 최삼경 목사로부터 (지적된 것에)소명의 기회를 받은 적이 있냐’고 묻자 "그런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류 목사가 이단으로 규정되는 데 있어 주된 근거로 제시된 ‘사단결박권’과 관련해 한 이대위원이 ‘류 목사가 예수 성육신의 목적을 사단과의 싸움에 치중하고 있다고 하여 최삼경 목사와 박용규 교수(총신대)가 문제 삼고 있다’는 물음에는 “나는 (예수의) 삼중직을 항상 말했다. 왜 다른 것을 빼고 사단만을 말하느냐”고 반문했다.

또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 재영접설 등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냐’는 또 다른 이대위원의 질문에는 "재영접설이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한 적이 없다"며 전혀 무관함을 밝혔다. 

이 밖에 ‘총신대 박용규 교수가 지적하기를,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금시초문"이라며 "전도에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은)기본적으로 강조되는 부분이다. 그게 안되면 전도가 안되죠. 더 말씀 드릴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최삼경 목사는 조상의 죄 대물림을 가계저주론과 관련지어 이단으로 규정했는데 조상의 죄의 대물림을 가르치는 데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가’라는 물음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우상숭배를 하는 이들에게 3, 4대 저주가 이어진다는 말씀이 있다"라며 "무당 자녀들이 보면 대개 원하든 원치않든 무당 노릇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을 포함해 복음을 확실히 전해야 하는 차원에서 한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대위원 유장춘 목사가 사단배상설에 관한 한 류 목사가 직접 유사한 메시지를 전한 것을 두고 문제삼자 "실수였다. 인정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잘못된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이단 종파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기성교회에 대한 적대감 표출 등 배타적 태도 지적에는 "20년 동안 고생하면서 실수도 있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한국교회로부터 배우고 같이 가겠다"고 했다. 앞서 류 목사는 ‘렘넌트(Remnant)라는 단어를 사용, 배타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고 최삼경 목사가 지적하고 있다. 렘넌트들만이 구원받은 십사만사천(144,000)이라고 주장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십사만사천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이날 공개청문회 직후에 한기총 이대위원들은 류 목사를 내보낸 후 비공개 회의를 가졌다. 청문회에 배석한 한 교계 인사는 "(류 목사가) 생각했던 것 보다 (기성교회 목사들과)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준비해 온 신앙고백문을 낭독하고 있는 류광수 목사와 이를 놓칠쌔라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는 취재진들. 한기총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30여 개 이상의 교계 신문, 방송 기자들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베리타스
하지만 이날 공개청문회는 이미 회원 교단이 영입한 인물을 그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준비된 질문지라든가 질문지에서 벗어나는 내용에 관한 질의가 엄격히 제한되었다든가 하는 점은 류광수 목사가 회원 교단 인사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청문회였음을 방증해 주었다. 시종일관 다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청문회가 진행됐다는 점도 팔이 안으로 굽고 있음을 재차 확인시켰다.

현재 예장 개혁총회는 신학적 검증 절차를 거쳐 류광수 목사측에 이단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며 이에 관해 소속 연합기구인 한기총에 재심 청원을 해놓은 상태다. 이번 공개청문회는 그 재심 청원 절차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앞서 한기총 이대위는 정당한 ‘소명의 기회 없이’ 이단으로 규정된 교회 및 단체, 개인에 대해 재심 청원을 받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크리스천투데이]한기총 이대위, ‘다락방’ 류광수 목사 공개청문회 진행(2012.12.28)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것 많아… 실수한 것엔 사과”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대한 공개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다. ⓒ김진영 기자

다락방전도운동(이하 다락방) 류광수 목사의 신학에 관한 공개청문회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홍재철 목사, 이하 한기총)에서 열렸다.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위원장 이건호 목사, 이하 이대위) 주관으로 열린 이날 청문회는 이대위원들이 질문하고 류 목사가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류광수 목사는 ‘김기동의 귀신론’ ‘박옥수 구원파의 구원론’ ‘위트니스 리의 지방교회 재영접설’ 등과 유사한 신학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 지금까지 몇몇 교단에서 ‘이단’으로 지목돼 왔다.

