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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동아일보]중국, 지하교회 단속 강화…“기독교 탄압 신호탄”(2013.03.22)

지하교회 선교활동에 체포ㆍ구속 등으로 강경 대응

중국 당국이 여러 지방에서 가정교회로 불리는 지하교회에 대한 일제 조사에 들어가 전국적인 기독교 탄압의 서곡이 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21일 미국 아시아자유방송(RFA)에 따르면 미국에 있는 반중(反中) 인권단체인 '차이나에이드'(ChinaAid)는 산둥(山東)성 자오저우(교<月+交>州)시,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와 선전(深천<土+川>시,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시, 충칭(重慶)직할시 등지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됐다고 밝혔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칭다오(靑島)시에 속한 현급도시인 자오저우 선전 당국은 최근 당 기층조직인 향ㆍ진(鄕鎭) 당 위원회에 가정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문건을 내려 보냈다.

차이나에이드가 입수한 문건은 가정교회의 위치, 지도자, 핵심 신자, 전체 신자 수, 선교 활동, 그리고 해외 단체와의 연계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오는 25일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문건의 지시 사항에는 정부 통제하에 있는 중국 기독교 삼자 애국운동위원회에 대한 가정교회 신자들의 태도와 가정교회가 당국의 공식 지시를 수용할지의 여부 조사도 포함돼 있다고 RFA는 전했다.

중국 가정교회연합회 자오저우시 지부 부지부장인 잔강 목사는 당국이 자신의 구역내 모든 가정교회를 대상으로 이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확인하면서 자오저우에만 가정교회가 100개가 넘는다고 밝혔다.

잔 목사는 당국이 향진과 촌(村)의 통일전선 조직, 촌 위원회, 주민 등 모든 조직을 동원해 가정교회 조사를 벌이고 있다면서 선전, 항저우, 충칭 등지에서도 이런 조사가 진행중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일제 조사가 10년내에 지하교회를 없애라는 당국의 2011년 '비밀 지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선전에서 가정교회 '중푸강터우'를 이끌고 있는 자오 젠쥔 목사는 당국이 전화로 이 교회를 방문 조사하고 싶다며 방문 가능 날짜를 물었다고 말했다.

자오 목사는 이 교회 신자들이 최근 대만 회사인 팍스콘 공장에서 선교 전단지를 나눠주다 공안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광저우 '광푸자' 가정교회 신자들은 공안으로부터 교회 현황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이 교회 마커 목사는 신자수와 명단, 그들의 교회 참가 동기 등을 구체적으로 적은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털어놨다.

중국 당국은 최근들어 가정교회의 선교에 대해 당사자를 체포 구금하는 등 강경하고 대응하고 있다.

한국 선교사 한 명이 지난 2월 산둥성 지모(卽墨)시 가정교회에서 개최된 선교대회에 참가했다가 미국인 선교사 한 명과 함께 공안에 연행됐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이춘(伊春)시에 있는 한 가정교회에는 지난 2월 공안이 침입해 쑨원셴(孫文先) 목사를 폭행했다. 쑨 목사는 이들의 구타로 심장병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졌다.

베이징(北京)에선 서우왕(守望)교회의 조선족 진톈밍(金天明) 목사가 지난 2011년 4월 가두 예배를 주도한 후 23개월째 가택에 연금돼 아직 풀려나지 않고 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중국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개신교회 신도와 가톨릭 신자에 대해 반드시 중국 기독교 삼자 애국운동위원회나 중국 천주교 애국회 소속 교회와 성당에서 예배와 미사를 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중국 관제 교회에 속한 신자는 약 1천800만 명에서 3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4천500만 명에서 6천여만 명이 가정교회로 불리는 무허가 지하교회나 지하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3월 19일 화요일

[크리스천투데이][로잔 언약(The Lausanne Covenant·1974) 전문]


이 언약은 1974년 7월 16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로잔에서 모였던 세계복음화 국제대회 대표 3700여명(150여 국가로부터 모였음)이 합의하고 서명한 것이다. 이 글의 초안은 세계적인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John Stott)가 작성하였다.

머리말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화 국제대회에 참여하기 위하여 150여개 나라에서 온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지체인 우리는 그 크신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며 우리 상호간에 교제하게 하심을 기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행하시는 일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우리의 실패를 통회하고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복음화 사역에 도전을 받는다. 우리는 복음이 온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임을 믿으며 이 복음을 온 인류에 선포하여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 분부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그의 은혜로 결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신앙과 그 결단을 확인하고 이 언약을 공포하려 한다.

제1조 하나님의 목적

우리는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주 되신 영원한 한 분 하나님, 곧 성부·성자·성령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한다. 하나님은 그의 뜻과 목적에 따라 만물을 통치하신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한 백성을 불러내시며 다시금 그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어 그의 나라의 확장과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과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부름받은 백성을 그의 종과 증인이 되게 하신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 동화되거나 세상으로부터 도피함으로 우리의 소명을 부인하고 우리의 선교사역에 실패하였음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이를 고백한다. 그러나 복음은 비롯 질그릇에 담겼을지라도 귀중한 보배임을 기뻐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 보배를 널리 선포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하려고 한다.
(사 40:28, 마 28:19, 엡 1:11, 행 15:14, 요 17:6·18, 엡 4:12, 고전 5:10, 롬 12:2, 고후 4:7)

제2조 성경의 권위와 능력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믿으며 그 진실성과 권위를 믿는다. 성경은 그 전체가 기록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서 그 모든 가르치는(affirm) 바에 전혀 착오가 없으며, 신앙과 행위에 있어 유일하고 정확무오한 규준임을 믿는다. 하나님 말씀은 또한 그의 구원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성경 말씀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불변하기 때문이다. 그 계시를 통하여 성령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성령은 어떤 문화 속에서나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깨우치사 그들의 눈으로 친히 이 진리를 새롭게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여러 모양의 지혜를 온 교회에 더욱 더 풍성하게 나타내신다.
(딤후 3:16, 벧후 1:21, 요 10:35, 사 55:11, 고전 1:21, 롬 1:16, 마 5:17-18, 유 3, 엡 1:8·17, 3: 10·18)

제3조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

우리는 전도의 방법은 여러가지이나 구세주는 오직 한 분이시요, 복음도 오직 하나임을 확인한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 계시를 통해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이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부인한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불의로써 진리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여하한 형태의 혼합주의를 거부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는 식의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키므로 이를 거부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신인(神人)으로 죄인을 위한 유일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예수 이름 외에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이름은 없다.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멸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어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할 것을 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는 구원의 기쁨을 거부하며 스스로를 정죄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다.

예수를 ‘세상의 구주’로 전파함은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혹은 궁극적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말이 아니며, 또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제공한다고 보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를 ‘세상의 구주’로 전하는 것은 오히려 죄인들이 사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것이며 마음을 다한 회개와 신앙의 인격적인 결단으로 예수를 구세주와 주로 영접하도록 모든 사람을 초청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다른 이름 위에 높임을 받으셨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모든 입이 그를 주로 고백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갈 1:6-9, 롬 1:8-32, 딤전 2:5-6, 행 4:12, 요 3:16-19, 벧후 3:9, 살후 1:7-9, 요 4:42, 마 11:28, 엡 1:20-21, 빌 2:9-11).

제4조 전도의 본질

전도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며, 기쁜 소식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죽은 자로부터 다시 살아나시사 통치하시는 주로서 지금도 회개하고 믿는 모든 이들에게 사죄와 성령의 자유케 하시는 은사를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전도하기 위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함은 불가피하며,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대화를 경청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전도 그 자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설득하기 위하여 역사적·성서적 그리스도를 구세주요, 주로 선포하는 것이다. 복음에로 초대함에 있어 제자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의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였음을 분명히 하도록 부르신다. 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과 그의 교회와의 협력, 세상에서의 책임 있는 봉사를 포함한다.
(고전 15:3-4, 행 2:32-39, 요 20:21, 고전 1:23, 고후 4:5, 5:11·20, 눅 14:25-33, 막 8:34, 행2:40·47-8, 막 10:43-45).

제5조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신 동시에 심판주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압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종종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 데 대해 뉘우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한다.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교리와, 이웃을 위한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의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 그 나라의 의를 나타낼 뿐 아니라, 그 의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행 17:26·31, 창 18:35, 사 1:17, 시 45:7, 창 1:26-27, 약 3:9, 레 19:18, 눅 6:27·35, 약 2:14·26, 요 3:3·5, 마 5:20· 6:33, 고후 3:18, 약 2:20)

제6조 교회와 전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받은 백성을 세상으로 보내심을 우리는 확인한다. 이 소명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과 같이 세상 깊숙이 파고드는 희생적인 침투를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 교회의 ‘울타리’를 헐고 불신 사회에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중에서 전도는 최우선적이다. 세게 복음화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 목적의 바로 중심에 서 있으며,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수단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설교하는 교회는 스스로 십자가의 흔적을 지녀야 한다. 교회가 만일 복음을 배반하거나, 하나님께 대한 산 믿음이 없거나, 혹은 사람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거나, 사업 추진과 재정을 포함한 모든 일에 있어 철저한 정직성이 결여될 때, 교회는 오히려 전도의 장애물이 되어버린다. 교회는 하나의 기관이라기보다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문화적·사회적 또는 정치적 체제나 인간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해선 안 된다.
(요 17:18·20:21, 마 28:19-20, 행 1:8·20:27, 엡 1:9-10·3:9-11, 갈 6:14·17, 고후 6:3-4, 딤후 2:19-21, 빌 1:27)

