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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조선일보][클릭! 취재 인사이드] 올 10월 부산에서 열릴 WCC 총회, 한국 교회에 축복 또는 재앙될까?(2013.05.30)

#1. 이달 11일 오후 부산역 광장입니다. ‘2013 WCC 부산 총회 반대 전국 대회’라는 플래카드를 중앙에 내건 무대가 세워졌습니다. 객석 주변에는 ‘NO WCC’가 적힌 수십 개의 깃발이 펄럭였고요. 비가 흩뿌렸지만, 무대 앞에 놓인 1000여개의 의자가 금새 꽉찼습니다. “WCC 반대! 반드시 반대!” 주변을 지나던 시민들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도대체 WCC가 뭐지?”



 지난 11일 부산역 광장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주관으로 '2013 WCC 부산 총회 반대 전국 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1일 부산역 광장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주관으로 '2013 WCC 부산 총회 반대 전국 대회'가 열리고 있다. /한기총 제공
#2. 올해 1월 13일,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 김삼환 WCC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홍재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길자연 세계복음주의연맹(WEA) 한국대회 준비위원장,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한국 교회의 범보수와 범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4명의 목사님들은 손을 맞잡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올해 WCC 부산 대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2014년 WEA 총회 역시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하겠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세계 110개국 349개 기독교 교단이 가입한 협의 기관으로 개신교회·정교회·성공회 등 세계 기독교인 5억6000만명을 대표합니다. 7년마다 회원 교단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선교 방향과 전략 등 중요 의제들을 협의하는 자리인 WCC총회는 ‘개신교계의 유엔 총회’로 불립니다.

 지난 11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2013 WCC 부산 총회 반대 전국 대회’에서 행사를 주관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11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2013 WCC 부산 총회 반대 전국 대회'에서 행사를 주관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기총 제공
이런 큰 잔치, 구체적으로는 제10회 WCC총회가 올 10월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니 모두 박수치고 기뻐해야 할 텐데.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복잡합니다. 바람잘 날 없는 한국 교회, WCC 부산 총회를 앞두고 또 들썩이고 있습니다. 올 1월 서울과 5월 부산 사이, 5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4개월 전엔 범보수·진보 진영이 한마음으로 WCC 성공 개최 다짐했는데
한국 교회는 지금 수백개의 교단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 시작점에 WCC를 둘러싼 신학적 논란이 있었습니다. 원래 하나의 교단이었던 예수교 장로회(예장)는 1959년 WCC 가입을 둘러싼 견해차로 ‘예장 합동’과 ‘예장 통합’ 교단으로 분열됐습니다. ‘합동’과 ‘통합’은 현재도 개신교 양대 교단입니다. 한 번 갈라지기 시작하자, 그 뒤로는 신학적 입장 차이나 정치적 문제 등으로 새로운 교단들이 자꾸 생겨났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용공(容共) 문제였습니다. 냉전 시기에도 WCC는 공산국가 교회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당연히 공산주의의 세계 적화 전략에 이용당하거나, 혹은 공산주의자 집단이라는 비판이 따랐습니다. 그런 오해를 살 만한 활동과 인물들이 일부 있기도 했습니다. 반대자들은 지금도 WCC와 교회일치(에큐메니컬) 운동을 용공·종교통합·반복음주의·인본주의라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올 1월 13일 명성교회에서 4명의 목사님들이 손잡은 것은 ‘역사적 만남’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김삼환 목사는 예장 통합의 대표적 지도자이고, 김영주 목사(감리교단)는 에큐메니컬 진영 연합기구인 NCCK의 실무 대표입니다. 길자연, 홍재철 목사는 예장 합동 소속으로 전·현 한기총 대표회장입니다. WCC 문제로 갈라섰던 예장 통합과 합동 교단을 포함한 한국 교회의 지도자 목사들이 만나 WCC총회의 성공 개최에 협력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선언문 조항이 갈등 ‘불씨’ 돼 다시 容共·종교다원주의·동성애 등에서 첨예한 대립과 반목
그런데 공동선언문에 성급하게 담긴 조항들로 말미암아 논란이 다시 증폭됐습니다.

특히 종교 다원주의 배격, 공산주의·인본주의·동성연애 반대, 개종 전도 금지주의 반대, 성경 무오성 인정 등 4개항이 논란의 중심이 됐습니다. 이를 두고 김근상 교회협 회장(성공회 주교)은 “공동선언문은 김영주 총무 개인 의견일 뿐 교회협 결정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장 통합, 정교회 등 NCCK 소속 교단과 신학대 교수 그룹의 반대 성명이 잇따랐습니다. WCC총회 준비가 김삼환 목사가 주도하는 총회 준비위원회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대한 NCCK 진영의 반발도 컸습니다.

NCCK 중심의 에큐메니컬 진영 만큼이나 보수 교단들도 반발했습니다. “(WCC 반대 문제로 교단 분열까지 감수했던) 예장 합동 교단을 주축으로 하는 한기총이 WCC 총회 개최를 용인하는 것은 스스로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네 분 목사님들의 서명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선언문이 또다른 폭탄이 된 것이죠.

김삼환 목사의 WCC총회 준비위는 1월 30일 총회 개최 예정지인 부산 벡스코에서 ‘총회 준비를 위한 전진대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 NCCK 대표회장 김근상 성공회 주교와 총무 김영주 목사는 불참했습니다. 벡스코 바깥에서는 부산 지역 일부 개신교인들이 피켓을 들고 WCC 개최 반대 집회를 열었습니다.

2월 5일 한기총은 “WCC 총회 취소하라”는 성명을 냈고 이어 3월엔 반대 단체가 WCC총회에 대한 정부 지원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법원에 냈습니다. 이달 16일엔 예장 합동 등 50여개 교단이 모여 ‘WCC 반대 연합회’를 구성했습니다.

입장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이 ‘WCC 영성과 한국교회’ 포럼을 여는 등 신학자들의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3자 입장에서 보기엔 찬반 진영 사이에 최소한의 합의 또는 신사협정이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습니다.(WCC가 프리메이슨 하부 조직이라는 등의 ‘인터넷 괴담’들은 논외로 합니다.)

용공(容共)문제에 관해, 반대 측에선 “WCC는 소련의 세계혁명전략에 부응해 민족해방운동이나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에 거액을 제공하며 도와온 용공 단체”(WCC 반대단체 ‘국민의 소리’)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WCC는 “복음은 모든 이념이나 체제에 우선한다. 공산권 교회에 문을 열고 꾸준히 WCC에 참여시켰던 덕에 1990년대 공산주의 붕괴 때까지도 교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6·25 남침 전쟁이 터졌을 때 제일 먼저 유엔의 개입을 요청했던 것도 WCC”라고 반박합니다.


 지난 1월 13일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에서 WCC 부산 총회 개최 협력을 위해 만난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삼환 WCC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길자연 세계복음주의연맹(WEA) 한국대회 준비위원장, 홍재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왼쪽부터)이 손을 맞잡고 있다.
지난 1월 13일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에서 WCC 부산 총회 개최 협력을 위해 만난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삼환 WCC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길자연 세계복음주의연맹(WEA) 한국대회 준비위원장, 홍재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왼쪽부터)이 손을 맞잡고 있다. /조선일보 DB
WCC 총회 갈등, 잘 해결하면 한국 교회에 기회와 축복될 수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이름없이 빛도 없이 자신과 가족의 목숨까지 내어준 수많은 훌륭한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한센병 환자의 환부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내고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자 청년을 양자로 삼았던 손양원 목사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처형당한 주기철 목사부터 근래에는 한경직 목사까지 성자(聖者)같은 목회자들도 많았습니다. 안창호, 조만식, 이상재, 김마리아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지금도 종교단체가 세운 사회복지법인 507곳 가운데 절반(251곳), 초중고 555곳의 절반(238곳)이 개신교 법인입니다.(문화체육관광부 ‘2011 한국의 종교 현황’) 서해안 기름유출사고 때 자원봉사자 연인원 122만여명 중 개신교인이 70만명(57%)이었고, 장기기증 등록자 중에도 개신교 신자가 80%나 됩니다.(기윤실 ‘2009 한국교회의 사회적 섬김 보고서’)

하지만 요즘 한국 교회는 ‘동네북’ 또는 술자리에서 돌려 씹히는 ‘안주거리’ 신세입니다. 권력 다툼, 논문 표절, 무리한 건축, 횡령, 성추문. 나쁜 소식만 널리 퍼지고 훌륭한 목회자나 모범적인 신앙 공동체 얘기는 쉽게 묻히는 탓입니다. 한국 교회가 몇몇 목회자와 교회의 일탈로 비난받지만,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모습이 한국 교회의 전부는 절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WCC총회 찬반(贊反) 진영은 평행선 철로 위의 기차처럼 나란히 달려가는 양상입니다. 만약 한국 교회가 세계 기독교인의 잔치를 싸움터로 만든다면, 찬반 진영 모두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두고두고 신앙의 후배들로부터 원망을 듣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교회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지혜롭게 이 문제를 풀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WCC총회를 앞두고 진행 중인 이번 논란은 소송과 시위·정치적 주도권 다툼에 몰두하는 교회밖 세상과 다른 한국 교회의 성숙함을 보여주고 단합하는 절호의 기회이자 축복이 될 것입니다.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크리스천투데이]통합 총회연금재단, 제기된 의혹에 해명 나서(2013.05.28)

특감후속대책 진행보고 및 규정·정관 개정 공청회 개최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예장통합 총회연금재단(이사장 김정서 목사)이 총회연금 특감후속대책 진행보고 및 연금 규정·정관 개정 설명 공청회를 28일 오후 서울 저동 영락교회(담임 이철신 목사)에서 개최했다.

개회예배 이후 공청회에서는 특감후속대책 진행 보고와 연금재단 규정 및 정관개정 설명, 질의 및 응답 등이 진행됐다. 특히 전날 연금가입자회 전국대회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황해국 감사결과대책위원장은 특감후속대책 진행을 보고했다. 보고에 따르면 2013년 4월 30일 현재 자산 현황은 2981억 5504만여원으로, 4개월 만에 127억여원이 증가하는 등 특감 후 수익률이 대폭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또 4월 30일 현재 연금 수급자는 633명, 가입자는 12,399명이며, 연금 납입중단자는 3,168명이다. 이 수치에 대해 황 위원장은 “한 번 납입하고 중단한 경우(1개월)가 940명에 달하는데, 이는 목사안수를 받을 때 의무적으로 가입했다가 중단한 경우”라며 “이밖에 1년 이상 납입자 중 중단자들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황 위원장은 “특감 후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투자에 의해 수익률이 약 3배 증가했다”며 “상벌을 명확히 한 차별화된 자산운용사 관리를 통해 시장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고, 안정적 고수익 대체 투자를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철훈 사무국장(서리)은 연금재단 규정 및 정관 개정 부분을 설명했다. 김 목사는 “수명 연장 등으로 현행대로 지급할 경우 2030년이면 연금이 고갈된다”며 납입기간 20년째의 경우 50%에서 40%로, 35년째의 경우 80%에서 70%로 기본지급율 하향 조정을 추진 중이라고 소개했다.

연금가입자회에서 제기된 의혹, 모두 “사실과 다르다” 해명

▲김정서 이사장이 답변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후에는 전날 가입자회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이사장이 3천만원 이상 되는 차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SUV 차량을 모두 처분했고, 현재는 리스 차량을 이동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며 “리스는 기업 활동으로 인정받아 세금 혜택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카지노 투자’ 부분에 대해서는 “부실투자로 결론난 ‘로하스타워’를 판매 대행하던 부동산 업체에서 게임 등을 다루는 현대디지탈테크라는 정보통신 회사를 소개시켜 줬는데, 그곳에서 건물을 사면 3년 뒤에 되사겠다고 해 구입했다”며 “그러나 샀다가 다시 팔면 세금이 나오니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해 줬고, 그 회사에서는 그 돈으로 빚을 갚아 대신 이자를 받게 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이에 대한 계약을 했고, 그 회사가 이름을 제이비어뮤즈먼트로 바꾸고 카지노 사업에 손을 대게 됐다는 것. 황 위원장은 “이사회는 (카지노 사업에 대해) 몰랐다가 계약 두어 달 후에 감사가 이야기해 주셔서 알게 됐다”며 “우리는 현대디지탈테크에 건물을 투자했지 카지노에 투자한 것이 아니었고, 가입자들이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셔서 5월 31일 전액 투자금을 환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참석한 연금가입자들은 “문제제기를 그냥 무시하지 말고 귀담아 들어줄 필요가 있다”며 “시스템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또 그린손해보험(현 MG손해보험)에 대해서는 “사실상 CEO가 운영을 잘못 해서 망한 회사이지만, 금융감독원에서 CEO를 퇴출시키고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건전하게 만들기로 한 곳”이라며 “한 회사에 우선협상권이 주어져 있고, 최대 주주로 자산 104조원의 새마을금고가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협상권을 가진 이 회사가 새마을금고 보증 조건으로 대출을 요청해, 6.5% 확정금리로 대출한 것이라고도 했다.

김정서 이사장은 답변을 통해 “대화를 피한 적이 없고, 이사들이 활발한 토론을 통해 각종 내용들을 검토하고 있지만 결국은 다수결로 할 수밖에 없다”며 “다 서명까지 끝내놓고 반대하면 갈등만 조장될 뿐”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어제 가입자회 전국대회도 모두 녹화해서 대책을 세워놓았고, 재단이 흔들리면 모두 망하게 되기 때문에 내용 중 허위가 발견될 경우에는 법적 대응도 준비하고 있다”며 “있지도 않은 소문을 자꾸 내게 되면 가입자들이 탈퇴하고 연금재단이 더 빨리 망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2013년 5월 15일 수요일

[크리스천투데이]사랑의교회 “건축 비자금설 사실무근”… 각종 소문 일축(2013.05.16)


“옥한흠장학회 차용은 공동의회 결의 거쳤지만 아직 검토만 했을 뿐”

▲사랑의교회 건축 현장. ⓒ크리스천투데이 DB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가 재정과 건축 및 담임목사 개인 신상 등 현재 교회와 관련해 돌고 있는 소문들에 대해, 최근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입장을 표명했다.

사랑의교회는 김주수 서기장로, 도송준 총무장로, 강희근 재정장로 명의로 발표한 입장문에서 먼저 재정과 사역에 대해, 2011년 11월 재정부를 신설하고 복식부기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국제적인 전사적자원관리솔루션을 외부기관으로부터 후원받아 교회 실정에 맞게 개발·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회계의 적정성, 투명성,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세계선교부와 비서실 등의 부서에는 재정집사를 안수집사로 선임하여 집행을 관리하고 있으며, 감사위에서는 공인회계사 등 업무전문성을 가진 열 명의 안수집사들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하여 분기마다 각 사역부서에 대한 정기감사를 실시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특별 수시감사를 실시하여 당회와 제직회에 보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옥한흠장학회 80억 건축비 차용설과 관련해서는 “지난 2012년 당회의 건의로 제직회 및 공동의회의 결의를 거친 사안으로, 건축을 위해 은행 대출이 필요한 경우 이미 적립되어 있는 옥한흠장학회 기금을 활용하기로 한 내용”이라며 “즉, 건축을 위해 은행대출이 필요할 경우 이를 은행이 아닌 장학회에서 차용하여 사용함으로 은행에 지불해야 할 이자를 장학회에 지급함으로써 장학회에도 유익이 되는 방안의 하나로 검토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2013년 5월 현재 장학회에서 기금을 차용한 일은 아직 없다고도 했다.

