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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3일 수요일

[2013한국 ‘탈북자 간첩’ 딜레마]<하> 탈북여성 “너도 간첩아니냐”는 친구말에…(2013.01.24)

“너도 간첩 아니냐며 농담… 대다수 선량한 탈북자 포용해주길”

“같은 민족인 것은 맞지만 반세기 넘게 서로 다른 문화와 체제에서 살았잖아요. 북한 사람은 북한 사람대로, 남한 사람은 남한 사람대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출연자 김아라 씨(왼쪽)와 윤아영 씨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화교 탈북자 출신 간첩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방송에서 말실수 한 적이 있어요. 북한에 있을 때 삼촌이 소를 잡았다고 말했거든요.”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김아라 씨(23·여)가 말했다. 현재 채널A의 인기 토크쇼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 중인 그는 2009년 남한에 온 탈북자다.

“그 말 한마디로 제가 누구네 집 자식인지 알 수도 있거든요. 북한에서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징역 8년, 두 마리를 잡으면 총살감이니까 흔치 않은 일이죠.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북한에 이모도 남아 계신데 왜 그런 이야기를 했냐’며 속을 끓이시더라고요.” 

수려한 미모로 ‘아라 공주’라는 별명을 얻고 팬클럽까지 생긴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옆에 있던 윤아영 씨(30·여)가 거들었다. 

“화교 탈북자 출신인 서울시 공무원이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걸 보고 남한분들은 ‘별것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명단이 북한 당국에 넘어가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어요. 탈북자는 배신자로 취급받아요. 북한에서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3대가 죽임을 당할 수 있어요.”

2004년 남한에 도착한 윤 씨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엉뚱발랄 달변가’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TV 속에서 보던 발랄함 대신 다소 무거운 표정이었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대다수 탈북자들에게 화교 탈북자 출신 간첩 사건의 여파는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걱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김 씨와 윤 씨는 같은 ‘고향’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을 간첩으로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사건 후 윤 씨는 한 남한 친구에게 “너도 간첩 아니냐”라는 농담을 들었다. 농담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나도 의심받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저희도 간첩이 없으면 좋겠지만….”

김 씨는 “오늘 아침 남한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답이 끊겼다. 두 시간 후 다시 답이 왔지만 그 사이 ‘간첩 뉴스 때문에 나를 멀리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자격지심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탈북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때도 윤 씨는 죄책감이 들었다. “피해자 어머니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이 너무 죄송했죠. 어찌됐든 제 고향에서 날아온 폭탄이었으니까요. 한 달 동안 그때 돌아가신 분들이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서 넘어온 간첩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지 물었다. 윤 씨가 먼저 대답했다.

“들어 봤죠. ‘애국심으로 간첩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터들을 많이 붙였어요. 집 출입문엔 ‘가시 몽둥이’라는 것을 걸어놔요. 나무를 곤봉 모양으로 깎아서 못의 머리를 잘라낸 다음 고슴도치처럼 박는 거예요. 고춧가루도 담아서 그 옆에 놓고요. 간첩을 잡을 때 쓰라는 거죠.”

김 씨가 맞장구쳤다. “집집마다 다 있었어요. 지금도 있을 거예요. 인민반장이 일일이 다 검사를 하거든요.”

두 사람은 혹시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자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김 씨는 “지금도 형사가 한 달에 한 번 전화가 와 ‘어디 다니느냐’ ‘부모님은 뭐하시나’라며 꼬치꼬치 캐묻는다”며 “어떻게 더 감시를 강화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남한 남자와 결혼해 임신 4개월째인 윤 씨가 거들었다. “어느 교수님은 저한테 ‘외국 가면 다 똑같은 코리안이다. 외국 가서 살면 편견도 없을 거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내 조상이 살던 땅에 살고 싶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보든 그냥 내버려둬라.’”