이에 대해 류 목사는 “전도를 하면서 구원을 강조하니 그것을 (박옥수 구원파의) 구원론이라고 하고, 무속인들이 전도돼 그들에게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그것을 (김기동의) 귀신론이라고 하고, 복음을 누리라고 하니 그것을 위트니스 리(의 사상과 유사하다)라고 했다”면서 “(나의 정확한 신학 사상이 무엇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잡지 등에) 내버린 것이다. 나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류 목사는 “김기동 씨나 박옥수 씨 등의 집회에 참석한 일도 없으며 그들의 신학에 공감한 적도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공청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류광수 목사. ⓒ김진영 기자
류 목사는 ‘다락방이 가진 배타적 교회론, 즉 기성 교회는 모두 잘못된 복음을 가지고 있고 오직 나(류광수)만이 진정한 복음을 가지고 있다는 가르침은 사실인가’라는 질문에 “지금까지 다른 건전한 목사님 500명과 함께 전도운동을 했다. 나 혼자 신도들 모아서 했으면 몰라도…, 다 신앙적 양심이 있는 분들”이라며 복음이 자신에게만 있다는 주장을 부인하면서도 “20년 간 억울해서, 억울한 (마음에서 한) 표현은 있었다”고 말했다. 류 목사는 그러나 “지금은 (그와 같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류 목사는 ‘꿈과 환상에 대해 강조하는 목회를 하느냐’는 물음에 “(그 부분과 관련해) 내가 한 설교의 문맥을 보면, (전도된) 무속인들에게 ‘성경이 없을 때 하나님의 음성도 들렸고, 꿈과 환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경이 있어서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면서 “그런데 뒷말을 빼고 앞에 말한 것만을 가지고 공격을 하니 너무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류 목사가 지적받아 온 이단성 중 하나가 바로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었다. 한 이대위원은 “최삼경 목사는 류광수 목사의 삼위일체론이 위트니스 리 지방교회의 양태적 삼위일체론과 동일하다고 단정했다”며 그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류 목사는 “최삼경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최 목사가 내게 ‘(새 신자가) 예수를 믿어야 하나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라고 묻길래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케 하신 것이고 지금은 예수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것을 양태론이라고 한 것”이라며 “다원론이 판치는 세상에서 오직 여호와는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제일 많이 강조했다. 또 예수가 유일한 그리스도요 유일한 중보자라는 것도 말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빼 버리고….”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최삼경 목사와의 대화 과정에서) 말 실수는 있었던 것 같다”면서 “그래서 사과까지 했다”고 밝혔다.

또 류 목사는 ‘사단결박권과 천사동원권을 주장한다’는 데 대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그런 권세를 주셨다”며 “이런 권세가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냐. 그런데 무슨 무슨 권이라고 하니 문제가 된 것 같다. 그런 단어는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기도해서 우리가 직접 사단을 결박한다는 것이냐,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사단을 결박하신다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인데….”라고 답했다.

더불어 김기동 씨의 일명 ‘귀신론’과 류 목사가 말하는 ‘사단결박권’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도 그는 “김기동 씨의 귀신론은 불신자가 죽으면 그가 귀신이 된다는 것인데 (그것과 사단결박권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류 목사는 또 ‘류 목사가 예수 성육신의 목적을 사단과의 싸움에서 찾는다고 하여 최삼경 목사와 박용규 교수(총신대)가 문제 삼고 있다’는 물음에 “나는 (예수의) 삼중직을 항상 말했다. 왜 다른 것을 빼고 사단만을 말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류 목사는 이단으로 규정되는 과정에서 그가 지나치게 사단과의 싸움을 강조하고 심지어 사단만 결박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받아 왔다.

이에 류 목사는 “복음 없이는 결코 인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확신한다”며 “그래서 전도를 강조하게 되었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도 현장에 나가보면 우상숭배와 뉴에이지 사상이 가득하다. 이런 곳에서 목사인 내가 왜 사단을 말하면 안 되느냐. 그렇다고 사단만 말했느냐? 아니다. 다른 것들도 늘 말했다”고 토로했다.

