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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1일 목요일

[중앙일보][김영희 칼럼] 자기 최면에 걸린 김정은(2013.04.12)


김영희
대기자

김정은은 자신이 판 함정에 빠졌다. 그는 김씨 왕조의 후계자 지위를 확고하게 할 목적으로 국민에게 이렇게 말해 왔다: 우리는 핵·미사일을 가졌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수도 워싱턴도 공격할 수 있다. 남한과 미국은 우리를 핵 보유국가로 인정하고 우리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핵도 갖고 경제도 일으킬 수 있다…. 김정은에게 이런 터프가이(Tough guy) 이미지는 필수적이지만 그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큰소리를 사실로 믿는 자기최면(Auto-hypnotism)에 걸려버렸다.

 한국과 미국은 그의 호언장담과는 반대로 가공할 첨단 억지력을 동원해 북한의 도발에 강력하고도 즉각적으로 반격할 태세다. 김정은에게 더욱 불쾌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다. 중국 국가주석은 보아오 아시아 포럼에서 어느 누구도(No one) 저만의 이익(Selfish gains)을 위해 이 지역과 세계를 혼란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가 지칭한 “어느 누구”가 북한 아니고 누구겠는가. 중국의 여론도 김정은의 무모한 핵·미사일 놀이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독일에서 기자들에게 “한반도의 핵전쟁은 체르노빌 원자로 참화는 동화로 들릴 만큼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86년의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로 유출된 방사능물질은 사람을 포함한 주변의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했다.

 김정은은 지금 진퇴양난에 빠졌다. 국민의 시선을 생각하면 남한이나 미국에 물리적인 도발을 하지 않으면 체면을 잃는다. 그러나 도발에는 응징이 따르고, 그 다음 전개될 사태는 생각하기도 싫다. 원산 부근에 배치한 중거리탄도미사일로 서울이나 미군기지를 공격한다면 그건 바로 북한체제 종말의 시작임을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김정은은 어쩌면 멀리 태평양을 향해 여러 발의 미사일을 쏘고는 국민에게는 한·미 전쟁광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고 선전하는 것으로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 시기는 지금부터 한·미 연합 독수리 훈련이 끝나는 4월 말 일주일이나 열흘 후까지의 기간이 되지 싶다. 그때까지 도발하지 못하면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당분간 동력을 잃을 것이다. 개성공단도 폐쇄보다는 가동중단 수준에 묶어두어 정상 가동으로 돌아갈 여지를 남겨놓았다.

 김정은이 지금 기다리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확실한 양보의 제스처다. 그의 체면을 살릴 만한 제안이다. 이런 배경에서 서울과 워싱턴에서 나온 아이디어의 하나가 대북 특사 파견이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대신할 만한 인물을 평양에 보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서울에서는 일부 여야 의원이 평양에 특사를 보내 급한 상황을 수습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지금 공식 특사는 보내는 쪽도 받는 쪽도 부자연스럽고 부담스럽다. 한국의 경우라면 공식 특사보다는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을 평양이나 베이징이나 선양에 비공식 특사로 보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작은 도발은 큰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위기가 첨예할수록 물밑 접촉이나 제3국의 중재가 필요하다. 비공식 특사 파견은 곤경에 빠진 김정은에게는 사실상의 동아줄 효과를 낼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과잉대응을 견제하는 것은 현명하다. B-2, B-52, F-22를 독수리 훈련에 참가시킨 것은 절반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의 과시이고, 절반은 한국을 안심시키면서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확고한 물리적 억지력과 핵 불용(不容)의 원칙을 갖고 지금 시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과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약자가 내미는 손과 달리 강자가 내미는 손은 화해를 위한 것이다. 양보도 강자가 먼저 하는 것 아닌가. 북한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명박 정부의 강경정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공조를 얻어 당장의 위기가 진정되고 잠깐의 숨 돌릴 틈이 생길 때를 놓치지 말고 한국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단계별 내용을, 미국은 북·미관계 정상화까지의 로드맵을 북한에 제시해야 한다.

 핵과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쫓겠다는 김정은에게 한국 생각대로 핵을 포기시키거나 미국 생각대로 핵확산을 포기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이 없어도 체제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북한이 바라는 북·미관계 정상화가 북한의 시야에 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유인 요인이다. 위기 진정 뒤의 장기·포괄적 조치만이 북한의 다음 차례 도발 충동을 막고 북한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다.

