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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8일 월요일

[기고] 집단적 정신 충격 치유해야 할 우리 민족(2013.01.28)


자본주의 체제서 돈 집착한 南, 권력과 이데올로기 집착한 北
역사의 병적 증상에 사로잡혀… 갈등과 상처 극복하기 위해선
사회제도·공동체의 치유 필요… 삶 통해 서로 이해하고 나눠야

 전우택 연세대 의대 교수사회정신의학
그것이 최근의 일이든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든 정신적으로 아주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정신의학적으로 보일 수 있는 증상이 세 가지 있다. 첫째, 큰 충격 자체는 이미 지나갔음에도 마치 그 일이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불안해한다. 둘째, 사소한 자극에도 극도로 예민하게 놀라며 긴장한다. 셋째, 그런 불안과 긴장을 나름대로 해결해 보려고 특정한 것에 집착한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큰 충격을 받은 개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공동체나 민족이 큰 충격을 받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구성원 전체가 이런 특징을 집단적으로 가지게 된다.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 분단, 6·25전쟁, 냉전 체제하에서 남북한의 극한적 대립, 국가 건설 과정의 격렬한 사회적 갈등 등을 통하여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더 충격적인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입장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 민족은 거대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정신적 특징을 이미 집단적으로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특징은 남한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북한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모두 나타난다. 남한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불안과 긴장을 극복하려고 극단적으로 돈에 집착하였다. 그래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게 열심히 일하였고 악착같이 돈을 벌어 '경제적 기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돈을 벌어 잘살게 되자 이제는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게 되었다. 돈은 있어도 건강한 정신을 회복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불안과 긴장을 극복하려고 극단적으로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집착하였다. 그래서 수령(首領)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하는 주체사상을 만드는 데까지 매달렸고 3대 세습이라는 '정치적 기적(?)'을 만들었다. 굶어 죽는 인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엄청난 돈을 단 한 번의 미사일 발사로 날리면서도 권력과 힘에 집착하는 것은 그들이 과거의 충격에 지금도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분단 58년이 되었다. 두 세대가 흘러가 버린 것이다. 이제는 남(南)과 북(北)의 상처받은 사람들이 치유되어야 할 때이다. 그것이 통일의 준비이고 시작이다. 역사의 병적인 증상을 남과 북의 사람들이 지금처럼 강하게 가지고는 통일이 된다 할지라도 더 큰 갈등과 상처를 서로에게 줄 가능성이 크다.

그 치유의 과정은 먼저 남한에서 시작돼야 한다. 첫째, 사회제도적 차원의 치유가 필요하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화두가 복지였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돈에 대한 집착으로 표현되어 왔던 국민의 가난에 대한 불안이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차원의 문제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둘째, 작은 공동체적인 치유가 필요하다. 서로를 잘 알고 보살펴주며 의미와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작은 공동체적 체험이 사람들의 정신을 회복시킬 수 있다. 셋째, 남북한 사람들이 삶 속에서 실제로 함께하는 치유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곁에는 2만5000명이 넘는 북한 이탈 주민이 있다. 지금 비록 부분적인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들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나눔으로써 마음의 분단을 극복하는 최초의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다. 남한에서 이런 치유들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요청하고 통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적 기적과 민주화의 기적을 이룬 우리다. 분단과 분열이 만들어낸 정신적 상처와 충격을 극복하는 '치유의 기적'이 우리 민족의 새로운 꿈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3년 1월 23일 수요일

[시론] 경제로 해결 안 되는 것들(2013.01.24)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의 핵심은 경제와 과학기술의 강화로 요약된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분야와 지식경제부의 응용연구개발 분야를 떼어내고 기존의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포함시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해 과학기술 분야의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구성하는 것이 쌍두마차의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기획재정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켜 모든 부서의 경제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경제적 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바야흐로 경제일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의 틀로는 치유할 수 없는 신음이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들려오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자. 노인을 가장 잘 섬기던 나라에서 순식간에 노인 자살률과 그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청소년 자살률 역시 가장 높고 생활만족도는 최저이며 학교폭력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출산율은 급격히 저하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 사회로 치닫고 있으며, 살인·강도·강간 같은 강력범죄가 2000년에서 2010년까지 10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경제적 요소가 이들 문제에 일정 부분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세계에서 유례없는 고속의 산업화와 그에 따른 경쟁구도의 도입에 의한 정신적 피폐가 문제의 저변에 놓여 있음을 가벼이 보아서도 안 된다. 경제가 좋아지면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협한 오만이다. 오히려 이들 문제는 우리 사회를 빠르게 잠식해 표면으로 떠오르면서 사회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결국에는 경제동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바란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를 향한 걸음마를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우선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타인을 존중하는 건강한 시민의식, 더 나아가 공생의 가치를 구현하는 공동체 의식은 치열한 입시경쟁의 적자생존 문화 속에서 자라날 수 없다.

