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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3일 일요일

[동아일보]“北의 남침 처음엔 안믿어… 中-러 기록물 접한뒤 생각 바꿔”(2013.0624)

[1953~2013, 6·25 정전 60년/준비해야 하나된다]
■ 탈북자들이 말하는 ‘南에서 새로 알게 된 6·25’


무기공장 둘러보는 김정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자강도 강계 뜨락또르(트랙터) 종합공장을 현지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이곳은 포탄 등을 생산하는 북한의 대표적인 군수공장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저희는 잘 몰라요. 남한에 있는 아이들도 6·25전쟁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합성감리교회에서 열린 제11회 탈북동포주일 기념행사. 꼬마 탈북자들에게 6·25전쟁에 대해 묻자 되돌아온 대답은 우리 주변 학생들의 대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에 들어가기 전에 탈북을 한 학생들의 경우 정식으로 6·25전쟁에 대해 배운 적이 없는 탓이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두리하나’ 대표 최기원 목사는 “열 살 이전의 아이들은 교육을 받기 전이라 대체로 6·25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며 “10대라 하더라도 부모가 탈북한 뒤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6·25전쟁을 모른다”고 설명했다. 


○ “美제국주의에 맞선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배워”

20대 이상은 북한에서 최소 10년 이상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6·25전쟁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탈북자 김은정 씨(26)는 “소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6·25전쟁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운다”며 “6월이 다가올 때쯤이면 학교에선 6·25전쟁과 관련된 사진전시회를 열어 집중 교육을 시킨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들이 북한에서 배웠던 6·25전쟁의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는 180도 다르다.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6·25전쟁은 남한의 북침(北侵)으로 발생한 전쟁이자 북한이 미(美)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조국해방전쟁이다. 탈북자 김학성 씨(28)는 “북한에선 6·25전쟁의 발발에 대해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에 남한이 공격을 해오자 오전 6시경 김일성 동지의 지도하에 반격에 나서 서울을 해방시켰다’는 식으로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탈북자들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6·25전쟁의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들이 배웠던 내용과 정반대로 말하며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학성 씨는 “처음에는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북한의 남침이라는 것에 더 수긍이 간다”면서도 “전쟁 중 벌어진 많은 의혹에 대해 남과 북이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한국에 와서 6·25전쟁과 관련된 다양한 ‘팩트(fact)’를 접하면서 발발 원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 김명주 씨(35)는 한국에서 만난 예전 남자친구와 6·25전쟁의 원인을 놓고 여러 차례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북한의 기습도발로 발생한 전쟁이란 남자친구의 주장에 김 씨는 “내가 아무리 탈북자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은 분명히 해야 한다”며 북한에서 배운 ‘남한의 북침설’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쟁이 끝나지 않자 어느 날 남자친구는 김 씨에게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6·25와 관련해 1990년대에 공개된 러시아와 중국 정부의 기록물이 담겨 있었다. 김 씨는 “객관적인 증거를 접하면서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이제는 북한의 남침이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 “북녘 땅은 굶주림과 인권유린으로 고통” 

“와∼강냉이국수다!”

행사 시작에 앞서 교회 식당에 들어선 50여 명의 탈북자들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짝강냉이밥(옥수수를 입쌀과 비슷한 직경 0.3∼0.5mm 정도로 잘게 부숴 만든 밥)과 함께 북한 주민의 주식으로 꼽히는 강냉이국수를 남한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강냉이국수를 접한 이들은 노란색의 면발에 신기해하다가 이내 그 별미에 놀라며 재빨리 그릇을 비웠다. 두리하나는 이날 행사를 개최하면서 첫 이벤트로 ‘북한음식 체험기’를 마련했다. 북한음식을 통해 조금이나마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자는 취지에서다. 

이날 행사에는 박시영 목사를 비롯해 경남지역 기독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탈북자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축사를 통해 “북녘 땅은 김일성 김정일 우상 숭배의 결과로 굶주림과 인권유린의 고통에 빠져 있다”며 북한동포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촉구했다. 

행사 말미에 마련된 축하공연 자리에선 50여 명의 탈북 청소년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300여 명의 관중 앞에서 마음껏 뽐냈다. 특히 북한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생존조차 알 수 없는 열한 살 김혜송 어린이가 ‘그리운 어머니’를 부를 땐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이어 평양백두한라예술단, 김철웅 탈북 피아니스트의 공연이 이어지자 객석에선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최기원 목사는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과 참혹한 고통의 실상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의 일”이라며 “한민족인 우리는 북한 주민과 탈북동포들의 고통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햇수로 11년째를 맞는 탈북동포주일 기념행사는 ‘일년에 단 하루 만이라도 탈북자에게 관심을 갖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행사를 주관한 두리하나는 1999년 10월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북한 정권에서 신음하는 북한동포를 구제하고 탈북자를 위한 체계적인 정책을 제시해온 단체다. 두리하나란 이름 역시 ‘남과 북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3년 6월 6일 목요일

[동아일보][남북대화 급물살]朴대통령 지휘로 라오스 탈북자들 대사관 이송작전(2013.06.07)

“머무는 安家도 위험” 4일 18명 옮겨

박근혜 대통령의 지휘로 4일 라오스에 있는 탈북자 18명을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저로 이송하는 작전이 펼쳐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및 대북 소식통은 6일 “박 대통령이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있는 안가(安家·한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보호하는 은신처)에 머물던 탈북자 18명을 모두 대사관저로 이동시키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청와대 내 지하 벙커인 국가안보실 예하 위기관리상황실에서 자리를 지키며 이송 상황을 지휘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18명 중 마지막 1명이 대사관저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걸 확인할 때까지 위기관리상황실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함께 외교안보 주요 당국자들이 벙커를 지켰으며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는 후문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과 정부 관계자들이 안가에 머물던 탈북자들을 대사관저로 인솔했으며, 18명을 한꺼번에 옮기지 않고 소규모 그룹으로 나눠 이동시키느라 이송 시간이 하루 종일 걸렸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한국 정부가 이송 작전의 보안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지하 벙커를 떠나지 않고 탈북자들의 이송을 직접 확인하며 지휘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박 대통령은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서 강제추방돼 북한 당국에 의해 평양으로 압송되는 사태가 일어나자 당시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하면서 외교안보 당국자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라오스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들의 상황을 보고받는 과정에서 라오스의 안가에 18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재 라오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안가도 안전하지 않다”며 “탈북자들을 대사관저로 이동시킬 것”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朴대통령, 18명 이송 끝날때까지 靑벙커 지켜 ▼

안가에 있는 탈북자들을 모두 대사관저로 옮긴 것도 이례적이다. 통상 탈북자들은 안가에 머물다 한국으로 향하며 대사관저로 옮기는 경우는 환자나 아기인 경우에 한정된다고 한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선 데는 비슷한 사태가 재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3일 “라오스에서 탈북 청소년 9명이 강제로 북송된, 정말 안타깝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라오스 정부는 “10대 미성년자의 정치적 망명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인신매매에 대응한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렇듯 라오스 당국이 탈북자의 한국행에 비협조적인 상황에서 또다시 탈북자들이 라오스 당국에 체포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라오스를 경유하는 탈북 루트가 막히지 않도록 라오스 당국에 외교적 노력을 벌이는 것과 별도로 탈북자도 한국 국민인 만큼 국민의 신변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박 대통령의 인식이 작용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주라오스 대사관은 라오스 당국과의 비공식 신사협정에 따라 중국을 거쳐 라오스로 들어간 탈북자들을 안가에서 보호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라오스 등을 거쳐 한국으로 탈출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주라오스 한국대사관 내에 탈북자들이 한국행 때까지 머물 공간을 마련했으나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이 공간만으로 수용이 어려워지자 별도의 안가를 마련한 것이다.

2013년 5월 30일 목요일

[조선일보]"北送 9명 중 8명이 내 친구들… 꼭 살리고 싶어"(2013.05.31)

'꽃제비'로 중국서 함께 생활, 작년 1월 한국 온 김강식씨
"11세 때부터 중국오가며 같이 구걸했던 아이들… 北送 직전에도 1명과 통화
평양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어… 국제사회가 도와달라"


 김강식씨 사진
북한 '꽃제비' 출신으로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작년 1월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김강식(가명·23·사진)씨는 30일 "이번에 북송된 9명 가운데 8명과 알고 지냈다"며 "평양에 간 이들이 다시 나오기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북송된 탈북자들이 북에서 나올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번에 북송된 9명과의 관계는?

"내가 양강도 혜산 출신인데 거의 대부분이 아는 친구들이다. 11세 때부터 북한에서 구걸 생활을 했다. 이후 중국에서 왔다갔다할 때 만났던 친구들이다. 일부는 같이 학교 다니고, 어린 시절부터 알던 친구도 있다. 꽃제비, 한국말로 하면 노숙자 생활하면서 쓰레기장에서 주워 먹고 도둑질하면서 살았다."

