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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0일 일요일

[이장식 칼럼] 목사직과 생존권(2013.01.21)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베리타스 DB
인권운동은 서양에서 왕권의 남용을 막고 시민의 인권을 자유와 평등권과 함께 쟁취하는 정치운동이었으나 개인의 재산권과 함께 행복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는 생존권 운동으로 되어가서 직업은 생존권에 속하는 것이 되었다.
 
최근 한국의 헌법재판소에서 매춘부로서 정죄를 받고 있는 여성의 인신매매를 개인의 인권에 속한 것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합헌’으로 판정을 내렸다. 즉 살아가기 위한 한 직업의 선택으로서 개인의 생존권 행위라는 해석이다. 인신매매 여성들은 말하기를 자기들은 도적질하거나 남을 속이는 것도 아니고 살아가기 위해 자기들의 몸을 파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것이 자기들이 선택한 직업이며 그것은 자기들의 생존권이라는 말이다.

인신매매의 여성의 직업이 생존권의 문제라고 한다면 한 나라의 기관이나 사업체나 상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먹고 입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가지고 각자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지식과 기술을 팔고 또는 주먹의 힘이나 손발의 힘과 재주를 팔아서 살아가는 것이니 국회의원이나 관공서나 교육기관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UN이 「인권선언」의 조항들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 한 조항은 인권은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직업이 개인의 생존권의 인권이라 하지만 인류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은 정죄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직업인이 생존권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에 기여하는 것 없이 부폐와 타락과 부정을 행하면 여성이 그 몸을 파는 인신매매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사실 오늘 우리 한국에는 매춘하는 여성들보다 더 혐오를 받아야 할 직업인들이 많아 우리나라를 온통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한국 개신교 목사직은 어떤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목사직이 한갖 행복추구의 생존권 행위 방식으로 전락하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과거 교회가 가난해서 목사의 생활이 가난하고 어려웠을 때 목사의 자식들이 목사직을 기피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목사직이 세습할만한 직업이 되었다.

또 옛날 가난한 시대에는 신학교 지원생이 많지 않았으나 교회 목사직의 생활이 유족하게 되자 일류대학교 졸업생들이 신학교에 모여들었고 돈 있는 장로들은 목사 사위를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때 모여대생들이 신랑감의 직업을 고르는 여론조사(?)에서 목사직은 이발사 직업의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목사들이 국회의원이나 정부장관급의 직업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대우를 잘 받는 목사들 중에는 교회와 교계에서 성직의 의무를 바로 행사하지 못하여 교계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사람들이 교계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다. 그들이 자기들의 성경지식이나 신학지식이나 경험이나 명예를 팔아서 살아간다면 그들의 목사 직업이 어떤 직업 범주에 들어갈 것인지 숙고해 볼만하다.

예수님이 매춘부 막달라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을뻔 하였을 때 그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정죄하지 않았으나 다시는 매춘 행위의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그녀가 살아가기 위해 자기 몸 밖에 팔 것이 없었던 것을 가련하게 생각하여 정죄하기 보다 그녀를 새 사람을 만들기 위해 용서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직업을 선택할 때 각자가 가진 것, 가장 값이 나갈만한 것을 내어놓고 자본주의적 자유시장에서 경쟁해 가면서 생존권을 보장받고 있는데 성(性)을 상품으로 내어놓는 여성의 인신매매 행위가 사회에 해를 끼쳐서 정죄를 받아야 한다면 다른 모든 직업인들에게도 마땅히 해당되는 것이고 물론 목사직에도 해당이 된다.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여성의 성매매 행위를 합헌으로 판결한 것을 보고 분개하는 사람들이 많을 터이고 특히 기독교나 다른 종교인들도 같이 분개할지 모르지만 그 판결이 인권에 따르는 의무를 묻지 않는 것에 대한 분개를 한국사회의 모든 직장의 직업인들이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하여 봄으로써 한국사회와 정계와 교계가 정화되었으면 한다. 한국에는 생존권도 보장 못받고 목사직을 수행하는 목사들도 많고 또 목사직을 아예 그만둔 무임목사도 많다. 농어촌의 가난한 교회를 회피하고 떠돌아 다니는 신학교 졸업생들도 많다. 목사직이 생존권 문제인가.

