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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30일 일요일

[동아일보]文 “원본 열람해 NLL포기 사실땐 정계은퇴”(2013.07.01)

회의록 공개 논란에 정면승부 나서… 野 “국정원 개입, 대통령이 사과해야”


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불거진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 속에서 대여 공세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문재인 의원(사진)은 이날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관련 기록을 열람해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새누리당에 제안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기록 열람 결과, 만약 NLL 재획정 문제와 공동어로구역에 관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이었다고 드러나면 제가 사과는 물론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문 의원 측은 이 같은 제안 배경에 대해 “‘NLL 포기’ 발언은 여야가 공방을 벌일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에 대해 ‘NLL 포기가 아니다’라는 답변이 ‘NLL 포기’란 답변의 2배 이상으로 나타난 것도 문 의원의 자신감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 공개를 1일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전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원본을 비롯해 녹음테이프, 사전 준비회의 회의록 등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양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일 만나 공개될 자료의 범위와 공개 방식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야 합의로 자료제출 요구서가 제출되면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공개가 최종 결정된다.

민주당은 이날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정치공작 진상규명 및 국정원 개혁’ 촉구 서울시당 당원 보고대회를 열고 원내외 병행투쟁을 본격화했다. 김한길 대표는 당원 보고대회에서 “대통령의 진솔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국정원 등 권력기관이 다시는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여야가 함께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2013년 4월 2일 화요일

[크리스천투데이]마지막 설교 전한 존 파이퍼 목사, “하나님께 감사” 눈물(2013.04.03)


     베들레헴 교회 축복하고 연합 위해 기도

▲존 파이퍼 목사가 2012년 애틀랜타에서 열린 ‘패션 컨퍼런스’에서 말씀을 전하던 모습. ⓒ크리스천포스트

3월 31일(이하 현지시각) 부활절 예배 설교를 마지막으로 목사직에서 물러난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가 눈물을 흘렸다.

그는 1일 자신의 블로그 ‘하나님을 향한 갈망(Desiring God)’에 “33년 만에 처음으로 목사라는 공식적 직함 없는 하루를 맞아 눈을 떴을 때, 눈물만 나왔다. 이는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 아래에 큰 기쁨이 있었다. 이는 끝이 났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붙드시고, 하나님이 마치셨다. 나는 이 일을 사랑했다”고 적었다.

하루 전인 부활 주일, 파이퍼 목사는 베들레헴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전했다. 파이퍼 목사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여러분의 위대한 목자를 살리셨다’는 제목의 설교에서 베들레헴 교회를 축복하고 연합을 위해 기도했다.

그는 “아버지, 베들레헴 교회가 절대적이고, 흔들림없이 하나로 있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양떼들과 온전히 하나가 되시고, 이들도 당신께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들이 주님의 보혈이 가져온 평화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이들과 약속을 지키시고 말씀 안에서 모든 언약이 성취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다음날 파이퍼 목사는 “교회가 그의 진로에 대해 기도하면서 생각한 이후, 하나님께서 교회를 조화롭게 이끌어오셨다. 리더십의 매끄러운 승계가 매우 기뻤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삶의 출발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파이퍼 목사는 “베들레헴 교회에서 사역을 마친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만족스러웠다. 떠나보내길 원치 않던 교인들과 가진 눈물의 긴 포옹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여기서 나는 여러분에게 끝이 어떻게 매우 만족스러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적었다.

약 2주 전, 파이퍼 목사는 교인들에게 5월 가족들이 테네시로 이사할 것이라고 전하면서, “새로 부임한 재이슨 메이어(Jason Meyer) 목사가 방해받지 않고, 교회에 대한 자신의 전략적인 비전을 잘 개발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일 파이퍼 목사는 “비록 베들레헴에서 나의 사역이 여러 면에 있어서 부족했지만, 완수했기 때문에 이를 사랑한다. 베들레헴 교회 목사로서 나의 삶은 끝났다. 나와 교회 앞에 어떤 일들이 놓여 있을지 매우 기대된다”고 말했다.

베들레헴 침례교회는 오는 14일 공식적인 감사예배를 통해 파이퍼 목사의 헌신을 기릴 예정이다.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김학중 목사의 시편] 가슴에 뜨거운 불을 품으라(2013.01.09)