아이티 후원헌금과 관련해서는 “언론에 보도된 10억원은 헌금 목표액이었으며, 교회에서 헌금된 액수는 총 4억6,300만원이었다. 그 중 지금까지 아이티에 지원된 금액은 1억5,400만원으로, 잔액 3억900만원은 현재 교회 재정에 보관돼 있다”며 “잔액이 모두 지출되지 않은 이유는 본래 총회의 아이티 사역에 참여하여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총회의 아이티 사역이 차질을 빚어 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 잔액은 아이티를 위한 목적의 헌금이므로 그에 맞게 장차 당회의 결의를 거쳐 지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담임목사 사례비 및 목회활동비는 2003년 청빙 당시 옥한흠 목사와 동일한 기준으로 책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건축 관련 별도의 자금 조성설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건축 과정에서 비공식적 자금이 만들어진 적은 일체 없으며, 모든 과정이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며 “교회는 대림산업으로부터 토지원가와 금융비용을 감안한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부지를 매입하였으며, 부동산 거래과정에서 부동산 중개수수료 성격의 금액도 지급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 외 담임목사 집무실이 크고 호화롭다거나 음향업체 선정과정에 있어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소문과, 심지어 담임목사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등의 소문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마지막으로 담임목사 개인 신상에 대해 “교회와 담임목사는 호텔 휘트니스 이용권을 소유한 적이 없다”며 “담임목사 항공권 이용에 대해서는 마일리지를 활용하여 이코노미 좌석을 업그레이드하여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적은 있으나 교회의 공식 출장에 일등석 좌석을 구입하여 이용한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는 등,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교회측은 악의적 사실 왜곡 자제를 당부하며 “특히 최근 교회 내에 당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은, 가칭 안수집사회와 같은 임의의 모임들이 결성되는 움직임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한다. 교회 내에 특정한 사역 목적과 일정 자격의 성도를 회원으로 갖고자 하는 모임은 총회 헌법과 교회 정관에 따라 반드시 당회의 의결을 거쳐 담당교역자와 장로의 지도를 받을 때 모임의 결성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사랑의교회가 온전히 회복되도록 십자가를 나누어 지고 함께 걸어가야 할 때”라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한 교회로 다시 세우실 날을 기대하며 계속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2013년 4월 10일 수요일

[크리스천투데이]“신앙과 교리, 진리 문제에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2013.04.10)


75세 노학자, WCC 반대에 평생 바치는 이유

올해 75세의 노(老)학자는 오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바로 ‘WCC의 정체 폭로’. 세계교회협의회(WCC) 때문에 승동측(합동)과 연동측(통합)이 분열하던 1959년부터 관심을 기울여 왔던 일이다. 당시엔 일개 신학생에 불과했지만, 50년 넘는 연구로 그는 국내 어떤 에큐메니칼 인사보다 WCC 현지 자료들을 풍부하게 보유하게 됐다. “에큐메니칼보다 에큐메니칼을 더 잘 알게 된 것”이다. 그러한 관심은 그를 I.C.C.C.(국제기독교연합회) 한국지부 간사와 미국 유학(Faith 신학교·Grace 신대원) 등으로 이끌었다.

▲조영엽 박사는 얼마 전에도 자신의 조직신학 등 저서를 중국에서 발간하는 문제로 중국을 다녀왔다. 그의 신학 저서들은 지난 2008년 중국 양회에서 출판을 허락받았다. 그는 현재 ‘성령론’ 개정판을 집필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오는 10월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WCC의 정체(CLC)’ 개정판을 펴낸 조영엽 박사(성경보수개혁교회단체연합회 대표회장)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평양 사투리가 섞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WCC 60년사(史)를 쉴새없이 들려준 후 질문에 답했다. 그는 WCC 트베이트 총무와 한국 총회 준비위원장 김삼환 목사, NCCK 김영주 총무, 이형기 교수(장신대) 등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할 예정이다.

-개정판에서 보완된 내용은 무엇인가요.

“3년 전에 초판이 나왔는데, 내용이 좀 미흡한 감이 있어 다시 썼어요. 이빨이 빠진 부분을 본인은 알잖아요. 한국의 NCCK와 조그련(조선그리스도교연맹), WCC와의 관계나 이번 총회 유치과정 같은 것들이에요.”

-WCC에 대한 연구조사는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1959년 9월 셋째주 목요일 저녁,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4회 총회 때부터에요. 대전중앙교회에서 WCC에 반대하는 합동측과 찬성하는 통합측이 분열됐어요. 신학생 시절이었는데, 이를 체험하고 나니 ‘왜 한국 장로교가 분열됐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죠. 교권 문제 등 여러 말이 있지만, 그 배후에는 신앙과 교리 문제가 있었어요. 제 믿음의 아버지는 박형룡 박사님과 명신흥 박사님이십니다. 이 분들 추천과 짧은 영어 실력으로 I.C.C.C. 한국지부 간사를 맡기도 했어요.

3년 전에는 WCC 본부를 20일간 방문해 연구를 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다 보니 NCC 본부도 자주 방문해서 자료들을 수집했죠. 1980년대에는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연구하기도 했어요. 밴쿠버 총회(1983년) 때는 깃발 들고 시위도 했죠(웃음). 총회 외에도 중앙위원회나 각 부서 모임에도 자주 다녔습니다. (WCC가) 공산당 운동을 할 때는 게릴라 단체들이나 미국 국무성에서도 자료를 모았어요.”

-알아주는 이들도 별로 없는데, 왜 이렇게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시나요.

“벌써 제 나이가 75세입니다. 어물어물하다 세월이 다 갔어요(웃음). 하나님께선 여러 사람들에게 동일한 사명을 주시고 또 각기 다른 사명을 주셨잖아요. 한국과 전세계 교회가 좁은 길, 옛 신앙을 버린 채 세속화되고 교리와 신앙, 도덕과 윤리, 사상과 이념 면으로 변질되는 상황에서, 제게 주어진 사명이 따로 있다고 믿어요. 구체적으로는 WCC겠죠. 요즘 WCC 반대를 훌륭히 잘 하시는 분들 많지만, 구체적인 것들은 잘 모르십니다. 기껏 해야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얻는 정도이지요.

성경에는 ‘알면서도 바로 책망하지 않으면 삯꾼’이라고 나와 있잖아요. 하나님 앞에 제가 섰을 때, ‘네가 입을 봉해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도됐다’고 하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저 아니라도 할 수 있지만, 제가 할 일이 있겠지요. 평양에서 태어나 이런 과정을 거쳐온 것은 이 시대를 위한 연단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그래서 컴퓨터 타자도 치지 못하지만, 20번씩 지우고 고쳐 가면서 글을 쓰고 있어요.”

▲조 박사가 3년 전 WCC 본부를 방문해 찍은 사진.

-공개토론을 제안하신다는데,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대화에 응하지 않았나요.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하지만, 전혀 연락은 없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라고 봐요. 첫째 저를 아는 사람들은 감히 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제가 미디어나 인터넷에 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WCC 문헌들을 더러 번역한 이형기 박사만 봐도, ‘토론토 선언’ 같은 걸 내놓으면서 ‘WCC는 보수’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그런 사람이 대화에 나설 수 있겠어요?”

-‘WCC 반대는 철 지난 레드 콤플렉스’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공산주의’라고 하면 종교적으로는 무신론이고, 신학적으로는 적그리스도, 붉은 용의 세력(계 13, 17)입니다. 이 세력은 시대에 따라 변모되고 굴곡은 있어도 없어지지는 않아요. 이들이 주님 재림까지 남은 때가 얼마 없음을 알고 더 발악하고 있어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 1:3)’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에베소서에서 보듯 혈과 육이 아니요,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과의 ‘용전(勇戰)’입니다. 여기 WCC 자료들을 보면 공산주의 단체들에게 예산을 지원했거나 이들과 함께한 내용들이 나와 있습니다.”

-박사님이 내세우시는 반대 이유들이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의견일 뿐, 대부분은 건전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부가 아닙니다. 거의 다 그러합니다. 110개국 이상 350여곳의 교파가 모여 있고, ‘대(大)계파(Chruch Family)’만 10곳 이상입니다. ‘동양정교회(Oriental Orthodox)’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WCC는 오합지졸들이 모인 연합체이기 때문에, 그들 말처럼 교리적·신앙적 정체성을 갖는 건 불가능하긴 합니다. 계시록 말씀처럼 ‘온갖 더러운 새들이 모인 바벨론’이에요. 다양한 교파와 주장들이 있다 보니 교리적·신앙적 통일성이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근래 와서 전도가 안 되다 보니 오순절 교파도 받아들였지요.”

-그들끼리 모여서 총회를 연다는데 구태여 반대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니죠. 신앙과 교리의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도 듣지 않는 판에 입을 봉해서야 되겠습니까. 올바른 양심적 태도가 아닙니다. 구원받고 말고는 하나님께 맡길 일이지만, 진리를 외쳐야지요. 무관심이 가장 큰 죄입니다. 무지도 마찬가지에요. 진리, 신앙, 교리 같은 중요한 문제들에는 늘 관심을 가지십시오.”

▲조 박사가 평생 모은 WCC 관련 자료들을 출판사 사무실에 펼쳐놓고 이를 설명하고 있다. WCC 발간 잡지와 총회 및 각종 모임 자료 등이다. 그의 자택에는 2-3배 분량이 더 있다고 한다. ⓒ이대웅 기자

-그들이 말하는 ‘사회 구원’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것 아닌가요.

“그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 구원’은 사회주의적 발상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게 문제라는 것이지요.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유토피아 사상’과 별다를 게 없습니다. 무천년주의자들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에요.”

-이번에 보수와 진보 대표들이 함께 발표했다가 NCCK측에서 일방적으로 파기한 ‘공동선언문 사태’는 어떻게 보셨나요.

“4가지 항목은 그들(WCC측)이 받아들일 리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인본주의적인 시도였는데, 틀어진 게 오히려 다행이에요. 하지만 우리와 반대되는 사람들이라도, 바리새인들이 상대하듯 대해선 안 됩니다. 보수적인 이들이 정죄만 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잖아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 그들이 도전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대하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지요. 동성애 문제도 그렇습니다. 미국도 동성애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는데,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 같아요. 분명히 지적해야 하지만, 헐뜯는 게 아니라 회개할 기회를 줘야죠.”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에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지금은 자다가도 깰 때입니다. 이 중요한 신앙과 교리, 진리 문제에 너나할 것 없이 관심을 가져야 해요. 앞서간 믿음의 열조들을 통해 받은 이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을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 앞 심판대에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래서 양보하고 저래서 포기하고 그래서 타협한다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가슴이 아픕니다.”

2013년 4월 8일 월요일

[로앤처치]한독선연, 무자격자에게 안수주고 이단에게 목사 안수 받아(2013.04.09)

회원 중에는 ‘신천지 이단에 준하는 자’로 결의된 인사도 들어있어
공동취재단 (55)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회장 송용필 목사, KAICAM, 이하 한독선연)와 관련해 한국 기독교계에서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며 기독교계 언론들이 공동취재단을 구성해 오랜 기간 취재 해왔다.

그리고 취재결과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정리하면 무자격자 목사안수, 이단성이 제기된 인사 비호, 이단에게 교육받고 안수 받은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한독선연, 무자격자에게 목사 안수

한독선연은 지난 2007년 제15회 안수식에서 목사 안수자격을 갖추지 못한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M.Div. 미졸업생들에게 목사안수를 준 바 있다. 이들이 안수 받기 전, 당시 한독선연 회장 김상복 목사를 포함한 실행위원 15명은 목사 안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아신대 M.Div. 미졸업생들에게 안수를 줄 것인지에 대해 회의를 했다.

당시 실행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실행위원들 중 상당수가 원칙적으로 미졸업생들에 대해 목사 안수를 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 수 있다. 하지만 김상복 목사가 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해 찬성 11표, 반대 3표, 무효 1표가 나와 안수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당시 실행위에서 김상복 목사는 “오늘 결정에 따라 어떤 비난이라도 감수하자”고 말했고 그는 지금까지도 미자격자 목사 안수와 관련해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독선연이 자격 미달자에게 안수를 주자 기독교계에서는 이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 특히 미국에서도 한독선연이 마구잡이로 목사 안수를 주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현지 목회자 단체들의 반발을 산바 있다.

미래목회포럼도 작년 말 종교개혁 495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5대 개혁 과제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며 독립교단의 목사 안수 남발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래목회포럼은 “독립교단에서 정상적인 신학과 인격의 검증 절차 없이 목회자를 양산해 한국교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규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한독선연의 미자격자 목사 안수 문제는 국내·외에서 심각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단성 논란 일은 인사들 회원으로 활동 중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독선연에는 한국 기독교계에서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이 정식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초 한독선연은 이단성이 있는 회원들에 대해 조사해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지만 확인결과 여전히 이단성 문제가 제기된 인사들이 정식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예장 합동 교단과 예장 합신 교단에서 이단성 논란이 일은 손기철 장로, 조현주 장로 등이 한독선연에 정식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조현주 장로의 경우 신천지에서 공부한 경력을 숨기다 드러난 전력이 있는 인사다. 예장 합신 교단 이대위는 조현주 장로에 대해 “신천지에서 배워서 신천지 교리를 오랫동안 강의해 왔고 지적을 받은 후에도 회개의 자세가 없어 ‘신천지 이단에 준하는 자’”로 결의한 바 있다. 조현주 장로는 소속교회였던 은평교회를 탈퇴했지만 이후로도 성경100독사관학교를 운영하며 한독선연의 정식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손기철장로는 ◉개혁주의에 반하는 자의적 성경해석 ◉치유사역에 대한 잘못된 이해 ◉주관적 계시체험을 강조해 직통계시까지 간 위험수준 ◉잘못된 은사를 강조해 성도들이 분열에 이름 ◉유사, 이단 신학 등에 문을 여는 역할을 함 ◉인간의 믿음이 기적의 조건임을 강조하고, 말씀이 실체가 된다는 주장은 성육신을 왜곡할 위험이 있음 ◉무분별한 성령체험을 주장함 ◉사도적 치유사역에 대한 검토가 필요 ◉신학적으로 위험 ◉최면술일 경향이 짙음 ◉가계론, 지역저주론과 관련해 위험한 표현이 있음 등을 이유로 예장 합동 교단에서 교류금지가 돼있는 인사다. 하지만 손기철 장로 역시 한독선연의 정식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졸업생도 목사 안수

한독선연은 주요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김기동 목사 측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는 모습을 보여 구설에 올랐다. 2011년 4월 28일 김상복목사의 할렐루야교회에서 열린 제23회 한독선연 목사 안수식에서는 김기동 목사 측이 운영하는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졸업생에게 목사 안수를 줬다. 당시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서는 다수의 면접위원들이 진행하는 최종 면접을 통과해야 했는데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에 대해 안수를 주는 것에 위원들이 동의했고 그 결과 해당 인사는 아무런 제지 없이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런데 한독선연은 이단 출신에게 안수를 줬다는 문제제기가 나오자 이를 전 총무인 남양우 목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남 목사는 “당시 면접위원들이 누구였는지 모두 공개하고 누가 해당 목사 후보자에게 안수를 줘도 된다고 싸인 했는지 소상히 밝혀보자”고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한독선연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한독선연 설립 후 면접위원으로 활동한 이들을 살펴보면 김상복 목사를 비롯해 현 연합회장인 송용필 목사도 포함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며 기독교계에서는 한독선연에 많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모 교단의 경우 한독선연 출신자들은 자신의 교단에 들어온다고 해도 받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단에게 교육받고 목사 안수 받아

더욱 심각한 것은 한독선연의 목사 후보생들이 이단에게 교육받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최삼경 목사는 삼신론과 마리아월경잉태론으로 인해 한국 기독교계 최대 교단인 예장 합동 교단과 한국 기독교계 최대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및 한국의 50개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인사다. 그런데 2012년 10월 22일 할렐루야교회에서 열린 ‘한독선연 제26회 목사안수식’에서 최삼경 목사가 목사 안수위원으로 참석해 안수를 줬다. 뿐만 아니라 최 목사는 한독선연의 초청으로 목사 안수 대상자들에게 이단과 관련한 교육을 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한편에서는 이단이 교육을 하고 목사 안수를 준다며 한독선연은 이단 양성소냐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사건과 관련해 최삼경 목사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지적하는 말도 나왔다. 최삼경 목사는 김기동 목사를 이단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한독선연은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김기동 목사 측이 운영하는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를 졸업한 이에게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고 목사 안수를 준 바 있다. 그런 한독선연에 최삼경 목사가 이단과 관련한 교육을 하고 안수위원으로 참가해 목사 안수를 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삼경 목사의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최 목사가 속한 예장 통합 교단에서는 박철수 목사에 대해 “비성경적인 운동으로 본 교단 목회자나 성도들의 참여를 엄히 금해야 할 것”이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이런 박철수 목사가 정식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독선연에 최삼경 목사가 안수 위원으로 참여한 것이다. 2010년 예장 통합 교단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박철수 목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있다.