―언제 한국에 왔나?

"나는 2010년에 9명이랑 함께 북한에서 나왔다. 이후 중국에 와서 도와주시는 주 목사님을 만났다. 그다음에 6명이 더 합류해서 15명이 한집에서 지냈다. 15명 중에서 조(組)를 짜서 나를 포함해 3명이 먼저 (한국에) 입국했다. 12명이 남아 있었는데 미국으로 3명이 갔다. 나는 중국에서 1년 7개월 있다가 2011년 중국에서 나와 2012년 한국에 왔다. 이번에 북송된 9명 가운데 1명은 나 있을 때는 없었다. 모르는 아이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주 목사님이 도와주셔서 한집에 모여서 생활하면서 공부를 했다. 수학, 한글, 성경, 영어 등을 공부했다. 밖에 돌아다니기 어려우니까 쉬는 날에는 TV를 봤다."

―다른 아이들은 어땠나?

"탈북하다가 붙잡혔던 적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북에서 맞아서 머리에 상처가 있는 아이도 있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 상태가 나빠서 나이보다 키가 작다. 여자 아이들과는 친하지 않아서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는 못했다. 같이 지내다 보니까 남자 아이들끼리 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다. 몇은 수학, 영어 등에서 공부를 잘했다."

―아이 가운데 일본인 어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는?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었다. A(23) 어머니가 일본 여자였고 일본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평양에 산다더라. 본인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지나가는 소리로 언뜻 들었다. 아이들은 본인 이야기 잘 안 한다. 물어볼 수도 없었다. 평양에 살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A랑은 2010년에 만나서 이제 알아가는 중이었다."


 라오스·중국을 거쳐 한국에 오려다 최근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이 지난해 성탄절 이브 때 찍은 사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산타 모자를 쓰고 두 손을 든 발랄한 모습이다
라오스·중국을 거쳐 한국에 오려다 최근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이 지난해 성탄절 이브 때 찍은 사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산타 모자를 쓰고 두 손을 든 발랄한 모습이다. /MBC 제공
―9명과는 언제까지 연락했나?

"중국에서는 계속 연락했다. 통화할 때 한국에 간다고 들떠 있었다. 온다니까 좋아하면서 웃기도 했다. 이번에 북송된 9명 중 1명과는 지난 8일 무렵에도 전화 통화 했다. 한국에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드니까 그냥 '중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도 하더라."

―북송된 친구들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평양으로 가면 정말 나오기 힘들다. 나는 (탈북하다 붙잡혔을 때) 양강도에 있어서 6개월 만에 나왔지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오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처형될 가능성?

"30% 정도 될 같다."

―한국에 오려는 꽃제비들이 많나?

"많지만 혼자는 힘들다. 나도 좋은 사람 만나서 가능했다. 지금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중국, 동남아 등에 많이 있다."

―인터뷰에 응한 계기는.

"동생들을 사랑하고, 보고 싶고 살리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 국정원에도 전화하고 하나원에도 전화했다. 그쪽에서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에 바라는 바는?

"같은 사람인데, 한국에 오고 싶은 사람들인데, (한국이) 힘 좀 써주면 좋겠다."

―친구들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북한 가면 못 만난다고 하지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중앙일보]북, 탈북자 압송 전격 작전 … 납북 일본인 아들 숨기기?(2013.05.31)

일본 언론 “마쓰모토 아들 가능성”
스가 관방장관 “관계국과 확인 중”
탈북 도운 선교사와 친한 인권단체
“1년 함께 지내면서 그런 말 안 해”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즐기던 탈북 청소년 9명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체류하던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찍은 북한 청소년 9명의 사진. 휴대전화로 촬영했으며 신변 보호를 위해 얼굴을 가렸다. 이들의 한국행 시도를 도왔던 선교사는 사진 공개가 우리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 MBC]

마쓰모토 교코

지난 28일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 가운데 납북 일본인의 아들 문철(23)씨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30일 제기됐다. 동아일보는 이날 “한국 정부가 이런 첩보를 입수해 진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교도통신과 TV아사히 등은 동아일보가 이런 보도를 했다면서 문씨에 대해 “1977년 납북된 일본인 여성 마쓰모토 교코(松本京子)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77년 당시 29세이던 마쓰모토는 돗토리(鳥取)현 요나고(米子)시 자택에서 뜨개질 학원을 가던 중 납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이 ‘북한 당국에 의해 납치된 피해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납북자로 공식 지목한 17명 중 한 명이다.

 문씨가 마쓰모토의 아들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북한의 이례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북한은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 억류되고 있는 동안 요원을 파견하고 친북 인사를 라오스 이민국 심사에 참여시켜 관련 정보까지 캐갔다고 한다. 지난 20∼24일에는 라오스 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라오스 대표단을 평양으로 초청해 탈북청소년 귀환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탈북자를 북송하는 루트나 수단도 달랐다. 그동안에는 육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나 이번 경우엔 라오스 비엔티안→중국 쿤밍→중국 베이징→북한 평양으로 비행기를 세 차례나 갈아타면서 24시간 이내에 북송작전을 전격적으로 마무리했다. 탈북 청소년 9명에 대해 관용여권 소지자 등 다수의 인원을 붙여 철저히 감시하면서다. 뭔가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 불가피한 이유가 납북 일본인 문제가 국제사회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게 일부 일본 언론의 주장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아직까지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움직인 정황은 많지만 문씨와 마쓰모토 간의 연관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북송된 탈북 고아 중 납북된 일본인의 아들이 포함됐느냐”는 질문에 “우리 정부가 아는 바는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당국자도 “그런 소문은 들었지만 정확한 정보는 없다”고 했다.

 물론 문씨가 납북 일본인의 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도 있다. 탈북 청소년 9명을 탈출시킨 선교사 주모씨와 긴밀히 연락해 온 정베드로 북한인권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주 선교사가 1년 이상 문씨를 데리고 있었는데도 납북 일본인의 자녀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납북 일본인 자녀가 있었다면 일본 쪽을 통한 탈출 방법도 강구했을 텐데 그런 적이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일본과 관련이 있었다면 당연히 중국 선양 주재 일본 대사관에 진입하거나 일본 측 외교관과의 접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란 얘기다. 라오스 정부가 조사 과정에서 일본인 납치와 관련한 정황을 파악했다면 이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일본인 납북은 재일동포 북송사업 와중에서 불거졌다. 59년 시작된 북송사업으로 20여 년간 9만3000여 명이 북한으로 갔다. 이 중엔 일본인 처 1800여 명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들은 9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고향인 일본을 방문했으나 2002년 이후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북·일 간 갈등 요소로 떠오르면서 중단됐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탈북 청소년들은 6개월에서 수년간 국경 근처에서 먹을 것 없이 떠돌던 이들로 북한 당국이 특별 관리하는 납북자일 가능성은 낮다”며 “ 문씨가 일본인의 자녀라고 해도 마쓰모토의 자녀가 아닌 다른 북송 일본인의 자녀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납치 일본인과 북송 일본인 처는 현격히 다르다”며 “탈북 청소년들이 라오스까지 탈북에 성공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통제가 엄격할 납치 일본인의 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본은 관련 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TV아사히를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관련 보도가 사실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오전 브리핑에서 “관계국과 연결을 취하는 등 외교 루트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이 시점에서 (사실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답변드리기는 힘들다”면서 “어쨌든 정부로선 모든 납치 피해자의 생존을 전제로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조선일보]北은 군사작전하듯 탈북자 압송… 정부는 쳐다만 봐(2013.05.30)

[정부, 탈북자 9명 평양에 들어간줄 모르고 中 공항서 그들을 찾고 있었다]

정부, 어제 오전까지 북송 몰라 - 평양행 탑승객 명단 확보 못해
베이징 공항서 육안으로 탑승객 확인하다가 놓쳐

라오스에서도 무기력 - 기다리라는 말만 믿고
억류 18일간 면담 한번 안해… "北이 라오스 압박" 변명

중국 협조도 못 받아 - 9명 신원 통보했지만 평양행 비행기 탑승 못 막아

라오스 정부가 북한으로 넘긴 '꽃제비' 출신 탈북자 9명이 28일 이미 북송(北送)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우리 정부의 무기력하고 무성의한 대응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붙잡혀 가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을 뿐 아니라 어떤 작용도 하지 못했다.

