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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4일 목요일

[동아일보]선예 임신 소식, 온라인 들썩… 누리꾼들 ‘경사났네~’(2013.04.04)


‘선예 임신’


선예 임신 소식, 온라인 들썩… 누리꾼들 ‘경사났네~’

원더걸스의 멤버 선예가 임신 소식을 알린 가운데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의 축하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선예는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경험한 세상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저희에게 허니문 베이비를 허락 하셨어요”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어 “이제 3개월로 접어들어서 아기소식을 알리기 적당한 안정권이라고 해요. 뱃속에 있는 동안 건강히 자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릴게요”라고 덧붙였다.

이 소식을 접한 동료 연예인인 조권과 백아연, 윤하 등이 SNS를 통해 축하 메시지를 전했으며, 누리꾼들 역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선예의 임신 소식을 전파하며 축하했다.

누리꾼들은 “걸그룹 멤버가 결혼하고 임신하고… 행복한 모습 보기 좋다”, “선예가 걸그룹의 좋은 예로 거듭나고 있어 흐뭇하다”, “선예가 아기엄마가 된다는 게 신기하다… 축하축하”, “선예 임신 소식에 깜짝 놀랐는데… 부부 금술이 좋은가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선예는 선교사로 알려진 제임스 박과 지난 1월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두 사람은 몰디브로 달콤한 신혼여행을 보낸 뒤, 현재 캐나다에서 신혼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동아일보]중국, 지하교회 단속 강화…“기독교 탄압 신호탄”(2013.03.22)

지하교회 선교활동에 체포ㆍ구속 등으로 강경 대응

중국 당국이 여러 지방에서 가정교회로 불리는 지하교회에 대한 일제 조사에 들어가 전국적인 기독교 탄압의 서곡이 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21일 미국 아시아자유방송(RFA)에 따르면 미국에 있는 반중(反中) 인권단체인 '차이나에이드'(ChinaAid)는 산둥(山東)성 자오저우(교<月+交>州)시,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와 선전(深천<土+川>시,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시, 충칭(重慶)직할시 등지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됐다고 밝혔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칭다오(靑島)시에 속한 현급도시인 자오저우 선전 당국은 최근 당 기층조직인 향ㆍ진(鄕鎭) 당 위원회에 가정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문건을 내려 보냈다.

차이나에이드가 입수한 문건은 가정교회의 위치, 지도자, 핵심 신자, 전체 신자 수, 선교 활동, 그리고 해외 단체와의 연계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오는 25일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문건의 지시 사항에는 정부 통제하에 있는 중국 기독교 삼자 애국운동위원회에 대한 가정교회 신자들의 태도와 가정교회가 당국의 공식 지시를 수용할지의 여부 조사도 포함돼 있다고 RFA는 전했다.

중국 가정교회연합회 자오저우시 지부 부지부장인 잔강 목사는 당국이 자신의 구역내 모든 가정교회를 대상으로 이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확인하면서 자오저우에만 가정교회가 100개가 넘는다고 밝혔다.

잔 목사는 당국이 향진과 촌(村)의 통일전선 조직, 촌 위원회, 주민 등 모든 조직을 동원해 가정교회 조사를 벌이고 있다면서 선전, 항저우, 충칭 등지에서도 이런 조사가 진행중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일제 조사가 10년내에 지하교회를 없애라는 당국의 2011년 '비밀 지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선전에서 가정교회 '중푸강터우'를 이끌고 있는 자오 젠쥔 목사는 당국이 전화로 이 교회를 방문 조사하고 싶다며 방문 가능 날짜를 물었다고 말했다.

자오 목사는 이 교회 신자들이 최근 대만 회사인 팍스콘 공장에서 선교 전단지를 나눠주다 공안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광저우 '광푸자' 가정교회 신자들은 공안으로부터 교회 현황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이 교회 마커 목사는 신자수와 명단, 그들의 교회 참가 동기 등을 구체적으로 적은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털어놨다.

중국 당국은 최근들어 가정교회의 선교에 대해 당사자를 체포 구금하는 등 강경하고 대응하고 있다.

한국 선교사 한 명이 지난 2월 산둥성 지모(卽墨)시 가정교회에서 개최된 선교대회에 참가했다가 미국인 선교사 한 명과 함께 공안에 연행됐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이춘(伊春)시에 있는 한 가정교회에는 지난 2월 공안이 침입해 쑨원셴(孫文先) 목사를 폭행했다. 쑨 목사는 이들의 구타로 심장병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졌다.

베이징(北京)에선 서우왕(守望)교회의 조선족 진톈밍(金天明) 목사가 지난 2011년 4월 가두 예배를 주도한 후 23개월째 가택에 연금돼 아직 풀려나지 않고 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중국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개신교회 신도와 가톨릭 신자에 대해 반드시 중국 기독교 삼자 애국운동위원회나 중국 천주교 애국회 소속 교회와 성당에서 예배와 미사를 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중국 관제 교회에 속한 신자는 약 1천800만 명에서 3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4천500만 명에서 6천여만 명이 가정교회로 불리는 무허가 지하교회나 지하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3월 11일 월요일

[크리스천투데이]원더걸스 민선예, 결혼 후 선교사로 제2의 인생(2013.03.12)


뉴욕교협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해 간증

▲간증 후 ‘With all I am’을 열창하는 민선예.

지난 10일(현지시각) 프라미스교회에서 열린 뉴욕교협 주관 세계선교대회에서 원더걸스 멤버인 민선예는 “인기 가수에서 이제는 선교사로서, 제2의 인생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고 간증했다.

선예는 “가수 활동을 하며 공허한 마음을,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울 수 있었다”면서 이제 선교사 남편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대한 큰 기쁨과 감사를 표했다.

선예는 “원더걸스로 활동하며 가수로 정상의 위치까지 오르고도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삶이 달라졌다”며 “나에게 주신 이 달란트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임을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모든 찬양도 예전에는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렀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만나 주신 그 감격으로 인해 더 깊어지는 것 같다”며 “주님의 그 마음을 매일매일 느끼면서, 주님 오실 그 날을 소망하는 동역자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선예는 간증 후 ‘With all I am’을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해 큰 감동을 줬다. 다음은 선예의 간증 내용.

“나는 강원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속초에서 평범한 가수를 꿈꿨던 소녀였다. 어릴 적 할머니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다녔는데, 성가가운을 입고 찬양하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고 친근하게 다가왔었다. 11살 때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됐고 12살 때 가수 지망생 시험에 응했다. 지금은 공개오디션이 활성화됐는데 그 때는 제가 응한 곳이 최초의 공개오디션이었다. 기적적으로 3차까지 합격되고 당시 박진영 PD의 회사로 들어가게 됐다. 그 때부터 실질적으로 가수가 되는 꿈의 과정을 밟게 됐고, 6년 후 대학 등록도 하기 전 이른 나이에 가수로 데뷔하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가 되기를 바라며 꿈꿨기 때문에 저는 가수가 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수가 되니 바쁜 일상 중에 꿈과 거리가 먼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감이 안 온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가 기대했던 그 감정이 아니었다. 성공해서 좋겠다며 소위 부러움을 사는 위치까지 갔었지만 제 마음은 공허했다.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하나님은 믿었지만 진정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다. 무대에 올라가서 기도해도 나를 위해 기도를 했고 실수 안 하게 해달라는 식이었다.

지속적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다가 미국으로 건너오게 됐었다. 영어도 공부하고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됐고, 내 마음이 너무도 공허해서 이것을 어떻게든 회복하기 위해 기도를 했다. 맨하탄의 한 교회에 새벽기도를 매일 나가게 하셨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도록 하셨고, 신학서적도 읽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이 뭔가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은 멋있는 분이었다. 멋있다는 말로만은 형용할 수 없는 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분이 나를 구하러 오셨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느끼게 됐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성공해서 좋은 것을 만나고 느끼고 체험해도, 예수님 만나서 이 진리를 알게 되고, 그 어떤 잘난 사람도 그 길의 끝에는 죽음이 있지만, 예수님의 구주 되심을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의 은총을 얻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에 마음이 불타게 됐다. 그 뜨거운 마음을 갖고 있을 때 아이티로 선교를 가게 됐다. 2주일 동안 기도를 했는데 기적적으로 1주일 동안 시간이 나게 됐다. 겁도 없이 치안도 좋지 않았던 아이티에 가게 됐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그곳에 갔었다.