이번 사건으로 인한 충격은 김 씨와 윤 씨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탈북자 쉼터인 ‘평화의 집’ 관계자는 “어제 한 탈북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주위 동료들이 탈북자 중에 간첩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고 하소연했다”며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탈북자들은 스스로 움츠러들고 상처받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탈북자 중에 섞여 있을 간첩에 대한 검증을 강화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이번 사건을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비용으로 바라봐야 하며, 탈북자들을 더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한쪽에서는 탈북자를 부추겨 반북한 운동에 써먹으면서도 군대에서는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 등 이중 잣대를 들이대 왔다”며 “그들을 남한식으로 바꾸려고 강요하지 말고 우리가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진심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간첩 문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2013한국 ‘탈북자 간첩’ 딜레마]탈북자들 “남한 가서 대접받고 살려면…”(2013.01.23)

“몸값 부풀려야 南서 대접받아”… 탈북前 미리 신분세탁도


북한 화교 출신 유모 씨(33)의 ‘탈북자 위장입국 및 간첩사건’은 한국 내 탈북자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경력 사기와 관계 당국의 부실한 관리 실태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례다.


유 씨는 서울시에 제출한 인사 서류에 함경북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고 적었다. 언론 인터뷰에선 청진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유 씨는 경성의전에 입학은 했지만 졸업하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유 씨의 말은 둘 다 거짓이었지만 탈북자들이 유 씨처럼 경력을 속였다고 불이익을 받은 전례는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이런 일부 탈북자의 거짓말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내막을 아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을 뿐이다.

탈북자들의 경력 사기에는 몸값을 부풀리려는 일부 탈북자의 그릇된 사고와 자극적인 증언이나 고위급 탈북자에게만 신경을 쓰는 한국 사회의 풍토,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팔짱 끼고 지켜보기만 한 정보 당국의 무책임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 거짓 권하는 사회

“유명 예술대를 나와서 김정일 앞에서 공연한 유능한 예술인.”

“북한 주요 기관에서 비밀을 많이 다뤘던 탈북자.”

한국의 언론에는 이와 비슷한 유형의 탈북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그들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북한에서 대단한 일을 했다고 주장할수록 다른 행사에 초청받을 기회와 개인 수익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물론 언론을 상대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탈북자가 많지는 않다. 또 북한이 한국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그대로 다 드러낼 수 없는 탈북자들로서는 일부 자신의 과거를 가공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동정론도 없지 않다. 그러나 몸값을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일부 탈북자로 인해 북한의 실상이 한국 사회에 왜곡돼 전달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두고 탈북자만 탓할 수는 없다. 자극적인 소재만 찾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이들에게 ‘생계형’ 거짓을 권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교회에 간증하러 다닌다는 한 탈북자는 “북에서부터 모태신앙을 가졌다거나 중국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적을 경험했다는 등의 소재가 없으면 다시 불러주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탈북자들에게 수십만 원의 강연비는 매우 큰돈이다.

점점 자극적인 소재에만 관심이 쏠리게 되니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거짓말쟁이라는 굴레를 쓰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는 탈북자 사회 전체의 신뢰성을 동반 하락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탈북자의 경력 위조는 한국의 ‘학벌 중시 풍조’와도 연관이 있다. 적어도 북한의 그럴듯한 경력이나 학벌이 있어야 쉽게 취직할 수 있다는 것은 탈북자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검증되지 않는 경력을 자꾸 만들어내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거짓 행세를 할 때 이를 적발하거나 정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한국의 정보기관이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해 조사받을 때 증언했던 경력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사회에 나가서 주장하는 경력이 다르다는 것은 쉽게 비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은 신원 확인에 매우 인색하다. 경력을 과장해도 처벌받을 확률은 제로이고 오히려 이득을 취할 수 있는 확률은 큰 상황에서 탈북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한 일이다.