◉영의 인격과 육의 인격이 별도로 존재한다 하여, 그의 인간관을 따르면 전인적 인간관이 무너지고 만다 ◉영만을 강조하는 극단적인 신비주의 형태의 영성화훈련을 하고 있다 ◉영성 훈련의 핵심(필수과정)은 영이 육에서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영의 육체 이탈을 통한 영성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성경 어디에서도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사상이다 ◉타락 전에 영혼이 몸을 주도한 것처럼, 영성화는 영혼의 몸 전체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의 영성화는 근본적으로 영은 죄가 없다는 전제가 아니면 불가능하게 된다 ◉박 씨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를 모두 경험해 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물론 성경 말씀을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의 영성화를 특별화하고 다른 정통교회와 구별하기 위한 주장이다.

통합 측 이대위 보고서는 “박철수 씨의 영성화운동은 잘못된 인간론과 잘못된 영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는 비성경적인 운동으로 본 교단 목회자나 성도들의 참여를 엄히 금해야 할 것이다”라고 결론 맺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예장 통합 교단에서 최삼경 목사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서기로 활동할 때 만들어진 것이다. 최삼경 목사는 자신의 교단에서 이단성이 있다고 판단한 사람인 박철수 목사가 속한 한독선연에 가서 목사 후보생 교육과 목사 안수를 주는 이율배반적인 일을 저지른 것이다.

최 목사의 모순된 행동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최삼경 목사가 상임이사로 있는 인터넷언론 ‘교회와신앙’에는 조현주 장로(성경100독사관학교)가 이단성이 있는 인사로 나와 있는데 위에서 밝혔듯이 조현주 장로도 한독선연의 정식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삼경 목사는 한독선연에 가서 교육을 하고 직접 목사 안수를 했다. 최 목사가 그동안 주장한 논리에 비춰본다면 이는 스스로 이단성이 있는 인사를 옹호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한독선연은 오는 22일 분당 할렐루야교회에서 제27회 목사 안수식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기독교계 언론에서 한독선연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명확한 답변을 듣기 원했지만 한독선연 측은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 공동취재에서도 문제가 제기된 부분들에 대해 입장을 물었지만 한독선연 측은 답변을 거부했다.
<공동취재단>

2013년 4월 7일 일요일

[로앤처치]최삼경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2013.04.16)

이단목사들이 있는 교단에서 안수
로앤처치 (375)
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그 앞을 지나가는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와 쇠로 만든 침대에 눕히고는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여 죽이고 길면 잘라 버리는 방법으로 죽였다. 
 
‘프로크루스테스 침대(Procrustean bed)’란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아집과 편견을 말한다. 최삼경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아마도 다른 예장통합교단 목사가 이단이 속한 교단에 가서 안수를 했다면 이단교단옹호목사라고 이단정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서 안수를 하면 정통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단, 삼단 떠나서 모두 사랑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최삼경목사가 예장통합교단 서울동노회소속이면서도 2012. 10. 12. 이단으로 정죄된 자들이 속한 한국독립교회 선교단체 연합회(한독선연)에서 가서 목사안수식에 참여한 바 가 있다.  
 
▲     © 황규학

▲     © 황규학

 
뉴스미션 2012/07/31 기사에 의하면  "한독선연측은 남 전 총무가 재임한 시기에 목사안수 자격 검증을 철저히 진행하지 않았고 회원 교회 가입 실사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새 집행부가 들어선 후 실시한 회원 실사에서 목사 안수자의 30%가 무인가 신학교 출신이고, 가입한 교회 중 이단들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많은 이단들이 한독련에서 안수를 받는다고 한독련이 자체적으로 주장했다.  

이처럼 안수무자격자와 이단들이 안수받는 현장에 최삼경목사가 안수식에 참여한 것이다. 자신은 이단감별사로서 이단들과 싸운다고 하면서 결국 일부 이단들과 무자격자를 안수하는 현장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특히 자신이 사실상 이단으로 정죄한 박철수목사도 한독련 소속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단으로 정죄한 목사들이 소속한 교단에 가서 안수하는 것은 모순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단정죄하는 것이 원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상황에 따라 정죄하다보니 최목사는 모순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 한독연 26회 목사안수식    © 황규학

 
▲     © 황규학

예장통합에서는 김기종목사의 청으로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의 최삼경목사가 주도가 되어 통합측은 2010년 95회 총회에서 박 목사에 대해 “박철수 씨의 영성화 운동은 잘못된 인간론과 잘못된 영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이는 비성경적인 운동으로 본 교단 목회자나 성도들의 참여를 엄히 금해야 할 것이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박철수목사는 "그동안 이단정죄로 인해 아내까지 잃고 너무나도 많은 심적인 고통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다시는 예장통합 교단이 일부 이단감별사들에 의하여 교단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도 안되고 소명기회도 주지 않는 어설픈 마녀사냥식 이단정죄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박철수목사가 이단으로 정죄되기 위해서는 서울장신대 송인설교수도 이단으로 정죄되어야 한다. 그의 책을 읽고 강의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힘없는 자만 이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프로쿠로스테스적 행위
 
아마 다른 예장통합 교단 목사들이 한독선연에 가서 안수를 했다면 최삼경은 벌써 이단교단옹호목사라고 정죄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는 고소건을 비롯, 자신의 잣대에 맞으면 살려두고, 자신의 잣대에 맞지 않으면 죽이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서달석목사가 고소하면 문제시하고, 자신이 고소하면 정당한 것이다. 이것이 프로쿠르테스의 유인법이다.
 
그는 예수의 성령잉태도 믿고, 월경을 통해서 태어났다는 것도 믿는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의 탄생은 성령잉태적 월경잉태이다. 다른 사람이 마리아월경잉태를 주장했다면 가장 극악한 이단이라는 표현을 하여 이단정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한 것은 모두 성령잉태에 포함하는 인성을 강조한 은혜로운 표현이다.
 
행위적인 모순, 교리적인 모순, 학문적인 모순, 신학적인 모순
 
그는 서달석목사의 고소행위를 비난하면서 자신은 남을 고소하고,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이 속한 교단에 가서 안수를 하는 행위적인 모순속에 살면서, 성령잉태와 월경잉태를 동시에 강조하는 교리적인 모순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단을 비판할 때는 객관적이고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은 주관적이고, 거짓에 근거하는 학문적인 모순속에 산다. 그의 신학 역시 총신대적 장신대신학이거나 장신대적 총신신학일 것이다. 이처럼 그는 행위, 교리, 학문, 신학의 모순속에 살고 있다. 
 
최삼경을 알아야 이단이 보인다
 
그러다 보니 마리아월경잉태론, 삼위일체의 귀신론, 삼신론이라는 해괴망칙한 이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모두 모순적 삶의 변증법적인 결과물들이다. 이러한 프로크루스테스적 행위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단으로 억울하게 한번 소명기회도 얻지 못하고 정죄되었던 것이다. 모순적 신학 때문에 정상적인 신학을 한 목사들이 이단으로 정죄된 것이다. 최삼경을 알아야 이단이 보인다. 모순적 삶 자체가 이단적 삶이기 때문이다. 이단자체가 처음과 끝이 다른 모순인 것이다.               

2013년 4월 2일 화요일

[크리스천투데이]마지막 설교 전한 존 파이퍼 목사, “하나님께 감사” 눈물(2013.04.03)


     베들레헴 교회 축복하고 연합 위해 기도

▲존 파이퍼 목사가 2012년 애틀랜타에서 열린 ‘패션 컨퍼런스’에서 말씀을 전하던 모습. ⓒ크리스천포스트

3월 31일(이하 현지시각) 부활절 예배 설교를 마지막으로 목사직에서 물러난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가 눈물을 흘렸다.

그는 1일 자신의 블로그 ‘하나님을 향한 갈망(Desiring God)’에 “33년 만에 처음으로 목사라는 공식적 직함 없는 하루를 맞아 눈을 떴을 때, 눈물만 나왔다. 이는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 아래에 큰 기쁨이 있었다. 이는 끝이 났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붙드시고, 하나님이 마치셨다. 나는 이 일을 사랑했다”고 적었다.

하루 전인 부활 주일, 파이퍼 목사는 베들레헴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전했다. 파이퍼 목사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여러분의 위대한 목자를 살리셨다’는 제목의 설교에서 베들레헴 교회를 축복하고 연합을 위해 기도했다.

그는 “아버지, 베들레헴 교회가 절대적이고, 흔들림없이 하나로 있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양떼들과 온전히 하나가 되시고, 이들도 당신께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들이 주님의 보혈이 가져온 평화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이들과 약속을 지키시고 말씀 안에서 모든 언약이 성취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다음날 파이퍼 목사는 “교회가 그의 진로에 대해 기도하면서 생각한 이후, 하나님께서 교회를 조화롭게 이끌어오셨다. 리더십의 매끄러운 승계가 매우 기뻤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삶의 출발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파이퍼 목사는 “베들레헴 교회에서 사역을 마친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만족스러웠다. 떠나보내길 원치 않던 교인들과 가진 눈물의 긴 포옹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여기서 나는 여러분에게 끝이 어떻게 매우 만족스러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적었다.

약 2주 전, 파이퍼 목사는 교인들에게 5월 가족들이 테네시로 이사할 것이라고 전하면서, “새로 부임한 재이슨 메이어(Jason Meyer) 목사가 방해받지 않고, 교회에 대한 자신의 전략적인 비전을 잘 개발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일 파이퍼 목사는 “비록 베들레헴에서 나의 사역이 여러 면에 있어서 부족했지만, 완수했기 때문에 이를 사랑한다. 베들레헴 교회 목사로서 나의 삶은 끝났다. 나와 교회 앞에 어떤 일들이 놓여 있을지 매우 기대된다”고 말했다.

베들레헴 침례교회는 오는 14일 공식적인 감사예배를 통해 파이퍼 목사의 헌신을 기릴 예정이다.

2013년 4월 1일 월요일

[크리스천투데이]“탈북민들 내면의 상처 치유, ‘아름다운 통일’의 시작”(2013.04.02)


     [탈북사역자들 ⑥] 하나상담센터 유혜란 목사

“주체사상과 기독교가 비슷하다고요? 그런 말 들으면 정말 화가 납니다. 주체사상의 핵심은 내 운명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는 것인데, 기독교의 핵심은 내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이게 어떻게 같은가요?”

평촌 새중앙교회(담임 박중식 목사) 북한선교회와 서울 화곡동 하나상담센터에서 탈북민들을 돌보고 있는, 탈북민 출신 유혜란 목사(50)는 얼마 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탈북민들을 통하여 본 북한체제-트라우마 불안’이라는 주제로 신학박사 학위(상담학전공)를 받았다. 유 목사는 북한체제 자체를 ‘수령(김일성 일가)을 위해 복무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역기능적이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통제와 감시, 정신적 충격과 물리적 수단으로 일관한 억압정치’라 보고 있다.

▲유혜란 목사는 “탈북민들끼리 함께 교회에서 모이는 것도 좋지만, 남한 분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비가 오고 눈보라가 치고 추운 날씨에도 어린이들이 교회로 찾아오는 모습들을 탈북민들이 본다면 신앙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북한체제-트라우마(North Korea System-Trauma)’는 생존을 위협하는 기근과 체제 노이로제, 즉 김일성 일가의 조건반사적 통치행태(공개처형을 비롯한 집단수용, 연좌제, 지속적인 감시와 통제로 일관한 감옥화된 체제적 재앙)로, 공포와 불안이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하나의 집단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극적으로 빠져나온 탈북자들은 누구나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고, 이것이 제대로 낫지 않으면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겨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없게 된다.

-북한에서 의사이셨지만, 상담을 공부하시고 학위까지 받으신 계기가 이것이었나요.

“북한은 많은 나라들과 다른 특수성이 있습니다. 3대 세습독재를 하고 있는데, 이게 사실 지구상에서 가능할 수 없는 구조잖아요. 그런데도 세습이 되는 건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것을 ‘종교의 말살’, ‘철학의 부재’ 때문이라 생각해요. 존재를 묻는 게 철학이고, 존재에 대답하는 게 종교잖아요?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도, 사람은 종교를 추구하고 뭔가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북한은 생각하려는 의지와 종교성을 박탈해 버렸습니다. 북한의 대학에서는 그 대신 ‘김일성주의’ 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이라는 나라는, 본질 자체가 거짓 위에 세워진 역사관을 갖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감시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바깥만 잠시 봐도 거짓인 걸 아니까요. 폐쇄적인 사회로 만들어 놓고, 통제 수위를 높인 다음 감시하면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어요.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만 봐도, 일단 생존의 욕구가 채워져야 다른 욕구도 품을 수 있습니다. 북한은 풍요를 추구하는 사회가 아니라, 생존을 추구하도록 애초부터 만들어 놓았어요. 한 인간을 신격화 시켜놓은 채…. 북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그 ‘신격화된 인간’이죠.

