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는 박근혜 후보의 마지막 1분짜리 홍보 광고를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주 진한 걸로. `박근혜의 상처`, `위기에 강한 글로벌 리더십`, `박근혜가 바꾸는 세상` 등에 이은 종결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광고는 전파를 타지 못했다. 무슨 내용의 광고이기에 내보내지 못했을까? 제목은 `편지`다.
대통령 선거전을 치르면서 힘들어하는 박근혜 후보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유세를 마치고 올라오는 비행기에서 꾸벅꾸벅 존다. 고(故) 육영수 여사의 편지가 성우의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안쓰러워하면서도 용기를 주는 어머니. 또 하나의 사진. 육 여사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밖을 내다본다. 뭔가 말을 하는 듯하다. "근혜야, 잘해."
선거대책본부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박 터지는 막판 선거전에서 이 짠한 광고 한 편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뒤집혔을지도 모를 지지율을 반전시킬 카드라고 여겼다. 그러나 박 후보는 최종적으로 `광고 불가` 결정을 내린다.
해석이 분분하다. 추측건대 박 후보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어머니를 이용해 선거를 치르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1974년 겨울, 개학을 앞두고 급히 프랑스로 떠나던 날, 문 앞에서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 주던 어머니. 광고를 내보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순간, 박 후보는 어쩌면 어머니와의 그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런 어머니를 어떻게 선거에 활용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에 미쳤을지 모른다.
나는 이 미공개 광고 얘기를 들으면서 박 당선인이 약 40일이 지나면 직면하게 될 대통령으로서의 `절대 고독`을 생각한다. 만약 당선인에게 어머니가 있었다면…. 육 여사처럼 힘들 때 격려해주고, 마음 편히 얘기 나눌 사람이 있다면…. 불행히도 지금의 당선인 주변에 `육영수`는 없다.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속마음을 터놓을 가족이 당선인에겐 없다. 어쩌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고독한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
하루 집무를 마치고 대통령 관저로 돌아가면 그 긴 밤을 홀로 보낸다. 관저로 통하는 인수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혼자가 된다. 적막한 북악산의 밤. 삼성동 사저와는 판이한 환경. 넓디넓은 집에 대통령 한 사람만 있다. 일하는 사람도 모두 자리를 비킨다.
대통령은 원래 고독한 자리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미언박물관에 가면 미국 대통령의 일을 `영광의 부담(Glorious Burden)`이라고 적은 글귀를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직업이라고 말한다. 청와대에 비서가 있고 내각에 장관이 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에게 머리를 빌려주는 사람들이지 마음을 열고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가슴 한복판에서 솟구치는 화기를 눌러주고,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 국정에 대한 짜증을 받아주진 않는다.
당선인이 선거전에서 내세웠던 `100%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되는 데는 유효했을지 모르나 대통령이 된 이후부터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통령을 찌르는 비수로 다가올 것이다. 화기는 손톱 밑 가시가 뽑히지 않아 올라올 수 있고, 짜증은 행정 현실에 공약 이행이 막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뛰는 심장을 다스리는 건 가족의 몫이고 친구가 할 일이다. 이해관계 없이 마음을 여는 사람이 필요하다.
어느 기업인이 이런 말을 했다. "최고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분 좋은 아침을 맞는 것"이라고. 그것만큼 독선과 오류를 막고 훌륭한 의사결정을 가져다주는 묘약이 없다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매일매일 국가 안위와 민생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절대고독의 자리. 그럴수록 화와 짜증을 풀고 상쾌한 아침을 맞게 하는 청량제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이런 사람이 한두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설사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 있다손 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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