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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3일 수요일

[조선일보]1953년 5월(停戰협정 직전) 오작도 점령했던 우리軍, NLL(북방한계선) 긋기 직전 '눈물의 철군'(2013.07.04)

[본지, 최일도 목사 사진 입수]

우리 軍이 현재의 NLL 위쪽 서해섬 지킨 모습 첫 공개
유엔司, 北에 일부 섬 양보한 NLL 긋자 우리측 물러나

해군력 궤멸됐던 北, NLL 덕분에 유엔군 '해상봉쇄'서 벗어나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한 달 뒤에 설정된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한국군과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던 일부 섬들을 북측에 양보한 것임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공개됐다.

본지(本紙)는 3일 북한 황해도 해안에서 불과 1.5㎞ 떨어진 오작도 등지에서 공산군과 유격전을 벌였던 특수부대인 8240부대원들이 정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5월 활동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 24장을 최일도 목사로부터 단독 입수했다. 오작도는 현재 NLL 북쪽 해상에 있어 북한 영토로 돼 있으며, 지난 3월 김정은이 방문해 "명령만 내리면 적들을 모조리 불도가니에 쓸어 넣으라"고 지시했던 백령도 인근 월내도와 가깝다. 최 목사는 백령도 등 서해상 섬에서 유격전을 벌였던 8240부대 동키4부대 부부대장 출신이었던 아버지 최희화씨가 작고한 뒤 사진들을 보관해오다 정전협정 60주년을 앞두고 이날 공개했다.

38도선 이북 섬들도 유엔군이 점령

이날 공개된 사진들은 NLL이 오히려 북한을 배려해 설정됐음을 보여주는 정황 증거의 하나로 평가된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 제공권(制空權)은 물론 제해권(制海權)도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었고, 서해상 섬들도 대부분 한국군 해병대와 유격부대 등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6·25전쟁 발발 이전 우리나라가 관할하고 있던 백령도·연평도 등 38도선 이남의 섬들은 물론, 북한이 관할했던 석도, 용도, 초도 등 38선 이북의 섬들도 유엔군이 관할하고 있었다.

 미 극동군사령부 산하 특수 유격부대인 8240부대원들이 오작도(烏鵲島)를 사수하기 위해 참호를 파고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한 채 경계를 서고 있다.
미 극동군사령부 산하 특수 유격부대인 8240부대원들이 오작도(烏鵲島)를 사수하기 위해 참호를 파고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한 채 경계를 서고 있다.‘ (단기)4286.5.27.’이라는 표시는 1953년 7월 정전협정 두 달 전에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뜻한다. 오작도는 북한 본토에서 1.5㎞ 떨어진 섬이다. 사진 뒤쪽에 북한 황해도 해안이 보인다. /최일도 목사 제공
정전협정 발효 시 육지의 경우 유엔군과 공산군 점령지역을 기준으로 DMZ(비무장지대) 경계선이 설정됐던 원칙을 바다에도 적용하면 오작도 등도 우리 영토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은 53년 8월 30일 남북 간의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NLL을 설정하면서 백령도 등 서북 5개 도서와 북한지역의 중간선으로 결정했다. 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폭 3해리 영해 원칙에 따라 서북 도서와 북한 지역의 대략적인 중간선을 기준으로 하고, 한강 하구로부터 백령도 서북쪽까지 12개 좌표를 연결해 설정한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클라크 사령관은 유엔군이 점령했던 섬들을 모두 고수할 경우 북한지역 항구들이 봉쇄될 수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유엔군이 관할했던 일부 섬들을 북측에 양보했던 것이고 오작도도 그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당시 해군력이 궤멸돼 거의 전무(全無)한 상태에 있었던 북한으로선 NLL이 울타리가 돼 유엔군 측의 해상봉쇄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8240부대는 정전협정에 즈음해 유엔군 지시에 따라 현재의 서해 5도를 제외한 나머지 섬에서 모두 철수했다. 북한은 NLL 설정에 따라 NLL 이북의 섬들과 해역을 얻을 수 있었다. 이 해역에서 해군 함정과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해 및 어로활동을 보장받게 됐던 것도 북한이 얻은 실리로 꼽힌다.

