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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기독교 안티문화에 대처한다] ① 303비전성경암송학교(201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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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말씀’ 각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게

기독교 안티세력의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무신론적 세계관에 뿌리를 둔 기독교 안티세력은 ‘기독교 박멸’을 목표로 온·오프라인에서 한국교회를 혐오집단으로 몰며 비난과 야유, 저주를 퍼붓는다. 이 같은 현상은 마치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처럼 불특정 상대에게 테러를 가하는 ‘증오범죄’ 수준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반기독교 문화에 대처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성경적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본보는 건전한 기독교 문화전파에 앞장서는 기관을 찾아가본다.

27일 ‘303비전성경암송학교’ 유니게 과정 2단계가 열린 서울 옥인교회. 예배당 안에 9대의 유모차가 줄지어 서 있었고 임산부부터 초등학교 자녀를 둔 엄마에 이르기까지 신앙교육에 ‘극성스런’ 엄마 50여명이 모여 있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엄마들 앞에 나선 백소율(6)양이 마이크를 잡고 고린도전서 13장 전체를 줄줄 외웠다. “이야∼.” 엄마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303비전성경암송학교는 초·중등 학생은 물론 4∼6세 어린이들이 한글을 깨우치기 전 말씀암송을 돕는 프로그램인데, 엄마들을 위한 유니게 과정은 말씀암송을 효과적으로 학습시키도록 돕는 과정이다.

이어 엄마들이 한 목소리로 잠언 16장과 하박국 3장, 마태복음 7장 말씀을 외웠다. 자녀에게 말씀교육을 하기 위해선 먼저 엄마가 솔선수범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의도 있었다. 강동협 새문안교회 부목사가 나서 말씀교육의 실천적 사례를 제시하며 ‘자녀의 가슴에 말씀을 새기라’는 강의를 진행했다. 일부 엄마들은 아기 띠를 하고 젖병을 흔들면서도 메모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어린시절 각인된 말씀은 자녀들이 인터넷에서 목회자와 교회를 비방하는 글을 보더라도 낙심치 않고 분별해내는 힘을 길러준다. 초등학교 2학년과 6학년 자녀에게 각각 850절과 1000절을 암송시킨 김향숙(42·여)씨는 “매일 가족이 모여 말씀을 암송 가정예배를 드리는 데 아이들이 이렇게 외운 말씀 속 단어에 관심을 갖고 실생활 언어로까지 활용하고 있다”면서 “말씀암송은 어렸을 때부터 성경중심의 가치관을 아주 탁월하게 심어주고 안티 기독교 문화로부터 철저히 보호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성경암송학교장 여운학 장로는 “반기독교 문화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시대적 상황 속 크리스천 자녀교육의 분명한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서 “말씀을 어렸을 때부터 암송하면 처음엔 그 뜻을 모를지라도 성경 말씀에 신비한 권능이 있기 때문에 자녀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깨닫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달라지게 돼 있다”고 귀띔했다. 여 장로는 “매일 부모와 함께 가정예배의 제단을 쌓고 말씀이 뼛속깊이 각인된 아이는 반기독교 문화의 거센 도전 앞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니게 과정은 현재 서울 대구 안산 부천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69차에 걸쳐 4000여명이 수료했다(cafe.godpeople.com/honeybee).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기적, 그 놀라운 행함] 나에게 일어날 기적의 원리(2012.11.14)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기적의 시대는 영원히 현재이다”라고 했다. 기적은 지금도 일어난다. 기적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만약 기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게 되는가? 어떤 부분에서 기적이 필요한가? 인생의 역전을 위해, 결혼생활을 위해, 사업의 성공을 위해, 자녀들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기적이 필요한가?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자.
평범하게 살면 안 된다.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을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선지자는 엘리야와 엘리사다. 엘리야 선지자의 제자가 엘리사다. BC 9세기에 활동한 엘리사 선지자는 엘리야보다 2배 더 영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간절히 구하고 찾는 엘리사에게 그 능력을 주셨다. 그래서 열왕기하에 보면 14개의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요즘 사람들은 기적을 잘 믿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마치 하루살이가 내일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할 수 없고 경험하지 않은 것은 무조건 부인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크게 차이가 없다면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해 주시며 오늘도 역사하시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인간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내가 노력해서 천국 갈 수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음을 믿는가? 그러면 하나님 안에 살아야 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감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다. 부도가 나서 집도 잃고, 심지어 먹고 살 것도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암 같은 질병과 사고로 인해 육체적인 아픔을 겪기도 한다. 자녀들이 부모가 원하는대로 가지 않음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해야 한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

