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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30일 일요일

[동아일보]文 “원본 열람해 NLL포기 사실땐 정계은퇴”(2013.07.01)

회의록 공개 논란에 정면승부 나서… 野 “국정원 개입, 대통령이 사과해야”


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불거진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 속에서 대여 공세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문재인 의원(사진)은 이날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관련 기록을 열람해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새누리당에 제안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기록 열람 결과, 만약 NLL 재획정 문제와 공동어로구역에 관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이었다고 드러나면 제가 사과는 물론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문 의원 측은 이 같은 제안 배경에 대해 “‘NLL 포기’ 발언은 여야가 공방을 벌일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에 대해 ‘NLL 포기가 아니다’라는 답변이 ‘NLL 포기’란 답변의 2배 이상으로 나타난 것도 문 의원의 자신감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 공개를 1일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전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원본을 비롯해 녹음테이프, 사전 준비회의 회의록 등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양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일 만나 공개될 자료의 범위와 공개 방식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야 합의로 자료제출 요구서가 제출되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공개가 최종 결정된다.

민주당은 이날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정치공작 진상규명 및 국정원 개혁’ 촉구 서울시당 당원 보고대회를 열고 원내외 병행투쟁을 본격화했다. 김한길 대표는 당원 보고대회에서 “대통령의 진솔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정원 등 권력기관이 다시는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여야가 함께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2013년 6월 26일 수요일

[조선일보][南北정상 대화록 파장] 盧 "납북자 문제 등 많은 대화 나눴다"… 실제론 단 두마디(2013.06.27)

[당시 盧대통령 대국민 귀환 보고, 대화록과 어떻게 다른가]

"자주적 정부라고 설명했다" → "우린 親美국가다" 발언
"金위원장 北核 폐기 분명한 의지 밝혀" → 직접 언급 안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돌아와서 경기도 파주시의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하자마자 '대국민 보고'를 했다. 전날 평양 백화원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한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산가족·납북자·국군포로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제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때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시급한 문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며 "김정일 위원장도 '공감'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확대하고 영상편지 교환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성과(成果)를 밝혔다.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경의선 도로를 통해 귀환한 뒤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앞에서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경의선 도로를 통해 귀환한 뒤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앞에서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납북자·국군포로 문제에 관해 노 전 대통령은 "납북자 문제 등은 양측의 입장 차이로 국민 여러분이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합의를 이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많은 대화'를 했다"면서 "이것이 다음에 이 문제를 풀어 가는 데 밑거름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에는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등에 대한 '많은 대화'는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자 원고지 25매, 5000자가 넘는 모두 발언 중에서 "과거 전쟁 시기와 그 이후에 소식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불행한 과거를 마무리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기회에 큰 틀에서 해결이 되기를 바란다. 위원장의 결단을 간곡하게 요청드린다"고 단 두 문장을 말했다. '납북자'나 '국군포로'란 표현은 피했다. 4시간 6분간의 회담 중에 이 문제는 다시 거론되지 않았고, 우리 측이 북한에 답변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또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보고에서 "다행히 김정일 위원장께서 아무 이의 없이 북핵 문제에 대한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를 성실히 이행한다는 점, 그리고 비핵화 공동선언을 중요한 선언으로 우리가 앞으로 지켜야 될 원칙으로 재확인한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며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북핵 폐기에 관한 분명한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대국민 보고'와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의 차이 비교 표
하지만 대화록에서 김정일은 6자회담에 참석했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불러 보고를 시켰을 뿐, 핵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김계관은 "조선 반도의 비핵화가 위대한 수령님의 의지"라고 말했지만, "핵 물질 신고에서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한다"면서 "우리는 지렛대를 명백히 물려놓은 것은 안 되면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핵무기를 국제사회로부터 숨기고, 일부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다가도 언제든지 다시 핵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밝혔던 것이다.

대화록에서 "남측 방문은 언제 해 주실랍니까?"란 노 전 대통령의 질문을 받은 김정일은 "원래 김대중 대통령하고 얘기했는데, 앞으로 가는 경우에는 김영남 위원장이 수반으로 갈 수 있다"며 "군사적 문제가 이야기될 때는 내가 갈 수도 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보고에서 "김 위원장은 우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제안하고 본인의 방문은 여건이 성숙할 때까지 미루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국민 보고 때 "한국 정부가 비자주적인 정부가 아니라는 점도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화록엔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 왔다. 그리고 친미국가다", "자주하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고요", "비위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이유가 사대주의 정신보다는 먹고사는 현실 때문" 등의 발언이 등장한다.

2013년 6월 25일 화요일

[조선일보][南北정상 대화록 파장] 野 "盧, NLL포기 말한적 없어… 활용방안 논의한 것", 與 "金 앞에서 여러번 NLL 부정… 사실상 포기 발언"(2013.06.26)

[盧 前대통령 NLL 발언 공방]

-전문가들도 해석 달라
"盧, 공동어로구역 주장에 동의… 사실상 NLL 무력화되는 셈"
"NLL포기에 동의한 것 아니라 평화구상에 인식 같이한 것"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全文)이 공개되자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포기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그런 취지도 아니었다"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성향에 따라 각자 다르게 해석했다.

여야, NLL 발언 놓고 공방

여야는 25일 대화록 전문의 노 전 대통령 발언을 놓고 판이하게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24일 공개된 대화록 전문을 보면 "NLL을 포기한다"는 발언은 없다. 민주당은 이를 근거로 반박에 나섰다. 문재인 의원은 "노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는 말은 없고 오히려 NLL을 함부로 못 건드린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김경수 노무현 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김정일) 위원장님과 인식을 같이하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NLL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라 NLL의 성격을 바꾸자는 이야기였다"며 "서해평화지대 구상은 육지로 치면 DMZ를 함께 활용하자는 차원"이라고 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아무리 소극적으로 해석해도 NLL을 서해평화협력지대로 만들기 위한 설득이고 노력이었다"며 "이런 노력을 'NLL 포기'라고 강변하는 것은 평화를 전쟁으로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2007년 정상회담 NLL 관련 주요 대화. NLL 폐기하고 北 주장 해상경계선 인정하면 어떻게 되나.
그러나 대화록에는 "NLL은 바꿔야 한다"는 등의 노 전 대통령 발언도 들어있다. 새누리당은 이를 근거로 "민주당이 본질은 외면하고 말꼬리만 잡고 있다"고 했다(김태흠 원내대변인). 대화록 공개를 주도한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 앞에서 NLL을 부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번 한 것이 확인되지 않았느냐"면서 "'포기'라는 발언을 하고 대통령이 인감증명을 떼와야만 문제가 되는 거냐"라고 했다. 정보위 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도 "NLL '포기'라는 표현이 없다고 해도 누가 봐도 맥락상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노 전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영토권을 북한에 사실상 상납하는 발언을 한 것이 확인된 셈"이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견해 갈려

노 전 대통령 발언이 NLL 포기로 해석되느냐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견해가 갈렸다. 해군참모총장 출신의 김성찬 새누리당 의원은 "대화록을 보면 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 경계선 사이를 김정일 위원장이 공동어로구역으로 만들자고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동의하고 있다"면서 "그런 (정상회담 대화) 방식으로 만들면 북한 배만 남쪽으로 내려오고 우리 배는 북쪽으로 못 올라가게 되고 NLL은 무력화된다"고 말했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단어가 있다 없다를 따질 일이 아니라 대화록을 보면 '안보 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 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이 우리의 뜻'이라고 노 전 대통령이 자기의 뜻을 직접 말하지 않았느냐"며 "그게 그동안 유효한 영토선이었던 NLL을 포기한다는 것이지 무슨 다른 말이 더 필요하냐"고 했다.

