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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6일 수요일

[조선일보][南北정상 대화록 파장] 盧 "납북자 문제 등 많은 대화 나눴다"… 실제론 단 두마디(2013.06.27)

[당시 盧대통령 대국민 귀환 보고, 대화록과 어떻게 다른가]

"자주적 정부라고 설명했다" → "우린 親美국가다" 발언
"金위원장 北核 폐기 분명한 의지 밝혀" → 직접 언급 안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돌아와서 경기도 파주시의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하자마자 '대국민 보고'를 했다. 전날 평양 백화원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한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산가족·납북자·국군포로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제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때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시급한 문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며 "김정일 위원장도 '공감'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확대하고 영상편지 교환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성과(成果)를 밝혔다.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경의선 도로를 통해 귀환한 뒤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앞에서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경의선 도로를 통해 귀환한 뒤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앞에서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에 관해 노 전 대통령은 "납북자 문제 등은 양측의 입장 차이로 국민 여러분이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합의를 이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많은 대화'를 했다"면서 "이것이 다음에 이 문제를 풀어 가는 데 밑거름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에는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등에 대한 '많은 대화'는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자 원고지 25매, 5000자가 넘는 모두 발언 중에서 "과거 전쟁 시기와 그 이후에 소식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불행한 과거를 마무리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기회에 큰 틀에서 해결이 되기를 바란다. 위원장의 결단을 간곡하게 요청드린다"고 단 두 문장을 말했다. '납북자'나 '국군포로'란 표현은 피했다. 4시간 6분간의 회담 중에 이 문제는 다시 거론되지 않았고, 우리 측이 북한에 답변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또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보고에서 "다행히 김정일 위원장께서 아무 이의 없이 북핵 문제에 대한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성실히 이행한다는 점, 그리고 비핵화 공동선언을 중요한 선언으로 우리가 앞으로 지켜야 될 원칙으로 재확인한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며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북핵 폐기에 관한 분명한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대국민 보고'와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의 차이 비교 표
하지만 대화록에서 김정일은 6자회담에 참석했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불러 보고를 시켰을 뿐, 핵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김계관은 "조선 반도의 비핵화가 위대한 수령님의 의지"라고 말했지만, "핵 물질 신고에서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한다"면서 "우리는 지렛대를 명백히 물려놓은 것은 안 되면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핵무기를 국제사회로부터 숨기고, 일부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다가도 언제든지 다시 핵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밝혔던 것이다.

대화록에서 "남측 방문은 언제 해 주실랍니까?"란 노 전 대통령의 질문을 받은 김정일은 "원래 김대중 대통령하고 얘기했는데, 앞으로 가는 경우에는 김영남 위원장이 수반으로 갈 수 있다"며 "군사적 문제가 이야기될 때는 내가 갈 수도 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보고에서 "김 위원장은 우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제안하고 본인의 방문은 여건이 성숙할 때까지 미루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국민 보고 때 "한국 정부가 비자주적인 정부가 아니라는 점도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화록엔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 왔다. 그리고 친미국가다", "자주하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고요", "비위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이유가 사대주의 정신보다는 먹고사는 현실 때문" 등의 발언이 등장한다.

2013년 4월 3일 수요일

[조선일보]"개성공단 北직원들 군복입고 근무… 세관엔 군인 투입, 장갑차도 배치"(2013.04.04)


[귀환 우리 근로자가 전한 北소식]
"북한 직원들 평소와 많이 달라져… 농담 받아주거나 웃지도 않더라
남은 사람들 혹시 인질될까 걱정"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들이 2003년 공단이 착공식을 한 이래 10년 만에 또다시 불안감과 긴장감에 휩싸였다. 북한이 3일 개성공단 근로자의 남측 귀환만 허용하고 개성공단으로의 진입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날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우리 근로자 33명이 돌아왔다. 귀환한 근로자들은 "북한이 예전과 다른 긴장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4시에 귀환한 근로자들은 "평소 사복을 입고 근무하던 북한 직원들이 군복으로 갈아입고 경비를 강화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이날 공단에서 남측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심사에 평소와는 달리 군인들을 투입했다. 세관 직원들은 평소보다 검문 시간을 더 끌었다. 공단 근로자 S씨는 "군인들이 장갑차까지 대기해 놓았다"고 전했다.


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로 돌아오는 개성공단 관계자에게 취재진이 몰려들고 있다. 이날 북한은 개성공단으로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것만 허용한다고 통보했다. /이진한 기자
이날 낮에 귀환한 개성공단의 한 근로자는 "북측 직원들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이전엔) 점심시간 때 배구도 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이전처럼 농담을 받아주거나 웃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공단 납품 업체를 운영하는 C(46)씨는 "하루 사이에 북한 군인들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2일 공단에 들어가 1박을 하고 3일 오후 2시쯤 귀환한 C씨는 "하루 전과 달리 군인들이 위장을 하고, 검문소에도 위장망이 설치됐다"며 "공단 입주업체 직원들과 납품업체 직원들은 갑자기 북한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공단 입주업체 관계자는 "남북 관계도 문제지만 우린 거래선이 깨지면 회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기 때문에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공단에 남은 직원들은 언제 귀환할 수 있는지를 묻는 등 북측의 인질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귀환자들은 전했다. 3일 오후 현재 개성공단에 남아있는 한국 근로자는 800여명에 이른다. 공단 근로자 K씨는 부식이나 식자재가 2~3일 안에 안 들어가면 공장도 멈춰 서고 사람들도 먹고 살 게 없어진다며 우려했다.

반면 공단 분위기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공단 의류업체 직원 N씨는 "공단 내부 분위기는 달라진 게 없다. 천안함 사건을 겪어봤기 때문에 사람들 분위기도 평소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는 개성공단에서 돌아오는 근로자를 취재하기 위해 국내외 기자 등 80여명이 대기했으나 CIQ에 도착한 근로자들은 대부분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피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이날 낮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한재권 협회 회장은 "제일 걱정되는 것은 공단에 있는 주재원의 안전"이라며 "식자재와 원·부자재 반입을 허용할 것을 북측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부회장은 "입주 기업은 통상 식자재는 2주치, 원자재는 한 달치를 보유하고 있지만 기업에 따라 다르다"며 사태 장기화를 우려했다.

경기도 파주지역 민통선 주민들도 긴장 속에 하루를 보냈다. 대성동 마을의 한 주민은 "민통선 초소의 특별한 움직임은 없지만 최전방이다 보니 걱정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이 일대 관광지를 찾는 관광객 수도 크게 줄었다. 도라산전망대~제3땅굴~임진각을 연결하는 안보관광투어 코스에는 평소 평일에 2500여명이 찾았지만 이날은 1000여명만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