2013년 1월 13일 일요일

[2013 연중기획-한국교회 근본으로 돌아가자] (3) 원로에게 길을 묻다(201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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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긍휼·관용·사랑 초대교회의 삶 배워 세상에 본 돼야”

한국 최초의 기독교교육학 박사로 일평생 후학들을 가르쳤던 주선애(90) 장신대 명예교수. 온누리교회를 창립한 고 하용조 목사 등 장신대 출신 수많은 목회자들은 자랑스레 그녀를 ‘인생의 스승’이라고 불렀다. 탈북자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탈북자들은 그녀를 ‘교수 어머니’라며 따랐다. 장신대에서 은퇴한 지 24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으로 스승을 찾기 힘든 이 시대의 큰 선생님으로 남아 있다. 최근 서울 길동 자택에서 만난 주 명예교수는 크리스천들은 세상 풍조에 저항하며 죽기까지 자기와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올해 한국 나이로 아흔살이 됐습니다. 그래도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활동하라고 건강을 주셨습니다. 골다공증이 있고 허리가 아프지만 특별한 지병은 없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쉽진 않지요. 걸으면 다리가 아파요. 제 나이가 되면 ‘비정상이 정상’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지요.”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가르쳤고 수많은 목회자 제자들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를 진단해 주시지요.

“한국교회는 이미 침체의 초입에 들어갔습니다. 유럽 교회를 따라가고 있어요. 아무래도 초대교회와 같은 생명력이 약해졌습니다. 뭔가 핵심이 빠진 것 같아요. 대부분이 그것을 느끼지 않나요? 십자가에서 용서받은 감격으로 봉사하고 섬기며 예배드리는 부분이 많이 약화됐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너무나 편안하고,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부흥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 부흥을 어떤 방법으로 이뤄야 하는가가 문제지요.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 지도자들부터 새로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역동성과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도자의 책임이 큽니다. 지도자들이 좀더 깊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도처에서 말씀은 흔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사람들의 심령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삶이 병행되지 않은 말씀은 결코 힘 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기준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이 사회의 작은 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 말하지만 진정한 중심의 마음가짐에는 자기 욕망이 들어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지닌 긍휼의 마음을 갖고 사람들을 섬기겠다는 진정한 마음의 혁신이 일어날 때에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역동성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모두가 근본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과연 우리가 돌아갈 근본은 무엇인가요.

“저는 초대교회에서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크리스천들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그 시절의 기독인들의 이미지가 이 시대에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 생기고 래디컬(급진)적으로 불쌍한 사람을 끌어안으며 관용과 사랑의 덕을 생활 속에서 삶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그 삶이 바로 전도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 기독교인들은 뭔가 다르다. 가치관과 삶이 다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라며 궁금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 외에 세상과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삶으로 우리를 보여주지 않는 한 이 사회는 결코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는 순례자라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살다가’ 언젠가는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갈 나그네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세상에서 마음이 떠난 사람들이 크리스천들입니다. 신자에게 이 땅에는 고향이 없습니다. 순례자 의식, 거류민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와 같은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런 순례자 의식을 갖고 살기가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 정체성, 즉 제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예수의 제자’라는 확고한 자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생활 전반에서 모든 가치를 주님께 맞춰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제자라면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물질에 너무 매여 있다보면 그런 제자의식을 갖기 힘듭니다.”

-우리가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을 새롭게 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모양만 본받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에서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자꾸 세상 흐름을 따르다보면 경제와 소비가 최고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거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탐심과 세상 영화, 명예욕, 세상 정욕을 제거하기 위해 나와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려는 자기에게 통렬한 비수를 꽂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새롭게 해서 돌이켜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주십시오. 주십시오’하면서 구하지만 말고 내 속의 죄, 세상을 향한 욕심과 싸울 힘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악의 세력이 강한데도 싸움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싸워야 합니다.”

-대부분이 그 싸움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것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움을 회피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다보니 좀더 편안해지고 싶습니다. 세상적으로도 할 만큼 다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나이가 아흔입니다. 저도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고요. 82세까지 직접 운전을 했습니다. 걸으면 다리가 아파 이제는 운전기사를 두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생활비를 아껴서라도 탈북여성들 구출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태야지요. 요즘 너무나 춥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괴롭습니다. 나는 따뜻한 방에서 잤는데 어젯밤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서 땔감도 없는 북한 동포들이 제대로 잤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고 괴롭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안일함과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다보니 몇 년 남지 않은 이 생을 여행이나 다니면서 즐기다 보낼 수는 없다는 강한 마음이 듭니다.”