그러나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NLL 포기라는 말도 없을 뿐 아니라 서해평화지대와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한다고 해서 NLL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며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NLL을 유지하는 가운데 활용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협상 전체를 볼 때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는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며 "'김 위원장과 인식을 같이한다'고 한 것도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에 대해서 인식을 같이한다는 것이지 포기에 대해 인식을 같이한다는 건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조선일보]문재인 "NLL대화록 원본 공개하자…비열한 정치공작에 분노"(2013.06.21)


 문재인./조선일보DB
    
 문재인./조선일보DB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21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과 관련,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 의원은 이날 긴급 성명을 내고 “누차 강조했듯이 (대화록 공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어리석은 짓이지만, 이제 상황이 어쩔 수 없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의원은 “새누리당이 국가정보원의 선거공작에 대한 국정조사를 무산시키는 것을 막아야 하고,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가 표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또한 남북관계 발전의 빛나는 금자탑인 10·4 남북정상회담 선언의 성과를 이렇게 무너뜨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고,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정상회담 대화록과 녹음테이프 등 녹취자료 뿐 아니라 NLL에 관한 준비회의 회의록 등 회담 전의 준비 자료와 회담 이후의 각종 보고 자료까지 함께 공개한다면 진실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며 “다만, 공개의 방법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의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정쟁의 목적으로 정상회담 대화록과 녹음테이프 등 녹취 자료가 공개되는데 대한 책임을 새누리당이 져야 할 것”이라며 “뿐만 아니라 공개된 자료를 토대로 국정원과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응분의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임을 천명해 둔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전날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단독 열람한 것과 관련,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10ㆍ4 남북정상회담을 악용한 정치공작에 다시 나섰다. 정권 차원의 비열한 공작이자 권력의 횡포”라며 “국민과 함께 개탄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새누리당과 국정원을 향해 “정상회담 대화록을, 정쟁의 목적을 위해, 반칙의 방법으로, 공개함으로써 국가 외교의 기본을 무너뜨리고, 국격을 떨어뜨렸다”며 “10ㆍ4 정상회담의 내용과 성과를 왜곡하고 폄훼하는 일일뿐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 노 전 대통령을 또 한 번 죽이는 비열한 짓”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앞으로 NLL에 관해, 남측이 포기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하고 나서면 뭐라고 답할지 묻고 싶다. 심각한 이적행위가 아닐 수 없다”며 “국정원이 자신의 이익이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선거 공작과 정치공작 등 못할 일이 없을 만큼 사유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이제 국정원 바로 세우기가 왜 절실한 과제인지 더욱 분명해졌다”며 “그리고 그 시작으로서, 선거 공작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가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더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저는 국정원이 바로 설 때까지 국민과 함께 맞서 싸우겠다”며 “누리당에 대해, 이미 합의한 국정조사를 무산시키고,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2013년 6월 20일 목요일

[조선일보][월간조선 단독입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 보고서(대외비)(2013.0621)

노무현의 ‘NLL 無力化’ 발언은 사실이었다!

남북 정상 간 대화錄은 주로 공동선언문 의제 논의에 집중되어 있으나, 국가 정체성 훼손 및 국가수반으로서 위신 손상 등 문제점이 상당하다.(국가정보원 의견)

□ 2009년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 앞두고 국정원이 청와대 보고용으로 작성한 대외비 문건
□ “(NLL을)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맞서 나갈 수 있다”
□ ‌“(외국 정상과 만나)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다”
□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가지고 우리한테 거는데… 없애버리지 않았느냐”
□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 미국 제끼고’… 얘기했다”
⊙ “내가 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조원 벌었다”

 [월간조선 단독입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 보고서(대외비)
지난 대통령 선거정국 동안 최대 쟁점이었던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NLL 무력화’ 발언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또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 앞에서 “내가 북측 대변인·변호인 노릇을 했다”고도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10·4 정상회담 당시 ‘앞으로 서해 북방한계선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등은 이를 전면 부인했었다.
 
  《월간조선》은 최근 정부의 고위소식통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라는 제목의 대외비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문건은 이명박(李明博)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던 2009년 5월 과거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전직(前職) 대통령들의 발언 중 주요 대목 또는 문제 부분을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 A4 용지로 모두 10쪽인 보고서의 상단에는 ‘대외비 09. 5. 11 限 파기’라고 적혀 있다. 문건을 만든 곳은 국가정보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임태희(任太熙) 노동부장관은 2009년 10월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놓고 싱가포르에서 북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비밀회담을 했다.
 
  문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서해 북방한계선) 문제에 대해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헌법문제라고 나오고 있는데 헌법문제 절대 아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다”고 김정일에게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또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경제지도를 덮어 그려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큰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이는 우리 측이 휴전 이래 사실상 ‘해상 영토선’으로 지켜온 NLL을 없애고 대신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새로운 합의선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북한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NLL을 서해 경계선으로 인정해 놓고도 줄곧 무력화(無力化)를 시도해 왔다.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이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서명문을 교환하고 있다.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이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서명문을 교환하고 있다.
실제 노-김 회담에서 김정일은 “서부지대는 바다문제(NLL)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평화협력지대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 실무적인 협상에 들어가서는 쌍방이 다 포기한다, 이렇게 발표를 해도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문건에 나와 있어 NLL 문제에 노-김이 원칙적으로는 의견 접근을 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붕괴 등 돌발사태에 대비해 주한미군이 세운 작전계획(작계 5029)에 대해서도 언급,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느냐. 우리는 전쟁상황 자체를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뭐 갈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가지고 우리한테 거는데…”라고까지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작계 5029는 북한 급변(急變)사태 시의 행동 매뉴얼로 군사비밀로 분류돼 있다. 이를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가 군사적으로 엄연히 대치 중인 북한의 최고 실권자에게 거론했다는 것 자체도 말이 되지 않지만 더구나 그것을 없앤 점을 ‘자랑하듯’ 표현한 것은 충격적이다.
 
