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찍어서 글을 써라.”(시인 정채봉)
문인들에게도 글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매년 10권 안팎의 책을 써내는 다작의 대가들도 있다. 올 한 해 동안 5권 이상의 책을 낸 저자들에게 ‘다작의 노하우’를 물었다.
올해 6권을 낸 소설가 겸 시인 장석주 씨(58)는 “내년에도 6, 7권 낼 것 같다. 3권쯤의 원고는 벌써 출판사에 넘어가 있다”고 밝혔다. 장 작가는 “주말 빼고 4, 5일 정도는 매일 200자 원고지 20∼30장을 쓴다”며 “읽고 쓰는 일을 오래하다 보니 콘텐츠만 있으면 문장으로 다양하게 요리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숙련성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작의 원동력으로 ‘다독(多讀)’을 꼽았다. “특히 시집을 많이 읽는다. 뇌의 유연한 근육을 만드는 일종의 유산소운동처럼 자극이 된다.”
경제경영 및 자기계발서를 쓰는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52)은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글에 대한 청사진과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며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그는 올해 고전강독도서 4권을 포함해 6권을 썼다. 아이디어가 혼동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비결은 ‘청사진’에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비행기든 기차든 이동할 때는 데생을 하듯 A4용지에 큰 그림을 그린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이를테면 어떤 주장을 펼치고 어떤 보조사례를 들 것인지를 레고 퍼즐 맞추듯이 집필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스톱워치를 사용해 가며 체계적으로 글을 쓰다 보면 하루 150장도 거뜬하다고. 공 소장은 “독서도 집필 활동의 연장이다. 신간을 보면서 행간을 읽어내 차기작의 방향을 정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고전연구가인 신동준 작가(57)는 이번 주 신간 ‘어떻게 세상의 마음을 얻는가’를 비롯해 올해 10권을 냈다. 그는 “고전 번역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번역해 두면 필요한 내용을 뽑아내고 재해석하는 작업은 속도가 붙어서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출처가 같다면 자기 복제의 우려는 없을까. “책 한 권을 써낼 때 20권 이상의 도서를 정독한다. 대학입시 때 공부량의 두 배를 해내는 기분인데 그래야 고전 해석의 구멍을 발견하고 메울 수 있다.”
‘개념어사전’의 저자 남경태 사회학자(52)는 올해만 4권의 저서와 10권의 번역본을 냈다. 그는 지난달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다작의 비결에 대해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 한 권을 오래도록 성찰하면서 읽다 보면 새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밝혔다.
‘생각 버리기 연습’의 저자 고이케 류노스케 스님(34)은 5월 방한 당시 다작을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으로 ‘명상’을 꼽았다. 최근 200번째 동화책을 펴낸 아동문학가 고정욱 씨(52)는 “아이에게 말하듯 이야기를 녹음해 초고를 완성하면서 작품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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