-주 명예교수님은 기도의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기를 부어주셔서 우리 영이 하나님의 영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하는 것도 기도의 일종이지만 정말 깊은 기도는 영과 영이 교제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주님 사랑을 느끼다보면 ‘정말 나는 이 땅에서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의 세계가 나의 영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지요.”

-통일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통일은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은혜를 통해서 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개인적·교회적·국가적 노력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복음적인 통일을 꿈꿔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통일 비용도 마련하고 통일연습도 하며 이미 이 땅에 들어온 탈북동포들을 품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신자’는 북한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탈북자들을 돕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탈북자들이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 교회 재건을 위해 헌신하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바라고 싶은 것은 탈북자 지도자 양성에 힘을 써달라는 것입니다.”

-주 명예교수님에게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가서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다 이뤄지는 것입니다. 결국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충성밖에 없습니다. 제게 주신 것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것을 갖고 최선 다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충성스레 해야 합니다.”

-이 땅의 목회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본이 되는 지도자가 되십시오. 본이 되기 위해서는 특권을 누릴 수 있더라도 그 특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이 세상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찾아 거기에 인생을 바치기로 작정한 분들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거기에 관심도 없어야 합니다.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합니다. 대형 교회 목회를 하더라도 좀 더 작은 차를 타시기 바랍니다. 내용이 차면 껍데기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용이 차지 않은 사람들은 외면을 꾸밉니다. 자기 몸도, 교회도 꾸며야 합니다. 목회자들도 한 시대 사용 받다가 모두 고향집에 갈 나그네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앞으로 ‘저 목사님 참 이상하게 산다’며 이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목회자들이 많이 나오기 바랍니다.”

◇주선애 교수=1924년 평양 출생. 평양신학교와 장신대 등을 거쳐 뉴욕대학교 종교교육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우리나라 기독교 교육의 기초를 놓고 많은 목회자와 학자, 교사들을 길러낸 최초의 여성 기독교교육학 교수다. 1966년부터 1989년까지 장신대에서 가르쳤고 은퇴 이후에는 탈북자 지원 사역에 매진하고 있다. 2011년에 한국 YWCA로부터 제9회 한국 여성지도자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장로교 여성사’ ‘주님과 한평생’ 등이 있다.

2013년 1월 7일 월요일

[이장식 칼럼] 2013년 새해를 맞이하여(2013.01.05)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본지 회장) ⓒ베리타스 DB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이다.”(이사야 56:1)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계시의 창문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 후보자 박근혜 여사가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해방 후 반세기 이상의 국민 분열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대통합과 화해와 공생과 민생의 행복을 공약으로 하고 그것을 반드시 실현시킬 것을 약속하고 다짐했다.

이조 조선과 일본 식민통치를 거쳐서 오늘날까지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위의 또는 독점적인 정치를 해오면서 신뢰와 온유대신 힘 겨루기와 온갖 술수와 거짓을 통하여 정권 쟁탈전을 해왔었다가 이번에 한국에서는 물론 같은 유교 전통의 동북아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한국인의 의식의 수준이 높아지고 민주주의식의 큰 발전을 입증하는 것이 되었다.

야훼 하나님이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대로 이제는 "너희가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웠다(이사야 56:1). 그리하여 모든 골짜기가 매워지고 산과 언덕을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 것이다(이사야 40:4). 그는 목자와 같이 그의 양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팔로 품에 안으시며 젖을 먹이는 어미양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야 41:11).”

하나님이 옛 이스라엘과 백성에게 요구하신 것은 첫째 공평이었다. 자그마한 이스라엘 나라와 백성에게도 사회적 공평이 없어서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이 과부와 고아와 병든자들을 누르고 업신여겼다. 제사장들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음에 두지 않아 그의 이름을 더럽히고 영화롭게도 하지 아니했다.(말2:2)

이번 제18대 대통령 선거 시절에 한국의 기독교를 비롯해 모든 종교의 종단이나 교파나 연합체도 어느 정당 후보자를 지지한다는 공적 성명이나 지지 운동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헌법에 일치되게 정교분리의 원칙을 잘 지킨 것이다. 그런데 모 장로교 목사와 성공회 신부 두 사람이 한 정당의 선거참모단에 가담하여 신문지 상에 얼굴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것이며 그들의 이름에 목사니 신부니 하는 직함까지 붙여서 소개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번 선거가 혼탁선거였고 각종 거짓말과 술수가 있었던 만큼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정당원들이 기독교인으로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지낸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고 그를 영화롭게도 못했다. 또 발달된 온갖 미디어 기계의 기술을 통해 저희들의 손가락이 죄악으로 더러워졌고 저희의 입술이 거짓말을 하며, 저희의 혀가 악독한 말을 하였다.(이사야 59:3) 이러한 혼탁한 선거 풍토는 이제 근절되어야 하겠다.

