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9일 일요일

[조선일보][기자수첩] 노래 한곡에… 반쪽난 5·18, 빛바랜 국민통합(2013.05.20)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 나오자 노회찬, 맨먼저 주먹 흔들며 노래
野인사들, 일어나 차렷 자세나 태극기 또는 주먹 흔들며 불러…
朴대통령도 자리에서 일어나… 태극기 쥔 채로 노래는 안 불러
5·18 유족·단체는 불참한 채 정치인도 제각각 국민통합 무색

인천오페라합창단의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은 지난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의 맨 마지막 순서였다.

전주가 흘러나오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맨 앞줄에 앉아있던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가 가장 먼저 일어나 주먹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민주당 의원들과 대부분의 야권 인사들은 미리 나눠준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김한길 대표는 주먹이나 태극기를 흔들지 않고 차렷 자세로 노래를 불렀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주먹을 흔들면서, 강운태 광주시장은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앉았던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태극기를 흔들거나 주먹을 흔들지는 않았지만 함께 일어서 노래를 불렀다.

당초 국가보훈처가 '정부 공식행사에서 주먹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제창을 거부하자, 5·18 관련 일부 단체가 '주먹이 문제라면 태극기를 들고 노래를 부르겠다'는 성명을 냈었다. 합창은 따로 마련된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만, 제창은 참석한 모든 사람이 부른다. 보훈처는 제창은 허용하지 않았으나, 행사장에서 작은 태극기를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야권 인사들의 노래를 부르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33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이 진행되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태극기를 들었으나 노래를 따라부르지는 않았다. 왼쪽으로 한 사람 건너 강운태 광주시장은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고, 박 대통령 바로 오른쪽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33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이 진행되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태극기를 들었으나 노래를 따라부르지는 않았다. 왼쪽으로 한 사람 건너 강운태 광주시장은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있고, 박 대통령 바로 오른쪽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뉴시스
노래가 두세 소절쯤 진행되자 박근혜 대통령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에 가지런히 모은 양손에 태극기를 쥐긴 했지만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황우여 대표와 이정현 정무수석 등 여권 인사들도 박 대통령을 따라 일어섰다. 황우여 대표는 차렷 자세로 노래를 불렀다. 행사 중에도 사람들의 눈은 오로지 누가 노래를 부르는지, 누가 안 부르는지 그 입만 쫓았다.

이때 기념식장 뒤편에 있던 시민 2명은 "그 노래(임을 위한 행진곡)를 부르려고 왔는데 못 부르게 하면 되느냐"며 소리를 지르다 퇴장당했다. 일부 참석자는 공식 행사가 끝나고 박 대통령이 자리를 뜰 때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반복해 불렀다. 소복 차림의 유가족 10여명도 박 대통령이 퇴장한 뒤 기념식장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날 5·18 유족과 광주 지역 시민단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 형식으로 진행하는 데 반대하면서 불참했다. 이 때문에 기념식장 의자 절반 정도가 텅 비었다.

제창이든 합창이든, 그 형식과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는 것이 5·18 기념식의 관행이라고 한다. 합창이라고 해서 따라 부르는 것이 금지되는 것도 아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절대 안 된다는 정부나, 제창 순서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야권 어느 한쪽의 입장이 쉽게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번과 같은 장면이 되풀이될 것이다. '국민 통합'의 상징이 돼야 할 행사가 언제까지 참석자들을 분열시키는 행사가 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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