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7일 월요일

[Weekly BIZ] [Story] '토이저러스' 래리 가드너 부사장_세상의 모든 장난감 모아놓자 월마트 가던 아이들 돌아왔다(2011.12.10)


월마트의 저가 공세와 온라인게임 바람에 밀려 경영 위기 속 매각돼…
추수감사절 야간개장 등 작고 민첩한 마케팅으로 세계 매장 1392개로 확대 
놀이공원 같은 매장에 아이들 환호… 부모들 기꺼이 지갑 열어

지난 11월 24일 밤 9시,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 쇼핑객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두 개 블록을 덮어버린 이 인파는 세계 최대 장난감판매점 '토이저러스'(Toys"R"Us)의 '블랙프라이데이' 할인행사를 노리고 몰려든 이들. 블랙프라이데이는 추수감사절 다음 날로, 상점들은 많게는 50%까지 물건을 할인해 판다. 대부분의 매장이 올해 11월 25일(추수감사절) 새벽 3~4시에 문을 열었지만, 토이저러스는 시간을 파격적으로 앞당겨버렸다. 우리로 치면 추석날 밤 9시. 사람들이 이 시간에 몰려들까?

"전해보다 많은 1500여명이 개장 2시간 전부터 줄을 섰다."

래리 가드너(Larry Gardner·57) 토이저러스 부사장이 답했다. 2년 전 블랙프라이데이에 그는 매장 앞 손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됐다. 손님 하나가 "추수감사절날 저녁 먹고 아이들과 딱히 할 일이 없다. 왜 그 시간에 문 여는 곳은 없을까?" 했고 옆에 있던 이들도 맞장구를 쳤다. 1년 중 가장 큰 대목이 바로 블랙프라이데이였다. 어떻게 하면 이날 매출을 극대화할까 고민하던 가드너와 경영진은 이렇게 합의 봤다. "안 될 게 뭐 있어(Why not)?"

"시간을 앞당기니 예상보다 매출 증가가 더 컸다. '밤 9시 쇼핑'이 주는 신선함이 고객들을 자극한 것이다. 우리의 시도 후, 월마트가 곧바로 시간을 앞당겨 올해 밤 10시에 문을 열었다. 이처럼 업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월마트·타깃의 저가(低價) 공습도 더 거세졌고. 우리 같은 '카테고리 킬러'(전문분야를 특화한 소매점)들이 살 길은 고객에게 귀를 열고 작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6년 전만 해도 토이저러스의 움직임은 느리고 컸다. 대형할인매장들이 저가를 무기로 손님을 낚아채고 아이들은 장난감보다 온라인게임에 열중하고 있는데도 토이저러스는 60년 역사의 '브랜드력(力)'에 기댔다. 획기적인 가격 정책을 내놓지도 못했고 키즈아러스(Kids"R"Us)나 베이비저러스(Babies"R"Us)처럼 고객을 연령별로 나눠 "R"Us만 붙인 매장들 숫자 늘리기에 급급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시작된 몰락은 2005년 최악의 경영 위기로 터졌다. 손님이 줄고 매출이 떨어지자 미국 내 100여 개 매장이 문을 닫았고 직원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결국 토이저러스는 거대 사모투자기업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에 66억달러에 매각됐다. 당시 업계는 이런 전망을 내놨다. "단물만 빨리고 다시 매물로 나올 것."

예상은 빗나갔다. 2006년, 래리 가드너를 포함한 새 경영진이 들어선 후 매출이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더니 2008년 금융위기에도 타격을 거의 입지 않았다. 2005년 111억달러였던 매출은 2011년 1월 138억6400만달러로 뛰었다.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1350개였던 전세계 매장 수도 2011년 1392개로 늘었다.

새 경영진이 토이저러스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목표를 설정한 것이었다. 새 목표는 '장난감업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독특한 플랫폼이 되는 것'이었다. 온라인 세상의 구글처럼.

"토이저러스에 없는 장난감은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도록 우리는 가장 방대한 품목의 장난감을 입고하고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검색 가능하다."

목표가 정해지자 토이저러스는 작고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월마트·타깃의 저가 공습에 쓰러졌던 토이저러스는 2006년 "우리는 대형 할인마트들과 출혈 경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위기의 순간에 기업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가 뭔지 아는가? 바로 '남 잘하는 거 따라 하기'다. 토이저러스는 '내가 잘하는 것'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리의 경쟁력은 완구업계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다양한 종류의 장난감을 확보하는 능력에 있었다. '토이저러스에 간다'는 말이 '되도록 싼 값에 장난감을 사러 간다'로 들려서야 누가 굳이 우리 매장에 오겠나?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 매장이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가는 곳'으로 인식되는 것이 중요했다. 금융위기 때도 우리가 성장한 이유가 뭔지 아는가? 어려운 때일수록 미국 부모들은 아이들에게만큼은 더 특별한 걸 사주고 싶어 했다. 자식들 눈에 차오르는 기쁨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고나 할까."

