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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0일 일요일

[단독]北 엘리트 의사, 탈북후 北에 넘긴자료 보니…(2013.01.21)

탈북자 1만명 정보 통째로 北에 넘긴 정황
2004년 탈북후 北 드나들어 2011년 서울시 계약직 취업



탈북자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현직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 탈북자 출신 공무원이 간첩 혐의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서울에 거주하는 탈북자 명단과 이들의 구체적인 동향이 통째로 북한에 넘겨진 정황도 포착돼 정부의 탈북자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국가정보원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지령에 따라 자신이 관리하는 탈북자 명단과 한국 정착 상황, 생활환경 등 관련 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등으로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주무관 유모 씨(33)를 구속해 수사 중인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국정원은 유 씨가 내사 받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뒤 달아나려 하자 11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한 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유 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위부 소속 간첩들이 위장 탈북했다가 국정원 합동심문센터 심문 과정에서 적발되거나 간첩활동 중 검거된 경우는 있었지만 탈북자 출신 공무원이 검거된 것은 처음이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2004년 혼자서 탈북한 유 씨는 함경북도 청진의대를 졸업한 뒤 1년간 외과 의사를 한 엘리트였다. “밀수를 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독재정권의 폐쇄성이 북한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게 유 씨가 밝힌 탈북 이유였다. 탈북 후 명문 사립대에서 중문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고 유창한 영어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무역회사에서 근무했다. 가족은 북한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1년 6월 탈북자 대상 서울시 특별전형에 2년 계약직으로 합격해 최근까지 1만여 명의 서울 거주 탈북자 지원 업무를 전담해 왔다. 주 2, 3회 탈북자 가정을 방문해 면담하고 탈북자 전화상담을 하는 업무여서 탈북자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유 씨가 간첩활동을 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서울시 공무원시험에 지원을 했는지와 보위부의 지령을 받아 탈북자 정보를 북한 쪽에 넘긴 과정 등을 수사 중이다. 특히 북한에 넘긴 정보의 내용과 유출 경로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유 씨는 탈북 이후 중국을 거쳐 여러 차례 북한을 드나들었던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국정원은 1차 수사가 마무리되는 이달 말경 이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송치할 예정이다.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특별취재 탈북’ 제작 PD들의 뒷얘기(2013.01.16)


10개월짜리 아기를 업고 탈북한 여성은 “힘들지 않느냐”는 PD의 질문에 “힘들어도 가야죠. 이미 떠난 길인데”라며 각오를 다졌다. 채널A ‘특별취재 탈북’은 15명의 집단 탈북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채널A 방송화면.

"먹먹한 가슴으로 손에 땀을 쥐며 봤습니다."


"방송을 보고 울고 또 울다 밤잠을 못 잤습니다."

채널A가 방송한 탈북 다큐멘터리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13일 방송한 '특별취재 탈북' 1부 '강을 건넌 사람들', 2부 '마지막 국경'은 방송 이후 더욱 화제가 됐다. 제작진 앞으로 탈북자들을 돕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했다. 특히 일곱 살 꽃제비 진혁이를 후원하고 싶다는 시청자가 많았다.
15명의 집단 탈북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프로그램의 제작 주역은 탈북자들과 20일간 동행한 양승원 PD(36)와 강태연 PD(31)였다. 15일 만난 두 PD는 "언제든 잡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잡혀도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며 방송에 다 담지 못한 뒷얘기를 꺼냈다.

●탈북자들과 생사를 함께 하다
 

2012년 11월 말, 양 PD는 중국 압록강변에서 일곱 살 꽃제비 진혁이가 강을 건너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예정된 날짜가 지나도록 진혁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못 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던 날 밤, 진혁이는 기적적으로 강을 건너 양 PD와 만났다.

이 때 강 PD는 먼저 강을 건너온 성인 탈북자 그룹과 중국 모처에 마련한 안전가옥(안가)에 은신하고 있었다. 불빛이 새나갈까 커튼으로 창문을 꼼꼼히 가리고 주민들이 수상히 여겨 신고할까봐 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황에서도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의 위기를 담담히 준비하는 탈북자들의 모습은 강 PD에게는 충격이었다. "안가를 떠나기 전에 잡히면 죽겠다며 면도칼을 종이에 싸서 준비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죠."

강 PD는 성인 탈북자들과 함께 버스로 A국 국경까지 이동했다. 버스를 갈아 탈 때마다 곳곳에 깔린 중국 공안들을 피해 다녔다. 3일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신분이 노출될까봐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하루 한 번씩 들르는 휴게소에서였다. 탈북 여성과 차에서 내린 강 PD에게 공안이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했다. 다행히 탈북자는 중국어를 할 줄 알았고 강 PD는 여권을 소지하고 있어 위기를 넘겼다. 강 PD는 "만약 버스에 여권을 두고 내렸다면 신분증이 없다는 점을 수상히 여긴 공안에게 버스 안 탈북자들이 발각될 수 있었다"고 했다.