류 목사는 이날 질문과 답이 오가는 과정에서 “사단배상설과 같은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지만, 한 이대위원이 류 목사가 그의 책에서 사단배상설을 주장한 부분이 있다고 하자 “실수였다. 인정한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류광수 목사가 신앙고백문을 낭독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류 목사는 또 ‘류 목사는 렘넌트(Remnant)라는 단어를 사용, 배타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고 최삼경 목사가 지적하고 있다. 렘넌트들만이 구원받은 십사만사천(144,000)이라고 주장하는가’라는 질문에 “십사만사천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며 “(이단으로 규정된) 20년 동안 고생하면서 (배타적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실수도 있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한국교회로부터 배우고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류광수 목사는 미리 준비해 온 신앙고백문을 낭독했다. 그는 “신구약 성경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행위에 대해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임을 믿는다”며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로 영원토록 존재하심을 믿는다”고 고백했다.

한편 이날 청문회 전 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은 “한기총 창립 교단들 중 하나인 예장 개혁총회가 류광수 목사측에게 이단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고 한기총에 정식 재심을 요청했다”며 “이에 한기총 이대위는 심도 있게 재조사를 진행했고 그 일환으로 류광수 목사를 직접 불러 공개 청문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오늘과 내일/유윤종]언어의 과잉투약(2012.12.28)

어릴 때 병원에 들어가면 처음 만나는 사람은 위인전 속 나이팅게일 같은 흰옷을 입은 ‘간호원 누나’였다. 주사의 공포감에 울면 미소 지으며 사탕을 건네기도 했다. 그 간호원 누나들은 1987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이듬해부터 ‘간호사’로 불리고 있다. ‘간호원’에 비전문적인, 비숙련직의 느낌이 들기 때문에 바꾸었다고 한다.

선거 치르며 ‘언어 수위’ 높아져

간호사들의 업무가 전문적이며 고도의 숙련을 요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교사에 대학교수 등을 합친 개념이 ‘교원’이다. 그런데 ‘원(員)’이 ‘사(師)’보다 낮다면, 교사가 교수를 만났을 때 이들을 ‘교원들’이라고 부를 경우 교수나 교사보다 숙련도가 낮아지는 걸까.


어릴 때 택시를 타면 노란 정복에 흰 장갑을 낀 ‘운전수 아저씨’가 있었다. 지금은 ‘운전기사’가 되었다. 역시 ‘운전수’라는 단어가 비전문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식을 중심으로 ‘셰프’를 대체하고 있는 ‘숙수(熟手)’는 어떻게 되는 걸까. 끓이고 익히는 단순 업무만을 하는 사람인가. 직업명에 놈 자(者) 자가 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장애인들은 특정의 장애를 제외하면 다른 부분에서 비장애인들보다 우수한 자질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그들을 보호해야 함은 물론이다. 예전에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 등을 부르는 말은 순우리말을 썼다. 이 말들이 비하적 표현이라고 해서 바꾼 것이다. 대부분 그 순우리말 자체에 비하적인 요소는 없는데도 그렇게 순우리말 몇 가지가 일상회화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새로 쓰는 말들을 언중(言衆)이 비하의 뜻을 담아 사용하게 된다면 그 말들은 또 바꾸어야 될 것이다.

이 같은 일들은 점차 약효가 강한 약들을 쓰게 되는 항생제 과잉투약 현상을 연상하게 한다. 쓰던 항생제가 듣지 않게 되면 다른 약으로 대체하고, 결국 최신의 항생제로도 듣지 않는 병원체가 만연하게 된다. 한두 사람이 조심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전국의, 전 세계의 환자들이 고단위 항생제를 아낌없이 투약할수록 항생제 위기는 커진다.