 경제는 중요하지만 그런 공약에만 주목해선 안 된다. “공동체 정신을 길러주는 협력학습 기회를 확대하고 실천 중심의 인성교육 내용과 방법을 개발해 공급하겠다”는 공약이 의례적인 허언이 되지 않도록 챙겨야 한다.

 다음으로 과학기술 분야와 더불어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인문학·사회과학을 진흥하기 위한 정책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 관련 위원회·조직에 비교할 때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는 인문사회 분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 직속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국가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있지만 인문사회 분야에는 아무런 위원회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수없이 많은 과학·산업·경제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이 있으나 경제학 이외의 사회과학과 인문 분야의 연구기관은 손에 꼽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효율적 미래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

 활력 있는 사회를 향한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랜 노력과 희생을 요한다. 새로운 정부의 임기 내에 가시적 효과를 낼 수 없는 일이라고 뒤로 밀어두었다가는 사회동력을 회복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를지도 모른다. 필요한 물질을 제공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지도자는 인정을 받지만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는 지도자는 감동을 준다. 인정과 감동이 함께 깃든 박수가 울리는 멋진 날을 우리는 맞을 수 있을까.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양선희의 시시각각] 2012년에 묻어버리고 싶은 것(2012.12.28)

이제 사흘 남았다. 이날들이 지나면 2012년은 과거가 된다. 이즈음에 이 해와 함께 ‘과거의 일’로 묻어버리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증오·분노·세대전쟁·막말· 권력형 비리…. 그런데 어느 것도 ‘자살’보다 강하지 않았다. 지난해 이맘때쯤 일어난 대구 중학생 자살로 올 벽두부터 ‘자살’이 화두가 됐기 때문일 거다. 게다가 최근엔 한진중공업 복직 노조원 자살까지….

 자살은 만연했다. 하루 평균 40여 명이 자살하고, 청소년 네 명 중 한 명꼴(23.4%)로 자살을 생각하며(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학생들은 학교폭력과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투신했고, 한 동네 빵집 주인은 옆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며, 공기업 직원은 납품 비리가 발각됐다고 목숨을 끊었다. 자살은 도처에서 일어났다.

 가족 드라마에서도 자살한 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고등학생 이야기가 한 토막 에피소드로 나오고, 툭하면 주인공들이 벼랑 앞에 서거나 약을 먹었다. 우리나라 연예인 중 자살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게 예능 프로에 나와 자신의 자살 위기를 떠벌리는 연예인들로 넘쳤다. 자살 보도 지침에도 불구하고 자살 보도는 줄을 이었다. 대중매체는 자살을 퍼뜨렸다.

 도대체 자살이 뭐길래. 2주 전 열렸던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심포지엄 주제는 ‘자살에 관한 전통철학적 접근’이었다. 권성 위원장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살에 대해 좀 더 깊은 통찰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자경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불교철학으로 자살을 설명하며, 이 시대가 생명의 존엄성이 절대가치임을 몰라서라고 했다. 시대정신이 ‘생명경시’라서 자살은 삶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쉽게 선택된다. 그런데 자살은 생애의 업에다 자살 순간 살인의 진심(嗔心)까지 더해져 다음 생의 고(苦)는 지금보다 더해진다고 했다. 자살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성기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는 내세관이 없는 유교에선 도를 깨치는 삶이 중요하다는 삶의 철학만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의(義)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생취의(捨生取義)를 중시했다. 의로움을 위해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고, 그런 이들은 의인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중학생이 학교폭력 문제를 제기하면서, 동네 빵집 주인은 대기업 빵집을 고발하면서, 노동자가 회사를 증오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우리 사회의 자살이 사회문제와 얽혀 있는 것은 이 같은 유교적 뿌리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단다. 이런 죽음을 산 자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열사로, 의사로 만들며 이용한다.

 그런데 유교에선 잘 죽기 위해서라도 충실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생취의는 대마도에서 “왜놈 땅에서 나는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지킨 최익현 선생 같은 죽음을 말한다. 분노와 좌절을 못이겨 죽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사생취의가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작금의 자살 현상에 대해 철학도 답을 주지 못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았다. 대구 중학생과 한진중공업 노조원의 유서를 반복해 읽었다. 절망적이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폭력을 당하는 자녀를 안전하게 폭력에서 구해내는 방법은 있는가. 월급을 받지 못하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소시민이 일은 없고 빚더미에 앉아 있다면 어디로 도망쳐야 하나. 낙인 찍히면 끝장이고, 패자는 갈 곳이 없고, ‘뗑깡’쓸 힘이라도 없으면 밟힐 거라는 강박은 무시무시했다. 나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기운 빠지지만 이런 단어만 떠올랐다. 염치·순리·관용·동감·상부상조·측은지심…. 이젠 진부해진 이런 말을 잊고 산 게 우리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한 건 아닐까. 이런 ‘옛 감정’들이라도 복원하면 삶도 조금은 순해지지 않을까. 내년은 더 어려울 거다. 그 고단한 삶에서 뛰어내리고 싶어 할지도 모를 이웃을 향해 푸근한 마음 갖기 실험이라도 하는 게 그나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