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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1일 월요일

[소강석 목사의 시편] 지도자, 대여대취(大予大取)를 하라(2013.01.21)

손자병법을 관통하는 핵심 교훈은 대여대취(大予大取)라 할 수 있다. 즉 “크게 주고 크게 얻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하를 평정한 지도자들은 대여대취의 비밀을 알았다. 유비, 조조 등 삼국지의 영웅들도 때로는 자신의 자존심, 명분, 실리를 통 크게 양보하고 베풂으로써 천하의 인재들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 IT계의 최고 리더인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도 손자병법을 애독하며 대여대취의 원리를 활용해 꿈을 성취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명예와 실리, 권력을 좋아한다. 손자병법은 그러한 인간 심성을 활용해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제압하는 지도자의 비책을 소개한다. 그중 핵심이 바로 대여대취인 것이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최고의 지도자는 백전백승의 전략가가 아니다. 그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있다. 그것은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부전굴인(不戰屈人)의 지도자다. 그래서 손자병법의 리더십은 전쟁을 최대한 피하는 병도(兵道), 전투를 최대한 피하는 전도(戰道), 전화를 최대한 줄이는 쟁도(爭道)를 대원칙으로 한다. 진시황 암살계획을 실행하는 세 명의 자객 이야기인 ‘영웅’이라는 영화에서도 무공의 3단계를 소개한다. 첫째, 검과 몸이 하나 되는 것이다. 둘째, 검을 마음으로 휘두르는 경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경지, 세 번째는 싸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객은 충분히 진시황을 죽일 수 있었으나 오히려 검을 거두고 살려준다. 진시황에게 목숨이라는 큰 것을 주고 천하의 안정과 평화라는 더 큰 명분과 실리를 취한 것이다. 즉 그들도 대여대취를 한 것이다.

지도자라면 협상을 할 때도 대여대취의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정말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고 큰 이익을 베풀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한테는 작은 이익일 수 있지만 상대방에게는 큰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내가 더 큰 명분과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한 후보가 상대 후보와의 협상 과정에서 대여대취를 하지 못했기에 결과적으로 소탐대실의 패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큰 물고기를 잡으려면 큰 미끼가 필요하다. 그러나 소인들은 먼저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결코 큰 것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지도자가 먼저 주려고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얻고 어떤 영향력을 끼치겠는가.

지금 한국교회는 개 교회, 교단, 교계가 극심한 분열과 대결양상을 보이며 온갖 패권 싸움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다투고 분열하는 공동체는 망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도자들끼리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소탐대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대, 지도자인가. 그렇다면 어떤 지도력을 구사하고 있는가. 이제는 소탐대실을 버리고 대여대취를 하라. 더 이상 이기적이고 소아적인 모습을 버리고 통 크게 주고 더 큰 것을 얻어라. 이제 좀 더 큰 가슴으로 서로를 품어라. 지금은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 소탐대실의 리더십이 아닌, 큰 것을 내어주고 더 큰 명분과 실리를 얻는 대여대취의 지도자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조선데스크] '神의 직장'과 '위대한 직장'(2013.01.16)


 박종세 경제부 차장
유수한 대기업의 명함이 큰 인기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벤처 열풍이 불던 2000년쯤엔 '삼성' '○○은행' 등의 대리·과장 직급이 달린 명함을 내밀면 "아직도 이런 옛날 직장에 다니느냐"는 반(半) 농담조의 인사가 돌아왔다. 당시엔 '○○테크' 등 신기술을 연상시키는 벤처기업의 사장(CEO)이나 임원들의 명함을 선망했고 결혼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대기업들은 박차고 나가 창업하려는 인재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미국발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한국의 벤처 열풍도 급속히 식었고, 꿈을 먹고 사는 신흥 기업 명함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이후에도 실패와 성공의 스토리가 그다음 물결을 타고 끊임없이 생산되었지만, 한국에는 그 바람이 전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역풍이 불었다. 우리 사회엔 도전보다는 안전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암묵지(暗默知)가 확산됐다. 우수한 학생들은 자연대·공대보다는 의대와 법대로 몰렸고, 창업보다는 안전한 대기업을 선택했다. 창업했다가 실패한 뒤 좀처럼 재기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후배들은 제도권의 깊은 벙커 속으로 들어갔다. 최근 서울대가 뽑은 9급 직원 공채에 재벌 대기업에 근무하는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대기업 연봉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60세 정년'에 사학연금을 받는다는 안정성이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런 논의는 사실 배부른 투정일 수 있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고통받는 것이 대다수 우리 청년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손에 쥔 것은 없지만 수만명을 먹여 살리는 일터를 스스로 만들겠다는 열정을 키우는 젊은이들도 있어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미국에선 우수한 젊은 인재 가운데 약 1%가 창업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월마트의 샘 월튼,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모두 20대에 창업했다.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삼성·현대·LG그룹을 만든 창업자도 모두 20대에 사업을 시작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쌀가게인 경일상회를 창업한 때가 23세, 고(故) 이병철 회장이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시작했을 때가 26세, 고(故) 구인회 회장이 협동조합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 22세였다. 이들이 '신(神)의 직장'을 찾아다니며 그곳에 안주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젊은 경제를 위해 중견기업을 다수 만들어내고, 창조 경제를 통해 벤처기업도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엄단해 건강한 기업 생태계가 작동토록 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새로운 수요와 시장을 창조하고,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젊은 기업가들이 없으면 실체 없는 뜬구름 잡는 얘기일 뿐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위로받는 젊음도 필요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갈망하고 우직하라)'에 가슴 뛰는 청춘도 우리에겐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