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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5일 화요일

[기적, 그 놀라운 행함] 기적을 이루는 믿음(2013.01.15)

▲「기도가 전부이다 」저자 최명일 목사(행복한교회).

‘월리암 로버트슨’은 “기적과 진리는 필요하다. 왜냐하면 전인간, 즉 육체와 영혼을 모두 납득시키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경은 처음부터 기적으로 시작하며, 내용도 대부분이 기적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의 재림과 믿는 자의 천국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성경에서 만일 기적을 제외한다면 성경은 표지 두 장만 남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성경의 내용을 보자. 모두가 기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기적은 과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기적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시대는 바뀌어도 하나님의 역사는 바뀌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성경의 기적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그것이 무엇인가? 기적은 하나님의 역사인데, 그것은 단 한 가지, 믿음을 통해서 일어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믿음을 갖되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성경에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믿음이 변질된 사람들이 많다. 나무의 잎이 낙엽이 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뭇잎이 노랗게 되면 거기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도 바른 믿음, 즉 생명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거기에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내 생애 속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성경에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시각 장애인이 눈을 뜨는 기적의 사건이 나온다. 시각 장애인이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자. 기적을 이루는 믿음의 특성은 무엇인가?

바른 선택을 하라

기적을 이루는 믿음은 항상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성경에 보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항상 바른 선택을 했다. 즉 하나님 말씀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세상의 환경을 택할 것이냐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킬 때에도 하나님 말씀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애굽 왕 바로를 두려워해서 그냥 광야에서 양치는 자로 남을 것인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 때 하나님은 10가지 기적을 일으켜 주시고 또한 홍해를 갈라주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다. 기적을 이루는 믿음은 항상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 생각을 판단하고 선택하느냐 아니면 믿음으로 기도하며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 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 따라서 믿음의 안목을 가져야 한다. 우리도 이 사실을 알고 선택을 잘 하면 믿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반대세력을 극복하라

기적을 이루는 믿음에는 항상 반대세력이 있다. 마가복음 10장 48절에 보면 맹인이며 걸인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그때 많은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다. 즉 바디매오의 믿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만일 바디매오가 반대하는 무리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가는 것을 포기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려면 반대하는 세력이 있을 때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맹인 바디매오처럼 더욱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시고 내 앞에 서시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반대세력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내 안에서 반대하는 세력이다. 그리고 둘째는 밖에서 반대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더 무서운 것인가? 내 안에서 반대하는 세력이다. 믿음으로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내 마음에서 반대하는 소리가 있다. ‘그렇게 해서 되겠나’ 하는 의심의 반대다. 그리고 ‘누구도 안 되었다는데’ 하는 불신의 반대다. 그러니 나도 안 된다는 반대의 소리다. 신앙으로 서려면 먼저 내 안에서 반대하는 세력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면 밖에서 반대하는 세력은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리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믿음으로 환경을 극복하고 다스리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다.

모험을 하라

기적을 이루는 믿음에는 항상 모험이 수반된다. 먼저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의 예를 보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게 되었는가? 이삭을 모리아산의 번제로 드리는 모험을 해야 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어린양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가나안땅을 점령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보면, 그가 가나안땅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물이 넘치고 있는 요단강을 건너야 했고, 그 요단강이 갈라지기 위해서는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아야만 했다. 마가복음 10장 50절에 보면 맹인도 믿음으로 나아갔다. “맹인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그 당시 겉옷은 매우 중요한 재산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실 때 로마군 병졸들이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걸인이 하루 동안 동냥한 것 가지고서는 겉옷을 살 수 없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었지 겉옷이 중요하지 않았다. 주님을 만나면 눈을 뜰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던져버리고, 즉 물질적인 손해도 감당하면서 주님 앞에 나간 것이다.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역사는 장소와 방법만 다르지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단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날 것이다.