김연아 선수가 돌아왔다. 2011년 4월 모스크바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친 후 사실상 공식적인 선수생활을 중단하고 같은 해 1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퇴선언을 했던 김 선수가 2012년 12월 초순 20개월간의 공백을 깨고 화려한 복귀를 했다. 그녀의 선수생활 공백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스스로 밝힌 이유 중 하나는 불가피한 ‘체력저하’였다. 즉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전성기는 18∼20세 초반인데 자신은 이미 그 시기를 넘어섰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의 많은 팬들은 ‘피겨의 여왕’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그녀를 강요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지난해 7월 초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2014년 소치올림픽을 향한 원대한 꿈을 선언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1년 동안 태릉선수촌에서 후배들과 함께 훈련을 하며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애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최고의 목표에 대한 부담으로 선수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이것이 인생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소치올림픽을 마치고 나면 IOC 선수위원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 다음 그녀는 자신의 선언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입증했다. 비록 우려했던 체력저하 현상은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독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NRW 트로피대회에서 종합점수 200점 이상을 얻었다. 김 선수의 복귀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어찌나 높았던지 같은 시기 소치에서 열렸던 ‘그랑프리 파이널’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월 6일 김 선수는 7년 만의 국내 복귀전에서 종합점수 210점 이상의 고득점을 하며 3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것은 그녀가 절정기에 세운 기록에 바짝 다가선 것이었다.

2년 가까이 현역 생활을 떠났던 김 선수가 이런 기록을 달성한 것은 천재성뿐만 아니라 그녀의 피나는 노력과 결연한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말대로 피겨 선수로서의 몸은 이미 절정기를 넘어섰다. 그래서 생각하지 못했던 실수도 저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는 2년 전과 비교할 수가 없다. 그전에는 ‘등 떠밀려’ 억지로 선수생활을 했다면 지금은 ‘스스로 원하여’ 기쁘게 뛰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피겨스케이팅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녀의 진정한 피겨 인생은 지금부터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가짐은 우리의 삶을 놀랍게 바꾼다. 새해를 시작하며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새롭게 가져보라.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살지 말고 불타는 애정과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삶에 도전해 보라. 주변의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이어가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뜨거운 감사와 샘솟는 기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보라. 여러분의 오늘은 어제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정든 바벨 이젠 안녕!… 역도 여왕 장미란 눈물의 은퇴(2013.01.10)

“안녕하세요, 역도 선수 장미란입니다.” 정든 바벨과의 이별이 못내 아쉬웠던 것일까? 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상지여중 3학년이던 1998년 처음 만난 바벨은 그의 연인이었다. 바벨은 정직하다. 딱 훈련한 만큼만 자신의 무게를 허락한다. 그도 정직했다. 둘은 함께 수많은 전설을 만들었다. 그러나 바벨은 그의 몸을 상하게 했다. 허리, 어깨, 무릎, 팔꿈치….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아픈 몸 위로 바벨을 들어올렸다. 언제부터인가 바벨은 그에게 버거운 무게가 되어 버렸다. 결국 정든 바벨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인생 2막을 힘차게 열었다. “IOC 선수위원에 도전하고 싶어요.” 어느새 그의 얼굴은 환해져 있었고,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장미란(30)은 10일 고양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를 결심하게 된 사연과 향후 계획 등을 밝혔다.

“지난해 런던올림픽과 대구전국체전을 마친 뒤 은퇴에 대한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은퇴를 최종 결정한 건 채 열흘도 안 됩니다. 은퇴 후엔 학업과 ‘장미란재단’을 통한 사회공헌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그는 더 큰 꿈도 펼쳐 보였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IOC 선수위원이 되어 꿈나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겠다고 했다.

2002년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된 장미란은 그해 부산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따내며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약 9년간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다.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힘든 날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신앙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5년간의 선수 생활에 대한 소감도 밝혔다. “아무런 꿈도 없었던 3학년 여중생이 국민의 사랑을 넘치게 받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제 재능기부를 통해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덩치가 크고 외모에 자신이 없어 위축되고 기가 죽었다는 장미란은 같은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을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전했다. “처음엔 역도가 싫었어요. 그렇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역도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지요. 누구나 한 가지씩 소질은 있습니다.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2013년 1월 7일 월요일

‘한국 역도 여제’ 장미란 현역 은퇴(2013.01.08)


한국 역도의 여제 장미란(31·고양시청)이 은퇴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장미란의 아버지 장호철 씨는 8일 "장미란이 은퇴할 결심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장 씨는 "(장)미란이가 현역 생활을 지속할지를 두고 심사숙고하다가 7일 저녁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은퇴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장미란의 은퇴 기자회견은 10일 열린다.

장미란은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승하면서 무려 5년 동안 세계 여자역도 최중량급을 지배했다. 

여자역도의 체급이 현재처럼 굳어진 1998년 이후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와 올림픽우승, 준우승 등의 대업을 이룬 여자 선수는 장미란 밖에 없다. 

장미란은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등 출전할 수 있는 모든 국제대회를 제패한 '그랜드슬래머'다. 

전성기인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여자 최중량급의 인상, 용상, 합계 세계기록을 모두 보유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부상에 시달리면서 2010년부터는 신예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아직 국내에서는 적수가 없지만 장미란은 국내 대회용 선수로 남기보다 세계 수준의 선수로서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