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가자(Gaza)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떠나더니, 이젠 시리아에서도 기독교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있다. 점점 더 중동에서 기독교인들의 미래는 희망이 없어 보이고 있다.

2011년 발생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반(反) 정부 시위가 이 지역의 기독교인들에게는 고통과 고난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수년은 중동에 남아 있는 1,400만 명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재앙과 같은 시간이었다.
이집트에서는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hood)이 부상하고 콥트(Copt) 기독교인들을 향한 폭력과 교회 방화 사건이 되풀이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가자(Gaza) 지역과 서안(West Bank) 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의 네탄야후(Netanyahu) 총리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불법으로 정착한 유대인들을 지지하는 정책을 펼치자 수니파(Sunni) 무슬림들 사이에서 급진주의 이슬람 단체 하마스(Hamas)의 인기가 증가하였고, 이 와중에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빠른 속도로 팔레스타인을 떠나고 있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이라크에서 독재자 후세인(Saddam Hussein) 몰락 후 이라크 기독교인의 2/3가 이라크를 떠났다는 것이다.
약 25만 명의 이라크 기독교인들이 이라크를 떠나 시리아에 정착했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Damascus)의 공원이나 찻집에서는 어렵지 않게 이라크 기독교인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후세인이 속해 있던 바트(Baat) 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에는 은행원, 기술자, 약사, 사업가들이었으나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는 타국 시리아에서 과거 저축했던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구입하여 대가족이 함께 지내며, 시리아 교회가 제공하는 구호품으로 생계를 연명하고 있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Baghdad)에서 살다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이라크를 떠난 기독교인 다위드(Shamun Daawd)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는 기독교인들과 무슬림간의 충돌이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있는 시리아 정교회로부터 구호품을 지원받고 있는 다위드는, 후세인 치하에서는 누구도 타인의 종교에 대해 묻지 않았으며, 이라크 국민들은 자신의 종교와 다른 종교의 예배에도 참석하곤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독교인 친구 3명 중 2명 이상이 이라크를 떠났다고 덧붙였다.
시리아가 내전에 휩싸이면서 시리아 국민들이 피난을 떠나게 되면서, 시리아에 거주하는 이라크 기독교인들도 난민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내전을 피해 이라크를 떠나 시리아에 온 이라크 기독교인들이 다시 시리아도 떠나게 된 것이다. 레바논의 베카(Bekaa) 계곡에 첫 번째 시리아 난민 시설이 세워졌고, 이어 요르단과 다른 나라에도 난민 캠프가 들어섰다. 시리아에서 수니파 무슬림과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Alawite) 무슬림들이 가장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한 강도와 강간, 살해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시리아의 쿠사이르(Qusayr)라는 곳에서는 기독교인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문도 유포되고 있다. 시리아의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기독교인들은 이제 두려움에 떨며 지내고 있다.
지난 수백 년간, 그리고 독재자 아사드(Assad)가 정권을 잡기 아주 오래 전부터 시리아는 중동의 기독교인들에게 믿을 만한 피난처였다. 이라크 기독교인들이 오래 전인 1915년 시리아 사람들은 투르크(Turk)인들의 인종 학살을 피해 건너온 아르메니아인들(Armenians)과 1948년 이스라엘의 창건으로 조상대로부터 살아왔던 고향을 떠나야 했던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을 받아 들였다. 또한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시리아는 레바논의 끝없는 종파분쟁을 피하기 원했던 레바논의 정교회 기독교인들과 마론파(Maronites) 기독교인들에게도 피난처를 제공했다.
정치적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었던 아사드 정권의 일당 독재 체제 아래에서도 시리아 국민들은 폭넓은 인종적, 종교적 자유는 누릴 수 있었다. 시리아의 소수 종교인들은 중동의 다른 지역의 소수 종교인들보다 훨씬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시리아의 기독교 공동체는 이렇게 중동에서 특별한 지위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정권을 잡은 독재자 아사드가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 무슬림이기 때문이었다.