쉽게 말하면, 무서운 아빠 엄마 밑에선 자식들이 솔직하기가 힘듭니다. 북한은 자신을 하나의 ‘사회주의 대가정’으로 이야기하는데, 3대를 세습할 정도니 이 ‘가정’에서는 얼마나 철저하게 독재를 실현하고 있습니까? 여기서는 자유의지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내 생각대로 표현할 수도 없어요. 정치적으로 뭔가를 반대하면 곧바로 수용소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주민들은 체제에 적응하게 됐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사람은 결국 순응하게 돼 있어요. 그러면서 ‘왜곡된 방어기제’가 발달했어요. 수십 년간 이것이 습관처럼 내려오니 성격에 장애가 오고, 그러면서 참 자아가 손상됐고요. 가장 무서운 것은 비정상이 오랫동안 학습돼, 정상적이라고 사고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이나 탈북민들에 대한 접근이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불안한데 어떻게 희생할 수 있겠습니까? 없어요. 북한 사람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내가 이걸 하면 너는 뭘 주겠니’ 하는 유아적인 발상이 유치한 줄을 모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병리적인 자기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타인에 대한 사랑도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죠. 인간관계를 잘 몰라요.”

▲하나상담센터 모습. 집단상담을 할 수 있도록 빙 둘러앉는 형태로 소파가 놓여 있다. ⓒ이대웅 기자

-주체사상 때문인가요.

“탈북자들에게 물어봐도, 사실 주체사상을 잘 모릅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지만, 주체사상의 심오한 원리에 심취돼서 공경하는 건 아니에요. 단지 두려워서, 안 따르면 수용소를 가야 하니까, 몰라도 아는 척을 할 뿐이죠.

북한은 철저히 계급 사회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탈북자의 증언을 듣고, 이것을 북한의 전반적인 실상으로 일반화해선 안 되는 것이죠.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대로 사물을 보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북한 사회가 변화되려면 엘리트들이 변해야 해요.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평양에 있기 때문에, 무엇이 문제인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라우마 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나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죠.

저도 그랬어요. 북한에서 불붙은 병실에 뛰어들어가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꺼내왔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을 때도, ‘죽은 다음에 영웅 칭호 받으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전에 누려야 하는데,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체사상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 사상으로 내 삶이 변하지도 않으며, 생활총화 때 필요하니 단지 학습에 따라간 것 뿐이에요. 관심 없는 과목 공부하듯이, 수박 겉핥기로 했을 뿐이죠(웃음).”

-주체사상이 기독교랑 비슷하다는 말에 반대하시죠.

“성경에 하나님 대신 김일성을 넣으면 주체사상이라는데, 전 그것도 조금 다르게 봅니다. 하나님 위치에 스스로 올라간 것 뿐, 하나님 모습을 따라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아들을 희생하셨는데, 김일성은 독재를 세습하기 위해 백성들을 가차없이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이게 같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3대 세습 때문에 죽어갔는데…. 그저 신적인 존재로 군림해 자신에 대해 말도 못하게 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지요. 제가 목회자라 그런 게 아니라, 성경을 읽을 때마다 무엇을 느끼냐면 창조주이신데, 저를 만드신 분이신데 당신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자유의지)’조차 우리에게 내어주실 정도로 저를 사랑하십니다. 물론 그 자유의지를 인간이 잘못 사용하긴 했죠. 그러나 북한에는 자유의지라는 게 없습니다. 박탈당했어요.”

-이렇게 센터까지 마련해 놓으신 이유도 궁금하네요.

“2010년에 통일부에서 ‘하나센터’를 전국 16곳으로 확대해 시범 설치했는데, 그때 서부하나센터에서 파트타임 심리상담사로 근무했어요. 그런데 복지사들은 행정업무가 60-70%에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해야 하는데, 시간을 다 빼앗겨요. 상담실도 열악했고,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심지어 상담실을 자원봉사자들 사무실로 썼다니까요. 상담은 비밀도 보장돼야 하고 쾌적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진행돼야 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서 2011년 8월 이곳에 센터를 열게 됐어요.”
▲유 목사는 “사실 저도 치유받고 있는 중이라 생각하고, 논문을 쓰면서 ‘내게 이런 상처가 있구나’ 하는 부분들을 많이 깨달았다”며 “탈북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에너지가 상당히 많이 소진되지만 배우는 부분도 적지 않고, ‘이 많은 상처를 안고도 지금까지 이렇게 견뎌내고 있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전했다. ⓒ이대웅 기자

-상담해 보시니 어떤가요.

“2년간 상담하면서 느낀 점은 탈북민들의 근본적 문제를 치유하려면, 체제의 상처라 이름붙일 정도인 탈북민들의 상처를 먼저 치료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통한 집단치료와 함께, 개인상담도 이뤄져야 합니다.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이유는, 탈북민들은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에 상담을 사치라고 생각하기 쉬워서에요.

하지만 탈북민들도 느낍니다. 무턱대고 나가서 부딪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걸요.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부분도 필요하지만, 상처로 얼룩진 내면이 치유돼야 대인관계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사람에게 상처만 받고 회사를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회사생활이 어렵구나 해서 막노동 같은 일당벌이로만 나돌게 됩니다.

그래서야 탈북민들이 ‘통일의 자원’이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제가 혼자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시작이라도 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일은 이후에 많은 교회들이 협력하고, 더 활성화돼서 나중에는 범국민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저는 ‘아름다운 통일’이라 비유해요. 동서독 통일 이후도 그 정도로 힘들었는데, 남북한은 어떻겠습니까.”

-그런 탈북민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북한체제 자체가 트라우마임을 국민들이 인식한다면, 탈북민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좀더 생겨나지 않을까요? ‘저 사람들이 저런 체제에서 수십 년을 살았구나, 불안이 심하게 내재돼 있구나’…, 탈북민들에 대한 이해는 북한체제의 본질을 바로 이해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물론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고, 남한 사람들도 나름의 상처가 있기 때문에 마냥 기대하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탈북민들 숫자가 더 적으니, 이들이 내면의 상처를 잘 회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상처가 적을수록 상처를 덜 받게 되고, 민감한 반응도 없어져요. 궁극적인 문제는 탈북민들의 내면이 치유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중에 북한의 문이 열렸을 때 탈북민들에 대한 이러한 임상적 부분들이 그대로 북한체제의 상처를 치유할 자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에서 탈북민들이 건강하게 지내야 북한 주민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지 않겠어요? 특히 엘리트들에게 말입니다. 그들에게 ‘통일이 돼야 하는구나’ 하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바로 탈북민입니다. 이들이 제대로 서지 못하거나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한다면, 그들에게 ‘통일이 돼선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만 굳혀줄 뿐이에요.”

-한국교회는 어떤 도움을 주는 게 좋을까요.

“무턱대고 지원해 주는 것보단… 장학금 지급 같은 부분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독신으로 온 아이들이 많고, 혼자가 아니라도 부모가 실질적인 도움이나 역할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심지어는 나라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는데도 부모가 돈 벌어야 한다고 자식 공부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에요. 교회에서 형편이 된다면 장학금을 지원해 주는 게 참 좋습니다. 어른보다 청소년들에게 미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센터 한쪽 방에 마련된 개인상담실 모습. 누구라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꾸며놓았다. ⓒ이대웅 기자

그리고, 무엇보다 탈북민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제대로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탈북민들이 조직 생활에 진저리가 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사역에서는 기독교 영화를 많이 틀어주는 편입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영향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감동을 주는 문화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에요. 추상적인 하나님을 내면화하는 데는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전설에서나 나오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분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조급증을 버리는 일도 필요합니다. 신앙이 성장할 때까지 너무 규율에 얽매이게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철저히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는데, 우리가 너무 통제하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죠. 저도 어려워요. 그래서 인간은 죄인인 것 같아요(웃음). 통제받고 살아왔기 때문에 통제하고 싶어하고, 타인을 조종하려 하고… 이 모든 것들은 치유돼야 합니다.”

[크리스천투데이][김명혁 칼럼] 목회자들과 나누고 싶은 나의 목회 시절(2013.04.02)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심부름꾼으로 써 주시옵소서“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지난 2월 “대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나의 대학생 시절의 추억들”이란 제목의 글을 썼고(3월 9일 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림), 지난 3월 “신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나의 신학생 시절의 추억들”이란 제목의 글을 썼는데(3월 16일 뉴스파워에 실림), 지금 4월에 접어들면서 “목회자들과 나누고 싶은 나의 목회 시절의 추억들”이란 제목의 글을 쓴다.

나는 허물과 죄악이 너무 많은 죄인 중의 죄인이지만 거의 한평생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지니고 목회의 길과 선교의 길로 걸어온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 덕분이고 부모님을 비롯한 신앙의 선배님들이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심어주시고 물려주신 믿음, 소망, 사랑, 회개, 기도, 헌신, 전도, 봉사의 영적 씨앗과 유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날의 추억들을 되돌아보는 것은 나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쓴다.

첫째, 왕십리에서 개척목회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나는 부족하고 부족한 죄인이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와 대학교 1학년 때 왕십리 벌판에 나가서 노방전도를 하며 개척교회를 세운 일이 있었다. 새벽마다 우시면서 회개하시고 2만8천여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고 호소하시던, 창동교회 김치선 목사님의 영향 때문이었다. 고등학생의 교복을 입고 토요일과 주일마다 왕십리 벌판에 나가서 우물을 파기 위해 전도한 결과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벌판에서, 얼마 후에는 학교의 교실을 빌려서 함께 모였고, 나중에는 천막을 사다가 치고 거기에서 함께 모였다. 그리고 “한양제일교회”라는 간판을 써서 붙였다. 1, 2년이 지나는 동안 80여명의 어린이들과 40여명의 어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비록 초라한 천막 교회였지만 어떤 여성도 한 분은 “우리 한양제일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에요”라고 말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내가 대학생의 교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것을 보고는 천사의 모습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두가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사실 고3 때는 모두 공부에 전념하는데, 나는 전도와 목회에 전념했다. 나는 언제나 공부는 둘째였고 신앙생활과 전도와 목회가 첫째였다. 나는 평생 공부는 둘째였지만 비교적 잘 했다. 좋은 목사가 되려면 역사를 전공하는 것이 좋다는 한경직 목사님의 조언에 따라서 나는 서울 문리대 사학과에 응시했는데 아무 어려움 없이 합격했다. 역사를 전공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른다. 평생 감사하고 있다. 대학교 1학년 때도 열심히 전도와 목회를 하다가, 총회신학교를 졸업한 어느 전도사가 교회를 자기에게 물려 줄 수 없느냐고 해서 나는 쾌히 물려주고 본 교회인 창동교회로 돌아왔다.

둘째, 후암교회에서 교육목회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12년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1974년 가을에 귀국한 후, 후암교회에서 5년 동안 대학생과 청년들을 지도하며 교육목사로 목회한 일이 있었다. 목회 초년생이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사역에 임했는데, 많은 젊은이들의 삶이 변화되었고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즉 선교의 길과 목회의 길로 가게 된 젊은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안성원, 김동화, 박선규, 최성호, 이진, 양용태, 한옥희, 탁정희 등이 목사 또는 선교사로 헌신해서 지금까지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박선규는 내가 노방전도하다가 길거리에서 만난 청년인데, 나중에 목사가 되어서 목회와 선교를 아주 잘 하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내가 후암교회에서 목회할 때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저들을 찾아다니면서 돌아보았는데, 병중에 있던 어린 아들 철원이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후암교회에서 교육목사로 사역할 때 있었던 일 하나를 소개한다. 1976년 여름 대학생들을 데리고 충청북도 괴산군 옥현리에 가서 하기 학교를 하던 중이었다. 그 동네의 청년들 20여명이 교회 근처에 와서 유행가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며 서울에서 온 대학생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예정에 없던 전도의 대화를 저녁마다 그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목요일 밤 동네 청년들을 교회당에 모아 놓고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이야기를 했다. 전도 설교를 들은 청년 하나가 앞으로 나와서 회개하며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했다. 다른 청년 하나가 또 앞으로 나오더니 자기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했다. 청년 하나는 자기는 청주에서 잘 알려진 불량배인데 자기도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했다. 그날 밤, 15-16명의 청년들이 하나하나 앞으로 나와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었다. 나는 그날 밤 자리에 누워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거의 한 시간 동안 반복해서 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토요일 그들과의 이별은 눈물의 이별이었다. 그들과의 서신 왕래는 그후 1년여간 계속되었다. 그 편지들 중 일부는 다음과 같았다. “김 박사님 읽어주세요. 나에게는 그 기간이 인생 중에 가장 은혜스러웠고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하는 바입니다. 박사님이 설교와 기도하실 적에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사님을 언제 뵈올 지 몰라도 꼭 한번 뵙고 싶은 것이 제 소원이라면 소원이겠습니다. 또 저희들을 잊지 않으시고 공부할 성경교재를 보내 주시니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8월  7일 박궁래 드림.” “그간 선생님, 안녕하세요? 떠나는 7일날 보천서 우리는 너무나 섭섭했어요.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배운 것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데 왜 그렇게 떨리는지 몰라요. 그런데 끝날 때는 말도 잘 나오고 떨리지도 않았어요. 정말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인가 봐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나의 죄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어요.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그때서야 똑똑하게 알았어요. 선생님, 가을에 꼭 한번 오세요. 지금부터 부탁입니다. 정말 꼭 오세요. 8월 11일 박정옥 씀.” “죄책감에 눈시울을 적셔야 하는 나의 마음… ‘주여 이 몸을 용서해 주소서’ 하며 나의 발길은 교회로 향한다. 그 동안 인생의 줄달음에 주어도 보고, 당겨도 보고, 후회도 하며, 울어도 보고… 먼젓번 부탁과 동일하게 녹음 테이프 2개를 보내니 녹음해서 보내주세요. 1976년 8월 김재옥 서”.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셋째, 영안교회에서 개척목회 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후암교회 사역을 마치고 1978년 6월 22일부터 1979년 2월 18일까지 8개월 동안 영안교회에서 개척 목회를 한 일이 있었다. 영안교회는 한 가족이 1억원에 달하는 돈을 투자하여 강남 신사동에 새로 건축한 교회였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 그들이 나에게 전화를 걸고, 와서 개척목회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본래 남의 말을 잘 듣는 터라 가서 그 교회를 섬기기로 했다. 가족과 친척들 10여명이 모여서 시작한 교회였다. 나는 혹시라도 한 개인이나 가족이 드러나는 교회가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원리를 강조하며 목회와 설교를 시작했다.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하나님 중심적 원리로 일관된 나의 설교가 그들 가족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것 같아 마음에 기쁨과 감사를 지니기도 했다. 때로 설교자에 대한 지나친 찬사를 들을 때마다 송구함을 금할 수 없었다. 출석 교인들은 점점 늘어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친척들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 중심 교회로 이끌어가기를 원하는, 인간적인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믿음도 없는 친척들을 교사, 성가대원 또는 집사로 세우려고 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제지했다. 그리고 나는 더욱 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원리를 강조하며 우리 사람들의 모습은 죽어 없어져야 하고 하나님의 모습과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고 설교했다. 이와 같은 “하나님 중심적”인 설교가 새 신자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큰 감동과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던 반면, 그들 가족들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당회장이었던 최 목사님이 나에게 알려주어서 알게 된 것이었다. 결국 교회를 설립하고 시작한 지 8개월이 되던 어느 날, 당회장 최 목사님과 교회 설립자인 이 장로님과 자리를 함께했다. 한 마디로 내가 교회를 그만 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담담하고 조용한 어조로 “돌아오는 주일 설교를 마지막으로 교회를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그 때 이 장로님은 내가 주일 설교와 인사를 하지 말고 그냥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교인들이 동요할까 봐 우려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장로님은 최 목사님에게 내가 그렇게 해 주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다. 최 목사님은 말이 없었다. 나는 심각한 어조로 “당회장이 하지 말라고 명령해도 순종할 수 없습니다.”라고 잘라서 말했다. 8개월 동안 기도와 정성을 쏟으며 받들어 섬긴 교회와 교인들에게 인사 한 마디 없이 갑자기 떠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최 목사님도 나의 말에 동의했고 이 장로님에게 내 말이 옳다고 했다. 이 장로님은 마지못해 “그러면 신학교(총신) 교수 일 때문에 사임하게 되었다”고 인사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세 사람은 헤어졌다.
2월 18일 마지막 설교를 하는 주일이었다. 뜻밖에 박윤선 목사님이 아침 일찍 전화를 거시고 영안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신다고 했다. 순간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주저했으나 오시라고 했다. 주일 아침 예배 드리기 전 성가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마음에 놀라움과 당혹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새 얼굴 5~6명이 함께 성가대원에 끼어 있었고, 태도도 온당하지 못했다. 예배를 시작하려고 하자 앞 자리에 전에 못 보던 얼굴 15~16명이 앉아 있었는데 무슨 시위를 하는 듯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은혜로 나는 마지막 설교를 별다른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침착하고 힘있게 할 수 있었다. 설교 후 장로님의 인사가 있었다. “김 목사가 신학교 일 때문에 교회를 그만 두어야 하겠다고 하므로 당회가 그렇게 하도록 찬성했다”고 거짓 광고를 했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장로님의 말이 거짓이라고 밝히지도 않았고, 나를 변명하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했다. 다만 너무 갑자기 떠나게 되어 새로 신앙 생활을 시작한 분들에게 죄송하기 그지 없다는 말과 아울러 두 가지 부탁을 했다. 사실 새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신자들이 상당수였다. 첫째로 신자들에게 목사나 장로나 어떤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다만 하나님만 바라보고 말씀만 의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라고 당부했고, 둘째로 영안교회는 사람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만을 나타내는 하나님 중심적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110여명의 교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눌 때 교인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부분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고, 그들 가족들과 친지들은 매우 곤란해 하는 표정들을 지으면서 인사도 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박윤선 목사님이 전화를 거시고 “김 목사님, 어제 큰 승리 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격려해 주셨다. 박 목사님 사모님도 울먹이면서 분함을 토로했고, 박 목사님의 지난날 이야기를 하시면서 나를 위로해주셨다.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신앙생활과 봉사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던 한도정 집사님은 전화를 걸고 “아무리 신학교 일이 바쁘시더라도 그렇게 갑자기 버리고 갈 수 있느냐”고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분개했다. 화요일 오후에는 교인들 여러 명이 내 집에 찾아와서 줄줄 울면서 “이제 영안교회에 안 나오시면 성경공부라도 계속해서 인도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괴로움을 씹으면서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배척을 받으시되 변명도 변호도 하지 않고 입을 열지 않으셨던 주님을 더욱 깊이 흠모하게 되었다. 아울러 인간의 강퍅함과 거짓됨에 비해 길이 참으시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 귀중한 경험을 하게 하신 주님께, 그리고 어려운 중에서도 나에게 평안을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돌렸다.