처음에 가서 느꼈던 것은 너무도 못 살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삶이 불쌍하다는 것, 그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탕자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아픔에 대해 느끼게 됐다. 단순히 이 사람들에게 빵만 전할 것이 아니라 정말 복음을 전해야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어가는 이 곳에 복음을 속히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헌신의 마음을 더욱 강하게 하게 됐고, 나에게 주신 이 달란트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임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저의 새로운 콜링으로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완벽한 시간에 저에게 남편을 주셨다. 땅끝까지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렇게 사역을 시작하고 있다. 정말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저를 사용해 달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많은 분들의 기도로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나의 전부인 것 같다. 모든 찬양도 예전에는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렀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만나주신 그 감격으로 인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여러분도 주님의 그 마음 가지고, 그 아픈 마음을 매일매일 느끼기를 소망하면서, 같이 주님 오실 그 날을 소망하는 동역자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란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기에 넉넉히 이겨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이 강함이 되신다. 그 사실이 저에게 위로가 된다. 사회는 내가 그만큼 열심히 해야 주어지는데, 하나님의 방법은 저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써주신다면 가겠다는 그 믿음과 고백으로 갈 때 써주시는, 그 감격으로 찬양하기 원한다."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크리스천투데이]“北 지하교인들, 사역의 대상이 아닌 ‘선교자원’”(2013.02.20)


‘믿음의 세대들-북한지하교인의 후손들’ 출간한 에릭 폴리 목사 기자간담회

미국의 대북선교단체인 ‘서울USA’가 20일 서울 강남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믿음의 세대들-북한지하교인의 후손들’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에릭 폴리 목사(좌)와 그의 아내 현숙 폴리 사모(우). 폴리 목사는 “북한교회를 돕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은 탈북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강혜진 기자

이 책을 출간한 에릭 폴리(Eric Foley) 목사(서울USA 대표이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책은 북한에서 3대째 신앙해 온 배씨 가족이 어떻게 신앙의 견고한 터 위에 서서 이웃을 돕고 복음을 증거해 왔는지 생생히 들려주고 있다”며 “그들은 북한 현지 지하교회의 그루터기로서, 순교자 집안 태생이고 선조들이 이뤄낸 담대한 믿음의 상속자들”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에는 북한의 지하 교회의 운영 방식, 지하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법, 몰래 기독교를 전파하는 법, 성경공부하는 법 등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내용도 담겨 있다.

배씨 부부는 이날 영상을 통해 “기독인으로 발각되면 정치범교화소에 보내지는 북한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정치적 자유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한국교회 성도들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순교자적 신앙생활을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폴리 목사는 이 책을 출간한 이유에 대해 “한국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믿는 사람들을 훈련하고 북한 교회의 신앙적인 자부심과 유산을 되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한국교회에 북한교회의 실상을 알리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北 기독교 순교자, 무려 ‘10만여명’
북한 당국, 기독교적 제자훈련과 양육 ‘가장 위협적’ 판단

폴리 목사에 따르면, 북한 성도들은 극심한 핍박과 고통 아래서도 성실히 전도를 이어가고 있다. 대부분 북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중국을 통해서 신앙을 접한다. 이들은 중국 국경 근처에서 성경을 접한 후 북한에 들어올 때 성경이나 찬송과 함께 MP3 플레이어나 CD, USB 등에 기독교 자료들을 담아 오고, 밤이 되면 단파수신기를 통해 기독교 방송을 청취하기도 한다.

폴리 목사는 “현재 북한 정부는 정치와 인권이 아닌 복음과 기독교적 메시지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우리가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에는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수 년이 지나면서 이 사역이 양육과 전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복음을 기초로 한 양육과 전도만이 북한 사람들을 변화시켜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폴리 목사는 또한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국경은 사실상 영적인 전쟁지역으로, 북한 공산당원들이 기독교 선교사들을 막기 위해 권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북한 지하교회 교인들은 성경을 깨닫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어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복음이 작은 부분이라해도 기꺼이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놓는다”고 증거했다. 서울USA에서 발행하는 ‘북한지하교회의 역사’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금까지 순교한 북한 그리스도인들의 수는 약 10만여명에 이른다.

그러면서 “북한교회를 돕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은 탈북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폴리 목사는 “보통 지하교회 하면 ‘기도해줘야 할 대상’으로 여길 때가 많고 지금도 북한의 지하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무척 많다. 그러나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은 오히려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탈북자들, 지하교회 성도들은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선교자원으로 훈련시켜야 할 대상이다. 북한 사역의 지도자는 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금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탈북자의 80% 이상이 북한의 친척,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으며 이들이 북한 사역에 가장 효과적으로 쓰임받을 수 있다”며 “미래의 통일을 위해서도, 지금 당장 탈북자들을 훈련하고 사역에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릭 폴리 목사는

아내 폴리 현숙과 함께 서울USA 공동 설립자이자 CEO로서 콜로라도 스프링스의와 한국의 DOTW(Doers of The Word, 말씀을 행하는 자들)를 섬기고 있으며, 한국에서 북미 복음교회교단(The Evangelical Church OF North America)을 시작한 안수목사다. 지난 20년 동안 제자훈련에 입각한 자원 봉사와 후원과 관련해 1,300개 이상의 교회와 비영리 기독교 단체를 훈련해 왔다. 현재 미국을 포함한 서양 국가들을 비롯한 국제적 컨퍼런스에서 북한과 북한 지하교인들에 대한 강의를 하고, 북한 지하교인들의 삶을 통해 서양 기독교인들의 믿음에 도전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3년 2월 12일 화요일

[크리스천투데이]고직한 선교사, 오정현 목사의 “사임 압박” 주장에 반박(2013.02.12)


“논문 표절은 치명적이기에 차라리 건축 이슈가 낫겠다고 한 것”

▲고직한 선교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논문 표절 논란에 휘말린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가 10일 주일예배에서 일종의 ‘사임 압박’을 받았다고 한 것에 대해, 반론이 제기됐다.
 
오 목사는 주일예배 도중 “제게 직접 찾아와 이 문제를 제기한 분이 ‘건축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것에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하면 논문 문제는 덮겠다’고 하면서 ‘48시간 내에 사임하지 않으면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누군가 논문을 구실 삼아 자신을 협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직한 선교사는 11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 같은 오 목사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고 선교사는 이번 논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블로그에 자주 게재하며 오 목사를 비판해왔던 인물이다.

고 선교사는 “○○○ 장로가 건축 문제를 사임의 이유로 (오 목사에게) 언급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런데 그것은 철저히 오 목사를 사랑하고 언젠가 그의 재기 여지를 남겨 놓기 위한 하나의 대안적 이유로 제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논문 표절로 인해 사임한다면 오 목사에게 치명적 오점을 남겨 자칫 재기가 불가능할 수 있으니 차라리 건축으로 인한 사임이 낫겠다고, 당시 이 문제와 관련된 사람들이 판단했다는 게 고 선교사의 설명이다.

그는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나온 안이 건축 이슈였다”며 “여기에는 철저히 오 목사와 (사랑의)교회, 한국교회가 교회파괴적인 세력들에 의해 악용당할 빌미를 제공하지 말자는 동기가 컸던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 오 목사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사임하지 않으면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했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조사보고서를 언론이 아니라 당회에 공개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고 해명했다.