정부 北送 사실도 확인 못 해

정부는 29일 오전까지 탈북자 9명이 북송됐는지에 대해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어제(28일) 우리 측 여러 명이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나가 4시간 동안 평양행 고려항공 탑승객 동향을 관찰했는데 (탈북자들이) 비행기 타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이미 베이징을 떠나 평양으로 들어가 있던 시각까지 우리 정부는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인권단체 회원들이 29일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을 막지 못한 것 등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북한인권단체 회원들이 29일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을 막지 못한 것 등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정부는 29일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여러 방법으로 사실관계를 점검해본 결과 탈북자들이 북송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공항에서는 못 봤는데, 다른 방법으로 이들이 고려항공 비행기를 타고 북으로 갔다는 정황이 감지됐다"고 했다. 정부는 고려항공 탑승객 명단을 확보하기 어려워 베이징 공항에서 육안으로 탑승객들을 확인하다가 이들을 놓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27일 이번 사건 대응을 위해 외교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 24시간 가동에 들어갔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북송 여부조차 몰랐던 것이다.

라오스에서도 안이한 대응

정부는 '꽃제비'들이 중국을 거쳐 라오스 국경을 넘은 10일부터 이들의 존재를 인지했다. 하지만 라오스 정부가 이들을 북한 당국에 넘기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정부는 라오스 정부의 '비협조'를 이유로 들었다. 정부 관계자는 "라오스 정부가 '20일쯤 탈북자들을 곧 (우리 쪽에) 인도하겠다'고 하다가 전격적으로 북한에 넘겨줬기 때문에 사태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은 탈북자들이 라오스 정부에 억류돼 있는 18일(10~27일) 동안 단 한 번도 이들을 면담하지 않았다.

탈북자 9명의 동선과 외교부 대응 그래픽
탈북자 단체들은 "라오스 정부의 '기다리라'는 말만 믿고 우리 정부가 너무 안이했다"고 했다. 그 사이 북한 대사관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국 대사관 직원을 가장해 탈북자들을 면담한 일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탈북 단체 관계자는 "라오스 이민국 억류 당시인 16일, 탈북자들이 외출할 기회를 얻자 인솔자가 한국 대사관에 연락해 '탈출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한국 대사관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했다.

정부는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압송된 후에도 "9명의 신원을 중국측에 통보하고 북송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지만 평양행 비행기를 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중국 정부는 북한측 요청에 따라 탈북자들에게 중국 도시들을 경유할 수 있는 단체비자를 발급해주는 등 북송을 사실상 묵인했다.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정부의 안이함과 외교적 무능이 빚은 참극"이라며 "관련자들을 문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과 벌인 외교전에서 이처럼 밀린 데 대해 "우리 대사관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북측이 이례적으로 라오스 정부를 강하게 압박한 특수 사례일 뿐"이라고 하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이번 사건을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국제기구에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꽃제비
집과 부모를 잃고 장마당 등을 떠돌며 구걸로 연명하는 북한 어린이·청소년을 말한다. ‘유랑’ ‘떠돌이’를 뜻하는 러시아어 ‘코체비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여러 명(10명 이내)이 몰려다니며 각자 역할을 나눠 구걸·소매치기·날치기·도둑질을 한다. 1990년대 중·후반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두만강·압록강 주변을 중심으로 북한 전역에서 출현했다.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조선일보][오늘의 세상] 라오스, 탈북자 9명 추방… 北이 비행기 태워 中으로 '압송'(2013.05.29)

15~23세인 탈북고아 '꽃제비' 출신 9명, 北送될 위기
한국측, 1~2주내 인도하던 관례 믿고 안이한 대응한 듯
北인권단체 "대사관, 18일간 탈북자 한번도 면회 안해"
탈북 단속 강화한 김정은 정권
라오스에 외교총력전 편 듯


 북송위기 탈북자 9명 이동 경로 지도
'꽃제비(탈북 고아)' 출신 탈북자 9명이 지난 10일 중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에 도착했으나 라오스 정부가 이들을 강제 추방 형식으로 북한 관계자들에게 넘긴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남북한은 탈북자 9명이 라오스에 도착한 직후부터 이 사건을 인지하고 외교전을 벌였으나, 라오스 정부는 북한 편을 들어줬다. 북한은 27일 탈북자들을 인계하자마자 이례적으로 비행기에 태워 중국으로 이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이번 탈북자 중에 북한이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넘겨줘서는 안 될 사람이 포함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외교전에서 北에 밀려

28일 탈북자 단체 등에 따르면, 문모(23)씨 등 15~23세 남자 7명, 여자 2명은 한국인 목사 장모씨 부부의 지원을 받아 북한을 탈출했다. 이들은 지난 10일 중국 남부에서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가다 경찰에 붙잡혔다. 장 목사는 체포된 직후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에 구명을 요청했으나 대사관에서는 "우리가 해결하겠다. 일단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말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목사와 탈북자 일행은 16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으로 이송됐다. 라오스 정부는 보통 탈북자를 체포한 후 1~2주 내에 우리 측에 신병을 넘기던 과거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 이후 라오스 정부는 27일 문모씨 등 탈북자 9명을 '출발지인 인근국(중국)'으로 강제 추방했다고 우리 대사관에 사후 통보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 북한인권단체들은 "탈북자들이 이민국에 18일간 수용돼 있는 동안 주라오스 한국 대사관에서는 단 한 차례 면회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탈북자들은 27일 오후 중국 윈난성 쿤밍(昆明)에 도착했으며 현재 베이징에 머물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 소식통은 "북한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여러 사람이 탈북자들과 함께 이동 중"이라며 "북한 당국자들이 직접 호송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 측은 라오스를 떠나기 전 탈북자들에게 합법적 여행 증명서와 여권 등을 소지하게 했다. 이에 따라 이들이 조만간 북송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라오스 이례적으로 비행기 압송 허용, 왜?

북한이 탈북자 문제에 신속하게 개입해서 이들을 인계한 후, 비행기에 태워 데려간 것은 이례적이다. 라오스 정부도 관례를 깨고 공항에서 바로 비행기에 태워 나가는 것을 허용했다.

북한 소식통은 "과거 김정일은 탈북자들에 대해 '배신자는 갈 테면 가라'는 식이었으나 김정은이 들어선 이후로는 단속과 통제가 심해졌다"며 "라오스 주재 북한 대사관이 이런 변화에 맞춰 열심히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입국 탈북자 수는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 2706명을 기록했으나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 1509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3월 현재 320명 선에 그치고 있다.


 탈북자들이 2007년 8월 중국과 라오스의 국경 지역을 넘고 있다. 이번에 라오스에서 붙잡힌 탈북자 9명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탈북자들이 2007년 8월 중국과 라오스의 국경 지역을 넘고 있다. 이번에 라오스에서 붙잡힌 탈북자 9명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용호 AD
이번 사건 배경에는 북한과 라오스의 전통적 우호 관계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우리 정부 당국이 평소처럼 인계될 것으로 보고 안이한 대응을 해서 탈북자들을 북송 위기에 빠뜨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탈북자들의 90%가량이 '북한→중국→라오스(이후 태국까지 가는 경우도 있음)' 경로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탈북자 송환에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등 북한인권단체들은 이날 저녁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 정부는 이들의 체포 소식을 전해 듣고도 18일 동안 이들을 방치했으며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탈북자 9명이 현재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이들이 북송된다면 심각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 4월 17일 수요일

[크리스천투데이]“통일 후 북한주민들에게 ‘기독교적 용서’ 알려야”(2013.04.18)

워싱턴침례대학교 박진욱 교수, CAPS International에서 발표

 
“탈북 후 북한 정부를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이 클수록 심한 우울증과 정신적 외상(trauma)에 시달리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워싱턴침례대학교의 박진욱 상담학 교수는 지난 4월 4일에서 6일까지 오레곤 주 포트랜드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CAPS(Christian Association for Psychological Study) International 중, ‘탈북자에게 있어 사회 불의와 용서에 대한 연구’(A STUDY OF SOCIAL INJUSTICE AND FORGIVENESS IN THE CASE OF NORTH KOREAN REFUGEES)라는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에서 이같이 발표했다.

박진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많은 탈북자가 “북한에서 가족과 친척, 이웃이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볼 때 가장 큰 상처를 받았다”고 응답했으며, 가장 높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직계가족이나 친척의 공개처형을 봤을 때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탈북자의 우울증, 외상후 장애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탈북 후 북한 정부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이 매우 심각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북한 정부를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이 크면 클수록 심각한 우울증과 트라우마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연구결과로 증명된 것이다. 반면에 신앙생활을 잘하는 탈북자일수록 남한사회에 더 잘 적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을 세분화해서 연구해본 결과, 과거의 아픈 경험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rumination)이 회피 그리고 복수에 대한 감정보다 더 크게 나타났다. 이것은 강압적이고 폐쇄된 북한 사회의 특성상 북한 주민들이 자신이 가진 북한에 대한 분노를 잘 표현하지 못하고, 정신건강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극단적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자란 탈북자는, 개인주의 사회에 정착하여 살지만 자신의 분노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분노의 내재화’ 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정권자체가 체계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저지르는 반인류적인 죄를,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용서할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탈북자들을 위한 ‘용서테라피’ 제공을 제안했다.