▲김명혁 목사(우)가 강변교회에서의 목회를 마치고 물러나던 당시 모습. 후임 허태성 목사(좌) 악수를 나누고 있다. ⓒ고준호 기자

넷째, 강변교회를 시작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영안교회에서 8개월 동안의 목회 사역을 마친 후 5, 6개월이 지난 다음, 영안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광장동 워커힐에 있는 한도정 집사님 댁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후에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25동 505호로 옮겨서 성경공부를 계속했다. 성경공부를 함께하던 사람들의 마음과 뜻이 모여 교회를 시작하기로 하고, 1979년 11월 4일 설립 예배를 드렸다. 그때 김재열 전도사 부부, 한도정 집사, 안흥규 씨 부부, 민홍자 씨, 임수연 씨 등 26명(장년 22명, 유년 2명)이 함께 모여서 교회 설립 예배를 드렸는데 박윤선 목사님 부부도 예배에 참석하셨다. 몇 달 동안 현대아파트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980년 4월 6일 강남구 청담동 41-3 삼익상가 3층으로 이전하여 입당예배를 드렸다. 입당예배 설교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하셨다. 사실 나는 신학교 사역과 목회 사역을 하면서 박윤선 목사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1980년 4월 6일 강변교회를 시작하면서 강변교회의 표어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적 신앙생활을 힘쓴다”. “교제”와 “봉사”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서로 돌아보고”는 교제에 힘쓴다는 말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는 봉사에 힘쓴다는 말이었다. 교회 이름을 강변이라고 정한 것은, 한강변에 세워지기도 했지만 강변에 세워졌던 빌립보 교회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었고, 빌립보 교회가 “교제”와 “봉사”에 치중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친밀한 교제와 사랑의 봉사가 부족한 교회는 부끄러운 교회라고 생각한다. 나는 “교제”와 “봉사”를 힘쓰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적 신앙생활을 힘쓰는 것을 교회의 표어로 삼고 30여년 동안 목회를 했다. 성도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 데 주력하면서 목회했다. 나는 신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데 최선을 다했는데, 특히 새 신자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어린이들과 아주 친하게 지냈다. 이웃의 동회와 구청과 학교와도 가깝게 지냈고 불우한 사람들이 사는 구룡 마을과도 가깝게 지냈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다. 나는 다시 목회를 시작한다 해도 여전히 같은 표어를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목회를 할 것이다. 사실 교회는 설교 위주도 아니고, 교육 위주도 아니고, 행사 위주도 아니고, 프로그램 위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성도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힘쓰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성도들과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봉사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회가 주력하여야 할 실천 목표 다섯 가지를 정했다. “예배가 생동하는 교회,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교회, 연합운동을 펴 나아가는 교회, 북한동포를 돕고 선교하는 교회, 청소년을 육성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 요사이 한국교회가 행사와 프로그램에 치중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잘못을 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새 신자들과의 교제를 힘쓰면서 목회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나의 목회의 첫째 특징은 교제였다. 성경은 물론 교회의 특징은 교제와 소통과 편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성도들과의 교제를 힘썼는데, 특히 새 신자들과의 교제에 힘썼다. 주일 예배를 마친 다음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한 후 나는 내 방에서 20여명의 새 신자들과 만나 한 시간 반 정도 대화와 교제를 나누었다. 나는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주로 저들의 말을 들어주면서 친밀한 대화와 교제에 힘썼다. 이 만남과 나눔의 시간들을 통해 새 신자들은 담임목사와 가까워지고 교회에 쉽게 정착하며 신앙이 성장했다. 새 신자들의 고백들을 여기 적어본다. “지난 한 해는 저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강변교회에 오게 된 것이 행복이었고 믿음이 성장하고 가치관이 바뀌게 된 것이 행복이었고 ‘일인 치하’의 가정이 ‘민주적인’ 가정으로 바뀌어 진 것이 행복이었고 직장에서 직원들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진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자기는 50을 바라보는 남자로 ‘행복’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쑥스러웠지만 지금은 떳떳하게 2004년이 가장 행복한 해였다고 다시 말했을 때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함께 앉았던 이모 신자 부부도 공감의 뜻을 표했다. 자기는 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주말에 등산이나 골프로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주일을 보람차게 보내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고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죄책감을 느끼며 죄를 슬퍼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랑을 느낄 줄 알고 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란 사실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자기 부부는 교회와 담임목사를 무척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김모 신자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의 글을 교회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 일부를 여기 적는다. “멋쟁이 김명혁 목사님, 강변교회에서 2004년 한 해 동안 참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강변교회에 대한 그림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그림은 예배였습니다. 어머니의 품 속에서부터 물려받은 신앙이었지만, 이토록 가슴 저리며 예배를 드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2004년만큼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1년간 강변교회에서 제가 누린 예배의 감격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또 다른 그림은 성도님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입니다.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독골공원 앞 횡단보도에서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안내하시는 집사님들의 친절한 미소가, 낯설었던 교회를 향한 발걸음을 가볍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새 가족반의 권사님과 집사님들의 밝은 인사와 관심, 담임 목사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오가는 대화들, 간편하면서도 맛있었던 주일의 점심. 이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목사님, 마음 깊이 존경할 수 있는 목회자가 있다는 것에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 해 동안 감사 기도 중 하나는 저의 발걸음을 강변교회로 인도하신 것이고, 이곳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느끼고, 말씀과 복음을 향한 재도전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목회자는 이와 같은 새 신자들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한 기쁨을 누리기 때문에 목회를 계속하는지 모른다.

여섯째, 어린이들과의 교제를 힘쓰면서 목회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나는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어린이들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 어린이들도 나를 아주 많이 좋아했다. 나는 주일 아침마다 주일 학교 각 부서(유아·유치·유년·초등부)에 들어가곤 했는데 유아부 유치부 어린이들은 나에게 달려들어 안기고 업혔다. 유치부 어린이들 몇 명은 빙빙 돌려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들의 두 손을 붙잡고 빙빙 돌리곤 했다. 은우 라는 3살 난 아이는 주일 날 교회에 오면 꼭 목사님 방에 가자고 했다. 스티커 한 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예배 후 점심 식사를 할 때 거의 매번 예은이와 지원이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엄마가 스티커 받지 말랬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 표정은 스티커를 한 장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스티커를 한 장씩 주면 활짝 웃으면서 좋아했다. 나는 지금도 어린이들과 성도들과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보낸 편지들을 가지고 다닌다. 이중표 목사님의 편지도 어린이들이 써서 보낸 편지도 가지고 다닌다. 사실 성경은 편지이다. 이레는 아기 때부터 내가 안아주며 예뻐하던 아이였다. 내가 내 방에서 안아주면 내 품에 안겨서 한 시간도 두 시간도 편하게 잠을 자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사를 갔다. 5살 난 이레가 성탄절에 편지를 써서 보냈다. “목사님께 메리 크리스마스. 목사님 저 어렸을 때 많이 많이 돌봐주시고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항상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사님 그리고 또 할 말이 있어요. 저 나중에 크면 놀러 갈께요. ♡♡해요. 이레 올림 2004.12.21” 얼마나 예쁜 편진지 모른다.
그 다음 초등학교 4학년의 성혜진이 보낸 편지를 소개한다. 아기 때부터 내가 예뻐하고 사랑하는 믿음과 생각이 깊은 어린이였다. “목사님 제 꿈이 커졌어요. 목사님 요번 성탄절을 생각하면서 선물을 먼저 떠올렸지만 설교 말씀을 듣고 나서 깨달았어요. 예수님이 태어 나신 건 좋은 소식이지만 우리 죄를 위해서 돌아가실 분이었기 때문에 슬펐어요. 그래서 요번 성탄절은 선물만 고집할게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싶어요. 목사님 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목사님 뜻 깊은 성탄절 되세요♪” 착하고 예쁘고 생각이 깊은 글이었다. 혜진이의 편지 또 하나를 소개한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제일 먼저 목사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목사님 저는 학교에서 회장이에요. 애들이 말 안 들을 땐 너무 속상해요. 목사님께서도 저희가 말 안 들을 땐 힘드시죠. 그래서 동시 한 편 지었어요. 목사님 힘 내세요. 성혜진 올림. 동시. 목사님 세상에서 제일 멋진 우리 목사님 멋진 만큼이나 은혜로운 말씀 전해 주시네 세상에서 제일 가는 우리 목사님 예수님의 따뜻한 손처럼 안아주시네. 목사님 사랑해요.”
어린이들과의 교제와 편지는 은퇴 후에도 계속되었다. 내가 강변교회에서 은퇴한지 10개월 후 추수감사주일에 강변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는데 그 때 초등부 어린이들이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들을 써서 주었다. 얼마나 귀엽고 예쁜 편지들인지 모른다. “김명혁 목사님께. 목사님, 벌써 목사님께서 이 교회를 떠나신지 1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탈북하신 목사님께 정이 많았어요. 목사님 정말 사랑해요. 목사님께서 어렸을 적부터 저에게 항상 스티커를 주시곤 하셨죠. 목사님, 저는 2008년 동안 목사님이 때때로 그립곤 했어요. 오늘 다신 만나게 되어서 참 반가웠어요. 지난날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2008년 11월 16일 목사님을 사랑하는 금찬후 올림” “김명혁 목사님께. 목사님 잘 지내셨어요? 목사님 뵈니까 반가워요. 목사님 2년 전에 있었던 여름 성경학교 수련회를 기억해 주시니 기뻐요. 목사님은 은정이를 오래오래 기억해 주세요. 저 은정이도 목사님의 사랑을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자주자주 교회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스티커를 오랜만에 받아서 기뻐요. 자주자주 오셔서 스티커 주세요. 저도 목사님처럼 사랑하면서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아름답게 살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2008년 11월 16일 김은정 올림” “김명혁 목사님 저 하림이에용~♥ 목사님이 이제 교회 설교를 안 하셔서 너무 슬퍼하고 있어요. ♥ ㅠ.ㅠ 저는 김명혁 목사님이 2006년 여름 여름 성경학교 때 오신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 목사님이 다시 오셨으면 좋겠어요 ^^ 저 목사님 좋아요. 목사님 사랑♡ & ♡ ^^ 조아 ♥ 스티커 마니마니 주신거 있잖아요~ 한 번도 안쓰고 중요하니까 스티커 앨범에 모두 다 ~~ 모으고 있어요. 목사님 주시는 스티커 정말 예뻐요~ ♥ ♡♡♡♡X1,000,000 다른 나라에서 전도하실 때 건강하고 힘들지 않으시게 제가 매일 기도해드릴게요. 목사님 ~~ 항상 감사하며 살게요 ♡ 사랑해요 ♡ 목사님을 사랑하는 하림이 올림 ♡” “김명혁 목사님께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 예은이에요. 추수감사주일날 와 주셔서 감사해요. 목사님! 몇 달에 한번씩 와 주셔야 해요. 저는 목사님께 감사한 거이 많아요. 저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하고 강변교회에 와 주셔서 감사하고 스티커 주셔서 감사하고 저희 동생 예림이 기억해주셔서 감사해요 ~ 또 우리 초등부에도 와 주셔서 감사해요. 가끔가다 허태성 목사님께 정이 안 갈 때 목사님이 생각이 나요. 또 그동안 좋은 말씀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 목사님! 사랑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 건강하세요 ♡ 2008.11.16 황예은 올림” “김명혁 목사님! 저 솔림이에요. 전 목사님이 정말 좋아요. ♥ 목사님이 계속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이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원로 목사님이 되시다니 … ㅠ ㅠ 그렇다고 허태성 목사님이 싫은 건 아니네요 ~^^ 꼭 오래오래 만수 무강하셔서 우리 교회에서 항상 매주마다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나라에 가셔서 다치지 않고 잘 전도하시길 기도할께요! 목사님을 너무 LOVE 하는 솔림 올림 ♥♥ 2008.11.16 Sun 다음에 꼭 뵈요. ♡♡♡”.

