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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31일 목요일

[크리스천투데이]美 5만여 시민들, 캘리포니아에서 반(反)낙태 행진(2013.01.31)


“삶은 신성한 것이기에 우리가 이곳에 있다”

약 5만여명의 시민들이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생명을 위한 행진’ 행사에 참가했다.

이날 연설가 중 한 명인 뉴저지 몽클레어 뉴갈보리 침례교회(New Calvary Baptist Church)의 클레나드 차일드레스 주니어(Clenard Childress, Jr.) 담임 목사는 사람들 앞에 고개숙여 인사한 뒤 “모든 아이들이 자유할 때까지 우리는 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살바토레 J. 코딜레노에(Salvatore J. Cordilenoe) 대주교는 회중들을 향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리는 침묵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인이다. 우리는 삶이 선하고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낙태 합법화 판결로 유명한 로에 v. 웨이드(Roe v. Wade) 사건의 40주년을 기념해 열린 것이다. 학생이 운영하는 온라인 매체인 네온 토미(Neon Tommy)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낙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생명을 위한 서던캘리포니아대학생’ 리사 에비너 가비트(Lisa Ebiner Gavit) 대표의 말을 인용해 “판결 이후 40년 동안 약 5500만명의 어린 생명이 죽었다. 이는 내 세대(미국 출생 인구를 연간 400만명으로 추정할 경우)의 1/3 가량에 해당하는 수이다. 여러분은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간 생명이 이보다 얼마나 더 많을지 상상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가비트는 “낙태의 핵심은 사회적 정의에 대한 이슈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슈는 말 그래도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다. 낙태를 인정하고, 이를 권장하는 것은 삶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1학년 학생인 로니 라그로(Ronnie LaGro)는 행진에 대해 “우리가 15분간 친구들을 기다리기 위해 서 있을 때, 수 많은 사람들이 계속 몰려왔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온 우리들은,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고 묘사했다.

한편 낙태 반대운동 참여자들은 최근 점점 나이가 어려지고 있다. ‘마치포라이프에듀케이션디펜드펀드(March for Life Education Defense Fund)’의 이사회 멤버로서 매년 워싱턴 D.C 내셔널 몰에서 열리는 생명을 향한 행진에 참가하고 있는 톰 호간(Tom Hogan)은 크리스천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몇 년간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들은 생명이 가진 근본적인 인권에 대한 중요한 공적 증인”라며 이 운동을 지지했다. 미국에서 교황을 대변하는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Carlo Maria Vigano) 대주교는 지난 26일 수만 명이 모인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교황의 메세지를 전달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교황 베네닉토 16세의 말을 인용해 “생명이 가진 인권에 대한 공적인 증인으로서 이 일에 참여하고 있는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들은 우리의 가정, 특별히 가장 작고 무방비 상태인 각각의 형제, 자매가 지닌 침범할 수 없는 권위를 유지하라는 도덕적 명령의 증인”라고 전했다.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크리스천투데이]‘일상의 신학’ 관련 도서 잇따라 출간… 의미와 요인, 전망(2013.01.22)


포이에마 ‘일상의 신학’ 시리즈 등… 한국교회 위기론의 탈출구 될까

▲포이에마의 ‘일상의 신학 시리즈’ 3권. ⓒ이대웅 기자

연초부터 기독 출판계에 ‘일상’에 대한 관심이 거세다. ‘신앙과 삶의 일치’, ‘평일에도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라는 성도들의 영원한 ‘관심’이, 새해를 맞아 적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

최근에만 본지에 소개된 주학선 목사(인천동수교회)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몸 마음 설명서>를 비롯, 김영사의 기독 브랜드 포이에마에서 ‘일상의 신학 시리즈’가 나왔다. 또 <맥스 루케이도의 일상의 은혜(두란노)>와 모새골 공동체를 세운 임영수 목사의 <일상(선교문화사)> 등이 출간됐으며, 지난해 기독 철학자 강영안 교수(서강대)의 대담집 <묻고 답하다(홍성사)>에도 웃음과 일상 등을 주제로 나눈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사실 이러한 흐름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터사역자 폴 스티븐스의 <일삶구원(IVP), <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포이에마)>, <일상 속 믿음 탐구생활(예수전도단)>, <일상의 예배(좋은씨앗)>, 이랜드 사목 출신 방선기 목사의 <그리스도인의 일상다반사(포이에마·이하 발간순)> 등 ‘일상을 삶의 예배로 드리기 위한’ 노력들은 꾸준히 있어왔다. 안식일과 십일조, 금식과 성찬 등을 순차적으로 다루고 있는 IVP의 ‘영성의 보화’ 시리즈도 ‘일상과 거룩을 만나게 하는’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삶과 신앙 관련 도서들. <일삶구원>, <일상의 은혜>, <일상 속 믿음 탐구생활>, <그리스도인의 일상다반사>, <일상>.