두 건의 큰 선거가 있었던 2012년, 우리 사회의 언어 수위는 유난히 높았다. 한쪽 진영의 공분을 산 언어는 반대쪽으로부터 더 격한 수위의 언어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반대 진영에 ‘구역질’ ‘창녀’ 등의 표현을 퍼부은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 임명에 대한 야당 측의 실망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정치권과 이 사회가 뿌린 ‘거친 입’의 맨얼굴을 그에게만 투사하고 홀가분해할 수는 없다. “공산당 같다” “김일성의 아명(兒名)” “×물을 튀기는 잡탕” “기생충” “홍어×” “그×(여성을 뜻하는 비칭)”…. 양측 공식 대변인 라인을 비롯한 정치권 전반에서 선거 기간 안팎에 쏟아진 말들이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각종 인터넷 게시판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젠 거칠었던 표현들 순화시킬 때

이제 선거는 지나갔다. 표현의 강도가 높아진 언어들을 ‘쿨다운(냉각)’할 시간이다. 새로 출범할 정부에 걱정되는 징후가 발견되면 적확하고 투명한 언어로 지적해 주면 된다.

마침 한 해의 마지막 달력도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우리 누구나 한 해 동안 주변에, 이웃에, 동료에게 크고 작은 말의 폭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우리 전래 설화를 각색한 웹툰 ‘신과 함께’에는 ‘발설(拔舌)지옥’이 등장한다. 사람은 저승에 가서 입으로 행한 죄로 인해 혀를 뽑히고, 소가 그 혀를 갈아 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설화를 만들어낼 만큼 말의 폭력을 경계했던 조상들의 정신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한 해 동안의 ‘과잉언어’를 새하얗게까지는 아니라도 쓸어내고, 정확하고 합리적인 언어가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새해가 되기를.

[광화문에서/박정훈]‘헛똑똑이’ 조국(2012.12.28)

수강생들은 대체로 ‘기대 이하’라는 반응이었다. 지난 학기 조국 교수(47)의 서울대 로스쿨 형법총론 수강생 10명에게 들어 보니 평이 그랬다. 수강생 K 씨(22)는 “준비가 부족해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고, J 씨(29)는 “트위터 할 시간에 수업 준비 좀 했으면 좋겠다. 등록금도 많이 내는데…”라고 푸념했다. 인문대 대학원 등록금(315만 원)의 두 배 이상(675만 원)이니 본전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다른 K 씨(23)는 “법조 실무에서 중요한 죄수론과 형량은 다루지 않고 보강도 안 해줬다. 다음 학기 형법 교수가 ‘그것도 안 배우고 왔느냐’고 꾸짖더라”고 했다. 한 학생은 “중간고사 때 교수님이 일부 항목을 채점하지 않아 찾아가 항의했더니 점수를 고쳐 줬다. 나 말고도 채점 기준 때문에 여러 명이 항의했다”고 전했다.

서울대 강의평가 사이트 ‘스누이브’에서 조국 교수의 형법총론은 7.74점(10점 만점)이었다. 같은 강의를 하는 법대 교수 4명 중 3등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대 교수는 “트위터 몇 자로 뭘 한다고…. 많은 교수가 ‘이제 그만하든지, 할 거면 나가서 하든지’라고 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시대의 지성’으로 꼽히는 강남좌파 조국은 일터에서 이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똑똑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닌 ‘헛똑똑이’ 취급이다.

학생들의 환상이 깨졌듯, 그에 대한 사회적 평가 역시 이번 대선 과정에서 허물어졌다. 대한민국 8만4910명의 교수 중 그를 특별한 지식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보집권플랜’을 비롯한 그의 책들은 대부분 진보좌파 집권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균형감 있게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혜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잘생긴 강남좌파’라는 이유만으로 특별대접을 할 순 없는 일이다. 그는 선거 때마다 상아탑이라는 보호막을 쓰고 조준경을 열지도 않은 채 우파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앙가주망(지식인의 사회참여)도 균형감이 있어야 존중받는다. 조국의 문재인 후보 TV 찬조연설에는 지식인의 성찰 대신 정치꾼의 선동이 있었다. “고문받으며 지킨 민주주의가 허물어지고 독재가 부활한다”고 했고, 박근혜 후보를 재벌 옹호자로 묘사했다. 시대야 바뀌든 말든 1980년대 반독재 투쟁 논리가 참지식이라고 우기는 거짓 진보의 모습 그대로다. 그래 놓고는 감금되다시피 한 국정원 여직원 실명과 주소를 트위터에 올렸다. 찾아가 테러라도 하라는 게 아니라면 의도가 뭐란 말인가.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그 여직원은 낄 자격이 없다는 건지 묻고 싶다.