김영희 대기자

2013년 3월 10일 일요일

[조선일보]北주민 "명령 떨어졌다"… 20년전 그 공포가… 충돌 일보직전(2013.03.11)


1993년 북핵위기와 닮은꼴
평양시내 위장막 설치… 주민 전투식량 준비 등 전쟁 분위기
韓美 정권교체기에 유엔제재·합동훈련 핑계로 긴장감 조성
테러총책 김영철이 직접 TV 등장하는 등 협박 수위 높아져

북한이 연일 '핵 불바다' '제2의 조선전쟁' '핵 선제타격'을 언급하며 긴장의 강도를 최고 단계로 끌어올린 한반도 안보 상황이 20년 전인 1993년 3월과 닮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자신들의 핵 도발로 조성된 위기 국면에서 한·미 군사훈련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문제 삼아 위기를 만드는 방식이 1993년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준전시' 상태였던 1993년

미국의 클린턴, 한국의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3월 북한은 준전시상태 선포(3월 8일)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성명(3월 12일)으로 '벼랑끝 전술'을 구사했다. 당시 연초부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미신고시설 2곳에 대한 사찰을 압박하고 한·미가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한다고 발표(1월 26일)하자 이를 빌미로 삼은 것이다.

당시 준전시상태가 선포(최고사령관 명령)되자 3월 9일부터 평양 상공엔 미그기들이 편대 비행을 시작했다. 도로엔 기관총을 탑재한 군용 차량이 위장 그물을 덮은 채 달렸다. 낮에는 대피훈련 사이렌과 함께 방공호와 지하철 역으로 대피하는 훈련이 반복됐다. 밤에는 공습경보 사이렌과 함께 집마다 검은 모포로 창문을 막는 등화관제(燈火管制) 훈련이 이어졌다. 당시 평양에 거주했던 탈북자 김모씨는 "가정마다 설치된 라디오에서는 훈련 진행 상황을 보도하면서 마치 진짜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분위기를 고조시켰다"고 회상했다.
북한 전역에서는 비상소집 훈련도 진행됐다. 주민들은 새벽마다 모포·쌀·소금·치약·칫솔·의약품·마스크·비옷·군용밥통 등 10㎏의 물품을 채운 비상용 배낭을 메고 집결 장소로 뛰어가야 했다. 김씨는 "이때도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라며 "초상화를 넣는 함이 따로 있는데 그것만 해도 배낭 크기와 비슷하다"고 했다.
北 전역서 '정전협정 백지화' 지지대회 10일 북한 평안북도에서‘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지지하는 군민(軍民)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시작된 이 대회는 9일 평안남도·자강도·함경북도에서 열리는 등 북한 전역으로 확산하고있다. 북한은 지난 5일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11일부터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위협했다. /로이터 뉴시스
당시 상황은 1차 북핵 위기의 시발이었다. 그 이후로도 북의 노동미사일 발사(1993년 5월)→'서울 불바다' 협박(1994년 3월)→군사정전위원회 철수(〃4월)→국제원자력기구 탈퇴 선언(〃6월) 등으로 한반도는 전쟁 직전 상황까지 갔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 폭격(surgical strike)도 대응전략 중의 하나로 준비하며 극에 달했던 위기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1994년 6월)과 김일성 사망(〃7월)을 거쳐 북·미 제네바 합의(〃10월)로 '봉합'됐다.

'말 도발' 강도는 사상 최고

한반도를 둘러싼 지금의 상황은 20년 전과 매우 흡사하다. 미국과 한국에선 오바마 2기 행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막 출범했다. 북한은 한·미 연합 키 리졸브 훈련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에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일부터 각종 기관·단체를 동원해 △정전협정 백지화 △남북 불가침 합의와 비핵화 선언 폐기 △북·미 군 통신선과 남·북 판문점 통신선 차단 등을 위협했다.
韓美연합훈련 참가하러 온 美이지스함 미 해군의 이지스함인 라센함과 피츠제럴드함이 한₩미 연합 야외 기동훈련인‘독수리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9일 동해항에 입항하고 있다. 독수리연습은 지난 1일 시작됐다. 이와 함께 지휘소 훈련인 키리졸브는 11일 시작된다. /해군 1함대 제공
준전시상태는 선포되지 않았지만 북한 현지 분위기는 그에 못지않다고 한다. 북한군 장교 출신인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연락이 닿은 북한 주민에 따르면 최근 준전시상태의 전(前) 단계인 전투동원태세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며 "아직 포에 포탄이 장전만 안 됐지 1993년 준전시상태와 거의 유사하다"고 말했다. 지난 6일부터 평양시내엔 군사용 위장 그물을 덮은 차량과 열차들이 목격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전투식량 준비 지시를 내렸다는 첩보(대북 소식통)도 있다.