북, 20년 동안 NLL 이의제기 안 해

북한은 NLL이 설정된 뒤 20년 동안 아무런 이의제기도 하지 않다가 1973년부터 NLL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1959년 북한 조선통신사가 공식 발간한 ‘조선중앙연감’은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표기해 이를 인정하기까지 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3월 11일 서해 월내도 방어대를 시찰한 뒤 목선을 타고 떠나는 모습.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3월 11일 서해 월내도 방어대를 시찰한 뒤 목선을 타고 떠나는 모습. 월내도는 8240부대가 정전협정 전까지 전초기지로 삼았던 섬이다. /조선중앙통신
1963년 5월 개최된 군사정전위 회담에서 북한 간첩선의 침투 및 격퇴 위치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북한 측은 “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간 적이 없다”고 언급해 NLL을 사실상 인정했다. 1984년 여름 발생한 우리의 홍수 피해에 대해 북측이 수해 복구 물자를 지원해줄 때도 양측 호송단이 백령도 및 연평도 인근 NLL 선상에서 상봉해 수송 선박을 각각 인계·인수, NLL을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2년 체결·발효된 남북 기본합의서 불가침 부속합의서에서도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해 NLL이 해상 불가침 경계선임을 확인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1973년 10월부터 11월까지 43차례에 걸쳐 NLL을 의도적으로 침범하는 ‘서해사태’를 일으킨 뒤 NLL 무력화 공세를 계속해 오고 있다. 남북 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문성묵 전 국방부 군비통제 차장은 “NLL은 우리와 유엔군이 북한에 양보한 것이고 당시 북한으로선 고마웠던 해상 경계선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는 데 오작도 사진 공개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013년 6월 30일 일요일

[동아일보]文 “원본 열람해 NLL포기 사실땐 정계은퇴”(2013.07.01)

회의록 공개 논란에 정면승부 나서… 野 “국정원 개입, 대통령이 사과해야”


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불거진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 속에서 대여 공세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문재인 의원(사진)은 이날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관련 기록을 열람해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새누리당에 제안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기록 열람 결과, 만약 NLL 재획정 문제와 공동어로구역에 관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이었다고 드러나면 제가 사과는 물론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문 의원 측은 이 같은 제안 배경에 대해 “‘NLL 포기’ 발언은 여야가 공방을 벌일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에 대해 ‘NLL 포기가 아니다’라는 답변이 ‘NLL 포기’란 답변의 2배 이상으로 나타난 것도 문 의원의 자신감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 공개를 1일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전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원본을 비롯해 녹음테이프, 사전 준비회의 회의록 등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양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일 만나 공개될 자료의 범위와 공개 방식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야 합의로 자료제출 요구서가 제출되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공개가 최종 결정된다.

민주당은 이날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정치공작 진상규명 및 국정원 개혁’ 촉구 서울시당 당원 보고대회를 열고 원내외 병행투쟁을 본격화했다. 김한길 대표는 당원 보고대회에서 “대통령의 진솔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정원 등 권력기관이 다시는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여야가 함께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2013년 6월 26일 수요일

[조선일보]北 "NLL, 盧대통령에 전화해 물어보라"(2013.06.27)

[2007년 국방장관 회담서 "NLL 고집하는 건 北南 정상회담 약속 깨는 것"]

당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김장수 국방장관을 압박… 우리 측은 北 제안 거부

