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 이런 사연이 있었다. 한 중학교 여학생이 수학여행을 앞두고 신발과 가방을 사겠다고 떼를 쓰다가 엄마와 심하게
다투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홧김에 휴대전화 배터리도 뽑아버리고 길을 걷는데 엄청난 지하철 사고가 난 것을 알았다. 불길한 느낌에 전화를
하니 엄마가 받지 않는다. 그 대신 엄마가 보낸 문자메시지가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었다. ‘내 딸아 용돈을 넉넉히 못줘서 미안해.
쇼핑센터에 들러서 신발이랑 가방이랑 샀는데, 미안하다. 못 전하겠어. 오늘 돈가스 해 주려고 했는데 미안하다 내 딸아. 정말 사랑한다.’ 이것이
불타는 지하철 안에서 엄마가 보낸 마지막 인사였다. 돈가스를 해 주며 작은 행복을 나누고 싶은 소박한 바람도, 느닷없이 찾아온 죽음의 손님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간은 죽음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죽음만 그러한가? 죽음만이 아니라
인간은 삶도 감당이 안 된다. 몇 년 전 우리나라 대기업의 한 부사장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고속승진을 하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가장
비싼 아파트에 사는 모든 샐러리맨들의 우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는 것이 감당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삶을 선택하고, 삶이 감당되지 않을 때 죽음을 선택한다. 나에게 너무 비관적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적어도 삶과 죽음 앞에서 인간은 스스로 답이 없다는 사실만큼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인생은 속수무책이다.
유다왕 아하스가 하나님께로부터 ‘임마누엘의 약속’을 받을 당시, 그의 상황도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북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연합군이
남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이것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땅에서는 희망이 없어도 하늘에 희망이 있으니 하늘을 쳐다보는 믿음이
있으면 좋으련만. 아하스에게는 믿음이 전혀 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다면 믿음을 친히 주겠다며 징조를 구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발뺌한다. 믿음을 가지고 싶은 의욕조차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거기다가 믿음도 없는 상황, 나아가서 믿고 싶은 의욕조차 없는 상황. 이 정도라면 유다는 망하고 역사는 끝나야 한다. 그러나 유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개입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입의 징표로 주신 이름이 ‘임마누엘’이었다. 700년 후 예수님은 바로 그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주님의 오심은 대책 없는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개입이다. 성탄의 종소리가 삶과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생들, 그들을 향한 초청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왜 알지 못할까?
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2012년 12월 23일 일요일
[크리스천투데이]“애기봉은 평화의 메시지, 정치적 문제 제기 유감”(2012.12.24)
주최측 관계자들, 기자회견 갖고 각종 논란 해명
지난 22일 애기봉 성탄트리를 점등했던 주최측 관계자들이, 24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점등식과 관련된 논란들에 대해 해명했다.
이번 점등식은 한국기독교목사원로회(총재 방지일 목사)와 탈북난민과북한구원을위한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김삼환 목사, 이하 탈북교연),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대표회장 신신묵 목사), 북한민주화위원회(위원장 홍순경)가 주최했고, 이날 기자회견에는 탈북교연 사무총장 김충립 박사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 화해통일위원회(위원장 조헌정 목사)가 성명을 통해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선하게 전달될 수 없다는 점을 숙고해야 한다”며 즉각 취소를 요구했던 데 대해 “기독교인 중에는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공산권에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선교사도 있고, 북한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신앙관·선교관이라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또 조승현 평통사 평화군축팀장의 발언 중, “국방부가 박근혜 당선자에게 선물이라도 주려고 애기봉 등탑 점등 계획을 발표한 것 같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하며 공개 사과를 요청한다”고 했다. 이들은 “국방부는 12월 11일 (애기봉 점등식을) 허가했고, (대통령) 선거에 영향이 있을 것 같아 주최측에서 19일 선거 후 발표하자는 합의에 의한 것일 뿐 박근혜 당선자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며 “이같은 표현은 국방부와 당선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이밖에 주최측은 “점등 행사가 2004년 국가간 협약을 위반하는 것”에 유감을 표하고, 영등포교회를 언급한 것은 교계 관행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김충립 박사는 “북한에서 포격할 것이라고 하는데, 평화를 전하고자 하는 애기봉에 포를 쏜다면 그것은 전 세계에 대한 도전이기에 그것은 불필요한 걱정”이라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일에 이같은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비기독교적·정치적이고 월권”이라고 했다.