  북핵(北核)문제에 대해서 역시 노 전 대통령은 완전히 북한의 입장에서 말을 이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다”고 했다. 북핵 6자회담은 당시까지 북한이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진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남북한을 포함해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6자(者)가 만나 ‘핵 폐기(廢棄) 후 보상(補償)’을 전제로 협상을 벌이던 틀이다. 그럼에도 그는 핵폐기 문제는 아예 거론도 하지 않은 채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과 싸웠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다. 근데 그것은 되도록 가서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느냐”고까지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한국과 미국이 지어주기로 한 경수로(輕水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북한이 핵폐기 협상을 진전시키지 않음에 따라 한미가 건설을 중단한 경수로에 대해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 미국 제끼고… 얘기했다”고 김정일에게 설명해 줬다. “(이종석한테) 몇 번 말로 하니까 안 된다 그래서 보고서를 써 내라고 지시했다. 궁극적으로 경수로 문제 뭐 그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말한 대목도 나온다. ‘이종석’은 2006년 말까지 통일부장관을 지낸 대표적 좌파학자인데 그마저도 노 전 대통령의 ‘핵문제 협상을 도외시한 경수로 지원’에는 반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북한 핵 문제의 심각성, 북핵과 경수로 건설의 불가분 관계, 북핵을 둘러싼 한미 간 공조 등을 모조리 무시하는 것으로 만약 현실화됐을 경우 한국의 안보 지형이 통째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발언록에는 미국, 일본과의 공조(共助)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내용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노 전 대통령은 미국이 국제적인 불법행위들을 억제하기 위해 취한 BDA(Banco Delta Asia)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을 비판했다. BDA 문제란 북한이 위조달러를 만들어 유통시키고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과 관련해 검은 돈 흐름을 추적하던 미국 재무부가 마카오의 BDA에 혐의를 두고 BDA를 자금세탁우려기관으로 지정해 이곳에 예치해놓았던 북한 자금 2500만 달러가 동결된 사건을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명히 얘기를 하는데… BDA 문제는 미국의 실책인데… 북측에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절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저항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다구치 야에코를 비롯해 일본 정부가 북한에 의한 납치로 공식 인정한 숫자만 17명에 이르는데도 노 전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북한 입장을 옹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일본인 납치를 전면 부인하다가 2002년 일북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인정, 5명을 돌려보냈다. 북한은 이후 2004년 2차 일북정상회담에서 추가 납치자에 대한 진상 규명을 약속하고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 일본 측의 불만을 산 바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지난번에 일본 대사가 이임하면서 찾아왔기에… 당신들 요구가 뭐냐 물었더니 사람 돌려달라, 다 돌아갔잖냐 했더니 더 있다는 거다. 어떻게 증거가 있냐 이랬더니, 하여튼 못 믿겠다는 말만 하는 거다”라고 납치의 피해국인 일본 측을 오히려 힐난하는 듯한 말을 했다. “납치문제 관련 일본이 생트집 잡고 있다고 써놓은 책도 있고…”라는 말도 한 것으로 문건에 나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다”고도 했다.
 
  안보·군사·외교 문제뿐만 아니라 남북경제협력에 대해서도 북한이 오히려 남한에 혜택을 주는 것이란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노 전 대통령의 관련 발언이다.
 
  “조선공업 같은 것은 우리 남측을 위해서 돌파구를 열어주셔야 됩니다. 우리도 점차 중국에서 푸대접을 받기 시작하거든요. 조선부품이라든지, 우리도 중국 아닌 다른 쪽으로 가야 됩니다.… 남측에서 학자들이 도로 닦는 데 90조가 들어가느니 하는데, 다 헛소리라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북측은 국유 토지이기 때문에 남측에 건설하는 도로의 10분의 1 정도면 건설할 수 있거든요.”
 
  노 전 대통령은 “위원장하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6·15 때 악수 한 번 했는데, 남쪽 경제에 수조 원, 수십조 원 번 거다. 내가 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조 원 벌었다”고도 말해 남북경협으로 남측이 오히려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식의 시각을 보였다.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은 6·15 정상회담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는데 문건에 따르면 김정일의 실제 발언은 뉘앙스가 상당히 다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김정일은 “미국 사람이 왜 와 있는가? 그건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실제로 미군이 나가지 않길 바란다.… 미국에도 미군 철수하라는 말을 곧이듣지 말라고 했다. 미군이 있으면 미국하고 싸움하는 것이 되고, 남조선하고 싸움 안 하니까”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김정일이 주한미군 철수라는 기존 입장을 바꿨다기보다는 자신이 주한미군을 북한 주민들의 대미 적개심 고취에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일의 이 발언이 있은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좌우간 김 위원장 존경한다. 민족을 위한 탁월한 말씀을…”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 문건 전문.
보고서 全文  
「南北 정상회담 대화錄」 검토

 
  남북 정상 간 「대화錄」은 주로 「공동선언문」 의제 논의에 집중되어 있으나, 국가 정체성 훼손 및 국가수반으로서 위신 손상 등 문제점 상당
 
  문제점
 
  ① 편향적 對北觀과 안보의식 결여로 국가정체성 훼손
  ○ NLL·北核문제 관련 북한 입장 지지 및 對北 우호적 발언 남발 등 국가원수로서 안보개념 희박 




  ✓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 미국 제끼고… 얘기했음. 경수로 꼭 지어야 함”
 
  ✓ “NLL은 국제법적·논리적 근거가 분명치 않고, 헌법문제도 절대 아님.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음”
 
  ✓ “외국과의 정상회담 시 나는 북측의 대변인·변호인 노릇을 했으며, 6者회담에서의 북측 입장을 갖고 미국과 싸워 왔음”(이상 노무현)
 
  ② 형식적인 남북관계 진전에 집착, ‘북한에 끌려다니기’式 회담
  ○ 합의 이행을 次期 정부에 떠넘겨 現 정부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남북경협 = 북한의 시혜」라는 인식을 공공연히 표출, 협상력 저하 




  ✓ “어떤 정부가 와도 화해·통일의 길을 못 막도록 하는 것이 저의 소원”(김대중)
 
  ✓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 쐐기를 박아 놓자는 것”
 
  ✓ “조선공업 같은 것은 남측을 위해 돌파구를 열어주셔야 됨”, “남측 학자들이 북측 도로 건설에 90조가 든다고 하는데 헛소리로, 1/10이면 됨”(이상 노무현)
 