이같은 흐름은 실제로 예견되기도 했다. 강승진 한국기독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지난해 말 2013년 기독출판계 전망을 전하면서 “기독교적 입장에서의 자기계발서가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기독교인, 교회 내 자신의 포지션 등 새로운 관심과 리더십에 대한 욕구 등이 분출된다”는 것이다.

<몸 마음 사용설명서> 저자 주학선 목사는 ‘일상’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데 대해 “성도들이 예수를 닮아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가려면, 일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며 “그러므로 단순히 예배에서 ‘은혜 받는’ 차원을 넘어 삶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을 설교에서 제시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출판은 시대 흐름의 반영이기에, 이는 사회나 교계 전반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006년 시작된 ‘일상생활사역연구소(소장 지성근 목사)’는 ‘일상생활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요 사역(service)’이라는 관점으로 일상생활 사역을 위한 신학적 틀을 다지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선교적인 삶(Missional life)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훈련을 연구·발굴하고 있다.

지성근 소장은 이러한 흐름에 대해 “과거에는 거대 담론이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걸로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작은 우리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측면도 있고, 이전부터 철학이나 역사, 사회학 쪽에서도 일상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기도 했다”며 “사실 이런 흐름 이전에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이 일상에서 사람들이 갖는 고민에 답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는 본질로 돌아가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지 소장은 “한국교회 연약한 부분이 공간적으로는 교회당 안에서만, 시간적으로는 주일이나 예배에서만 국한돼 있는 삶과 신앙의 분리로 인한 심각한 병리현상 아니냐”며 “성경이 원래 이야기하고 있는,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에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난 8년간 전파해 왔고, 이를 통해 한국교회 성도들이 주일 뿐 아니라 나머지 6일의 삶을 위해 구비시키는, 성경의 원리에 다시금 굳건히 선 진정한 교회(the authentic church)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시리즈.
‘일상의 신학’이 흥미로운 또다른 이유는 일반 출판계와 비슷한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열풍이 대표적. 한국에서 유독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 ‘일상의 철학자’는 ‘특유의 인문학적 렌즈로 주변의 사소한 일상을 재발견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가 지난 2008년부터 삶 가운데 활용할 지식의 필요성을 느껴 시작한 ‘인생학교’가 올해 초 6권의 시리즈(섹스·돈·일·정신·세상·시간)로 나온 것이다.
 
이 인생학교에서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 ‘대화를 더 잘 하는 법’, ‘좋아하는 직업을 찾는 법’ 등을 통해 일상에서 적용 가능한 지혜들을 발굴해 주는데, 오는 5월쯤 한국에서도 시범 강의가 개설된다고 한다.
포이에마에서 출간중인 ‘일상의 신학’ 시리즈는 ‘일상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궁구하려는 노력’을 담았다. 일상의 소재 하나하나를 붙들고 진지하고도 세밀한 신학적 성찰을 선보인다. 시리즈는 <일(Working)-축복인가, 저주인가>, <자녀 양육(Parenting)-부모의 삶에 주어진 가장 귀한 선물>, <먹고 마시기(Eating & Drinking)-모두를 위한 매일의 잔치> 등 1차로 3권까지 출판됐으며, 놀이, 여행, 쇼핑 등에 대한 내용이 2차로 담길 예정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인생학교 시리즈’와 예정된 권 수도 같다.

출판사측은 “일상에 대해 조명하는 책들이 왕왕 있었는데, 사실 크게 관심을 시장에서 불러오진 못했지만 계속 조명해야 할 주제이고 이번 시리즈도 주제를 한 권씩 다루는 등 컨셉이 괜찮아 발간하게 됐다”며 “인생학교 시리즈보다는 저희 일상의 신학 시리즈가 약간 앞서 나왔지만, 어쨌든 동시에 나오게 돼 반가운 일”이라고 전했다.