또한 박 교수는 “통일된 이후 북한주민들이 용서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될 때, ‘어떻게 기독교적인 용서 개념을 소개하고 북한사회와 주민들에게 용서와 화합을 이끌 것인가’가 우리 기독교인 모두가 안고 가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하며 “신앙적 관점에서 통일 이후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4월 1일 월요일

[동아일보]다문화 국회의원 1호 이자스민 - 탈북 한의사 1호 김지은씨 ‘희망 토크’(2013.04.02)

다문화 국회의원 1호 이자스민 - 탈북 한의사 1호 김지은씨 ‘희망 토크’

본보 선정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을 소개합니다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지은 진한의원 원장(뒷줄 오른쪽)은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나란히 선정된 것을 계기로 소수자가 맘 편히 살 수 있는 한국 사회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함께 만난 지구촌어린이집 아이들의 밝은 웃음이 두 사람의 의지를 더욱 굳게 하는 듯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두 사람은 모두 이방인이었다. 1995년과 2002년 각자 고향을 떠나 이 땅에 첫발을 들였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필리핀 새댁’, 말투가 낯선 ‘북한에서 온 여자’로 불렸다. 세월이 흘렀다. 한국생활 18년 차와 11년 차. 이젠 이름만 말해도 알아보는 이가 많다.


다문화 국회의원 1호인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36)과 남북한 한의사 1호인 김지은 진한의원 원장(47). 두 사람이 동아일보 창간 93주년 기획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선정됐다. 추천위원들은 다문화 인구 130만 명, 새터민 2만5000명 시대에 두 사람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수자로 한국 사회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던 이 의원과 김 원장.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반갑게 손을 맞잡았다.


○ 난 한국 아줌마인데, 보는 눈길은…

이 의원은 올해부터 필리핀 생활보다 한국 거주 기간이 더 길어졌다. 학원(사교육) 문화는 안 따라가겠다고 다짐했지만 학교 임원을 하면 1점 더 준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지는 한국 엄마. 김 원장도 마찬가지다. “이젠 북한에서 쓰는 단어를 들으면 어디서 듣긴 들었는데 하는, 그런 느낌이 나요.”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해 움찔할 때가 가끔 있다. 이렇게 만드는 건 같은 한국 사람들이다. 이 의원은 2010년 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직후 “언제 돌아가느냐”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충격이었다. “15년의 내 인생이 다 여기에 있는데, 내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난 한국 사람인데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느냐고 따지고 싶었는데 서러워만 할 뿐 말도 못했어요.”

김 원장이 맞장구친다. 북한에서 이혼했다고 밝히면 “에이, 거짓말”이라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북한에선 그럴 수가 없다는 식이다. 살아 보지도 않은 이들이 이렇게 나오면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다. 쉽지는 않지만 북한에도 이혼은 있다. “제가 기쁨조를 하다가 밀려나서 도망쳐 온 것 같아요? 이런 대답을 원하는 건가….” 차분하던 김 원장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유명해졌는데도 시선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고개를 젓는다. 얼마 전 축사 요청을 받아 행사에 참석했는데 주최 측 인사들이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자신을 좋지 않게 얘기하더란다. 한국어를 못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까지 올려놓고 한국말도 못 할까 봐. 열이 나서 ‘한국말, 필리핀말, 영어 다 해요. 뭘로 할까요? 스페인어도 합니다’라고 쏘아붙였어요.”

이 의원은 국회의원 대접도 받지 못하는 편이다. “권력을 지닌 사람들한테는 공손하게 ‘안녕하세요’ 하잖아요. 하지만 저를 처음 봤을 때는 등이 의자 등받이에서 떨어지지 않아요. 얘기를 오래 해야 점점 허리가 숙여지죠.” 이 의원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려면 사람을 많이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사라는 행사는 다 다닌다.


▼ “다문화 2세들 위해… 공존 한국의 꿈, 결코 포기 못해요” ▼

■ 이자스민 의원-김지은 원장 희망 토크

○ 가급적 허리를 더 숙여야


요즘은 초등학생도 다문화라는 말을 안다. 한국 사회의 외연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거기까지다.

이 의원은 4대가 함께 사는 집의 며느리다. 이를 보고 옆집 아주머니가 “요즘엔 외국 며느리가 좋아. 애들한테 이중언어를 가르치고, 시부모도 잘 모시잖아”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농담 삼아 물었다. “막내아들 배필로 어느 나라 아가씨 소개해 드릴까요. 말씀만 하세요.”

칭찬 일색이던 아주머니는 이내 “아휴, 아니야. 내 아들은 한국 여자와 결혼시킬 거야”라며 손사래를 쳤다. 남은 몰라도 나는 안 된다? 이 의원이 절감한 한국 다문화의 현주소였다.

두 사람은 결혼이주여성과 새터민 사이에서 ‘희망 아이콘’이 됐지만 뜻밖의 상처를 줄까 봐 오히려 몸가짐을 더 조심스럽게 할 때가 적지 않다.

이 의원은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어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촬영장에 끌고 와서는 “봐, 너랑 같은 필리핀 사람인데 이 언니는 한국말 잘하잖아”라고 꾸짖더란다. 이 일로 이 의원은 다문화 여성에 대한 낮은 기대치를 높이는 자신이 비교 잣대로 바뀌면서 동료 이주 여성에게 더 큰 스트레스를 주지나 않을까 늘 돌아보게 됐다.

김 원장은 북한 청진의대를 졸업하고 8년간 한의사로 일했다. 한국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한의대 정규 과정을 다시 밟아 2009년 자격증을 땄다. 정말 어렵게 이뤄 낸 성취였지만 새터민 앞에선 잘 밝히지 않는다. “모든 새터민이 꿈을 갖고 한국에 와요. 그들이 얼마나 피땀 흘리며 애쓰는지 아는데 ‘내가 노력해서 이만큼 됐어’라고 감히 말 못 해요.”


○ 우리가 만드는 10년 뒤 희망

두 사람은 편견과 공격에 한국을 떠나고 싶은 순간이 없지 않았다. 유서를 쓴 적까지 있다. 두 사람은 그런 순간 되레 한국을 끌어안았다.

김 원장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한국에서 가장 낯선 게 명함 문화였어요. 언제 식사 한번 하자는데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처음엔 새터민이라고 무시하나 싶었는데 그렇게만 생각하면 한국 사람과 멀어지잖아요.” 그는 하루에 받은 명함을 죽 펼쳐 놓고 먼저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오늘 고마운 자리였다. 많이 배웠다’라고. 또 사람을 만날 때면 항상 웃었다. 그랬더니 무척 편하게들 생각하는 것을 느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부르면 와르르 쏟아져 나올 만큼 친구가 많아졌다.

이 의원에게는 필리핀의 여유와 낙천성이 보탬이 됐다. “점심때, 한국 시어머니와 필리핀 엄마가 냉장고 문을 동시에 연다고 해 보세요. 아무것도 없으면 시어머니는 어떡하느냐면서 걱정해요. 친정 엄마는 점심을 제치고 저녁을 먹자고 하죠.” 이 의원은 지난해 외국인은 떠나라는 공격을 받고도 꿋꿋했던 친정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아직 할 일이 더 많다고 강조한다. 자신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0년 뒤 다문화가정이나 새터민을 보는 눈이 달라질 테니까.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설움을 아이들까지 겪게 하고 싶지 않다.

희망은 없지 않다. 이 의원의 아들 승근 군(17)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역시 다문화가정 애들이 다 예쁘고 잘생겼어. 나도 외국인과 결혼해야지, 2세를 위해서.” 다문화가정 행사에 다녀온 뒤의 소감이었다. 승근 군은 혼혈이 예쁘니까 앞으로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대부분 다문화가정에서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이 의원은 그런 아들에게 “이미 섞여 있어”라고 말해 줬다.

김 원장은 2년 전 탈북한 아들 혁진 씨(21)와 14년 만에 재회했다. 아들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한민족은 백의민족인데 어떻게 외국인과 함께 사느냐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나중에 아들이 결혼한다고 할 때 누굴 데려오든지 모든 조건을 갖출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10년 뒤 한국 사회가 함께 사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혁진이가 살 사회는 경쟁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꼴찌에게도 박수쳐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남매를 둔 이 의원이 맞장구친다. “치열하게 경쟁하다 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과정에서는 똑같이 경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죠.”