◇세상 모든 장난감이 여기에

2008년 한국에도 토이저러스가 문을 열었다. 롯데마트가 토이저러스 본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고 운영하고 있다. 한국 토이저러스 매장에서 팔리는 영화 '트랜스포머' 관련 장난감 종류는 55가지로 경쟁사 평균(25)의 두 배에 달한다. 바비인형은 60여종으로 경쟁사 평균(7)의 거의 아홉 배, 리틀타익스 브랜드 용품은 42가지로 경쟁사 평균(2)의 스무 배가 넘는다. 토이저러스측은 미국 매장이 보유한 장난감 종류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지난 11월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토이저러스 매장 한가운데에 20m 높이의 회전 관람차가 돌아가고 있다. 지하 1층의 관람차 탑승 입구에는 아이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가드너 부사장은“토이저러스 매장은 단순한 쇼핑의 공간이 아니라 놀이공원처럼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 블룸버그 뉴스
―세상 모든 장난감이 여기 있다고 보면 되나?

"다른 데 없는 것이 토이저러스에 있다고 말하겠다. 우리는 마텔(Mattel)·하스브로(Hasbro) 같은 대형 완구제조업체들을 찾아가 '토이저러스 단독 제품을 만들어 공급해 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 같은 마텔 인형들이라도 토이저러스 온리(only)를 달고 나면 '한정판'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2009년에는 90년 전통의 케이비토이즈(KB Toys), 2010년에는 150년 된 장난감 판매점인 '에프에이오 슈월츠'(FAO Schwarz)를 인수해 두 브랜드가 달린 장난감이 토이저러스에서만 팔리게끔 했다. 우리 전략은 무분별하게 장난감 종류만 늘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장난감이 월마트에 있는데 아이들이 굳이 토이저러스까지 와서 쇼핑을 하려 할까?

"주위를 둘러봐라. 우리는 가장 핫(hot)한 물건을 가장 핫(hot)한 방식으로 진열해 놓았다."

가드너 부사장은 인터뷰 도중 일어나 토이저러스 타임스스퀘어 매장을 안내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상어, 상어요, 누구나 좋아하는 상어!"라고 외치며 상어 모양의 헬륨풍선을 무선 조종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영화 스파이더맨과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복장을 한 직원들이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매장 한가운데 20m 높이로 솟은 회전 관람차 안에는 아이들이 타고 있고, 6m 크기의 주라기파크 공룡 모형과 실물 사이즈의 바비인형의 집도 눈에 들어왔다. 매장이라기보다 놀이공원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우리 고객은 아이다. 쇼핑이 아니라 매장에서 무얼 체험하고 즐기느냐를 중시한다. 다른 마트들에서는 많은 장난감이 비닐 포장돼 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직접 조작해보면서 정보를 얻는 데도 말이다. 게다가 매장 직원들도 장난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요즘은 6세 여자 아이에게 바비인형을 건네도 '날 아이로 보는 거냐?' 소리를 듣는 시대다. 우리는 365일 장난감만 파는 곳이니 직원들은 장난감 전문가고 누구보다 아이들의 욕구를 알고 있다. 직접 시연을 하는 걸 넘어 아이 개개인에게 맞는 장난감도 추천해준다."

◇고객에게 발 빠르게 찾아간 매장

상품 구성을 다양하게 하고 매장을 놀이터처럼 만든다고 대형 마트에 뺏긴 고객들이 다시 찾아올까? 래리 가드너와 경영진은 고객을 기다리는 매장이 아닌 '고객을 찾아가는 매장'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 11월 뉴욕 타임스스퀘어 토이저러스 매장에서 만난 래리 가드너 토이저러스 부사장. / 롯데마트 제공
―무슨 말인가?

"한국 롯데마트에 가봤나? '토이 박스'(Toy Box)라는 코너가 있는데 일종의 숍인숍(Shop in Shop)으로 토이저러스 매장이 롯데마트 안에 입점해 있는 식이다. 토이저러스 매장이 커버하지 못하는 지역에 우리가 찾아가자는 시도였다. 우리는 2009년부터 '홀리데이 익스프레스 스토어'를 열었는데 대목인 명절 시즌에만 문을 열고 닫는 식의 팝업스토어(pop-up store)다. 금융위기 이후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에 입점해 있던 많은 소매점들이 도산했다. 그들이 떠나고 간 빈자리에 미국 전역에 총 600개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닫았다. 바빠서 선물 사러 토이저러스에 올 시간이 없는 부모들을 위해 우리가 찾아간 것이다. "R"수퍼스토어는 '사이드바이사이드'(Side by side) 콘셉트이다. 한 지붕 아래 토이저러스와 베이비저러스 매장을 함께 뒀다."