지난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11월 27~29일 열린 제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은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現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유지하려는 것은 남북 정상 간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6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당시 평양서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여러 형태로 김장수 장관을 압박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당시 김 부장은 김 장관에게 "NLL을 고집하는 것은 북남 수뇌회담(정상회담)의 정신과 결과를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노 대통령에게 전화해 물어보라"는 말까지 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김 장관은 이에 대해 "나는 노 대통령으로부터 협상에 대한 전권(全權)을 위임받아 온 사람이므로 대통령에게 전화해 결심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측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안했던 대로 북측의 해상 경계선과 남측의 NLL 사이에 공동어로구역(평화수역)을 설정하자는 주장을 폈으며, NLL을 중심으로 등(等)면적의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는 우리 측 제안을 거부했다. 북측이 주장한 해상 경계선은 백령도·연평도 남쪽까지 설정된 것이어서 이를 인정할 경우 NLL은 무력화되고 우리 대북 경계 작전 등에도 큰 공백이 생기게 된다. 군 소식통은 "NLL 남쪽만의 공동어로구역을 받아들였을 경우 단순한 NLL 포기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북측은 NLL 문제에 대해 우리 측이 완강하게 나가자 크게 당황했다"며 "결국 NLL 문제와 공동어로구역에 대해선 구체적 합의를 보지 못하고 남북 장성급 회담을 열어 다시 논의하기로 한 채 회담을 끝냈다"고 말했다.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조선일보]"영웅들 기려야"… 與, 영화 'NLL 연평해전' 지원 나서(2013.06.14)

시작은 이병석 국회부의장… 후원금 100만원·격려 편지
다른 의원들도 후원 잇따라

13일 오후 2시쯤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 군항 부두. 영화 'NLL 연평해전' 촬영장인 이곳을 새누리당 박인숙·김성찬·조명철 의원이 찾았다. 바다에는 촬영을 돕기 위해 나선 SSU(해난구조대) 대원들이 검은색 고무보트를 타고 촬영감독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의원들은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왔다"며 제작진의 손을 잡았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박 의원은 "국회 차원에서 영화 지원책을 마련하고, 영화가 완성되면 많은 분이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북한 출신인 조 의원은 "(여러분이) 정말 애국하고 계시다"고 했다.

  13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 군항 부두에 마련된 영화 ‘NLL 연평해전’ 촬영장을 방문한 새누리당 조명철(오른쪽)·박인숙(가운데) 의원 등이 김학순 영화감독(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강호 기자
 13일 오후 경남 창원시 진해 군항 부두에 마련된 영화 ‘NLL 연평해전’ 촬영장을 방문한 새누리당 조명철(오른쪽)·박인숙(가운데) 의원 등이 김학순 영화감독(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강호 기자
예산 부족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화 'NLL 연평해전'의 제작을 지원·격려하기 위해 새누리당 의원이 하나둘씩 움직이고 있다.

시작은 새누리당 소속 이병석 국회부의장이었다. 이 부의장은 지난 6일 영화감독 김학순씨와 제작진에게 격려 편지와 함께 후원금 100만원을 보냈다. 이 부의장은 "내가 그동안 나라를 위해 숨진 우리 영웅 6명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 부의장은 두 아들이 모두 해병대 출신이다. 같은 당 강석호·김학용 의원도 취지에 공감해 각각 100만원과 50만원을 후원했다.

영화 'NLL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북한군의 도발로 우리 해군 장병 6명이 전사한 '제2 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것이다. 해군 병장 출신인 김학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배우 양미경·정석원·장성원씨를 비롯한 출연진과 제작진이 '재능 기부'에 나서 사실상 무(無)보수로 참여하고 있다.
CJ E&M, 영화 배급 맡아
CJ E&M이 2002년 일어난 제2연평해전에서 산화한 6용사를 다룬 영화 'NLL 연평해전'의 배급을 맡기로 했다. CJ E&M 측은 "잊혀가는 제2연평해전의 숭고한 의미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2013년 6월 20일 목요일

[조선일보]"김정일의 NLL法 포기 제안… 盧 前대통령 '예, 좋습니다'"(2013.06.21)