하나님께는 길이 있고 하나님은 하신다는 믿음이 출발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나에게 길은 없지만, 하나님께는 늘 길이 있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열왕기하 4장을 보면 한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찾아온다. 그녀는 엘리사 제자의 부인으로, 남편이 죽기 전에 빌린 돈 때문에 두 아들이 채주에게 종으로 팔려갈 상황에 있었다. 만일 그녀가 엘리사가 아닌 채주에게 찾아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떻게든 해 볼게요”라며 사정했다면.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모든 문제는 영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곧장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달려갈 힘이 없는가? 목회자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심방을 요청하고 기도를 부탁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는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섬기라고 세우셨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는 길이 있음을 믿으면 역사는 시작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원망, 한탄, 후회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 그러다가 벼랑 끝에 선 자신을 보고는 뛰어내리면 다 된다고 생각까지 한다. 이것은 책임회피다. 위기의 순간을 맞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전능자 하나님에게 가면 인생의 어떤 어려운 문제도 해결해 주신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유턴

열왕기하 4장 2절을 보면 엘리사가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내가 가진 것을 살펴보라고 한 것이다. 절박한 여인처럼 우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갇혀버린 나머지,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의 가능성을 간과 하게 된다. 멈춰 서서 무엇으로 할 수 있는지 평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서 있는 곳에서 출발하신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사람을 사용하신 적이 없다. ‘우리 집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이 여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네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라’고 했을 때 여인은 ‘집안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에서 ‘아, 기름 한 병은 남아있습니다’로 유턴했다.

기적은 내가 가진 것이 보잘것 없어도 있음을 알고 감사할 때 일어난다. 긍정적인 생각은 생명력이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없는 것과 잃어버린 것, 그리고 손해 본 것들을 생각하면 나를 죽게 만드는 것이 된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과 가능성을 보는 긍정적인 태도는 나를 살리게 한다. 긍정과 믿음과 내가 가진 것으로부터 기적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적을 여는 원리

기적을 여는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믿음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엘리사는 선지자 제자의 가족에게 무엇을 명령했는가? 먼저 그릇을 가능한 많이 빌려온 후에 그 다음은 문을 닫고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라는 것이다. 남아있는 한 병의 기름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직접 만들어 가라고 하신다.

제자의 가족들은 가능한 많은 그릇을 빌리기 위해 집집마다 빠짐없이 찾아갔을 것이다. 아무도 없으면 다시 찾아가고 또 찾아갔을 것이다. 아무도 없으면 다시 찾아가고 또 찾아가서도 모든 집에서 가능한 모든 그릇을 빌렸을 것이다. 이것이 순종하는 믿음이다. 거절하는 집도 있었을지 몰라도 포기하지 않고 뛰었을 것이다. 대충이란 말은 이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그릇을 빌려도 그 그릇에 기름이 넘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라며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말씀대로 순종하며 행동에 옮겼다. 나는 선지자 제자의 아내와 두 아들도 이런 마음으로 그릇을 빌리러 다녔다고 믿는다. 가능한 많은 발품을 팔았다.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왜냐하면 집집마다 다니며 그릇을 많이 빌릴수록 하나님의 기적은 크기 때문이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세상으로 향하던 생각을 접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문만 열어야 한다. 성령의 기름 부어주시도록,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소망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실의 화초처럼 키우길 원치 않으신다. 그저 주는 물만 먹고 자란 콩나물이 아니라, 바람과 비, 그리고 땡볕에서 자란 나무가 되기를 원하신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둥지에만 두지 않고 높은 절벽에서 밀쳐 떨어뜨리고 또 떨어뜨리면서 공중의 강한 왕자로 키워가듯이,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인 우리를 이 땅에서의 시련을 통하여 강한 믿음의 용사로 세우기를 바라신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과 문제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기회다. 하나님은 내게로 오라고 하신다. 네가 가진 것이 있음을 보는 긍정의 태도를 요구하신다. 그리고 힘을 다해 순종하며 뛰고 달리라고 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출처 ->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9217