조국 같은 ‘입 진보’ 때문에 야권은 선거를 망쳤다. 대선 내내 선동으로 달아오른 그의 입에 염증이 난 중도세력은 진보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오죽하면 “조국이 일등공신”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많은 사람이 조국을 ‘참세상을 꿈꾸는 이상가’가 아닌 ‘권력을 탐하는 정치꾼’으로 기억할지 모른다.

특정 정치세력의 과(過)에만 관심을 갖고, 앞장서 비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라면 연구보다 정치가 어울리는 거다. “교수를 천직으로 생각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건 아직 자신의 실체와 정체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트위터를 내려놓고 묵언안거(默言安居)를 시작했다는 그가 세밑에 스스로 헛똑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을 갖는다면 2012년 조국에게 그만한 소득은 없을 것이다.

[분수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올 한 해 생각대로 사셨습니까(2012.12.28)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을 새삼 되새기게 되는 연말이다. 새해 달력을 챙기고, 내년치 수첩도 새로 구해 식구들 생일이나 각종 아이디·비밀번호, 은행 계좌번호 따위를 틈틈이 옮겨 적고 있다. 나는 과연 생각하는 대로 살아왔는가. 아니면 사는 대로 생각해왔는가. 연초부터 지금까지 온갖 메모로 빽빽해진 올해 수첩을 보면 그저 휘둘리며 살았을 뿐 나 스스로의 생각대로 신선하게 지낸 날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대학시절 성경을 읽다가 눈에 꽂혀 자계(自戒)의 문구로 삼은 구절이 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어리석은 자는 그 어리석은 짓을 거듭 행하느니라’(잠언 26장 11절). 무언가 목표를 세워도 대부분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고, 나쁜 습관은 반대로 고칠 줄을 모르는 자신에 대한 경계였다. 그러나 수십 년 세월이 흘렀어도 ‘토한 것을 도로 먹는’ 한심한 행태는 개선될 기미가 없다. 이제는 성경 구절의 효용이 자계인지 자조(自嘲)에 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흡연 습관만 해도 그렇다. 매년 1월 1일 금연 결심을 했다가 곧 무너지고, 이어서 설날, 내 생일, 무슨 기념일 하는 식으로 퇴각만 거듭하다 한 해가 저문다. 어쩌다 석 달간 금연한 적이 있지만 100일을 못 채우고 동굴에서 뛰쳐나간 의지 약한 호랑이 꼬락서니이긴 마찬가지다.

 사실 습관은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본능에 따른 것이다. 미로 끝에 먹이를 두고 쥐에게 길을 찾아가게 하면 처음엔 뇌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그러나 길 찾는 데 익숙해지면 뇌의 움직임도 줄어든다. 굳이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련의 행동이 기계적인 습관으로 바뀌는 과정을 학자들은 청킹(chunking·덩이 짓기)이라 부른다고 한다. 우리 일상생활은 대부분 신호-반복행동-보상의 3단계를 거쳐 형성된 행동 덩어리, 즉 습관이 지배하고 있다(찰스 두히그, 『습관의 힘』).

 문제는 뇌가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공기를, 물고기가 물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듯 습관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기 일쑤다. 행동만 그럴까. 생각에도 습관이 스며든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생각하던 대로 생각하면 머리가 편하다. 편한 데 익숙해지면 세상과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수고로움을 점차 꺼리게 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얘기는 듣기조차 싫어진다. 사서 피곤해질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지배한 집단사고 간의 격렬한 대립의 배경에도 생각을 습관에 맡겨버리는 몰(沒)지성, 몰성찰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다투는 주제마다 합의점을 찾기는커녕 지루한 동어반복 싸움만 되풀이됐을 리 없다.

