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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5일 월요일

北 "이 전 대통령·김관진 등 5명, '21세기 을사오적'" 맹비난(2013.02.26)


 북한 조선중앙TV에 보도된 북한군 표적./조선일보DB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핵심 외교ㆍ안보 라인에 대해 ‘21세기 을사오적’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이 꼽은 ‘오적’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김관진 국방부 장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국제면에 실린 ‘가차없이 처형해야 할 21세기 을사오적’이란 기사에서 “이명박 역도와 그 졸개들인 현인택, 천영우, 김관진, 원세훈은 반드시 역사와 민족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처형되어야 할 ‘21세기 을사오적’”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이 전 대통령이) 집권 5년간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민족의 최고 존엄에 도전한 죄’”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온 겨레가 민족의 어버이(김정일)를 잃고 피눈물을 흘릴 때, 청와대와 행정부를 비상경계태세에 돌입시키고 북침 전쟁소동에 광분했다. 또 남한의 조의 방문과 분향소 설치마저 탄압했다”고 밝혔다. 신문은 또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동까모’ 사건(김일성 동상을 까는 모임) 등의 도발사건들은 이명박 역도가 얼마나 동족 대결에 환장했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밝혔다.

신문은 또 현 전 장관에 대해 “대결정책인 ‘비핵·개방 3000’의 고안자로서 반드시 처형해야 할 을사오적 중 하나”라며 “민간급의 왕래와 협력사업마저 차단하고 거덜낸 주범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천 전 외교안보수석에 대해서는 “탄도미사일 사거리연장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비밀리에 분주히 막후교섭을 벌인 특등매국노”라고 했고, 김 장관에 대해서는 “남한 군사 훈련장에서 우리의 최고 존엄(김정일) 표적을 만들어놓고 총탄을 쏘아대게 한 천추에 용납 못할 특대형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을사오적에 포함했다. 

또 신문은 원 원장에 대해서는 “동까모 사건을 주도했다”고 했다. 동까모 사건이란 탈북자 출신 전영철(52)씨가 지난해 6월 18일 북한 국경을 넘다가 체포돼 “미국과 남한 정보기관의 사주를 받아 김일성 동상을 파괴하러 왔다”고 주장했던 사건을 말한다.

신문은 “나라와 민족을 반역하며 천추만대를 두고도 씻을 수 없는 역적 죄를 지은 이자들에게는 추호의 자비도 있을 수 없다”며 “이들이 갈 곳은 교수대와 무덤밖에 없다”고 협박했다.

[오늘과 내일/하태원]남북정상회담, 그 실패의 기록(2013.02.26)

통치행위로 여겨지는 남북정상회담은 추진단계부터 극소수 내부자만이 정보를 공유하는 비밀의 영역이다. 평양에서 진행된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양측 수뇌부가 나눈 대화 내용 중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2000년 6·15공동선언 합의문에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는 문구가 담기기까지의 내막을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쟁점이 되지 않았다면 2007년 우리 대통령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까.

그런 면에서 이명박(MB) 대통령이 퇴임 직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불발된 2009년 정상회담 추진상황을 자진해서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우리가 원칙을 고수하며 정상회담에 목매지 않자 2009년 가을 북한이 중국을 통해 먼저 정상회담을 타진해 왔고, 정상회담 대가로 5억∼6억 달러 규모의 현물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회담이 무산됐다는 게 요지다. 5년 대북(對北)정책이 총체적 실패라는 평가를 인정할 수도 없었고, 그런 소리도 듣기 싫었기 때문에 비밀의 한 자락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과거 5년의 행적을 쫓다보면 MB 정부가 정상회담의 효능을 인정하고 그 실현을 위해 최대의 역량을 쏟아부었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천안함 폭침이 있었던 2010년 가을 김숙 당시 국가정보원 1차장은 3, 4차례 평양으로 가 극한 대결로 치닫고 있던 남북관계 출구전략과 정상회담 추진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결과는 실패. 천안함 폭침에 대한 입장표명과 관련한 북한 실무진의 재량범위가 극히 좁았던 탓이 컸다.