시리즈 기획자인 데이비드 H. 젠슨(오스틴장로교신학대) 교수도 “몸, 목욕, 식사, 가정 등이 기독교 신앙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하나님이 이런 일상의 관습과 재료들을 취하여 그분의 축복과 구속과 변혁의 도구로 사용하심으로써 일상생활 중에 소망과 은혜를 반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라며 “이 시리즈는 일상의 관행을 신학적 성찰의 터전으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2권 <자녀 양육>을 집필하기도 한 젠슨 교수는 “기독교 신앙은 일상에서 도피하는 게 아니라 날마다 일어나는 평범한 일과 속에 깊이 스며든다”며 “이렇듯 일상의 습관에 주의를 기울이면 구속·창조·성육신 같은 고전적 주제들을 새로운 빛으로 조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출판사측도 “기독교 신앙은 교회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살아내어야’ 하는 것이며, 일상의 매 시간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의 신앙 내용을 보여준다”며 “무심히 보내는 매일의 일과(日課), 때론 기뻐하고 슬퍼하며, 지겨워하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기도 하는 일상이야말로 신앙의 장(場)”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아쉬움이 있다면, 번역서이다 보니 21세기 미국의 현 상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 특히 3권 <먹고 마시기> 1장 ‘현대 미국인의 식생활’에서는 지나친 소비주의와 인스턴트, 육식 등을 나열하고 논의를 진전시키는데, 국내 독자에게 약간 낯설 수 있다. ‘한국적 논의’가 좀더 활성화돼야 할 필요성이 여기서 제기된다.

이에 대해 포이에마측은 “2차 시리즈까지 내고 나서 그쪽(한국적 일상)도 계발을 고려하고 있다”며 “형식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국내 저자에게 청탁을 해서 다른 주제를 다뤄 일상 전반을 새롭게 해석하는 등 방식은 좀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교회 내 ‘삶의 신앙’ 확대 전망에 대해 지성근 소장은 “책 몇 권 나온다고 한국교회가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며 “일상이라는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야겠다는 분위기 확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13년 1월 17일 목요일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1. 입문:신학과 신앙] ③ 신학의 역할 : 평신도가 신학을?(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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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토대 없으면 신앙과 삶이 분리돼

평신도가 왜 신학공부를 해야 하는가. 성경대로 살면 되고, 신앙대로 살면 되지, 웬 신학 타령인가. 요즘은 신학을 전문하는 목회자도 신학공부를 멀리하는 시대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학은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평신도라면 다시 반문할 것이다. 정말 일반 신자도 신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신학의 역할’에 따라 달라진다. 신학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오늘은 신학의 역할을 세 가지로 말해보려 한다. 독자들은 이 글을 읽고 나서 신학이 필요한지에 대해 스스로 답변해 보시라.

성경을 통일성 있게

신학은 성경의 내용을 ‘통일성’ 있게 보는 토대를 제공한다. 성경의 내용과 표현 방법은 다양하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다. 하지만 성경의 어떤 구절들은 서로 충돌되거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성경을 읽다가 이런 부분을 만나면 누구나 당황한다. 또 성경의 표현에는 역사적 문헌의 성격, 문학적 성격, 종교적 성격, 수사학적 성격 등이 섞여 있다. 때로는 역사적인 사건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때로는 시적인 상징과 은유를 사용한다. 성경의 어떤 구절은 쉽게 이해되지만, 어떤 구절은 겉으로 드러난 표현 뒤에 원래의 뜻이 숨어있다.

신학적 기초가 없으면 성경에 대한 지식이 모자이크식이 된다. 성경 전체를 통일성 있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성경 각 구절의 충돌되는 부분이나 다양한 표현 밑에 들어있는 의미를 조화롭게 볼 수 있다. 성경의 내용을 전체적이고 조화 있게 보지 못하면 많은 교리적 의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보자. 세례를 받은 후 죄를 지으면 용서 받을 수 있는가. 이혼은 어떤 경우에 허용되는가. 죽은 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까. 신자들은 수도 없이 많은 교리적 질문을 가진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성경에 모두 있지만,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면 답을 찾을 수 없다. 신학의 첫 번째 역할이 여기에 있다.

설교의 내용, 삶과 연결

신학은 설교의 ‘내용’을 충실하게 만들어 주고, 설교를 삶과 ‘연결’시켜준다. 개신교에서 예배의 중심에는 설교가 있다. 설교가 대단히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설교는 제한된 시간에 이루어질 뿐 아니라, 성경을 삶과 충분히 연결시키지 못할 때가 많다. 설교는 주로 ‘믿음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결신을 선포한다. 어떤 설교는 내용은 없으면서, ‘믿어라!’는 결신의 요청만 반복한다.