앞으로 한국의 종교들은 국가 정치 때문에 내부적으로 신도들의 분열을 가져오는 일이 없게 해서 한국 기독교는 특히 교계 분열을 가중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그 정권이 선정을 베풀어서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모든 위기를 극복하도록 기도하고 협력해야 한다. 어느 특정 정당에 예속되는 교단이나 종단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다만 국가의 정치가 불의를 일삼거나 악정을 베풀 때는 종교계의 엄중한 경계를 필요로 하지만 종교단체니 교파가 한갖 시민운동에 불과한 운동으로 반정부운동을 펴는 것은 교회의 위신을 해친다. 특히 지난번에 있었던 미국 소고기 광우병 헛 소문에 속은 대중 촛불 시위 같은 것에 국민들이 빠지지 않도록 선도해야 한다.

신앙인이 세부적인 소요에 휘말려 동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그를 영화롭게 해드리지 못하는 일이다. 기독교인은 하늘나라 시민권의 권위와 위신을 지켜서 그 시민권을 박탈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이장식의 성지순례 연재] 예루살렘 비운의 역사(3)(2012.12.27)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교회 사학계의 거목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의 성지순례 연재가 시작됩니다. 이제껏 성지순례하면 당위성에 붙잡혀 그 의미를 놓치기 십상이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성지순례의 의미를 곱씹어 성지순례의 형식 뿐 아니라 내용도 채우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 편집자주

Ⅵ. 제3차 십자군 전쟁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베리타스 DB
이집트의 이슬람 술탄(영주) 살라딘이 1187년  10월에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예루살렘의 라틴왕국이 넘어졌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는 다시 길이 막히게 되어 교황청은 제2차 십자군을 파견했으나 성지회복을 실패했다. 그리하여 1191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Frederic 1세 때 영국의 Richard 왕과 프랑스의 Philip 3세가 출병하여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갔는데 그 황제는  소아시아에서 도강 작전 중 익사하였고, Philip은 중도에서 귀국했으며 Richard 왕이 2년 동안 악전고투하여 살라딘과 강화조약을 맺고 휴전했다.(1192. 9)

강화조약 내용은: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통치 아래 두게 하고,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과 기타의 기독교 성지의 순례를 자유롭게 하고 아코항과 기타 4개 항구는 기독교인 영지로 인정하여 사용케 하고, 예루살렘 성내에 십자군에 가담했던 기사단의 성채는 보존시켜서 주둔시키고, 그리고 기독교인들과 이슬람 교도들 사이의 상거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들이었다.  이 강화조약이 로마 교황청에게는 불만스러워서 제4차, 또 5차의 십자군을 파견했으나 성지회복에 실패했다.

Ⅶ. 제6차 십자군

1228년 6월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Frederic 2세가 24,000명의 군인을 거느리고 성지로 출병했다. 그는 아코항에 상륙해 기독교인들의 환영을 받고 살라딘과 전쟁없는 평화적인 협상을 제안했다. 살라딘은 이제 54세의 노쇠한 사람이었고, Frederic은 34세의 청년이었다. 살라딘은 Frederic의 청을 받아들여 강화조약을 맺었다.

그 내용은: 예루살렘을 기독교인의 영지로 삼고, 기독교인 왕을 두고 다스리게 할 것과 예루살렘 동쪽에 이슬람의 영토로 두고 이슬람 사원 두 곳을 보존할 것과 예루살렘 성 밖의 땅은 이슬람의 영지로 둘 것과 기독교인들의 팔레스틴 전역의 순례의 자유를 보장할 것과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과 기독교 군대가 그 성벽을 지킬 것과 쌍방의 포로들은 교환할 것과 예루살렘에는 기독교인과 유대교인과 이슬람교도가 공존할 것들이다. Frederic과 살라딘의 이 강화조약이 로마 교황청에게는 불만스러워서 제7차, 또 8차 십자군을 파견했으나 실패했다.