  ③ 북한 입장 대변 등 노골적인 북한 편들기
  ○ BDA·일본인 납치문제 관련 북한 주장에 동조, 북한의 불량국가 행태를 용인하고 韓·美·日 공조 균열을 자초 




  ✓“분명히 얘기하는데 BDA 문제는 미국의 실책으로, 부당함”
 
  ✓ “납치문제 관련 일본이 생트집 잡고 있다고 써놓은 책도 있고… 駐韓 日本 대사에게 납치 일본인 다 귀환하지 않았냐고 했음”(이상 노무현)
 
  ④ 김정일에 대한 과도한 ‘저자세’로 국가위신 실추
  ○ ‘김정일 띄워주기·환심 사기’ 발언을 남발하고, 訪韓 간청·청탁성 어투 등으로 대등한 협상이 아닌 김정일 주도의 회담 진행 초래 




  ✓ “좌우간 김위원장 존경합니다. 민족을 위해 탁월한 말씀을…”(김대중)
 
  ✓ “내가 분계선 넘은 사진 하나로 남측은 아마 수兆원 벌었음”,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 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음”
 
  ✓ “임기 마치고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하게 할 수 있게…”(노무현)
 
 
  평가
 
  ○ ‌상기 문제발언은 전임 대통령들이 좌편향적 對北인식을 바탕으로 「공동선언」 합의라는 정치·상징적 결과물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
  - ‌특히 납북자·국군포로·인권 등 북한이 껄끄러워 하는 문제에 대한 ‘의도적 침묵’으로 남북관계의 잘못된 관행을 고착化
  ○ ‌특히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북한의 권력자와 대화라는 점에서 문제점 다대
  - ‌국가정체성 훼손, 국익저해, 국가위신 추락, 노출 시 美·日의 불신 초래 등 부정적 파급 영향과 함께
  - ‌북한이 정상회담 발언을 ‘김정일 위대성’ 선전 등 내부 교양자료로 활용하고, 향후 남북관계에서 악용할 수 있는 소지를 제공
 
  * ‌정상회담 직후(07.10) 내부 강연자료를 통해 “美·日의 對北압박을 타파한 국제적 혁명환경 제고”·“南조선업계의 파산위기를 막기 위해 조선협력 합의” 등 선전
 
  ⇨ 국정원은 이 같은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 및 10·4선언」의 문제점을 대내외에 전파하여, 북한·좌파의 전면이행 주장을 제압하고 우리 對北정책의 정당성을 부각해 나가겠음. 끝.
 
  ※붙임 : 1.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 문제 발언
  2. 「대화錄」 중 주요 현안에 대한 김정일의 언급내용

 
 
 
1.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 문제 발언

 
  1 ㅣ 편향적·감성적 對北인식 




  ✓ “내가 원하는 우리 문제는 우리가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입니다”(김대중)
 
  ✓ “(김정일의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언급에 대해) 남북이 (對美日 등 관계에서)세게 하면 고립이 되지만, 자리를 잡고 난 뒤에 세게 하면 자주가 되거든요. 자주가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 “오늘 아리랑 공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나는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이상 노무현)
 
  ⇨ 북한의 「용어혼란 전술」 사례인 ‘자주’를 무비판 수용, 김정일 우상화·체제선전물 ‘아리랑’ 공연에 대한 기대감 표명 북한의 이념적 주장에 호응
 




  ✓ “北도 그렇겠지만, 南도 어떠한 대북 군사행동도 반대하고 또 누가 해도 반대함”(김대중)
 
  ✓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 할라고 합니다. 이번에 군부가 개편되어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평화협력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이상 노무현)
 
  ⇨ 從北좌파적 시각과 함께 「軍」까지도 전향적·유화적 對北 분위기로 전환되었다고 강조, 북한이 통일전선전술 구사에 대해 자신감을 갖도록 오도
 
 
  2 ㅣ 국가원수로서 안보의식 결여 




  ✓ “국가보안법은 나도 10년 전부터 상당히 개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만 야당이 반대해서 못하고 있습니다”(김대중)
 
  ✓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 보냈지 않습니까. 2011년 되면 나갑니다”
 
  ✓ “우리는 북측이 굳건하게 체제를 유지하고 안정을 유지한 토대 위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한테 거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전쟁상황 자체를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뭐 갈 수 없습니다”(이상 노무현)
 
  ⇨ 북한의 ‘국가보안법 폐지·駐韓미군 철수’ 동조, 北 체제 인정 및 군사비밀인 ‘작계 5029’ 언급 등 국가안보 소홀
 




  ✓ “NLL문제,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헌법문제라고 나오고 있는데 헌법문제 절대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
 
  ✓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경제 지도를 덮어 그려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큰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입니다”(이상 노무현)
 
  ⇨ 남북기본합의서 등을 통해 남북이 서해경계선으로 확인한 NLL을 무시, 북한의 NLL 무력화 빌미를 제공 
 




  ✓ “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죠. 근데 그것은 되도록 가서 판 깨고…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이상 노무현)
 
  ⇨ 우리의 최대 안보현안인 북핵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北 입장 옹호’·논의 회피 등의 위험한 안보관 표출 
 
  3 ㅣ 대못박기·협상입지 약화 자초 등 國益 저해 




  ✓ “(공동선언 서명과 관련) 서울에 외국통신 600여 개가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늦게라도 되어야 내일 아침신문에도 나오고 전 세계에 나오고 나서, 서울에 가야됩니다”
 
  ✓ “어떤 정부가 들어오더라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길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이상 김대중)
 
  ✓ “내가 원하는 것은 시간을 늦추지 말자는 것이고… 또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 뒷걸음질치지 않게… 쐐기를 박아놓자”(노무현)
 
  ⇨ ‘보여주기 위한 성과 도출' 욕구로 합의이행 부담을 次期정부에 전가, 차기정부의 역할과 입지를 축소시키는 행위
 




  ✓ “북쪽 노동력은 중국보다 훨씬 우수하고 노임도 안 비싸고요, 경쟁력이 훨씬 있습니다. 남측 기업가들이 노리는 것은 북쪽 노동력의 우수성과 노임이 높지 않다는 것, 이걸 이용해서 세계로 투자하는 겁니다”(김대중)
 
  ✓ “조선공업 같은 것은 우리 남측을 위해서 돌파구를 열어주셔야 됩니다. 우리도 점차 중국에서 푸대접을 받기 시작하거든요. 조선부품이라든지, 우리도 중국 아닌 다른 쪽으로 가야 됩니다”
 
  ✓ “남측에서 학자들이 도로 닦는 데 90조가 들어가느니 하는데, 다 헛소리라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북측은 국유토지이기 때문에 남측에 건설하는 도로의 10분의 1 정도면 건설할 수 있거든요”
 