김충립 박사는 교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이번 애기봉 점등식 행사를 주최할 수 있도록 여러 연합기관과 교회들에 요청했으나, 아무도 답변이 없어 불가피하게 탈북교연 등이 행사를 주최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를 중단할 계획은 아직 없으며, 일단 예정대로 1월 2일까지 점등을 계속할 방침이라고 한다.
지난 1954년 시작된 애기봉 점등식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6월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중단됐다가,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을 계기로 재개됐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함에 따라 다시 중단된 바 있다.
2012년 12월 22일 토요일
[크리스천투데이]애기봉 성탄트리 다시 점등… ‘복음의 빛’ 북녘으로(2012.12.22)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행사 간소하게 진행
▲본격 성탄트리 점등에 앞서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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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봉 성탄트리가 2년 만에 다시 불빛을 밝혔다. 22일 저녁 경기도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서 점등식이 열렸다.
한국기독교목사원로회(총재 방지일 목사)와 탈북난민과북한구원을위한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김삼환 목사, 이하 탈북교연),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대표회장 신신묵 목사), 북한민주화위원회(위원장 홍순경)가 주최한 이번 점등식은 수많은 취재진의 관심 속에 진행됐다.
점등식 전 예배에서 설교한 최병두 목사(탈북교연 상임회장)는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다. 이번 성탄트리 점등식은 바로 그러한 예수님의 빛을 북녘에 전하기 위한 것”이라며 “성탄을 맞아 한반도에 분열의 영이 물러가고 사랑과 평화, 그리고 복음의 빛이 임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애기봉 성탄트리가 환하게 불빛을 밝히고 있다.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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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점등식은 당초 예배와 성탄트리 점등, 기념촬영 및 기자간담회 등으로 진행되려 했으나 북한이 도발할 경우를 대비해 트리 점등 직후 참석자 전원이 하산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행사를 주도한 탈북교연 사무총장 김충립 박사는 “국방부가 지난 11일 이번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식을 허가했다”며 “대선을 앞두고 있어 미리 발표하지 못하다 선거 후 이를 알리게 됐다”고 일각에서 제기한 ‘대통령 당선자의 선물’ 의혹을 일축했다.
또 북한이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점등을 강행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선 “기독교인 중에는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공산권에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선교사도 있다”며 “북한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신앙관·선교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54년 시작된 애기봉 점등식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6월 제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중단됐다가,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을 계기로 재개됐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함에 따라 다시 중단된 바 있다.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 헤롯의 유아 살해 사건은 허구다?(2012.12.20)
헤롯의 유아 살해 사건은 허구다?
안티들의 도전 : “헤롯 대왕의 유아 살해는 꾸며낸 허구적 드라마이다.”
“마태복음의 베들레헴 유아 살해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마태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다.”
도올 “헤롯이 아무리 잔혹해도 자국민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였겠나”
헤롯, 왕위 지키려 아들도 살해할만큼 잔인
성탄절이 되면 아기 예수 탄생에 관련된 사건들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구라고 주장하는 기독교 안티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도올 김용옥 교수다. 도올은 헤롯 대왕의 유아 살해 사건은 예수의 가족을 나사렛에 살게 하기 위해 꾸며낸 허구적 드라마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 대왕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가 장차 자신의 왕위를 가로챌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군사들을 보내 베들레헴 마을 근처에 사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학살한 사건이 소개되고 있다.
도올은 이러한 유아 살해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 이유를 그의 책 ‘기독교 성서의 이해’에서 이렇게 말한다. “헤롯왕이 아무리 무지막지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근거 없이 떠돌아다니는 현자의 몇 마디를 듣고 자국의 국민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고, 실제로 그러한 사건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처럼 도올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헤롯의 유아 살해 사건의 역사성을 부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올의 주장은 정당한 것인가?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도올의 주장은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다. 도리어 성경의 역사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합당한 근거가 훨씬 더 많다.
첫째, 도올의 주장은 헤롯 대왕의 잔인함에 대해 무지했거나 아니면 헤롯의 잔혹함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의도적으로 숨긴 채 제기하는 주장이라고 여겨진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 대왕은 매우 잔인한 왕이었다. 헤롯은 평소 질투심이 많았고, 자기 왕위를 지키기 위해 아무도 믿지 않았으며, 가족까지도 죽음에 처하게 한 잔인한 사람이었다.