제6차 십자군과 이슬람과의 평화조약 이후에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가 자유로웠으나 순례자들이 성지의 현지 기독교인들의 이슬람교도들과의 동화 상태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키는 일이 있어서 이슬람 술탄이 반기독교적인 지하드(성전)을 선포하고 자유항구였던 아코항을 폐쇄하고, 파괴해 유럽의 기독교 선박의 입항을 막고 적대심을 드러냈다.(1290년)

그후 이슬람군이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동로마 제국이 몰락하고 이슬람이 유럽 각지로 진격해 영토를 확대하는 전쟁 시대가 왔다. 이럴 때에 예루살렘과 기타 지역 성지 순례는 부자유할 수 밖에 없었으나 이슬람 정권이 기독교를 박해했지만 박멸정책은 쓰지 않았다. 아무튼 17세기 말경에 와서 이슬람 세력이 유럽에서 완전 축출되었고 팔레스틴을 포함한 중동일대는 터키 술탄제국의 영토가 되었었는제 제1차 세계대전 때 터키가 유럽의 연합군에 대항해 독일과 동맹을 맺었다가 패전해 팔레스틴이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국가 건설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이장식의 성지순례 연재] 예루살렘 비운의 역사(2)(2012.12.24)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교회 사학계의 거목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의 성지순례 연재가 시작됩니다. 이제껏 성지순례하면 당위성에 붙잡혀 그 의미를 놓치기 십상이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성지순례의 의미를 곱씹어 성지순례의 형식 뿐 아니라 내용도 채우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 편집자주

Ⅳ. 이슬람 종교와 정권의 팽창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마호메트가 40세 때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받고, 수도 멕카에 운집해 있던 잡종 종교를 쳐부수어 없애는 전쟁을 일으켜 기원 630년에 이슬람 종교를 창시했다. 유대교와 기독교만은 유일신 종교로서 존속시키는 정책을 섰으나 제한된 선교의 자유를 주었다.

마호메트는 그의 언록인 ‘코란’이라는 경전을 성경으로 삼고 그 종교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과 나라를 무력으로 정복하여 2년 만에 아라비아 반도 절반을 정복했고, 북진해서 다메섹을 점령하고(635) 그리고 예루살렘을 또한 638년에 점령했다. 632년에 마호메트가 죽었으나 그가 계시로 본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던 큰 바위가 예루살렘에 있었는데 그 바위들 가운데 두고 이슬람 사원을 세운 것이 오늘날의 황금색 원옥 사원이다. 그리고 옛 예루살렘 성전 자리가 쓰레기 장으로 되어 있던 곳에 이슬람 사원을 세운 것이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사원인데 이 두 큰 사원이 예루살렘의 이슬람 즉 모슬렘 도시의 표적처럼 되어 있다. 이제 예루살렘에는 이슬람과 기독교와 유대교 교인들이 공존하는 도시가 되었으나 그 도시는 이슬람 정권 아래 통치되었다.

이슬람 정권은 무력으로 중동의 사산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일색의 세상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유대교와 기독교 외의 모든 기존 종교들이 다 멸절하게 되어서 잡신과 우상숭배가 사라진 것은 하나의 공적으로 칠 수 있다.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은 제한된 종교자유를 감수했는데 이슬람 종교를 훼방하거나 이슬람 신도와 결혼하거나 또는 전도하지 못하게 엄명하였고 그 밖의 여러가지 권유사항을 만들어 기독교 교세의 확장을 막았다.

이슬람 정권은 무력으로 중동 일대는 물론, 북아프리카 전역을 점령했고(700) 로마 제국의 영토 2분의 1을 점령했다. 이러한 전쟁으로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의 기독교 성지 순례가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럽의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이 예루살렘 성지의 순례의 자유를 위하여 성지회복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 십자군 전쟁이었다,

Ⅴ. 제1차 십자군 전쟁

1099년에 교황 우르바노(Urbanus) 2세가 예루살렘 성지의 순례의 자유를 위해 십자군 운동을 일으켜 군대를 거느리고 있던 영주들이 군인 5만명을 동원해서 출전하였다. 총 지휘자 보에몽(Bohemund)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과 아들과 조카들과 기타 영주들이 가담했는데 수도사들과 순례자들도 끼여 있었다. 실로 먼 거리의 원정이었으므로 중도에 전사하거나 낙오된 사람들도 많았다. 이슬람 영주들의 성들을 점령하거나 평화적인 협상으로 진군해 가다가 에뎃사 성에 도달하였는데 이 성은 아르메니아인 기독교인 영주가 소유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성의 영주가 십자군에게 양보하였다.

