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6일 수요일

[조선일보][조선데스크] 서울시, 시민이 우스운가(2013.03.06)


이위재 사회부 차장
지난해 서울시 예산 중 템플스테이 보조금 지원이란 항목이 있었다. 사찰에서 지내는 문화 체험 비용을 보태주는 것으로 10억원이 쓰였다. 그런데 이 항목은 원래 서울시에서 짠 예산 편성 목록에는 없었다. 불교계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시의원들이 예산 심사 과정에서 집어넣은 것이다. 템플스테이는 원래 국비 지원 사업이다. 지난해에도 정부에서 200억원을 대줬다. 그런데 서울시가 밥 한술 보태는 셈처럼 10억원을 부어 넣은 것이다. 생색내기나 해당 시의원 과시용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좀 개운치 않아 서울시 예산 담당자에게 지적했더니 "얼마 되지도 않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시 1년 예산이 21조원이니 10억원이면 예산을 주무르는 공무원 입장에선 큰돈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 그래도 그건 인식(認識)과 양식(良識)의 문제다. 10억원이 자기 돈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서울시가 지난해 조사한 중소 규모 예산 낭비 사례를 보면 씁쓸한 대목이 많다. 대표적인 게 연구나 설계 용역비인데 일단 돈 들여 해보고 아니면 말고 식이 즐비하다. 노을공원 쓰레기 매립장을 관통하는 60m 높이의 투명 지하 엘리베이터도 그중 하나다. 시대별로 묻은 쓰레기 단층(斷層)을 관광용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 설계비부터 집행했다. 사업비 규모는 530억원. 기술적으로는 문제없는데 과연 누가 그걸 보러 오겠느냐는 전문가 핀잔이 이어지면서 서울시는 구상을 접었다. 설계비로 2억1400만원을 날리긴 했지만 그나마 도중에 중단해 추가 낭비가 없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세금을 받아 쓰는 공무원들이 신중하지 못해 벌어진 세금 낭비는 시장이 바뀌어도 되풀이되고 있다.

서울시에는 예산성과금제라는 제도가 있다.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를 잡아내면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지난해 1억9000만원이 포상금으로 나갔는데 알고 보니 다 내부 공무원들이 받았다. 자기들이 낭비해놓고 낭비를 지적했다고 상금을 타가는 웃지 못할 일이 매년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시민은 사실 세금으로 이뤄지는 사업이나 공사 세부 내역을 모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산이 낭비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공무원들이야 다른 부서에서 뭘 하는지 훤히 알 수 있으니 지적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서울시가 이런 맹점을 고쳐 올해부터 예산 쓰임새와 사업 내역을 자세히 공개하고 시민이 직접 이를 조사해 낭비 사례를 찾아내면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1인당 최고 26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시민이 직접 예산을 감시하는 시대가 이제야 실질적으로 열린 셈이다. 시민단체 '좋은예산센터'를 이끄는 고려대 행정학과 김태일 교수는 소비자가 제품 정보를 모르면 바가지 쓰기 쉬운 것처럼 자기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무관심하면 정부가 '봉'으로 취급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예산 감시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얘기다. 그래야 '봉'이 아니라 '왕' 대접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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