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鄭 단일화 때 협상 대표였던 여론조사 전문가
'여론조사 단일화 왜곡·조작 일어나 민주주의 아냐'…
文·安의 '새 정치'
이미 빛 바랬다
주용중 정치부 부장대우
20년 경력의 여론조사 전문가였던 김씨와 당시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이 11월 15일 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합의문 8개 항을 번갈아 읽자 양측 인사들은 "와" 소리치며 환호했다. 하지만 열흘 뒤 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패배하자 정 후보 측 일부 인사들은 "여론조사 전문가라더니 민주당의 '꾼'들에게 당한 것 아니냐"며 김씨를 원망했다. 김씨는 21일 기자에게 "그때는 과학으로서의 여론조사만 생각했지 온갖 입김이 얽혀드는 정치로서의 여론조사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김씨는 여론조사에서 손을 뗐다. 의류·생수사업을 하다 지금은 SNS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지론은 "여론조사로 대통령 후보를 뽑으면 왜곡과 조작·동원이 벌어진다. 정당정치의 기반을 흔들게 된다. 민주주의가 아니다"는 것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팀은 최근 김씨가 평생 후회스러워하는 경험을 되풀이하고 있다. 협상이 중단됐다가 다시 시작됐고, 협상팀이 교체된 것도 10년 전과 똑같다. 여론조사 설문을 놓고 서로 벼랑 끝 전술로 버티면서 언론에 협상 내용을 먼저 흘렸다고 상대를 비난하는 행동까지 판박이다. 이런 곡절 끝에 두 후보가 만일 단일화에 성공하면 언제 다퉜느냐는 듯 부둥켜안으며 웃을 것이다. 노무현·정몽준처럼 러브샷을 할지도 모른다. 대선은 그럭저럭 흘러갈 것이고, 야권 단일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두 후보의 '새 정치' 구호는 이미 빛이 바랬다. "국민이 참여하는 방식의 단일화를 원했는데 시간적으로 어려워진 것 같다"는 문 후보의 말은 차라리 솔직하다.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를 여론조사 방식으로 하는 데 대해 일말의 반성이나 변명도 한 적이 없다. "정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해온 그가 민주당 대의원과 안 후보 후원자 각각 50%씩으로 배심원단을 구성해서 공론조사를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난번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문 후보를 찍은 대의원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건 공지(公知)의 사실 아닌가.
두 후보를 대변하던 사람들도 옹색해졌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여론조사에 합의했다가 패배하면 지지층들이 쉽게 납득하겠는가"라고 말했던 문 후보 측 김부겸 선대위원장은 이제 어떻게 유권자들을 납득시킬 것인가.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단일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정답일 것"이라고 했던 안 후보 측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은 '정답'을 택하지 않은 안 후보를 뭐라고 옹호할 것인가.
문 후보와 안 후보 측은 단일화 마감 시간에 쫓겨서 차선(次善)이나 차악(次惡)의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만의 단일화는 차선이나 차악이 아니라 선거 민주주의에서 최악(最惡)의 사례다. 여론조사 기관들까지 정치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블랙홀이다. 이제 두 후보는 "정권 교체를 위해, 내가 단일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릴 수 없는 처지"라고 솔직히 얘기해야 한다. '새 정치 공동선언문'을 들먹이는 정치 개혁 강론은 이제 자제해 줬으면 한다.
시간이 흘러 두 후보의 협상 대표 중 누군가가 다시 "국민을 혼란시킨 죄를 졌다"고 고백할지 모른다. 김행씨와 같은 용기를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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