2012년 12월 23일 일요일

크리스마스 휴전…1차대전의 기적 같은 순간(2012.12.24)


“독일군이 그들의 참호 주변에 장식을 하더니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영국군은 ‘참 반가운 신도여(O Come all ye Faithful)’로 화답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의 기적 같은 ‘크리스마스 휴전’ 상황을 생생히 담은 편지가 영국에서 발견됐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온라인판은 23일(현지시간) 영국 근위보병 연대 소속 하사로 1차대전에 참전했던 클레멘트 베이커가 1919년 크리스마스가 4일 지난 뒤 그의 형제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보도했다.

편지에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독일군 쪽에서 먼저 한 사자가 영국군 참호 쪽으로 다가와서 크리스마스에 교전을 중단하자고 제안했다며 ‘독일군 사자와 우리 병사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 우리측 몇명이 참호 밖으로 나가 교전지에 버려져 있던 동료의 시신을 수습해 묻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영국군 쪽에서 누군가 축구공 하나를 참호 밖으로 차 냈으며 영국군과 독일군이 함께 축구를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크리스마스 밤과 다음 날도 교전이 없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독일군과 많은 대화를 했는데 그들 모두 지긋지긋해 보이고 많은 이들이 탈영했다. 상황이 장밋빛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베이커 하사의 낙관적 전망과 달리 크리스마스 휴전은 1차대전에서 기사도 정신이 발휘된 마지막 순간이었고 이후 4년간 화학무기 살포와 공습 등 전쟁이 이어지며 천만 명 가까이 숨졌다.

베이커 하사는 1920년 제대해 국방부에서 일했으며 1945년 61세로 숨졌다. 이번 편지는 그의 조카 로드니 베이커 씨가 최근 모친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해 98년만에 세상에 공개됐다.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 ‘기독교는 인간 예수를 신으로 믿고 있다?’(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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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인간 예수를 신으로 믿고 있다?’

안티들의 도전: “Q자료에 의하면 인간 예수가 진짜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는 신적 존재가 아니라 지혜자요 인간일 뿐이다.”

“기독교는 인간 예수를 신적 존재로 잘못 믿고 있다.”

예수는 지혜로운 한 인간일 뿐? Q자료에도 신적 속성 고스란히


기독교를 반대하는 안티들 중에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예수님의 진짜 모습은 인간에 불과하며, 지혜로운 교사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안티들의 주장을 좀 더 학문적으로 세련되게 포장한 사람이 도올 김용옥 교수이다. 도올은 그가 쓴 ‘큐(Q)복음서’를 통하여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지혜자, 인간 예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2008년 모 신학대학에서 ‘큐복음서와 한국교회’라는 심포지엄이 있었다. 이 심포지엄에서 도올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큐복음서가 예수의 말씀을 담은 최초의 어록이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큐복음서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큐복음서는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일절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부활 신앙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진짜 예수의 모습은 인간 예수이다. 이것이 그 발제의 기본 내용이었다.