제7조 전도를 위한 협력

교회가 진리 안에서 보기에도 참으로 분명한 일치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우리는 확인한다. 전도는 또한 우리를 하나가 되도록 부른다. 이는 우리의 불일치가 우리가 전하는 화해의 복음을 손상시키듯, 우리의 하나됨은 우리의 증거를 더욱 힘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직적 일치는 여러 형태가 있으나 그것이 반드시 전도를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성서적 신앙을 소유한 우리는 교제와 사역과 전도에 있어 긴밀하게 일치·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증거나 때로는 사악한 개인주의와 불필요한 중복으로 인하여 누를 입을 경우가 많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진리와 예배와 거룩함과 선교에 있어 보다 깊은 일치를 추구할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교회의 선교 사역을 확장하기 위하여, 전략적 계획을 위하여, 상호 격려를 위하여, 그리고 자원과 경험을 서로 나누기 위하여 지역적이며 기능적인 협력을 개발시킬 것을 촉구한다.
(요 13:35·17:21-23, 엡 4:3-4, 빌 1: 27, 요 17:11-23)

제8조 교회의 선교 협동

선교의 새 시대가 동트고 있음을 우리는 기뻐한다. 서방 선교의 주도적 역할은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다. 하나님은 신생 교회들 중에서 세계 복음화를 위한 위대하고도 새로운 자원을 불러일으키고 계신다. 그리하여 전도의 책임이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속해 있음을 밝히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개교회가 속해 있는 지역을 복음화함과 동시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도 선교사를 보내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과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선교 책임과 선교 역할에 대한 재평가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교회들간의 협동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그리스도 교회의 보편성은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 성서 번역, 신학 교육, 매스미디어, 기독교 문서 사업, 전도, 선교, 교회 갱신, 기타 특수 분야에서 일하는 여러 기관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런 기관들도 교회 선교의 한 사역자로서 그 효율성을 평가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자기 검토를 해야 한다.
(롬 1:8, 빌1:5·4:15, 행 13:1, 살전 1:6-8)

제9조 복음전도의 긴박성

인류의 3분의 2이상에 해당하는 27억 이상의 인구가 아직도 복음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토록 많은 사람이 아직도 등한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는 우리와 온 교회에 대한 끊임없는 견책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례 없는 수용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와 모든 교회 기관들이 복음화되지 못한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세계 복음화를 성취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을 시도해야 할 때임을 확신한다.

이미 복음이 전파된 나라에 해외 선교사와 선교비를 감축하는 일은 토착 교회의 자립심을 기르기 위하여 혹은 아직 미복음화 지역으로 그 자원을 회전시키기 위하여 때로는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선교사들이 겸손한 섬김의 정신으로 더욱 더 자유롭게 육대주 전역에 걸쳐 교류되어야 할 것이다.

목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좋은 소식을 듣고, 깨닫고, 받아들이게 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희생 없이 이 목적을 성취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수천 수백만이 당하고 있는 빈곤에 우리 모두가 충격을 받으며, 이 빈곤의 원인인 불의에 대하여 분개한다. 우리 중에 풍요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은 검소한 생활 양식을 개발하여 구제와 전도에 보다 많이 공헌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확신한다.
(요 9:4, 마 9:35-38, 롬 9:1-3, 고전 9:19-23, 막 16:15, 사 58:6-7, 약 1:27·2:1-9, 마 25:31-46, 행 2:44-45·4:34-35)

제10조 전도와 문화

세계 복음화를 위한 전략 개발에는 대범한 개척적 방법이 요청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 전도의 결과,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동시에 그들의 문화에 밀접하게 적용된 여러 교회들이 일어날 것이다. 문화는 항상 성경을 표준으로 검토되고 판단받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류 문화의 어떤 것은 매우 아름답고 선하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 전부가 죄로 물들었고 어떤 것은 악마적이다. 복음은 한 문화가 다른 어떤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은 모든 문화를 그 자체의 진리의 정의를 표준으로 평가하고 모든 문화에 있어 도덕적 절대성을 주장한다.

선교는 지금까지 복음과 함께 이국 문화를 수출하는 일이 너무 많았고, 교회는 종종 성경에 매이기보다 문화에 매이는 경우가 많았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의 전도자는 겸손하게 자기를 온전히 비우기를 힘써야 한다. 다만 그의 인격의 가장 진실한 것만을 간직하여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는 문화를 변형시키고 풍요하게 만들기에 힘쓰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만 한다.
(막 7:8-9, 13, 창 4:21-22, 고전 9:19-23, 빌 2:5-7, 고후 4:5)

제11조 교육과 지도력

우리는 때때로 교회 성장을 추구한 나머지 교회의 깊이를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전도를 신앙적 육성으로부터 분리시켜 왔음을 고백한다. 또한 우리 선교단체들 중에는 현지 지도자로 하여금 그들의 마땅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격려하는 일에 매우 소홀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토착화 원칙을 믿고 있으며 모든 교회가 현지 지도자들을 등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배자로서가 아닌 봉사자로서의 기독교 지도자상을 제시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신학 교육의 개선이 크게 요구되고 있음을 인정한다. 모든 민족과 문화권에 있어 교리, 제자도, 전도, 교육 및 봉사의 각 분야에 목회자, 평신도를 위한 효과적인 훈련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한 훈련 계획은 틀에 박힌 전형적인 방법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성서적 표준을 따라 지역적인 독창성에 의하여 전개시켜 나아가야 한다.
(골 1:27-28, 행 14:23, 딛 1:5·9, 마 10:42-45, 엡 4:11-12)

제12조 영적 싸움

우리는 우리가 악의 권세들과 능력들과의 부단한 영적 싸움에 참여하고 있음을 믿는다. 그것들은 교회를 전복시키고 세계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사역을 좌절시키려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자신을 무장하고 진리와 기도의 영적 무기를 가지고 이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는 교회 밖에서의 거짓 이데올로기 속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까지도 성경을 왜곡시키며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는 거짓 복음 속에서 적이 활동하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서적 복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하며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세속적인 생각과 행위, 즉 세속주의에 면역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예를 들면 숫자적으로나 영적으로 교회 성장에 대한 세심한 연구는 정당하고 가치있는 일임에도 우리는 종종 이런 연구를 게을리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는 복음에 대한 반응에만 열중하여 우리의 메시지를 타협시켰고 강압적 기교를 통하여 청중을 교묘히 조종하였고 지나치게 통계에 집착한 나머지 통계를 부정직하게 기록하는 때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세속적인 것이다. 교회가 세상 속에 있어야 하지만 세상이 교회 속에 있어서는 안 된다.
(엡 6:12, 고후 4:3-4, 엡 6:11, 13-18, 고후 10:3-5, 요일 2:18-26·4:1-3, 갈 1:6-9, 고후 2:17·4:2, 요 17:15)

제13조 자유와 핍박

모든 정부는 교회가 간섭받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 그리스도를 섬기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평화와 정의와 자유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고 유엔 인권 선언에 규정한 바와 같이 종교를 믿으며 전파할 자유를 보장해줄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또한 부당하게 투옥된 사람들,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때문에 고난받는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 깊은 우려를 표한다. 우리는 그들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하며 힘 쓸 것을 약속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생명을 걸게 하는 협박을 거부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불의에 대항하여 복음에 충성하기를 힘 쓸 것이다. 핍박이 없을 수 없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딤전 1:1-4, 행 4:19·5:2, 골 3:24, 히 13:1-3, 눅 4:18, 갈 5:11·6:12, 마 5:10-12, 요 15:18-21)

제14조 성령의 능력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믿는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의 영을 보내시어 아들에 대하여 증거케 하신다. 그의 증거 없이 우리의 증거는 헛되다.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 중생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선교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전도는 성령 충만한 교회로부터 자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지 못할 때 그 교회는 자기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요,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 복음화는 오직 성령이 교회를 진리와 지혜, 믿음과 거룩함과 사랑과 능력으로 새롭게 할 때에만 실현 가능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성령의 역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요청하며, 성령의 모든 열매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고, 그의 모든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풍(충)성하게 하도록 기도할 것을 호소한다. 그때야 비로소 온 교회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합당한 도구가 될 것이요, 온 땅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고전 2:4, 요 15:26-27·16:8-11, 고전 12:3, 요 3:6-8, 고후 3:18, 요 7:37-39, 살전 5:19, 행1:8, 시 85:4-7·67:1-3, 갈 5:22-23, 고전 12:4-31, 롬 12:3-8)

제15조 그리스도의 재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권능과 영광 중에 인격적으로 그리고 눈으로 불 수 있도록 재림하시어 그의 구원과 심판을 완성시킬 것을 믿는다. 이 재림의 약속은 우리의 전도를 가속화시킨다. 이는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신 그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중간 기간은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 사역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므로 종말이 오기 전에는 우리에게 이 일을 멈출 자유가 없다.

우리는 또한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선행자로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리라는 그의 경고를 기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땅 위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한 자기 확신의 환상으로 간주하여 이를 거부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요, 우리는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하며 또 의가 거하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통치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그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시는 그의 권위에 기꺼이  순종함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재헌신한다.
(막 14:62, 히 9:28, 막 13:10, 행 1:8-11, 마 28:20, 막 13:21-23, 요 2:18·4:1-3, 눅 12:32, 계 21:1-5, 벧후 3:13, 마 28:18)

맺음말

그러므로 이와 같은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결심에 따라 우리는 전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계획하고, 일할 것을 하나님과 우리 상호간에 엄숙히 언약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이 일에 우리와 함께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언약에 신실하도록 그의 은혜로 도와주시기를 기도한다. 아멘, 할렐루야!(조종남 박사 번역)


[The Lausanne Covenant(영문)]

INTRODUCTION: We, members of the Church of Jesus Christ, from more than 150 nations, participants in 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at Lausanne, praise God for his great salvation and rejoice in the fellowship he has given us with himself and with each other. We are deeply stirred by what God is doing in our day, moved to penitence by our failures and challenged by the unfinished task of evangelization. We believe the gospel is God's good news for the whole world, and we are determined by his grace to obey Christ's commission to proclaim it to all humankind and to make disciples of every nation. We desire, therefore, to affirm our faith and our resolve, and to make public our covenant.

