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순회특파원
그의 공식 답변은 이렇다. 인터넷 개방의 중요성을 설파하러 갔다는 것이다.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온 직후 공항에 모인 기자들에게 그는 “폐쇄적인 인터넷 정책이 북한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있으니 이런 정책을 철폐해야 한다고 북한 관리들을 설득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긴밀히 연결되고 있는 시대에 북한의 폐쇄적 정책은 고립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인도 뉴델리에서 강연을 하면서도 같은 말을 했다. 한국의 방송사들과 은행이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이버 공격을 받은 직후였던 만큼 청중의 관심이 그의 방북 배경에 쏠리는 건 당연했다. 북한을 방문한 진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인터넷의 힘에 관한 희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며 “인터넷 개방이야말로 북한을 경제성장으로 이끄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점을 북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고 말했다. 요컨대 인터넷 전도사 역할을 하러 평양에 갔다는 얘기다. 정말 그럴까.
며칠 전 임을출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그는 “슈밋 회장이 북한에 간 진짜 이유는 북한 IT(정보기술) 인력을 활용한 비즈니스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실리콘 밸리를 떠받치는 핵심 인력이었던 인도의 IT 인력을 대체할 후보로 북한의 IT 인력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 IT 업체들은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의 상당 부분을 인도에 아웃소싱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임금이 크게 오른 데다 인도 업체들이 독자적인 브랜드를 갖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인도를 대신할 새로운 인력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북한 IT 인력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양과학기술대 명예총장을 맡고 있는 박찬모 전 포항공대(포스텍) 총장은 북한의 소프트웨어 실력은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고 말한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의 경우 포스텍 학생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한다. 독일인이 투자해 만든 북한 유일의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인 노소텍이 최근 개발한 스마트폰 게임용 앱은 독일에서 인기 순위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2009년 7월 청와대·백악관 등 한국과 미국의 35개 주요 사이트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 북한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실리콘 밸리는 북한의 IT 인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탈북자 출신 IT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1만2000명 이상의 해커 부대를 양성해 놓은 상태다. 초보적이지만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쏘아올리는 과학기술 수준도 미 기업인들에게는 인상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더 흥미로운 얘기도 들었다. 금·마그네사이트·희토류 등 북한 내 주요 지하자원 개발에 관심을 가진 미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발전설비 제작업체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은 북한에 화력발전소를 지어주는 대가로 금광 개발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GE의 고위인사가 지난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으로 협상이 중단 상태에 있다.
기회를 찾아 도전하고, 자기 책임 하에 위험을 무릅쓰는 기업가 정신은 미국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 중 하나다. 그 힘은 때로 정치의 벽을 허물기도 한다. 미 기업인들이 보기에 북한은 인력과 자원의 마지막 보고(寶庫)일지 모른다. 중국이 깃발을 꽂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며 조바심을 내고 있을지 모른다. 당장은 정치의 벽이 높지만 냉정하게 국익을 따져 미 정부 스스로 문턱을 낮추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북한의 20대 젊은 지도자는 당장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법석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겉 다르고 속 다른 세상사의 일부일지 모른다. 그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하는 것을 김정은 체제의 새로운 전략 노선으로 채택했다. 핵 보유로 재래식 군사력에 추가 지출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그 돈을 경제 건설에 돌리겠다는 것이다. 군사적 긴장의 수위 조절에 들어가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미 기업인들이 북한 사람들과 평양에서 악수하는 장면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개성공단만 움켜쥐고 있으면 그만인가.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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