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조선일보][박정훈 칼럼] 눈물로 만드는 영화 '연평해전'을 아십니까(2013.05.29)

11주기 맞는 '제2 연평해전'… '참수리호 6용사' 스토리 영화化
대기업 영화사들 안보 코드 외면… 노개런티 배우, 나눔기부 이어져…
제작 과정은 한편의 감동 드라마, 꼭 완성돼 미안한 마음 덜었으면


 박정훈 부국장·기획에디터 사진
박정훈 부국장·기획에디터
우리가 제2연평해전을 떠올릴 때 더욱 참담해지는 것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우리의 무심함 때문이다. 딱 한 달 뒤 11주기가 돌아오는 이 비극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착잡 미묘하다. 뭐랄까, 트라우마처럼 붙어있는 죄책감 비슷한 느낌이다. 천안함 폭침이 분노와 충격을 주었다면, 제2연평해전은 우리를 그저 미안하고 죄송스럽게 만들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형제자매를 모른 척한 가족의 뒤늦은 회한과도 비슷할 것 같다.

제2연평해전이 터진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폐막 전날(6월 29일)이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목숨 건 사투가 벌어지고 장병 6명이 산화했지만, 이날 우리의 관심은 온통 터키와의 월드컵 3·4위전에 쏠려 있었다. 정부는 사태를 축소하느라 쉬쉬했고, 온 국민이 애도(哀悼)는커녕 붉은 티셔츠 차림으로 거리 응원을 벌였다. 다음 날 김대중 대통령은 영결식 참석 대신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도쿄로 날아갔다. '참수리 357호'의 6용사들은 그 후로도 6년 동안 죄인처럼 묻혀 있어야 했다.

이런 트라우마가 있기에 6용사 스토리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 경남 진해에선 'NLL 연평해전'이란 영화가 10월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이다. 메가폰을 잡은 것은 해군 병장 출신 김학순 감독이다. 그는 "참수리호 6용사의 영화는 왜 없느냐는 지인의 질타가 가슴을 때렸다"고 제작 이유를 밝혔다. 김 감독뿐 아니라 제작진 상당수가 해군·해병대에서 복무한 것이 눈에 띈다. 윤영하 소령 역의 주연 정석원(28)씨부터 해병 수색대 출신이다.

첫 촬영은 넉 달 전 서울 홍익대 거리에서 시작됐다. 참수리호 조타장 한상국 중사가 부인을 위해 결혼식 반지를 구입하는 장면이었다. 운명의 그날, 한 중사는 허리 관통상을 당하고도 끝까지 방향타를 놓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41일 만에 참수리호 조타실에서 방향타를 단단히 움켜진 자세 그대로 발견됐다. 그 후 한 중사 부인이 "(영웅을 냉대하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며 이민을 떠나 사람들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이 영화는 제작 과정 자체가 한 편의 감동 드라마 같다. '대장금'의 한 상궁으로 유명한 배우 양미경(52)씨는 개런티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출연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부상병을 돌보다 전사한 의무병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다. 양씨는 "꼭 만들어져야 할 영화인데 제작 난항이란 말을 듣고 안타까워서…"라고 했다. 양씨뿐 아니다. 120여명의 배우·스태프 전원이 사실상 무(無)보수로 참여하고 있다. 진보와 좌파 코드가 판치는 영화계, 이들은 왜 유별나게 애국의 가치에 매달리는 것일까.

장외에선 20·30대 젊은이들이 응원부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청년들은 '2030 나눔서포터즈'를 조직해 영화 홍보와 제작비 기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연평해전의 진상을 알리고 인터넷에 인증샷을 올리기도 한다. 청년들은 참수리호 영웅들 스토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11년 전 이들은 초·중학생이었다. 연평해전에 아무 부채(負債)가 없을 청년들이 앞장선 것이 놀랍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영화 제작은 순탄하지 않다. 제작비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5·18 광주를 다룬 '화려한 휴가'에 굴지의 대기업이 투자했었지만 '연평해전'엔 어떤 투자회사도 붙지 않았다. CJ·롯데·쇼박스 등 문을 두드린 투자사로부터 모조리 거절당했다. 애국과 안보 코드의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좌파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영화판의 현실이 이랬다.

제작진은 대신 인터넷 모금으로 비용 조달에 나섰다. 일반인으로부터 몇 만원씩 후원받아 지금까지 2억여원을 모았다. 놀랍게도 소액 후원자의 80%가 20~30대 청년층이었다.

모금 첫날, 한 고교생이 5000원짜리 문화상품권을 보내왔다. "당장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라고 쓴 고교생 사연을 보고 제작진은 눈물을 뿌렸다. "연평해전 당시 나도 육군 병장이었다"며 1억여원을 후원한 30대 사업가도 있었다. 모금에 참여한 수천 명 후원자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 영화는 꼭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지금 진해 앞바다에서 해상 전투신을 촬영 중이다. 먹고 자는 숙식비와 기자재 임차료만도 한 달간 5억원이 더 필요한데 제작비는 바닥난 지 오래다. 악전고투 속에서도 배우·스태프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단 하나, '꼭 만들어야 할 영화'라는 신념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영화는 반드시 완성돼 빛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무관심 속에 산화한 참수리호 6용사, 우리가 냉대했던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덜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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