1. The Purpose of God

We affirm our belief in the one eternal God, Creator and Lord of the world, Father, Son and Holy Spirit, who governs all things according to the purpose of his will. He has been calling out from the world a people for himself, and sending his people back into the world to be his servants and his witnesses, for the extension of his kingdom, the building up of Christ's body, and the glory of his name. We confess with shame that we have often denied our calling and failed in our mission, by becoming conformed to the world or by withdrawing from it. Yet we rejoice that even when borne by earthen vessels the gospel is still a precious treasure. To the task of making that treasure known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we desire to dedicate ourselves anew. (Isa. 40:28; Matt. 28:19; Eph. 1:11; Acts 15:14; John 17:6,18; Eph. 4:12; 1 Cor. 5:10; Rom. 12:2; 2 Cor. 4:7)

2. The Authority and Power of the Bible

We affirm the divine inspiration, truthfulness and authority of both the Old and New Testament Scriptures in their entirety as the only written word of God, without error in all that it affirms, and the only infallible rule of faith and practice. We also affirm the power of God's word to accomplish his purpose of salvation. The message of the Bible is addressed to all humankind. For God's revelation in Christ and in Scripture is unchangeable. Through it the Holy Spirit still speaks today. He illumines the minds of God's people in every culture to perceive its truth freshly through their own eyes and thus discloses to the whole church ever more of the many-colored wisdom of God. (2 Tim. 3:16; 2 Pet. 1:21; John 10:35; Isa. 55:11; 1 Cor. 1:21; Rom. 1:16; Matt. 5:17,18; Jude 3; Eph. 1:17, 18; 3:10, 18)

3. Of the Uniqueness and Universality of Christ

We affirm that there is only one Savior and only one gospel, although there is a wide diversity of evangelistic approaches. We recognize that all people have some knowledge of God through his general revelation in nature. But we deny that this can save, for people suppress the truth through their unrighteousness. We also reject as derogatory to Christ and the gospel every kind of syncretism and dialogue which implies that Christ speaks equally through all religions and ideologies. Jesus Christ, being himself the only God-man, who gave himself as the only ransom for sinners, is the only mediator between God and humanity. There is no other name by which we must be saved. All people are perishing because of sin, but God loves all people, not wishing that any should perish but that all should repent. Yet those who reject Christ repudiate the joy of salvation and condemn themselves to eternal separation from God. To proclaim Jesus as "the Savior of the world" is not to affirm that all people are either automatically or ultimately saved, still less to affirm that all religions offer salvation in Christ. Rather it is to proclaim God's love for a world of sinners and to invite all people to respond to him as Savior and Lord in the wholehearted personal commitment of repentance and faith. Jesus Christ has been exalted above  every other name; we long for the day when every knee shall bow to him and every tongue shall confess him Lord. (Gal. 1:6-9; Rom. 1:18-32; 1 Tim. 2:5,6; Acts 4:12; John 3:16-19; 2 Pet. 3:9; 2 Thess. 1:7-9; John 4:42; Matt. 11:28; Eph 1:20,21; Phil. 2:9-11)

4. The Nature of Evangelism

To evangelize is to spread the good news that Jesus Christ died for our sins and was raised from the dead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that as the reigning Lord he now offers the forgiveness of sins and the liberating gift of the Spirit to all who repent and believe. Our Christian presence in the world is indispensable to evangelism, and so is that kind of dialogue whose purpose is to listen sensitively in order to understand. But evangelism itself is the proclamation of the historical, biblical Christ as Savior and Lord, with a view to persuading people to come to him personally and so be reconciled to God. In issuing the gospel invitation we have no liberty to conceal the cost of discipleship. Jesus still calls all who would follow him to deny themselves, take up their cross, and identify themselves with his new community. The results of evangelism include obedience to Christ, incorporation into his church and responsible service in the world. (1 Cor. 15:3,4; Acts 2:32-39; John 20:21; 1 Cor. 1:23; 2 Cor. 4:5; 5:11,20; Luke 14:25-33; Mark 8:34; Acts 2:40,47; Mark 10:43-45)

5. Christian Social Responsibility

We affirm that God is both the Creator and the Judge of all people. We therefore should share his concern for justice and reconciliation throughout human society and for the liberation of people from every kind of oppression. Because humankind is made in the image of God, every person, regardless of race, religion, color, class, sex or age, has an intrinsic dignity because of which each person should be respected and served, not exploited. Here too we express penitence both for our neglect and for having sometimes regarded evangelism and social concern as mutually exclusive. Although reconciliation with humanity is not reconciliation with God, nor is social action evangelism, nor is political liberation salvation, nevertheless we affirm that evangelism and socio-political involvement are both part of our Christian duty. For both are necessary expressions of our doctrines of God and humanity, our love for our neighbor and our obedience to Jesus Christ. The message of salvation implies also a message of judgment upon every form of alienation, oppression and discrimination, and we should not be afraid to denounce evil and injustice wherever they exist. When people receive Christ they are born again into his kingdom and must seek not only to exhibit but also to spread its righteousness in the midst of an unrighteous world. The salvation we claim should be transforming us in the totality of our personal and social responsibilities. Faith without works is dead. (Acts 17:26,31; Gen. 18:25; Isa. 1:17; Psa. 45:7; Gen. 1:26,27; Jas. 3:9; Lev. 19:18; Luke 6:27,35; Jas. 2:14-26; John 3:3,5; Matt. 5:20; 6:33; 2 Cor. 3:18; Jas. 2:20)

6. The Church and Evangelism

We affirm that Christ sends his redeemed people into the world as the Father sent him, and that this calls for a similar deep and costly penetration of the world. We need to break out of our ecclesiastical ghettos and permeate non-Christian society. In the church's mission of sacrificial service evangelism is primary. World evangelization requires the whole church to take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 The church is at the very center of God's cosmic purpose and is his appointed means of spreading the gospel. But a church which preaches the cross must itself be marked by the cross. It becomes a stumbling block to evangelism when it betrays the gospel or lacks a living faith in God, a genuine love for people, or scrupulous honesty in all things including promotion and finance. The church is the community of God's people rather than an institution, and must not be identified with any particular culture, social or political system, or human ideology. (John 17:18; 20:21; Matt. 28:19,20; Acts 1:8; 20:27; Eph. 1:9,10; 3:9-11; Gal. 6:14,17; 2 Cor. 6:3,4; 2 Tim. 2:19-21; Phil. 1:27)

7. Cooperation in Evangelism

We affirm that the church's visible unity in truth is God's purpose. Evangelism also summons us to unity, because our oneness strengthens our witness, just as our disunity undermines our gospel of reconciliation. We recognize, however, that organizational unity may take many forms and does not necessarily forward evangelism. Yet we who share the same biblical faith should be closely united in fellowship, work and witness. We confess that our testimony has sometimes been marred by sinful individualism and needless duplication. We pledge ourselves to seek a deeper unity in truth, worship, holiness and mission. We urge the development of regional and functional cooperation for the furtherance of the church's mission, for strategic planning, for mutual encouragement, and for the sharing of resources and experience. (John 17:21,23; Eph. 4:3,4; John 13:35; Phil. 1:27; John 17:11-23)

8. Churches in Evangelistic Partnership

We rejoice that a new missionary era has dawned. The dominant role of western missions is fast disappearing. God is raising up from the younger churches a great new resource for world evangelization, and is thus demonstrating that the responsibility to evangelize belongs to the whole body of Christ. All churches should therefore be asking God and themselves what they should be doing both to reach their own area and to send missionaries to other parts of the world. A re-eval!uation of our missionary responsibility and role should be continuous. Thus a growing partnership of churches will develop and the universal character of Christ's church will be more clearly exhibited. We also thank God for agencies which labor in Bible translation, theological education, the mass media, Christian literature, evangelism, missions, church renewal and other specialist fields. They too should engage in constant self-examination to eval!uate their effectiveness as part of the church's mission. (Rom. 1:8; Phil. 1:5; 4:15; Acts 13:1-3; 1 Thess. 1:6-8)

9. The Urgency of the Evangelistic Task

More than 2,700 million people, which is more than two-thirds of humanity, have yet to be evangelized. We are ashamed that so many have been neglected; it is a standing rebuke to us and to the whole church. There is now, however, in many parts of the world an unprecedented receptivity to the Lord Jesus Christ. We are convinced that this is the time for churches and para-church agencies to pray earnestly for the salvation of the unreached and to launch new efforts to achieve world evangelization. A reduction of foreign missionaries and money in an evangelized country may sometimes be necessary to facilitate the national church's growth in self-reliance and to release resources for unevangelized areas. Missionaries should flow ever more freely from and to all six continents in a spirit of humble service. The goal should be, by all available means and at the earliest possible time, that every person will have the opportunity to hear, understand, and receive the good news. We cannot hope to attain this goal without sacrifice. All of us are shocked by the poverty of millions and disturbed by the injustices which cause it. Those of us who live in affluent circumstances accept our duty to develop a simple life-style in order to contribute more generously to both relief and evangelism. (John 9:4; Matt. 9:35-38; Rom. 9:1-3; 1 Cor. 9:19-23; Mark 16:15; Isa. 58:6,7; Jas. 1:27; 2:1-9; Matt. 25:31-46; Acts 2:44,45; 4:34,35)

10 Evangelism and Culture

The development of strategies for world evangelization calls for imaginative pioneering methods. Under God, the result will be the rise of churches deeply rooted in Christ and closely related to their culture. Culture must always be tested and judged by Scripture. Because humanity is God's creature, some of our culture is rich in beauty and goodness. Because we are fallen, all human culture is tainted with sin and some of it is demonic. The gospel does not presuppose the superiority of any culture to another, but eval!uates all cultures according to its own criteria of truth and righteousness, and insists on moral absolutes in every culture. Missions have all too frequently exported with the gospel an alien culture, and churches have sometimes been in bondage to culture rather than to the Scripture. Christ's evangelists must humbly seek to empty themselves of all but their personal authenticity in order to become the servants of others, and churches must seek to transform and enrich culture, all for the glory of God. (Mark 7:8,9,13; Gen. 4:21,22; 1 Cor. 9:19-23; Phil. 2:5-7; 2 Cor. 4:5)