[양선희의 시시각각] 2012년에 묻어버리고 싶은 것(2012.12.28)

이제 사흘 남았다. 이날들이 지나면 2012년은 과거가 된다. 이즈음에 이 해와 함께 ‘과거의 일’로 묻어버리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증오·분노·세대전쟁·막말· 권력형 비리…. 그런데 어느 것도 ‘자살’보다 강하지 않았다. 지난해 이맘때쯤 일어난 대구 중학생 자살로 올 벽두부터 ‘자살’이 화두가 됐기 때문일 거다. 게다가 최근엔 한진중공업 복직 노조원 자살까지….

 자살은 만연했다. 하루 평균 40여 명이 자살하고, 청소년 네 명 중 한 명꼴(23.4%)로 자살을 생각하며(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학생들은 학교폭력과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투신했고, 한 동네 빵집 주인은 옆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며, 공기업 직원은 납품 비리가 발각됐다고 목숨을 끊었다. 자살은 도처에서 일어났다.

 가족 드라마에서도 자살한 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고등학생 이야기가 한 토막 에피소드로 나오고, 툭하면 주인공들이 벼랑 앞에 서거나 약을 먹었다. 우리나라 연예인 중 자살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게 예능 프로에 나와 자신의 자살 위기를 떠벌리는 연예인들로 넘쳤다. 자살 보도 지침에도 불구하고 자살 보도는 줄을 이었다. 대중매체는 자살을 퍼뜨렸다.

 도대체 자살이 뭐길래. 2주 전 열렸던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심포지엄 주제는 ‘자살에 관한 전통철학적 접근’이었다. 권성 위원장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살에 대해 좀 더 깊은 통찰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자경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불교철학으로 자살을 설명하며, 이 시대가 생명의 존엄성이 절대가치임을 몰라서라고 했다. 시대정신이 ‘생명경시’라서 자살은 삶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쉽게 선택된다. 그런데 자살은 생애의 업에다 자살 순간 살인의 진심(嗔心)까지 더해져 다음 생의 고(苦)는 지금보다 더해진다고 했다. 자살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성기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는 내세관이 없는 유교에선 도를 깨치는 삶이 중요하다는 삶의 철학만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의(義)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생취의(捨生取義)를 중시했다. 의로움을 위해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고, 그런 이들은 의인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중학생이 학교폭력 문제를 제기하면서, 동네 빵집 주인은 대기업 빵집을 고발하면서, 노동자가 회사를 증오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우리 사회의 자살이 사회문제와 얽혀 있는 것은 이 같은 유교적 뿌리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단다. 이런 죽음을 산 자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열사로, 의사로 만들며 이용한다.

 그런데 유교에선 잘 죽기 위해서라도 충실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생취의는 대마도에서 “왜놈 땅에서 나는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지킨 최익현 선생 같은 죽음을 말한다. 분노와 좌절을 못이겨 죽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사생취의가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작금의 자살 현상에 대해 철학도 답을 주지 못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았다. 대구 중학생과 한진중공업 노조원의 유서를 반복해 읽었다. 절망적이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폭력을 당하는 자녀를 안전하게 폭력에서 구해내는 방법은 있는가. 월급을 받지 못하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소시민이 일은 없고 빚더미에 앉아 있다면 어디로 도망쳐야 하나. 낙인 찍히면 끝장이고, 패자는 갈 곳이 없고, ‘뗑깡’쓸 힘이라도 없으면 밟힐 거라는 강박은 무시무시했다. 나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기운 빠지지만 이런 단어만 떠올랐다. 염치·순리·관용·동감·상부상조·측은지심…. 이젠 진부해진 이런 말을 잊고 산 게 우리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한 건 아닐까. 이런 ‘옛 감정’들이라도 복원하면 삶도 조금은 순해지지 않을까. 내년은 더 어려울 거다. 그 고단한 삶에서 뛰어내리고 싶어 할지도 모를 이웃을 향해 푸근한 마음 갖기 실험이라도 하는 게 그나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까.