알라위파 이슬람은 수니파 무슬림으로부터 이단으로 간주되는 혼합적 성향의 시아파 이슬람의 한 소수 종파로써, 무슬림들은 알라위파 무슬림들을 작은 기독교인들이라는 의미의 ‘누사이리스(Nusayris)’라고 부르며 경멸해왔다. 실제로 알라위파 이슬람의 의식 가운데에는 기독교에 기원을 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알라위파 무슬림은 시리아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할 뿐이지만, 독재자 아사드는 시리아의 소수 종교 단체들을 효과적으로 제휴시킴으로 다수파인 수니파 무슬림과의 힘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세력과 정권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
아사드 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절기들을 국경일로 인정받아 지킬 수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일요일 오전의 근로 의무에서 제외될 수 있었고 교회와 수도원들은 이슬람 사원처럼 전기를 무료로 제공받았으며, 종종 정부가 교회 건축을 위해 국유지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다마스커스의 구(舊) 시가지(Old Damascus)에 위치한 기독교 구역(Christian Quarter)에서는 교회 건물 위에서 푸른색 네온의 십자가가 빛나곤 했고, 소년들은 십자가를 들고 행진을 벌이기도 했었으며, 몸에 딱 맞는 옷과 짧은 바지를 입은 여인들이 거리를 활보하였는데, 이러한 광경은 중동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또한 시리아에서는 종교 단체들이 공간을 공유하기도 했었다. 기독교인들이 수피(Sufi)파 이슬람의 네비 우리(Nebi Uri) 사원에서 희생 양 재물을 바쳤으며, 기독교 여성들이 자녀 생산을 위해 기도한 곳으로 유명하며 성모 마리아가 머물렀던 곳으로 전승되어 온 다마스커스 인근의 세이드나야(Seidnaya) 수도원에는 수염을 기른 무슬림 남성들과 두건을 쓴 무슬림 여성들도 출입을 하곤 했었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함께 어울려져 왔던 시리아의 종교적 관용 정신과 유산들이 이제 영원히 파괴될 위험에 처해 있다. 고인이 된 이집트의 콥트 정교회의 쉐누다(Shenouda) 교황은 독재자 무바라크(Mubarak)가 정권을 잃을 때까지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것처럼, 시리아의 기독교 공동체도 반(反) 정부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시리아에서 기독교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 알레포(Aleppo)의 시리아 정교회 기독교인 이브라힘(Mar Gregorios Yohanna Ibrahim)은 기독교인들이 정권의 전복을 요구하는 이들을 지지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개혁과 변화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시리아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입장과는 달랐다. 특히 많은 젊은 기독교인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자유의 신장을 바라며 아사드 정권의 하야를 요구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혁명을 요구하는 기독교인들은 그 존재를 찾아 보기가 어려워 졌다. 이제 시리아에서는 테러 단체 알카에다(al-Qaeda)에 영향을 받은 살라피주의(salafist) 무슬림들과 반군단체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의 기독교인들을 향한 폭력 사건이 증가하고, 이웃 국가인 터키가 반정부 세력인 시리아 국가 회의(Syrian National Council)을 지지하면서 시리아의 기독교 민족인 아르메니아(Armenians)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국가 회의는 시리아의 반군 단체들의 연합적 단체로서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 본부를 두고 있으면서 친(親) 터키 성향을 갖고 있는데, 터키는 과거 아르메니안들을 학살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시리아는 현재 강도와 불법과 납치가 성행하고 있는데,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없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사드 정권의 미래가 점점 더 불안정해지면서 시리아의 기독교인들은 이라크의 기독교인들이 겪었던 운명을 자신들도 맞이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부시(Bush) 대통령은 순진하게도 후세인 정권이 물러나면 평화를 사랑하는 친(親)미 아랍식 민주적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발생한 지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이라크는 극도로 급진주의적이며 불안정한 친이란 분리주의자들의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미국은 시리아의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며 다시 기독교인들의 생존을 불안하게 할 정권을 시리아에서도 세우게 될 가능성이 있다. 시리아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미국과 미국 기독교인들의 행동에 어리둥절하고 있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의 정보기관 CIA와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기관의 협력은 결국 잔악한 강경 살라피주의 무슬림 정권을 들어서게 만들었다. 만약 이러한 일이 시리아에서도 일어난다면, 기독교가 태동한 중동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완전히 사라질 날을 곧 보게 될지도 모른다. (20세기 초 중동에서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0% 정도이었지만 이제는 5%로 감소되었다. 역주)
The Times,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파발마 8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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