  ✓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만든다는 데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반대를 하면 하루아침에 인터넷에서 바보가 되는 겁니다. 이제는 기업 하는 사람들이 북측과 같이 손잡고 가야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이상 노무현)
 
  ⇨ 「남북경협 = 북한의 시혜」라는 인식을 노출하면서 인터넷 여론을 과신, 우리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경협 관련 북한의 입지를 강화
 
 
  4 ㅣ 북한의 對外인식에 동조, 외교적 문제 야기 소지
 



  ✓ “분명히 얘기를 하는데… BDA 문제는 미국의 실책인데… 북측에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인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절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저항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 “지난번에 일본대사가 이임하면서 찾아 왔길래… 당신들 요구가 뭐냐 물었더니 사람 돌려달라. 다 돌아갔잖냐 했더니 더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증거가 있냐 이랬더니. 하여튼 못믿겠다는 말만 하는 겁니다”(이상 노무현)
 
  ⇨ 북한의 명백한 불법행위로 인한 BDA 문제를 정당화시키고, 일본의 납치 문제 관련 北 주장을 대변하는 등 북한의 對外인식에 동조, 韓美日 공조 훼손 
 




  ✓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 미국 제끼고… 얘기했음. 몇 번 말로 하니까 안된다 그래서 보고서를 써내라고 지시했습니다”
 
  ✓ “우리는 경수로 꼭 지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경수로 문제 뭐 그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력할 것입니다”(이상 노무현)
 
  ⇨ 북한의 「AF」(94.10) 파기로 인한 ‘경수로 건설’ 중단과 관련 우리 측 단독으로 건설 가능성을 제시, 공개 시 우리와 美·日과의 갈등 유발 가능성
 




  ✓ “김 위원장께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문만 열어놓는다면 미국이 이에 상응한 관계개선 조치를 속도를 내서 취하도록 계속 재촉할 것입니다”
 
  ✓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남과 북이 주도해서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공표하게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이상 노무현)
 
  ⇨ 북핵문제 해결이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성급한 평화체제 논의를 先 제기
 
 
  5 ㅣ 김정일에 대한 지나친 ‘저자세’로 국가 품위 손상 




  ✓ “(김정일의 駐韓美軍 용인 발언에 대해) 좌우간 김 위원장 존경합니다. 민족을 위한 탁월한 말씀을…”(김대중)
 
  ✓ “위원장하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6·15 때 악수 한 번 했는데, 남쪽 경제에 수조원, 수십조원 번 거거든요. 내가 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조원 벌었습니다”
 
  ✓ “(김정일이 訪韓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하자)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 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이상 노무현)
 
  ⇨ 국가원수로서 품격을 잃은 자세로 ‘김정일 눈치 보기·비위 맞추기’ 행태 및 ‘김정일 訪韓 간청’ 등 국가 위신 실추
 
  * 기타 ‘위원장님’ 호칭(3회. 노무현), 경박한 단어(“임기 마치고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게…” “일본하고도 아니꼬와도 문제를 풀고 가야 합니다” 등 노무현) 사용, 대통령 자신을 ‘저’(1회. 김대중)로 표현하는 등 국가원수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말 실수」도 빈번
 
 
2. 「대화錄」 중 주요 현안에 대한 김정일의 언급 내용

 
  ※ 대부분 북한의 기존 입장 고수, 현안 관련 일부 전향적인 태도는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 희석 및 회담 주도를 위한 작위적인 발언으로 평가

 [월간조선 단독입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 보고서(대외비)

 [월간조선 단독입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 보고서(대외비)


 [월간조선 단독입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 보고서(대외비)

2013년 2월 4일 월요일

이명박 대통령 인터뷰 전문(2013.02.05)


이명박 대통령 本紙 인터뷰… 퇴임 앞두고 임기 5년의 소회 말하다

[한반도와 중국]

"北 핵실험땐 시진핑에 악영향… 中정부 주도 투자 끊어질 것
韓·中 관계, 언론보도 이상으로 좋지만 北·中은 그 이하"

오는 24일로 임기를 마치는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본지 양상훈 편집국장, 박두식 정치부장과 2시간 10분 동안 인터뷰를 가졌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중국이 약 1년 전부터 우리나라와 한반도 통일 이후에 대한 이야기에 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막는 데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북·중 관계는 어떻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중국에 관한 한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한·중 관계는 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으로 좋고, 북·중 관계는 언론에 보도된 것 이하다. 작년 4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패 후에 중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김정은' '지도자' 이런 말을 안 하더라. (김정은을) '젊은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데 깜짝 놀랐다. (중국 사람들과) 사석에서 통일에 관한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상상할 수 없는 변화다. 중국 사람들은 '통일'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하나가 됐을 때'로 얘기한다. 이런 진지한 대화가 한·중 간에 이뤄진 건 1년 정도 된다. 그전엔 그런 비슷한 얘기만 해도 (중국 측이) 말을 돌렸었다. 중국 내에서 '대한민국 중심으로 통일이 되는 게 중국 국익에 반하지 않는다'는 논문이 통용되고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중 정부 차원보다는 신뢰할 만한 민간 차원에서 모여 (통일 후)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대화를 할 때가 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2008년부터 임기 5년간 발생했던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작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패 직후인 5월 중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김정은을 ‘지도자’ 대신 ‘젊은 사람’이라고 지칭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북한이 중국의 반대에도 3차 핵실험을 하면 북·중 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북 핵실험은) 처음 출발하는 시진핑 총서기에게 상당히 나쁜 영향을 줄 거다. 겉으로는 북·중 관계가 끊어진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중국은 앞으로 정부 차원의 대북 투자를 하지 않을 거다. 중국에선 정부가 투자하지 않으면 민간도 투자하지 않는다. 북한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그렇게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과 안보 문제에서 협력은 어느 정도로 이뤄지고 있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후 합동참모본부에 가서 '우리 영토를 공격받으면 발원지는 물론이고 지원 세력까지 육·해·공으로 공격하라'고 했다. 당시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은 절대 보복을 못한다'고 믿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에 이런 지시를 내렸다. 이 방침을 정한 뒤 내가 중국에 통보하고, 중국 쪽에 '북한에도 통보해달라'고 했다. 이에 중국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북한에 가서 통보한 뒤 나한테 와서 북에 통보한 사실을 알려줬다. 국방부를 통해서 미국에도 이 방침을 알렸다. 그러자 미국 쪽에서 '발원지 외에 지원 세력까지 공격하면 문제가 확대되지 않겠나'라고 했으나 내가 강하게 얘기해서 미국이 이해했다. 그것이 북한의 도발 억제에 도움이 많이 됐다. 북한 같은 호전적 세력엔 협상과 구걸로 (평화를) 살 수 없고 결국 우리가 더 강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의지를 보여야 도발을 못 한다."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盧·金 대화록 봤다… 國格 떨어질 내용이라 밝히기가 참…"

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논란이 됐던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의 대화록에 대해서 "안 밝혀지는 게 낫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후,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 나눈 대화록을 보고 분노했다는 말이 있었다. 어떤 내용이었나.
"격분하거나 화를 낸 것은 아니다. 다만 국격(國格)이 떨어지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안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그 내용은 국격이라고 하기에도 좀…. (대화록에는) 한·미 관계 얘기도 있고 남북 관계 얘기도 있다. 이제 검찰(수사 과정)에서 일부는 나왔으니까 NLL 문제는 밝혀지겠지. 취임하고 보니 '안 밝혀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엔 밝혀지면 국민에게도 안 좋을 것 같다."

