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3일 목요일

[양선희의 시시각각] 김연아(2012.12.14)


양선희
논설위원

김연아의 경기를 다시 보게 되어 흐뭇했던 건 시청자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스타 기근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피겨 스케이팅계가 김연아의 컴백으로 다시 활력을 찾고 있다는 외신들을 보면 말이다. 피겨 경기를 마지막으로 본 게 김연아의 ‘오마주 투 코리아’이니 벌써 20개월 전 일이다. 그사이 다른 많은 관객도 피겨에서 떠났고, 피겨계는 고만고만한 군소 주자들이 겨루는 김빠지는 세월을 보냈단다.

 김연아의 등장에 일본 언론들은 또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이라며 호들갑이다. 이에 우리 네티즌들은 “김연아는 20개월이나 쉬어 덜 풀린 몸으로 경기 중 엉덩방아를 찧고도 200점을 훌쩍 넘겼는데, 쉬지 않고 기를 써서 190점대를 기록한 아사다가 어째서 김연아의 라이벌이냐”고 짜증스러워 한다. 그래도 군계일학(群鷄一鶴)의 독무대보다는 ‘두 고수의 경쟁’을 보는 게 더 흥미진진하니 이런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는 흥행 차원에서 나쁘지 않다.

 게다가 국내 선수들에게도 좋은 일이란다. 김연아가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2위를 하면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 출전권 3장, 10위 안에만 들어도 2장을 확보한단다. 스타 한 명이 세계 피겨스케이팅계를 살리고, 국내 피겨 선수들도 살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좀 격하게 칭찬해 ‘스타 구국(救國)’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스타 한 사람이 침체된 국면을 전환하는 사례는 더 있다. 최근에 우린 배우 이시영으로 인해 여성 복싱을 알게 됐다. 그는 복싱 흉내나 내는 여배우가 아니었다.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에 오를 만큼 실력이 있었다. 비록 결승전 패배로 태극마크는 달지 못했지만 그의 도전으로 비인기 종목이던 여성 복싱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그렇다. 그는 걸그룹의 예쁜 몸짓에 의존했던 K팝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꾸며 돌파구를 마련했다. 세계인이 말춤을 추며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치고, 이 한국말은 예일대가 뽑은 올해의 말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실력 있는 스타는 엄청난 시너지를 낼 만큼 힘이 세다.

 사실 스타가 나라를 살릴 수도 있겠다는 ‘스타 구국’이라는 말을 떠올린 건 안철수 때문이었다. 안철수가 ‘새 정치’를 표방하며 출마선언을 했던 때였다. 당시 한 20대 후배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앞으로 5년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건 안다. 그래도 저의가 의심스럽기만 한 기존 정치인들이 아니라 안철수라면 그 어려움도 함께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이 말을 들으며 정치불신을 넘어 무관심으로 치닫는 2030세대에 정치 참여 열의를 불러일으킨 정치 스타의 탄생이 반가웠다. 그의 등장은 기성 정치권 인사들도 ‘닥치고’ 새 정치를 외칠 만큼 상승 효과를 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행보는 흘러간 스타의 ‘허무 개그’를 보는 듯하다. ‘안철수의 생각’을 위시한 그의 콘텐트는 허약했지만 그의 경쟁자였던 박근혜와 문재인도 실현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약속을 남발했다는 점에서 굳이 안철수가 훨씬 모자라다고 주장할 순 없다. 각론으로 본 정치적 실력은 떨어졌지만, 스타성에선 경쟁자 없는 군계일학으로 ‘팬덤’까지 몰고 다니니 허점들도 눈감을 만했다. 그런데 타협과 협상, 조직과 협력의 마당인 정치무대에서 ‘원칙’을 내세우며 참모도 모르게 깜짝 사퇴쇼를 벌여 가뜩이나 불안했던 정치실력의 바닥을 드러내더니, 이젠 ‘새 정치’는 어디 가고 정권교체를 앞세운 ‘표 몰아주기’ 구태만 보인다.

 실력이 아닌 허명(虛名)으로 일어난 스타도 많다. 그들은 세상을 속이며 한 세월 잘살기도 하고, 한 순간 허무하게 스러지기도 한다. 향후는 그들의 운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오랜만에 정치적 열의에 넘쳤던 젊은 후배가 걱정이다. 그가 이번 기회를 끈질긴 도전과 의지, 국면을 전환할 만한 비상한 실력이 없는 스타성이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로 삼고, 정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실력과 열정으로 이루는 ‘스타 구국’은 아직 스포츠와 연예계에서나 나오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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