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3일 수요일

[태평로] '일본 왕따' 외교는 안 된다(2013.01.23)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4강 중에서 맨 먼저 중국에 특사단을 보내자 일본이 내달 25일 대통령 취임식에 아베 총리가 불참하기로 하는 등 복잡한 심사를 드러내고 있다. 박 당선인은 일본이 보란 듯이 중국과 '밀월 무드'를 연출하고 있다. 당선 확정 다음 날 일본 대사보다 중국 대사를 먼저 만났다. 과거 대통령 당선인들은 미국 대사에 이어 일본 대사를 만났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일본이 중국에 밀려났다. 이어 박 당선인은 첫 특사 파견국으로 중국을 선택했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당선 축하 화환과 메시지도 일본이 맨 먼저 보냈는데…" "한국에서 일본이 중국한테 밀린 것은 19세기 말 일청전쟁 이후 처음"이라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일본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통령 당선인 특사가 어느 나라를 먼저 가느냐는 것은 의도와는 관계없이 해당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차기 정권의 외교 자세를 가늠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읽힌다. 분명한 것은 박 당선인이 작년 여름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일 관계를 복원하는 데 일정한 배려를 하지 않겠느냐는 일본 측의 기대감이 급속도로 사그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한파(知韓派)'라는 일본인들도 "한국이 중국만 우대하고 일본을 무시하고 있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는다. 한국에서 주요국 국명을 언급할 때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순서가 '미국·중국·일본…'으로 바뀐 데 당혹감을 드러내고, 'G2(미국과 중국)'라는 표현에 대해선 거부감이 강하다.

박 당선인이 한·중 관계를 명실상부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겠다고 공약했고, 이에 따라 중국의 새 지도부와 협력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액은 1302억달러로 수출 총액의 25%를 차지했다. 대일 수출액의 3.4배였다.

그렇다고 일본을 따돌리며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모습으로 비치게 해선 곤란하다. 한·중 관계는 한·미 동맹의 상위 개념이 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나치게 대미(對美) 일변도였기 때문에 미·중 간 균형 외교로 나가자는 주장도 나오는데, '중국 환상'에서 나온 잠꼬대 같은 소리일 뿐이다. 중국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 북한을 비호하는 태도를 바꾼 적이 없다. 양국의 경제 관계가 발전해도 군사·안보 분야에선 분명한 대립 구도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동북아 균형자'를 자처하며 '미·중 균형 외교'를 펴다 한·미 동맹이 위기를 겪었던 상황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박 당선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일 외교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한·일 관계가 악화돼 있던 2006년 3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와 아베(현 총리) 관방장관 등 일본 조야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나서 "과거사 문제만 빼면 경제·외교, 한·일 양국 간 교류 등 각 분야에서 뜻을 같이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자서전에서 박 당선인은 손자병법을 인용하면서 "분개하는 마음으로 싸움을 하면 잠시 속은 시원할 수 있겠지만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일을 그르칠 뿐이다. 다른 어떤 나라와의 관계보다 인내심이 더 필요한 것이 일본과의 외교"라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감정적인 반일(反日)은 속이 후련할진 몰라도 국익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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