11. Education and Leadership

We confess that we have sometimes pursued church growth at the expense of church depth, and divorced evangelism from Christian nurture. We also acknowledge that some of our missions have been too slow to equip and encourage national leaders to assume their rightful responsibilities. Yet we are committed to indigenous principles, and long that every church will have national leaders who manifest a Christian style of leadership in terms not of domination but of service. We recognize that there is a great need to improve theological education, especially for church leaders. In every nation and culture there should be an effective training program for pastors and laypeople in doctrine, discipleship, evangelism, nurture and service. Such training programs should not rely on any stereotyped methodology but should be developed by creative local initiatives according to biblical standards. (Col. 1:27,28; Acts 14:23; Titus 1:5,9; Mark 10:42-45; Eph. 4:11,12)

12. Spiritual Conflict

We believe that we are engaged in constant spiritual warfare with the principalities and powers of evil, who are seeking to overthrow the church and frustrate its task of world evangelization. We know our need to equip ourselves with God's armor and to fight this battle with the spiritual weapons of truth and prayer. For we detect the activity of our enemy, not only in false ideologies outside the church, but also inside it in false gospels which twist Scripture and put humanity in the place of God. We need both watchfulness and discernment to safeguard the biblical gospel. We acknowledge that we ourselves are not immune to worldliness of though and action, that is, to a surrender to secularism. For example, although careful studies of church growth, both numerical and spiritual, are right and valuable, we have sometimes neglected them. At other times, desirous to ensure a response to the gospel, we have compromised our message, manipulated our hearers through pressure techniques, and become unduly preoccupied with statistics or even dishonest in our use of them. All this is worldly. The church must be in the world; the world must not be in the church. (Eph. 6:12; 2 Cor. 4:3,4; Eph. 6:11,13-18; 2 Cor. 10:3-5; 1 John 2:18-26; 4:1-3; Gal. 1:6-9; 2 Cor. 2:17; 4:2; John 17:15)

13. Freedom and Persecution

It is the God-appointed duty of every government to secure conditions of peace, justice and liberty in which the church may obey God, serve the Lord Christ, and preach the gospel without interference. We therefore pray for the leaders of the nations and call upon them to guarantee freedom of thought and conscience, and freedom to practice and propagate religion in accordance with the will of God and as set forth in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We also express our deep concern for all who have been unjustly imprisoned, and especially for our brothers and sisters who are suffering for their testimony to the Lord Jesus. We promise to pray and work for their freedom. At the same time we refuse to be intimidated by their fate. God helping us, we too will seek to stand against injustice and to remain faithful to the gospel, whatever the cost. We do not forget the warnings of Jesus that persecution is inevitable. (1 Tim. 1:1-4; Acts 4:19; 5:29; Col. 3:24; Heb. 13:1-3; Luke 4:18; Gal. 5:11; 6:12; Matt. 5:10-12; John 15:18-21)

14.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We believe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The Father sent his Spirit to bear witness to his Son; without his witness ours is futile. Conviction of sin, faith in Christ, new birth and Christian growth are all his work. Further, the Holy Spirit is a missionary spirit; thus evangelism should arise spontaneously from a Spirit-filled church. A church that is not a missionary church is contradicting itself and quenching the Spirit. Worldwide evangelization will become a realistic possibility only when the Spirit renews the church in truth and wisdom, faith, holiness, love and power. We therefore call upon all Christians to pray for such a visitation of the sovereign Spirit of God that all his fruit may appear in all his people and that all his gifts may enrich the body of Christ. Only then will the whole church become a fit instrument in his hands, that the whole earth may hear his voice. (1 Cor. 2:4; John 15:26,27; 16:8-11; 1 Cor. 12:3; John 3:6-8; 2 Cor. 3:18; John 7:37-39; 1 Thess. 5:19; Acts 1:8; Psa. 85:4-7; 67:1-3; Gal. 5:22,23; 1 Cor. 12:4-31; Rom 12:3-8)

15. The Return of Christ

We believe that Jesus Christ will return personally and visibly, in power and glory, to consummate his salvation and his judgment. This promise of his coming is a further spur to our evangelism, for we remember his words that the gospel must first be preached to all nations. We believe that the interim period between Christ's ascension and return is to be filled with the mission of the people of God, who have no liberty to stop before the End. We also remember his warning that false Christs and false prophets will arise as precursors of the final Antichrist. We therefore reject as a proud, self-confident dream the notion that humanity can ever build a utopia on earth. Our Christian conscience is that God will perfect his kingdom, and we look forward with eager anticipation to that day, and to the new heaven and earth in which righteousness will dwell and God will reign for ever. Meanwhile, we rededicate ourselves to the service of Christ and of humanity in joyful submission to his authority over the whole of our lives. (Mark 14:62; Heb. 9:28; Mark 13:10; Acts 1:8-11; Matt. 28:20; Mark 13:21-23; John 2:18; 4:1-3; Luke 12:32; Rev. 21:1-5; 2 Pet. 3:13; Matt. 28:18)

Conclusion

Therefore, in the light of this our faith and our resolve, we enter into a solemn covenant with God and with each other, to pray, to plan and to work together for the evangelization of the whole world. We call upon others to join us. May God help us by his grace and for his glory to be faithful to this our covenant! Amen, Alleluia!

[크리스천투데이]WCC, ‘전 세계’·‘새로운 질서’ 등 거창한 단어 내세우는 이유(2013.03.19)


[기고] 이동주 박사의 ‘로잔언약의 신학적 근거(2)’

▲이동주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제6조 교회와 전도

WCC가 제시한 새로운 선교관에 응답하고 있는 조항이다. WCC는 다음과 같이 복음주의와는 상이하게 설명한다: 전통적 교회의 입력구조(come-structure)는 교회가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선교 구조, 정적 사고방식, 세상으로부터의 고립, 현실 밖에 존재함으로 복음선교에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하였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방해하는 이교적 구조라고 한다. 그리고 개종에만 몰두하는 전도는 선교와 정반대가 된다며 그 자신을 구원의 중개소로 취급하는 것이라 비판하고, WCC에서 세상이 선교에 방해가 되었다는 전통적 구조를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를 제시한다.

WCC의 새 선교인 출력구조(go-structure)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역동적인 구조이며 모든 확장 개념을 버리는 뜻이라 설명한다. 교회의 새로운 선교형태란 세상 사람의 요구에 봉사하여,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고 방문해야 할 일, 젊은이들과 노인들을 돕는 일, 성례전적 생활을 조성하여 소집단 속의 인간들이 자신을 개발하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일, 고독을 극복 할 일, 직업적 그룹들의 성장, 노동자 회중과 학생들의 모임, 사회봉사운동, 정치적 활동을 위한 유연성과 다양성 요청, 급변하는 사회에 올바르게 대처, 새로운 상황에 자신을 개방하는 일이라고 한다.

WCC의 ‘세계를 위한 교회’를 보면, 과거의 선교도식은 하나님-교회-세상이었으나 이 도식은 성서의 증언을 왜곡시킬 경향이 있다며 ‘하나님-세상-교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몇 개의 성구들, 즉 하나님은 세상과 화해하셨고(고후 5:19), 하나님의 관심은 전 우주, 모든 피조물(요 3:16)이며, 하나님의 제1차적 관계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하였다.

WCC가 교회를 세상에 대한 ‘나그네’라 하고 교회를 통하지 않는 하나님의 선교를 주장하는 데 반해, 로잔언약은 교회가 우주의 중심에 서 있다고 설명하며, 교회는 ‘기관’이라기보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Gemeinde)’라는 의미라면서 ‘교회’ 개념이 오해되지 않도록 설명하고 있다. 독일어는 ‘교회’의 두 가지 의미를 잘 설명한다. 교회의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과 소명에 근거한 것이지 인간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며, 로잔언약은 전도가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며 최우선적인 일이므로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할 것을 천명한다. 로잔언약 5조가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바에 이어, 6조는 교회는 사회적 책임에 앞서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전도가 최우선적으로 중요함을 고백하고 있다.

제7조 전도를 위한 협력

로잔언약은 ‘일원론적 역사관’으로 WCC에서는 있을 수 없는 테마인 ‘전도를 위한 협력’에 관해 선언한다. WCC의 관심이 교회 대신 '세계', 그리스도인 대신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영혼 구원에 관심이 없는 것은 이미 잘 파악돼 있다. WCC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하나님이고, 교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의 하나님이라는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불신자를 포함한 전세계라고 한다.

이미 1967년 WCC의 ‘세계를 위한 교회’ 보고서는 일원론적 역사관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전통적 신학이 이중적 역사관을 지녔고, 교회 역사와 세속 역사, 그리고 구속사와 일반 역사를 구별해 왔다고 비판한다. 새로운 신학적 스타일인 ‘하나님의 선교 신학’은 교회는 독자적인 역사를 가질 수 없고, 역사는 특별한 역사가 아니라 ‘온 인류의 전체적인 역사’라고 한다. 이처럼 WCC에는 오직 하나의 역사밖에 없다. 이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는 샬롬(Shalom)의 역사이며, 이 샬롬의 나라를 바로 하나님 나라로 이해한다. 호켄다이크는 이 샬롬은 인간의 내적 본질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이자 인간관계의 사건이고, 샬롬은 상황 속에서 발견되고 형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천국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 속에 들어오셨다는 이유로 오직 하나님의 통치와,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었다는 현재적이고 낙관적인 역사관에 심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WCC는 회개를 통한 개인구원과 불신자의 멸망, 미래적 천국관을 상실하고, 대신 역사 내적인 천국을 의미하는 총체적 개념의 ‘전(whole) 세계’, ‘새로운 질서’, ‘하나의 역사’라는 단어들로 대체했다.