한편 고 선교사는 “물론 논문 이슈를 상대적으로 최소화시키려 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애당초 논문 이슈를 사회에 공개하고 폭로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덮고자 했다. 그것을 세상에 까발려서 오 목사를 망신 주고 쫓아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논문 문제를) 세상에 알릴 의도가 없었다. 당회 안에서만 조용히 그것을 다루고자 했다”고 당시 정황을 전했다.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크리스천투데이]강추위로 동사(凍死)자 잇따르는 네팔… 도움 절실(2013.01.17)


현지 선교사들, 19일까지 모포 보내기 운동 전개

▲네팔 일간신문 ‘칸티풀’에 나온 동사자 소식. 군인들이 땔감 장작을 보내 동사를 막으려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장 선교사 제공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의 나라 네팔에서 극심한 한파로 동사자(凍死)들이 잇따라 발생, 현지 선교사들이 한국교회를 향해 ‘모포 보내기 운동’ 동참을 호소하고 나섰다.
 
현지 장성권 선교사 부부는 15일 “네팔은 현지 전례없는 한파로 불가촉 천민촌을 중심으로 동사자가 계속 발생하는 등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에 수도인 카트만두 한인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모포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니, 뜻 있는 성도님들의 동참을 바란다”고 밝혔다.

현지에서는 동사자가 늘어나면서, 군인들이 땔감 장작을 보내서라도 이를 막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실정이다. 네팔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높은 산악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겨울에도 기온이 0도 이하로 내려간 경우가 드물어, 주민들의 추위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 선교사는 “이같은 소식을 접한 한국 선교사님들이 지난 주 현장에 급파됐고, 모포를 더 보내고자 모포 보내기 운동을 전개 중”이라며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과 필리핀, 미국과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성금이 잇따라 답지하고 있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모포 보내기 운동은 오는 19일까지 진행되며, 주일인 20일 카트만두 한인교회 성금까지 합해 현장에 전달할 예정이다. 현지 모포 1장 값은 450루피(6700원) 정도이며, 선교사들은 19일까지 모포 100장을 목표로 모금운동 중이다.

참여를 원하는 성도나 교회는 계좌(국민은행 011-21-0493-198 예금주 장성권)로 송금하면 된다. 장 선교사는 “송금해 주시면 네팔에서 돈을 찾아 모포를 사서 후원자 이름으로 현지에 보내드릴 것”이라고 전했다.

[크리스천투데이]“선교의 완성은 ‘철수’… 출구전략 논의해야 할 때”(2013.01.17)


선교한국 파트너스 한철호 상임위원장 인터뷰

▲선교한국 파트너스 한철호 상임위원장
한국교회는 지난 130여년 동안 미전도 국가에서 기독교 인구 대비 세계 최대 해외 선교국으로 성장했다. 특히 선교사 파송은 최근 30년간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면서 2012년 현재 선교사수는 약 25,000명에 이른다.
 
그러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선교 환경이 급변하고 있으며, 이제는 양적인 성장을 넘어 질적인 성숙으로 나가가야 할 때다.

한철호 선교한국 파트너스 상임위원장은 “복음은  선포돼야 할 뿐 아니라 보여야 하는 것”이라면서 “이제 한국교회는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것보다 어떤 선교사를 보낼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철호 상임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선교한국의 지난해 활동에 대해 평가해 주신다면.

“지금까지 선교한국이라는 이벤트를 중심으로 사람들에게 도전했다. 그러나 선교는 이벤트가 아닌 여행이다. 1차적인 헌신자들이 좋은 선교사로 자라는 과정을 꾸준히 돕고, 이를 통해 준비된 선교자원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선교한국이 ‘레벨 원’이라면 선교한국 파트너스는 그 다음 단계인 ‘레벨 투’라고 할 수 있다. 2년마다 개최되는 선교한국 대회와 기도합주회 등을 통해서 선교자원을 동원하고, 선교에 헌신된 지체들을 양육·훈련하며, 네트워킹, 정보제공 등의 역할을 선교한국 파트너스에서 하고 있다. 선교에 병목 현상이 있는데 전략적인 참여를 위한 가이드와 선교단체들의 후속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양쪽의 사역이 다 중요하다.”

-청년들과 주로 사역을 하고 계신데, 그 과정에서 느끼시는 점이 있다면. 또 오늘날 청년들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말씀해 달라.

“우선 헌신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보면서 좀 더 창의적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요즘 대학교에 들어가면, 청년들이 자유롭게 무엇을 해볼 수 있는 길이 없다. 취업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억눌려 있거나 자기 연민에 많이 빠져 있다. 이를 털어내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그림을 보면서 갈 수 있도록,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 선교에 대한 관점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양적 선교’에서 ‘질적 선교’로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교가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기독교국가에서 비기독교국가로 진행됐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화의 일환으로 선교의 환경 뿐 아니라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 나라에도 현재 근로자들이 많이 와 있다. ‘모든 곳에서 모든 곳(from everywhere to everywhere)으로’ 가는 선교로 바뀐 것이다. 또한 서구권 중심의 선교에서 비서구권이 참여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선교의 내용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결과 선교의 전략 뿐 아니라 선교사의 정체성 자체도 새롭게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선교사의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지난 2012년 방콕포럼에서 주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이제 한국 선교도 출구전략을 논의할 시점이 되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교는 선교지에 우리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회를 세우도록 돕는 일이다. 따라서 선교의 완성은 철수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먼저 철수에 대한 정의를 세밀하게 논의해야 한다. 또한 ‘교회란 무엇인가?’, ‘선교사의 역할이 복음을 나눠주는 것인가, 복음을 심는 것인가?’ 등의 개념이 논의되어야 한다. 열매도 없는 상황에서 출구 전략을 처음부터 말하는 것이 너무 이상적이라는 반론도 있으나, 올바른 철수 전략을 위해서 개척단계부터 철수 단계까지 고려해야 한다. 또한 선교사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라는 인식, 킹덤 파트너십(Kingdom Partnership)의 관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사는 주연이 아니라 현지 교회가 불꽃처럼 타오르도록 옆에서 부채질하는 조연임을 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이슬람은 공동체적으로 빠르게 확장되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기독교의 올바른 대응(선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이슬람이 신학적 기반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커지고 있는 이유는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하나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슬람은 ‘한 손에는 쿠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파괴적인 종교이다. 그러나 하나됨과 공동체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안에서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낀다. 반면, 기독교는 굉장히 개인주의적이고, 사변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이기도 하다. 선교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도 있지만,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젝트 사역 등이 많은데, 예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제자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과 제자화에 집중해서 제자들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질적인 향상을 위해서는 훈련과 보임이 필요하다. 복음이 선포되는 것 뿐 아니라 보여야 하고, 삶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훈련이 아닌 그 삶을 살아내는 훈련이 일어나야 준비된 선교 자원들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공동체가 바뀌려면 인도자가 바뀌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목회자를 위한 Perspectives 과정 역시 진행하고 있다.”

한편 선교한국은 지난 1988년 제1회 선교한국 대회를 기점으로, 1989년 조직위원회를 결성, 1988년을 기점으로 매2년마다 청년대학생 선교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선교한국 대회, 선교학교 및 퍼스펙티브스 과정의 선교훈련, 기도합주회 운동, 네트워크 등을 가동하며 2010년까지 사역을 진행해왔다.

2009년 정기총회에서 선교한국을 두 개의 조직으로 분화하기로 결정한 후 2010년 10월 1일 선교한국 대회 조직위원회와 파트너스  위원회로 분할해 선교한국 대회를 중심으로 한 사역과 그 외 사역으로 나눠서 감당하고 있다. 현재 11개 학생선교단체와 25개 해외파송선교단체, 3개의 지역교회가 회원으로 있는 조직위원회가 가동되어 활동 중이다.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크리스천투데이]해외 선교사 파송 지속 증가… ‘쏠림 현상’은 여전(2013.01.15)


KWMA 발표 2012년 12월말 통계 조사 결과 분석

21세기 들어 외부의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사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선교사 재배치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임이 드러났다. 

KWMA 연구개발실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2년 12월말 통계 조사 결과 한국교회의 해외 선교사 파송은 169개국 24,742명으로 지난 2011년에 비해 1,411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KMWA 회원 교단과 선교단체를 포함하고, 비회원까지 가급적 폭넓게 협력을 구해 응답한 단체를 중심으로 합산한 결과다.