―토이저러스와 베이비저러스를 묶은 것이 혁신이라고?

"그렇다. 1995년 유아용품 매장인 베이비저러스를 연 것은 우리에게 최악의 결정이자 결국엔 최고의 결정이었다."

―무슨 뜻인가?

"베이비저러스는 지금 한창 성장 중이긴 하다. 그러나 베이비저러스는 우리 고객들을 분산시켰고 이 때문에 토이저러스 방문객 수가 극적으로 떨어졌다. 한집에 유아와 아동을 둔 부모라면 유아용품을 베이비저러스에 가서 사면 큰아이 것은 월마트에 갈 때 그냥 어른 물건과 같이 사 버렸던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만을 위해 두 개 매장을 가는 것은 너무나 소모적이었다. 두 개 매장을 묶었더니 매출이 20% 뛰었다. 현재 약 30%의 매장이 수퍼스토어 형식으로 리모델링됐다."

―그전에는 고객을 연령층으로 구분해 "R"Us란 이름을 붙이는 식 아니었나? 키즈아러스(Kids"R"Us)나 베이비저러스(Babies"R"Us)처럼.

"말한 것처럼 베이비저러스는 전체 매장 방문객 수를 떨어뜨렸다. 의류매장인 키즈아러스도 2002년 저조한 실적으로 문을 닫았고. 고객의 니즈(needs)를 파악하지 못했던 시절 얘기다."

◇인문학도 CEO가 바꾼 조직문화

―60년 전에 '카테고리 킬러' 매장의 가능성을 봤다는 것부터가 혁신 아닌가?

"맞다. 토이저러스는 1948년 당시 25세의 찰스 라자러스(Lazarus)가 만들었다. 원래는 워싱턴주에 있던 유아용 가구점으로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타깃으로 연 것이었다. 라자러스는 고객 니즈를 만족시킬 새로운 방법들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유아용 제품과 아동용 완구류도 팔기 시작했다. 가구와 달리 장난감은 부러지기도 하고 유행을 타 부모들을 더 자주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약 10년 후 라자러스는 매장을 수퍼마켓 형태로 전환시켜 두 번째 상점을 열었는데 그때 '토이저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60년 전에 그런 재치 있는 이름을 붙였다니.

"are를 R이라고 했기 때문에 당시 교사·학부모들이 '잘못된 철자법을 유행시킨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라자러스는 그런 비난을 듣고 오히려 '네이밍이 성공했다'고 봤다. 그가 지은 이름이 주의를 끈 것이다. 그는 상점 이름은 심플하고 주의를 끌고(catchy), 고객들에게 무엇을 팔려 하는지를 나타내야 한다고 믿었다. 당시만 해도 카테고리 킬러, 즉 특화된 소매상 개념은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1960년에 이미 토이저러스의 아이콘인 기린 제프리 'Geoffrey� the Giraffe'도 생겨났다.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먼저 사랑받아야 한다는 점을 라자러스는 알았다."

―업계는 현 제럴드 스토치(Storch) CEO를 라자러스 다음으로 토이저러스를 혁신시킨 인물이라 얘기한다.

"매장을 혁신한 건 그의 업적이다. 우리는 그의 인문학적 소양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그냥 비즈니스맨이 아니라 하버드에서 인문학·법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딴 사람이다. 그는 다른 나라에 토이저러스 매장을 열기 전 반드시 그곳의 박물관에 간다. 거기서 고가구나 옛 장난감을 살피고 현지 아이들이 오래전부터 무얼 어떻게 가지고 놀았는지 연구한다. 그가 취임하면서 직원들에게 한 말도 '경제 불황기에 오히려 대담하게 대처한 기업들이 미래에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였다. 2006년만 해도 조직 안에는 패배주의가 만연했다. 그런 조직에서 그가 내건 만트라(주문)가 'Playing to win'(이기기 위해 플레이한다), 'We are not victims'(우리는 희생양이 아니다)였다. 60년 된 조직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국 매장을 열 때도 한국 문화에 대해 연구했나?

"물론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나라다. 한국 토이저러스 매장 제품 중 27%가 교육용 제품이다. 엄마들이 세계 어느 곳보다 제품설명서를 열심히 읽고 교육적인지 안전한지 까다롭게 따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한국에서 토이저러스 매출이 매년 40%씩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 23개국 220여개 프렌차이즈 매장 중 2위(잠실점)와 5위(구로점) 성적이다.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한국 매장을 들여다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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