[크리스천투데이]한기총, 2013년 신년메시지 발표(2012.12.28)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국교회 되는 일에 매진”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홍재철 목사, 이하 한기총)에서 2013년 새해를 맞아 신년메시지를 발표했다.

한기총은 “2013년 새해에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로, 대한민국 국가와 사회의 위대한 발전을 위해 우리 한기총과 정부가 적극 협력하고, 채찍질할 것은 채찍질하는 귀한 한 해가 되기를 원한다”며 “한국 기독교 5만 5천 교회와 1200만 성도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한국교회 대표기관인 한기총은 2013년 새해에도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 부흥과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국교회(Revival 2013)’가 될 수 있도록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은 “여러분과 함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기독교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는 2013년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여러분의 많은 기도와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한기총은 “올 한 해는 인생의 위기에서 어려움에 빠져 있는 노숙자 등 사회의 음지에서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회복되고,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펼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한기총과 정부의 협력으로 국민행복시대가 열릴 수 있길 바란다”며 “시련과 고난, 은혜와 영광이 교차되는 한 해였던 2012년을 지나고, 비가 온 다음 땅이 단단히 굳어지고 홍수 후에 아름다운 샘이 솟아나듯 우리 한기총이 혼돈의 늪에서 빠져나와 놀라운 회복의 새 역사를 쓰게 해 주셨다”고 강조했다.

2013년 주요 일정에 대해서는 “3월 마지막 주일 북한에서 WEA와 한기총 주관으로 부활절 연합예배가 남북한 공동으로 이뤄지는 역사적인 첫 해가 되고, 4월 9-14일 하와이 이민 기독교 110주년 기념 한민족 복음화 대회를 주관하고, 2014년 있을 WEA 세계총회를 준비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전문.


존경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임역원, 회원교단장 및 단체장, 그리고 1,200만 성도 여러분. 다사다난했던 2012년도를 보내고 새로운 2013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히 금년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로써 대한민국 국가와 사회의 위대한 발전을 위해 우리 한기총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채찍질할 것은 채찍질하는 귀한 한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난 2012년은 시련과 고난과 은혜와 영광이 교차되는 한 해였음을 우리 모두가 고백합니다. 비가 온 다음 땅이 단단히 굳어지고, 홍수 후에 아름다운 샘이 솟아나듯이 우리 한기총이 혼돈의 늪에서 빠져 나와 놀라운 회복의 새 역사를 쓰게 해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한 해 동안 한기총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 기독교 55,000개 교회와 1,200만 성도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한국교회 대표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2013년 새해에도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 부흥과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국교회'(Revival 2013)가 될 수 있도록 일로 매진 하겠습니다. 특별히 대표회장 본인은 여러분과 함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기독교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는 2013년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여러분의 많은 기도와 지원을 부탁 드립니다.

아무쪼록 2013년 올 한 해는 인생의 위기에서 어려움에 빠져있는 노숙자 등 사회의 음지에서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회복되고,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펼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한기총과 정부의 협력으로 국민행복시대가 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금년은 3월 마지막 주일 북한에 가서 WEA와 한기총 주관으로 부활절 연합예배가 남·북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첫 해가 될 것이며, 4월 9-14일에 있을 하와이 이민 기독교 110주년 기념 한민족 복음화 대회를 한기총이 주관하게 되었으며, 또한 2014년 WEA 세계 총회를 준비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범사와 하시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신년 벽두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

[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 ‘호구조사’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201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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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들의 도전 : “예수 탄생과 관련된 호구조사는 비상식적이며 사실이 아니다.” “누가의 호구조사는 기발한 명분의 픽션이며 믿을 수 없다.”

