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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4일 금요일

[크리스천투데이]황수관 박사 떠났지만, 훈훈한 미담은 계속(2013.01.04)


인터넷에 추모글과 이미지 등 확산 중

▲황수관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세상에 유쾌한 바이러스를 퍼뜨렸던 ‘웃음 전도사’ 황수관 박사가 갑작스럽게 사망했지만, 여전히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와 인터넷상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글과 이미지, 영상들이 빠르게 확산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퍼지고 있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가난한 소년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미지는 어린 황수관이 의대 교수가 되기까지의 입지전적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이미지는 ‘판타(Fanta)’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네티즌이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파일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경북) 경주 근처 안강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에 다닐 돈이 없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1년 동안 산에서 나무를 해 적으나마 학비를 준비했다. 그러다 포항에 가면 공짜로 공부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소년은 세 시간이나 걸어서 학교에 갔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너무 머니 포기하라’고 했다. 소년은 끝까지 우기고 애원해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후 매일 오전 4시에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먼 길을 통학했다.

고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소년은 사범대학에 입학해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 더 큰 꿈을 품고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 의학에 관심이 생겨 의대 청강생으로 들어갔다. 의대 교수들은 그에게 온갖 수모를 줬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간고사 때 시험지를 주지 않자 ‘나도 한 장 달라’며 항의하는 뻔뻔함도 있었다. 그리고 의대생들보다 더 훌륭한 답을 써서 교수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게 고인은 10년 동안 의학 수업을 청강했다. 졸업장도 못 받는 수업을 10년이나 청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의대 졸업장도 없이 연세대 의대 교수 공개채용에 지원했다. 마침내 유학파 출신, 명문대 의대 졸업생 등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연세대 의대 교수가 됐다.

우리는 그를 신바람 박사 황수관이라 부른다.”

누리꾼들은 이 이미지를 보고, 항상 웃던 그의 모습 뒤에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다며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황수관 박사가 출연한 종편(종합편성채널) 방송의 강의가 ‘황수관 박사 이별 강의’라는 검색어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방송에서, 황 박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는 ‘‘Mother’라고 고백했다. 이어 황 박사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랑과 모성애’를 강의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어린 시절 홍역을 앓아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독했지만, 썩은 고름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얼굴과 몸에 생긴 종기를 밤새 닦아내던 어머니를 회상했다.

아울러 황 박사는 북한 기아 어린이 돕기와 동남아시아 쓰나미, 미국 허리케인, 아이티 지진 등 각종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성금을 기탁한 것으로 밝혀져,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온 고인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2012년 12월 13일 목요일

故 박태준 회장, 졸다가 100t 쇳물 쏟은 운전공 집 찾은 뒤…(2012.12.14)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1주기 추모행사 열려]
논문 정리 출판기념회 마련도… 생전 모습·어록 담긴 부조 설치
정준양 "창업정신, 위기 돌파"

1977년 4월 24일 새벽 포항제철소 제1제강공장. 크레인 운전공이 졸면서 운전하다 100t이나 되는 시뻘건 쇳물을 공장 바닥에 쏟아버렸다. 이 사고로 공장의 '신경계(神經系)'라 할 수 있는 전선의 70%가 불에 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재정적 손실은 엄청났다. 이른바 '엎질러진 쇳물 사건'이다. 크레인 운전공은 파면은 물론 법적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 사장은 일본 출장 중 급히 귀국했다. 박 사장은 가장 먼저 크레인 운전공의 집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운전공이 혼자 힘으로 대가족을 부양하기 힘들어 잠을 자야 하는 비번 때도 다른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사연을 듣게 됐다. 사고 원인은 수면 부족이었다. 박 사장은 마음이 아팠다. 그는 크레인 운전공에게 "이 일은 내가 책임진다.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보고한다. 너는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 설치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 부조 앞에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 박 명예회장 부인 장옥자 여사, 장남 성빈씨, 이배용 전 국가브랜드 위원장, 김용민 포스텍 총장(왼쪽부터)이 나란히 섰다. /성형주 기자
포항제철(현 포스코) 설립을 주도한 박태준은 자신에게는 철저하게 냉정했지만, 부하 직원들에게는 따뜻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의지(志)와 옳음(義), 청렴(廉)뿐 아니라 애정(愛)까지 갖고 있는 '현장의 선비'였다"고 했다.

포스코는 13일 오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로비에서 1주기를 맞은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과 관련된 학술 연구논문을 정리한 책 '박태준 사상, 미래를 열다'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최진덕·전상인·김왕배·백기복 교수 등 5명이 공동 집필하고, 평전 '박태준'을 쓴 이대환 작가가 엮었다.

박 명예회장의 모습과 어록이 담긴 부조(浮彫)도 포스코센터에 설치됐다. 이용덕 서울대 교수가 만든 부조는 가로 7.5m, 세로 4m, 두께 1.1m 크기다. 부조 왼쪽에는 '조상의 피의 대가로 짓는 제철소입니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右向右) 해서 영일만 바다에 투신해야 합니다' 등 박 명예회장의 생전 발언이 새겨졌다.

이날 오전 10시에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가 열렸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그냥 직원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 앞에 퇴직이라는 말을 달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직원 여러분,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 속에, 조국의 현대사 속에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의 자부심과 긍지로 간직합시다."

박 명예회장의 생전 마지막 육성이 흘러나오자 참석자 대부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 명예회장은 작년 9월 창립 초기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한 옛 직원 370여명과 만남의 행사를 갖고 "오늘날 눈부시게 성장한 대한민국은 여러분의 피땀 흘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날 추모행사에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박태준 정신, 창업세대의 불굴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혁신과 창의로써 오늘의 위기와 난관을 돌파해 세계 최고 철강회사의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포스코는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인한 철강업계 불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 회장은 추모사에서 "박 명예회장님이 생전에 하신 '나는 저승 가서도 포스코를 지켜볼 거야'라는 말씀이 귓전에 생생하다"며 "강건한 포스코의 전통을 한층 더 강화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경북 포항 본사 대회의장과 전남 광양 어울림체육관에도 분향소를 설치해 고인을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