A국으로 들어간 두 PD와 15명 탈북자들의 다음 목적지는 B국이었다. 양 PD는 탈북자들과 함께 B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밀림을 건넜다. 일행 중에는 10개월짜리 아기를 업은 여성도 있었다. 현지 안내인은 아기가 울면 군인들에게 들킨다며 수면제를 먹이자고 했다. 탈북자들과 안내인의 중재 역할까지 했던 양 PD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다행히 아기는 밀림을 빠져나오는 4시간 동안 울지 않았다. 양 PD는 "아기 엄마가 장화를 신고도 밀림에서 제일 잘 뛰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위대한 모성애였다"고 전했다.

밀림은 30cm 앞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불을 함부로 켤 수도 없었다. 카메라의 녹화(REC) 버튼에 들어오는 빨간 불까지 씹던 껌으로 가릴 정도였다. 카메라를 든 양 PD는 수도 없이 넘어지고 일행에 뒤쳐져 길을 잃을 위험도 여러 번 겪어야 했다.

새벽 4시가 돼서야 밀림을 빠져나온 일행. 양 PD는 약속장소에 대기하고 있던 강 PD에게 그동안의 촬영 영상을 담은 메모리칩을 인계하고 다시 밀림을 거슬러 A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B국에서는 그도 밀입국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 군인에게 들킬 수 있는 상황. 그는 밀림을 뛰어 2시간 만에 A국으로 되돌아가는데 성공했다. 흙이 섞인 시냇물을 마시며 환호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 같더라고요."

20일간 함께 생사를 넘나든 PD들은 탈북자들과 친구가 됐다. 강 PD는 또래 여성 탈북자들에게 "한국이 생각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닐 수 있다. 경쟁도 굉장히 치열하다"고 말했다. 돌아온 답변은 "어디라도 북한보다는 낫다. 노력한만큼 살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양 PD는 진혁이의 아빠 역할을 하며 실제 부자지간처럼 가까웠다. "TV에서 보면 진혁이가 동글동글 통통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곱 살은커녕 서너 살 정도로 보일만큼 작아요. 그래도 참 똑똑하고 예쁘죠."

'특별취재 탈북'은 양 PD가 진혁이에게 한국에 가면 뭘 하고 싶냐고 묻는 장면으로 끝난다. 진혁이의 대답은 '일' 이었다.

"일곱 살 아이가 일을 하고 싶다는 게 가슴이 아팠어요. 그 나이에 얼마나 치열하게 살 방법을 고민해왔는지 보여줬기 때문이죠."

두 PD는 "아직 과제가 남아있다"고 입을 모았다. "제3국에 머무르고 있는 진혁이와 탈북자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어떻게 적응하고 살 수 있을까…. 그 다음 얘기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겁니다."

2012년 12월 9일 일요일

[박지웅 목사의 시편] 하늘의 만족감(2012.12.09)

언젠가 우리 교회의 부교역자 초빙을 위한 이력서를 받는데 특이한 이력서 한 통이 있었다. 지원자는 40대 초반의 탈북하신 여전도사님이었는데, 그의 자기소개서가 나의 눈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함경도 청진에서 교수생활을 하던 엘리트였지만 90년대 말 전염병이 북한을 휩쓸고 가던 때 교수 월급으로도 살 수가 없어서 돈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했다.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봐주던 기독교인들에 의해 마음이 열려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다롄공항에서 그만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북송을 당하게 된다.

끔찍한 시간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데 놀라운 기적이 벌어졌다. 자기를 구금했던, 악랄하기로 유명한 북한 경찰 간부가 친히 보증을 서면서 풀어주더라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 경찰 간부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그가 예수를 믿게 된 과정이었다.

그가 고문했던 한 청년이 죽음의 고문을 받으면서도 예수를 전하더라는 것이다. 가소로운 마음에 말할 기회를 줬더니 청년은 성경을 줄줄 외면서 전도를 하더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말을 하는 바람에 재판도 없이 총살을 시켜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죽어가면서 전했던 청년의 말이 이 고문 경찰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특별히 그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린 것은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평안함과 만족감이었다. ‘마음의 심연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평안과 만족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문 경찰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결국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결신을 하면서 신앙을 갖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죽인 청년을 생각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살리는 사람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얼굴에 비취는 하늘의 만족감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다. 언젠가 영화 속에 나온 한마디 대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나를 버리고 딴 여자를 만나는 것도 배신이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하고 슬퍼하는 것, 이 또한 배신입니다.” 그렇다. 배신에는 두 종류가 있다. 상대방을 차버린 것도 배신이지만 상대방의 사랑 안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 역시 배신이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 이 역시 배신이다.