로잔언약도 교회가 일치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 되도록 부르심에 관해서 선포하고, 우리의 불일치가 화해의 복음을 손상시킴을 우려한다. 또 조직적인 일치의 다양성에 관해 언급하며, 전도를 위한 것이 아닌 조직과 동일한 성서적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과의 교제와 사역, 전도를 위해 일치단결해야할 불가피성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일치의 추구는 진리와 예배, 거룩과 선교에 있음을 명시한다. 바로 이 진리와 예배와 거룩, 영혼구원을 의미하는 선교의 특성 등은 WCC의 일치운동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네 가지와 무관한 일치운동은 아무리 포괄적이고 성공적이라도 진정한 기독교, 기독교 선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제8조 교회의 선교 협동

WCC는 20세기 후반부터 가시적인 연합이나 협력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지만,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협력은 결코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WCC는 이미 1960년대부터 세속적인 샬롬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 함께 투쟁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WCC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었던 M. M. 토마스(Thomas)는 1975년 제5차 나이로비 WCC 총회 때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는 해방하고 연합한다’로 강연하면서, 한편으로 인류연합을 위한 ‘투쟁의 영성(Spiritualtät des Kampfes)’이라는 창의적인 개념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회적이건 도덕적이건 문화적이건, 사람을 종속시키는 모든 연합을 파괴하고 더 성숙한 연합을 위하여 남여(男女)를 해방하며, 이 연합이 다시금 종속되면 또다시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잔언약의 협동에 관한 조항은, 오직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선교만을 위해 피력한 것이다. 로잔운동은 세계복음화가 모든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 전체 책임임을 선언하고, 성서 번역, 신학 교육, 매스미디어, 기독교 문서사업 등의 선교 사업을 위해 교회들간 협동을 주장한 것이다.

선교의 새 시대에 일어나는 선교교회와 피선교교회의 지역변동은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의 세계선교로 인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기독교 세계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세계복음화를 위한 협력에 역행하는 우리 한국교회의 분열상과 그 죄악에 대한 무감각함에 죄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려는 소원과 아울러 자기실현의 욕구가 하나로 겹쳐진 한국교회 사역자들의 가장 큰 죄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찢어가면서도 죄의식이 별로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서 돌이켜 왜곡된 복음을 주장하는 자들과도 함께 세계선교를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협력은 확실하게 거부한 것이다(고후 11:4, 갈 1:6-10).

제9조 복음전도의 긴박성

로잔신학은 WCC의 반선교정책과 반개종주의에 관해 선언한다. WCC는 개종에 몰두하는 것이 반선교적이므로, 이제 교회가 ‘출력 구조(go-structure)’로서 ‘자신을 주는 교회(self-giving church)’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주는 교회’에 대해서는 “교회의 모습 (Statur)과 신분 (Status)을 사멸시키고(absterben lassen) 세상 사람과 같이 되는 것”이라며, 그 성경적 근거로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 말씀의 “종의 형태를 입은 메시야의 삶”을 제시한다. 재물에 부유한 교회는 세상과 동료의식을 갖고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전 소유를 바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 교회가 천국복음을 증거하며 회개와 개종을 요청하는 것은 세상을 자기 형상으로 만드는 것이므로, 교회가 ‘존재’이기를 포기하고 하나의 ‘기능’에 그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위와 같이 WCC는 복음주의자들이 가장 큰 소명으로 아는 전도와 선교의 개념을 다 사용하지만,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세상에 선포한 적은 없다. WCC의 선교는 실제로 위에서 간파되듯 세계 복음화도, 세계 선교도 아니다. WCC는 잃은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복음전도의 긴박성’ 같은 테마 역시 WCC와 거리가 멀다. WCC 선교신학 즉  ‘Missio Dei 신학’은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복음적인 신앙을 떠난, 정치·사회적인 샬롬 운동이며 해방 운동이다.

그러므로 이 조항에서 로잔언약은 인류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7억의 인구가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잃어버린 영혼들의 심각성을 고백하며, 그들을 등한시했던 점을 스스로 견책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 하에 WCC에서 반선교정책으로 내어놓은 모라토리움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토착교회의 자립심을 기르기 위해 비복음화지역으로 그 자원을 회전하여 선교사들이 6대주 전역에 빠짐없이 복음을 전하여 빠른 시일 내에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해 멸망하는 27억 사람들이 이 복된 소식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희생적으로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제10조 전도와 문화

로잔언약은 이 조항에서 WCC의 세속화 신학에 답변한다. WCC는 교회가 세속화돼야 할 이유를 성경에 두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세상은 전적으로 세속적이며 세속화는 현대사회의 한 양상이므로, 교회는 세속화를 받아들여야 하고 신학의 지배로부터 해방돼야 한다는 것이다. WCC는 세속화를 ‘복음의 열매’로 이해한다. WCC는 영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은 변하고, 불변하는 상태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교회적·신학적 전통에서 소중하게 간직돼 온 많은 상징과 개념들이 그 타당성을 잃게 될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잔언약 제10조는 세계복음화 전략에 관한 조항이다. 복음을 타문화권에 가져가면 그곳의 과거 전통문화와, 현재 정치·경제·사회 상황과 만나게 된다. 복음이 선교지의 과거 문화와 만날 때는 토착화 신학이 발생하고, 현재 상황과 만날 때는 상황화 신학이 발생한다. 그러나 현대 한국 선교신학에서는 토착과신학이라는 개념이 ‘상황화 신학’에 흡수되어 사용되고 있다. 복음의 상황화를 우리는 복음의 문화화 또는 맥락화로도 칭한다. 이 항목은 복음이 과거문화를 만나 그 문화 속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관점에서 언급된다. 복음이 선교지 문화 속에 뿌리내릴 때, 새로운 토양에 의해 변질되지 않고 복음의 열매를 맺으면 올바로 토착화가 된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새로운 토양에 의해서 변질되면 이단적 신학으로 잘못 토착화가 된 것이다.

제10조는 복음의 바른 토착화를 위한 판단 척도를 제시한다. 그 척도는 우리의 경전인 성경이다. 어떤 문화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지만, 모든 문화는 성경적 복음에 의해 판단받아야 한다. 로잔언약은 어떤 문화는 아름답고 선하지만, 모든 문화는 타락한 인간에 의해 죄로 물들었고 악마적이라고 판단한다.
바로 이 점이 WCC의 세계관과 철저하게 다른 점이다. 로잔언약은 죄와 타락으로 얼룩진 인간과 문화에 대해 언급한다. 교회는 세상 어디든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결코 세속화돼서는 안 되며 우상숭배로 악해진 문화와 그대로 야합할 수도 없다고 선언한다. 오히려 교회는 성경 말씀을 잣대로 문화를 변혁시키고 풍요하게 만들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고백한다<계속>.

/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2013년 3월 3일 일요일

[크리스천투데이]최덕성 박사, WCC의 방식과 용어 비판·경계(2013.03.03)


“선교-전도 선언서, 세속적이고 강한 독성 지녀”

“WCC의 새 선교-전도 선언서(Together toward Life)는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와 전도 선언서에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있다. 교회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영양소-복음의 진리가 없다. 강한 독성을 지닌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사상들을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선교-전도 지침을 따라가면 교회가 죽게 된다.”

WCC 총회 철회 촉구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최덕성 박사(기독교사상연구원장)가 2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제2연수실에서 개최된 선교신학연구소(소장 이동주 박사) 주최 학술세미나 ‘로잔과 에큐메니즘(Lausanne & Ecumenism)’에서 WCC가 새롭게 발표한 ‘선교-전도 선언서(이하 선언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최덕성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서 가르쳐 세례를 주고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지, ‘하나님의 선교’가 말하듯 인권과 인간화, 해방투쟁, 신토불이 유형의 생명 충만활동을 하라고 하셨는가”라고 논박했다. ⓒ이대웅 기자

최덕성 박사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향해 외쳐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선언서’에 빠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기쁜 소식, 예수 구원의 유일성(요 14:6, 행 4:1)’이라는 진리, 생명과 구원에 필수적인 하늘에서 내려온 빵 이야기, 영생의 길, 생명 샘, 보혈의 피 소식”이라며 “한국교회는 ‘예수 앞에 나오면 죄 사함 받으며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라는 찬송가 287장을 신앙고백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WCC, ‘하나님의 선교’로 선교 패러다임 바꾸고 주객전도”

WCC의 새 선교-전도 선언서는 기존 1982년 선교 선언서가 발표된 뒤 변화된 글로벌 사회의 문화·정치·경제·환경에 대한 에큐메니칼 진영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선교’ 중심에 성령과 생명을 두고, 다양성과 포용성, 역동성과 사회적 관심을 표명한다. 주요 내용으로는 ①창조세계 보전과 생명 ②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글로벌화와 교회와 신학의 주변화 ③포스트모더니즘과 다민족·다문화·다종교 문제 ④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를 포함한 세계 기독인 분포의 변화 ⑤보편주의 기독론에서 보편주의 신중심주의로의 전환 ⑥세속 개념의 하나님 나라 ⑦다양성 안의 통일성 등을 다룬다.

특히 선언서는 세계 기독교 인구분포의 중심축이 유럽·북미·대양주에서 제3세계로 이동하는 ‘지형 변화’를 강도 높게 언급하고 새로운 선언서 발표 이유로도 제시하지만, 그 원인은 분명히 말하지 않고 있은 채 엉뚱하게도 ‘이민(immigration)’과 관련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최 박사는 “유럽·북미·대양주 기독인들이 다른 곳으로 이민을 떠난 탓에 교인 수가 급감하고 교회가 퇴락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최덕성 박사는 “선언서에 따르면 예수의 성육신은 세상 만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고, ‘선교사 예수’의 사역은 생명을 거부하는 모든 것들에 대항하고 변혁하는 활동 모델”이라며 “이는 궁극적으로 ‘기독교의 선교’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고, ‘하나님의 선교’와 더불어 선교 패러다임을 바꾸고 주객을 전도시켰으며, 뒤바뀐 일부 내용은 반기독교적이기까지 하다”고 논평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통해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생명’은 지속기간이 제한되는 피조물의 개념이 아닌,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이나, 선언서의 ‘생명’은 기독론·구속론적 개념이 아닐 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부족 종교나 한국의 박수무당, 뉴에이지의 구루나 미신적 이데올로기 신봉자들도 환영하고 받아들일 만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최 박사는 “선언서는 총 112개의 적지 않은 문항들에서 예수가 누구인지, 왜 그가 그리스도인지, 그를 믿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이며 그를 믿으면 무엇을 얻는지에 대한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며 “모든 종교를 통합하려는 거대 에큐메니즘과 폭넓은 에큐메니즘을 거론하는 선언서는 WCC가 꿈꾸고 추구하는 세계 종교통합을 향해 신나게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라고 잘라 말했다.