이 가운데 교단 선교부 소속은 전체의 43%, 선교단체 소속은 57%로, 선교단체 소속 선교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단 선교부 가운데 파송수 1위인 GMS의 선교사 파송수는 총 2,263명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2011년(2,129명)에 비해 134명 늘어난 것이다. 다음은 통합측 선교부로 2011년 1,237명에서 2012년 1,309명으로 72명 늘었고, 감리회선교국은 2011년(1,184명)보다 118명 늘어난 1,302명을 기록했다.

선교단체들의 선교사 파송수는 한국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 인터콥, 국제대학선교협의회 순으로 이어졌다. 인터콥선교회가 2011년 677명에서 2012년 762명으로 85명 증가했으며, 바울선교회는 2011년 323명에서 2012년 398명으로 75명이 증가했다. 두란노해외선교회는 356명에서 380명으로 24명이 늘었다.

KWMA 타겟 2030비전으로 본 개척지수별 선교사 현황을 보면 상당수의 선교사가 전방개척(F) 지역보다 일반선교(G) 지역인 G2, G1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어, 보다 더 전방개척선교가 강조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10대 파송국가 현황. ⓒ KWMA 제공

가장 많이 활동하는 선교지의 경우, 동북아 X국, 미국, 필리핀, 일본, 인도, 태국, 러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독일 순이며 169개국 활동 국가 중 상위 10개 국가에 전체 선교사의 50% 이상이 활동 중이어서, 선교사 쏠림 현상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에도 전체 선교사의 52%가 10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2009년의 상위 10개국은 AX국 (3,688명), 북미(1,718명), 일본(1,376명), 필리핀(1,285명), 인도(728명), 태국(622명), 러시아(612명), 인도네시아(597명), 독일(526명), 터키(482명)이었다. 이 가운데 북미와 독일, 그리고 필리핀을 뺀 7개국이 전방개척지역이다.

2012년 전체선교사 25,665명 가운데 전방개척지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는 14,995명으로, 이 가운데 상위 7개 국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가 59.6%로 나타났다.

한국 교사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지역은 아시아 지역으로 그 가운데서도 동북아시아(6,167명), 동남아시아(4,641명)에 1만명 이상이 사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수는 전체 선교사 수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다. 세번째는 북미 지역이며 네번째는 한국 본부였다. 한국 본부사역에는 선교행정 및 동원 선교사 , 비거주 순회선교사들도 포함됐다

한국 선교사들의 주요 사역은 지난해와 동일하게 ▶교회 개척 ▶제자 훈련 ▶캠퍼스·교육 사역 순으로 나타났다.

KMWA는 한국 선교가 지속적으로 풀어 나가야 할 과제로 ▶전방개척 지역으로의 파송 확대 ▶정확한 수치 파악을 위한 노력 ▶선교현지에서 파악되는 선교사 수 통계 등을 들었다.

KWMA는 “선교사 파송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전방개척지역으로의 파송은 앞으로 한국 선교계가 풀어가야 할 과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사설] 북한은 기독교 연구에 힘쓰는 중국을 보라(2013.01.10)

공산권 국가에 성경 보내기 운동을 펴고 있는 국제 선교단체 ‘오픈도어스’가 최근 발표한 ‘월드워치 리스트’에서 북한은 올해도 기독교 박해국 1위를 차지했다. 이 단체가 종교 박해국 리스트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 11년째 지속된 현상이다.

오픈도어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구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 가장 힘든 나라다. 기독교인들은 적대시되며 체포, 구금, 고문 심지어 공개 처형의 대상이 되고 있다. 15호 정치범 수용소에는 6000명에 달하는 기독교인이 구금돼 있다. 오픈도어스는 이런 억압에도 불구하고 40만명으로 추산되는 기독교인들이 지하교회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면서 김정은 체제에서 진정성 있는 변화가 나오기를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의 종교 탄압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미 국무부가 2001년부터 매년 지정해 온 종교자유특별우려국(CPCs) 리스트에도 북한은 단골로 올라 있다. 1998년 제정된 국제종교자유법에 따라 국무부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종교자유 연례 보고서도 지난해 북한의 종교 상황을 ‘참담하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북한인권정보센터가 발간한 2011년 북한 인권백서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종교사범을 포함한 정치범 292명이 공개적으로, 106명은 비공개로 처형당했다.

북한의 종교탄압 대상은 주민들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서 탈북자 지원 활동을 펴던 김동식 목사는 2000년 북한 기관원들에 의해 납북된 뒤 숨졌다. 2011년 8월 중국 단둥에서 탈북자 선교활동을 하다 의문사한 김창환 선교사는 최근 간첩 사건 관련 국내 재판 과정에서 북한 공작원이 사용하는 독극물 중독으로 숨진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양심과 신앙의 자유는 보편적 인권으로, 체제 여부를 떠나 보장돼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종교를 이유로 국가권력이 잔혹한 고문이나 인명 살상, 무자비한 기본권 유린 행위를 일삼는다면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게 당연하다. 북한 스스로도 1998년 헌법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중국 당국은 최근 기독교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과 정치·경제 상황이 긴밀하게 연계돼 있는 우리나라도 인류 보편의 가치가 훼손되는 북한 상황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2005년 국회에 제출된 북한인권법은 9년째 논란만 거듭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와 남북 교류를 대척점에 놓고 딜레마에만 빠져 있는 것은 북한의 의도에 끌려가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지난 1일에는 탈북아동 복지 법안까지 통과시킨 미국 등 국제사회의 노력에 발맞춰 우리 정부나 인권단체도 북한 인권을 개선시킬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2013년 1월 5일 토요일

[Why] [채성진 기자의 探人探事]온국민 감격에 떨게한 탁구 여왕 양영자, 89년 돌연 사라진 뒤(2013.01.05)


돌아온 녹색 테이블 여왕… "만리장성 깰 공격형 스타 나와야 탁구가 삽니다"

 80년대 한국 탁구의 여왕, 양영자가 돌아왔다. 88서울올림픽 여자 복식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국가대표 후보 선수단 감독이 됐다. 그는“결혼, 해외 선교 활동으로 라켓을 놓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녹색 테이블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한순간도 탁구 잊은 적 없다1989년 은퇴, 1992년 결혼… 1997년부터 15년간 해외 선교 
"출국할때 탁구대·라켓 갖고 가 현지 아이들·클럽팀 지도했죠"

中제자, 한국으로 귀화… 네이멍구서 만난 中2 이은혜, 승부욕 남다르고 가장 성실…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찾아와 한국에 데려가 키워달라 부탁
지금은 국내 실업팀서 뛰어요

후배 현정화는… 다들 라이벌이라고 부추겼지만 우린 환상의 복식 파트너였죠
고 3·중1로 처음 만났을 때 5점 잡아주고했는데 제가 졌죠

'지도자 양영자' 스타일은… 
요즘 탁구는 백핸드·포핸드 둘 다 고루 잘하길 원하지만 
저는 상대가 공포감 느낄정도의 폭발적 포핸드를 강조합니다

칼바람 한파가 전국을 강타한 새해 첫날, 대구체육관은 제66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초·중·고교와 대학, 일반팀 최정상급 선수 300여명이 한국 탁구의 왕중왕을 가리는 무대.
남녀 단식과 복식, 혼합 복식 경기가 동시에 열렸다. 선수들의 스매시 동작과 풋워크를 바라보는 양영자(49)의 눈길이 매서웠다. 초등학생 선수가 고교생 언니를 상대로 야무진 공격을 날리자 "예스!"라는 짧은 탄성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양영자는 80년대 한국 탁구의 여왕이었다. 1988년 9월 30일 서울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현정화와 짝을 이뤄 중국의 자오즈민·첸징 조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만리장성이 무너지던 그 순간, 온 국민이 벅찬 감격에 몸을 떨었다.
양영자는 이듬해 돌연 은퇴했다. 잠시 트레이너로 활동했지만 곧 결혼하며 탁구계와 멀어졌다. 남편과 해외 선교 활동에 나서 15년을 보냈다. 강력한 드라이브를 상대에게 퍼붓던 파워 플레이어 양영자는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작년 초 귀국한 양영자는 7월 국가대표 후보 선수단 감독으로 돌아왔다. 그는 "라켓을 놓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녹색 테이블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팽팽한 승부의 긴장감이 그리웠다는 양영자.
선수 때와 다름없는 짧은 커트 머리, 하얀 탁구공의 궤적을 추적하는 날 선 눈매에서 승부사의 본능이 느껴졌다.

