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이후 국지전과 전면전을 포함해 크고 작은 전쟁이 많았지만 한국전쟁처럼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전쟁도 드물다. 베트남전은 파리평화협정으로 종결됐고, 보스니아전쟁은 데이튼 협정으로 마무리됐다. 걸프전쟁이나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휴전 60년이 되도록 평화협정으로 귀결되지 못하고 기술적 전쟁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경우는 한국전쟁이 유일하다. 중동, 아프리카, 인도와 파키스탄, 북아일랜드 등에서 지금도 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예외 없이 종교와 인종 갈등에 기인한 뿌리 깊은 분쟁이다.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역사적·문화적·혈연적 동질성을 갖고 있는 남북한이 60년째 냉전적 대결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현대사의 미스터리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만 것은 사실상의 봉건 왕조국가로 고착화한 북한의 정치체제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분단 상태의 지속을 바라는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항하는 완충지대로 북한을 필요로 하고 있다. 통일된 한국의 영향력이 동북3성으로 파급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거점으로서 한국이 필요하다. 일본은 인구 8000만의 대국이 이웃에 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에 맞서 어제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포기까지 선언했다. 그러나 종교나 인종적 요인과 무관한 한반도 문제는 관련 당사국들이 진정으로 원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관건은 미국과 중국의 결심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가 군사력의 증강을 통한 대중 압박이나 봉쇄로 이어지는 것은 미·중은 물론이고 아시아와 세계 전체에도 마이너스다. 미·중이 손잡고 협력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다. 미·중은 그 실마리를 한반도에서 찾아야 한다. 두 나라가 협력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나섬으로써 동아시아의 체스판 자체를 확 바꿔버려야 한다.
오바마는 그제 2기 취임식 연설에서 전쟁 대신 대화를 통한 평화를 역설했다. 이라크 전쟁에 이어 아프간 전쟁까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만큼 미국은 대외전략의 중심을 군대에서 외교로 옮길 수 있게 됐다. 협상파인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과 척 헤이글 전 상원의원을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으로 지명한 것은 혼수상태에 빠진 미국 외교를 부활시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오바마-케리 팀은 40년 전 닉슨-키신저 팀이 아시아에서 했던 외교의 큰 게임을 재현해야 한다.
올해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국은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미국에 한반도 평화의 밑그림을 제시하는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해야 한다. 박근혜 외교의 성패가 여기에 달렸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의 관심을 끌고 몸값을 올리려는 의도가 크다. 오바마는 취임 첫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외교적 치적을 쌓는 것이 그로서는 노벨상의 빚을 갚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한반도의 60년 정전체제는 이제 끝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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