예컨대 헤롯은 그의 광적인 질투심으로 인해 그의 아내 마리암(Mariamme)을 처형시켰다(BC 29). 또한 그의 아들인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알렉산더(Alexander)가 이방인 출신이었던 헤롯과는 달리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호의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처형했다. 헤롯의 광적인 질투와 왕위를 지키고자 하는 욕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자신의 첫 아내 도리스(Doris)가 낳은 아들 안티파터(Antipater)를 자기 생명을 노리는 것으로 의심하여 헤롯이 죽기 4∼5일 전 처형했다. 이처럼 헤롯은 질투심이 많았고 잔인했다. 자기 왕위를 지키고자 아무도 믿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반역의 기미가 보이면 그 누구라도 즉각 처형했다.
이와 같은 헤롯의 성향을 고려해 보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기 왕위를 찬탈할 가능성이 있는 아기를 그냥 내버려둘 수 있었겠는가? 헤롯왕의 잔인한 성격을 고려해 볼 때 마태복음에 기록된 유아 살해 사건은 충분히 가능한 사건이다.
둘째, 유대나 로마 역사가들의 책 속에 베들레헴 유아 살해 사건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도올은 “실제로 그러한 역사적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기록이 고대 역사가들의 자료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고대 역사를 연구하는 일반적 원리에 의하면 고대의 어느 한 문서에 나타난 역사 기록이 다른 문서에 의해 이중으로 검증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 기록을 거짓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 기록의 역사성을 그대로 인정해 준다. 마찬가지로 일반 역사를 연구하는 잣대로 마태복음을 연구해 보면 아주 우수한 역사적 신뢰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후 약 40∼50년 사이에 기록된 문서다. 이것은 고대 문헌 중에서 아주 우수한 역사성을 가진 것이다. 예컨대 로마 황제들의 생애를 기록한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나 수에토니우스의 기록도 80년에서 100년 동안 구전되다가 문자로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마태의 기록이 로마 황제의 기록보다 역사적 신뢰성이 우월한 것이다.
셋째, 헤롯왕 당시 베들레헴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기껏해야 수백 명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게다가 그 작은 마을에 사는 2세 이하 남자아기가 몇 명이나 되었겠는가? 마태복음의 권위자인 마이클 윌킨스 교수는 베들레헴이 작은 시골마을임을 고려해 볼 때 대략 10명에서 30명의 아기들이 살해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렇게 볼 때 작은 시골마을에서 수십 명의 아이가 헤롯의 군대에 의해 살해됐다 하더라도 이것은 별로 대단한 뉴스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 당시는 오늘날처럼 TV나 라디오, 신문도 없었다. 따라서 그 일이 고대 역사가의 눈에 띌 만큼 중대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 그 사건은 로마가 주목해야만 하는 대단한 사건도 아니었다. 따라서 후대 역사가들이 이 사건을 꼭 기록해야만 할 당위성은 없는 것이다.
이 모든 정황을 고려해 볼 때 베들레헴 유아 살해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는 매우 빈약하다. 오히려 마태의 구체적인 사건 설명과 헤롯의 잔인한 성품을 고려해 볼 때 헤롯의 유아 살해 사건은 충분히 가능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마태복음의 명백한 기록을 부인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
이 시대는 분별력이 중요하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본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
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김학중 목사의 시편] 사랑의 약속을 지키는 교회(2012.11.28)
지난 21일 세상에서 가장 오랜 기간 식물인간으로 살았던 에드워다 오바라(59)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16세에 복용했던 인슐린이 부작용을 일으켜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는데 의식을 잃기 전 그녀의 어머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엄마, 제발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무렴. 절대 네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약속은 약속이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곧이어 에드워다양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장기 입원을 권유하는 의사의 말을 거부하고 어머니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후 그녀의 부모는 그녀 곁을 항상 떠나지 않고 그녀와 사랑의 대화를 나누었다. 1976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이전보다 더욱 지극한 정성을 에드워다에게 쏟았다. 한 번에 1시간30분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24시간 딸을 돌보았던 어머니는 딸을 간호한 지 38년 만인 2008년 딸의 침대 곁에서 평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딸의 약값 때문에 무려 30만 달러에 이르는 빚을 지게 되었지만 자신의 딸을 ‘짐이 아닌 축복’이라고 불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녀의 여동생이 간호를 맡았는데 4년 후인 지난 21일 에드워다씨도 어머니를 따라 삶을 마감했다. 지난 2001년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 박사는 사랑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이 어머니의 헌신에 감동하여 ‘약속은 약속이다: 한 어머니의 믿기 힘든 무조건적인 사랑 이야기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두 가지 기초를 보게 되는데, 바로 의지와 감사다. 즉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아울러 그 대상에 대한 한없는 감사가 뒷받침돼야 한다. 의지만 있는 사랑은 오기로 변질되기 십상이고, 감사만 있는 사랑은 쉽게 돌변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기초가 있어야만 ‘사랑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
사랑이란 말이 넘쳐나는 성탄 시즌이 또 다시 다가오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하기도 하지만 가장 경험하기도 힘든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약속이 바로 사랑의 약속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요 13:1)하셨다. 비록 그들이 곧 자신을 버리고 배신할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들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 넘쳐나는 상업적이고 퇴폐적인 사랑들에 맞서 한국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다. 대중 앞에서 자신을 선전하기 위해 성탄 시즌에만 반짝하는 ‘자선 쇼’가 아니라 에드워다씨의 어머니처럼 결연한 의지와 한없는 감사를 품고 끝까지 세상을 향한 사랑의 약속을 지키는 한국교회를 기대해 본다.