여기서 도올은 예수가 지혜로운 한 인간일 뿐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Q자료와 도마복음서에 두고 있다. 그는 Q자료를 근거해 볼 때 지혜자인 예수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예수교가 인간 예수를 신적 존재로 섬기는 기독교로 변질되었다고 거침없이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Q자료에 근거하여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인간 예수’로만 규정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도올의 주장은 타당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 Q자료와 관련된 도올과 안티들의 잘못된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선 Q자료란 무엇인가? Q란 ‘자료(source)’를 뜻하는 독일어 ‘크벨레(Quelle)’의 첫 글자에서 따온 말이다. Q자료는 마가복음에는 없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들(sayings·어록)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요즘 성경책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보면 빨간 글씨로 예수의 말씀이 표시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서로 겹치는 말씀을 Q자료라고 부른다. 이 어록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들의 기억과 메모에 의해 전달되었다가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보는 하나의 가설이다. 도올의 주장처럼 Q자료가 큐복음서 형태로 존재했다는 것은 상상력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Q자료만이 예수의 진정한 말씀이요 예수의 참 모습을 알려주고 있는가? 도올은 그의 책 ‘큐복음서’를 통해 Q자료만이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Q자료에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적 행함, 죽음 그리고 부활 등의 사건들이 빠져 있기 때문에 그 사건들은 신화적 이야기일 뿐이며, 실제 예수의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실제 예수는 어떠한 기적도 일으키지 않았고, 신적인 구원자도 아닌 한 인간일 뿐이요 지혜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록만으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체성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사실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의 어록뿐만 아니라 그를 경험한 목격자들의 증언을 참조할 때 더욱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정체성은 그분의 말씀과 더불어 그 말씀의 정황을 알려주는 사복음서의 내러티브(기적, 수난, 부활을 포함한 이야기)를 함께 살펴볼 때 훨씬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도올은 Q자료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예컨대 도올은 그의 책 ‘큐복음서’에서 “Q야말로 진정한 예수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올이 쓴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는 예수의 어록에서는 예수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없다고 밝힌다. 그는 “어록의 말씀은 역사적, 상황적, 감정적 맥락이 단절된 단편적인 것이었다. 그런 것은 아무리 들어도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한 인간에 대한 심상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그가 ‘큐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어록만이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주장했지만,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는 어록을 통해서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없다는 상반된 주장을 펼친다. 도올은 예수뿐만 아니라 공자의 경우에서도 그의 어록 ‘논어’를 통해서 공자의 진정한 모습을 알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Q자료만으로 예수의 정체성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올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는 Q자료를 통해 인간 예수뿐만 아니라 신적인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예로 첫째,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에 의해 시험을 받는 장면(눅 4:3∼12)에서 예수는 인간 예수뿐만 아니라 신적 권능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분명히 인식하면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눅 10:21∼24). 셋째, 실제로 예수는 병 고침의 이적을 행하셨다(눅 7:2∼10). 넷째, 예수는 자신의 권능으로 귀신을 축출하는 이적을 보이셨다(눅 11:14∼18). 다섯째, 예수는 세례 요한과 그 제자들의 질문에 자신의 사역이 메시아 사역임을 밝혔다(눅 7:18∼23). 여섯째, 종말의 날에 예수 자신이 인자로서 심판자 되심을 선포하였다(눅 12:39∼46; 17:23∼24).

Q자료에 나타난 이러한 예수의 신적 속성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예수에 관한 초기 자료들은 예수님이 단순히 한 인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성을 가진 초자연적인 존재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결국 Q자료는 도올의 주장과는 달리 예수의 인성과 신성 모두를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참된 예수님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의 복음이 참된 진리이다. 세상의 수많은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오늘도 예수 제자의 삶을 당당히 살아가자. 그 길 끝에서 우리를 반기시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서울 큰나무교회· 기독교 변증가)

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기적, 그 놀라운 행함] 채워주심의 기적(2012.11.21)


혹자는 “기적은 믿음에 의해 일어나며, 기적은 생명 자신”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어려움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연약함과 실패가 포함된다. 믿음이 자라고 순종이 자라기 위해서는 실패가 필요하다. 영적인 부족을 느끼고 육체적인 부족을 느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있는 부족함은 하나님께서 믿음과 순종을 자라게 하려고 주신 기회다. 삶에서 발생하는 부족함과 실패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신호로 보아도 좋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책임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은사와 재능을 사용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신 사역이 포함된다.

엘리사의 명령

“무리들에게 주어 먹게 하라”(왕하 4:42).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엘리사는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로 선지자 생도 백 명을 먹이고 남게 한 사건에서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께서는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먼저 선지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분, 나아가 선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증식시켜 주시는 분이라고 가르쳤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이든간에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해야 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사람들을 섬기는 책임을 느껴야 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책임을 보여준다. 항상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존해야 한다. 그리하면 사람들과 더불어 생명의 떡을 나누고 말씀의 씨를 뿌려야 할 책임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 6:34) 여기서 ‘목자 없는 양 같음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칠 무엇인가를 찾고 계셨다는 것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엘리사는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엘리사는 이 떡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 떡은 다른 사람을 먹여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그 사환이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왕하 4:43) 사환은 자신의 불신앙으로 인해 혼동했다. 그는 ‘하나님이 누구냐’에 의한 것보다 자기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으로 혼동했다.