○ 몇 번 신문으로 결정되는 북한 경력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한 뒤 일차적인 신문을 받는 합동조사기관 역시 인력과 전문성 부족 문제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엔 탈북자들이 한 달 평균 100명 남짓 입국하지만 과거에 많이 입국할 때는 200∼300명씩 오기도 했다. 많이 입국할 때는 조사 인력이 부족해 진짜 의심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신문 몇 번으로 대충 넘어가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한 뒤 가장 많이 숨기는 것이 학력이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더라도 대학 졸업자라고 하면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필요한 4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탈북자는 “솔직히 말하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집 근처 대학을 나왔다고 주장하면 넘어가는 사례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이미 정착한 가족이 있는 탈북자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예 탈북 단계에서부터 대학 졸업생으로 위장해서 입국하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증빙서류를 갖고 한국에 오는 탈북자가 드물기 때문에 진술에 의존해 경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조사관의 전문성이 높지 않으면 이를 쉽게 밝혀내기 힘들다. 정보기관의 한 전직 직원은 “탈북자 조사관은 승진이 잘 안 되는 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우수한 수사 인력들이 기피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관계 기관에서 처음 조사하는 과정에 밝힌 경력은 나중에 거짓임이 밝혀지더라도 수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탈북자는 “나중에 서류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돼 정정하려고 했더니 ‘한번 작성된 서류는 고칠 수 없다’고 말해 지금도 못 고치고 있다”며 “잘못된 기록은 재조사 과정을 거쳐 고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씨의 사례는 앞으로 비슷한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 어떤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이 조사를 했다면 유 씨가 화교라는 사실을 초기에 밝혀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조사 과정을 통과한 뒤라도 유 씨가 경력을 부풀리는 것을 보고 주의를 주거나, 유 씨가 화교라는 주위 탈북자의 신고를 접한 뒤 재수사를 거쳐서 유 씨의 탈북자 자격을 박탈했다면 그가 공무원으로 취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2013한국 ‘탈북자 간첩’ 딜레마]간첩 정체 알고보니 탈북자 위장 北화교 ‘경악’(2013.01.22)

구속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위장탈북 행적 드러나
北서 태어난 화교… 中 친척집 왕래하다 한국행
南 정착후 中여권으로 방북… 北보위부에 포섭
정보당국 신분 눈치챘지만 버젓이 공무원 임용


탈북자들의 인적 정보를 북한으로 빼돌리다 체포된 서울시청 공무원 유모 씨(33)는 탈북자로 가장해 위장 입국한 북한 화교 출신인 한족(漢族)으로 21일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탈북자 간첩사건’이 아닌 ‘화교의 탈북자 위장 입국 및 간첩활동’ 사건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보 21일자 A1면 참조… [단독]서울시 '탈북 공무원'이 간첩? 첫 구속 ‘충격’
▶본보 21일자 A2면 참조… 신상 노출 탈북자 협박대상 될수도


한 소식통은 “국가정보원이 약 5년 전부터 유 씨가 탈북자가 아니며 북한도 몰래 다녀온다는 신고를 받고 감시하다 이번에 증거를 잡고 체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11년경에도 경찰과 기무사가 신고를 받고 유 씨의 내사에 착수했다가 손을 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보당국이 주시하는 기간에도 유 씨는 탈북자 담당 공무원에 버젓이 임명돼 수천 명의 목숨과 직결될 수도 있는 민감한 탈북자 정보들을 빼돌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당국이 탈북자 정보 유출의 파장보다는 ‘실적 만들기용’ 덫을 놓는 데 집착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 탈북단체장은 “유 씨처럼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정착한 북한 출신 화교들이 여러 명 있는 것으로 안다. 이를 관계당국에 제보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유 씨는 최근 여동생까지 탈북자로 위장해 북한에서 빼내 한국에 데려왔으며 이 여동생은 현재 관계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의 북한 및 한국 내 행적을 관련 소식통들의 설명을 빌려 종합해 재구성한다.

유 씨가 한국에 도착한 것은 2004년 4월.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57기로 졸업한 그는 대전에 정착했다. 싹싹한 성격에 반한 담당 형사는 그를 양아들로 삼았다. 이후 서울 소재 모 명문사립대 중국어과에 입학하면서 서울 서대문구와 송파구에서 살았다. 

