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되고 있는 '백년전쟁' 영상물을 보면서 먼저 놀란 것은 거칠기 짝이 없는 논리 구성과 언어·화면 사용이다. '백년전쟁'은 지난 한 세기의
우리 역사를 '저항 세력'과 '협력 세력'의 대결로 설정하고, 대한민국의 주역들을 '친일파=협력 세력'으로 매도한다. 심지어 독립운동가들도
입맛에 맞지 않으면 서슴지 않고 공격한다.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추대한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지역주의·종교 편향·학벌 중시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역사학계는 진보 좌파라 하더라도 어느 수준 이상이면 한국 근현대사를 '저항' 대(對) '협력', '수탈' 대 '개발' 등 이분법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저항과 협력, 수탈과 개발이 중첩되는 가운데 고난을 뚫고 근대국가를 만들어간 선조들의 분투(奮鬪)에 주목한다. 이런 점에서 '백년전쟁' 제작자들의 역사 인식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백년전쟁'은 대한민국의 주역들을 비난하면서 '개망신' '돌대가리' '미꾸라지' '꼭두각시' '잘렸다' 등 비속어(卑俗語)를 거침없이 사용한다. 또 이소룡 영화를 차용하고 일본군이 '이승만 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 사실(史實)에 기초하지 않은 화면을 집어넣어 보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려고 한다. 이는 객관성과 사실성을 생명으로 하는 역사 다큐멘터리로서는 낙제점에 해당한다.
'백년전쟁'은 학문적 연구 성과와도 거리가 멀다. '프레이저 보고서'를 다룬 2편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가져 온 수출 지향형 발전 전략을 주도한 것이 미국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입 대체형으로 시작된 1차 경제개발 계획이 수출 지향형으로 전환된 것은 국내 시장이 당초 계획을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런 변화를 주도한 사람은 박정희였다는 것이 여러 학자의 견해이다. '백년전쟁'은 또 박정희가 원래 추진했던 수입 대체형 전략이 자주적이고 내향적 발전을 추구하는 민족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학계의 지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동안 밝혀진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이런 내용을 담은 '백년전쟁' 2편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학자를 단 한 명도 등장시키지 못했다.
'백년전쟁'이 문제가 많다고 해도 대처는 신중해야 한다. 혹시라도 공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성공할 수도 없고 논란을 엉뚱한 방향으로 튀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백년전쟁' 제작자들은 '정치적 탄압'이라고 역공을 펼치면서 영상물의 내용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둘러싼 공방으로 몰고 갈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그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의 햇볕을 쬐게 하는 것이다. '백년전쟁'의 내용을 정확한 사실과 넓고 깊은 역사적 시각에 입각해서 따져보는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면 된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역사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나 국민의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책임지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곳이 해야 할 일이다. 학자들도 너무나 편향적인 영상물이 국민의 현대사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이념의 좌우를 떠나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책무다.
이번 '백년전쟁' 사태는 잘만 대응하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역사관 균열(龜裂)을 수준 높게 풀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미래 지향적이고 국민 통합적인 해법을 찾는 일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지혜를 모으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제 우리 역사학계는 진보 좌파라 하더라도 어느 수준 이상이면 한국 근현대사를 '저항' 대(對) '협력', '수탈' 대 '개발' 등 이분법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저항과 협력, 수탈과 개발이 중첩되는 가운데 고난을 뚫고 근대국가를 만들어간 선조들의 분투(奮鬪)에 주목한다. 이런 점에서 '백년전쟁' 제작자들의 역사 인식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백년전쟁'은 대한민국의 주역들을 비난하면서 '개망신' '돌대가리' '미꾸라지' '꼭두각시' '잘렸다' 등 비속어(卑俗語)를 거침없이 사용한다. 또 이소룡 영화를 차용하고 일본군이 '이승만 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 사실(史實)에 기초하지 않은 화면을 집어넣어 보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려고 한다. 이는 객관성과 사실성을 생명으로 하는 역사 다큐멘터리로서는 낙제점에 해당한다.
'백년전쟁'은 학문적 연구 성과와도 거리가 멀다. '프레이저 보고서'를 다룬 2편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가져 온 수출 지향형 발전 전략을 주도한 것이 미국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입 대체형으로 시작된 1차 경제개발 계획이 수출 지향형으로 전환된 것은 국내 시장이 당초 계획을 뒷받침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런 변화를 주도한 사람은 박정희였다는 것이 여러 학자의 견해이다. '백년전쟁'은 또 박정희가 원래 추진했던 수입 대체형 전략이 자주적이고 내향적 발전을 추구하는 민족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학계의 지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동안 밝혀진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이런 내용을 담은 '백년전쟁' 2편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학자를 단 한 명도 등장시키지 못했다.
'백년전쟁'이 문제가 많다고 해도 대처는 신중해야 한다. 혹시라도 공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성공할 수도 없고 논란을 엉뚱한 방향으로 튀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백년전쟁' 제작자들은 '정치적 탄압'이라고 역공을 펼치면서 영상물의 내용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둘러싼 공방으로 몰고 갈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그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의 햇볕을 쬐게 하는 것이다. '백년전쟁'의 내용을 정확한 사실과 넓고 깊은 역사적 시각에 입각해서 따져보는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면 된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역사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나 국민의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책임지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곳이 해야 할 일이다. 학자들도 너무나 편향적인 영상물이 국민의 현대사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이념의 좌우를 떠나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책무다.
이번 '백년전쟁' 사태는 잘만 대응하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역사관 균열(龜裂)을 수준 높게 풀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미래 지향적이고 국민 통합적인 해법을 찾는 일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지혜를 모으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