與정보위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발췌본 열람서 확인"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20일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공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37조 1항 3호에 근거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에 대한 열람을 국정원에 공식 요청했고, 이 공식 자료를 오늘(20일)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과 함께 열람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한 의원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내가 봐도 NLL은 숨통이 막힌다. 이 문제만 나오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는데 NLL을 변경하는 데 있어 위원장과 내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췌본에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평화협력지대로 만들자"고 하자 김정일이 "그것을 위해 쌍방이 실무적인 협상에 들어가서는 (NLL 관련)법을 포기하자고 발표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고,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예, 좋습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고 여러 정보위원은 전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미국의 북한에 대한 BDA(방코델타아시아) 제재와 관련, "분명한 미국의 실책"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남측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면 제일 미운 나라가 미국이다. 평화를 깨는 국가가 어디냐는 질문에도 미국이 1위로 나오고 그다음이 일본, 다음이 북측을 지목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기범 국정원 1차장은 이날 오후 4시쯤 국회 정보위원장실로 대화록 원본과 발췌본을 가져가 발췌본과 원본 일부를 40분간 여당 정보위원들에게 보여줬다. 서 위원장은 "야당에도 연락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2013년 6월 16일 일요일

[조선일보]"北 반잠수정 NLL 근처 전진배치"(2013.06.17)


  TV조선 화면 캡처
 TV조선 화면 캡처
북한 반(半)잠수정이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 전진기지까지 내려오는 등 동·서해상에서 북 함정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반잠수정이 최근 서해 NLL 근처 해상에 있는 북측 바지선 전진기지에 계류해 있는 모습이 자주 관측되고 있다"며 "한·미는 반잠수정 움직임을 정밀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평소 북한 반잠수정은 NLL에서 수십㎞ 떨어진 잠수함 기지에 배치돼 활동하며 NLL 근처 전진기지에서 관측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반잠수정은 길이 10m 전후의 요원 침투용 함정으로 선체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 상태에서 갑판 위쪽만 물 위로 내놓고 침투한다. 물 위로 항해할 때도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으며, 경(輕)어뢰 발사 등 공격 능력도 갖췄다. 군은 최근 북한 상선과 단속정(어업지도선), 어선 등이 서해 NLL을 침범하는 횟수가 증가한 것도 북한군의 의도된 행동으로 보고 있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최근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책임을 우리 측에 떠넘기고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군사 도발을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조선일보][박정훈 칼럼] 눈물로 만드는 영화 '연평해전'을 아십니까(2013.05.29)

11주기 맞는 '제2 연평해전'… '참수리호 6용사' 스토리 영화化
대기업 영화사들 안보 코드 외면… 노개런티 배우, 나눔기부 이어져…
제작 과정은 한편의 감동 드라마, 꼭 완성돼 미안한 마음 덜었으면


 박정훈 부국장·기획에디터 사진
박정훈 부국장·기획에디터
우리가 제2연평해전을 떠올릴 때 더욱 참담해지는 것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우리의 무심함 때문이다. 딱 한 달 뒤 11주기가 돌아오는 이 비극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착잡 미묘하다. 뭐랄까, 트라우마처럼 붙어있는 죄책감 비슷한 느낌이다. 천안함 폭침이 분노와 충격을 주었다면, 제2연평해전은 우리를 그저 미안하고 죄송스럽게 만들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형제자매를 모른 척한 가족의 뒤늦은 회한과도 비슷할 것 같다.

제2연평해전이 터진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폐막 전날(6월 29일)이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목숨 건 사투가 벌어지고 장병 6명이 산화했지만, 이날 우리의 관심은 온통 터키와의 월드컵 3·4위전에 쏠려 있었다. 정부는 사태를 축소하느라 쉬쉬했고, 온 국민이 애도(哀悼)는커녕 붉은 티셔츠 차림으로 거리 응원을 벌였다. 다음 날 김대중 대통령은 영결식 참석 대신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도쿄로 날아갔다. '참수리 357호'의 6용사들은 그 후로도 6년 동안 죄인처럼 묻혀 있어야 했다.