[노무현 前 대통령 죽음]
"갑작스러운 死去 소식 듣고 믿기지 않아
어디 중병 걸렸나 생각해 두차례나 확인"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전임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그의 갑작스러운 사거(死去) 등에 대해서도 소회를 털어놨다.

―노 전 대통령 사거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나.

"난 믿기지 않았다. 혹시 뭐 아파서 어디 중병에 걸렸나 생각해서 확인을 두 차례나 했다. '어떻게 돌아가셨나?' 하니까 '떨어졌다'고 하더라. 믿지 못하겠더라."

―지금 생각할 때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 후회되는 점은 없나.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노 전 대통령을 서울로 불러서 조사한다고 해서 내가 민정수석에게 '방문 조사를 하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내가 검찰에 명령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때는 전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있을 때였다. 내가 수사를 중지하라고 하면 자칫 대통령이 초법적으로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못 했다. 민정수석에게 (봉하마을로) 방문 조사를 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권유를 했었다. 전날까지 (그런 권유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노 전 대통령 본인이 서울로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교통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대통령) 전용 기차를 쓰라고 했더니 (노 전 대통령이) 버스를 타겠다고 해서 청와대 버스를 보내줬다."  

[세종시]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조선일보 양상훈(오른쪽) 편집국장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 대통령은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40분을 넘긴 2시간10분 동안 인터뷰에 응했다. /이진한 기자
―대통령은 세종시 이전에 반대했다. 지금 이전이 시작된 상황에서 보면 어떤가.

"그 문제는 (이미 착수한 이상) 어떻게 생각한다 하는 게 이제 의미가 없다. 지금 여러가지 문제가 이야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빨리 (세종시를) 안정시키는 게 중요하다. 내가 최근에 한 번 가봤다. 가보니까 정말 공직자는 공직자대로 불편하고 그렇더라. 또 그런 (불편)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더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 효율 문제다. 행정도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 점이 제일 걱정이다. 총리도 일주일에 세 번 네 번 왔다갔다 한다는데 5일 근무하면 그중에 실제 근무하는 건 왕복하는 시간 빼면 한 3일 근무하는 정도 아닌가.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예 내려가질 않는다고 하더라."

―김황식 총리도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걸 어떻게 정상화시키느냐로 생각해야지 지나간 이야기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반대할 당시에) 내 생각에는 남북통일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고 봤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 남북통일이 되겠구나라고 생각됐다. 통일이 된다고 하면 개성 쪽 가까운 북한 땅에 하면 국유지니까 돈이 안 들지 않느냐. 그리고 거기에선 서울에 오는데도, 평양에 가는 데도, 그리고 인천공항을 가는 데도 몇십분씩밖에 안 걸린다. 그래서 내가 그때 '통일수도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던 거다."

[퇴임 후 계획은]

"위대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돼 대단한 보람
나라에 부담은 안주면서 도움될 일 할 것"

오는 24일로 5년 임기를 마치는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구상에 대해 "나라에 부담은 안 주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아주 조용하게 하며 지내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해외 굴지의 컨설팅 회사가 (퇴임 후에) 이런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계획서를 만들어서 보내주기도 하더라"며 "어떤 정상은 '재임 중에 휴가를 같이 못 갔으니 퇴임 후에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단정적으로 딱 뭘 하겠다고 결정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서 "대한민국은 참 위대한 나라이고 이런 위대한 나라의 대통령이 됐다는 것에 나도 대단한 보람을 느낀다"며 "우리 국민이 때로는 시끄럽고 말이 많은 것 같아도 참으로 대단한 국민"이라고 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청와대에서 최금락 홍보수석과 박정하 대변인이 배석했다.

[국민 평가 낮은데…]
"난 세계서 가장 열심히 한 대통령… 억울하단 생각안해
대기업을 바꾸려면 총수 문화부터 바꾸는게 매우 중요"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자신의 재임 기간에 대한 평가에 대해 "두 번의 경제위기를 극복해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국내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 스스로 억울하다 생각하지 않고, 나 스스로 평가할 때 경제위기를 맞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한 대통령이라는 자부를 갖고 있다"고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먼저 극복했고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등급도 일본과 같거나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섰다. 국내에선 이런 부분을 평가받지 못하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하나.

"내가 취임했을 때는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던 시점이었다. 우리 정부에서 빈부 격차 개선 성과가 가장 좋고 중산층도 줄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중산층이 계속 무너졌다고 주장한다(이 대목에서 이 대통령은 중산층 관련 수치와 도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이건 정치적·이념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 됐지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모임에 가서 예상치 못한 큰 환대를 받았다. 500명 정도가 모여서 정말 반기더라. 지금은 아니더라도 세상의 판단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재임 중 '부자 정권'이라는 말이 계속 따라다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정책을 훨씬 더 신경 쓰고 집중했다. 경제위기 때는 아무래도 실적이 대기업이 훨씬 좋으니깐 (나보고) 대기업 위주로 했다고 한다. 위기 때 대기업을 죽일 건가? 나라를 살려놓고 봐야지. 대기업 정책, 중소기업 정책 다 해야 한다."

―대기업 CEO 출신으로 우리나라 재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볼 땐 대기업 문제는 기업 총수의 문화를 바꾸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청와대에서 회의를 열어 겁을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된다. 기업들은 해외로 다 빠져나가려고 하고,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견디자고 해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재벌 총수 12명을 모아 당부했다. 그들에게 하청업체의 대표들을 불러놓고 고맙다고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이해를 시켰더니 여러 대기업에서 납품업자들 불러서 회의도 하고 실질적으로 많이 바뀌었다는 보고를 들었다."
    
 (왼쪽)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 직후인 2010년 4월‘, 천안함 46용사’분향소를 찾아 헌화한 뒤 돌아서고 있다, (가운데)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0일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한 모습.‘ 한국령’이라고 쓰인 암반 비석을 만져보고 있다, (오른쪽)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4대강 사업 비판에…]
[Q: 4대강 사업, 한꺼번에 안하고 단계적으로 할 수는 없었나? ]
"다른 지역서 가만있겠나… 단계적으론 50조 들여도 못해"
― 4대강 사업은 꼭 그렇게 임기 중에 한꺼번에 했어야 했나.