2013년 3월 27일 수요일

[조선일보][정권현의 태평로] 탈북자 경력 논란,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나(2013.03.27)


 정권현 특별취재부장
탈북자 출신 첫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이 지난 15일 학력 위조 누명을 벗었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작년 4월 조 의원이 총선 비례대표로 출마하자 탈북자 이모씨가 "석사 학위에 해당하는 김일성종합대학 준박사를 박사 학위로 허위로 기재해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고발했고, 이에 조 의원은 "귀순 당시 한국 정부의 결정에 따라 학력과 경력을 표기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검찰은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이씨가 불복해 재정신청을 내자 법원은 이를 기각함으로써 학력 위조 시비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조 의원의 학력 논란은 그동안 쉬쉬해온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조 의원의 학력 문제를 제기한 탈북자 이모씨에 대해선 또 다른 탈북자가 나타나 "이씨의 일부 경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등 이름이 알려진 탈북자들의 경력 관련 의혹이 인터넷 게시판을 달궜다.

국내 입국 탈북자 수가 2만4000명을 넘어서면서 당초 '공산대학 교수' '인민군 군관' 등으로 알려져 있던 인물들의 경력이 과장됐거나 위조된 것이라는 증언이 잇따랐다. 러시아 유학을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피아니스트에 대해선 "재능도 있는 친구가 왜 경력을 과대 포장하는지 모르겠다"며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군 군의관 출신으로 알려진 탈북자는 TV에 출연하면서 '김일성만수무강연구소' 연구원 출신이라는 경력이 슬쩍 추가됐다. 최근 TV에 자주 나오는 탈북 여성은 "나는 김일성의 주치의였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탈북자들이 '김씨 왕조(金氏王朝)'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과장해서 증언하는 경우도 있으나 "북한에 있을 때 김정일을 만났다", "김일성 앞에서 공연했다"는 등의 '과시성 증언'도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극히 일부 탈북자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지만 탈북자 사회에 대한 신뢰를 허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들이 학력이나 경력을 속이거나 부풀려도 불이익을 받지는 않는다. 북한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주장할수록 각종 강연이나 TV 출연 기회가 늘어나고 생계에 도움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과장'과 '거짓말'이 생계에 도움이 된다면 그런 성공 사례는 탈북자 사회에서 아주 빠르게 소문이 나고 동경의 대상이 된다.

국내외 언론의 책임도 크다. 자극적인 소재에만 관심을 갖다 보니 탈북자들의 경력 위조를 대충 눈감아주고, 그러다 보면 검증되지 않은 학력과 경력이 자꾸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계 기관도 거짓인 줄 알면서도 "탈북자들의 인권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며 방치하는 듯한 인상이다. 하기야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와 맨 처음 수용되는 '하나원'에서부터 이들을 재교육하고 정착시키는 노력에 소홀하고, '귀찮은 존재'쯤으로 대접해온 것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 아닌가.

탈북자를 "배신자"라고 저주하고 북한의 3대 세습을 옹호하는 따위의 인간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신분 상승 가능성을 절망적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반대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신분 상승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한 '먹고살기 위한 거짓말' 정도는 약과일지도 모르겠다. 거의 매일 지도급 인사들의 논문 표절과 파렴치 행각이 주요 뉴스가 되는 사회에서 사선(死線)을 넘어온 그들에게 누가 돌팔매를 던질 자격이 있겠는가.

2013년 3월 20일 수요일

[조선일보][3·20 사이버 테러] 사이버부대 출신 탈북자 "北 소행 분명하다"(2013.03.21)


사이버부대 출신 탈북자 "공격 하루 전 갑자기 취소"

 LG유플러스 통신망을 이용하는 회사의 직원이라고 주장하는 네티즌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인터넷 캡처

북한은 작년에도 KBS·MBC·SBS 등 국내 주요 방송사를 동시에 해킹 공격해 전산망을 마비시킬 계획을 세웠다가 감행 직전에 취소했다고 북한 사이버부대 출신 탈북자가 증언했다.

탈북자 출신 A씨는 "2012년 4월 23일을 D-day로 KBS·MBC·SBS 등 주요 방송사를 동시에 해킹 공격하여 전산망을 파괴할 계획이 사이버부대에 하달됐다"며 "모든 준비를 끝내고 각국에 흩어져 있는 북한 해커들과 함께 지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공격 하루 전 갑자기 취소 명령이 내려와 실행을 보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최근 A씨를 만난 코스닥에 상장된 보안업체인 라온시큐어 이순형 대표가 전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A씨는 북한의 사이버부대 출신으로, 현재 국가정보원이 관리하고 있는 인물이다.

A씨는 이날 신한은행과 KBS· MBC·YTN 등에 가해진 해킹 공격에 대해서도 "공격이 진행된 양태를 보면 북한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이 대표에게 말했다고 한다. 사전에 공격 대상 기관의 서버에 악성코드를 심어놓고 D-day 특정한 시각에 작동하게 하는 식은 작년에도 계획했던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김책공과대학을 중심으로 사이버테러 전문가를 양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와 국내 보안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은 2011년 정찰총국 산하 사이버부대를 121국으로 승격했고, 북한 총참모부 산하 정보통제센터가 사이버테러를 지휘하고 있다. 북한의 사이버부대는 '전자전부대'라고 부르며, 그 인원이 1만2000여명에 달한다. A씨는 바로 그 전자전부대 출신이다.

라온시큐어 이 대표는 "북한의 사이버테러를 무력도발과 마찬가지로 인식하고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며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는 정보보안 전문가(화이트 해커)를 조직적으로 양성하고 관리하는 문제를 국방력 강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크리스천투데이]“대북방송, 북한 집권층에게는 핵보다 두려운 것”(2013.02.20)


관련법 제정과 전문성 확보 필요성 제기돼

▲북핵 문제 해법과 대북방송의 역할을 두고 토론회가 열렸다. ⓒ이동윤 기자

대북방송협회와 새누리당 하태경 국회의원은 20일(수) 오후 3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토론회를 통해 북한 문제의 새로운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토론회에서는 이광백 대북방송협회장이 개회사를, 하태경·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이 격려사를 전했다. 손광주 데일리NK 통일전략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이후 질의응답이 있었다. 발표자로는 이지수 명지대 교수, 이광백 회장, 강동완 동아대 교수, 유춘환 극동방송 방송 이사, 김명준 서강대 교수가 참석했다.

발표자들은 먼저 현 시국에 대해 “김정은 북한 정권의 제3차 핵실험 강행으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라며, 한반도 정세가 근본적인 안보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 동안 국제 사회가 추구해 왔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법은 사실상 종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개혁개방을 통한 민주적 정권의 수립이 필요하며, 한국 정부와 국제 사회가 공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북방송이 주민들의 변화를 일으켜 민주적 정부 수립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핵실험의 의미와 한국사회의 대응방안’이란 주제로 발표한 이지수 교수는, 대화만 반복하는 전략은 공허하며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정말 대화가 필요하면 나올 것이다. 오히려 대화만 앵무새처럼 떠드는 전략은 식상해졌다. 북한을 더 움츠리게 만드는 것 같다. 그보다 선택과 집중으로 우리 사회를 선진화시켜, 그들 스스로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백 회장은 핵 문제의 해법은 북한의 변화에 있다며, 이를 끌어내는 견인차 중 하나는 방송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북한 주민의 의식과 여론을 바꿔 김정은 정권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핵으로는 굶주림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한의 살 길은 주변국의 협력을 얻어 개혁과 개방을 하는 것이라는 여론이 확산된다면 북한 정권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 “전파를 통해 하루 10시간 이상 북한 주민에게 방송을 내보내면, 북한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북방송 강화를 위해 ▲AM 주파수 확보와 송출 시설 증가 ▲대북방송법 또는 통일방송법 제정 ▲대북방송사의 전문성 확보 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북핵해법을 위해 토론하는 참석자들. ⓒ이동윤 기자

김동완 교수는 북한핵에 대한 보상이나 소극적 제재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주목했다. 그동안 북한 당국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지만 실패했기에, 이제 북한 주민들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북방송을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한류로 대변되는 남한 영상물 시청이 증가하고, 이를 통해 북한 주민의 정치의식에 변화가 오고 있다. 대북미디어 활동을 위한 민관협력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춘환 이사는 대북방송활성화를 위해 대북방송의 인식확대를 위한 운동을 전개할 것과 방송 제작 조직의 강화 및 탈북자 중심의 의견 청취 제도 등을 강조했다.

‘대북방송 발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환경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를 발표한 김명준 교수는 대북방송이 북한 집권층에게는 ‘핵’보다 두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한은 세계화 시대에 일정 부분 정보 교류와 남북한 주민 간 소통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북방송은 현재 마땅한 정보 교류의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북한주민들에게 외부의 소식을 전하는 도구”라며 “대북방송이 관련 기관 운영자 및 종사자들의 사명감에만 의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구체적 지원 방식 및 규모에 대해 논의하고 최소한의 지원대책이 절실하다”고 했다.

