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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7일 금요일

[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 예수는 단순히 지혜로운 선생에 불과했다?(201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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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단순히 지혜로운 선생에 불과했다?

안티들의 도전 : “도마복음의 예수가 진짜 예수의 모습이다.”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단순히 지혜로운 선생이었다.”

도마복음은 ‘신약’ 베낀 영지주의성 문서


“목사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사복음서에서 진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나요? 진짜 예수님의 모습은 도마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필자가 심방 갔을 때 어느 평신도가 던진 질문이었다. 깜작 놀랐다. 어떻게 평신도가 이런 수준의 질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요즘 우리 주위에서는 ‘도마복음에 나오는 예수가 진짜 예수의 모습이다. 역사 속에 살았던 실제 예수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단순히 지혜로운 선생에 불과했다. 도마복음 속의 예수는 기적도 행하지 않고 병도 고치지 않고 귀신도 내쫓지 않는다. 단지 예수는 지혜를 가르쳤던 한 사람의 선생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가끔 들을 수 있다. 급진적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안티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도마복음에서 예수님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우선 도마복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도마복음은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나그 하마디 문서들 중의 하나이다. 이 문서는 주로 AD 2∼3세기 영지주의 문서들로서 초기 교회들로부터 정경(canon)으로 인정받지 못한 외경(apocrypha)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그 하마디 문서들은 대략 52개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도마복음이다. 도마복음은 114개의 예수 어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도마복음은 Q자료와 동일한 형태이며 예수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들은 존재하지 않고 예수의 말씀들만 모아놓은 어록 복음서(saying gospel)이다. 이 도마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였던 도마가 아니며 단지 이름만 도용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만 모아놓은 이 도마복음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 일부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인 학자들은 사복음서보다 도마복음이 더 일찍 쓰였다고 주장한다. 예수를 인간으로 보는 ‘예수 세미나’의 대표적 학자인 존 도미닉 크로산은 도마복음의 첫 번째 편집이 AD 50년대이며, AD 60∼70년대에는 실제로 도마복음의 본문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크로산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도올 김용옥 교수는 그의 책 ‘도마복음이야기’에서 “나는 도마복음서의 프로토텍스트(proto-text)의 성립연대를 AD 50년경, 느슨하게 잡아도 AD 50∼70년이라고 확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에 의하면 도마복음이 예수의 어록이기 때문에 사복음서보다 먼저 존재했으며 그 내용은 예수가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혜를 가르쳤던 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주장의 타당성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도마복음의 저작 연대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많은 학자들은 도마복음의 저작연대는 AD 120년경에서 180년경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예수의 인성만 강조하는 자유주의 학자 발트 어만(Bart D. Ehrman)도 도마복음은 최대한 빨라야 사복음서가 기록된 후 2세기 초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실은 도마복음이 사복음서보다 후대의 저작임을 말해 준다.

둘째, 도마복음의 저작 연대가 후대라는 것은 도마복음의 저자가 신약성경을 이미 알고 있었고 신약성경의 내용을 베꼈다는 증거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도마복음과 신약성경 사이에는 많은 병행구절들이 발견된다. 병행구절이란 한 책에서 나오는 말들이 다른 책에 나오는 말들과 거의 똑같거나 상당히 비슷한 것을 말한다. 도마복음과 공관복음서 사이에 약 70개 이상의 병행관계가 발견되며 도마복음은 사복음서뿐만 아니라 최소한 신약성경 14권과 병행구절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도마복음이 신약성경을 베꼈는가? 아니면 신약성경이 도마복음을 베낀 것인가?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만일 14권의 신약성경이 도마복음을 참조했다면 도마복음은 최소한 AD 40년대 중반까지 한 권의 책으로 존재했어야 했고 그 권위가 초기 교회들에게 인정되어 널리 보급됐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초기 교부들은 물론이요, AD 140년경 영지주의 이단자 마르시온의 정경 목록에도 도마복음은 언급되지 않는다. 영지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는 도마복음이 영지주의 이단자에 의해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때까지도 도마복음의 존재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셋째, 3세기 교부 오리겐이 제시한 정경 목록에는 도마복음이 ‘허위 저술’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으며, 4세기 초 유세비우스의 정경 목록에는 도마복음이 ‘완전 배격된 이단서’로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도마복음이 정통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넷째, 도마복음의 예수는 사복음서의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 예컨대, 마태복음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도마복음 13장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당신은 단순히 천사와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고백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도마복음은 사복음서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았다. 도마복음은 2세기 중반 신약성경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 성향의 문서이다. 따라서 도마복음서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를 만날 수 없다. 진정한 예수님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바로 그 예수님이다. 세상의 많은 유혹 속에서도 진리의 고고함으로 사는 이들의 삶은 아름답다 하겠다.