또 선언서가 많은 성경구절을 증거로 인용하여 성경적 기반을 가진 선언문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주장과 근거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최 박사는 “예컨대 첫 항은 선교를 ‘만물의 생명 충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 관심이며 선교”라 정의하면서 요한복음 10장 10절을 제시하지만, 예수의 말씀에 나오는 생명은 자연적인 ‘목숨(bios)’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WCC의 성경 오용과 전거일탈의 오류는 사회구원 지상주의와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한 결과로, 성령의 구속사 사역을 세속적 개념의 하나님 나라 활동과 차원으로 제한시킨다”고 밝혔다.

“복음주의 용어나 스타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돼”

‘선언서’가 복음과 예수 구원의 유일성,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종말론적 기대 등을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선교’ 구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주제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되는데, WCC는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최덕성 박사는 “WCC의 ‘하나님 나라’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꿈꾸어 온 지상천국이고,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 취득 조건이 아니라고 본다”며 “심판주로 오실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 통치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가 없는 까닭도 이 때문이고, 여기서 기독교와 WCC, 한국교회와 WCC의 강한 대립과 신학충돌이 드러난다”고 전했다.

▲최 박사는 “WCC는 견강부회식 아전인수격 성경 인용을 일삼고, 모든 종교에서 기독교적 요소가 발견된다고 본다”며 “WCC 부산 총회 유치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 성도들을 향해 ‘꽃뱀’과도 같은 WCC의 실체를 알려주시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이들이 말하는 ‘개인적 회심’ 역시 종합하면 “‘하나님의 선교’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닫는 철저한 자각, 하나님의 나라 곧 이상적 사회 건설과 세상 일에 대한 철저한 태도 변화”이고, ‘제자도’는 이 과제 수행의 실천과 철저성을 뜻한다. 선언서는 결국 개인적 회심, 생명, 제자도의 핵심, 전도를 말하면서도 이를 ‘하나님의 선교’와 그 구도 안에 국한, ‘개종주의는 전도를 실행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아님을 인식함이 중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최 박사는 “뿐만 아니라 WCC는 선지자적 사명을 앞세우면서도 공산주의 통치자들의 억압과 핍박, 비인도주의 행위에는 침묵해 왔는데, 하나님 나라 곧 정의·평화·인간화 세상이 공산주의 강압통치를 통해서도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라며 “WCC는 소련과 중국, 북한의 인권과 신앙의 자유 억압에 침묵하거나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고, 북한 문제를 다뤄줄 것을 요청하는 한국교회의 간청에도 소극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선언서가 복음주의 스타일로 쓰였다 해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바이엘하우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선언서에 사용된 복음주의적 용어나 서술들은 ‘하나님의 선교’ 일변도의 에큐메니칼 신학을 돋보이게 하려는 들러리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 복음’, ‘통전적 신학’, ‘그리스도의 독특성’, ‘그리스도 안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고통, 부활’ 등을 종교다원주의, 만인보편 구원주의, 타종교인에 대한 포용적 의미 안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선언서는 환경론자, 생태학자, 기독교윤리실천운동가들에게 매혹적인 문서가 틀림없고, 기독교의 본질을 사회참여와 가난한 자들과의 연대투쟁 또는 글로벌 경제위기 타개 등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환영할 것”이라며 “또 만인보편 구원주의, 진리상대주의, 마르크스주의에 길들여진 신학자들, 예수를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 ‘다른 복음’을 가진 선교사들도 환영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WCC 선교전도위 초대 총무, 레슬리 뉴비긴은 왜 탄식했나

최덕성 박사는 WCC의 세계선교전도위원회 초대 총무로 봉사한 레슬리 뉴비긴 주교(Lesslie Newbigin)의 자서전에 드러난 고백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뉴비긴은 WCC와 IMC(국제선교대회)가 통합되면 평신도들이 복음전도와 선교에 더욱 정진하는 교회생활의 이상적 모델이 되리라 기대했으나, 이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그는 세속화의 격랑 속에 시달리는 유럽교회들에게 기독교 복음과 선교의 본질을 깨닫게 하고 싶었으나, WCC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은 통전적이지도, 전 복음적이지도 않았다.

뉴비긴은 1960년대에 호켄다이크의 ‘하나님의 선교’ 이론이 WCC를 장악하자 크게 낙심했고, 결국 1988년 “교회가 세계 선교를 하지 않을 때 자기 문화의 포로가 된다”며 WCC의 선교 전략을 비판했다. 1990년대 들어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공식 표방하면서 비기독론 중심의 연합체로 급격히 변질되자 이를 강도 높게 비판했고, 본래 의도한 에큐메니즘-교회연합 정신의 중심을 상실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아직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든 인류 문화사 가운데서 유일한 장소 곧 죄와 용서, 속박과 자유, 갈등과 평화, 죽음과 삶 같은 궁극적 신비들을 다루는 결정적인 장소로 바라보고 있다. 나에게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예측할 수 없는 것과 수수께끼 같은 것이 많이 있지만, 내가 아무리 비틀거리며 걷더라도 지난 50년간 거듭 경험했듯 바로 그 십자가로부터 나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고, 그 불빛을 받아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최 박사는 “IMC를 WCC에 흡수시키는 데 앞장선 뉴비긴의 오판은 인류에게 성경이 말하는 생명 얻을 길을 제시하는 기독교의 선교-전도 기회를 가로막고, 교회 세속화를 가중시키는 변질된 선교운동에 이바지했다”며 “뉴비긴의 실수는 기독교와 WCC 사이에 있는 신학충돌, 신학 패러다임의 차이를 무시한 탓이었는데, 그의 실수와 비탄은 WCC 신학의 독성과 신학충돌에 무감각한 복음주의자들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

2013년 2월 5일 화요일

[크리스천투데이]WCC 공동선언의 뜨거운 감자, ‘개종전도 금지’가 뭐길래(2013.02.06)


에큐메니칼서는 “종교들 간 차이 긍정”, 보수 진영서는 “구원 가로막는 것”

이번 ‘WCC 공동선언문’(이하 선언문)의 소위 ‘4대 원칙’ 중 에큐메니칼 진영의 가장 큰 반발을 산 것이 바로 ‘개종전도 금지 반대’였다. WCC는 지난 1948년 창립 초기부터 타종교와의 대화를 강조했고, 그 연장선에서 개종전도에 회의적 시각을 견지해왔다. 부산에서 열릴 WCC 제10차 총회에서도 개종전도를 반대하는 내용의 선교선언문이 채택될 예정이다.

개종전도는 타종교에 유화적인 에큐메니칼 신학에서 그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 가운데 하나다. 다른 종교인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 행위에는 필연적으로 기독교 교리의 우월성 내지 절대성이 동반될 수밖에 없기에, 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칼 진영은 개종전도를 극도로 멀리해왔다. 특히 이 개종전도를 기독교 내 서로 다른 교파에게까지 적용할 경우 그간 에큐메니칼 신학이 추구해 온 연합과 일치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이번 사태를 통해 나타난 진보 신학계의 반응이다.

감신대 이정배 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를 통해 “이 땅에 존재하는 유불선 종교들의 존재가 더불어 인정되지 못할 경우 기독교가 내건 생명, 정의 그리고 평화는 그들만의 잔치로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면서 “이 점에서 ‘다양성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 자체가 유일신 사상(一者)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에 토대를 둘 수 있고 두어야 하되, 그 빛에서 종교들 간 차이를 긍정하고 그들 사이의 정의로운 관계에 주목하는 탈식민지적 신학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대표적 에큐메니칼 신학자인 이정배 교수의 말에서 보이듯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개종전도는 다양성과 공존할 수 없고, 오히려 어느 진보 신학자의 말처럼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한계를 설정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게나디오스 WCC 총회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방한 기자회견에서 “전도와 선교는 교회의 대사회적 섬김과 봉사를 통해 구현돼야 한다. 개종전도라는 온전하지 못한 방법을 통한 전도와 개종은 적절치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개종전도에 대해 보수 신학자들은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아세아신학연합대학교 이동주 교수는 과거 한 신학 세미나에서 WCC가 ‘개종전도 금지’를 선언한 것을 ‘영혼구원을 가로막는 독설’이라고 혹평했었다. 이 교수는 개종전도에 대해 “개신교 선교사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지역의 명목상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활동과 교회를 세우는 일을 금지하고 그들의 성상숭배, 성자숭배,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마리아 숭배 등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WCC는 개종주의 내지 개종강요는 전통적인 기독교 증거를 왜곡시키며, 따라서 복음을 위태롭게 만드는 ‘역증거’라고 한다. 개종강요는 공동체를 세우기보다 오히려 파괴하며 언제나 건전한 교제를 방해하고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며, 복음증거에 악영향을 주는 행위라고 비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나 WCC는 복음적인 개종선교를 크게 오해하고 있다”며 “오늘날 선교사들이 엄청난 희생적 사랑을 쏟으면서 영혼을 위해 헌신하는 복음적인 개종선교를 ‘개종강요’로 판정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복음적 개종선교를 개종강요가 아닌 ‘회심선교’라고 해야 한다. 예수께서 시작하신 회심선교는 또한 제자들에게 명하신 마지막 유언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지난 2천년 간 이 개종선교를 수행해 오늘날 우리도 구원을 받게 된 것이 아닌가. 복음전파로 인해 비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기쁨으로 되는 것이지,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 외에도 대부분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개정전도 금지주의’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는 “개종전도를 반대하는 것의 이면에는 종교다원주의가 있을 것”이라며 “당연히 복음주의적 입장에선 개종전도를 금지한다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내 한 저명한 신학대의 선교사 출신 선교학 교수도 “저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대전의 한남대학교에서 공부하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며 “결국 외국 선교사들 덕분에 크리스천이 될 수 있었고 선교사를 거쳐 이젠 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만약 개종전도가 필요 없다면 크리스천이 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개종전도 금지에 동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3년 1월 12일 토요일

[크리스천투데이]“선교전략, ‘한국형’과 ‘현지형’ 사이 공통분모 찾아야”(2013.01.11)


KWMA 사무총장직 연임한 한정국 목사 인터뷰

▲KWMA 한정국 사무총장. ⓒ크리스천투데이 DB
최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제23차 정기총회에서 한정국 목사의 사무총장직 연임이 확정됐다.
 
