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하는 독일, 피해자라고 우기는 일본… 역사의 거울이 이토록 다를 수 있나”
1960년 필자가 20대 초반의 독일 유학생 시절 이야기다. 교수와 대화를 나누던 중 독일사회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읽을거리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대뜸 “유대인 문제와 얽힌 역사를 다룬 책을 읽는 것이 지름길”이라며 살아 있는 성인(聖人)이자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1878∼1965)의 저서 ‘곡과 마곡(Gog und Magog)’을 권했다.
그러면서 교수는 뜻밖에도 다하우 유대인강제수용소를 찾아보라며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곡과 마곡’은 너무 어려워 수년이 지나서야 읽었다). 당시에는 영화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보고서야 나치 정권 아래 유대인이 겪은 고통과 수난을 이해하고, 그 문제의 깊이와 폭을 인식하던 수준이어서 교수의 말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얼마 후 뮌헨 근교에 위치한 다하우 유대인강제수용소를 방문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수용소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원형 그대로를 그때까지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수용소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고, 헐벗은 유대인을 집단으로 살해한 독가스실에서는 가스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시체를 화장하던 아궁이 앞에 수북이 쌓인 재가 있고 벽면에서는 탄내가 여전히 뿜어 나오는 듯했다.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유대인강제수용소의 생생한 느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들 전시장에는 독일 민족의 눈물겨운 참회와 고뇌가 절절히 녹아 있었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만행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결코 용서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이렇게 잔인할 수 있으니, 다시는 이러한 만행이 세계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다짐합시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했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 역사를 진솔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의 절규 이상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분명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임에도 패전의 전상(戰傷)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주로 일본 본토가 아닌 ‘역외’에서 격전이 벌어졌고, 1945년 8월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갑작스럽게 전쟁이 끝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전쟁과 관련한 참혹한 흔적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만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일본인의 과거 전쟁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현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얼마 전 일본 규슈 지방의 나가사키를 찾은 적이 있다. 그곳 평화공원에 자리한 원자폭탄자료관은 전에 방문한 히로시마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자료관에 전시된 자료들은 원자폭탄이 얼마나 무서운 파괴력을 지녔는지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전시장을 둘러본 후 전시를 한 목적이 일본 자국민이 전쟁에서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고 ‘일본은 억울한 피해자다’를 외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인류 역사에 대한 일말의 반성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독일에서의 기억과는 너무 달라서 허탈하기까지 했다.
독일은 패전국의 아픔을 역사에 대한 경외심으로 달래면서, 나치 독일이 주변국들에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를 추호도 변명하거나 감추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오로지 반성하는 것만이 준엄한 인류 역사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그 결과 독일 통일의 결정적 길목에서 대전의 피해자인 주변국들의 큰 저항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
두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에서 유대인강제수용소와 원자폭탄자료관이라는 ‘역사의 거울’에 비친 모습은 너무 다르다. “외관이 거짓이면, 거울도 속인다(Der Schein betr몕gt, der Spiegel l몕gt)”라는 독일 속담이 있듯 거울은 비친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이는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가르침이다. 언젠가는 일본도 인류 역사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과거사를 인정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다.
이성낙(가천대 명예총장·현대미술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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