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경신학회 박상봉 박사,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죄’ 발표
“칼빈주의는 눈가리개를 벗기고, 헛된 망상을 버리며, 삶의 충분한 심각성을 수용하고, 주 여호와의 권리를 위해 나서고, 이해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뜻 앞에 겸손과 경배로 엎드린다(헤르만 바빙크).”
한국성경신학회(회장 박형용 박사) 제31차 정기 논문발표회가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과 성경주해’를 주제로 18일 오후 서울 잠원동 신반포중앙교회(담임 김성봉 목사)에서 개최됐다.
아브라함 카이퍼, 벤저민 워필드와 더불어 역사상 전세계 3대 칼빈주의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네덜란드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1854-1921)는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성경에 의해 인도된 개혁주의 신학자로서 기독교 진리를 체계화시켰다. 목회자와 신학자 뿐 아니라 기독교 철학자이자 정치가로 활동했던 바빙크는 신학과 윤리학, 심리학과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남겼으며, 대표적으로 <개혁교의학(부흥과개혁사)>, <일반은총>, <계시 철학>, <하나님의 큰일(CLC)> 등이 있다.
![]() |
▲18일 열린 논문발표회 모습. ⓒ학회 제공
|
바빙크가 이해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죄’에 대해 발표한 박상봉 박사(대신총회신학교)는 “종교와 철학에서 늘 관심의 대상이었던 ‘죄의 기원과 존재적 가치’에 대한 의문은 기독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고, 어거스틴과 펠라기안주의 논쟁 이래 교회사 속에서 죄의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과 연계돼 지금까지도 첨예한 논의의 대상”이라며 “논의 사안에 따라 전혀 다른 구원론이 전제될 수도 있고, 신앙 양식과 삶의 태도에도 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발표 취지를 밝혔다.
박 박사는 “바빙크는 하나님의 의지가 ‘모든 존재하는 것과 발생하는 것의 최종 원인’이라 이해했고, 여기에는 필연적 의지와 자유적 의지가 있는데 하나님의 자유적 의지 안에서 자비나 강퍅케 함 또는 선택과 유기, 죄의 허용도 나오게 된다”고 밝혔다.
바빙크에 따르면 이 자유적 의지도 모든 존재와 사건의 가장 심오한 원인인 ‘작정적 의지’와, 하나님이 이성적 피조물에 계시하셔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의무들인 삶의 규범적 성격을 나타내는 ‘명령적 의지’로 구별된다. 여기서 작정적 의지는 하나님의 최종 결정으로 어떤 것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고 반드시 실현되고 성취되는 반면, 명령적 의지는 인간에게 요구된 행위로 종종 불순종되기도 하며, 그 금하신 것을 순종하지 않은 인간에게는 심판이 따르기도 한다. 이 명령적 의지 때문에 인간은 선과 악, 무죄와 유죄, 축복과 형벌의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작정적 의지와 명령적 의지는 서로 갈등하거나 모순되지 않고, 명령적 의지는 작정적 의지의 수행 수단으로 상호 조화를 이룬다. 바빙크는 이 둘이 모순되는 듯 보여도, 피조물의 모든 최종 결정은 명령적 의지가 아닌 작정적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봤다. 이러한 구조를 지닌 하나님의 의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속성의 한 요소로서 독립적이지 않다.
하지만 피조세계 가운데 실재하며 우리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죄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까? 바빙크는 죄를 그 자체로 선과 같은 의미나 방식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의지의 대상으로 인식하지는 않았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의지에 놓여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명령적 의지 속에서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금지하셨다. 인간은 죄를 지을 때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으며, 결국 그 지은 죄로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실현하며 그 분의 영광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사는 “그러나 이 ‘죄의 허용’은 사람의 선택에 의해 하나님의 의지가 결정된다는 알미니안주의가 아니라, 분명한 신적 의지의 행위로써 하나님의 덕성과 자신의 영광에 이바지하도록 기여하는 궁극적 목적을 위해 그분 자신이 긍정적으로 원하신 것”이라며 “하나님이 기꺼이 죄를 원하셨다 해도 그분이 죄의 원작자라는 이해를 담는 뜻의 ‘죄 자체를 의도하셨다’는 것은 결코 아닐 뿐 아니라, 하나님이 그 죄의 허용으로 인해 괴로워하시거나 후회하신다는 의미 역시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무엇이든 원하고 행할 수 있는 절대적 능력이 하나님에게 있음에도, 그분은 아무런 원칙 없이 그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으로서 신적 작정과 죄의 관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작정 안에는 인격적 피조물과 관계한 선택 뿐 아니라 유기·타락(원죄)과 사람의 죄악된 행동들(자범죄), 영원한 형벌까지도 포함돼 있다”며 “물론 이 죄와 관련된 요소들은 은혜와 구원 같은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서로 어느 정도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오직 선후적 인과관계로만 묶여 있지 않고 그만의 고유성을 가진 것도 사실”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 |
▲박상봉 박사가 발표하고 있다. ⓒ학회 제공
|
이와 관련해서는 ‘죄의 허용적 작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펠라기안주의 등의 주장처럼 단순한 부정이나 무지, 무능 혹은 소홀로부터 결과된 하나님의 순수한 주저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의지적 행위이자 주권적 결정으로 허용됐다는 것. 바빙크에 의하면 하나님이 자신의 작정과 그 시행 안에서 ‘왜! 죄를 허용하셨는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을 남게 하지만, △불신자들의 진노를 위해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신자들의 시험과 징벌을 위해 △하나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죄를 선용하신다는 이해이다.
