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일 일요일

[크리스천투데이]최덕성 박사, WCC의 방식과 용어 비판·경계(2013.03.03)


“선교-전도 선언서, 세속적이고 강한 독성 지녀”

“WCC의 새 선교-전도 선언서(Together toward Life)는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와 전도 선언서에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있다. 교회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영양소-복음의 진리가 없다. 강한 독성을 지닌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사상들을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선교-전도 지침을 따라가면 교회가 죽게 된다.”

WCC 총회 철회 촉구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최덕성 박사(기독교사상연구원장)가 2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제2연수실에서 개최된 선교신학연구소(소장 이동주 박사) 주최 학술세미나 ‘로잔과 에큐메니즘(Lausanne & Ecumenism)’에서 WCC가 새롭게 발표한 ‘선교-전도 선언서(이하 선언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최덕성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서 가르쳐 세례를 주고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지, ‘하나님의 선교’가 말하듯 인권과 인간화, 해방투쟁, 신토불이 유형의 생명 충만활동을 하라고 하셨는가”라고 논박했다. ⓒ이대웅 기자

최덕성 박사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향해 외쳐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선언서’에 빠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기쁜 소식, 예수 구원의 유일성(요 14:6, 행 4:1)’이라는 진리, 생명과 구원에 필수적인 하늘에서 내려온 빵 이야기, 영생의 길, 생명 샘, 보혈의 피 소식”이라며 “한국교회는 ‘예수 앞에 나오면 죄 사함 받으며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라는 찬송가 287장을 신앙고백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WCC, ‘하나님의 선교’로 선교 패러다임 바꾸고 주객전도”

WCC의 새 선교-전도 선언서는 기존 1982년 선교 선언서가 발표된 뒤 변화된 글로벌 사회의 문화·정치·경제·환경에 대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선교’ 중심에 성령과 생명을 두고, 다양성과 포용성, 역동성과 사회적 관심을 표명한다. 주요 내용으로는 ①창조세계 보전과 생명 ②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글로벌화와 교회와 신학의 주변화 ③포스트모더니즘과 다민족·다문화·다종교 문제 ④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를 포함한 세계 기독인 분포의 변화 ⑤보편주의 기독론에서 보편주의 신중심주의로의 전환 ⑥세속 개념의 하나님 나라 ⑦다양성 안의 통일성 등을 다룬다.

특히 선언서는 세계 기독교 인구분포의 중심축이 유럽·북미·대양주에서 제3세계로 이동하는 ‘지형 변화’를 강도 높게 언급하고 새로운 선언서 발표 이유로도 제시하지만, 그 원인은 분명히 말하지 않고 있은 채 엉뚱하게도 ‘이민(immigration)’과 관련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최 박사는 “유럽·북미·대양주 기독인들이 다른 곳으로 이민을 떠난 탓에 교인 수가 급감하고 교회가 퇴락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최덕성 박사는 “선언서에 따르면 예수의 성육신은 세상 만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고, ‘선교사 예수’의 사역은 생명을 거부하는 모든 것들에 대항하고 변혁하는 활동 모델”이라며 “이는 궁극적으로 ‘기독교의 선교’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고, ‘하나님의 선교’와 더불어 선교 패러다임을 바꾸고 주객을 전도시켰으며, 뒤바뀐 일부 내용은 반기독교적이기까지 하다”고 논평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통해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생명’은 지속기간이 제한되는 피조물의 개념이 아닌,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이나, 선언서의 ‘생명’은 기독론·구속론적 개념이 아닐 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부족 종교나 한국의 박수무당, 뉴에이지의 구루나 미신적 이데올로기 신봉자들도 환영하고 받아들일 만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최 박사는 “선언서는 총 112개의 적지 않은 문항들에서 예수가 누구인지, 왜 그가 그리스도인지, 그를 믿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이며 그를 믿으면 무엇을 얻는지에 대한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며 “모든 종교를 통합하려는 거대 에큐메니즘과 폭넓은 에큐메니즘을 거론하는 선언서는 WCC가 꿈꾸고 추구하는 세계 종교통합을 향해 신나게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라고 잘라 말했다.

또 선언서가 많은 성경구절을 증거로 인용하여 성경적 기반을 가진 선언문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주장과 근거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최 박사는 “예컨대 첫 항은 선교를 ‘만물의 생명 충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 관심이며 선교”라 정의하면서 요한복음 10장 10절을 제시하지만, 예수의 말씀에 나오는 생명은 자연적인 ‘목숨(bios)’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WCC의 성경 오용과 전거일탈의 오류는 사회구원 지상주의와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한 결과로, 성령의 구속사 사역을 세속적 개념의 하나님 나라 활동과 차원으로 제한시킨다”고 밝혔다.