"나눠서 하는 건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다. 민주당에선 영산강을 먼저 하라고 했고 낙동강변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토목, 물 문제와 관련된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 어느 한 곳을 먼저 해서 잘 되면 다른 곳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했으면 정치적 부담도 덜하지 않았겠나.

"4대강에 22조원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식(단계적)으로 하면 50조원을 들여도 다 못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했었고, 각각 70조원·48조원 든다고 나왔었다. 내가 집권한 초기에 경제위기를 맞았다. 안 그래도 공공근로에 (한 해) 4조~5조원씩 들여야 했다. 그걸 하느니 4대강을 하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 골고루 딱 맞는 거다. 정치적으로도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민주당에서도 운하만 아니면 반대 안 한다고 했었다."

―대운하를 못 한 것이 아쉬운가.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강 자체를 생산적인 데 쓰지 않고 하수구처럼 쓰는 나라는 없다. 콩고에 가도 큰 강을 따라 원자재 수송한다. 네덜란드에서 그리스까지 운하를 통해서 가더라. 그래서 운하를 만들면 좋겠다 생각한 거지.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 당선되고 이 문제에 대한 국민 인식이 달라졌을 때 추진하든가 할 문제다. 내가 이제 와서 뭐라 말할 수는 없다."

―최근 감사원이 4대강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화가 나지 않았나.

"공무원들은 물일(물과 관련된 공사)을 이해 못 한다. 물일은 홍수 한번 만나면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빨리 해야 한다. 감사원에서 환경 하는 사람들은 물일에 대한 이해가 없다. 감사원도 모두 정부 산하인데 내 입장에서 뭐라고 할 수 있겠나."

[사면·측근 비리에…]
[Q: 특별사면 국민 비난 받을것 알면서 왜 했나?]
"임기중 발생 비리 사면않겠단 약속은 지켜"
"먼저 정치한 이상득 의원 출마 막을 수 없어"
―얼마 전 실시한 특별사면은 비판받을 것이 분명하고, 대통령도 그걸 알았을 텐데 왜 했나.

"사실 떠날 때 (마지막으로) 하려고 작년 8·15와 연말 때 사면을 안 했다. (이번 7번째 사면 전까지) 우리 횟수가 6번인가 했다. 보통 (전임 대통령들은) 8~9회 했다. 사면했다는 걸로 욕을 먹지만, 내 임기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는 안 하겠다는 약속만은 지켰다. (이번에) 민간인 사찰, 이런 건 사면 안했다. 최시중씨 같은 사람은 그 (임기 시작되기) 이전의 문제니까. 원칙은 몇 가지 지켰다. 측근 사면이라고 하는데 사실 진짜 측근은 안 했다.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2008년 총선 때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출마를 막았어야 했다는 후회는 없나.

"이상득 의원은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정치를 하고 있었다. 내가 취임하기 전에 이미 국회부의장 하고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다 했는데, 내가 대통령이 된 후에 정치 들어왔으면 모르겠지만, (이 전 의원의 출마가)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이 대통령은 인터뷰 내내 '이상득 의원'이라고 불렀다)."

―임기 중 벌어진 민간인 사찰 문제는 정말로 몰랐나.

"몰랐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정치적 거물을 사찰한 것도 아니고 신문에 난 거 파일링한 거더라. 그런 건 수석이나 실장한테 (보고)할 것도 아니더라. 과거에 하던 스타일대로 한 거다."

['고·소·영' 인사 논란에…]
Q: 첫 수석 전원이 서울·영남, 잘못 아닌가?
"고·소·영 인사라는 비판엔 동의 못해"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강부자'(강남 땅부자)라는 비판이 있다. 첫 청와대 비서진 인선 때는 서울 아니면 영남 출신들만 기용했는데, 지역 안배 같은 고려를 하지 않은 건가.

"나는 지역을 고려해서 인사를 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난 지방색이 없다. 기업에서 일할 때도 그런 것 따지지 않았다. 언젠가 주요 자리에 4명을 인사하는데 3명이 호남 사람이었다. 그랬더니 (내 얘기를 소재로 했던) 드라마에서 전북 군산 사람으로 나온 것을 가리켜 내가 호남 출신이라는 말이 나오더라. 이 정부에서 전남 출신 국무총리도 처음 나왔고, 전남 출신 국방장관도 처음 나왔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동시에 호남 출신인 적도 처음이다. 나는 각자 그 사람의 적성에 맞게 쓸 뿐이다. 인사는 첫째, 능력 위주로 해야 한다. 둘째는 생각이 다르지 않고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들을 중용했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난 '기왕이면 고려대 출신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지금 농림장관이 고대 출신인데, 난 거기 나온 줄 몰랐다. 내 인선이 '고소영'이란 주장은 좀 억지라고 본다."

―대통령 5년을 하고 나서 보니 지역 안배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됐는가, 그렇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도 안 된다고 본다. 처음 당선된 직후에는 우리한테 자료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씨가 '모든 자료를 대통령 기록원에 넘겼다'고 하더라. 정말 막막했다. 지금은 2만명에 대한 자료가 있다. 이를 다음 정부에 모두 넘겨줬다."

[내곡동 사저 의혹에…]
Q:퇴임 후 사저 꼭 서울이어야 했나?
"경기도 땅도 찾아 헤맸다고 들었다"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은 특검 수사까지 이어졌다. 서울이 아닌, 서울 근교 경기도에 사저 부지를 매입하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나.

"경기도에서도 땅을 많이 찾아봤다. 경호처에서 경기도 일대를 헤매지 않은 데가 없다. 그곳도 땅값이 비싸더라. 그리고 경호처 사람들은 경호상 문제가 없는 땅을 우선해서 찾은 것이다. 난 사실 고향 같은 논현동 (자택으로) 가고 싶었지. 거기서 CEO (최고경영자)도 되고 서울시장도 되고 대통령이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경호처가 경호상 이유로 반대해서 다른 곳을 찾았다."

―내곡동 사저 부지를 본인 이름으로 구입하지 않았는데….

"(경호처에서) 대통령 이름으로 하면 주변 땅값이 올라 구입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역대 대통령들이 그렇게 했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아들 명의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살 수 있지 않았나.

"내 생각엔 건축 허가를 받으면 어차피 내 이름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들(시형씨)에게 재산으로 물려줄 것도 아니고, 내가 평생 죽을 때까지 살 집인데…."