이런 트라우마가 있기에 6용사 스토리가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 경남 진해에선 'NLL 연평해전'이란 영화가 10월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이다. 메가폰을 잡은 것은 해군 병장 출신 김학순 감독이다. 그는 "참수리호 6용사의 영화는 왜 없느냐는 지인의 질타가 가슴을 때렸다"고 제작 이유를 밝혔다. 김 감독뿐 아니라 제작진 상당수가 해군·해병대에서 복무한 것이 눈에 띈다. 윤영하 소령 역의 주연 정석원(28)씨부터 해병 수색대 출신이다.

첫 촬영은 넉 달 전 서울 홍익대 거리에서 시작됐다. 참수리호 조타장 한상국 중사가 부인을 위해 결혼식 반지를 구입하는 장면이었다. 운명의 그날, 한 중사는 허리 관통상을 당하고도 끝까지 방향타를 놓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41일 만에 참수리호 조타실에서 방향타를 단단히 움켜진 자세 그대로 발견됐다. 그 후 한 중사 부인이 "(영웅을 냉대하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며 이민을 떠나 사람들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이 영화는 제작 과정 자체가 한 편의 감동 드라마 같다. '대장금'의 한 상궁으로 유명한 배우 양미경(52)씨는 개런티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출연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부상병을 돌보다 전사한 의무병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다. 양씨는 "꼭 만들어져야 할 영화인데 제작 난항이란 말을 듣고 안타까워서…"라고 했다. 양씨뿐 아니다. 120여명의 배우·스태프 전원이 사실상 무(無)보수로 참여하고 있다. 진보와 좌파 코드가 판치는 영화계, 이들은 왜 유별나게 애국의 가치에 매달리는 것일까.

장외에선 20·30대 젊은이들이 응원부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청년들은 '2030 나눔서포터즈'를 조직해 영화 홍보와 제작비 기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연평해전의 진상을 알리고 인터넷에 인증샷을 올리기도 한다. 청년들은 참수리호 영웅들 스토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11년 전 이들은 초·중학생이었다. 연평해전에 아무 부채(負債)가 없을 청년들이 앞장선 것이 놀랍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영화 제작은 순탄하지 않다. 제작비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5·18 광주를 다룬 '화려한 휴가'에 굴지의 대기업이 투자했었지만 '연평해전'엔 어떤 투자회사도 붙지 않았다. CJ·롯데·쇼박스 등 문을 두드린 투자사로부터 모조리 거절당했다. 애국과 안보 코드의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좌파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영화판의 현실이 이랬다.

제작진은 대신 인터넷 모금으로 비용 조달에 나섰다. 일반인으로부터 몇 만원씩 후원받아 지금까지 2억여원을 모았다. 놀랍게도 소액 후원자의 80%가 20~30대 청년층이었다.

모금 첫날, 한 고교생이 5000원짜리 문화상품권을 보내왔다. "당장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라고 쓴 고교생 사연을 보고 제작진은 눈물을 뿌렸다. "연평해전 당시 나도 육군 병장이었다"며 1억여원을 후원한 30대 사업가도 있었다. 모금에 참여한 수천 명 후원자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 영화는 꼭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지금 진해 앞바다에서 해상 전투신을 촬영 중이다. 먹고 자는 숙식비와 기자재 임차료만도 한 달간 5억원이 더 필요한데 제작비는 바닥난 지 오래다. 악전고투 속에서도 배우·스태프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단 하나, '꼭 만들어야 할 영화'라는 신념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영화는 반드시 완성돼 빛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무관심 속에 산화한 참수리호 6용사, 우리가 냉대했던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은 덜어질 것 같다.