그러나 ‘죄의 허용적 작정’은 독립적 요소가 아니라, 영원한 구원과 형벌을 이루는 여러 작정적 요소들-선택과 유기, 창조와 타락(죄), 아담과 그리스도, 자연과 은혜, 신앙과 불신앙, 천상의 복락과 지옥의 형벌 등-과 관계돼 있다. 바빙크는 이를 특별한 작정인 예정(선택과 유기)과 관련, 예정론과 유기적 작정이라는 두 가지 큰 신학적 주제로 이끌고 있다고 박 박사는 전했다.
창조의 본질에 속하지 않으나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해 피조세계에 발생한 죄, 즉 ‘하나님의 형상에 의해 참된 지식과 의, 거룩으로 창조된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해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바빙크는 “죄의 생각을 갖게 한 장본인은 사탄도 첫 인간도 아닌 하나님”이라고 답한다. 인간은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지만, 자신의 의식 안에서 죄의 생각을 영입하고 욕망으로 자신을 장식하며 매력적인 이상으로까지 나아갔다.
바빙크는 “하나님이 죄를 원하신 것은 죄를 절대적으로 다스릴 수 있었고, 죄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항해서 하나님 자신의 미덕을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나님은 죄를 산출하시는 유효적 원인이 아니라 기껏해야 도덕적 삶에 결함을 갖게 하는 결핍의 원인으로, 죄의 소극적 원인이자 우연적 원인일 뿐 가장 실제적이고 적극적 원인은 인간 안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죄는 실체가 아니라, 형식(행위의 사건)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바빙크의 주장은 ‘죄의 원작자는 인간이며, 하나님은 죄의 경영자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선한 목적을 위해 죄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선(善)처럼 죄(罪)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바깥에 놓여있지 않으며, 죄는 하나님이 오직 더 좋고 더 위대한, 다른 선을 위한 수단으로 원하시고 허용하신 것이다. 죄가 아무리 번성해도 하나님의 덕성을 섬길 뿐이며, 죄 자체가 선은 아니지만 죄가 선이 되는 것은 오직 죄가 그 본성에 거슬러 하나님의 전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빙크는 죄가 다스려지고 정복돼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드러내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상봉 박사는 결론을 통해 “바빙크는 우리에게 특징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의 실현으로서 신적 작정에 대한 새롭고 풍성한 이해를 제시한다”며 “특히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죄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인가를 질문하게 하는데, ‘죄가 인간의 전(全)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고나 단순히 ‘기독교 구원은 죄를 극복하는데 있다’는 시각이 너무 빈약함을 깨닫게 한다”고 정리했다. 죄 문제를 오직 인간에게만 집중하고, 하나님의 의지와 작정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바빙크가 우리에게 주는 신앙의 유익에 대해 박 박사는 “오늘 죄 짓고 있는 현실이나 혹은 그 죄로 인해 고통받는 현실로 인간의 구원과 존재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부조리를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 비록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 환하게 비추실 하나님의 지혜롭고 거룩한 뜻에 생의 전 가치를 두고 참된 위로를 얻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
▲박상봉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
이날 발표회에서는 박상봉 박사 외에도 이승구 박사(합동신대)가 ‘헤르만 바빙크의 언약 이해: 언약 신학의 발전 과정에서 바빙크의 기여와 의미’를, 김성욱 박사(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가 ‘헤르만 바빙크의 역사 이해’를, 변종길 박사(고신대)가 ‘헤르만 바빙크와 성경-성경영감론을 중심으로’를 각각 발제했다.
이승구 박사는 “바빙크에게 언약 사상이란 ‘참된 종교의 본질’이었고, ‘개혁파 신조와 신학은 이 언약 교리를 제외하고서는 한 곳도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했다”며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 구속 언약 등 성경에 나타난 언약 신학에 대한 그의 이해를 설명한 후 “바빙크는 그동안 개혁신학 내에서 논의된 언약 사상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면서 매우 균형잡힌 언약 사상을 잘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성욱 박사는 “바빙크의 <개혁교의학>과 <하나님의 큰일>도 중요하지만, <계시 철학>도 20세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사상과 학문, 문화와 예술 뿐 아니라 인간 삶의 전 영역에 대한 근본적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가장 적절한 답을 제시하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바빙크의 계시 철학 강연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 뒤로 100여년이 흘렀는데, 그의 신학적 진단이 아직 정당한지 아니면 일반학자들의 지적이 정당한지 개혁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점검해야 하고, 나아가 한국의 역사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종길 박사는 “아브라함 카이퍼와 바빙크는 성경 제1 저자와 제2 저자들 사이의 관계를 ‘유기적 영감론(organic inspiration)’으로 주장했는데, 이 견해는 성경 기록에 있어 ‘신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를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적 요소가 더 부각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에 대해 말할 때 신중해야 하고, 영감을 말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