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9일 일요일

[중앙일보]"5·18 북한 개입" 여과 없이 방송 … 역사 왜곡 논란 확산(2013.05.2)


시민단체·정치권·시민들
TV조선·채널A에 사과 촉구
극우 매체, 희생자를 홍어에 비유
"의식 결여, 사회통합 저해" 비판

5·18 민주항쟁 서울기념사업회가 주최한 기념식이 열린 18일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분향한 뒤 묵념하고 있다. [뉴시스]

5·18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을 맞아 불거진 이른바 ‘역사왜곡’ 논란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일부 TV방송이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해 일으킨 폭동”이란 내용의 탈북자 주장을 여과 없이 방송한 데 이어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 극우성향 인터넷 사이트가 이를 퍼나르면서다. 특히 일베 등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글들로 도배되다시피 하자 5·18 관련 단체들이 법적 대응을 선언하고 나섰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3일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 출연한 탈북자 출신의 전 북한특수부대 장교 임천용씨의 발언이었다. 임씨는 방송에서 “600명 규모의 북한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며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북한 게릴라”라고 주장했다. 인터뷰는 특별한 반론 없이 1시간 동안 그대로 방송됐다. 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에선 5·18 당시 북한군으로서 광주에 투입됐다고 주장하는 탈북 인사 김명국(가명)씨의 인터뷰가 방송됐다. 뒷모습이 모자이크 처리돼 목소리만 공개된 김씨는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1980년 5월21일 배를 타고 광주 인근 바닷가에 도착해 시민군 행세를 했으며 작전을 마치고 후퇴할 때는 남한 특전사를 공격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또 “광주 폭동 때 참가했던 사람들 가운데 조장, 부조장들은 (북으로 돌아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다”는 발언도 했다.

 방송이 나간 후부터 17일까지 일베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글이 1만7000건 넘게 등록됐다. 대부분 5·18을 ‘폭동’, 희생자들을 ‘홍어’로 비유한 내용이었다. 홍어는 전라도 특산물이다. 한 네티즌은 5·18 당시 광주 시내에서 봉기한 시민들의 사진을 올려놓으며 “홍어떼가 폭동을 일으켰다”고 적었고 희생자들이 관에 안치된 사진을 두고 ‘경매에 들어선 홍어’라는 제목을 달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이른바 ‘북한군 개입설’을 처음 제기한 건 1980년 당시 광주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신군부였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주장을 번복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씨는 1980년 5월 21일 ‘소요는 고정간첩, 불순분자 깡패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을 배포했다. 그러나 1995년 검찰 조사에서 그는 (북한 개입설에 대해) “다소 과장된 점이 있는데 당시로서는 그런 의심이 있어 그랬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소문 수준의 주장들이었다. 군사 전문가들 역시 “당시 광주에는 전군에 비상이 걸린 계엄상황이라서 북한군이 침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한다.

 정치권과 유관 시민단체들은 TV조선·채널A의 보도와 일베 게시글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19일 성명서를 내고 “대한민국 정체성의 일부이자 군사 쿠데타 항거의 역사인 5·18민주항쟁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일부 종편의 행태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인터넷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도 비판 글이 쏟아졌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선 서울의 모 고등학교 2학년생 김시원(18)군이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부정하는 일베 회원들은 국민 자격이 없다”며 1인 규탄시위를 벌였다.

 성공회대 김서중(신문방송학) 교수는 19일 “(TV조선, 채널A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을 위해 시청자 구미에 맞는 내용을 사실확인 없이 내보냈다”며 “진실 규명이란 언론 본연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려대 김문조(사회학) 교수는 “일베 등 ‘극우 네티즌’들은 반사회적 주장을 통해 보수세력 사이에서도 흔들리고 있는 자신들의 입지를 회복하려 한 것 같다”며 “역사의식이 결여된 이들의 행동은 자칫 사회통합에 심각한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파문이 커지자 채널A의 관계 회사인 동아일보는 18일자에 인요한 연세의료원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의 반박 기사를 실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광주 시민군과의 외신 인터뷰 통역을 맡았던 인 소장이 “광주시민이 북한의 지시를 받고 협조했다는 건 광주시민을 모독하고 한 번 더 죽이는 것”이라고 밝혔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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