그녀는 16세에 복용했던 인슐린이 부작용을 일으켜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는데 의식을 잃기 전 그녀의 어머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엄마, 제발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무렴. 절대 네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약속은 약속이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곧이어 에드워다양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장기 입원을 권유하는 의사의 말을 거부하고 어머니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후 그녀의 부모는 그녀 곁을 항상 떠나지 않고 그녀와 사랑의 대화를 나누었다. 1976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이전보다 더욱 지극한 정성을 에드워다에게 쏟았다. 한 번에 1시간30분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24시간 딸을 돌보았던 어머니는 딸을 간호한 지 38년 만인 2008년 딸의 침대 곁에서 평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딸의 약값 때문에 무려 30만 달러에 이르는 빚을 지게 되었지만 자신의 딸을 ‘짐이 아닌 축복’이라고 불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녀의 여동생이 간호를 맡았는데 4년 후인 지난 21일 에드워다씨도 어머니를 따라 삶을 마감했다. 지난 2001년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 박사는 사랑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이 어머니의 헌신에 감동하여 ‘약속은 약속이다: 한 어머니의 믿기 힘든 무조건적인 사랑 이야기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두 가지 기초를 보게 되는데, 바로 의지와 감사다. 즉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아울러 그 대상에 대한 한없는 감사가 뒷받침돼야 한다. 의지만 있는 사랑은 오기로 변질되기 십상이고, 감사만 있는 사랑은 쉽게 돌변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기초가 있어야만 ‘사랑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
사랑이란 말이 넘쳐나는 성탄 시즌이 또 다시 다가오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하기도 하지만 가장 경험하기도 힘든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약속이 바로 사랑의 약속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요 13:1)하셨다. 비록 그들이 곧 자신을 버리고 배신할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들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 넘쳐나는 상업적이고 퇴폐적인 사랑들에 맞서 한국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다. 대중 앞에서 자신을 선전하기 위해 성탄 시즌에만 반짝하는 ‘자선 쇼’가 아니라 에드워다씨의 어머니처럼 결연한 의지와 한없는 감사를 품고 끝까지 세상을 향한 사랑의 약속을 지키는 한국교회를 기대해 본다.