에뎃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최대의 이슬람 도시는 안디옥이었다. 여기는 12km의 긴 성벽과 400개의 무장한 탑이 있는 곳이어서 점령하기 힘든 곳이었는데 그 성 안에 살고 있던 한 기독교 사제가 밤에 성 밖으로 밧줄을 몰래 넘겨주어서 십자군이 용이하게 성 안으로 들어와 성몬들을 열고 하루만에 그 성을 점령했다.

십자군이 유럽을 떠난지 3년이 걸려서 이제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군대의 3분의 1을 중도에서 잃었다. 예루살렘의 성벽은 4km이고 그 성벽은 여러번 개축되어 견고하였다. 어떤 수도사의 권고를 받아 들여서 십자군이 맨발로 단식하고, 3일간 그 성 밖에서 성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아무튼 3일만에 예루살렘 성을 십자군이 점령하고 이슬람 군대를 물리쳤다. 성 안에는 기독교인은 없었고 유대인들이 살해되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병력은 모두 합쳐서 기마병 삼백과 보병 이천이었다. 예루살렘 도시는 무참하게 파괴되었고 방화와 살생이 자행되었다. 예루살렘을 점령한 고드프루아는 라틴 왕국의 왕좌를 거부하고 ‘성묘사원 수호자’라는 명목으로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되었고(1100년) 교황청이 예루살렘을 교황청의 영지로 만들자는 요청을 거부했다.

고드프루아가 죽고 그의 동생 보드앵이 이 작은 왕국의 제1대 왕으로 취임한 후 88년 동안 예루살렘과 그 주위의 십자군 점령 도시들과 항구들이 평화를 유지하고 성지순례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예루살렘 도성은 재건 되었고, 성당들이 서고 그리고 아르메니아인 교회와 희랍 정교회 성당들이 세워졌다.(계속)

[이장식의 성지순례 연재] 예루살렘 비운의 역사(1)(2012.12.19)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베리타스 DB
교회 사학계의 거목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의 성지순례 연재가 시작됩니다. 이제껏 성지순례하면 당위성에 붙잡혀 그 의미를 놓치기 십상이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성지순례의 의미를 곱씹어 성지순례의 형식 뿐 아니라 내용도 채우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 편집자주

인류역사상 한 민족국가의 수도로서 예루살렘 만큼 비극의 역사가 많은 곳이 없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많이 가지만 그 도성의 비운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가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이 유대교 지도자들에게서 미움을 산 가장 큰 까닭은 그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했기 때문이며, 스데반이 유대인의 돌에 맞아 죽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예루살렘 성전이 사람이 지은 집이라는 이사야의 말을 인용해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된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와 더불어 그 민족의 비운의 역사 이야기를 추려서 서술해 보고자 한다.

Ⅰ. 유대인 전쟁(66-73)

로마총독 Flourius가 유대인들의 반로마 저항을 진압하면서 3,000명을 살해한 일이 있은 후 제사장의 아들 Josephus가 기원 66년에 반로마 항쟁을 일으켜서 보병 3만, 기마병 250명을 거느리고 출전했다. 이 군대 중에 직업적인 장병수는 4,500명에 불과했다.

당시의 로마 황제 Nero는 유대의 총독 Vespasian을 시켜 반란군을 진압하게 했다가 그가 68년에 죽고 Vespasian이 황제가 되어 그의 아들 Titus를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해 싸우게 했다. Titus는 35,000명의 병력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6개월 동안 포위하여 기원 70년에 성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시리아의 로마의 지사는 갈릴리 지방에서 많은 유대인들을 살해했다.

예루살렘 성과 함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성전 제단 주위에는 제사장들의 시체와 함께 그들의 피가 강물처럼 흘렀고, 100만 가까운 시미들 중에 이미 피난해 나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 시민이 살해되었고, 군량미를 색출하던 유대인 병사들의 횡포로 시민들은 아사 지경이였다. 심지어 어린 아이의 손에 쥔 빵조각까지 빼앗고는 아이를 땅에 패대기 치듯 던졌다.