2013년 2월 14일 목요일

[크리스천투데이]“北, 종교 탄압하면서 밖으로는 외화벌이에 활용”(2013.02.14)


‘북한 종교자유백서 발간 기념 세미나’ 개최

▲주제발표 및 종합토론을 하는 발제자와 토론자들. ⓒ이동윤 기자

(사)북한인권센터가 주최한 북한 종교자유백서 발간 기념 세미나가 14일 오전 9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렸다. 이번 백서는 북한의 종교정책과 종교자유 현황을 체계적으로 조사·분석함으로써 이에 대한 기초자료를 축적하고, 종교박해 예방과 구제수단을 개발하기 위해 제작됐다.

이날 세미나는 북한의 종교자유에 관한 주제발표 및 종합토론으로 이어졌다. 세미나는 김상헌 이사장(북한인권정보센터)의 개회사 이후 장은실 연구원(북한인권정보센터)과 윤여상 소장(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발제, 김종남 신부(영통성령성당)와 김규호 목사(기독교사회책임 사무총장)의 종합토론, 질의응답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장은실 연구원은 ‘북한의 종교현황과 종교정책’이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북한은 종교에 대해 부분적인 자유를 허용한다고 하나,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연구원은 “해방 후 북한 당국은 종교를 ‘아편’으로 규정하고 봉건시대의 낡은 잔재인 미신에 불과하다고 봤다. 김일성 역시 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이고, 믿으면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의욕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면서 “북한의 종교단체들의 활동은 순수하게 종교적 목적보다, 외국 종교단체나 국제기구로부터 원조를 이끌어내는 등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장 연구원은 “북한이 종교를 해외지원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은, 김일성 사망 후 악화된 식량난이 주원인이며, 북한 당국은 내부적으로 종교탄압을 함과 동시에 대외적으로 서방과의 관계개선과 외부지원을 위한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종교를 적극 활용한다”고 전했다.

윤여상 소장은 ‘북한의 종교자유와 박해 실태’를 발표하며, “탈북자 등을 대상으로 한 북한 주민들의 설문조사에서 99.6%가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북한 지하교회 교인이 휴지에 베껴 쓴 성경. ⓒ이동윤 기자

윤 소장은 “북한에서 종교활동을 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0.6%에 불과하고, 종교활동으로 체포될 경우 61.0%는 정치범수용소에, 12.0%는 교화소에, 2.6%는 노동단련대에 수감된다고 응답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종교의 자유는 인권의 핵심적 항목이다. 지금 북한에서 종교를 갖고 있고 종교적 활동으로 처형을 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형제자매들은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종교인들과 전세계 종교인, 지식인, 그리고 인권단체들은 북한의 종교적 박해자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며 “그러나 기도와 인도적 지원 이외에 북한의 종교자유와 종교적 희생자 및 순교자를 위한 실천적 활동과 지원에 거의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소장은 “한국 종교인들이 대부분 북한선교와 복음화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복음화 전략 없이 즉시적이고 열정에 의한 접근을 할 경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할 수 있는 선교의 방법과 전략, 중국 수준의 선교가 가능한 상황에서의 선교전략,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 수준의 선교가 가능한 상황 등을 구분하여 전략을 단계적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후 종합토론에서 김규호 목사(기독교사회책임 사무총장)은 대북지원에 있어 당근과 채찍의 전략이 있어야 하며, 무분별한 대북지원 실태와 부작용을 경계했다. 김 목사는 “북한과 좋은 관계 유지를 위해 달라는대로 주는 굴욕적 구조는 더이상 안 된다. 지원에 앞서 북한의 종교자유 개선을 요구하며, 이것이 전제되는 조건에서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의 삶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천투데이]3차 핵실험 강행한 北, 기독교 박해 갈수록 심각해져(2013.02.13)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함에 따라 전 세계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 탈북자가 북한에서 행해지는 극도의 기독교 박해에 대해 전했다.

24세로 디모데라고 불리는 이 탈북자는 “그들은 모든 자유를 무시한다. 인권의 수준은 0%이고, 종교는 허락되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 김정은은 하나님처럼 받들여지고 있으며, 이는 정권이 붕괴되지 않는 이상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오픈도어선교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의 박해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9년 전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붙잡혀 거의 죽을 때까지 고문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현재 북한 수뇌부가 핵실험에 사로잡혀 있다고 전했다.

미국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핵 실험을 강력히 규탄하고, 레온 파네타 미 국방부 장관은 지속적으로 핵 개발을 해온 북한과 이란을 범죄 국가로 지목하기도 했다.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은 북한의 핵실험이 UN 협정의 명백한 위반이라고 규탄하고, 더욱 강력한 제재 조치를 논의 중이다. 현재 미국, 중국, 러시아 등 모든 안보리 상임이사국 포함, 전 세계 34개국 및 유엔 사무총장, IAEA(국제원자력기구) 등을 비롯한 5개 국제기구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이 유엔을 중심으로 한 제재 움직임에 추후 도발을 예고함에 따라, 당국은 국제 사회와 공조를 긴밀히 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으로 안보리 차원에서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를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외교통상부 안호영 제1차관은 이날 긴급 소집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대응 방침을 보고했다.

오픈도어선교회에 따르면, 북한은 11년간 기독교 박해지수 1위 국가로 선정돼 왔다. 북한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옥에 갇히거나 수용소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때로는 사형을 당하기도 한다.

오픈도어선교회는 지난달, 2명의 기독교인들이 단순히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한 명은 성경공부를 위해 중국에서 돌아오던 중에 총격을 받았으며, 다른 한 명은 수용소에서 죽었다.

미국 오픈도어선교회 제리 다이크스트라(Jerry Dykstra) 대표는 “우리는 이것이 아주 빙산의 일각이라고 믿고 있다. 200,000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교도소에 수감돼 있으며 이 가운데 70,000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수용소에 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15년 동안 살아온 디모데는 “그들은 우리에게 나쁜 기독교인들에 대한 삽화 혹은 만화 영화를 보여줬다. 내게 있어서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은 괴물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내가 11살이 됐을 때, 한 기독교인의 공개 처형 장면을 목격했다. 그의 죄는 집 지붕에 작은 성경을 감춘 게 다였다. 같은 해 한 여성이 총살당했다. 그녀는 중국으로 탈출해 그곳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간첩에 체포되어 북송된 후, 그녀도 역시 공개 처형됐다. 나는 이러한 일들이 지금도 나의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됐고, 감사하게도 아직 살아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넘어온 또 다른 탈북자는 “북한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다. 김정은이 우상이며, 그 외에 다른 신은 있을 수 없다. 세계 어디에도 북한과 같은 3대 독재는 찾아볼 수 없다. 북한에도 물론 교회가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나타날 때만 당국이 이들에게 보여준다. 종교, 언론, 연설의 자유가 북한에는 없다”고 전했다.

2013년 2월 7일 목요일

[크리스천투데이]‘제3차 탈북난민 북송반대 및 인권주간 선포식’ 개최(2013.02.07)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한국교회가 일어나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국대사관 앞에 모인 참석자들이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동윤 기자

제3차 탈북난민 북송반대 및 탈북난민인권주간 선포식이 7일(목) 오후 2시 중국대사관 앞에서 개최됐다. 500여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출범한 탈북난민구출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북송반대집회 1주년을 맞이해 이날 ‘탈북난민인권주간’을 선포하고, 탈북난민의 인권문제를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실시했다. 

이날 1부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전한 최병두 목사(예장통합 증경총회장)는 “한국교회가 일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이러한 죄악을 외면할 것인가. 한국교회가 중국에서 고통받는 북한동포들을 도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경석 목사(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중국정부에 강제북송을 중지할 것과 탈북자들이 원하는 나라로 갈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탈북난민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면 북한 당국에 의해 상상할 수 없는 구타, 고문 등을 당하기에 그들의 북송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강제북송을 당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끔찍한 참상을 증언했다. 그는 “북송됐을 때 가족들이 있기에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무자비한 폭행과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며 “북한은 피도 눈물도 없다. 반드시 중국에 있는 탈북난민들의 북송을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호택 대표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우리는 유엔을 위시한 인권을 존중하는 세계 모든 국가들이 중국 정부를 향해 탈북난민의 강제북송을 즉각 중지하도록 강력히 촉구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탈북난민의 인권이 존중되고 그들의 생명과 자유가 보장되기를 염원하며, 매년 2월 둘째 주를 ‘탈북난민인권주간’으로 선포하고, 탈북난민의 인권 개선을 다함께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2부 기도회는 조무호 목사(나눔과기쁨 대구본부장)의 사회,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원로목사)의 인사말, 김정남 장로(한국장로회총연합 대표회장)의 기도, 박순오 목사(대구서현교회)의 설교, 유정현 목사의 합심기도, 신신묵 목사(한강중앙교회 원로목사)의 축도로 진행됐다.