일곱째, 주일 성수를 강조하면서 목회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나는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교제”와 “봉사”를 강조했지만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강조한 것은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와 “예배”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의 스승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바로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와 “예배”였고 “순교신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회의 실천 목표 5가지 중 첫째를 “예배가 생동하는 교회”로 정했다. 교회 설립에 크게 이바지했던 한도정 집사님이 주일 저녁 예배에 자주 빠진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중하게 “주일 저녁 예배에 자주 빠지면 집사를 그만 두는 게 좋겠다”고 말해서 집사님에게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물론 그 다음부터 주일 저녁 예배에 잘 참석했다. 그리고 저녁 예배에 잘 빠지는 젊은 여집사들보고 “너희도 집사 그만두어야 할지 모른다”고 충고까지 하곤 했다. 사실 요사이는 주일 저녁 예배를 아예 집어치운 교회들이 너무 많다. 방지일 목사님은 그런 현상을 보고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일이 있다. “전에는 주일 아침 예배나 저녁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숫자가 거의 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문제야요. 그리고 주일 아침에 예배 보고 교인들이 헌금 낸 돈으로 점심 먹고 오후 예배 보고 집으로 가니 참 문제야요. 우리 영등포교회도 오후 예배로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데 방 목사 죽은 다음에 바꾸자고 해요, 나 참!”.
교회의 여집사님들 10여명이 유럽여행을 함께 떠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떠나는 날과 돌아오는 날이 주일 오후로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여행 일자를 바꾸라고 말했다. 여행사에서 만들어 준 일정이라 바꾸기도 어렵고 바꾸면 비용도 훨씬 더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집사님들이 단체로 주일 오후에 여행 떠나는 것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많은 논의와 갈등 끝에 여집사님들 10여명은 예정된 대로 주일 오후에 떠났다가 두 주 후 주일 오후에 돌아왔다. 나는 여집사님들 10여명을 모두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주일을 범했으니 두 달 동안 모두 근신하시오”. 교사는 교사의 일을 중단하고 성가대원은 성가대원의 일을 중단하고 집사는 집사의 일을 중단하라고 분부했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여집사님들은 야단법석이었다. 근신처분을 받고 창피해서 어떻게 교회를 다닐 수 있느냐고 야단들을 했다. 차라리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두 달이 다 지나는 동안 다른 교회로 옮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두 달이 지난 다음 여집사님들이 내 방에 찾아왔다. 잘못을 시인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리고 셔츠와 바지를 선물로 가져왔다. 그 일은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교인들에게까지 좋은 교훈을 던져 주었다. 한번은 장로님 한 분이 군에 가 있는 아들을 만나보기 위해 주일날 군부대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나는 비공개적으로 그 장로님도 치리했다. 두 달 동안 장로의 일을 하지 말고 근신하라고 했다. 그 장로님은 그렇게 했다. 사실 나는 한평생 주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가지 않고 종일 교회에 머물렀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나는 주일날 공부나 일이나 여행이나 매식을 하는 일도 없었고 교인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여덟째, 교역자들과 친하게 놀면서 목회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나는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교역자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자주 놀러가곤 했다. 일년에 두세 번 교역자 수련회를 하면서 산으로 바다로 호숫가로 가서 기도와 교제와 즐거움의 시간을 함께 가졌다. 여름엔 물론 눈이 오는 겨울에도 설악산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산들을 찾아 다녔다. 오색약수로부터 개울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좌우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기도 했다. 동해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하기도 했다. 행선지를 미리 알려주지 않고 서울을 떠나 태국의 좀티엔에 가서는, 모두들 놀라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설악산 수련회를 다녀온 교역자 한 사람이 자기가 찍은 사진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들을 교회 홈페이지에 올렸다. “갈매기의 꿈: 갈매기들이 무리지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꿈을 나누듯, 강변교회 14명의 교역자들은 지난 날을 돌아보며 눈물로 감사하며 회개하며 간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새해의 꿈을 나누었습니다. ‘더 높이 날기 위해서!’ ‘주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었나이다’로 시작된 담임 목사님의 통회하시는 눈물의 회개는 모든 교역자들이 자신의 죄를 토하며 눈물 바다를 이루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수련회처럼 눈물로 수건과 휴지를 적시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아침 식사: 아침은 항상 간소합니다. 과일과 성탄절의 케익과 우유. 우유잔을 들고 ‘위하여!’를 외치고 있습니다.” “개도 먹여야 산다: 바다와 산과 강과 호수에 가실 때면 언제나 쓰레기를 줍고, 새를 보면 새에게 개를 보면 개에게 먹을 양식을 나누어 주시는 목사님! 이번에도 어김 없이 점심에 먹고 남은 꽁치를 챙겨 개에게 먹이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풍성한 사랑의 메시지를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강변 성도들에게 (비룡폭포 앞에서): 교역자들은 강변교회 성도들을 고마워하고 칭찬하고 축복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가대, 교사, 직원, 새 신자, 어머니 반, 아이들, 학생들, 청년 모두를 위하여 축복하며 하나님께 간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비룡폭포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강변교회의 부흥 발전을 위하여!를 함께 외쳤습니다.” 물론 수련회가 모두 이처럼 엄숙하지는 않았다. 허물 없이 농담도 하고 놀이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강변교회 교역자들은 수련회를 무척 좋아했다. 다른 교회로 간 교역자들도 그 때를 못 잊는다. 다른 교회로 간 교역자 한 사람이 이런 글을 보내왔다. “목사님! 강변교회가 그립다는 사실은 아마도 모든 교역자들이 강변교회를 떠난 뒤에야 철저히 느끼는 일일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 크크크! ^^(농담입니다). 어제는 교회 봉고차 안에서 단풍을 보고 있는데 집사님 한 분이 ‘참 예쁘죠?’ 하고 물어보았는데 저는 그 말도 못 듣고 있었어요. 왜냐구요? 강변교회에서 목사님이랑 사모님이랑 단풍구경  가며 아! 이쁘다의 감탄사를 맘껏 소리 내었던 분위기들을 생각하느라 못 듣고 있었지 뭐예요. 교역자 수련회를 가든 무엇을 하든 오늘 어땠어요? 느낀점 말해봐요? 말 잘한 사람은 만원 용돈 줄께요? 하시던 말씀들… 모든 것이 그립고 생각이 참 많이 나요. 이 모든 것이 그리움과 동시에 배움이 되어 저희에게 남아있어요”. 목회는 성도들은 물론 교역자들과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기뻐하고 신나게 놀면서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홉째, 원로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들으면서 목회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나의 목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원로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듣곤 한 것이었다. 나는 본래 원로 및 선배 목사님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본받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그래서 강변교회에서 은퇴하기 6년 전부터 매년 11월에 주일마다 교파를 초월해서 교계 원로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들으면서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곤 했다. 주일 아침 예배에 초청한 원로 분들 중에는 방지일 목사님을 비롯해서 김창인, 정진경, 강원용, 김준곤, 림인식, 조향록, 홍순우 목사님 등이 있었다. 교파와 배경이 다른 여러 목사님들의 정제된 보석 같은 말씀들을 들으면서, 강변교회 성도들은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다. 교인들이 무척 좋아했다. 폭이 넓어졌다. 강변교회에 자주 오시던 정진경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 “한 달 동안 강단을 원로 목사님들에게 내어주는 일은 다른 교회에서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원로들을 초청하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원로 초청예배는 세대간의 간격을 좁히는 역할을 하고, 원로들이 친밀한 교제를 하고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므로 교회연합운동에 공헌하며, 교인들에게는 선배들의 신앙을 통해 복음을 배우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이 원로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곤 했다. 교회에서 드리는 소정의 사례와 함께 세 사람의 성도들이 자원해서 준비한 세 가지 선물도 드렸는데, 드리는 성도들이나 받는 원로 분들은 모두 즐거워했다.
 정진경 목사님께서 2007년 11월 4일 주일 강변교회에 오셔서 마지막으로 “바르게 사는 길”이란 제목의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한다. 귀한 고백적인 말씀이었다.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도 나이가 많습니다. 방지일 목사님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제가 21년생입니다. 그런데 오래 살다 보니까 지금은 남은 생애를 어떻게 정리를 할까 그런 생각이 2년 전부터 들었습니다. 요새 늘 생각하는 건 그 동안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러분들의 도우심으로 정말 잘 살았습니다. 고통 없이 살았는데 제가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바르게 살았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은 생애라도 바르게 살아감으로 매듭을 짓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이런 제목을 택했습니다. 여러분, 김 목사님이 지금 우리에게 다 고맙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 한국교회에서 한 달 동안을 낮 예배 밤 예배를 원로들과 중진목사들을 청해서 계속 낮 예배 설교를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교회에서도 없고 아마 세계교회에도 없을 겁니다. 우리 김 목사님의 특별하신 배려고, 김 목사님은 보수적인 신학자요 목회자로 알고 있지만, 그가 하는 일을 보면 이 분처럼 개방적인 분이 없습니다. 우리 원로들이 모이면 고맙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방지일 목사님과 어딜 갔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 목사, 이번에도 강변교회에 가?’ ‘그럼요. 작년에는 제일 꼬래비로 갔지만 이번에는 첫 주일에 갑니다.’ 그랬더니, ‘그 김명혁 목사 아무리 봐도 이상해.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 왜 이렇게 청하는지 몰라… 참 고맙지…’. 그런 이야기 하는 걸 들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올 때마다 성가대 은혜 많이 받습니다. 정말 노래를 은혜롭게 잘 부릅니다. 감사하구요.”
“그래서 오늘 잘 사는 길을 말해야 될 텐데… 잘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왜 꼭 교회야 다녀야 합니까? 왜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서는 바르게 살 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며 또 예수를 믿는다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밥 버포드라는 사람이 쓴 ‘하프타임’, 다시 말해서 ‘전환점’이라는 제목의 책이 지금 세계적으로 바르게 살기운동을 선풍적으로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인생의 전반부는 누구나 다 성공 추구에 모든 것을 바칩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 지식을 얻기 위해, 재물을 얻기 위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열명 중 아홉 명은 잘 살기 위한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있는 사람. 현실을 바로 바라보는 사람,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즉 생애의 성공추구에서 의미추구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에 선다는 것입니다. 젊으나 늙으나 이러한 ‘turning point’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생애 전반에 대한 아무런 점검도 없이 후반의 삶을 사는 사람은 이웃과 사회, 교회와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목적과 수단을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바르게 사는 삶은 첫째,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둘째, 수단이 정당해야 하며, 셋째, 목적과 수단이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노력해서 이 만큼 쌓아놓았으면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다가 하나님 부르실 때 기쁨으로 가겠는가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삶입니다. 잘 사는 게 바르게 사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바로 벌고 바로 저축하고 바로 쓰는 것이 기독교 경제 윤리의 근간이고 바로 사는 원리입니다. 우리는 한세상 살면서 하프타임이 언제인가 생각해 보세요. 전환점이 언제인가 오늘까지 이렇게 해서 이렇게 쌓아 놓았으면 이걸 가지고 이제부터 무얼 할거냐 어떻게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기쁨으로 가겠느냐, 그게 바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게 성공 추구에서 의미 추구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니 이제는 이런 것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잘 사시되 그걸 가지고 바르게 사는 여생이 축복된 생활로 나가길 바랍니다. 강변교회 성도 여러분의 삶이 바르고 축복된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선배들로부터 이와 같은 고백적인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복된 일인지 모른다. 나는 부족하고 부족한 죄인이지만 정진경 목사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 산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김명혁 목사가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북한에 긴급식량지원을 요구하던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열째, 사랑과 봉사를 힘쓰면서 목회하던 때를 되돌아본다. 
내가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교제”와 함께 “봉사”에 주력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막 10:45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고,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의 사랑과 봉사의 삶을 흠모하게 되었고,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의 사랑과 봉사의 삶을 흠모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인 죄인이지만, 주변 사람들과 먼 데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 목회했다. 이웃의 동회와 구청과 학교와 가깝게 지내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고, 불우한 사람들이 사는 구룡마을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다. 매년 12월 말에 구청과 동회가 추천하는 어려운 사람들 50여명을 초청하여 “사랑의 음악회”를 열어 위로하면서 20만원씩 선물을 전달하곤 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나눔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썼다. 1988년 여름 북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라는 나라를 찾아가서 가뭄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서 우물 10개 이상을 파주기도 했다. 1989년에는 방글라데시를 찾아가서 재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안과 병원을 하나 지어주기도 했고, 노재인이라는 영양사 한 사람을 방글라데시에 파송하기도 했다. 1995년부터 홍수와 재난으로 고통 당하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기도 했다. 지금도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돕고 있다. 1999년경부터 불쌍한 연변의 조선족 고아 어린이들 170여명을 돕는 일을 지난 13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다. 2005년 12월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서 재난과 가난으로 고통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하나 지어주고 준공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랑과 봉사 사역에 가장 큰 도움의 손길을 편 사람들은 강변교회 성도들이었다. 아프간의 학교는 전적으로 강변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중국 하르빈 아성의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도 강변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만들어졌다. 감사한 일이었다.
2004년 12월 열한 번째로 열린 “사랑의 음악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정성껏 준비한 수준 높은 음악과 정성껏 준비한 사랑의 선물을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는 우리의 이웃들과 나그네들에게 전달했을 때, 우리 모두는 “사랑 나눔”의 감동과 감격을 느꼈다. 강남구청이 추천한 강남구민 40명, 탈북동포 10명, 노숙자 15명, 외국인 노동자 7명에게 강변교회 성도들이 지난 여름 바자회를 통해 정성껏 마련한 사랑의 선물 봉투(20만원이 든)를 전달했을 때 우리 모두는 뿌듯한 감동을 나누었다. 노숙자 한 사람이 순서에 없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감동적인 보고를 했다. 수 년 전에 받은 사랑의 선물 20만원이 고맙고 귀하게 여겨져서 술 마시는 데 쓰지 않고 아끼고 아끼면서 수세미 장사를 해서 1년 동안에 1천만원을 벌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영등포의 쪽방에서 나와서 목동 아파트에 살게 되었고, 광야교회의 집사까지 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전해준 조그만 사랑의 선물이 그렇게 큰 열매를 맺을 줄은 몰랐다. 초청받은 사람들도 우리도 모두 큰 격려를 받으며 보람을 느꼈다. 마침 한국을 방문한 중국 도문의 안성길 부시장이 그동안 강변교회와 한국교회가 사랑의 선물을 매달 보내며 돌아보고 있는 도문의 고아 학생들 30명을 대신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현장감 넘치는 보고를 들으며 우리는 모두 큰 격려를 받았다. 그리고 도문의 고아 학생 30명에게 보내는 성탄 카드와 사랑의 선물(3만원씩)을 안 부시장에게 전달했다. 권문용 구청장은 친히 관악기를 연주한 후 강남 구민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는 강변교회에 감사의 말씀과 참석자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했다. 강변교회 성가대가 연주한 크리스마스 캐롤은 모두를 신나고 즐겁게 만들었고 마지막에 부른 축복송은 모두를 사랑의 줄로 묶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가수 신형원 씨가 부른 “서울에서 평양까지”와 “더 좋은 날”은 모든 사람들을 큰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사랑의 음악회에 참석했던 강변교회 성도들은 모두 흐믓한 감동과 기쁨에 사로잡혔다. 초등부 어린이는 나에게 이런 메일을 올렸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성혜진이에요. 목사님 제 꿈이 커졌어요. 요번에 사랑의 음악회 때 목사님께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셨을 때 그것을 보면서 나도 커서 목사님이 되어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도와줘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회는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2005년 12월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학교를 세워주고 준공식을 거행한 이야기를 한다. 2003년 7월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을 때 나는 50도의 뜨거운 열기와 먼지투성이 속을 걷고 달리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한국교회가 세워준 3개 학교의 개교행사에 참여하면서, 내가 가지고 간 학용품 선물 가방들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수많은 아프간 어린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학교 하나만 더 지어줄 수 없느냐고 나에게 다가와서 간청하는 압둘라우 장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프간을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9.11 사건 이후 모슬렘에 대한 나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탓도 있다. 결국 나는 2년 동안 강변교회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쿤두스지역 무라취흐 마을에 학교를 하나 세울 수가 있었고, 이 학교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아프간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타직에 본거지를 두고 아프간 사역에 전력하고 있는 이미정 선교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프간에 있다가 타직에 가면 타직이 천국 같고, 타직에 있다가 우즈벡에 가면 우즈벡이 천국 같고, 우즈벡에 있다가 한국에 가면 한국이 천국 같아요”. 나는 황폐한 땅 아프간에 사는 어린이들을 잊을 수 없어서 1,400만원 상당의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2005년 12월 15일 밤 국경을 넘어 ‘지옥’과 같은 아프간에 간 것이었다. 타직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우즈벡에서 15일 새벽 3시에 떠나 자동차로 23시간을 달려서, 우여곡절 끝에 아프간 국경을 넘은 후 또 달리고 달려서 16일 새벽 2시경 아프간 쿤두스에 도착했다. 사실 아프간 국경이 폐쇄되어 있어서 나는 밤에 혼자서 국경을 넘다가 아프간 군인에게  체포되었다. 그러나 국경수비대장 들라워 장군과 20여분동안 대화하면서 나는 그를 설득할 수 있었다. 결국 들라워 장군은 “대우 넘버 원, 현대 넘버 원, 코리아 넘버 원, 노 프라블럼, 오케이”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미국을 극히 싫어하면서도 한국은 좋아하고 있었다. 타직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도 무사히 아프간 국경을 넘도록 허락했다. 우리 일행은 모두 16일 아침 10시 무라취흐 학교 준공식에 참석했다. 400여명의 어린이들과 100여명의 지역 지도자들이 학교로 들어가는 길 좌우편에 길게 서서 우리 일행을 열렬하게 환호했다. 10여 미터를 지날 때 마다 10여명의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종이로 만든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면서 우리들을 뜨겁게 환영했다. ‘할렐루야’를 외치기도 했다.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이윽고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모슬렘 지도자들리 많이 참석했고 주지사와 교육감 등의 환영사가 있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는 내용의 환영사였다. 어린이들이 나와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발음이 정확한 한국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일어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400여명 학생들에게 Korean Church 라는 글이 인쇄된 가방과 티셔츠와 학용품 선물을 나눠주었을 때 저들은 너무너무 좋아했다. 가난의 빛이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귀엽고 예쁜 얼굴들에 행복한 웃음들이 꽃 피어나고 있었다. 1억원을 들여 새로 지어진 학교는 16여개의 교실을 갖춘 아담한 학교였다. 운동장 부지도 갖추고 있었다. 학교 팻말에는 KFH라는 글과 함께 ‘Kangbyun’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의 의도와 요청과는 어긋나는 글자였다. ‘강변’이라는 말 대신 ‘Korean Church’ 후원이라는 말을 넣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런데 아직은 학교 팻말에 ‘Church’ 라는 말을 넣으면 적대와 테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강변’이라는 글자만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할 수 없었다. 다음 번에 짓는 학교 팻말에는 버젓이 “한국교회 후원”이라는 말이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라는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학교를 짓는 데 그리고 사랑의 선물을 보내는 데 기도와 헌금으로 참여한 강변교회 성도들에게 눈물겨운 감사를 드렸다.