유대인의 여러 당파가 하나가 되어 항쟁했으나 불가항력적이었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사전 경고대로 일찍 다른 도시로 미리 피난해 갔다. 이 비극의 참상을 유대인 전쟁을 일으킨 Josephus가 저술한 책에서 자세하게 진술되어 있고, 그는 Titus에게 항복하고 로마로 끌려가서는 Titus가 로마 황제가 되어 있을 때 로마 시민으로 귀화해 우대를 받았다. Titus는 사도 요한의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뿔단린 두마리 짐승의 하나인데 그의 동생 Domitian과 같이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했다.

Ⅱ. 하드리안 황제의 예루살렘 점령

기원 136년에 유대인 코크바라는 사람이 자칭 별의 아들이란 이름을 가지고 반로마 항쟁을 시작했다. 하드리안 황제는 군대를 파견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완전히 파괴했다. 이 당시 로마 제국에는 기독교의 교회도 많았고 박해 아래서도 교회가 성장하고 있었으므로 예루살렘에는 교회들도 있었고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 교회, 곧 성묘 교회가 있었는데 하드리안의 군대가 그 성묘 교회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하드리안 황제의 신전을 세웠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다 축출돼 유대민족의 이산과 세계 각지의 유랑의 운명이 시작되었다. 하드리안은 예루살렘을 이교도시로 만들고, 예루살렘이란 도시 이름을 바꿔서 아엘이아(Aelia)라고 부르게 했다.

Ⅲ. 콘스탄티우스 황제의 예루살렘 복구

기원 313년의 밀라노칙령에 따라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기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이제 기독교의 회복으로 예루살렘 도성의 기독교의 재건축이 이뤄졌다. 예수의 성묘 사원이 재건되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기독교가 유대교와 유대인 박해하는 것을 금했다. 이제 예루살렘은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이 공존하는 도시가 되었고, 물론 유대교가 기독교를 박해할 수 없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의 모친 헬레네가 예루살렘을 순례하여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발견하였다고 하며, 그 십자가에 금은 보석을 박아 십자가 경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교회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와 칼타고 교회와 나란이 5대 교회의 하나로 성장해 갔다. 그리고 이스라엘 각지에 교회당들이 많이 섰고, 가이사랴에도 콘스탄티우스가 교회를 세웠다.(계속)

2012년 12월 13일 목요일

故 박태준 회장, 졸다가 100t 쇳물 쏟은 운전공 집 찾은 뒤…(2012.12.14)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1주기 추모행사 열려]
논문 정리 출판기념회 마련도… 생전 모습·어록 담긴 부조 설치
정준양 "창업정신, 위기 돌파"

1977년 4월 24일 새벽 포항제철소 제1제강공장. 크레인 운전공이 졸면서 운전하다 100t이나 되는 시뻘건 쇳물을 공장 바닥에 쏟아버렸다. 이 사고로 공장의 '신경계(神經系)'라 할 수 있는 전선의 70%가 불에 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재정적 손실은 엄청났다. 이른바 '엎질러진 쇳물 사건'이다. 크레인 운전공은 파면은 물론 법적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 사장은 일본 출장 중 급히 귀국했다. 박 사장은 가장 먼저 크레인 운전공의 집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운전공이 혼자 힘으로 대가족을 부양하기 힘들어 잠을 자야 하는 비번 때도 다른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사연을 듣게 됐다. 사고 원인은 수면 부족이었다. 박 사장은 마음이 아팠다. 그는 크레인 운전공에게 "이 일은 내가 책임진다.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보고한다. 너는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 설치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 부조 앞에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 박 명예회장 부인 장옥자 여사, 장남 성빈씨, 이배용 전 국가브랜드 위원장, 김용민 포스텍 총장(왼쪽부터)이 나란히 섰다. /성형주 기자
포항제철(현 포스코) 설립을 주도한 박태준은 자신에게는 철저하게 냉정했지만, 부하 직원들에게는 따뜻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의지(志)와 옳음(義), 청렴(廉)뿐 아니라 애정(愛)까지 갖고 있는 '현장의 선비'였다"고 했다.

포스코는 13일 오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로비에서 1주기를 맞은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과 관련된 학술 연구논문을 정리한 책 '박태준 사상, 미래를 열다'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최진덕·전상인·김왕배·백기복 교수 등 5명이 공동 집필하고, 평전 '박태준'을 쓴 이대환 작가가 엮었다.