탈북난민구출네트워크는 지난해 9월 6일과 11월 1일에 다른 북한인권단체들과 공동으로 제1, 2차 탈북난민북송반대 전세계 동시 집회를 개최한 바 있다. 아울러 북송반대운동의 확산을 위해 각계에 호소하여, 그 결과 특히 한국교회가 전폭적으로 동참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크리스천투데이]“북한인권법 8년째 제자리… 한심하고 개탄스럽다”(2013.01.24)


북한인권단체들, 신년하례회서 北 인권 개선 대책 논의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토론회 및 신년회가 열리고 있다. ⓒ이동윤 기자

북한인권 시민단체 신년하례회 및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 토론회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민주화위원회, 북한정의연대 등 북한인권단체들이 북한의 상황을 고발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 제도 장치인 북한인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인권법안은 제19대 국회에서 윤상현, 황진하, 이인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과 심재권 민주통합당 의원이 각각 발의했으며,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이동복 상임대표(북한민주화포럼)는 인사말에서 “북한인권 실상을 제대로 국민들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탈북동포들과 힘을 합해야 한다”며 “북한인권운동 동력을 확보하고 정보 공유와 방향 설정을 위해 모임을 갖자”고 제안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공감하며 앞으로 ‘북한인권을 위한 사랑방 모임(가칭)’을 갖기로 했다.

홍순경 위원장(북한민주화위원회)은 “사실 북한 문제의 핵심은 인권이라고 생각한다”며 “핵과 미사일 등 복잡한 현안도 북한 민주화를 통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김석우 원장(국가발전연구원)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의 심각성을 주목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북한인권을 거부하는 세력들이 있다”며 “이들은 과거에는 민주투사로 불렸던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김태훈 변호사(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특별위원장)는 ‘북한인권법의 제정방향’이란 제목으로 발제하며, “이미 북한인권의 범주에 속하는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탈북자 등에 대해서 각각 특별법이 제정돼 있다”며 “북한 지원이 아닌 북한주민의 인권 보호를 위한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법제도 마련 전에 현행 제도하에서 실행 가능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역할을 하는 인권위의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 최근에 임명되어 북한인권대사 역할을 하는 외통부의 인권대사, 북한주민에 대한 정보접근권 보장책 추진(대북 TV 방송용 아날로그 방송 존치) 등에 대한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학진 변호사(대한변협 북한인권소위원회 위원장)은 “그 동안 세미나, 토론회, 탈북자북송저지를 위한 노력 등을 통해 북한인권법의 제정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17대 국회와 18대 국회에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19대 국회에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치가 포함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을 하는 발제자와 참석자들. ⓒ이동윤 기자

정베드로 목사(북한정의연대 대표)는 “2005년도에 발의된 북한인권법이 8년이 지나도록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또 어떤 국회의원이 발의할 것인지 한심하고 개탄스럽다”며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해 민·관·정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데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처럼 국무총리 직속 북한인권전담부서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정 목사는 “2011년 9월에 ICNK(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와 같은 국제연대가 결성되어 유엔 내 북한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COI) 설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기에,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속히 제정돼 힘을 보태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3년 1월 23일 수요일

[2013한국 ‘탈북자 간첩’ 딜레마]<하> 탈북여성 “너도 간첩아니냐”는 친구말에…(2013.01.24)

“너도 간첩 아니냐며 농담… 대다수 선량한 탈북자 포용해주길”

“같은 민족인 것은 맞지만 반세기 넘게 서로 다른 문화와 체제에서 살았잖아요. 북한 사람은 북한 사람대로, 남한 사람은 남한 사람대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출연자 김아라 씨(왼쪽)와 윤아영 씨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화교 탈북자 출신 간첩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방송에서 말실수 한 적이 있어요. 북한에 있을 때 삼촌이 소를 잡았다고 말했거든요.”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김아라 씨(23·여)가 말했다. 현재 채널A의 인기 토크쇼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 중인 그는 2009년 남한에 온 탈북자다.

“그 말 한마디로 제가 누구네 집 자식인지 알 수도 있거든요. 북한에서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징역 8년, 두 마리를 잡으면 총살감이니까 흔치 않은 일이죠.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북한에 이모도 남아 계신데 왜 그런 이야기를 했냐’며 속을 끓이시더라고요.” 

수려한 미모로 ‘아라 공주’라는 별명을 얻고 팬클럽까지 생긴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옆에 있던 윤아영 씨(30·여)가 거들었다. 

“화교 탈북자 출신인 서울시 공무원이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걸 보고 남한분들은 ‘별것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명단이 북한 당국에 넘어가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어요. 탈북자는 배신자로 취급받아요. 북한에서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3대가 죽임을 당할 수 있어요.”

2004년 남한에 도착한 윤 씨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엉뚱발랄 달변가’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TV 속에서 보던 발랄함 대신 다소 무거운 표정이었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대다수 탈북자들에게 화교 탈북자 출신 간첩 사건의 여파는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걱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김 씨와 윤 씨는 같은 ‘고향’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을 간첩으로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사건 후 윤 씨는 한 남한 친구에게 “너도 간첩 아니냐”라는 농담을 들었다. 농담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나도 의심받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저희도 간첩이 없으면 좋겠지만….”

김 씨는 “오늘 아침 남한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답이 끊겼다. 두 시간 후 다시 답이 왔지만 그 사이 ‘간첩 뉴스 때문에 나를 멀리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자격지심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탈북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때도 윤 씨는 죄책감이 들었다. “피해자 어머니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이 너무 죄송했죠. 어찌됐든 제 고향에서 날아온 폭탄이었으니까요. 한 달 동안 그때 돌아가신 분들이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서 넘어온 간첩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지 물었다. 윤 씨가 먼저 대답했다.

“들어 봤죠. ‘애국심으로 간첩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터들을 많이 붙였어요. 집 출입문엔 ‘가시 몽둥이’라는 것을 걸어놔요. 나무를 곤봉 모양으로 깎아서 못의 머리를 잘라낸 다음 고슴도치처럼 박는 거예요. 고춧가루도 담아서 그 옆에 놓고요. 간첩을 잡을 때 쓰라는 거죠.”

김 씨가 맞장구쳤다. “집집마다 다 있었어요. 지금도 있을 거예요. 인민반장이 일일이 다 검사를 하거든요.”

두 사람은 혹시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자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김 씨는 “지금도 형사가 한 달에 한 번 전화가 와 ‘어디 다니느냐’ ‘부모님은 뭐하시나’라며 꼬치꼬치 캐묻는다”며 “어떻게 더 감시를 강화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남한 남자와 결혼해 임신 4개월째인 윤 씨가 거들었다. “어느 교수님은 저한테 ‘외국 가면 다 똑같은 코리안이다. 외국 가서 살면 편견도 없을 거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내 조상이 살던 땅에 살고 싶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보든 그냥 내버려둬라.’”

이번 사건으로 인한 충격은 김 씨와 윤 씨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탈북자 쉼터인 ‘평화의 집’ 관계자는 “어제 한 탈북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주위 동료들이 탈북자 중에 간첩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고 하소연했다”며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탈북자들은 스스로 움츠러들고 상처받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 중에 섞여 있을 간첩에 대한 검증을 강화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이번 사건을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비용으로 바라봐야 하며, 탈북자들을 더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한쪽에서는 탈북자를 부추겨 반북한 운동에 써먹으면서도 군대에서는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등 이중 잣대를 들이대 왔다”며 “그들을 남한식으로 바꾸려고 강요하지 말고 우리가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진심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간첩 문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학중 목사의 시편] 나라를 걱정하는 교회가 되자(2013.01.23)

정권이 바뀌는 현 시국에서 감사원과 국정원이 갑자기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감사원의 경우에는 현 정부 내내 사실상 별다른 이견을 내지 않던 4대강 사업을 최근 느닷없이 비판했기 때문이고, 국정원의 경우에는 대선기간 동안 불거진 문제들 외에도 탈북자를 담당하던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감사원의 경우, 감사원장의 임기가 법적으로는 2015년까지 보장된다는 점에서 ‘줄 바꾸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두 기관의 공통점은 역대 정권의 실세들이 기관장으로 임명되는, 따라서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두 기관은 기타 정부부처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원칙대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정부기관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실세 기관들마저 윗선의 눈치를 보며 원칙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타 정부부처들과 공공기관들의 업무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현 정부의 초기에 한 공무원이 스스로를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고 표현했듯, 대다수의 기관장들과 이하 공무원들이 아무런 원칙과 소신도 없이 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시급한 당면과제 중에 하나는 바로 정당한 절차에 따라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지도자들부터가 정치적 생명을 거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인사청문회는 매우 중요하다. 헌법재판소장 후보뿐만 아니라 인사청문회를 통해 검증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국회의원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걸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라는 국가의 법적 기초를 다지는 기관의 장이 법조계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 앞에서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어야 함은 당연하다. 자랑스럽고 당당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나라의 근간을 책임진 기관의 장을 최고의 인물로 뽑을 책임이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의 어깨에 놓여 있다.