"공격형 스타가 나와야 탁구가 뜬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보입니까.

"한국 여자 탁구가 많이 약해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남자 선수 중에는 키워볼 재목감이 있는 것 같은데, 여자 선수들은 좀 부족해요."

―2012 런던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지요.

"한국 여자 탁구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딴 건 88올림픽 이후 처음이었어요. 올 것이 온 것이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위기를 계속 느껴온 게 사실이에요.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도 메달을 땄지만 자신 있게 이긴 시합은 아니었거든요. 이런 분위기라면 한국 여자 탁구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열심히 준비해서 2020년 이후를 준비해야 할 거예요."

―탁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탁구장도 많이 사라졌고.

"꼭 그런 건 아닌데…. 생활체육 탁구 교실이 꽤 늘어났으니까. 어른들이 많이 하다 보면 자녀에게 권할 수도 있겠죠. 문제는 스타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 세대는 사라예보 신화를 창조한 이에리사와 정현숙 선배를 보고 자랐어요. 근데 요즘은 그런 영웅이 없어요. 골프에는 '박세리 키즈'가 있지요. 대형 스타 선수가 나와야 후배들에게 자극이 되고 롤 모델도 됩니다."

―'탁구 얼짱' 서효원 선수의 인기가 높은데요.

"기량은 괜찮지만 수비형 스타일이라는 게 좀 그래요. 수비 선수라도 공격력을 갖춰야 1위를 할 수 있어요. 중국의 통링 선수가 그랬듯이. 우리 선수들은 왜 공격 안 하고 수비만 하다 지냐고 말이 많잖아요. 보는 사람도 답답하고. 시원하게 후려치는 화끈한 공격형 선수가 있어야 팬도 신나고, 탁구에 인생을 걸겠다는 꿈나무도 나오지 않겠어요?"

―청소년 국가대표 후보 선수단 감독은 어떤 자리인가요.

"대한체육회가 지원하는 후보 선수단 전임 지도자예요. 임기는 4년. 청소년 유망주를 키워 대표 선수급으로 키우는 역할이죠. 전 고등부 담당입니다. 남녀 15명씩 30명인데 재능이 보이면 초·중학생이라도 데려올 수 있어요. 동계·하계훈련 뛰고 한·일 교류전과 국제대회에도 나가죠. 훈련이 끝난 뒤에는 전국 각지의 학교에 찾아가 선수들이 잘 성장하고 있는지 꾸준히 체크합니다. 그러면서 숨겨진 진주를 캐내기도 하죠."

―협회에서 감독직을 요청했나요.

"아뇨. 제가 신청했어요. 정말 해 보고 싶었거든요. 전임 고수배 감독이 인삼공사 팀으로 가시면서 자리가 났어요. 일단 남은 임기가 2월 말까지예요. 저는 계속 하고 싶은데 체육회가 허락해야겠죠. 개인적으로는 더 어린 유소년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싶어요. 기초부터 차근차근."

―좀 더 영향력 있는 자리도 있었을 텐데요.

"아유, 무슨 그런 말씀을. 은퇴한 뒤 늘 청소년 선수들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지금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연말까지 전남 진도에서 열린 전국남녀중고대회를 지켜봤고 끝나자마자 대구로 올라온 거예요. 이 대회가 끝나면 새롭게 선수 선발해서 13일부터 훈련 들어갑니다."

해외 선교 15년… 탁구를 잊은 적 없다

전라도 처녀 양영자는 경상도 총각 이영철(52)과 1992년 결혼했다. 은퇴한 지 3년 만이었다. 같은 교회 청년부에 다니며 얼굴만 알던 두 사람은 출장과 휴가차 찾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운명처럼 만났다. 연합통신 국제부 기자였지만 선교사를 꿈꿨던 이영철, 어머니를 간암으로 잃고 우울증을 앓던 양영자. 둘은 신앙으로 하나가 됐다. 남편은 어려운 결심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고, 아내는 흔쾌히 그 뜻을 따랐다. 신학 공부와 선교사 준비…. 부부는 호주 어학연수 중 알게 된 WEC국제선교회를 통해 1997년 몽골로 떠났다.

―왜 몽골이었습니까.

"남편은 처음에 쿠바나 라오스를 생각했대요. 몽골에 다녀오더니 생각을 바꿨어요. 마음이 뜨거워지는 곳을 찾았다며. 울란바토르에서 2년 정도 선교 활동을 하며 현지 언어와 문화를 공부했어요. 그러다 '셍샨드'라는 유목민 도시로 떠났죠.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450㎞ 떨어진 동고비 사막 한가운데. 기차로 가면 10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인구가 1만2000명쯤 됐는데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었죠."

―고생이 많았겠어요.

"창문을 두세 겹으로 해도 집 안에 모래가 수북이 쌓여요. 바람이 불면 입 안에서 모래가 서걱서걱하고. 여름이면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엔 영하 45도까지 뚝 떨어져요. 물이 귀해 여름철에도 물차에서 양동이에 받아 써야 했죠. 일주일 넘도록 머리를 못 감은 날도 많았는데, '왜 이렇게 사나' 생각은 안 들었어요. 목표가 뚜렷했으니까."

―음식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던데.

"제가 야채와 생선을 좋아해요. 소고기,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닭고기도 안 먹어요. 선수 시절 고기를 먹으면 오히려 힘이 빠지는 체질이었으니까. 근데 몽골은 육식 나라잖아요. 설 명절에 초대를 받아서 가면 양고기에서 허연 기름 덩어리를 쓰윽 베어서 건네요. 그게 손님에 대한 배려거든요. 음식 문제 때문인지 안면 마비가 와서 애를 먹었죠."

―탁구와 자연히 멀어졌겠군요.

"제가 어떻게 탁구를 잊을 수 있겠어요. 출국할 때 탁구대와 라켓, 탁구공을 몇 개씩 가지고 나갔어요. 셍샨드 아이들에게 똑딱똑딱 가르쳤죠. 그게 참 보람 있더라고요. 거기 사람들은 탁구를 '오떰 범버크'라 불러요. 탁구공이 작아서 그런가, '별 같은 공'이란 뜻이래요. 나중에는 클럽팀을 돌아다니면서 기술 지도를 하고 그랬죠."

"쉼 없이 달리는 토끼는 잡을 수 없다"

2004년 양영자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의 후허하오터(呼和浩特)로 떠났다. 해발 1000m의 고원도시. 그곳에서 중국 탁구를 다시 만났다. 선수 시절 양영자는 '중국 킬러'로 통했다. 실업 1년차 막내로 참가한 1983년 일본 도쿄 세계탁구선수권에서 그는 16강전부터 겡리유안, 통링, 황준취인 등을 연파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차오옌화에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세계선수권 개인 단식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사를 새로 썼다.

―중국에서도 탁구를 지도했습니까.

"네이멍구 대표팀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쳤어요. 기술 고문쯤 됐는데, 중국 국내 대회를 여러 차례 지켜봤어요.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전국 체전은 규모가 어마어마해요. 초대형 경기장에 출전하는 선수와 임원, 관중이 바글바글했죠. 프로 리그도 대단해요. 수퍼 1부 아래 층층이 리그가 있는데, 하위 리그에서 1등을 해야 상위 리그에 올라가는 구조예요. 상금도 엄청나게 많고. 중국 탁구의 힘이 여기서 나오는구나 깨달았죠. 이런 중국 선수들을 제가 어떻게 이겼나 싶었어요."