위협의 강도는 1993년을 능가한다는 평가(통일부 당국자)다. 지난 5일 대남 공작 총책인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낭독한 것이 대표적이다. 안보부서 관계자는 "노출을 삼가야 할 인물이 북한 전 주민이 정규 뉴스를 보는 저녁 8시에 등장했다는 건 파격 중의 파격"이라고 했다.

대남 협박도 '서울 불바다'(1994년)→'남조선 잿더미'(2008년)→'남조선 최종파괴'(2013년)로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핵 불바다' '제2의 조선전쟁' '핵 선제타격' 같은 표현도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공식 문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북한 주요 매체들이 이를 연일 인용하는 경우는 없었다.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시론] 북한이 을이라는 착각(2013.01.29)

최근 북한의 강경 대응을 보노라면 한반도에서 갑을관계를 의심케 한다. 이명박 정부가 주장한 남북관계 정상화는 잘못된 갑을관계를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시혜를 베푸는 쪽이 우리인 만큼 남북관계에서 명백히 북이 을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당한 기다림의 전략을 구사하면 대남 의존적인 북은 반드시 고개를 숙이고 굴복해 나올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북이 항상 을이라는 인식은 경제 사정이 곤궁한 탓에 외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원한다는 전제에서다. 특히 김정은 체제는 정치적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외부의 경제적 지원이 더더욱 절박하다는 분석이다. 그 때문에 북한은 남쪽에 손을 벌리고 남북대화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정책적 결론은 남측이 먼저 손을 내밀 필요가 없다는 데로 모아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런 가정은 북한이 경제적 지원을 꼭 남쪽에만 의존할 때에야 가능하다. 남쪽이 아닌 대체재가 존재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던 것도 갑을관계를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갑의 위치를 고수하려는 이명박 정부에 북은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았고, 오히려 대체재를 찾아 중국으로 달려갔다. 북은 남측에 굴복하지 않고 군사적 도발로 응수했다.

 더욱이 최근 북한은 대외전략의 전환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북한의 대외전략은 체제 인정과 안전보장을 미국에 담보받고 경제적 지원과 협력은 한국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0여 년간 지속된 이 노선이 최근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거에 의해 주기적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그로 인해 힘겨운 협상과 대립을 반복해야 하는 미국과 한국보다 중국에 북한의 안보와 경제를 의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한 중국도 북한의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일정하게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천안함 사태 당시 미 항모의 서해 진입을 중국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북한의 입장을 시종일관 두둔한 사례는 이제 안보를 미국 아닌 중국에 의존해도 가능하다는 방증이었다.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압박 역시 북·중 경협의 확대로 충분히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남북경협의 빈자리에 황금평 위화도가 대체되었고, 남북교역의 감소만큼 정확히 북·중 교역이 증가했다. 굳이 미국에 읍소하지 않아도 한국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안보와 경제적 필요를 나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역설적으로 북이 얻은 교훈이었다면 과장일까?

 한국과 미국에 의존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북한의 입장은 금년 신년사에서도 잘 드러났다. 연설문 전반에 녹아 있는 분위기는 상당한 ‘자신감’이었다. 강성대국 원년의 활기찬 평양의 모습, 고층 아파트와 나아진 전력 사정 등은 방북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연말 은하3호 발사 성공도 북의 자신감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신년사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한반도 비핵화 등 미국을 겨냥한 적대적 혹은 우호적 입장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점이나 대남과 관련해 기존의 원칙적 입장만을 재확인하고 있음도 북이 먼저 입장을 정하지 않고 미국과 한국에 공을 넘기는 전략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안보리 결의 이후 북의 강경한 제멋대로도 같은 맥락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북이 을임을 강조하는 안이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잘못된 정세 인식은 그릇된 정책 선택으로 귀결된다. 아쉬운 것은 북쪽이니 우리가 나서서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다.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자의적 갑을관계론에 매몰된다면 남북관계는 시작부터 가시밭길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북한에 간 관광객, 김정일 시신 보더니 한 말이(2013.01.22)


금수산태양궁전 지난주 외국관광객에 개방

 엔케이뉴스 웹사이트 캡처
북한이 지난해 말부터 고위 간부 등 일부 주민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해온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을 이달 들어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공개하기 시작했다.

21일 미국의 북한전문 웹사이트인 ‘엔케이뉴스(www.nknews.org)’에 따르면 중국에 사무실을 둔 북한 전문 여행사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Young Pioneer Tours)’ 관광단이 지난주 평양여행에서 김 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관람했다.