2013년 3월 25일 월요일

[조선일보][안보시론] 천안함 폭침 3년, 우리의 바다는 안전한가(2013.03.26)


윤 연·前 해군작전사령관
2010년 3월 26일 밤 9시 15분, 북한 연어급 잠수정(130t) 정장은 백령도 서남방 4.8㎞ 지점에서 은밀하게 잠망경을 올렸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흘렀다. 주변 상황은 어뢰를 발사하기에 너무나 완벽했다. 보름을 며칠 앞둔 밝은 밤, 3㎞ 밖 천안함의 함 번호 '772'가 선명하게 보였다. 잠수함은 통상 어뢰 발사 전 잠망경으로 목표물을 확인한다. 이때가 수상함에 발견될 가능성이 제일 크다. 그러나 이날은 그럴 걱정이 없었다. 백령도 근해에 2m 내외의 파도가 일고 있어 잠망경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안함을 확인한 잠수정은 급히 잠항하여 중어뢰를 발사했다. 그리고 잠망경으로 천안함이 어뢰에 맞고 침몰하는 광경을 확인 후 NLL 북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천안함이 두 동강 나면서 기관실 뒤쪽에 위치한 장병 46명은 이렇게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북한은 왜 잠수정으로 천안함에 어뢰를 쏘았을까? 연평해전과 대청해전에서 보았듯이 북한은 이제 수상함만으로는 우리 해군과의 전투에서 '게임'이 안 되었다. 그래서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잠수정을 침투시켜 어뢰를 쏘고 달아난 것이다. 북한은 완전범죄를 노렸다. 그러나 북한이 쏜 어뢰 추진기는 북한제 CHT-02D로 판명되었다. 추진체 안에는 한글로 '1번'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천안함 침몰의 가장 큰 원인은 잠수함을 식별하는 음탐기의 성능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건조된 천안함급 초계함은 예산 부족으로 소형 음탐기를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뢰탐지장비는 원래 없었다. 현역 시절 천안함과 똑같은 포항함(756) 함장을 역임할 때 필자도 대(對)잠수함 훈련에서 항상 애로를 겪었다. 첨단 대잠 장비를 갖춘 구축함이라면 잠수정은 물론 어뢰도 탐지할 수 있다. 문제는 천안함 폭침 후에도 한국 해군의 대잠 전력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못 고쳤다.

적 잠수함을 잡는 데는 한·미 정보 자산을 활용해 북한 잠수함정의 정보를 사전에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천안함 폭침 때 이런 정보가 일선 부대까지 전달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다음은 대잠 전력 확보다. 현재 대한민국 해군에 잠수함을 잡을 수 있는 수상함은 구축함 12척과 천안함 같은 오래된 전투함 30여척뿐이다. 이 같은 대잠 세력으로는 70여척의 북한 잠수함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국방부는 천안함 폭침 이후 천안함급 초계함의 노후 대잠 부품을 일부 교체하고 백령도 근해와 NLL을 따라 해저에 음파 탐지 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지금이라도 구축함을 많이 건조해 배치해야 한다. 대잠 항공기도 매우 중요하다. 지금 운용 중인 P-3 대잠 항공기 16대로는 광대한 해역을 커버할 수 없다. 현재 해군에서 추진 중인 S-3 대잠 항공기의 도입과 그에 따른 추가 인원 확보가 시급하다.

천안함 폭침 후 응징 보복을 하지 못한 것은 큰 실수였다. 유엔헌장 51조에 명시된 대로 자위권 차원에서 강력한 보복을 했어야 마땅하다. 지난 정부의 미적지근한 대북 제재가 결국 연평도 포격의 면허증을 내어 준 것이다. 북이 도발하면 강하게 응징해야 적은 우리를 두려워해 더 이상 장난을 치지 못한다. 적 잠수함으로부터 대한민국의 바다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순국한 천안함 영웅 46명에 대한 우리의 도리이며 사명이다. 