―중국 탁구를 처음 접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 유고 노비사드 세계선수권에 후보 선수로 따라갔어요. 그때 벤치에서 중국 선수들을 처음 봤죠. 그땐 중공이라 그랬어요. 공포의 스카이 서브, 그걸 처음 본 거예요. 한국에 돌아와서 혼자 연습했죠. 중국 것을 모방해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나중에 제가 한국에서 처음 스카이 서브를 한 선수라고 하더라고요."
 1986년 9월 25일 서울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단체전에 출전한 양영자(오른쪽)와 현정화. 양영자의 파워 드라이브, 현정화의 송곳 같은 속공을 앞세운 한국은 2시간 55분에 걸친 격전 끝에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선일보 DB
―특히 기억에 남는 선수는.

"1983년 도쿄 세계선수권에서 붙은 차오옌화. 제 탁구의 모델이자 영웅이었어요. 선배들도 두려워했는데, 드라이브 속공 스타일로 저와 비슷했어요. 참 매력적인 탁구를 했어요. 재능도 타고났고. 운이 좋으면 이길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결국 졌습니다. 그래도 벽이란 느낌은 없었어요. 언젠간 넘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노력이 천재를 이길 수 있습니까.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선수라도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근데 요즘은 재능있는 선수들이 노력도 엄청나게 해요. 토끼가 잠을 자지 않고 쉼 없이 달리는 셈이죠. 그런 토끼는 누구도 이길 수가 없어요."

―한국으로 귀화시킨 중국 선수가 있다던데.

"네이멍구 후허하오터에서 만난 이은혜 선수예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죠. 중국 이름은 자오칭. 한국에 와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대한항공에서 뛰어요. 오늘 단식과 혼합 복식에 나갑니다. 실업팀 유니폼 입고 처음 뛰는 경기라 긴장하던데…."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당시 30여명 정도 가르쳤는데, 은혜는 제일 성실하고 승부욕이 남달랐어요. 목표도 확실했고. 특히 백핸드가 좋아요. 빠르고 파워도 있고. 어느 날 은혜 아버지가 저를 찾아와 그래요. 여기보다 기회가 더 많은 한국으로 데리고 가서 잘 키워 달라고. 제 수양딸로 삼아서라도 데려오려고 했죠. 근데 잘 아는 다른 목사님이 입양을 해 줬어요. 은혜 친구인 이시은 선수는 지금 귀화 수속을 밟고 있습니다."

"정화에게 라이벌 의식을 더 느꼈어야…"

현역 시절 양영자는 '독종'으로 통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4강전에서 기적 같은 역전극을 가능케 했다. 세트 스코어 2―2, 11―18로 7점을 뒤지던 상황. 모두가 "경기는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양영자는 한 점 한 점 따라붙어 결국 21―18로 경기를 뒤집었다. 가슴 떨리는 한국 탁구 사상 최고의 역전 드라마였다. 그는 지금도 후배 선수들에게 정신력을 강조한다고 했다.

―기술이 중요한 시대 아닌가요.

"반드시 이기겠다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요. 스코어가 좀 벌어졌다고 '나는 졌구나' 하면서 대충 치는 요즘 선수들. 저는 선수 자격이 없다고 봐요. 체력·기술·정신력 세 가지 중에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이 정신력이에요."

―원래 승부욕이 강했습니까.

"이리 남성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탁구 라켓을 잡았어요. 이종학 코치님은 시합 때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라도 걸었어요. 타이틀이 걸리면 더 재미있고 신나고 집중력도 생겼죠. 전 내기에 강했거든요. 딴 돈으로 친구들과 뭘 사 먹기도 했죠. 이일여중 2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처음 정상에 올랐고, 여고 2학년 때 서울국제오픈대회에서 단·복식과 단체전 3관왕을 했습니다.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스타일이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팔꿈치 부상으로 진통제를 달고 살았죠. 기권하면 했지 일단 출전해서는 대충 뛴 적이 없어요. 사실 기권한 적도 없었지만."

―지도자로서 양영자 스타일은 어떤 것인가요.

"요즘 탁구는 백핸드, 포핸드를 50대50으로 골고루 잘하기를 원하지만 저는 좀 달라요. 강력한 포핸드를 강조합니다. 상대가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폭발적인 포핸드. 선수들이 그런 폭발성을 갖도록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요."

―현정화 선수는 파트너입니까 라이벌입니까.

"라이벌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우린 환상의 복식 파트너였죠. 라이벌은 선배나 동료였지 후배나 동생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대표 선수이던 고 3, 정화가 중학교 1학년 때 부산 계성여상 체육관에서 둘이 처음 만났어요. 5점 잡아주고 시합했는데 제가 졌어요. 나중에 탁구 최강전에 나갈 때마다 주변에서 라이벌이라고 부추기고 그랬지만 그때도 별로…. 지금 생각하면 제가 좀 더 라이벌 의식을 느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은퇴 후 지도자로 화려한 경력을 쌓고 탁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현정화 감독이 부럽지는 않습니까.

"축하할 일이죠. 본인이 이룬 것을 찾아나간 거예요. 그게 당연한 것이고. 정화의 근성은 저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죠. 제가 선수 시절 아파서 훈련을 많이 못 해 아쉬운 점은 많지만…. 서로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다른 것 아닐까요. 자기의 목표와 비전에 맞게 사는 것!"

―힘든 순간은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됐을 때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勇士)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城)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리라'는 말씀을 떠올렸고, 마음이 약해질 때는 '약한 자를 택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든다'는 구절을 마음에 새겼죠."

―좋은 엄마, 좋은 아내였습니까.

"큰딸 반재(20)와 작은딸 윤재(19)는 지금 미국 캘리포니아의 바이올라 대학에서 다문화 공부를 하고 있어요. 몽골에 데려간 게 여섯 살, 다섯 살 때인데 얘들이 지금도 거기서 모래 장난하던 걸 기억해요. 즐거운 추억이었다면서. 중 1때부터는 대전 국제학교에서 기숙사 생활하며 스스로 컸죠. 든든하게 곁을 지켜 준 남편도 고마워요. 지난 10년 동안 몽골인들을 위해 현지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대회 첫날 경기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단식 경기를 마친 은혜가 관중석의 양영자를 찾아왔다. 아쉬움에 고개를 떨군 제자의 손을 꼭 잡고 양영자가 말했다.

"괜찮아. 잘했어. 너도 연습해서 더 많이 발전하면 돼. 힘내자. 할 수 있지?" 은혜가 환하게 웃었다.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크리스천투데이]中 내에서 북한주민 돕는 이들, 90%가 개신교 선교사(2012.12.07)


전문가들, 재발 방지 위한 기도와 협력 요청

중국에서 북한 주민과 탈북자를 위해 헌신하던 김창환 선교사의 사인이 독극물로 밝혀지면서, 북한인권 및 선교단체들은 재발 방지를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에 납치됐던 김동식·안승운 목사의 석방운동을 벌였던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서경석 목사는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할 게 아니라 그 사건을 부각시키고, 진상을 규명하고, 그 분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며 “김창환 선교사님은 순교한 셈인데, 한국교회가 그 분을 잊지 말고 반드시 기념하면서 그 분의 순교가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목사와 함께 목회자들의 석방운동에 앞장섰던 기독교사회책임 김규호 사무총장은 “故 김동식 목사님을 비롯해 북한의 이러한 테러 행위가 한두 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희들은 진작부터 김창환 선교사님의 사인을 북한 공작원에 의한 독살로 확신했다”며 “체제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직자를 살해하는 이러한 북한의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고 규탄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북한정의연대 정베드로 대표는 “중국 당국이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기는 커녕 북한과의 관계만 중시하다 보니 선교사들을 체포하고 함정 수사를 묵인하는 야만적 행위를 일삼는 것이 문제”라며 “이 때문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나 목회자, 평신도들이 한국으로 추방되거나 활동이 많이 축소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정 목사는 “중국 정부가 북한 보위부와 공작원들을 묵인하고 방조한 결과 대한민국 선교사들에게 이러한 피해가 오고 있다”며 “비인도적인 중국 당국의 처사를 국제사회가 함께 규탄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쉬운 점은 유족들이 서둘러 화장을 결정한 점”이라며 “외교통상부의 압력을 받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중국 내 다른 선교사들이 추가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사인을 밝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했다.