마더 테레사가 신임 수녀들을 뽑을 때 선발 기준이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만족감이 참 신자의 표지라는 통찰력 때문이다. 나의 얼굴에는 하늘의 만족감이 있는가? 그것이 없다면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의 배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사설] 북한의 선교사 독살은 명백한 국제 테러다(2012.12.07)

지난해 8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한 백화점 앞에서 숨진 김창환 선교사가 독극물로 암살된 사실이 법원 기록을 통해 공식 확인됐다. 김 선교사는 당시 택시를 기다리다 입에 거품을 물며 갑자기 쓰러졌고, 몸에서 퍼런 멍이 발견되는 등 독살의 정황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 공안이 주도한 1차 부검에서 독극물이 발견되지 않아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 잠입했다 검거된 한 북한 공작원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사건 발생 직후 김 선교사가 독살됐음을 확인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은 그를 숨지게 한 독극물이 북한의 공작기관이 암살용으로 사용하는 브롬화스티그민이라는 점도 밝혀냈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를 외교통상부에 통보하지 않아 중국 공안과의 공조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암살된 사실을 확인하고도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게 된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소행이 거의 확실시되는데도 중국과의 외교마찰 등만 생각해 진상파악에 적극적이지 않음으로써 유사한 테러행위가 재발가능성까지 남겼다. 재외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가 의무를 스스로 방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를 독극물로 살해한 것은 명백한 국제적 테러행위다. 지금 북한은 3대 세습에 따른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특히 북한과 인접한 중국 국경지역에서 활동하는 눈엣가시 같은 대북 선교사와 인권단체 운동가들에게 노골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때문에 선교사 등은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느껴 활동이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범인을 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제사회강력한 대응과 응징을 촉구해야 한다. 중국 정부에는 범인 색출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북한의 국제 범죄에 동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제2, 제3의 테러를 막는 길이다.

2012년 11월 18일 일요일

[국민일보]시진핑 시대 중국선교 변화는?… 희망론 “개방된 인물들”-신중론 “통제, 세련되게 변할 뿐”(2012.11.18)

‘시진핑(習近平) 시대’를 맞아 중국 내 기독교의 입지와 선교 환경이 달라질 수 있을까. 외부의 선교활동을 막는 중국정부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겠지만 중국내 기독교의 성장이란 도도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아세아연합신학대 우심화 교수는 18일 “중국에 5세대 지도부가 들어섰다고 선교 환경이 급격하게 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면서 “다만 시진핑이 집권하는 향후 10년 동안 중국 내 종교상황이나 종교정책에선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앙의 자유나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바링허우(80後·1980년대 출생자) 세대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질 것이고 정부도 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WEC선교회 이사장을 지낸 옥인영 장로는 더욱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옥 장로는 “후진타오(胡錦濤) 체제도 초기와 임기 말을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다 시진핑은 더 개방된 인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선교 전망이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옥 장로에 따르면 신분을 숨기고 사역해오던 중국의 가정교회 목사들이 이제는 당당히 목사 명함을 갖고 다닌다. 공안도 가정교회 목사들에게 “규모를 더 이상 키우지만 않으면 문제없다”고 말할 정도다. 옥 장로는 “최근 중국에선 지식인과 엘리트가 주축이 된 도시교회가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다”면서 “이미 현지인 선교사도 배출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2010년 아시아하베스트 통계에 따르면 중국 내 크리스천(천주교 포함)은 1억34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63%를 차지한다. 정부 공인교회인 삼자교회 신도는 2800만명에 불과하지만 가정교회와 지하교회, 도시교회 성도가 많다.

장밋빛 전망을 경계하는 신중론도 있다. 중국선교연구원장 인병국 목사는 “기독교에 대한 중국의 관점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면서 “일단 상황의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 목사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선교 통제는 무지막지했던 예전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진화했다. 선교활동이 자기네한테 유리한 성격이면 묵인하되, 조금이라도 신경을 건드리면 점잖은 말로 경고한 뒤 계속 버틸 경우 추방하는 식이다. 인 목사는 중국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도 “수적(數的)으로 늘어난 것은 맞지만 세속화에 함몰되고 있어 진정한 부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향후 바람직한 중국 선교 방법으로는 현지 교회와 동역, 화교(華僑)를 통한 선교 등이 제시됐다. 인 목사는 “한국 선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군림’하는 옛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지 교회와 진실한 관계를 맺고 같이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한국교회와 삼자교회의 교류가 늘고 있는데 삼자교회는 선교 의지나 여력이 없고 정보유출 통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교류가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옥 장로는 “중국 현지 활동에 제약이 많은 한국 선교사 대신 중국에서 환영받는 화교가 선교하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 중국인이 사는 곳마다 교회가 있는데 이곳에서 화교선교사가 많이 배출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