▲김명혁 목사는 은퇴 후 작은교회들을 순회하며 격려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열한째, 은퇴 후 “순회 목회”를 하고 있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지난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그 다음 주일부터 지난 5년 동안 매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 한두 곳을 방문하여 교제하고 설교하는 “순회 목회”를 하고 있는데,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평균 3, 40여명 내외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때로는 8, 90여명의 교회도) 방문하고 있는데 피차간 반가움과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며 양무리들을 정성껏 돌아보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과 사모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많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다. 만약 내가 강변교회에 계속해서 머물고 있었다면 나의 시야가 좁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교파와 교단에 속한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교파 의식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개교회 의식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합동이나 고신이나 합신이나 통합 교단만이 옳은 교단이란 생각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내가 개척해서 목회하던 강변교회만이 제일 귀중한 교회라는 생각도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모든 교단의 모든 교회들이 비록 아주 작은 교회들이라도 모두 예수님께서 피 흘려 사신 하나님의 귀중한 교회라는 사실을 점점 실감하게 되었다. 오히려 작은 교회들이 더 귀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을 귀중하게 여기며 사랑하게 되었다. 부족하고 부족한 죄인인 내가 작은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렇게도 좋아하고 고마워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를 받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놀라고 또 놀라면서 하나님께서는 의인보다는 죄인을 사용하시는 참으로 이상하신 분이시라는 사실도 실감하고 또 실감하게 되었다. 작은 교회들을 섬기는 사역자들이 귀한 사역자들임을 발견하고 또 발견했다. 사실 주님께서는 크게 성장한, 그래서 부족한 것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보다는 환난과 궁핍 중에 있던 서머나 교회를 더 귀하게 보시며 칭찬하셨다. 나는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건강하게 자라가려면 큰 교회와 작은 교회, 도시와 시골이 서로 돌아보고 서로 격려하고 협력하면서 균형 있게 자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세상의 유행에 따라서 크고 부요한 것을 너무 좋아하고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도시에서는 큰 교회들과 작은 교회들이 전쟁을 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크고 부요한 것을 칭찬하시는 대신 오히려 가난하고 궁핍한 것을 칭찬하시고 격려하셨는데 말이다.

열두째, “순회 목회”를 하면서 독일의 작은 교회들을 돌아본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은퇴 후 작은 교회들을 돌아보는 “순회 목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독일의 한인교회 목회자들이 “독일에도 작은 교회들이 있으니 와 달라”고 했다. 나는 2008년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독일 슐란트하임 산 속에서 모인 한인연합수양회로 달려갔다. 40여명의 신자들을 가진 5개의 작은 교회들로부터 100여명 이상의 신자들이 함께 모였다. 절반 이상은 유학생들이었다. 다섯 분의 목사님들과 다섯 분의 사모님들도 함께 모였다. 15명 정도의 어린이들도 함께 모였다. 나는 3일 동안 1시간 30분 가량의 긴 설교를 다섯 번 했다. 감성보다 흥분보다 프로그램보다 음악보다 이적보다 체험보다 주님 닮으려고 하는 진실하고 소박한 삶이 가장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님 닮으려고 하는 진실하고 소박한 삶은 버리는 삶이고 찾아가는 삶이고 항복하는 삶이고 사랑을 베푸는 삶이고 제물 되는 삶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런 삶을 프랜시스, 길선주, 이기풍, 주기철, 손양원, 장기려, 한경직 목사님 같은 분들이 살았다고 지적했다. 말씀을 경청하는 참석자들의 마음 가짐이 순수하고 간절하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의 설교를 크게 축복하셨다. 집회 시간마다 젊은이들은 눈물과 아멘으로 화답했다. 금요일 저녁 세 번째 집회를 인도하며 세 번째 설교를 마쳤다. 내가 축도로 예배를 마치자 연합수양회의 준비위원장의 일을 맡은 김익진 목사님이 나와서 간단한 광고를 했다. “혹 강사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라도 좋으니 남아 주시오”. 몇 명이 앞으로 나와서 무릎을 꿇었다. 나는 마이크를 붙잡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도를 해주고 또 해주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20명, 30명, 40명, 50명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기도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흐느끼며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는 별 생각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자기들 형편에 꼭 맞는 기도를 해주었다고 고백했고, 자기들이 기도 부탁을 하려고 했던 기도를 해주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기도를 받은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삶에 대한 예언과 같은 기도들을 해 주어서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으면서 그 기도들을 가슴에 깊이 간직했다고 말했다. 안수기도는 결국 1시간 20여분 동안 계속되었다고 했다. 90여명의 신자들이 모두 나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받았다고 했다. 모두들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받으며 기뻐하며 감사했다고 했다. 사실 나는 30여분 정도 기도해준 느낌이었는데 1시간20여분 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 아이들도 기도를 받으며 좋아했다. 모두가 망극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 때문이었다. 나는 안수기도를 해주면서 나에게 그렇게도 여러 번 안수기도를 해주시던 이성봉 목사님을 생각하며, 이성봉 목사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새롭게 지니게 되었다. 수양회 동안 15명 정도의 어린 아이들과 아주 친하고 즐겁게 지냈는데, 몇몇 아이들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스티커를 두 개씩 또는 세 개씩 받아 들고 좋아했다. 나와 함께 탁구를 치면서 너무 좋아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토요일 오후 마지막 다섯 번째 집회를 인도하며 마지막 설교를 했다. 예배 후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고 줄을 서서 내가 안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젊은 여자 청년들이었지만 남 집사님들도 있었고 독일 남성도 있었으며 목사님들의 사모들도 있었다. 어느 젊은 청년은 나보고 좀 오래 꼭 안아 달라고 했다. 그 청년은 조금 후 다시 내게로 와서 다시 한번 좀 오래 꼭 안아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너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라고 물었다. “저 바이올린 공부하고 있어요”. “그럼 학교에 다니고 있니?”라고 물었다. 옆에 서 있던 목사님 한 분이 “제 며느리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 같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벌써 결혼을 했어요?”라고 말하며 좀 놀랐다. 나는 젊은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면서 저들이 가슴에 지니고 있을지 모르는 “애틋한 향수”를 함께 느꼈다.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가족에 대한, 고국에 대한, 고국 교회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함께 느꼈다. 아니 저들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품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사모의 정”을 지니고 있으면서 나의 품에 꼭 안긴다고 생각했다. 나는 저들이 모두 측은하게 보이기도 하고 예쁘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저들 모두를 품에 꼭 안아 주었다. 나이 지긋한 권사님 한 분도 안아 달라고 해서 꼭 안아 드렸고, 나중에는 김익진 목사님의 사모가 헤어지기 전에 안아 달라고 해서 꼭 안아 주었다. 연합회 수양회의 총무의 역할을 한 이창배 목사님은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나를 배웅하러 나와서 눈시울을 붉히면서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수양회 참석자들이 모두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으며 좋아했다고 말했다. 수양회 때마다 간혹 의견의 일치가 되지 않은 때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외롭고 지쳐있는 다섯 분 목회자들과 사모님들이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불로, 불로” 식의 부흥집회를 했는데 이번에는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준, 주님 닮은 진실한 그리고 헌신적인 삶을 살자고 조용 조용히 호소하는 말씀에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받았다고 말하며, 그것이 오래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참석자들에게 초코렛을 하나씩 나누어준 것이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 때문이었다. 수양회 전날까지만 해도 춥고 흐렸는데 수양회 기간 동안에는 날씨가 따뜻하고 화창했다. 나는 내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날씨가 화창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창배 목사님과 헤어지기 전 공항에서 두 손을 맞잡고 간절하고 뜨거운 감사와 간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앞으로도 주님의 은혜와 위로와 사랑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손이 필요한 자들에게는 주님의 손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품이 필요한 자들에게는 주님의 품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번 독일 나들이에 함께 하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긍휼과 사랑에 눈물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뿐이다.