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한마당-김의구] 애기봉 성탄 트리(2012.11.27)
크리스마스트리 풍속은 16세기 독일의 중산층 신교도들 사이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성탄 트리에 촛불을 켜는
전통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겨울 설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눈을 머리에 인 전나무가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광경을 보고
경외감을 느낀 루터가 가족에게 보여주려고 거실에 나무를 세우고 초를 달았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독일계 이주민들이 트리 장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다른 주민들은 백안시했다. 흥겨운 캐럴이나 트리 장식이 성탄을 모독하는 이교도의 전통이라고 봤던 올리버 크롬웰의 엄격한 청교도식 태도를 따른 때문이었다. 매사추세츠 주의회는 1695년 장식물을 다는 등의 경배 행위에 벌금을 물리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미국에 성탄 트리가 확산된 것은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 덕분이다. 하노버 왕가 출신으로 독일계 어머니 밑에서 자란 여왕은 어릴 때부터 성탄 트리에 익숙했다. 1846년 성탄 트리 앞에 선 여왕 가족을 묘사한 목판화가 영국 언론에 보도되자 곧바로 미 동부에 영향을 미치면서 성탄 트리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서부전선 최전방인 김포 애기봉(愛妓峰)에 성탄 트리가 세워진 것은 1954년이었다. 71년에는 30m 높이 등탑이 설치돼 매년 겨울 북녘 동포들에게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2004년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 활동을 중지키로 한 2차 남북 장성급 회담의 합의에 따라 애기봉의 불이 꺼졌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직후인 2010년 점등이 재개됐으나 지난해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올해도 이곳에서 성탄 트리를 보기 어렵게 됐다.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가 최근 점등 행사 취소 의사를 국방부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선교연합회는 애기봉과 평화전망대, 통일전망대 3곳에 성탄 트리를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지역의 반대에 부딪쳤다. 북한과의 군사 충돌, 대선을 앞두고 ‘북풍 공방’이 우려된다는 논리였다.
인명 피해가 생긴다면 성탄 트리 설치를 재고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북풍 우려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체제를 맹비난하는 대북 전단물도 아니고 그저 조용하게 빛만 발하는 트리를 체제 위협으로 간주해 타격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성탄 트리를 선전도구로 해석한 남북 합의가 애당초 문제였는지 모른다.
미국의 경우 독일계 이주민들이 트리 장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다른 주민들은 백안시했다. 흥겨운 캐럴이나 트리 장식이 성탄을 모독하는 이교도의 전통이라고 봤던 올리버 크롬웰의 엄격한 청교도식 태도를 따른 때문이었다. 매사추세츠 주의회는 1695년 장식물을 다는 등의 경배 행위에 벌금을 물리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미국에 성탄 트리가 확산된 것은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 덕분이다. 하노버 왕가 출신으로 독일계 어머니 밑에서 자란 여왕은 어릴 때부터 성탄 트리에 익숙했다. 1846년 성탄 트리 앞에 선 여왕 가족을 묘사한 목판화가 영국 언론에 보도되자 곧바로 미 동부에 영향을 미치면서 성탄 트리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서부전선 최전방인 김포 애기봉(愛妓峰)에 성탄 트리가 세워진 것은 1954년이었다. 71년에는 30m 높이 등탑이 설치돼 매년 겨울 북녘 동포들에게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2004년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 활동을 중지키로 한 2차 남북 장성급 회담의 합의에 따라 애기봉의 불이 꺼졌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직후인 2010년 점등이 재개됐으나 지난해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올해도 이곳에서 성탄 트리를 보기 어렵게 됐다.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가 최근 점등 행사 취소 의사를 국방부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선교연합회는 애기봉과 평화전망대, 통일전망대 3곳에 성탄 트리를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지역의 반대에 부딪쳤다. 북한과의 군사 충돌, 대선을 앞두고 ‘북풍 공방’이 우려된다는 논리였다.
인명 피해가 생긴다면 성탄 트리 설치를 재고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북풍 우려는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체제를 맹비난하는 대북 전단물도 아니고 그저 조용하게 빛만 발하는 트리를 체제 위협으로 간주해 타격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성탄 트리를 선전도구로 해석한 남북 합의가 애당초 문제였는지 모른다.
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크리스천투데이]애기봉 성탄트리, 올해도 불 못 밝힌다(2012.11.26)
주민들 북한 위협 우려하며 반대… 군선교연합회 자진 취소
▲2010년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식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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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 등 기독교 단체들은 애기봉과 평화전망대, 통일전망대 등 최전방 3곳에 성탄트리 등탑 설치와 점등을 당초 국방부에 요청했지만, 서부전선 최고봉인 애기봉(愛妓峯·165m)의 경우 자진 취소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취소 사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국방부는 이번 주 내로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었다.
실제로 군선교연합회의 등탑 점등 요청에, 해당 지역인 김포 주민들이 반대운동에 나섰다. 주민들은 최근 대북전단 살포에도 예민하게 반응한 바 있다.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대북전단 살포 및 애기봉 등탑 반대 김포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지난 21일 점등 반대집회를 열었으며, 국방부가 이를 승인할 경우 물리력으로 저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애기봉 성탄트리 점화는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4년 군사분계선 지역 선전활동 중지 합의에 따라 중단됐다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으로 다시 허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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