2013년 2월 21일 목요일

국정원의 대화록 발췌문 본 검찰, '盧 NLL포기' 사실상 확인(2013.02.22)


[정문헌의 '盧 NLL 포기' 발언… 왜 무혐의 결정했나]
국정원, 南北정상회담 대화록 발췌 작년12월 검찰제출
검찰, 수사 발표하며 구체적 발언 내용은 공개 안해
월간조선의 보도에 대해서도 '허위 아니다' 입장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작년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서해북방한계선)을 남측이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의혹 제기가 '허위가 아니다'라고 검찰이 결론을 내린 것은 뒤집어 얘기하면 그런 취지의 발언이 실제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 사건은 민주통합당이 고발할 때 '허위 사실 유포'라고 문제 삼았기 때문에 실제 노 전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했는지가 뜨거운 관심사였다. 명예훼손 사건에선 허위 사실을 말했더라도 그 경위가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혐의 처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한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혀, '허위 사실이지만 무혐의 처리'하는 경우가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대선을 뜨겁게 달군 이슈이기도 했다. 정문헌 의원이 작년 10월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NLL은) 미국이 땅따먹기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다.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 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면서 안보 문제가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정 의원은 이어 작년 12월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작계5029(북한 급변 사태를 대비한 군사작전 계획)를 언급하면서 미국의 요구를 막아냈다'고 했고, '경수로는 미국을 제치고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며 추가 폭로를 했다.

이에 대해 노무현 재단과 당시 정상회담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은 "정 의원 발언은 허위"라고 했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역시 같은 쪽에 섰다. 문 후보는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민주통합당이 정 의원을 고발한 이후 3개월간 수사한 검찰은 그동안 국가정보원이 작년 12월 17일 검찰에 낸 '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 등을 검토하고, 정 의원 등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거쳤다.
외부로 공개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정 의원이 주장한 것 외에도 더 있었다. 월간조선은 2월호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달 초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국격이 떨어지는 내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 발표를 하면서 발췌본과 노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국가 기밀'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에 이런 발언이 실제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검찰은 "그 부분은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월간조선 보도 등에 대해서는 '허위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 의원과 함께 고발당한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과 박선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이 '남북 정상회담 준비 회의에서 NLL 관련 논의가 있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2007년 8월 18일 준비(대책) 회의가 개최됐고, 그 회의에서 NLL 관련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돼 허위 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檢, 국정원 제출 ‘NLL 대화록’ 발췌본 열람(2013.01.23)

'공공기록물' 잠정 결론…25일부터 정문헌 의원 등 피고발인 조사

'NLL(북방한계선) 발언 대화록'과 관련해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해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23일 전해졌다.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상호 부장검사)는 지난달 국정원이 제출한 NLL 발언 관련 대화록 발췌본을 '대통령지정 기록물'이 아닌 '공공기록물'로 잠정 결론 내리고 최근 이를 열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록물은 여야 합의 없이 공공기관장이 열람을 허용할 수 있다. 

반면, 대통령지정 기록물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이 이뤄지거나 관할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한 경우 등에만 제한적으로 자료 열람ㆍ제출을 할 수 있다. 

검찰은 그간 대통령 기록관과 국정원 관계자들을 조사해 대화록 발췌본의 법적 성격을 따져왔다.

검찰은 해당 발췌본이 국정원에서 직접 작성한 것으로,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되기 이전에 자체 보유했던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지정 기록물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사건의 핵심이 대화록을 둘러싼 허위사실 공표 혐의인 만큼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도 열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국정원이 검찰에 자료를 제출한 것도 내부적으로 공공기록물이라는 판단을 거쳤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검찰은 오는 25일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피고발인 조사에 들어간다.

검찰은 정 의원 등을 상대로 대화록 존재 여부와 내용을 취득하게 된 경위, 이를 공개한 배경 등을 집중 조사할 예정이다.

앞서 민주통합당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NLL과 관련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비공개 대화록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정 의원과 같은 당 이철우 의원, 박선규 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을 고발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봤다고 밝힌 천영우 외교안보수석도 추가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