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마음 온몸으로 듣고 온몸으로 읽지 못한 두 후보
정치 초짜 아니라는 건 증명했지만 '승리 방정식' 고장 내
강천석 주필
50년 전 시골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은 청와대 경호관보다 몸수색이 엄격했다. 연주회장 입장에 앞서 누르면 똑똑 소리가 나는 볼펜은 모조리 압수했다. 음악이 잠시 끊기듯 보이더라도 함부로 손뼉을 치지 말고 선생님이 한쪽 손을 들면 그때 손뼉을 쳐야 한다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사실은 연주회 전 선생님이 교실로 들고 오신 전축으로 베토벤 '운명교향곡',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序曲)'을 몇 번씩 들으며 예행(豫行)연습도 했다. 그러나 세상 처음 보는 교향악단의 으리으리한 규모와 교과서로 이름만 봤던 고명(高名)한 작곡가에게 주눅 든 우리는 예습한 걸 깡그리 잊고 말았다. 엉뚱한 곳에서 터진 박수로 음악은 끊겼다 다시 이어지길 거듭했고 그때마다 우리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처박았다. 지휘자가 관객 쪽으로 몸을 돌려 웃음을 머금고 껴안는 자세를 취한 건 그 순간이었다. 시골 학생들의 무안함을 달래주려는 배려였다. 등에도 눈이 달린 지휘자의 훈훈한 마음씨가 연주회장을 따뜻하게 데워줬다. 학생들은 늙어 60대 중반 나이가 된 지금도 '김만복 선생'이란 당시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자 이름을 잊지 않고 간혹 입에 올리곤 한다.
서양에선 흔히 나라 지도자를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한다. 국민에게 등을 보인 자세로 수십 수백만 공직자를 지휘하며 나라를 이끄는 국가 지도자 모습이 교향악단 지휘자와 흡사하다 해서다. 독일에선 '몸 전체가 귀(ganz Ohr)'가 될 수 없는 사람은 교향악단 지휘자가 될 꿈을 꾸지 말라고 한다. 누가 지휘를 맡느냐에 따라 같은 교향악단이라도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고 한다. 자격 없는 지휘자가 여러 악기(樂器) 파트 가운데 어느 한 파트 소리만 끌어올리고 다른 파트 소리를 죽여놓으면 곡(曲)을 엉망으로 만들고 만다. 악보(樂譜)가 있는데 누가 지휘하든 무슨 상관이냐는 건 무지한 소리다.
국민은 오케스트라 악기와 닮았다. 누가 켜고, 누가 불고, 누가 지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낸다. 나팔 소리만 사랑하는 지휘자가 음악을 망치듯 국민 한쪽 목소리에만 귀를 여는 대통령은 나라를 망친다. '온몸이 귀' '온몸이 눈'이 돼 국민 마음을 듣고 읽을 수 없는 정치인은 대통령 꿈을 스스로 접을 줄 알아야 한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천진난만한 정치 초짜가 아니라는 건 분명해졌다. 권력 의지도 질겼다. 걸핏하면 욱하고 판을 엎고 손 털며 일어서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랐다. 가슴에 담은 구렁이 숫자론 수십년 정치를 해왔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에 버금가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단일화는 이뤄졌지만 두 후보는 '국민 감동'이란 원군(援軍)을 잃었다. 테이블을 마주한 두 후보는 더 이상 백수(百獸)의 왕인 호랑이와 사자로 비치지 않았다. 호랑이와 사자는 목숨을 건 싸움을 해도 공연히 상대를 툭툭 건드리거나 경쟁자 뒤편에 구멍을 파놓고 함정으로 몰지 않는다.
그런 건 20세기 초 할리우드 주변 갱들 간 세력 다툼인 '비겁자 게임(chicken game)'에나 나오는 수법이다. 양쪽 보스들이 자동차를 전 속력으로 마주 보고 몰아 공멸(共滅)하거나, 충돌 직전 어느 한쪽이 핸들을 꺾어 비겁자로 몰리거나, 아니면 양쪽 모두 차 머리를 돌려 목숨은 부지할망정 보스 자격을 잃게 되는 게 무법자 게임이다. 어찌 됐든 단일 후보는 문재인 후보로 결정됐다. 하지만 '단일 후보 지지 크기=문재인 지지+안철수 지지+알파(α)'라는 공식이 그대로 작동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박근혜 후보 캠프가 김칫국으로 건배(乾杯)하며 자축할 처지는 못 된다. 박 후보가 '온몸이 귀'가 되고 '온몸이 눈'이 돼 국민 마음을 듣고 읽고 있나 자문(自問)해 보면 알 일이다. 12월 19일 누군가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다. 시골 학생들이 50년이 흐른 후 '서울시향 지휘자 김만복 선생'을 지금도 그리움과 고마움을 담아 퍼올리듯 국민이 먼 훗날 다음 대통령 이름을 떠올리게 될까. 암만 봐도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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