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 신약 성경은 정치적으로 조작되었다?(20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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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들의 도전: “신약 정경 27권은 권력자에 의해 정치적으로 만들어졌다.” “27권의 정경은 AD 367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약 정경 성립 이전에는 교회 안에 절대적 규범이 없었다.”

초기교회, 신약 성경의 권위 그대로 인정

“교회 권력에 의한 조작”… 근거없는 주장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를 보면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들은 80개 이상 있었지만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정치적인 힘에 의해 단 4개의 복음서로 짜맞춰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올 김용옥 교수는 신약 정경은 권력자들의 정치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신약 정경이 형성되기 전 초기 교회에는 절대적인 규범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우리가 마음속에 꼭 새겨야 할 중요한 사실은 정경(正經)이 없는 상태에서 위경(僞經)도 외경(外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27권의 정경은 AD 367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기독교에 대한 개념 자체를 혁명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도올의 주장은 안티들과 한국사회에 신약 정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정경(canon)이란 규범(norm) 또는 표준(standard)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신약 정경’이란 기독교 신앙의 토대와 규범이 되며,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진 신약의 27권을 말한다.

그렇다면 도올의 주장대로 과연 초기 교회들 안에는 신앙의 절대 규범이 없었는가. 초기 교회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 신앙의 절대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기독교 시작의 근본이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후에는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했던 사도들의 증언, 즉 사도적 케리그마(kerygma·복음선포)가 절대적 신앙규범이었다. 그 사도적 증언은 교회에서 반복적으로 가르쳐져서 오랜 세월 교회의 구전 전통이 되었다(고전 11:2, 살후 2:15).

더욱이 그 사도적 구전 전통은 ‘신앙의 규범(the rule of faith)’ 형태로 AD 2∼3세기 동·서방 교회들에 널리 퍼져 교회의 중심적인 신앙고백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3세기 신학자인 터툴리안은 ‘마르시온에 대항하여’라는 책에서 “신앙의 규범이 복음의 초기로부터 계속적으로 우리들에게까지 전수되어 왔다”고 증언한다.

또한 이레니우스도 그의 책 ‘사도적 설교의 증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규범’을 엄격하게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도들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우리에게 전수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초기 교회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삼위일체적 신앙고백을 담은 신앙의 규범을 통해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을 가려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초기 교회에는 신앙의 절대 규범들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도올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둘째, 과연 신약 정경은 권력자들의 정치적 힘에 의해 조작되었는가. 아니다. 신약 정경은 교회가 정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신약 성경 자체가 사도적 증언으로서 그 정경적 권위를 드러낸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약 성경은 초기 교회들 안에서 처음부터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다.

예컨대 1세기 말경 로마의 클레멘트는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를 ‘성령의 영감으로 쓰인 것’이라고 했다. 2세기 초 폴리캅은 바울 서신들을 ‘성경’으로서 인용하였다. 또한 오리겐도 그의 교회들에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쓰였다고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초기 교회의 수많은 교부들은 사도들이 쓴 복음서와 서신들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초기 교회들은 사도적 권위를 가진 신약 성경의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약 정경은 교회 권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교회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셋째, 교회가 신약 성경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데 대한 구체적 증거가 있는가. 그 증거는 정경의 목록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단을 제외한 기독교 최초의 정경 목록은 AD 170년경 작성된 무라토리 정경이다. 이 정경은 보편적 교회에서 받아들여진 최초의 정경이다. 무라토리 정경에는 신약 성경 27권 중에서 23권이 포함돼 있다. 이것은 최소한 AD 2세기가 끝나기 전 23권의 신약 문서들이 거의 모든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4세기 초 유세비우스의 정경 목록이 있다. 이 목록에 보면 신약 27권 중에서 22권이 그 당시 완전한 정경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고, 나머지 5권은 많은 교회가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일부 교회들에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여기서 확실한 것은 유세비우스 시대의 동방교회가 사용한 정경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성경 27권과 실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드디어 AD 367년에 알렉산드리아의 대 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가 부활절 서신을 통해 지금의 신약 성경 27권을 정경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아타나시우스의 정경 발표는 정치적 창조물이 아니라 그동안 교회에서 오랫동안 공인되어 왔던 성경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발표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가 신약 정경 27권을 발표할 때는 이미 교회들 사이에서 그 책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진 상태였다. 이러한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경 발표 후에 그 누구도 신약 27권 외에 다른 문서를 신약 정경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초기 교회에는 신앙의 절대 규범이 없었다거나 신약 정경은 정치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안티들의 주장은 근거 없는 헛된 주장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경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였기에 오늘도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히 들을 수 있다.

(서울 큰나무교회· 기독교 변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