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중음악계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그래미상 최우수 신인상 후보에 오른 뮤지션들을 살펴보는 일이다. 올해 유독 두드러지는 경향은 전통 장르를 품에 안은 신인들의 약진이다. 후보 5팀 중 3팀이 뚜렷하게 그런 스타일이다. 2월 10일 열릴 시상식을 앞두고 이들에 쏠리는 세계 음악 팬들의 관심은 뜨겁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22세 컨트리 가수 헌터 헤이즈다. 그는 1920년대 미국 남부에서 생겨난 전통 음악인 컨트리에 도전해 신·구세대를 아우르며 찬사를 받았다. 그의 노래 '원티드(Wanted)'가 227만여장이나 팔려나가며 각종 음악 차트 1위를 휩쓴 건 100여년 전 유행했던 고풍스러운 음악의 감성을 고스란히 살려 컨트리 마니아들의 단단한 지지를 확보했던 것이 기반이 됐다. 하지만 세련된 선율과 편곡으로 피 끓는 청춘들에게 쾌감과 안식을 전해주지 못했다면 돌풍으로 연결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콜로라도 출신 밴드 더 루미니어스는 1960년대풍의 단출한 포크 음악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디지털 세상에서 많은 뮤지션이 새롭고 복잡한 소리를 찾는 데 전념하는 사이에 단순함으로 돌아가 놀라운 결실을 맺었다" "음악의 뿌리가 느껴지는 포크의 소박하지만 위대한 힘이 응축돼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이들의 나이 또한 서른 살 안팎이다. 또 하나의 후보인 4인조 밴드 알라바마 쉐이크스는 진득한 소울(Soul) 감성이 물씬한 록음악으로 주목받았다. 23세 여성 보컬 브리타니 하워드에 대해서는 1960~70년대 전설적 여성 로커였던 고(故) 재니스 조플린의 재림(再臨)이라는 찬탄까지 나온다.
뒤돌아보면 미국 음악 시장에서는 늘 젊은 뮤지션들의 과거를 향한 모험이 화두였다. 이들은 오래전 유행했던 음악적 스타일을 현대화하는 데 힘을 쏟았고 종종 대중의 열광을 불러일으키며 세대 간 감성 격차를 이어주는 다리가 됐다. 17세에 데뷔, 2600여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래미상을 6번이나 받은 '컨트리 요정' 테일러 스위프트가 대표적이다. 미국 컨트리계에는 캐리 언더우드, 레이디 앤터벨룸 같은 20·30대 청춘스타가 댄스나 힙합 장르 못지않게 많다. 젊은 블루스의 기수(旗手)인 존 메이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세대 간 단절의 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한국 가요 시장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중장년들은 요즘 나오는 신인 아이돌 그룹의 이른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을 들으며 "가사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데 이게 무슨 노래냐?"고 볼멘소리를 하기 일쑤다. 우리에게도 100여년간 시대의 정서를 대표하는 명곡(名曲)이 수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음악을 예술보다 상품으로 취급하는 대형 기획사 위주의 요즘 가요계에서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세대 간 화합이다. 과거의 전통을 존중하는 노래를 통해 신·구세대 사이에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실마리는 의외로 빨리 잡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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