일반 외국인 관광객들이 김 위원장 시신을 관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광객들은 금수산태양궁전에 들어간 뒤 김 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엄숙한 분위기의 방으로 안내됐고 시신을 둘러보기에 앞서 시신의 발 쪽에 서서 허리를 굽혀 예를 표시하도록 요구받았다. 김 위원장 시신은 네 명의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한 영국인 관광객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 예전에 하노이에서 (영구보존처리된) 호찌민을 본 적이 있지만 김정일 무덤을 둘러싼 환경이 훨씬 인상적이었다”며 “다소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여행사 가이드는 금수산태양궁전 내에 김 위원장이 생전 이용했던 기차와 요트 등도 전시돼 있었는데 특히 기차 안 테이블 위에는 김 위원장이 살펴보던 서류와 애플의 맥북 컴퓨터 등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고 묘사했다.

관람시간은 약 90분으로, 헤드셋을 착용하면 금수산태양궁전에 대한 설명도 영어로 들을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금수산기념궁전에 입장하기 전에 금속탐지기, 옷 먼지 제거용 터널, 신발청소기계 등을 통과해야 했다.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 외에 또 다른 북한관광 전문 여행사들도 내달부터 금수산태양궁전 관람이 포함된 북한여행 일정을 줄줄이 잡아놓고 있어 김 위원장 사망으로 한동안 중단됐던 금수산태양궁전에 대한 외국인 관광이 최근 전면 허용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김 위원장 1주기인 지난해 12월17일 당·정·군 고위 간부들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이후 북한 내 각계각층 대표들이 잇따라 김 위원장을 참배했으나 일반주민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관람이 허용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1주기를 즈음한 1995년 7월12일 북한주재 외교관, 군인 등에게 영구보존 처리된 김 주석 시신을 먼저 공개한 뒤 2주기가 되던 1996년 7월 일반주민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참배를 허용한 바 있다.

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크리스천투데이]WEA 대표단, 2014년 총회 실무협의 위해 방한(2012.11.15)


통일부·문광부 장관도 만나 협조 요청

▲한기총 사무실에서 회의 중인 WEA 대표단과 WEA총회 준비위 관계자들. ⓒ한기총 제공
 
세계복음연맹(WEA) 대표단이 지난 13일(화) 방한해 한국 준비위원회와 2014년 WEA 총회 준비를 위해 실무 회의를 가지고 있다. 이번에 방한한 WEA 대표단은 제프 터니클리프 박사(WEA 대표)를 비롯해 엔다바 마자베인 목사(WEA 국제이사회 부의장), 고든 쇼웰-로저스 목사(WEA 부총무) 등 총 10명이고, 공식 일정은 17일(토)까지다.

WEA 대표단은 14일(수) 오후 3시 한국 준비위원회와 함께 류우익 통일부 장관을 예방했으며, 15일(목) 오후 3시에는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예방할 예정이다. 또한 14일부터 16일까지 매 저녁에는 한기총 임원 등과 만찬을 가지게 되며, 특별히 15일 저녁 만찬에는 조용기 목사가 참석할 예정이다.

WEA 대표단과 WEA 한국 준비위원회는 통일부 장관과 약 1시간 가량의 면담을 통해 북한과 관련한 협력과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 자리에서 제프 터니클리프 대표는 WEA와 WEA 총회에 대해 설명하며 2013년 부활절에 WEA가 평양에서 예배를 드리려 하는 것과 2014년 총회 때 지도자들이 방북하려는 계획을 전했다.

이에 류우익 장관은 “WEA 총회가 한국에 유치된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협조를 하겠고, 2013년 부활절 방북과 2014년 지도자 방북을 적극 돕겠다”고 답했다. 또한 류 장관은 “2014년 WEA 총회를 통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의 주춧돌을 놓는 기회가 되고, WEA 총회가 성공할 수 있도록 함께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WEA 대표 제프 터니클리프 박사는 이번 방한의 의미에 대해 “2014년 WEA 총회가 2년 정도 남은 상황에서 우리가 작성했던 타임라인(Timeline)을 점검하고 토의하여 앞으로 계획이 잘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한국에서 총회를 하게 되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고, 요한복음 17장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교회가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는 현재 한국측 교단들과 교회들의 상황을 설명하며, “정부와 교단들이 한기총과 협력해 WEA 총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게 하겠다”고 화답했다.

또 WEA 총회 준비위원장 길자연 목사는 “WEA 총회 준비에 전력을 다하겠다”며 “한기총을 중심으로 교단들이 잘 연합하여, 세계 교회의 지도자들을 환영하고 섬기는 WEA 총회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가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WEA 한국 준비위원회는 2014년 총회를 계기로 보수·복음·개혁주의의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와 연합하여 보다 큰 차원의 선교가 이루어지게 되길 기대하고 있으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이 북녘 땅에도 깊이 심겨 통일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