물론 상당수 신자들은 설교를 듣고 ‘믿음대로 살겠다’는 결신에 이른다. 그러나 교회의 문을 떠나 삶으로 돌아오면, ‘믿음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들었던 설교에 내용이 없거나 삶과 믿음을 구체적으로 연결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교가 삶과 연결되지 못하면 신앙은 활기를 잃고 만다.

만약 어떤 신자가 ‘내용 없는 설교’를 지속적으로 듣게 된다면 매우 답답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 믿기로 결단을 했지. 나도 믿음대로 살고 싶어.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되지?’ 한국교회에서 내용 없는 설교로 인해 많은 교인들이 힘들어한다. 신학은 설교의 내용을 채워주고, 설교를 삶과 연결한다. 그러므로 신학은 설교자와 설교를 듣는 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나아가 신학은 삶과 연관된 많은 문제들에 답한다. 낙태를 해도 되는가. 안락사는 어떤 경우에 허용할 수 있는가. 기독교인의 직업관은 무엇인가. 정치에 관여해도 되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지 못하면 결국 신앙과 삶은 분리된다. 신학의 두 번째 역할이다.

세상을 신앙의 눈으로 해석한다

신학은 자신이 사는 세계를 신앙의 눈으로 보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특정한 시대 속에서 산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떠나 구름 위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세계와 자신이 속한 시대 사이의 ‘긴장’을 가진다.

각 시대는 그 문화가 주는 가치관, 세계관, 우주관을 가지고 있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은 인간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큰 ‘틀’이다. 누구도 그 시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그 시대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성경의 가치관과 괴리가 있을 때 그리스도인은 혼란에 빠진다.

예를 들면,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배운다. 진화론은 과학적 세계관의 일부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창조론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진화론과 창조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모르기 때문에 혼란할 수밖에 없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가 주는 세계관이나 우주관으로 인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산다. 인간복제가 가능하다면 창조신앙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자녀교육에서 성경의 가치관과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한 가치관 중 어느 것을 가르쳐야 하는가. 신학은 이런 주제들에 답변을 준다. 각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답변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계와 우리가 속한 세계 사이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신학의 세 번째 역할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 어느 시대이건 평신도가 신학적으로 탄탄할 때 교회가 건강하였다. 평신도가 신학적 토대가 없으면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상실하며, 이단에 쉽게 휩쓸리면서 교회가 약해진다.

신학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판단하라. 필자는 한 가지 당부를 하는 것으로 오늘 강좌를 마치겠다. 많은 신자들이 위에서 필자가 제기한 그런 질문들에 답을 얻지 못하고 답답해하며 교회를 떠난다. 독자 여러분, 쉽게 신앙을 포기하지 말라. 쉽게 교회를 떠나지 말라. 여러분이 고민하는 대부분의 질문에 이미 신학적 대답이 있다. 신학은 추상적이거나 우리 삶과 멀리 떨어진 공허한 것이 아니다.

김동건 교수<영남신대 조직신학 교수>

2013년 1월 9일 수요일

[사설] 하나님 주신 생명, 나만의 것 아니다(2013.01.08)


자살자 유가족에 대한 관심과 체계적 보살핌도 병행돼야

지난 6일 전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조 씨의 전 부인이자 유명배우 고(故) 최진실 씨에 이어 동생 최진영 씨까지 한 집안이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인터넷 상에는 연일 누리꾼들이 '꼭 이렇게 생을 마감해야만 했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엄마와 외삼촌에 이어 이제 아빠까지 잃고 남겨진 남매와 이 아이들을 돌보는 할머니 등 유가족(遺家族)들이 느끼는 심정은 그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실감과 고통 그 이상일 것이다.

이미 떠난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이제 정리하고 이제는 유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체계적 보살핌에 중점을 둬야한다. 이들이야 말로 그 누구보다도 높은 자살(自殺)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1명의 자살 뒤에 직접적인 정신적 외상을 입는 자살 유가족이 평균 6명이라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2010년 기준으로 자살자 1만5566명에 따른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경험한 유가족이 9만3396명에 이른다는 말이다. 자살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발생한 자살 유가족을 따지면 1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더구나 유가족의 자살 위험도 일반인의 6배에 달한다고 통계자료도 있다.

이제는 당장의 1차적으로 자살을 막는 일뿐 아니라 2차적으로 야기되는 유가족들의 자살 예방에도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 단체와 일반인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기독교적 관점의 죄(罪)일 뿐만 아니라, 자신은 물로 모든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임을 일깨워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가치와 삶의 목적을 알게 하므로 자신의 목숨이 자신만을 위한 것임을 명심하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