열셋째, 작은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보낸 감사의 글 일부를 여기 옮긴다.
지난 5년 동안 전국의 수많은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작은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보낸 감사의 글 몇 개를 여기 옮긴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어른이나 어린이들로부터 편지를 받으면 꼭 답장을 하는데 여기서는 지면상 관계로 답장을 싣지 않는다.
“목사님! 돈을 보내주시면서 ‘이 돈은 다른 데 쓰지 말고 건강을 위해 약값으로 쓰라’는 메시지를 받고 저는 성전에서 나와서 울었습니다. 그 눈물은 감사의 눈물이었고 수치의 눈물이었고 아픔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초면에 만난 목사가 예의도 없이 당돌하고 황당하다고 내치지 않으시고 (장기기증을 해서 몸이 아프게 되었다고 말한 것을) 수용하시고 포용하신 그 사랑에 감격의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지난 3월 첫째 주일 굶주린 마음으로 목사님 말씀을 듣고 제가 생각하고 사모한 것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너무도 순수하신 목사님의 말씀 앞에 눈물의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며칠 전 강단에 무릎을 꿇고 울며 기도하다가 깊은 감격의 눈물속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을 통해서 새롭게 동기부여를 주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8년 3월 15일 작은교회를 섬기는 이방주 올림.”
“목사님! 그동안 평안하셨나요? 안동 명동교회 김태금 집사입니다. 봄에 피어나는 연한 순 같으신 목사님 안에 아름답게 풍겨나는 영적인 권위에 가슴이 많이 저렸습니다. 목사님께서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셨는지…. 주님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며 사셨는지…. 귀한 감동과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참으로 부족하고 부족한 제가 감히 그런 삶을 사모해 봅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시는데 그 주님의 강권하심으로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저립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이제는 나의 힘을 빼고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목사님! 귀한 강변교회 호텔 음식을 맛보고 다시금 명동교회의 구수한 된장찌개(^^)를 먹습니다. 구수한 된장찌개 열심히 먹고 하루하루 주님을 사모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2008년 4월 21일 김금태 집사 올림”
“목사님! 온 성도가 울면서 눈물로 드린 예배였습니다. 지난번에도 그러했지만 오늘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예배를 소흘히 여겼는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무시하며 살아왔는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더불어 사랑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았는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실 봉사에 게으르고 인색해 왔는지 가슴 치며 회개했습니다. 큰 깨우침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맛난 떡과 초콜릿도 감사드립니다. 목사님께서는 여전히 아무 것도 받지 않으시니 더욱 송구할 따름입니다. 목사님의 귀한 사역에 큰 열매가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목사님의 귀한 말씀과 보살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2.10.29 김춘기와 전주 미래교회 교우 일동 드림.”
“큰 백향목 향기. 큰 어른 은사님이 손수 요리하여 배설한 말씀잔치에 주님 맡기신 호산나 양들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 남았네요. 하늘만 나 포만감으로 붉은 얼굴빛 양무리들 큰 백향목 아래에서 안식하며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의 설교로 흉내 내지 못할 주님 형상을 은사님의 다섯 번 백향목 향기로 빚으셨네요. 도대체 은사님은 어디서 이 진한 향기가 나오는가? 갸우뚱 고개 숙여 들어다보니 백향목 나이테에  김관주 목사님 길선주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방지일 목사님……. 신앙선배님들의 신앙유산의 나이테들이 총총히 들어있네요. 백향목 잎사귀 성령의 뜨거운 물에 담그니 나이테 속에 들어있는 향기 맛이 품어 내네요. ‘주일엔 외식 안 해요’ ‘남은 음식 싸 주세요’ ‘왜 와요, 내 차가 있는데요’ ‘비닐봉지 하나 주세요 쓰레기 줍게요’ ‘오늘 아주 좋았어요’ 그보다 더 많이 보여주신 행위설교들…. 제자가 끙끙거리며 씨름한 것들을 은사님 오셔서 단번에 해결해주셨네요 . 무엇보다 가르다란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 나이테 하나가 새겨지게 되었네요. 감사 감사 또 감사 고개숙여 은사님 행복 건강 위해, 그리고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로 바뀌길, 이 밤도 내일 밤도 계속계속 두 손 모아 봅니다. 2012.3.28 광주 호산나교회 김규현 드림”
“사랑하는 김명혁 목사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대구평안교회 박치영 목사입니다. 담임목회 초년병인 저에게 앞으로 어떻게 목회해야 할지 반듯한 이정표를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귀하고 귀한 우리 목사님! 한국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들을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주님 사랑, 교회 사랑, 이웃 사랑, 원수 사랑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설교는 은이요, 신학은 동이요, 이적은 철이요, 삶은 금이라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목회하겠습니다. 말로 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삶으로 설교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신 말씀 마음판 깊이 새기고 일평생 목회의 지침으로 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김명혁목사님 목사님께서 오랫동안 우리 곁에 계셔서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전수해 주시고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지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과 한 하늘 아래 신앙 생활 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 축복이고, 목사님의 말씀을 직접 3일 동안 마음껏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목사님! 오랫동안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셔 주세요. 2012.3.1 대구평안교회 어린목사 박치영 올림”
“존경하는 김명혁 목사님, 안녕하세요. 이번 부흥회에서 목사님의 귀한 은혜의 말씀을 들은 평안교회 성도입니다.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제 맘 속에서 절로 흘러 나오는 ‘존경하는’ 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너무 부끄럽지만 전 사실 저희 교회에서 말씀 대부흥회를 한다고 했을 때, 오실 강사 목사님을 보고 살짝 실망을 했었습니다. 목사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이 많으신 원로목사님이 오시면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맘에서요.^^ 하지만 웬걸요. 11시 반 두번째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전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목사님 말씀에 대한 저의 사모함이, 매시간 목사님 말씀을 기다리게 되고 은혜받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깨닫고…. 그렇게 3일을 보낸 것 같습니다. 정말 집에 와서도 드는 생각이 그냥 하루종일 목사님 살아오신 얘기, 신앙 얘기만 들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생각해 봐도 정답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화려하게 설교해서도 아니고 억지로 은혜받게 하려고도 아니고 그냥 목사님 추구하는 삶이, 목사님 신앙의 가치관이, 성품이 그 말씀 속에 묻어나와 제 맘을 감동시키고 정말 정말 될 수도 없고 어렵지만 조금이나마 나도 목사님처럼, 또한 목사님이 그렇게 존경하시는 손양원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길선주 목사님 등이 살아간 신앙의 삶을 정말 1%라도 따라 살아가고 싶다는 맘이 든 것 같습니다. 오늘 금요기도회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2012.3.3 평안교회 성도 올림”
“감사합니다, 목사님! 어제 새해 첫 주일을 깊은 회개와 감사로 기쁘게 지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얼마나 설레고 마음이 떨렸는지 모릅니다. 한 가지 한 가지 말씀을 풀어 주실 때마다 예, 아버지, 예, 아버지, 예, 아버지, 그렇게 살고 싶어요, 꼭 그렇게 살게 도와 주세요……. 아주 절실하고 절절했습니다. 참 좋으신 김명혁 목사님,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우신지요! 눈에 보이는 세상은 꽁꽁 얼고 날도 추웠지만, 필리핀을 다녀오시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오셔서 선포해주신 말씀과 사랑과 섬김으로, 저희의 굳은 마음이 녹고 얼어있던 눈물샘이 터지고 완악한 심령의 닫힌 문들이 주님을 향해 납작 엎드려 열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하시고 축복하여 주실 때 목사님께서 진실로 저희 교회를 기뻐해주시고 사랑해주심이 아주 많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예배 후 저희 황 목사님께서는, 2013년이 끝날때 는 이 선포된 말씀 앞에서 1년을 살아온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안에 감사하자고 더욱 격려해 주셨습니다. 아멘. 목사님께서 올려 주신 필리핀 기행문도 읽었는데, 제게 가장 즐거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름다운 사역과 함께, 목사님께서 손수 음식을 요리하신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사모님께서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오히려 더 아름다우신 이유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 저희를 생각해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이 한 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실 것을 믿고 기도드립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을 늘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13년 1월 7일, 그레이스선교교회 박선희 집사 올림.”

열넷째, 작은교회 아린이들이 보낸 감사의 글 일부를 여기 옮긴다.
내가 지난 5년 동안 전국의 작은교회들을 방문하면서도 여전히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사랑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작은교회 아린이들이 나에게 보낸 편지들을 소개한다. 방문하는 교회마다 신자들 수에 따라 떡 한 개와 초콜릿 한 개씩을 나누어주고, 어린이들에게는 떡과 초콜릿과 함께 스티커 한 장씩을 나누어주곤 하는데, 별 거 아니지만 모두들 그렇게도 좋아한다. 어떤 때는 할머니들도 스티커 한 장씩 달라고 한다. 그 동안 친하게 지낸 예성교회의 어린이들이 나에게 보낸 편지들을 써서 보내곤 했는데, 그 편지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김명혁 목사님께. 목사님 반가웠어요♥ 또♥ 존경해요♥ 꼭 다시 오세요♥ 안녕하세요? 저 성은이에요.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에 3번이나 오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만큼 기뻤구요. 너무 바쁘신데 3번이나 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게다가 5월 9일엔 대공원도 데리고 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이번 설교 좋았어요. 설교 제목도 다 기억해요. ‘용서와 사랑의 길’ 맞죠? 근데요. 기도 부탁이 있어요. 전에 사무실에서 말씀 드렸는데 저희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오세요. 그래서 아빠가 집에도 들어오고 교회도 다니게 해 달라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 엄마께서 돈을 버시는데 저희 엄마 건강도 지켜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저도 늘 기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목사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시간이 되면 남한산성 데리고 가주신다고요. 말만 들어도 얼마나 기뻤는데요. 목사님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2009년 10월 5일 성은 올림”
“목사님께… 안녕하세요? 저 아연이에요! 조아연^^ 기억하시죠? 저번 1월 달에 오셨을 때 제가 일이 있어서 못 왔는데도 절 기억하셔서 참 기뻤어요. 전… 성은이, 소라, 태인이 이런 아이들만 기억하실 줄 알았는데~ 감사하고 정말 기뻐요. 저는 이렇게 목사님께 편지를 쓸 때마다 정말 기분이 아주 좋아요. 그리고 저번에 물어보지 못한 게 있는데 그게 정말 궁금하거든요? 목사님은 언제부터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셨어요? 전 목사님을 보면 언제나 저렇게 얼굴이 해맑으실까 생각해요. 목사님 얼굴을 보면 보는 사람의 마음이 행복해질 것 같아요~ 전 목사님이 존경스러워요. 지금 저희 아빠가 성격이 사납거든요. 저희 아빠 성격이 좋아지게 기도해 주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2009년 10월 5일 ♥목사님을 사랑하는♥ 아연 올림”
“김명혁 목사님께. 안녕하세요? 저 재은이에요. 주일에 교회 오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그런데 선물과 간식까지 가지고 와 주셔서 더 힘드셨을 텐데 힘든 기색 하나도 안 내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목사님 바쁘신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도 부탁해도 될까요? 저희 아빠가 교회 다니시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 부탁 드립니다. 그전에 놀이공원 데려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2009년 10월 5일 재은 올림”
“김명혁 목사님께. 안녕하세요. 저 수현이에요. 교회 오셔서 너무 좋았어요. 다음에도 또 오시면 좋겠어요. 교회에서 받은 사과를 엄마께 드셨더니 진짜 좋아하셨어요. 목사님이 바쁘신데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해요. 목사님이 주신 스티커를 아끼고 있어요. 저는 목사님이 주신 스티커는 참 좋아요. 왜냐하면 보통 스티커는 필요가 없는데 목사님이 주신 거는 좋은 느낌이 나요. 저는 목사님의 사무실이 신기해요. 저 꼭 놀러 갈게요♥♥♥ 2009년 10월 5일 수현 올림”
“존경하는 김명혁 목사님께.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 태인이에요. 이번에도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저희를 위해서 오신 걸 정말 감사히 여겨요. 그리고 1월 11일 11시에 설교 하셨잖아요. 그때에 제목도 다 생각나요. 인생은 편지다 이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목사님을 뵙기 하루 전날에 참 설레었어요. 목사님이 절 바라보는 그 눈이 저를 흥분시켰거든요. 그리고 이번에 저희에게 들려주신 ‘사랑과 용서’, 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제목이에요. 목사님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뀔 수 있었어요. 목사님의 말 한 마디가 저에게 참 소중한 길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옛날에는 많은 나쁜 짓을 했어요. 근데 목사님의 설교 덕분에 제가 돌이켜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김명혁 목사님께 태인 올림”
“높으신 김명혁 목사님께…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 소라에요. 바쁘신데도 저희 예성교회를 방문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동안 목사님께서 설교해 주신 ‘인생은 편지’ ‘용서와 사랑의 길’을 들으면서 어느덧 4번째 만남이 되었어요. 저는 목사님께 드릴 거란 이 편지 하나밖에 없는데, 목사님께서는 음식도 많이 사주시고 놀러도 데려다 주시고 설교도 해주시고, 이렇게 많은 걸 받으니 참 감사합니다. 저는 높으신 목사님과 사진을 찍는다는 게 너무 떨렸는데 사진 찍어 달란 소리를 힘들게 했어요. 그리고 김명혁 목사님과 같이 사진을 찍은 걸 전 액자에다 담고 싶네요. 가끔씩 목사님께 문자를 드리면 전화를 주시는데, 전 날아갈 듯 행복했어요. 그리고 목사님께서 가끔씩 TV와 라디오에 나오시면 전 꼭 봐요. 그렇게 목사님을 저는 존경합니다.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저희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고 살고, 저희 아빠가 다시 저희 집에 오셔서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또 저희 엄마와 아빠가 교회 다니게 기도 부탁이랑, 그리고 아빠 안 계시므로 일하시는 저희 엄마 건강해지시라고 기도 부탁 드리고, 저희 아빠가 갑상선암을 앓고 계셔서 수술하셨는데 건강 회복되시길 간절히 기도 부탁합니다. 목사님과의 추억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목사님 사랑해요♥ 2009년 10월 5일 안소라 올림”

지금까지 부족하고 부족한 사람의 “목회 시절의 추억들”을 되돌아보는 글을 썼다. 참 감사하고 참 행복한 목회 시절의 추억들이다. 모두가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행복한 목회의 추억들이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서 한 목회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주셔서 한 목회이고, 신앙의 선배들이 가르쳐주어서 한 목회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지니고 나타낸 것은 인간적인 실수와 허물과 죄악과 위선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거름으로 사용하시고 정말 많은 은혜를 베푸셨다. 그래서 나는 사도 바울을 따라서 이렇게 고백한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6:20). 그리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나는 의인보다는 죄인이 되고 싶다. 나는 모든 죄인들을 사랑하고 싶다. 나의 간절한 소원과 기도는 은혜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인 중의 괴수인 나를 무조건 불쌍히 여겨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나의 죄를 씻어주시고, 그리고 성령님의 간구하심으로 나를 도와주셔서, 쓸모 없는 죄인을 버리지 마시고 계속해서 심부를꾼으로 써주시기를 간구하도 또 간구하는 것이다. 매일 수시로 중얼거리는 기도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늘도 나를 심부름꾼으로 써 주시옵소서”. 2년 전에 쓴 “나의 소원과 기도”라는 제목의 글을 여기 옮김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의 모든 죄악을 주님의 피로 도말시켜 주시옵소서. 나는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들과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지극한 관심을 가지시고 찾아가서 어루만지시며 돌아보신 것처럼, 나도 작은 교회들을 찾아가서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계속해서 펴게 하시고, 그리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펴게 하시옵소서! 나는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사도 바울과 주님의 제자들을 본받아서,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을 본받아서, 주님과 누군가를 위해서 특히 고통 당하는 북한 동포들과 모슬렘 형제들을 위해서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하시옵소서! 미움과 분노와 증오가 있는 곳에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심고, 분열과 갈등과 대결이 있는 곳에 화해와 일치와 평화를 심는, 작은 거름과 씨앗이 되게 하시옵소서! 유창한 설교나 심오한 신학강의를 하기 전에 주님이 지니셨던 긍휼의 눈물을 지니게 하시고, 주님이 품으셨던 사랑의 심장을 지니게 하시고, 주님이 지니셨던 죽음의 흔적을 지니게 하시옵소서! 죄인 중의 괴수가 주님께서 흘리신 대속의 피와 순교자들이 흘린 충성의 피를 의지하며,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인자와 사랑을 의지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국교회와 한국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북한 동포들과 일본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아멘!”(2011.3.29)

2013년 3월 31일 일요일

[로앤처치]이단감별사들, 대부분 이단조작(2013.03.28)

조용기, 이태화, 윤석전, 류광수, 박윤식, 장재형, 서달석은 대표적인 희생자들
로앤처치 (429)
한국기독언론협회는 3. 28. 한국교회 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한국교회이단 연구의 문제점과 이단 검증에 대한 평가와 제언" 이란 제목으로 기독언론포럼을 가졌다.


김남식교수

첫발제자로 나선 김남식 전총신대 교수는 조용기, 이태화, 윤석전, 류광수목사는 대형교단들이 신중하지 않게 정치적으로 이단으로 정죄했다가 풀려난 사례라며 이단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교회는 정죄하는 기관이 아니라 살리는 기관이다" 라며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오면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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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목사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정환목사는 이단연구가는 탁명환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이후 최삼경과 이단감별사들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교계에 전문적인 학식을 토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머물렀던 이단단체를 비판하는 식으로 시작이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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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조작 주장, 기자들도 동참 

이목사는 최삼경목사는 박윤식목사건을 조작했고, 교회와 신앙의 전정희기자는 이인강목사건을 조작했고, 정윤석기자는 대전 삼성교회를 신천지 이단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단감별사들은 교회정치의 도구로 전락했고 심지어는 연합기관을 이용해서 이단을 정죄하곤 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목사는 이들은 '교회와 신앙'이라는 언론까지 만들어 심지어는 기자들까지 이단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단조작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박윤식목사라며 근거도 없이 이단으로 매도되었다고 했다. 이어 장재형, 변승우, 류광수 목사 모두 근거도 없이 이단으로 조작되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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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발제자로 나선 강춘오목사는 결국 이단감별사들은 돈을 위해서 이단을 조작하고 정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단감별사들이 한달에 수천만원의 돈을 거둬들인다고 했다. 강목사는 이단감별사들이 불굴의 의지로 믿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면 한국교회는 이단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강목사는 김기동목사의 이단정죄도 다시 한번 고려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포럼에 CTS도 취재에 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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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찌감치에는 이단조작언론으로 부각된 '교회와 신앙'의 전정희기자가 나와 취재를 하고 있었고, 그 자리를 떠났을 때, 이인강목사측이 거세가 항의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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