만일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들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만일 예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지 않았고,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지 않았고, 헤롯의 유아 살해 사건도 허구이며, 예수 탄생과 관련된 호구조사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성경의 역사성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신성을 심각하게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는 도(道)를 깨달은 한 인간에 불과하며,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십자가를 통해 죄를 용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찾아오셨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소설에 불과한 것이 된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 안티들이 주장하는 바다.

“징집·노역·세금위해 14년마다 시행”

도올 김용옥 교수는 예수 탄생과 관련된 호구조사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누가복음 2장은 나사렛에 살았던 요셉이 정혼녀 마리아와 함께 호적등록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기 예수를 낳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도올은 ‘원적지 호구조사’는 비상식적인 것이며, 예수에게서 ‘다윗 혈통의 정통적 후계라는 메시아적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한 ‘기발한 명분의 픽션’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과연 호적조사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도올은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제국 전체에 호구조사를 명한 사례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로마는 공화정의 전통을 가진 나라였기 때문에 그러한 발상이나 유례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와 디오 카시우스는 아우구스투스가 전 제국의 정복지에 대해서 정기적인 인구조사를 실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의 표현으로써 인구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으며, 정복지 남자들의 군대 징집이나 노역 그리고 세금 징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한 인구조사와 등록은 매 14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인구조사가 지방 총독에 의해 실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일반적인 정책으로 간주되었다. 고대의 인구조사는 오늘날처럼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수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심지어 약 40년에 걸쳐서 완성된 사례도 있다.

또한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였던 고고학자 윌리엄 램지는 BC 8년 또는 7년께에 황제 칙령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가까운 시리아 지역에서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음을 밝혀냈다. 바로 그 인구조사가 예수의 탄생(BC 4년께) 시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실시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등록을 해야 하는 원적지 호구조사는 실제로 그러한 역사적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누가의 호적등록에 대한 기사는 엉뚱한 발상이 아니며 오히려 그 당시 역사적 정황과 일치한다.

둘째, 도올을 비롯한 성경 비평가들은 “시리아의 총독 구레뇨는 AD 6년 때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않았는데, 왜 누가는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이스라엘에 인구조사를 실시했다고 하는가?”라고 비판한다. 도올은 누가가 AD 6년에 실시된 이 인구조사를 BC 4년께 예수의 탄생과 연결시킨 것은 두 사건을 혼동한 것이 아니라 상상력 속에서 적당히 짜 맞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두 번 임명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주장이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BC 8∼7년께 시리아 지역에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을 때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탁월한 행정가이자 뛰어난 군인이었던 구레뇨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의 문제들을 평탄케 하는 임무를 맡겼다고 한다. 이 사실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두 번 임명되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비록 여전히 논란 중이긴 하지만, 1764년에 발견된 라틴어 비문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두 번 통치하였음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BC 12년에서 BC 2년 사이에, 두 번째는 AD 6년께에 시리아의 총독으로 활동한 개연성이 다분히 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의 권위자인 데렐 복(Darrell L Bock)은 누가복음 2장 2절의 “첫 번째 인구조사”라는 말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처음으로 행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구레뇨 통치 하에 적어도 두 번 이상 실시되었던 인구조사들 중에서 첫 번째로 행한 것이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본다. 데렐 복은 두 번째 해석을 선호한다. 이런 성경 해석과 역사적 정황들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두 번 임명되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지지하고 있다.

끝으로 탁월한 고고학자 윌리엄 램지는 20년 동안 누가에 나오는 지명을 연구했다. 그의 결론에 의하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32개 나라들과 54개 도시들, 그리고 9개 섬들은 고고학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매우 정확한 기록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누가의 기록은 고고학적으로도 매우 신뢰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고대 역사는 한 가지 출처에만 그 신뢰의 근거를 두고 있다. 비록 여러 자료들에 의해 확증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누가의 기록을 일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면 누가가 기록한 원적지 호구조사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 밭이 중요함을 느낀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도 어떤 이는 거부하고 어떤 사람은 잘 받아들여 열매를 맺는다(마 13장). 씨앗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밭이 문제다. 옥토와 같은 마음을 소망한다. <끝>

(서울 큰나무교회· 기독교 변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