[바이블시론-지형은] 설교의 ‘정치성’(2012.11.13)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예배이며, 예배의 심장은 말씀이다. 예배는 십자가의 복음을 현재진행형으로 반추하고 고백하며 역사와 사회의 현장에서 살아내며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사람들 삶으로 이어지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다. 

하나님 말씀의 대언이 설교인데 이를 통해 하나님 뜻이 예배자에게 임한다. 성령이 말씀을 깨닫게 하며 말씀을 살아내겠다고 결단하게 한다. 예배 후에 이어지는 일상 곧 ‘삶의 예배’에서 말씀을 살아내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이 세상에서 작동한다. 거룩한 영의 운동으로 ‘지금, 여기, 우리’ 삶에 같이 계시는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된다. 

설교와 정치, 이 주제는 교회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문제다. 전통적 용어로 하면 ‘왕좌와 제단(Thron und Altar)’이다. 다른 말로 ‘교회와 국가’ ‘신앙과 정치’로 표현할 수 있다. 대선이 코앞이고, 기독교 교계에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대선에 관여하고 있다. 어느 집단에서는 대선 중립을 선언하기도 했다. 설교와 정치는 어떤 관계인가. 

특정 후보 지지는 적절치 않아 

정치를 넓게 정의할 수도 있고 좁게 정의할 수도 있다. 가장 넓게 보면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이 정치다. ‘인간은 정치적 존재’라는 말이 이런 뜻이다.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면서 ‘정치적인 능력’을 들기도 하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답은 아주 간단하다. 설교의 정치성은 논의할 필요도 없다. 설교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정치적이어야 마땅하다. 

정치를 조금 좁게 정의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어느 사회든 혈연, 지연, 학연, 계층, 이해관계, 특정한 사안 등에 따라서 집단이 구성된다. 각 집단과 그 집단의 입장은 그 자체로 선과 악으로 가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선이고 사회복지적인 경제정책이 악이라고 할 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의약분업, 비정규직 문제 등도 그렇다. 설교는 이런 상황에서 어느 편에 서면 안 된다. 어느 주장과 입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설교의 최종 목적이 되면 설교는 본래의 자리를 잃어버린다. 

정치를 가장 좁게 보자. 정치라는 말은 입법, 사법, 행정에서도 보통 입법 분야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국회의원 직과 정당의 활동이다. 여기에서는 현실적으로 온갖 수단방법이 다 동원된다.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주로 이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설교는 편들면 안 된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과 연관해 집단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우리 현실을 공정하게 보면서 어느 집단의 입장이 그중 더 바른가를 판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설교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면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나 설교가 구체적 정치 사안에 대해 분명하고 강하게 말해야 할 때도 있다. 선과 악이 분명할 때다. 본 회퍼 목사가 히틀러에게 저항한 경우다. 시리아의 시민 학살, 북한의 인권 탄압, 유신 정권의 비인간적 압제 등이 그런 예다. 이런 상황에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성경의 가르침과 인륜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특별계시며, 인륜은 하

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심어놓으신 일반계시다. 

善惡 분명할 땐 강하게 말해야 

어느 사회에서 공분(公憤)이 커지면 폭동도 일어나고 혁명도 일어난다. 사회 변혁이 발생한다. 인륜이 짓밟히는 데 대한 공적인 분노가 그 힘이다. 공분이 일어나는데도 강단이 잠잠하면 교회는 교회가 아니며 설교는 설교가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표현대로 ‘짖지 못하는 개’가 된다. 

설교, 결코 쉽지 않다. 그저 30분 정도 길이로 듣는 사람 귀를 즐겁게 하는 매끄러운 상품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교회 현실에서 설교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