유 씨는 서울시 공무원이 되기 전 중국에서 장뇌삼이나 그림을 가져와 북한산이라고 주장하며 팔았다. 2008년엔 환치기 수법으로 26억 원을 중국에 보내려다 적발돼 서울동부지검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환치기 업자들은 벌금형을 받았지만 유 씨는 단순 가담자라는 이유로 큰 처벌은 면했다.

유 씨는 한국에 정착한 뒤에도 북한에 3, 4번 밀입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 밀입국은 2006년경으로 어머니 사망 소식을 듣고 방북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교인 유 씨는 중국 여권을 보유하고 있고, 북한엔 화교로 등록돼 있어 중국을 거쳐 남북을 오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유 씨는 이때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과 중국을 넘나들며 장사하는 화교 중엔 북한 보위부 첩자로 암약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보위부는 이들의 통관 편의를 봐주는 대신 중국과 한국의 탈북자 정보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 역시 부친의 장사 편의를 봐주고 아무 때나 북한에 와서 가족을 만나도 된다는 회유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 유씨, 청진의대 나왔다는 말도 거짓말 ▼
이후 유 씨는 한국에서 한 남북청년모임 회장을 맡는가 하면 한국의 각종 북한 인권단체에 가입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유 씨가 화교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한 탈북자는 “그는 북한인권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태국까지 갈 정도로 열성이었다”며 “화교가 탈북자 인권활동을 벌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유 씨의 북한 생활

유 씨는 모범적인 정착 사례로 한국의 여러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유 씨는 함경북도 청진시를 고향이라고 소개했고 청진의대를 나온 뒤 외과의사를 1년간 하다 탈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유 씨의 고향은 두만강 옆 함경북도 회령시 오봉리이며 1990년대 초반 회령시내 성천동으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족인 유 씨의 할아버지 이름은 류린당이며 부모 역시 한족으로 알려졌다. 유 씨의 본명은 류광일이다. 북한에서는 유 씨의 성을 류 씨로 표기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화교들은 일반 북한 주민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가난했다. 하지만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한 뒤 화교들도 1990년대부터 급속히 부를 축적했다. 지금은 북한에서 가장 선망받는 집단으로 떠올랐다. 자유롭게 중국을 왕래할 수 있는 화교들은 중국 공산품과 북한 농수산물을 거래하는 무역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성천동에는 화교가 세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유 씨 집안은 크게 사업을 벌인 다른 두 가족보다는 사정이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높은 담장을 세우고 사나운 개를 키울 정도로 동네 주민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유 씨는 청진시 포항구역 수북동의 화교 학교에서 6년간의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북한에선 중국 국적자인 화교는 일반 중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다. 또 원칙적으로 대학도 다닐 수 없다. 유 씨가 졸업했다고 거짓 증언한 청진의대는 화교 학교 바로 옆에 있다.

유 씨는 중국의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한국의 발전 소식을 접한 뒤 다른 탈북자들 틈에 섞여 한국으로 왔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실정을 잘 알고 있어 관계기관을 속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3한국 ‘탈북자 간첩’ 딜레마]<상> 위장 탈북 못 가려내는 시스템

주민번호 2차례 바꾼 유씨, 제대로 조회도 않고 공무원 임용

《 간첩 혐의로 구속된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모 씨(33)가 화교 출신인데도 탈북자 자격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서울시에 공무원으로 채용까지 된 사실이 드러나자 허술한 탈북자 검증 시스템에 대해 비난 여론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유 씨가 서울 소재 탈북자 명단과 주소 등의 정보를 북한에 넘긴 정황이 드러나 탈북자 정보 관리에도 구멍이 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 구멍 뚫린 탈북자 검증 시스템
유 씨가 화교 출신으로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법적으로 탈북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은 탈북자를 ‘북한에 가족 주소 직업 등을 둔 자로 북한을 벗어나 제3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자’로 규정하고 있다.