한정국 사무총장은 취임 소감에 대해 “연합이라는 것이 깨지기 쉽지만 만들면 아름다운 그릇이다. 선교계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지 말고 역할 분담을 잘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연합운동에 대해서는 “최대한 국내 및 국제적 동반사역을 추진하고자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로잔언약이 언급한 복음전도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적(에반젤리칼)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선교의 연합과 일치의 에큐메니칼한 정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한다”며 “선교계만은 복음주의 선교신학과 함께, 주께서 하나되게 하신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사무총장은 한국교회와 한국의 문제를 선교적인 관점과 선교지의 관점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하며 “일반적으로 ‘그 신학’(the Theology)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국 신학과 미국 신학이 있을 뿐이다. 새벽기도는 한국적인 기질에 문화의 옷을 입혀 놓은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같은 한국형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은 반대한다. 기와집 교회면 어떠한가? 목사는 반드시 정장과 넥타이만 착용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한 사무총장은 이어 “한국형과 현지형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현지 지도자, 서양 선교사, 한국 선교사가 함께 그 지역에 적합한 선교전략을 논의하고 수립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KWMA는 앞서 25년간 유지해 온 기본정책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정신으로 계승·발전하면서 21세기에 들어와 수 년간 입안 토론하고 결의한 중장기 비전인 Target2030과 MT2030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 정책으로 ▲기존 3自(자립, 자선, 자치)에 2自(자신학, 자선교학)를 더한 5自 정책 ▲NCOWE(선교전략회의)연대 ▲CAS(지역분할, 종족입양, 기능분담) 등을 수립하고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선교지에 상부상조 매커니즘 디자인 개발,  선교 리서치의 선진화와 활성화, 한국형 선교개발에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한 사무총장은 “한국 선교의 미래는 모든 면에서 발전 단계와 함께 성숙을 추구해야 한다. KWMA는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구속력은 없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 협력을 통해 각 단체가 미처 하지 못하는 대정부관계, 전국대회, 그리고 서로 이해관계가 다소 다른 ‘어떤 선교 이슈’에 대한 전략회의를 함께 논의해 왔다”며 “먼저 선교계가 ‘연합’하고 ‘협력’할 때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이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2013년 1월 5일 토요일

[Why] [채성진 기자의 探人探事]온국민 감격에 떨게한 탁구 여왕 양영자, 89년 돌연 사라진 뒤(2013.01.05)


돌아온 녹색 테이블 여왕… "만리장성 깰 공격형 스타 나와야 탁구가 삽니다"

 80년대 한국 탁구의 여왕, 양영자가 돌아왔다. 88서울올림픽 여자 복식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국가대표 후보 선수단 감독이 됐다. 그는“결혼, 해외 선교 활동으로 라켓을 놓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녹색 테이블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한순간도 탁구 잊은 적 없다1989년 은퇴, 1992년 결혼… 1997년부터 15년간 해외 선교 
"출국할때 탁구대·라켓 갖고 가 현지 아이들·클럽팀 지도했죠"

中제자, 한국으로 귀화… 네이멍구서 만난 中2 이은혜, 승부욕 남다르고 가장 성실…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찾아와 한국에 데려가 키워달라 부탁
지금은 국내 실업팀서 뛰어요

후배 현정화는… 다들 라이벌이라고 부추겼지만 우린 환상의 복식 파트너였죠
고 3·중1로 처음 만났을 때 5점 잡아주고했는데 제가 졌죠

'지도자 양영자' 스타일은… 
요즘 탁구는 백핸드·포핸드 둘 다 고루 잘하길 원하지만 
저는 상대가 공포감 느낄정도의 폭발적 포핸드를 강조합니다

칼바람 한파가 전국을 강타한 새해 첫날, 대구체육관은 제66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초·중·고교와 대학, 일반팀 최정상급 선수 300여명이 한국 탁구의 왕중왕을 가리는 무대.
남녀 단식과 복식, 혼합 복식 경기가 동시에 열렸다. 선수들의 스매시 동작과 풋워크를 바라보는 양영자(49)의 눈길이 매서웠다. 초등학생 선수가 고교생 언니를 상대로 야무진 공격을 날리자 "예스!"라는 짧은 탄성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양영자는 80년대 한국 탁구의 여왕이었다. 1988년 9월 30일 서울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현정화와 짝을 이뤄 중국의 자오즈민·첸징 조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만리장성이 무너지던 그 순간, 온 국민이 벅찬 감격에 몸을 떨었다.
양영자는 이듬해 돌연 은퇴했다. 잠시 트레이너로 활동했지만 곧 결혼하며 탁구계와 멀어졌다. 남편과 해외 선교 활동에 나서 15년을 보냈다. 강력한 드라이브를 상대에게 퍼붓던 파워 플레이어 양영자는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작년 초 귀국한 양영자는 7월 국가대표 후보 선수단 감독으로 돌아왔다. 그는 "라켓을 놓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녹색 테이블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팽팽한 승부의 긴장감이 그리웠다는 양영자.
선수 때와 다름없는 짧은 커트 머리, 하얀 탁구공의 궤적을 추적하는 날 선 눈매에서 승부사의 본능이 느껴졌다.

"공격형 스타가 나와야 탁구가 뜬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보입니까.

"한국 여자 탁구가 많이 약해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남자 선수 중에는 키워볼 재목감이 있는 것 같은데, 여자 선수들은 좀 부족해요."

―2012 런던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지요.

"한국 여자 탁구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딴 건 88올림픽 이후 처음이었어요. 올 것이 온 것이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위기를 계속 느껴온 게 사실이에요.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도 메달을 땄지만 자신 있게 이긴 시합은 아니었거든요. 이런 분위기라면 한국 여자 탁구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열심히 준비해서 2020년 이후를 준비해야 할 거예요."

―탁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탁구장도 많이 사라졌고.

"꼭 그런 건 아닌데…. 생활체육 탁구 교실이 꽤 늘어났으니까. 어른들이 많이 하다 보면 자녀에게 권할 수도 있겠죠. 문제는 스타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 세대는 사라예보 신화를 창조한 이에리사와 정현숙 선배를 보고 자랐어요. 근데 요즘은 그런 영웅이 없어요. 골프에는 '박세리 키즈'가 있지요. 대형 스타 선수가 나와야 후배들에게 자극이 되고 롤 모델도 됩니다."

―'탁구 얼짱' 서효원 선수의 인기가 높은데요.

"기량은 괜찮지만 수비형 스타일이라는 게 좀 그래요. 수비 선수라도 공격력을 갖춰야 1위를 할 수 있어요. 중국의 통링 선수가 그랬듯이. 우리 선수들은 왜 공격 안 하고 수비만 하다 지냐고 말이 많잖아요. 보는 사람도 답답하고. 시원하게 후려치는 화끈한 공격형 선수가 있어야 팬도 신나고, 탁구에 인생을 걸겠다는 꿈나무도 나오지 않겠어요?"

―청소년 국가대표 후보 선수단 감독은 어떤 자리인가요.

"대한체육회가 지원하는 후보 선수단 전임 지도자예요. 임기는 4년. 청소년 유망주를 키워 대표 선수급으로 키우는 역할이죠. 전 고등부 담당입니다. 남녀 15명씩 30명인데 재능이 보이면 초·중학생이라도 데려올 수 있어요. 동계·하계훈련 뛰고 한·일 교류전과 국제대회에도 나가죠. 훈련이 끝난 뒤에는 전국 각지의 학교에 찾아가 선수들이 잘 성장하고 있는지 꾸준히 체크합니다. 그러면서 숨겨진 진주를 캐내기도 하죠."

―협회에서 감독직을 요청했나요.

"아뇨. 제가 신청했어요. 정말 해 보고 싶었거든요. 전임 고수배 감독이 인삼공사 팀으로 가시면서 자리가 났어요. 일단 남은 임기가 2월 말까지예요. 저는 계속 하고 싶은데 체육회가 허락해야겠죠. 개인적으로는 더 어린 유소년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싶어요. 기초부터 차근차근."

―좀 더 영향력 있는 자리도 있었을 텐데요.

"아유, 무슨 그런 말씀을. 은퇴한 뒤 늘 청소년 선수들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지금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연말까지 전남 진도에서 열린 전국남녀중고대회를 지켜봤고 끝나자마자 대구로 올라온 거예요. 이 대회가 끝나면 새롭게 선수 선발해서 13일부터 훈련 들어갑니다."

해외 선교 15년… 탁구를 잊은 적 없다

전라도 처녀 양영자는 경상도 총각 이영철(52)과 1992년 결혼했다. 은퇴한 지 3년 만이었다. 같은 교회 청년부에 다니며 얼굴만 알던 두 사람은 출장과 휴가차 찾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운명처럼 만났다. 연합통신 국제부 기자였지만 선교사를 꿈꿨던 이영철, 어머니를 간암으로 잃고 우울증을 앓던 양영자. 둘은 신앙으로 하나가 됐다. 남편은 어려운 결심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고, 아내는 흔쾌히 그 뜻을 따랐다. 신학 공부와 선교사 준비…. 부부는 호주 어학연수 중 알게 된 WEC국제선교회를 통해 1997년 몽골로 떠났다.