박 명예회장의 모습과 어록이 담긴 부조(浮彫)도 포스코센터에 설치됐다. 이용덕 서울대 교수가 만든 부조는 가로 7.5m, 세로 4m, 두께 1.1m 크기다. 부조 왼쪽에는 '조상의 피의 대가로 짓는 제철소입니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右向右) 해서 영일만 바다에 투신해야 합니다' 등 박 명예회장의 생전 발언이 새겨졌다.

이날 오전 10시에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가 열렸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그냥 직원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 앞에 퇴직이라는 말을 달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직원 여러분,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 속에, 조국의 현대사 속에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우리 인생의 자부심과 긍지로 간직합시다."

박 명예회장의 생전 마지막 육성이 흘러나오자 참석자 대부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 명예회장은 작년 9월 창립 초기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한 옛 직원 370여명과 만남의 행사를 갖고 "오늘날 눈부시게 성장한 대한민국은 여러분의 피땀 흘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날 추모행사에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박태준 정신, 창업세대의 불굴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혁신과 창의로써 오늘의 위기와 난관을 돌파해 세계 최고 철강회사의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포스코는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인한 철강업계 불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 회장은 추모사에서 "박 명예회장님이 생전에 하신 '나는 저승 가서도 포스코를 지켜볼 거야'라는 말씀이 귓전에 생생하다"며 "강건한 포스코의 전통을 한층 더 강화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경북 포항 본사 대회의장과 전남 광양 어울림체육관에도 분향소를 설치해 고인을 추모했다.

[이장식 칼럼] 돌로써 떡을 만들지 말라(2012.12.12)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베리타스 DB
그동안 한국교회의 쇄신에 대한 갈망과 함께 한국교계의 온갖 비리와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자들도 한국의 정계, 경제계, 관공계, 교육계 등등 각 분야의 쇄신과 변화의 대책들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누가 어떠한 대책으로 그 쇄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이다. 노아 때의 홍수나 아니면 6.25 때의 정변과 같은 것이 있어야 쇄신이 될 것인지 실로 암담한 현실이다.
 
지금 한국 국민들은 이 쇄신문제를 여야로 또는 보수와 진보파로 나눠져서 전쟁을 벌리고 있는데 기독교 목사들과 지도층 인사들도 그처럼 나눠져서 쇄신을 위한 전쟁에 가담하고 있어서 이것이 한국교계의 또 하나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국교회의 쇄신이나 한국사회의 쇄인이나 간에 근본적인 쇄신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종교인이 세속적인 어떤 대책을 내세우거나 가담한다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기독교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본성과 타락성을 근본 문제로 삼는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의 경륜(design)을 고려해야 한다.

예수님이 새 시대 곧 하나님의 나라를 구상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으면서 시장했을 때 사탄이 와서 옆에 있는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다. 예수님 생각에는 돌은 튼튼한 성벽을 쌓거나 아름다운 건축자재로 쓰일 것인데 그것을 떡이 되게 변질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설계에 어긋나는 것으로 알고 그 유혹을 물리쳤다.

한국교계나 한국사회의 쇄신의 근본적인 일은 각계 각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각기의 직업 또는 직분의 본래적 사명과 역할 또는 몫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감당하고 수행하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목사 또는 성직자라는 영명 ‘Clergy’라는 말은 몫이라는 헬라어 ‘Kyros’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나의 몫입니다"라고 하는 삭발한 신부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목사직은 돌처럼 본래의 수행해야 할 몫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돈을 만들고 또 명예와 어떤 감투를 쓰는데 사용하는 것은 돌로써 떡을 만드는 일이다.

한 나라의 통치자나 관공리나 국회의원이나 기업인이나 교육가나 그 밖의 모든 직업을 그 본래의 몫과 사명을 변질시켜서 물욕과 명예욕과 사치와 방탕의 재료를 변질시키는 곳에 부패와 비리와 타락이 있는 것이다.

모든 직업은 신성한 소명이며 천직이라는 것이 기독교의 신념이다. 그런데 교계나 정계나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이 자기 소명의 몫을 하지 않고 있다. 천직을 버리면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한국교계나 한국사회에서 이제는 잣나무가 가시나무를 대신하며 해석류(海石榴)가 질려(蒺藜)를 대신해 창조주 하나님의 명예가 살아나면 모든 것이 쇄신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