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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0일 월요일

[동아일보]전효성 대학축제서 ‘민주화’ 발언 직접사과, 끝내 눈물 펑펑(2013.05.21)



시크릿 전효성이 한 대학 축제 행사에서 '민주화' 발언을 사과하며 눈물을 흘렸다.

전효성은 20일 오후 대전 카이스트 축제 공연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치기 앞서 최근 논란이 된 '민주화' 발언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전효성은 "얼마 전 경솔한 발언으로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다. 인터넷에서 잘못쓰이는 용어를 잘 거르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은 연예인으로서 잘못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 오늘도 죄송한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공연하겠다"고 말했다.

전효성은 시작할 때부터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과를 전하더니 결국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전효성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안녕하세요. 시크릿 전효성입니다. 얼마 전 경솔한 발언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것이 분명 맞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 해명을 안 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다시 사과드리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라는 인사말로 시작되는 장문의 글을 게재하며 최근 발언 논란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했다. 

전효성은 "여러분께서 걱정하시는 한 사이트와 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저는 팬들과 자주 소통하고 싶었고 팬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인터넷 모니터링을 하던 중에 '전효성으로 민주화 시킨다'는 글을 여러 게시판에서 자주 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긍정적인 의미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권유하는 뜻으로 쓰이는 건가 하고 무의식중에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사이트에서 의미가 변질돼 사용되고 있던 사실은 이 일이 일어나고 나서 알게 됐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망각하고 조심성 없이 '민주화'라는 단어를 가볍게 사용한 잘못,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고 사과했다. 

또 "저의 경솔한 발언으로 상처를 입으셨을 유가족분들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웃으며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공부하고 노력해서 더 성숙해지도록 하겠습니다. 걱정끼쳐 드린 팬분들께 다시 한 번 사과 말씀 드립니다"고 적으며 사과의 글을 마무리지었다. 

전효성은 최근 SBS 파워FV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해 일부 사이트에서 통용되는 단어를 사용해 발언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전효성/뉴스엔 DB)

2013년 1월 13일 일요일

[박재순 칼럼] 1대 99의 문제를 푸는 마음(2013.01.14)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 목사

세계적으로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1대 99의 사회가 되었다. 돈과 권력,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1이 사회의 중심에서 사회를 이끌어가고 99는 생활터전을 잃고 변두리로 밀려났다. 1대 99의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크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크고 넓은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1대 99로 쪼개진 사회는 특권적인 1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99를 소외시킨다. 그러므로 1대 99로 쪼개진 사회를 전체 하나로 통합하려면 먼저 소외된 99를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권적인 1의 마음만을 헤아려서는 결코 통합적인 사회를 만들 수 없다. 50이나 70의 마음만을 헤아려서도 안 된다. 소외된 모든 사람 99의 마음을 헤아리고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때 전체 사회가 통합하는 길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소외된 99의 마음만을 헤아리는 마음으로는 진정한 전체 통합의 길로 갈 수 없다. 99를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1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고 끌어안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전체 통합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특권적인 1을 미워하고 타도하고 제거하는 마음으로는 전체 하나 됨의 길로 갈 수 없다.

1을 버리는 마음이 있는 한, 1을 버리고 나서 또 다른 1을 버리게 될 것이다. 미워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는 한 미운 1은 언제나 있을 것이고 미운 1을 버리고 나면 언제나 다시 미운 1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미운 1을 버리다 보면 ‘나’ 하나만 남고 99를 모두 버리게 될 것이다. 또 99를 다 버리고 ‘나’ 하나만 남게 되면 ‘나’ 하나를 미워해서 ‘나’ 하나마저 버리게 될 것이다.

예수가 잃은 양의 비유에서 가르친 것은 전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에 남겨진 99마리 양을 버려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는 목자의 심정은 잃은 양 한 마리에게서 양 100마리 전체를 보는 마음이다. 하나에서 ‘전체 하나’를 보는 마음은 전체의 님이신 하나님의 마음이고 자신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오늘의 세계는 한 사람이 인류 전체와 연결되어 있고 인류 전체가 한 사람에게 닿아 있다. 한 사람을 버리는 마음으로는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를 이해할 수도 없고 실현하고 완성할 수도 없다. 한 사람에게서 전체를 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1대 99의 문제를 풀 수 없고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를 이룰 수 없다. 

2012년 12월 15일 토요일

[크리스천투데이]북한인권운동 앞장서던 김상철 장로, 13일 소천(2012.12.16)


1980년대까지는 민주화운동, 그 이후는 북한민주화 운동

 
북한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김상철 장로(65)가 13일 오후 11시 지병으로 소천했다.

김 장로는 짧은 공직생활 후 탈북난민 돕기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매진했다. 1999년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현 세이브엔케이)를 설립하고, 국내외 1180만명의 서명을 유엔 등 국제사회에 전달, 탈북민들이 국제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2002년에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을 창간하고 북한인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힘썼다. 교계에서도 북한구원운동을 설립하고 전국을 돌며 북한 주민 구원과 탈북자 돌보기 운동에 앞장서 오다 쓰러져 투병생활을 해 왔다.

평북 태천 출신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 장로는 1973년 서울형사지법에서 판사로 공직활동을 시작했지만, 1975년 ‘김대중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는 정권 압력을 거부하며 지방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980년 독일 연수 중에는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하고 ‘군사정권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며 변호사가 됐다. 대우자동차 파업사건과 김근태 고문, 권인숙 성고문, 박종철 고문치사 등 굵직한 시국사건 변호를 도맡았고, 1987년 6·29 선언 이후에는 여야 개헌협상이 결렬 위기에 놓이자 타협안을 내놓기도 했다.

민주화가 되고 나자 운동권이 과격한 반미운동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고 1990년대부터는 한·미 동맹 강화와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섰다. 그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46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시장에 임명됐으나 그린벨트 훼손 논란으로 7일만에 사임했다. 그는 그 전후 이야기를 신앙적으로 녹인 <7일간의 서울시장>을 집필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최원자(65)씨와 아들 세호(38·AT커니 이사), 딸 민정(36)씨, 사위 김범수(39·미래한국 사장)씨가 있다.

빈소는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7일 오전 10시 대치동 서울교회에서 진행된다(02-2258-5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