―왜 몽골이었습니까.

"남편은 처음에 쿠바나 라오스를 생각했대요. 몽골에 다녀오더니 생각을 바꿨어요. 마음이 뜨거워지는 곳을 찾았다며. 울란바토르에서 2년 정도 선교 활동을 하며 현지 언어와 문화를 공부했어요. 그러다 '셍샨드'라는 유목민 도시로 떠났죠.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450㎞ 떨어진 동고비 사막 한가운데. 기차로 가면 10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인구가 1만2000명쯤 됐는데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었죠."

―고생이 많았겠어요.

"창문을 두세 겹으로 해도 집 안에 모래가 수북이 쌓여요. 바람이 불면 입 안에서 모래가 서걱서걱하고. 여름이면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엔 영하 45도까지 뚝 떨어져요. 물이 귀해 여름철에도 물차에서 양동이에 받아 써야 했죠. 일주일 넘도록 머리를 못 감은 날도 많았는데, '왜 이렇게 사나' 생각은 안 들었어요. 목표가 뚜렷했으니까."

―음식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던데.

"제가 야채와 생선을 좋아해요. 소고기,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닭고기도 안 먹어요. 선수 시절 고기를 먹으면 오히려 힘이 빠지는 체질이었으니까. 근데 몽골은 육식 나라잖아요. 설 명절에 초대를 받아서 가면 양고기에서 허연 기름 덩어리를 쓰윽 베어서 건네요. 그게 손님에 대한 배려거든요. 음식 문제 때문인지 안면 마비가 와서 애를 먹었죠."

―탁구와 자연히 멀어졌겠군요.

"제가 어떻게 탁구를 잊을 수 있겠어요. 출국할 때 탁구대와 라켓, 탁구공을 몇 개씩 가지고 나갔어요. 셍샨드 아이들에게 똑딱똑딱 가르쳤죠. 그게 참 보람 있더라고요. 거기 사람들은 탁구를 '오떰 범버크'라 불러요. 탁구공이 작아서 그런가, '별 같은 공'이란 뜻이래요. 나중에는 클럽팀을 돌아다니면서 기술 지도를 하고 그랬죠."

"쉼 없이 달리는 토끼는 잡을 수 없다"

2004년 양영자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의 후허하오터(呼和浩特)로 떠났다. 해발 1000m의 고원도시. 그곳에서 중국 탁구를 다시 만났다. 선수 시절 양영자는 '중국 킬러'로 통했다. 실업 1년차 막내로 참가한 1983년 일본 도쿄 세계탁구선수권에서 그는 16강전부터 겡리유안, 통링, 황준취인 등을 연파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차오옌화에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세계선수권 개인 단식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사를 새로 썼다.

―중국에서도 탁구를 지도했습니까.

"네이멍구 대표팀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쳤어요. 기술 고문쯤 됐는데, 중국 국내 대회를 여러 차례 지켜봤어요.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전국 체전은 규모가 어마어마해요. 초대형 경기장에 출전하는 선수와 임원, 관중이 바글바글했죠. 프로 리그도 대단해요. 수퍼 1부 아래 층층이 리그가 있는데, 하위 리그에서 1등을 해야 상위 리그에 올라가는 구조예요. 상금도 엄청나게 많고. 중국 탁구의 힘이 여기서 나오는구나 깨달았죠. 이런 중국 선수들을 제가 어떻게 이겼나 싶었어요."

―중국 탁구를 처음 접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 유고 노비사드 세계선수권에 후보 선수로 따라갔어요. 그때 벤치에서 중국 선수들을 처음 봤죠. 그땐 중공이라 그랬어요. 공포의 스카이 서브, 그걸 처음 본 거예요. 한국에 돌아와서 혼자 연습했죠. 중국 것을 모방해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나중에 제가 한국에서 처음 스카이 서브를 한 선수라고 하더라고요."
 1986년 9월 25일 서울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단체전에 출전한 양영자(오른쪽)와 현정화. 양영자의 파워 드라이브, 현정화의 송곳 같은 속공을 앞세운 한국은 2시간 55분에 걸친 격전 끝에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선일보 DB
―특히 기억에 남는 선수는.

"1983년 도쿄 세계선수권에서 붙은 차오옌화. 제 탁구의 모델이자 영웅이었어요. 선배들도 두려워했는데, 드라이브 속공 스타일로 저와 비슷했어요. 참 매력적인 탁구를 했어요. 재능도 타고났고. 운이 좋으면 이길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결국 졌습니다. 그래도 벽이란 느낌은 없었어요. 언젠간 넘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노력이 천재를 이길 수 있습니까.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선수라도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근데 요즘은 재능있는 선수들이 노력도 엄청나게 해요. 토끼가 잠을 자지 않고 쉼 없이 달리는 셈이죠. 그런 토끼는 누구도 이길 수가 없어요."

―한국으로 귀화시킨 중국 선수가 있다던데.

"네이멍구 후허하오터에서 만난 이은혜 선수예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죠. 중국 이름은 자오칭. 한국에 와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대한항공에서 뛰어요. 오늘 단식과 혼합 복식에 나갑니다. 실업팀 유니폼 입고 처음 뛰는 경기라 긴장하던데…."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당시 30여명 정도 가르쳤는데, 은혜는 제일 성실하고 승부욕이 남달랐어요. 목표도 확실했고. 특히 백핸드가 좋아요. 빠르고 파워도 있고. 어느 날 은혜 아버지가 저를 찾아와 그래요. 여기보다 기회가 더 많은 한국으로 데리고 가서 잘 키워 달라고. 제 수양딸로 삼아서라도 데려오려고 했죠. 근데 잘 아는 다른 목사님이 입양을 해 줬어요. 은혜 친구인 이시은 선수는 지금 귀화 수속을 밟고 있습니다."

"정화에게 라이벌 의식을 더 느꼈어야…"

현역 시절 양영자는 '독종'으로 통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4강전에서 기적 같은 역전극을 가능케 했다. 세트 스코어 2―2, 11―18로 7점을 뒤지던 상황. 모두가 "경기는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양영자는 한 점 한 점 따라붙어 결국 21―18로 경기를 뒤집었다. 가슴 떨리는 한국 탁구 사상 최고의 역전 드라마였다. 그는 지금도 후배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한다고 했다.

―기술이 중요한 시대 아닌가요.

"반드시 이기겠다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요. 스코어가 좀 벌어졌다고 '나는 졌구나' 하면서 대충 치는 요즘 선수들. 저는 선수 자격이 없다고 봐요. 체력·기술·정신력 세 가지 중에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이 정신력이에요."

―원래 승부욕이 강했습니까.

"이리 남성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탁구 라켓을 잡았어요. 이종학 코치님은 시합 때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라도 걸었어요. 타이틀이 걸리면 더 재미있고 신나고 집중력도 생겼죠. 전 내기에 강했거든요. 딴 돈으로 친구들과 뭘 사 먹기도 했죠. 이일여중 2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처음 정상에 올랐고, 여고 2학년 때 서울국제오픈대회에서 단·복식과 단체전 3관왕을 했습니다.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스타일이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팔꿈치 부상으로 진통제를 달고 살았죠. 기권하면 했지 일단 출전해서는 대충 뛴 적이 없어요. 사실 기권한 적도 없었지만."

―지도자로서 양영자 스타일은 어떤 것인가요.

"요즘 탁구는 백핸드, 포핸드를 50대50으로 골고루 잘하기를 원하지만 저는 좀 달라요. 강력한 포핸드를 강조합니다. 상대가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폭발적인 포핸드. 선수들이 그런 폭발성을 갖도록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요."

―현정화 선수는 파트너입니까 라이벌입니까.

"라이벌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우린 환상의 복식 파트너였죠. 라이벌은 선배나 동료였지 후배나 동생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대표 선수이던 고 3, 정화가 중학교 1학년 때 부산 계성여상 체육관에서 둘이 처음 만났어요. 5점 잡아주고 시합했는데 제가 졌어요. 나중에 탁구 최강전에 나갈 때마다 주변에서 라이벌이라고 부추기고 그랬지만 그때도 별로…. 지금 생각하면 제가 좀 더 라이벌 의식을 느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은퇴 후 지도자로 화려한 경력을 쌓고 탁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현정화 감독이 부럽지는 않습니까.

"축하할 일이죠. 본인이 이룬 것을 찾아나간 거예요. 그게 당연한 것이고. 정화의 근성은 저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죠. 제가 선수 시절 아파서 훈련을 많이 못 해 아쉬운 점은 많지만…. 서로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다른 것 아닐까요. 자기의 목표와 비전에 맞게 사는 것!"

―힘든 순간은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됐을 때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勇士)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城)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리라'는 말씀을 떠올렸고, 마음이 약해질 때는 '약한 자를 택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든다'는 구절을 마음에 새겼죠."

―좋은 엄마, 좋은 아내였습니까.

"큰딸 반재(20)와 작은딸 윤재(19)는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의 바이올라 대학에서 다문화 공부를 하고 있어요. 몽골에 데려간 게 여섯 살, 다섯 살 때인데 얘들이 지금도 거기서 모래 장난하던 걸 기억해요. 즐거운 추억이었다면서. 중 1때부터는 대전 국제학교에서 기숙사 생활하며 스스로 컸죠. 든든하게 곁을 지켜 준 남편도 고마워요. 지난 10년 동안 몽골인들을 위해 현지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대회 첫날 경기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단식 경기를 마친 은혜가 관중석의 양영자를 찾아왔다. 아쉬움에 고개를 떨군 제자의 손을 꼭 잡고 양영자가 말했다.

"괜찮아. 잘했어. 너도 연습해서 더 많이 발전하면 돼. 힘내자. 할 수 있지?" 은혜가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