정전선언 이후 우리 영토에 대한 최초의 직접적 공격으로 기록된 연평도 포격까지 당한 뒤에도 정상회담을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MB가 2011년 5월 베를린 연설에서 이듬해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한 것을 계기로 남북은 개성 베이징 등을 오갔다. 2011년 6월 판문점, 8월 평양, 2012년 3월 서울 등 연쇄정상회담 시간표까지 논의될 정도로 구체적이었지만 천안함 사과가 또 발목을 잡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를 직접 받아내기 위해서라도 응당 정상회담에 나서려 했겠지만 MB는 이 시점에 뜻을 접은 것 같다. 김태효 전 대통령대외전략기획관은 “북한의 전략적 목표에 봉사하느니 정상회담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나았다”는 말로 당시 기류를 설명했다. 천안함 폭침은 부인으로 일관하고 ‘비핵화’ 세 글자만 써주고는 ‘이제 논의 끝’이라는 북한의 태도에서 정상회담을 할 아무런 메리트도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정상회담을 남북관계 돌파구의 최종병기로 여기는 사람들이 들으면 ‘궤변’이라 할 소리지만 MB 정부 사람들은 “남들 하는 식으로 하면 우리도 정상회담 할 수 있었다”는 말을 종종 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만나주는 것 자체를 시혜로 생각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 것이 결국 회담 불발의 본질적 이유”라고 했다. 원칙을 지킨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악습을 근본적으로 바꿀 계기를 마련한 것인지 아니면 남북관계 진전의 호기를 놓친 실책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성사되지 못한 세 번의 정상회담 시도 과정에서 남북 간에 은밀하게 벌어졌던 일들을 세밀하게 복기하고 전략적 실패는 없었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일은 어제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몫이다. 이를 위해 MB 정부 정상회담 ‘실패의 기록’이 가감 없이 새 정부에 넘겨져야 한다. 우리 대표단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 요구 시 내걸었던 조건도 밝혀야 한다. 박 대통령이 꿈꾸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의 출발점도 결국은 과거 정부에서 남북 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팩트 파인딩’이라고 본다.

2013년 2월 17일 일요일

北,정상회담 제안하더니 ‘6억달러 현물’ 요구(2013.02.18)

■ 원자바오 남북정상회담 주선… 2009년 당시 무슨일이? 



“북한에서 드디어 신호가 왔군.”

2009년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통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인사들은 흥분과 걱정이 교차했다고 한다. 중국 최고위층 인사를 통해 들어온 남북정상회담 요청은 충분히 신뢰할 근거가 있었고 앞으로 추진 과정에서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의 민감성 안에 어떤 변수가 숨어 있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 새롭게 드러나는 3차 정상회담 추진의 막전막후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남북 중간에서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브로커 장사꾼이나 사기꾼도 많다”라면서 “중국 정부를 통한 제안은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회담 요청을 적극 검토키로 한 배경에는 ‘퍼 주기’ 비판을 받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현 정부의 원칙에 마침내 북한이 응하기 시작했다는 판단도 깔려 있었다. 이 대통령은 14일 동아일보와의 퇴임 인터뷰에서 “북한은 그동안 일방적으로 남측이 자신들을 만나려 안달한다. 그러니까 남쪽이 자기네한테로 올 것이라고 생각해왔다”라며 “우리가 그동안 무조건 찾아가서 만나기에 급급해 왔으니 그런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참에 남북관계를 정상화하자. 우리가 2차례나 평양에 갔으니 이번에는 북쪽에서 내려와야 한다”라며 제주도와 파주, 인천, 판문점 등을 회담 장소로 제안했다. 북한 측이 난색을 표하자 원 총리는 “북측이 먼저 만나자고 했으니 장소에는 너무 구애받지 않는 게 어떠냐”라며 남한을 설득했다. 이에 청와대는 장소 문제를 양보했고 북한은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을 싱가포르로 보내 당시 이 대통령의 핵심 비선인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협상에 응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임 장관과 김 부장은 2009년 10월 전후로 최소 3번 이상 접촉하고 구체적인 정상회담 의제들을 조율했다. 독일 ‘프라이카우프 방식’처럼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을 조건으로 한 대북 경제적 지원, 북한 내 국군 유해 발굴 등까지 사실상 합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그 과정에서 최소 5억∼6억 달러 규모의 현물을 대가로 요구했다. 이를 받아 줄 것인지를 놓고 정부 내에서도 강온파 사이의 의견 차가 커지면서 결국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이 대통령은 당시 실무 접촉 과정과 관련해 “남북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이야기도 당시에는 나왔지만 내가 듣기로는 서로 간에 오간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차원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일이 원 총리한테 정상회담 의사를 전달하면서 경제적 지원 이야기까지 꺼냈겠느냐”라며 “김양건은 아마 ‘한국의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존에 해 오던 습관대로 (제안)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게 김정일의 생각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라며 아쉬움도 내비쳤다.



○ 끝내 닫힌 대화의 문

이후 북한은 회담 무산의 보복이라도 하려는 듯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켰고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1년 가까이 지난 2011년 4월 북측의 사과를 받아 내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정상회담 시도가 다시 본격화됐다. 그러나 이마저 틀어지면서 대화의 문은 끝내 닫혔다.

중국은 두 번째 회담 시도에서는 2009년 당시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밑 접촉이 진행되던 시기에 중국을 방문한 김 위원장이 남측을 편드는 중국 고위당국자에게 반발해 회담 추진을 중단했다는 설도 있다.