“복음주의 용어나 스타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돼”

‘선언서’가 복음과 예수 구원의 유일성,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종말론적 기대 등을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선교’ 구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주제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되는데, WCC는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최덕성 박사는 “WCC의 ‘하나님 나라’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꿈꾸어 온 지상천국이고,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 취득 조건이 아니라고 본다”며 “심판주로 오실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 통치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가 없는 까닭도 이 때문이고, 여기서 기독교와 WCC, 한국교회와 WCC의 강한 대립과 신학충돌이 드러난다”고 전했다.

▲최 박사는 “WCC는 견강부회식 아전인수격 성경 인용을 일삼고, 모든 종교에서 기독교적 요소가 발견된다고 본다”며 “WCC 부산 총회 유치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 성도들을 향해 ‘꽃뱀’과도 같은 WCC의 실체를 알려주시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이들이 말하는 ‘개인적 회심’ 역시 종합하면 “‘하나님의 선교’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는 철저한 자각, 하나님의 나라 곧 이상적 사회 건설과 세상 일에 대한 철저한 태도 변화”이고, ‘제자도’는 이 과제 수행의 실천과 철저성을 뜻한다. 선언서는 결국 개인적 회심, 생명, 제자도의 핵심, 전도를 말하면서도 이를 ‘하나님의 선교’와 그 구도 안에 국한, ‘개종주의는 전도를 실행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아님을 인식함이 중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최 박사는 “뿐만 아니라 WCC는 선지자적 사명을 앞세우면서도 공산주의 통치자들의 억압과 핍박, 비인도주의 행위에는 침묵해 왔는데, 하나님 나라 곧 정의·평화·인간화 세상이 공산주의 강압통치를 통해서도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라며 “WCC는 소련과 중국, 북한의 인권과 신앙의 자유 억압에 침묵하거나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고, 북한 문제를 다뤄줄 것을 요청하는 한국교회의 간청에도 소극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선언서가 복음주의 스타일로 쓰였다 해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바이엘하우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선언서에 사용된 복음주의적 용어나 서술들은 ‘하나님의 선교’ 일변도의 에큐메니칼 신학을 돋보이게 하려는 들러리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 복음’, ‘통전적 신학’, ‘그리스도의 독특성’, ‘그리스도 안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고통, 부활’ 등을 종교다원주의, 만인보편 구원주의, 타종교인에 대한 포용적 의미 안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선언서는 환경론자, 생태학자, 기독교윤리실천운동가들에게 매혹적인 문서가 틀림없고, 기독교의 본질을 사회참여와 가난한 자들과의 연대투쟁 또는 글로벌 경제위기 타개 등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환영할 것”이라며 “또 만인보편 구원주의, 진리상대주의, 마르크스주의에 길들여진 신학자들, 예수를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 ‘다른 복음’을 가진 선교사들도 환영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WCC 선교전도위 초대 총무, 레슬리 뉴비긴은 왜 탄식했나

최덕성 박사는 WCC의 세계선교전도위원회 초대 총무로 봉사한 레슬리 뉴비긴 주교(Lesslie Newbigin)의 자서전에 드러난 고백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뉴비긴은 WCC와 IMC(국제선교대회)가 통합되면 평신도들이 복음전도와 선교에 더욱 정진하는 교회생활의 이상적 모델이 되리라 기대했으나, 이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그는 세속화의 격랑 속에 시달리는 유럽교회들에게 기독교 복음과 선교의 본질을 깨닫게 하고 싶었으나, WCC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은 통전적이지도, 전 복음적이지도 않았다.

뉴비긴은 1960년대에 호켄다이크의 ‘하나님의 선교’ 이론이 WCC를 장악하자 크게 낙심했고, 결국 1988년 “교회가 세계 선교를 하지 않을 때 자기 문화의 포로가 된다”며 WCC의 선교 전략을 비판했다. 1990년대 들어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공식 표방하면서 비기독론 중심의 연합체로 급격히 변질되자 이를 강도 높게 비판했고, 본래 의도한 에큐메니즘-교회연합 정신의 중심을 상실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아직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든 인류 문화사 가운데서 유일한 장소 곧 죄와 용서, 속박과 자유, 갈등과 평화, 죽음과 삶 같은 궁극적 신비들을 다루는 결정적인 장소로 바라보고 있다. 나에게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예측할 수 없는 것과 수수께끼 같은 것이 많이 있지만, 내가 아무리 비틀거리며 걷더라도 지난 50년간 거듭 경험했듯 바로 그 십자가로부터 나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고, 그 불빛을 받아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최 박사는 “IMC를 WCC에 흡수시키는 데 앞장선 뉴비긴의 오판은 인류에게 성경이 말하는 생명 얻을 길을 제시하는 기독교의 선교-전도 기회를 가로막고, 교회 세속화를 가중시키는 변질된 선교운동에 이바지했다”며 “뉴비긴의 실수는 기독교와 WCC 사이에 있는 신학충돌, 신학 패러다임의 차이를 무시한 탓이었는데, 그의 실수와 비탄은 WCC 신학의 독성과 신학충돌에 무감각한 복음주의자들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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