탈북자가 입국하면 국가정보원과 군, 경찰로 구성된 합동신문센터에서 1∼2개월 동안 북한 내 행적과 탈북 목적에 대해 조사받는다. 여기서 해당 지역 출신 탈북자들을 통해 수집했던 정보와 대조해가며 신원을 속이거나 탈북 목적을 거짓으로 진술하지는 않았는지 집중 조사한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국내 적응시설인 하나원에 입소할 수 있다. 하나원에서도 최장 6개월까지 추가 조사 및 교육을 받은 뒤 사회에 나온다.

유 씨는 화교 출신인 데다 자신의 주장과 달리 의대가 아닌 인근 화교학교를 졸업했지만 합동신문 과정을 통과했다.

유 씨가 서울시에 제출한 인사 서류에는 함경북도 회령시 출신으로, 함경북도 경성군의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탈북 이후 각종 인터뷰에서는 청진의대를 졸업했다고 주장했다. 시 관계자는 “유 씨가 중국어를 잘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화교 출신이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인사 서류에도 관련된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유 씨가 탈북 과정에서 신분을 입증할 서류를 위조했거나 다른 탈북자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유 씨가 한국에 정착한 이후 거주지를 옮기며 주민번호를 2차례 바꾼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탈북자는 주민등록번호를 한 차례만 바꿀 수 있다. 유 씨가 한국의 허술한 관리 시스템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유 씨는 입국한 뒤 수상한 행적을 보였지만 서울시에 채용되는 과정에선 국가정보원 등 공안당국을 통한 별도의 신원조회를 받지 않고 일반 공무원처럼 범죄경력조회만 거쳤다. 시 관계자는 “별도의 신원조회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으로 채용된 이후에도 별다른 관리를 받지 않았다.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르면 탈북자 출신 공무원은 업무 배치 전후 정기적으로 복무·보안 교육을 해당 부서장으로부터 받아야 하지만 대부분 계약직이어서 사실상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특히 행안부가 ‘국가기관에 채용된 탈북자들을 국가안보와 관련된 업무에 배치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는데도 감독을 하지 않아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곳곳에 허점이 있지만 탈북자들의 공직 진출은 갈수록 늘고 있어 총체적인 점검과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2011년 1월 ‘지방공무원 균형인사 운영지침’을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내 탈북자의 공무원 채용을 독려했다. 이어 2011년과 2012년 각각 지방공무원법 및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해 탈북자들이 특별채용 형식으로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했다. 이 결과 현재 중앙 부처에서 12명이, 지자체에서 40명이 일반직 또는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탈북자에게도 공직 진출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돼야 하며 이는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더욱 장려되어야 하지만 관리 감독의 실효성은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탈북자 정보도 허술하게 관리

유 씨가 수집했던 탈북자 관련 정보는 남파 간첩들의 주요 수집 목표다. 최근 검거된 북한 공작원 상당수는 탈북자들의 동향정보를 수집하라는 지령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들 역시 자신들의 신상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탈북자들의 신상에 관한 정보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밀로 유지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탈북자 현황 정보는 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에서 관리되고 있다. 탈북자의 성명, 주소지 등의 정보가 담긴 통일부의 거주지정착지원서비스망에는 각 지자체의 탈북자 업무 담당 직원이 접속해 해당 지역의 탈북자 정보를 모두 볼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탈북자 담당 공무원이 서울 거주 탈북자 6800여 명의 현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통합관리망에도 탈북자들의 정보가 있다. 지자체의 복지담당 직원은 이 전산망에 접속해 해당 지역의 탈북자 현황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각 경찰서 보안과에서도 관할 내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정보를 갖고 있다. 담당 공무원이 마음만 먹으면 탈북자의 신원과 거주지 등의 정보는 쉽게 외부로 유출할 수 있는 것. 하부 기관으로 내려갈수록 보안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북한인권운동을 해왔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탈북자 명단 관리가 미비한 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도록 법령 개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