손과마음선교회 김창범 사무총장은 중국 내 북한주민 돕기와 선교활동에 대해 설명했다. 김창범 목사는 “사실 교회나 선교기관에서 독자적으로 사역하다 보니, 연대해서 정보를 나누거나 힘을 합쳐는 일이 드문 등 각개전투식으로 선교하고 있다”며 “어림잡아 200-300명의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애를 쓰고 계시는데, 이들의 열악한 현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목사는 “더구나 탈북자 돕기나 북한 선교 등은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파악이 더 힘들지만, 북한 동포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개신교 사역자들이 평신도이든 목회자이든 헌신적으로 이 일을 감당하고 있음을 한국교회 성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한다”며 “이렇게 북한을 돕는 이들은 어느 종교인들보다 많고, 사실상 90% 가까이가 개신교 선교사들이 땀과 눈물을 흘려 헌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분들은 대개 중국에 나와있는 탈북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시고, 중국 내 북한 꽃제비나 2세 등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을 많이 하고 계신다”며 “그러나 이 분들의 활동은 사실상 중국 공안 등 정보라인에 의해 다 파악되고 있어, 상당히 위험하고 힘들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김창범 목사는 “한국교회는 남한 출신보다는 탈북자 출신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가 사역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더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같은 대한민국 국민 신분이기 때문에 관계가 없고, 보통 탈북자들이 더 열의가 뜨거울 뿐더러 그들의 친인척들이 상당수 중국에 나와있어 유리하다”고 제안했다.

故 김창환 선교사는 지난해 8월 21일 오후 중국 요녕성(랴오닝성) 단둥 시내 백화점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순교했다. 김 선교사의 죽음은 의문사로 남아있었으나, 최근 정보 당국이 그의 사인(死因)을 독극물 브롬화스티그민에 의한 심장마비라고 통보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당시 몇 시간 만에 온 몸에 퍼렇게 멍이 드는 등 독침으로 찌른 정황이 역력했다.

개신대학원대학교와 한세대 신대원에서 공부한 김창환 선교사는 지난 1992년 2월부터 부인과 함께 중국 단둥에서 북한 선교활동을 해 왔다. 김 선교사는 그곳에서 탈북자와 북한 어린이들을 도왔고, 김정일 비판 문건과 성경 등을 북한에 밀반입하는 등 북한 민주화를 위해서도 활동했다.

김 선교사의 부인은 “남편은 평소 북한 사투리를 익히는 등 어떻게 하면 북한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 늘 연구하던 사람이었고, 중국 공안의 감시대상 리스트 1순위에 오른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며 “그는 ‘북한 주민과 선교를 위해 일생을 건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사설] 북한의 선교사 독살은 명백한 국제 테러다(2012.12.07)

지난해 8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한 백화점 앞에서 숨진 김창환 선교사가 독극물로 암살된 사실이 법원 기록을 통해 공식 확인됐다. 김 선교사는 당시 택시를 기다리다 입에 거품을 물며 갑자기 쓰러졌고, 몸에서 퍼런 멍이 발견되는 등 독살의 정황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 공안이 주도한 1차 부검에서 독극물이 발견되지 않아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 잠입했다 검거된 한 북한 공작원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사건 발생 직후 김 선교사가 독살됐음을 확인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은 그를 숨지게 한 독극물이 북한의 공작기관이 암살용으로 사용하는 브롬화스티그민이라는 점도 밝혀냈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를 외교통상부에 통보하지 않아 중국 공안과의 공조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암살된 사실을 확인하고도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게 된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소행이 거의 확실시되는데도 중국과의 외교마찰 등만 생각해 진상파악에 적극적이지 않음으로써 유사한 테러행위가 재발가능성까지 남겼다. 재외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가 의무를 스스로 방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를 독극물로 살해한 것은 명백한 국제적 테러행위다. 지금 북한은 3대 세습에 따른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특히 북한과 인접한 중국 국경지역에서 활동하는 눈엣가시 같은 대북 선교사와 인권단체 운동가들에게 노골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때문에 선교사 등은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느껴 활동이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범인을 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제사회강력한 대응과 응징을 촉구해야 한다. 중국 정부에는 범인 색출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북한의 국제 범죄에 동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제2, 제3의 테러를 막는 길이다.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크리스천투데이]작년 中서 소천한 선교사, 알고보니 北 공작원의 독살(2012.12.07)


정보 당국 2차 부검에서 드러나… 알고도 발표 안 해

지난해 8월 중국 단둥에서 사망한 故 김창환 선교사의 사인이 ‘독극물로 인한 심장마비’임을 한국 정보당국이 확인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김 선교사의 사인은 ‘의문사’로 남아 있었으나, 지난해 6월 탈북자로 위장했던 간첩 A씨의 판결문 기록에 의해 ‘北 공작원에 암살’로 드러났다. 지난 2003년부터 중국에서 공작 활동을 하던 A씨는 2010년 2월 北 국가안전보위부 지시로 단둥으로 이동해 한인 교회의 선교활동 상황을 탐문했다.

그는 김창환 선교사가 탈북자들 다수를 한국에 입국시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탈북자 행세를 하며 선교사에게 접근해 한 달간 선교사가 마련해 준 거처에 머물면서 동향을 상부에 보고했다. 김 선교사는 이후 지난해 8월, 단둥 시내 한 백화점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병원으로 호송됐으나 소천했다.

당시 1차 부검에서는 독극물이 나오지 않아 유족들은 김 선교사를 현지에서 화장했다. 그러나 정보 당국이 지난해 12월 혈흔 샘플을 분석해 2차 부검을 실시한 결과 독극물 브롬화스티그민 중독으로 밝혀졌고, 당국은 유족들에게만 이를 조용히 알렸다고 한다.

브롬화스티그민은 북한 공작원들이 요인 암살용으로 사용하는 물질로, 10mg만 인체에 투여해도 호흡이 정지되고 심장마비로 즉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크리스천투데이]원더걸스 선예, 선교사 남자친구와의 결혼 전격 발표(2012.11.27)


결혼식은 내년 1월 26일에

▲원더걸스 리더 민선예. ⓒ크리스천투데이DB
걸그룹 원더걸스의 리더 선예가 내년 초에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한다고 전격 발표해 화제다.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27일 “원더걸스의 리더 선예(민선예)가 내년 1월 26일 결혼한다”며 “선예는 최근 본인의 뜻을 원더걸스 멤버들과 회사에 알려 왔다. 멤버들과 회사는 선예양의 결정이 신중한 고민 끝에 나온 것임을 이해하며, 그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선예는 당분간 결혼과 가정 생활에 전념할 예정이며 원더걸스의 다른 멤버들은 연기, 프로듀싱, 솔로음반, 방송활동 등 개인 활동에 주력할 예정이다.

선예는 지난해 SBS '강심장'을 통해 일반인과 교제 중인 사실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선예는 일전에 트위터를 통해 “오보로 공개된 저의 다음 달 결혼소식은 사실이 아니”라며 “제 인생에 있어 여러분과 나누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가장 적합한 때라고 생각할 때 꼭 나누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독일보]원더걸스 선예, 아이티 선교사와 내년 '결혼'(2012.11.27)


예비신랑, 5살 연상 캐나다 교포 출신 선교사…JYP, "원더걸스 해체는 아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원더걸스 멤버 선예 ⓒ크리스천투데이 DB

원더걸스 리더 선예(24)가 캐나다 교포 출신 아이티 선교사와 내년 1월 결혼한다고 알려져 화제다.