당시 협상에 깊숙이 개입했던 전직 고위 당국자는 “2차례의 협상 모두 북쪽이 먼저 의사를 타진해 왔고, 협상이 결렬된 것도 우리 쪽의 문제가 아니라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로 인한 불안한 내부 정세와 후계 세습 문제 등으로 초조했던 북한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북한에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어 내려 한 정부의 욕심이 일을 그르쳤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먼저 정상회담을 요청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만심에 빠져 정부가 섣불리 북한을 길들이려 한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다.

[김진의 시시각각]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2013.02.18)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

북한 핵에 대해 여러 대책이 거론된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불충분하고 위험하다. 북한이 핵 미사일을 가지면 남한은 대응이 어렵다. 선제 타격도, 미사일 요격도 쉽지 않다고 많은 전문가가 지적한다. 북한엔 스커드 미사일만 600여 기가 있다. 이동식 발사대는 수십 개다. 북한이 동시에 수십 발을 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남한 핵무장 주장도 그렇다. 핵을 쓰면 남한의 반격으로 자신도 망하므로 북한이 핵을 쓰지 못할 거란 논리다. 그러나 이는 정상 국가에만 통한다. 북한은 극도로 비정상적인 벼랑 끝 정권이다. 자폭성(自爆性) 핵 공격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한 핵무장을 막아야 한다. 북한 정권교체 추진이나 군사적 해결까지도 배제해선 안 된다. 쉽게 택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과 국민은 고뇌하고 또 고뇌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협상이나 대화로 포기시킬 수 없다. 북한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핵 포기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전문가 사이에서도 정권교체론이 조금씩 등장한다.

 정권교체 압박은 비용도 적게 들고 효율적이다. 남한은 전단과 확성기로 심리전을 펴고 미·일은 금융·무역을 봉쇄한다. 중국을 설득해 북한 자산을 동결하고 탈북자를 보호하도록 한다. 하지만 여기엔 한계가 적잖다. 중국이 동참할지 회의적이다. 급변사태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다. 새 정권이 핵을 포기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단계적인 군사적 해결도 배제해선 안 된다. ① 박근혜와 오바마는 중대조치에 합의한다. ② ‘북한 번영을 위한 최종 제안’을 발표한다. 북한이 사찰을 받아들이고 폐기를 진행하면 대규모 경제지원과 평화협정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데드라인을 정하고 북한이 거부하면 군사적 조치를 취할 거라고 공언한다. ③ 북한이 불응하면 핵시설 공격을 선언한다. 만약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한·미는 북한의 핵심 목표물을 모두 부술 거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목록과 위성사진을 공개한다. 김정은 집무실·관저·대피시설, 김일성·김정일 생가·동상과 금수산 태양궁전, 노동당사, 인민군사령부, 미사일·공군 기지, 군단·사단 본부….

 많은 이는 이런 방안을 반대한다. 전쟁이 나면 남한 희생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지나친 패배주의일 수 있다. 북한이 반격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다. 북한은 2003년 3월을 기억한다. 미국이 바그다드를 어떻게 때렸고 후세인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잘 안다.

 남한은 역사를 돌이켜보고 군사적 선택의 가능성을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폭로 전문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2008년 4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버시바우 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1994년 클린턴이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공격을 원했는데 내가 말렸다. 돌아보면 공격을 허락하는 게 더 나을 뻔했다.” YS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걸 후회하는 것이다.

 국가가 끝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는 이유가 더 나은 방안 때문이어야지 두려움 때문이어선 안 된다. 물론 전쟁은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 전쟁을 피하려 양보했던 프랑스는 1939년 독일군의 먹이가 됐다. 63년 케네디가 핵전쟁을 불사하자 소련은 쿠바에서 물러섰다. 76년 박정희는 전쟁을 각오하고 ‘북한 도끼만행 보복 작전’을 감행했다. 김일성이 사과했다. 365일 전쟁을 결심하니 이스라엘엔 전쟁이 없다.

 결단은 매우 중요하다. 2010년 연평도 때 F-15K로 응징 폭격했다면 북한은 남한을 달리 봤을 것이다. 충격에 김정일 정권이 훨씬 일찍 무너졌을지 모른다. 핵 상황도 지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2013년 2월 14일 목요일

[이명박 대통령 인터뷰] “쥐도 새도 모르게 北잠수함 타격…”(2013.02.15)