‘정의의 하나님’을 고백하고 믿는 우리 교회들도 할 일이 있다. 이제껏 대다수의 한국교회들은 우리나라에 정의를 세우는 일에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이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길을 간다면 이 땅의 교회들도 결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뿌리내리게 하자.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암 5:24)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이 나라에 ‘정의의 강’이 흐를 수 있도록 사회 곳곳에서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자.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향하여 바르고 소신 있는 말을 해주자. 온 국민이 정파와 이념을 넘어 하나가 되어, 이 나라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내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자.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2013한국 ‘탈북자 간첩’ 딜레마]탈북자들 “남한 가서 대접받고 살려면…”(2013.01.23)

“몸값 부풀려야 南서 대접받아”… 탈북前 미리 신분세탁도


북한 화교 출신 유모 씨(33)의 ‘탈북자 위장입국 및 간첩사건’은 한국 내 탈북자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경력 사기와 관계 당국의 부실한 관리 실태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례다.


유 씨는 서울시에 제출한 인사 서류에 함경북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고 적었다. 언론 인터뷰에선 청진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유 씨는 경성의전에 입학은 했지만 졸업하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유 씨의 말은 둘 다 거짓이었지만 탈북자들이 유 씨처럼 경력을 속였다고 불이익을 받은 전례는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이런 일부 탈북자의 거짓말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내막을 아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을 뿐이다.

탈북자들의 경력 사기에는 몸값을 부풀리려는 일부 탈북자의 그릇된 사고와 자극적인 증언이나 고위급 탈북자에게만 신경을 쓰는 한국 사회의 풍토,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팔짱 끼고 지켜보기만 한 정보 당국의 무책임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 거짓 권하는 사회

“유명 예술대를 나와서 김정일 앞에서 공연한 유능한 예술인.”

“북한 주요 기관에서 비밀을 많이 다뤘던 탈북자.”

한국의 언론에는 이와 비슷한 유형의 탈북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그들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북한에서 대단한 일을 했다고 주장할수록 다른 행사에 초청받을 기회와 개인 수익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물론 언론을 상대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탈북자가 많지는 않다. 또 북한이 한국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그대로 다 드러낼 수 없는 탈북자들로서는 일부 자신의 과거를 가공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동정론도 없지 않다. 그러나 몸값을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일부 탈북자로 인해 북한의 실상이 한국 사회에 왜곡돼 전달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두고 탈북자만 탓할 수는 없다. 자극적인 소재만 찾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이들에게 ‘생계형’ 거짓을 권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교회에 간증하러 다닌다는 한 탈북자는 “북에서부터 모태신앙을 가졌다거나 중국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적을 경험했다는 등의 소재가 없으면 다시 불러주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탈북자들에게 수십만 원의 강연비는 매우 큰돈이다.

점점 자극적인 소재에만 관심이 쏠리게 되니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거짓말쟁이라는 굴레를 쓰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는 탈북자 사회 전체의 신뢰성을 동반 하락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탈북자의 경력 위조는 한국의 ‘학벌 중시 풍조’와도 연관이 있다. 적어도 북한의 그럴듯한 경력이나 학벌이 있어야 쉽게 취직할 수 있다는 것은 탈북자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검증되지 않는 경력을 자꾸 만들어내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거짓 행세를 할 때 이를 적발하거나 정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한국의 정보기관이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해 조사받을 때 증언했던 경력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사회에 나가서 주장하는 경력이 다르다는 것은 쉽게 비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은 신원 확인에 매우 인색하다. 경력을 과장해도 처벌받을 확률은 제로이고 오히려 이득을 취할 수 있는 확률은 큰 상황에서 탈북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한 일이다.

○ 몇 번 신문으로 결정되는 북한 경력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한 뒤 일차적인 신문을 받는 합동조사기관 역시 인력과 전문성 부족 문제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엔 탈북자들이 한 달 평균 100명 남짓 입국하지만 과거에 많이 입국할 때는 200∼300명씩 오기도 했다. 많이 입국할 때는 조사 인력이 부족해 진짜 의심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신문 몇 번으로 대충 넘어가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한 뒤 가장 많이 숨기는 것이 학력이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더라도 대학 졸업자라고 하면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필요한 4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탈북자는 “솔직히 말하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집 근처 대학을 나왔다고 주장하면 넘어가는 사례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이미 정착한 가족이 있는 탈북자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예 탈북 단계에서부터 대학 졸업생으로 위장해서 입국하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증빙서류를 갖고 한국에 오는 탈북자가 드물기 때문에 진술에 의존해 경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조사관의 전문성이 높지 않으면 이를 쉽게 밝혀내기 힘들다. 정보기관의 한 전직 직원은 “탈북자 조사관은 승진이 잘 안 되는 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우수한 수사 인력들이 기피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관계 기관에서 처음 조사하는 과정에 밝힌 경력은 나중에 거짓임이 밝혀지더라도 수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탈북자는 “나중에 서류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돼 정정하려고 했더니 ‘한번 작성된 서류는 고칠 수 없다’고 말해 지금도 못 고치고 있다”며 “잘못된 기록은 재조사 과정을 거쳐 고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씨의 사례는 앞으로 비슷한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 어떤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이 조사를 했다면 유 씨가 화교라는 사실을 초기에 밝혀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조사 과정을 통과한 뒤라도 유 씨가 경력을 부풀리는 것을 보고 주의를 주거나, 유 씨가 화교라는 주위 탈북자의 신고를 접한 뒤 재수사를 거쳐서 유 씨의 탈북자 자격을 박탈했다면 그가 공무원으로 취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신상 노출 탈북자 협박대상 될수도(2013.01.21)

 탈북 공무원 간첩 혐의 구속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모 씨가 간첩 혐의로 구속되면서 탈북자 지원과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공안당국은 유 씨가 관리하던 서울 소재 탈북자 명단과 주소가 북한에 넘겨졌을 경우 탈북자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큰 사안으로 보고 있다.

유 씨가 관리해 온 탈북자 정보는 1만여 명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2만4000여 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다.

주소 및 신상정보가 노출되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이 우선 위협받게 된다. 북한은 가족을 인질로 삼아 탈북자를 회유하거나 협박해 간첩활동을 지시할 가능성이 크다. 가족을 죽인다고 협박하면서 간첩활동을 강요하면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어렵다. 과거 탈북자 간첩사건들도 북한 보위부가 가족을 인질로 삼아 협박한 사례가 대다수다. 지난해 북한으로 재입국한 박인숙 씨와 김광혁 고정남 부부도 가족을 처벌한다는 압력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이 주시하는 몇몇 주요 탈북자는 1997년 이한영 씨 피살사건 같은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탈북자 대다수는 임대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에 쉽게 이사 갈 처지도 못 된다.

이번 사건으로 말단 계약직공무원이 국가 안보에 중요한 극비 정보를 빼낼 수 있도록 방치된 관리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안유지를 위해서는 탈북자 정보를 소수의 제한된 공무원만 다루도록 해야 하는 게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탈북자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선 지자체 단위의 행정업무가 필요해 정보가 지자체 단위에까지 공유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계약직원에게 맡겨진 탈북자 정보관리 업무를 상위 정규직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 씨가 어떤 이유로 간첩활동을 했는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당국은 “간첩 임무를 위해 위장 탈북했다”는 주변 탈북자들의 참고인 진술로 미뤄 유 씨가 처음부터 위장 탈북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탈북 이후 유 씨 가족이 있는 함경북도 보위부에 의해 포섭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유 씨가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기려는 목적으로 서울시 공무원에 지원했는지, 공무원이 된 뒤 포섭이 됐는지를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유 씨는 서울시에 취직한 뒤 야간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주말에는 ‘영한우리’라는 남북 청년모임을 만들어 탈북 대학생들의 정착을 돕기도 했다.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름을 알린 것도 탈북자 정보 수집에 도움을 준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탈북자들의 정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탈북자 간첩사건과 재입북사건은 편견과 불신에 시달리는 탈북자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고, 궁지에 몰린 탈북자들을 간첩으로 활동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