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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8일 월요일

[돋을새김-김명호] 박정희, 정전 60년, 박근혜(2013.01.28)

대통령 박정희가 산업화의 기초를 닦기 시작한 것은 1964년 독일 정부(당시 서독)로부터 차관 3000만 달러를 받고서였다. 이 돈은 우리 산업화의 종잣돈이 된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시절이었다. 북한은 200달러가 넘었다. 전력과 지하자원도 남한보다 훨씬 많았다. 남한이 북한의 국민소득을 앞지른 것은 1970년 들어서이다.

박정희 시대는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다. 짧은 기간 동안 이 나라를 절대 가난에서 탈출시켰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에서는 정체 내지 후퇴했다. 사법 살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인혁당 사건까지 있었다. 저개발 독재국가들이 효율적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했던 행태를 박정희도 그대로 답습했다. 특히 6·25 전쟁을 겪은 한국은 북한 변수 때문에 더욱 그랬다.

정치 리더십이 통일 좌우해

올해가 정전 60주년이다. 1953년 7월 27일, 유엔군을 대표한 미군과 북한군, 중공군 총사령관은 정전 협정에 서명했다. 3년여에 걸친 전쟁에서 국군과 21개국 유엔군(참전 16개국+의료진 파견 5개국) 병사들은 수많은 피를 흘렸다.

국제관례상 휴전이 60년째 이어진 것은 한반도가 유일하다. 이 기간 동안 늘 불안했기 때문에 북한은 항상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인이었다. 그래서 북한 관리는 최우선 국정과제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북한이 조만간 핵실험을 할 것 같다. 노동당 제1비서 김정은이 ‘국가적 중대조치’를 언급했다 하니, 아마도 핵무기 보유를 유훈으로 남긴 김정일의 생일(2월 16일) 전후일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위기지수는 또 높아질 것이다. 노리는 바는 내부 다지기와 박근혜 정부 길들이기, 미국과의 직접 대화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 여부는 통일의 기초를 닦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마도 후세 사가들은 그렇게 볼 것이다. 경제 상황은 우리만 잘한다고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남북관계와 통일은 정치 지도자의 의지와 전략에 절반 이상은 좌우된다.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1970년 집권하자마자 ‘할슈타인 원칙’(동독 승인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갖지 않는다)을 포기하고 정반대의 동방정책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해 12월 7일 추운 겨울날, 브란트는 2차대전에서 나치에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한 폴란드를 방문해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당시 서방 언론들은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 이 유명한 장면은 20년 뒤에 이뤄지는 역사적인 독일 통일 프로젝트의 서곡이었다. 브란트가 통일정책을 추진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동독이 아니다. 미국 영국 소련 등 강대국들이다. 내심 통일을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유대인 위령탑 방문은 강대국들의 여론을 움직였다. 독일의 진심이 통했고, 미국과 소련의 기류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돋보이는 그의 통일전략이다. 독일 통일 과정을 보면 정치 리더십이 얼마나 자국민의 역사를, 나아가 세계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양 극단 세력에 휘둘리면 안돼

이제 부정적인 정전체제 60년은 새롭게 변화돼야 한다. 환갑을 맞는 정전 60주년은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 정전 60주년에는 이 같은 의미가 배어 있다. 당선인 박근혜는 취임 이후 정전체제 극복을 위한 방안을 전 세계에 선언할 필요가 있다. 그가 제시한 대북·통일정책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또 다른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박근혜는 보수와 진보 극단주의자들의 주장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정전 60주년을 맞는 역사적 소임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부친의 그림자를 극복하는 길 아니겠는가.

김명호 편집국 부국장 mhkim@kmib.co.kr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사설] 3차 핵실험 이후 대비책 있나(2013.01.28)

북한의 3차 핵실험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對北) 제재 결의에 맞서 “실제적이고 강도 높은 국가적 중대조치를 취할 단호한 결심을 표명했다”고 어제 새벽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전날 소집된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에서 김 제1위원장이 이런 결심을 밝히고, “해당 부문 일꾼들에게 구체적 과업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과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핵실험 강행과 관련한 내용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23일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제재 결의(2087호)를 채택하자마자 북한은 외무성 성명, 국방위원회 성명,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노동신문 정론 등을 통해 연일 핵실험의 당위성과 강행 의지를 천명해 왔다. 노동신문은 “핵실험은 민심의 요구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논지까지 폈다. 김정은의 ‘단호한 중대조치 결심’은 3차 핵실험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위성사진 판독 결과 북한이 핵실험 준비를 완료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시작도 하기 전에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대화에 무게를 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부터 헝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집권 2기를 시작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전략적 인내’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질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도 대북정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내부 압력에 시달리게 될지 모른다.

 안보리 결의 2087호는 북한의 추가 도발 시 ‘중대한 조치(significant action)’를 경고하고 있지만 또 하나의 종이 호랑이가 될 공산이 크다. 북한 핵과 미사일을 포함해 한반도 문제 전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근본적 해결을 도모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임박한 북한의 3차 핵실험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사고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미국, 중국은 과연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