    
[천안함·연평도]
"천안함 수색작업 현장서 한주호 준위 만났었는데… 숨졌다는 소식 듣고 큰 충격
연평도때 '확전 말라' 지시? 공군한테 때리라고 하니 軍출신들이 안된다고 하더라"
이명박 대통령은 4일 본지 인터뷰에서 임기 5년 중 가장 가슴 아픈 일로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을 꼽았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당한 뒤에 자작극이라는 소리가 나왔을 때 특히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천안함 폭침 초반 정부에서 "(사건 원인에 대해) 예단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다. 북의 공격이 아니라 우리 군의 실수로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떻게 군의 실수로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날 수 있겠나. (천안함을 침몰시킨 북한 어뢰를 찾아낸 건) 우리 국운(國運)이었다고 생각한다. 1번이란 글씨가 적혀 있는 어뢰를 찾아냈을 때 미국도 놀라더라. 그런데 (일부에서) 이걸 가짜라고 하더라. 나는 이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본다. 좌파 진보라기보다는 종북(從北) 세력이라고 봐야지. 이번에 은하 3호를 건져냈을 때 거기에도 번호가 나왔는데, 여기에 대해선 가짜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쐈다고 발표했으니까 아무 소리도 없는 것 같다."

―두 동강 난 천안함을 건져올릴 때 심정이 어땠나.

"오죽했으면 (사건 직후 직접) 현장에 갔겠나. 그때 한창 수색 작업 중이던 한주호 준위를 만났다. 내가 '무리하지 말라. 물이 차고 깊으니 조심하라'고 했는데 '괜찮습니다'라고 하더라. 그런데 천안함 46용사에 이어 한 준위까지 숨져 내가 충격을 두 번 받았다. 한 준위 아들은 학교 선생님이 됐고, 전사자의 한 어머니는 받은 포상금을 함정 기관총을 사는 데 보탰다. 나는 그런 분들이 계셔서 종북 세력이 있어도 우리나라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시 청와대에서 "확전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확전하지 말라고 얘기 안 했다. '공군 뒀다 뭐하냐'고 했다. 당시 (국가위기관리센터 긴급회의에) 배석했던 한 인사가 청와대 대변인한테 개인적인 의견을 전한 거다. 그 후 나도 책임 추궁을 했다. 군 출신들은 확전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공군 지원에 대해 말하니 당시) 군 고위관계자가 교전 규칙을 얘기하면서 '확전하면 안 된다. 미군과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길로 합참과 국방부를 찾아가서 '교전 규칙은 지켜야겠지만 이건 우리 영토를 침범당한 사건이다. 국토를 지키는 건 교전 규칙과 관계없다'고 명령했다. 나중에 보니 교전 규칙에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못하게 했으니 그랬던 거다. 공군한테 때리라고 하니까 우리 군이 놀라더라. 그때 이후 (북 도발 시) 현장에서 적극 대응하고, 보고는 나중에 하라고 했다. 우리 영토를 공격받으면 발원지와 지원 세력까지 육·해·공으로 공격하라고 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군이 많이 변화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천안함 폭침을 "재임 중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이라며 "(퇴임 이후) 앞으로도 (천안함·연평도 사건 전사자들의) 묘지를 자주 찾아갈 것"이라고 했다.
[광우병 촛불 시위]

"취임 초로 돌아가도 美와 쇠고기 협상할 것"
"세계가 다 먹는 쇠고기인데… 협상 반대는 상식 밖의 일
촛불때 경찰청장 불러 말했다, 절대 사람 안 다치게 하라고
그랬더니 컨테이너 쌓더라"

―광우병 촛불 시위가 없었다면 임기 5년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촛불 시위는 계획적으로 한 거라 피할 수 없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진보 단체들이 다 모였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까 이미 그 사람들이 '이걸(시위를) 크게 한번 해서 정권을 뒤흔들겠다'는 계획이었다고 들었다. 몇 명 다치면 정권을 바꿀 수 있다고도  했다. 내가 경찰청장 불러서 '절대로 사람이 안 다치도록 하라' '(경찰이) 후퇴해도 좋고 (시위대가) 청와대 들어와도 좋으니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라'고 지시했다. 정권 초반이어서 경찰이 과잉 대응을 할 수도 있고, 시위가 격해지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시위대가 유모차까지 끌고 나오니 (경찰이)컨테이너 박스를 광화문에 쌓아놓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내가 독재자도 아니고 군사정권도 아닌데 사람이 다치는 일이 벌어져서야 되겠나. 또 세계가 어떻게 보겠나. 그랬더니 한쪽에선 너무 약하게 대응했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심하게 했다고 하더라."

―취임 초로 다시 돌아가면 그래도 미국과 쇠고기 협상 타결할 것인가.

"난 했을 거다. '글로벌 코리아' 하려면 FTA를 해야 하는데, 전 세계가 다 먹는 쇠고기를 안 먹는 국가(의 지도자)가 그게 무슨 지도자인가. 그거(쇠고기 협상) 안 하면 내가 대통령 자격이 없지. 그런 상식 바깥의 일(쇠고기 협상 반대)을 대통령이 된 사람이 타협하는 건 맞지 않다."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檢, 국정원 제출 ‘NLL 대화록’ 발췌본 열람(2013.01.23)

'공공기록물' 잠정 결론…25일부터 정문헌 의원 등 피고발인 조사

'NLL(북방한계선) 발언 대화록'과 관련해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해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23일 전해졌다.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상호 부장검사)는 지난달 국정원이 제출한 NLL 발언 관련 대화록 발췌본을 '대통령지정 기록물'이 아닌 '공공기록물'로 잠정 결론 내리고 최근 이를 열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록물은 여야 합의 없이 공공기관장이 열람을 허용할 수 있다. 

반면, 대통령지정 기록물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이 이뤄지거나 관할고등법원장이 영장을 발부한 경우 등에만 제한적으로 자료 열람ㆍ제출을 할 수 있다. 

검찰은 그간 대통령 기록관과 국정원 관계자들을 조사해 대화록 발췌본의 법적 성격을 따져왔다.

검찰은 해당 발췌본이 국정원에서 직접 작성한 것으로,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되기 이전에 자체 보유했던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지정 기록물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사건의 핵심이 대화록을 둘러싼 허위사실 공표 혐의인 만큼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도 열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국정원이 검찰에 자료를 제출한 것도 내부적으로 공공기록물이라는 판단을 거쳤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검찰은 오는 25일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피고발인 조사에 들어간다.

검찰은 정 의원 등을 상대로 대화록 존재 여부와 내용을 취득하게 된 경위, 이를 공개한 배경 등을 집중 조사할 예정이다.

앞서 민주통합당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NLL과 관련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비공개 대화록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정 의원과 같은 당 이철우 의원, 박선규 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을 고발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봤다고 밝힌 천영우 외교안보수석도 추가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