사역에서 자신의 능력과 성공을 재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우리를 제한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뜻을 신뢰함으로써 그분이 주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취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적은 양의 떡이 아니라, 그 떡을 넘어서서 전능자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다. ‘하나님이 누구냐?’보다 ‘우리가 누구냐?’에 의해서 우리의 능력을 재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능력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으로 우리 삶을 측량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것이다. 기적은 자신의 능력이 있지 않고, 기적은 하나님의 손길에 있다. 믿고 그 명령에 나누어 주면 먹고도 남음이 넘치는 것이다.

선지자의 확신

엘리사는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왕하4:43)고 거듭해서 말했다. 엘리사는 떡을 증식시키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엘리사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훈련시키려고 하셨다. 엘리사는 선지자들의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나타내기를 원했다. 엘리사는 생도들이 그들의 삶과 사역을 측량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했다. 우리의 삶과 사역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크기나 자원의 크기에 의해서 측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의해서 측량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니라’는 표현은 말씀의 원리들과 약속들을 이해하고 알아야 할 필요성을 보여 준다.

엘리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선지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며.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되는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다. 선지자는 이것을 믿었다. 그래서 담대하게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할 수 있었다. 기적은 믿음에서 나타난다. 선지자가 이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믿지 못했다면 기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선지자는 확신 있는 믿음으로 명령하는 것이다.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기적은 그렇게 의심하지 않고 믿고 나아갈 때 역사한다.

순종의 결과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먹고 남았더라”(열하 4:44). 이 말씀에서 사환이 하나님과 그 명령에 순종했다는 점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성경을 믿고 순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울 때까지는 삶과 사역에는 영적인 기근과 혼동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환이 순종했더니 다 먹고 남았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언제나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의 탐욕을 위해서는 안 된다. 오직 삶의 필요한 것을 충분하게 공급하신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결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하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변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무엇을 약속하셨는가에 의해 우리의 삶을 측량하고 필요들을 다루어야 한다. 엘리사는 잠시 끼니를 걱정하지 않게 했을 뿐이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하고도 풍성한 생명을 주신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얼마나 체험하고 있는가? 온 땅이 기근으로 인해 크나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갈에 있는 선지자 학교에는 기근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이것은 온 땅이 기근으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기근과 상관없이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시대는 바알 우상 종교와 더불어 영적 전쟁을 싸웠던 엘리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도 맞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성도를 통해서 일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말도 맞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나 가정, 직장, 학교 안에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당신을 통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질문해 보자.

욕심일지는 모르지만 온 땅에 기근이 임할지라도 교회에는 기근이 임하지 않게 할 수 없을까? 바알 살리사로부터 첫 열매를 들고 온 사람과 같은 믿음과 순종을 발휘한다면 얼마든지 기근을 면할 수 있다. 그리고 엘리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청종한다면 얼마든지 기근을 면할 수 있다. 영적으로 기근을 당하여 사람들이 온통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말씀을 통해 배움으로써 분노를 녹이고 기근을 물리치는 복된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기적, 그 놀라운 행함] 나에게 일어날 기적의 원리(2012.11.14)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기적의 시대는 영원히 현재이다”라고 했다. 기적은 지금도 일어난다. 기적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만약 기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게 되는가? 어떤 부분에서 기적이 필요한가? 인생의 역전을 위해, 결혼생활을 위해, 사업의 성공을 위해, 자녀들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기적이 필요한가?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자.
평범하게 살면 안 된다.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을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선지자는 엘리야와 엘리사다. 엘리야 선지자의 제자가 엘리사다. BC 9세기에 활동한 엘리사 선지자는 엘리야보다 2배 더 영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간절히 구하고 찾는 엘리사에게 그 능력을 주셨다. 그래서 열왕기하에 보면 14개의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요즘 사람들은 기적을 잘 믿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마치 하루살이가 내일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할 수 없고 경험하지 않은 것은 무조건 부인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크게 차이가 없다면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해 주시며 오늘도 역사하시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인간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내가 노력해서 천국 갈 수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음을 믿는가? 그러면 하나님 안에 살아야 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감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다. 부도가 나서 집도 잃고, 심지어 먹고 살 것도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암 같은 질병과 사고로 인해 육체적인 아픔을 겪기도 한다. 자녀들이 부모가 원하는대로 가지 않음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해야 한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