소속사 JYP는 27일 오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본사 소속 아티스트인 원더걸스의 리더 선예(민선예)양이 내년 1월 26일 결혼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소속사는 선예가 "원더걸스는 각자의 개인활동에 주력할 것이며 선예는 당분간 결혼과 가정생활에 전념할 예정"이라면서도 “원더걸스의 해체는 아니다"고 밝혔다.

선예의 결혼상대는 5살 연상의 캐나다 교포 출신 박모(28)선교사로 알려졌다. 이날 경향신문 등은 "박씨는 한국어 뿐 아니라 영어와 프랑스어 등에 두루 능통하다"며 "신학대를 졸업한 뒤 아이티로 건너가 현지 빈민가에 치료센터를 세우고 콜레라 환자 등을 돌봐오다 선예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선예는 공식 팬카페를 통해 "2013년 1월 26일 제 삶에서 아주 중요한 날이 됐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평생 삶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하는 결혼을 하게 됐다"며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이 결정 가운데 함께 의논하며 배려해주고 믿어준 원더걸스 멤버들, 그리고 회사 식구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또 "무대에서도 잘 긴장하지 않는 편인데 지금 이 순간은 좀 떨린다"며 "저에게는 보이지 않아도 가깝고 고마운 분들이기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기보다는 제가 직접 말씀 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앞서 선예는 작년 11월 SBS '강심장'에 출연해 "아이티 봉사활동 중 만난 연상의 선교사와 교제 중"이라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선예는 당시 원더걸스 팬카페 '원더풀'에도 "몇 개월 전 아이티에 선교를 다녀오게 되었다"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지금 남자친구를 만났고 현재 아이티에서 장기간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님"이라고 밝혔다.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김형태 칼럼] 그러려니 하고 살자(2012.11.25)


이 세상 사는 동안 내 맘에 꼭 맞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한가? 나 또한 다른 사람들 마음에 어찌 꼭 맞겠는가?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내 귀에 들리는 말들이 어찌 다 좋은 말 뿐이랴, 내 말도 더러는 남의 귀에 거슬릴 것이니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이 세상이 어찌 내 마음에 들게 꼭 맞추어 주랴. 비록 속상하고 마땅치 않은 일이 있더라도 세상은 다 그런 거려니 하고 살자. 살다 보면 가깝고 다정했던 사람들도 어느 날 멀어져 갈 수 있지 않던가. 온 것처럼 가기도 하는 것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무엇인가 잘 안되는 일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때로는 잘되는 일도 있지 않던가? 그냥 그저 그럴 때도 있으려니 하고 살자.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좋지만 가끔은 헤어지고 싶은 때도 있기 마련이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을 피하신 적이 있으셨다는데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람들이 주는 상처에 너무 아파하지 말자. 아픔만 주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기쁨도 주지 않던가?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누가 당신을 비난했다 해서 분노하거나 서운해하지 말자. 격려하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 않던가?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차가운 겨울날씨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자. 더러는 좋은 햇살 내려 줄 때도 있지 않던가?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수평적 관계, 즉 인간 상호간 관계는 위에 언급한 마음과 자세로 대하는 게 좋다. 좀더 참고 양보하며 한 템포 늦춰 뒤따라가는 일도 귀한 것이다. 여유와 포용력이 인간관계를 윤택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식적 관계 즉 인간 대 하나님의 관계는 응용하기보다 철저히 순종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피조물)의 도리와 책임에 충실해야 한다. 캐나다 토론토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People’s Church”가 있는데, 325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위대한 교회라 한다. 예수님의 유언(당부말씀)을 철저히 실천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현관 입구 바닥에는 “World mission first”(제일 먼저 세계 선교부터)라는 사명 다짐이 새겨져 있어 그곳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니 멋있다.
하나님께는 철저하되 인간관계는 너그러워야 하겠다. 옛날 어느 혁명가가 있었다. 그는 30대에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40대가 되니 세계는 그만 두고 나라 하나도 변화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이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50대에 이르자 나라는 그만두고 자기 가정도 변화되지 않는 것을 보고 기도했다. “주님, 우리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60대가 되자 가정은 그만 주고 자기 자신도 변화되지 않는 것을 보고 “주님 저를 변화시킬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이 기도를 거꾸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나 자신 -가정-국가-세계 순으로 변화가 확산되게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이 먼저 변하고 새로워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나 신념, 그리고 기대와 판단이 바뀌면 똑같은 환경(대상)이라도 다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점검해 보자.

①내가 원하는 사람이나 물건들은 모두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는가? ②상황이 바뀌고 다른 사람들이 바뀌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났는가? ③행복은 미래에 있고,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곳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났는가? 그냥 지금 여기(Now and here)에서 부담없이 느끼고 누리자. 잘 듣고 싶으면 고막에 사랑이 있게 하고 잘 보고 싶으면 눈동자에 사랑이 있게 하라. 그리고 잘 살고 싶으면 가슴에 사랑이 있게 하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이런저런 조건을 정해놓고 그것이 안 된다고 자신을 들볶지 마라. 그냥 현재 모습, 있는 그대로 느끼고 누리고 기뻐하라. 어차피 이 세상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될 수도 없고 또 내 뜻대로 되어서도 안 된다. 나만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사 짓는 사람은 비 오기를 바라고 소금 만드는 사람은 햇볕 쨍쨍 나기를 바란다. 우산 장수는 비오기를 기다리고 짚신 장수는 비오지 않기를 기다린다.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이 두 가지 상반된 요구를 어떻게 처리하겠나? 그러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만사를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염려한다고 키를 1cm라도 더 크게 또는 작아지게 할 수 있나. 우리가 속썩는다고 흰 머리칼이 검은 머리칼로 바뀌겠는가?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은 신속히 변화시킬 용기를 구하고,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하나님께 맡기는 평화를 구하며,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인지 변화 시킬 수 없는 일인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라. 이것이 신앙인의 정당한 자세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국민일보]“선교사는 섬기는 자, 끝까지 조연 역할해야”… 감리교 선교정책 세미나(201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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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연(助演)이어야 한다.”

손창남(한국OMF 대표) 선교사는 13일 감리교세계선교협의회(회장 김종수 목사) 주최 선교정책 세미나에서 ‘한국 선교의 출구전략’에 대해 강의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선교사가 사역지에서 시종일관 주도적 역할을 하기보다는 섬기는 자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169개국에 2만3331명의 선교사를 보낸 세계 2위 선교사 파송국이다. 그러나 선교의 열매가 맺힌 지역에서 현지인들이 스스로 교회를 감당하겠다며 한국인 선교사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해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선교사 10여명을 후원하고 있는 한 목사는 “사역지가 정상 궤도에 오르면 선교사가 리더십과 재산권을 현지 그리스도인들에게 넘겨주고 나와야 하는데 여전히 ‘군림’하려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고 말했다.

손 선교사도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교회의 해외 선교가 본격화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선교지에 들어가 사역을 진행할 것인가’에만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선교 사역을 어떻게 잘 마무리하고 철수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 선교사는 바람직한 출구전략 모델로 1990년 몽골 에르데네트에 들어간 스웨덴 선교팀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팀은 초기부터 현지 리더들에게 결정권을 줬으며, 3년 후 현지인들이 이끄는 교회가 손녀교회까지 개척하는 것을 보고 미련 없이 철수했다.

손 선교사는 “출구전략은 사역이 진행된 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진입할 때부터 해야 한다”면서 “획일적인 모델 대신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략이 요구되며 철수한 뒤에는 관계를 지속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한국 감리교 해외 선교의 방향과 과제’에 대해 발표한 이원재 남산교회 목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에서 해외선교국을 독립 부서로 승격시킬 것과 선교사 안수·수련 과정을 강화할 것 등을 제안했다.

강천희 애광교회 목사도 기감 선교국을 해외선교국과 국내선교국으로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기감 선교사가 1000명을 넘어선 시대를 맞아 선교 전문성을 높이고 선교사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선 독립 부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밖에 김진홍 우이교회 목사는 “10∼20년 뒤면 은퇴 선교사들의 처우·복지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교단은 이에 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