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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7일 일요일

[특파원 칼럼/이헌진]시진핑의 배짱과 북한의 도발(2013.01.28)

‘작은 거인’ 덩샤오핑(鄧小平)은 배짱이 두둑했다. 1978년 12월 개혁 개방 선언과 미국과의 수교, 이듬해 1월 역사적인 미국 방문, 2월 베트남과의 전쟁. 하나하나가 세계를 흔든 초대형 사건이지만 덩은 3개월 사이에 모두 해치웠다. 그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가 발생하자 탱크까지 동원해 비무장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한다. 자신이 확신만 서면 주저하지 않고 큰 희생도 감수한다.

1992년 동아시아의 냉전 구도에 큰 변화를 불러온 한국과의 수교도 이런 배짱의 산물이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毛澤東)과 혁명 동지인 북한 김일성에게 극진했다. 김일성이 언젠가 중국을 방문하자 베이징(北京) 역에서 그를 맞이하고 환영 연회 및 회담, 시찰 등 모든 일정을 동행했다. 북한도 4차례나 방문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의 생애에서 마지막 외국 방문지도 북한이다.

1975년 4월 암 투병 중이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베이징 305병원에서 김일성을 마지막으로 만난다. 저우 총리는 김일성에게 배석한 덩샤오핑을 가리키며 “무슨 일이 있으면 덩샤오핑을 찾으라”라고 말했다. 아끼는 후계자에게 혈맹(血盟) 북한을 특별히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기대를 저버렸다. 그는 철저한 실용주의에 입각해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에 적극 호응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한중 수교는 극비리에 번개처럼 진행됐다. 덩샤오핑은 한국에 온 적도, 평생 한국인을 만나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는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는 것은 중국의 통일에 좋고, 중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무해양득(無害兩得)’을 내세웠다. 김일성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덩샤오핑의 배짱과 정확한 현실 인식 앞에서 달리 방도가 없었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의 사표(師表)는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을 철저하게 따를 것을 다짐한다. 취임 후 첫 지방 시찰로 개혁 개방의 첫 문을 연 광둥(廣東) 성을 찾아 그의 동상에 헌화했다. 말과 행동으로 실용주의 노선을 강화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중화권 언론과 학자들은 시 총서기가 온화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지만 기개가 넘치고 배짱이 있다고 말한다. 시진핑 시대는 현상 유지에 집착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도 나오는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와 다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2009년 서방의 중국 인권 비판에 대해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라고 거칠지만 단호하게 대응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23일 시 총서기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보낸 특사단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가 한반도 평화 안정에 필수 요건”이라며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북한을 행여 자극할 수 있는 말이라면 공개적으로 일절 하지 않은 후진타오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북한은 시 총서기의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 날인 24일 제3차 핵실험 진행 계획과 6자회담 ‘사멸’을 선언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국가적 중대 조치를 결심했다”라고 하는 등 위협 발언도 이어졌다.

북한이 중국 길들이기를 점점 노골화해 시 총서기의 대북 정책은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해 홍콩의 한 정치학자는 “시 총서기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끌려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짱이 두둑한 시진핑이 실용주의 노선으로 덩샤오핑처럼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2년 11월 18일 일요일

[국민일보]시진핑 시대 중국선교 변화는?… 희망론 “개방된 인물들”-신중론 “통제, 세련되게 변할 뿐”(2012.11.18)

‘시진핑(習近平) 시대’를 맞아 중국 내 기독교의 입지와 선교 환경이 달라질 수 있을까. 외부의 선교활동을 막는 중국정부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겠지만 중국내 기독교의 성장이란 도도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아세아연합신학대 우심화 교수는 18일 “중국에 5세대 지도부가 들어섰다고 선교 환경이 급격하게 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면서 “다만 시진핑이 집권하는 향후 10년 동안 중국 내 종교상황이나 종교정책에선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앙의 자유나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바링허우(80後·1980년대 출생자) 세대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질 것이고 정부도 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WEC선교회 이사장을 지낸 옥인영 장로는 더욱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옥 장로는 “후진타오(胡錦濤) 체제도 초기와 임기 말을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다 시진핑은 더 개방된 인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선교 전망이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옥 장로에 따르면 신분을 숨기고 사역해오던 중국의 가정교회 목사들이 이제는 당당히 목사 명함을 갖고 다닌다. 공안도 가정교회 목사들에게 “규모를 더 이상 키우지만 않으면 문제없다”고 말할 정도다. 옥 장로는 “최근 중국에선 지식인과 엘리트가 주축이 된 도시교회가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다”면서 “이미 현지인 선교사도 배출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2010년 아시아하베스트 통계에 따르면 중국 내 크리스천(천주교 포함)은 1억34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63%를 차지한다. 정부 공인교회인 삼자교회 신도는 2800만명에 불과하지만 가정교회와 지하교회, 도시교회 성도가 많다.

장밋빛 전망을 경계하는 신중론도 있다. 중국선교연구원장 인병국 목사는 “기독교에 대한 중국의 관점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면서 “일단 상황의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 목사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선교 통제는 무지막지했던 예전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진화했다. 선교활동이 자기네한테 유리한 성격이면 묵인하되, 조금이라도 신경을 건드리면 점잖은 말로 경고한 뒤 계속 버틸 경우 추방하는 식이다. 인 목사는 중국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도 “수적(數的)으로 늘어난 것은 맞지만 세속화에 함몰되고 있어 진정한 부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향후 바람직한 중국 선교 방법으로는 현지 교회와 동역, 화교(華僑)를 통한 선교 등이 제시됐다. 인 목사는 “한국 선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군림’하는 옛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지 교회와 진실한 관계를 맺고 같이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한국교회와 삼자교회의 교류가 늘고 있는데 삼자교회는 선교 의지나 여력이 없고 정보유출 통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교류가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옥 장로는 “중국 현지 활동에 제약이 많은 한국 선교사 대신 중국에서 환영받는 화교가 선교하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 중국인이 사는 곳마다 교회가 있는데 이곳에서 화교선교사가 많이 배출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