하나님께는 길이 있고 하나님은 하신다는 믿음이 출발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나에게 길은 없지만, 하나님께는 늘 길이 있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열왕기하 4장을 보면 한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찾아온다. 그녀는 엘리사 제자의 부인으로, 남편이 죽기 전에 빌린 돈 때문에 두 아들이 채주에게 종으로 팔려갈 상황에 있었다. 만일 그녀가 엘리사가 아닌 채주에게 찾아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떻게든 해 볼게요”라며 사정했다면.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모든 문제는 영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곧장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달려갈 힘이 없는가? 목회자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심방을 요청하고 기도를 부탁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는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섬기라고 세우셨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는 길이 있음을 믿으면 역사는 시작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원망, 한탄, 후회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 그러다가 벼랑 끝에 선 자신을 보고는 뛰어내리면 다 된다고 생각까지 한다. 이것은 책임회피다. 위기의 순간을 맞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전능자 하나님에게 가면 인생의 어떤 어려운 문제도 해결해 주신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유턴

열왕기하 4장 2절을 보면 엘리사가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내가 가진 것을 살펴보라고 한 것이다. 절박한 여인처럼 우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갇혀버린 나머지,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의 가능성을 간과 하게 된다. 멈춰 서서 무엇으로 할 수 있는지 평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서 있는 곳에서 출발하신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사람을 사용하신 적이 없다. ‘우리 집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이 여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네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라’고 했을 때 여인은 ‘집안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에서 ‘아, 기름 한 병은 남아있습니다’로 유턴했다.

기적은 내가 가진 것이 보잘것 없어도 있음을 알고 감사할 때 일어난다. 긍정적인 생각은 생명력이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없는 것과 잃어버린 것, 그리고 손해 본 것들을 생각하면 나를 죽게 만드는 것이 된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과 가능성을 보는 긍정적인 태도는 나를 살리게 한다. 긍정과 믿음과 내가 가진 것으로부터 기적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적을 여는 원리

기적을 여는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믿음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엘리사는 선지자 제자의 가족에게 무엇을 명령했는가? 먼저 그릇을 가능한 많이 빌려온 후에 그 다음은 문을 닫고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했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라는 것이다. 남아있는 한 병의 기름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직접 만들어 가라고 하신다.

제자의 가족들은 가능한 많은 그릇을 빌리기 위해 집집마다 빠짐없이 찾아갔을 것이다. 아무도 없으면 다시 찾아가고 또 찾아갔을 것이다. 아무도 없으면 다시 찾아가고 또 찾아가서도 모든 집에서 가능한 모든 그릇을 빌렸을 것이다. 이것이 순종하는 믿음이다. 거절하는 집도 있었을지 몰라도 포기하지 않고 뛰었을 것이다. 대충이란 말은 이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그릇을 빌려도 그 그릇에 기름이 넘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라며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말씀대로 순종하며 행동에 옮겼다. 나는 선지자 제자의 아내와 두 아들도 이런 마음으로 그릇을 빌리러 다녔다고 믿는다. 가능한 많은 발품을 팔았다.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왜냐하면 집집마다 다니며 그릇을 많이 빌릴수록 하나님의 기적은 크기 때문이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세상으로 향하던 생각을 접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문만 열어야 한다. 성령의 기름 부어주시도록,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소망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실의 화초처럼 키우길 원치 않으신다. 그저 주는 물만 먹고 자란 콩나물이 아니라, 바람과 비, 그리고 땡볕에서 자란 나무가 되기를 원하신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둥지에만 두지 않고 높은 절벽에서 밀쳐 떨어뜨리고 또 떨어뜨리면서 공중의 강한 왕자로 키워가듯이,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인 우리를 이 땅에서의 시련을 통하여 강한 믿음의 용사로 세우기를 바라신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과 문제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기회다. 하나님은 내게로 오라고 하신다. 네가 가진 것이 있음을 보는 긍정의 태도를 요구하신다. 그리고 힘을 다해 순종하며 뛰고 달리라고 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출처 ->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9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