북 핵실험 이후 한반도 

《 동아일보의 이명박 대통령 인터뷰는 14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20분가량 청와대 본관 집무실 옆의 백악실에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이 국내외 개별 언론사와 갖는 마지막 인터뷰다. 백악실은 이 대통령이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긴급 회동을 했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이 몰고 온 북핵 위기와 향후 동북아 정세 변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대응 전략 등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동안 평가나 언급을 삼갔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인터뷰는 동아일보 최영훈 편집국장, 박성원 정치부장이 진행했다. 청와대에선 최금락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박정하 대변인이 배석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북핵 대응과 관련해 “중국의 걱정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통일 이후 주한미군의 배치 문제까지 언급했다. 이는 북핵 문제를 보다 큰 틀에서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북한을 움직일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을 움직이려면 중국이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지, 어떻게 하면 이를 해소시켜 중국의 전향적인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근본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 급변 사태 시 미군의 38선 이북 진군 및 주둔 가능성, 이로 인한 미중 간 충돌 가능성, 한반도의 역학구도 변화 등을 우려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통령은 “(한중) 정상들 간에 (관련)이야기를 시작했다”며 양국 최고위층이 이 문제를 물밑에서 이미 논의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했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지도부의 대북정책은 과거 지도부와는 좀 다를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온다.

“후진타오(胡錦濤) 지도부 때까지는 북한의 안정이 중국에 더 도움이 된다고 봤지만 지금 북한의 행태는 이에 점점 반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 국민의 생각도 바뀌어가고 있다. 시 총서기는 이런 국민의 생각이 좀더 반영되는 쪽으로 갈 거다. 당장은 북한의 안정에 반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지 못하지만 이미 그 작업에 들어가고 있다. 중국이 이번에 북한의 핵실험 계획을 통보받고 바로 우리에게 알려준 것도 북한에만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남북 간에 공정하게 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보여준 거다.

중국은 후진타오 지도부 임기 중반 이후부터 ‘우리를 너무 북한 편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게 중국의 본심이다. 다만 지금은 중국까지 (북한 편에서) 빠져버리면 북한이 무너지고, 무너지면 사태가 복잡해지니까…. 우리가 이걸 (이해)해야 된다. 중국이 걱정하는 (한반도) 급변 사태 시 한중관계와 한미관계가 어떻게 될 것이냐 같은 역학관계와 삼각구도를 잘 이해시켜야 한다.”

―중국 측이 우리에게 “더이상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한국이 주도하는 평화통일이 중국의 이해에 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지만 (그런 내용의) 논문이나 연구결과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변화의 시작이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것은 통일된 한반도와 1300km의 국경을 맞대게 될 중국 정부의 걱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통일되면 미국의 역할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들에 대한 걱정 아니겠나. 통일 후 미군기지가 북한으로 올라간다든가 거기에 주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 한미동맹이 한중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 미중 간 이해가 상충될 때에는 한국이 평화 유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에) 알리고 있다. 정상 간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이 그동안 북한 문제와 관련해 원활히 소통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중 간 소통이 안 되네, 대화가 안 되네 하는 식의 비판들을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중국이 이제는 북한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북한에 다녀오면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온다. 북한이 도발하면 우리가 그 진원지를 원점 타격하겠다는 것도 북한에 알리라고 중국에 요청했다.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도발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면 한국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을 중국을 통해 북한에 공식 통보한 것이다. 중국이 이를 북한에 전했고 그 사실을 다시 우리에게 알려왔다.”


―북한 내 미군기지 주둔 문제와 관련된 한국의 생각에 대해서는 중국도 관심을 많이 보일 것 같다.

“우리가 중국에 그런 내용을 알릴 필요가 있다. 신호를 계속 보내는 게 좋다. 그래야 중국에서도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굉장히 배려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없는 부분은 비정부기구(NGO) 등을 통해서 (메시지 전달을) 할 수 있다. (급변 사태 시) 북한이 중국 군대를 불러올 것이고, 중국군이 한 번 주둔하면 안 나갈 것이라는 가상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중국이 가장 골치 아픈 게 소수민족 문제다. 티베트도 있고 신장(위구르자치구)도 있고…. 북한이 또 다른 소수민족이 되는 것은 중국이 절대 함부로 못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급변 사태)때 북한의 핵시설을 어떻게 할 것이냐, 예를 들면 유엔 사람들이 들어와서 보전하는 식의 방안들을 논의해야 한다. 중국도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런 논의들에 대해 한중 양국이 서로 공감대가 있었던 것인가. 얼마나 진전되고 있는 것인가.

“통일을 전제로 한다면 (정상들이) 논의해야 할 주요 어젠다가 무엇이겠나. 중국이 북한에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의 질문에 대해 내가 (공개적으로) 답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해당사자끼리 이야기를 할 때 이런저런 내용들이 다 빠지면 아무 이야기를 못 한다.”

▼ “北 레짐 체인지 논의?… 따끔하게 할 필요있어” ▼

북핵 해법


―북한이 3차 핵실험에서 핵탄두 소형화와 경량화에 성공했다면 북한의 위협이 현저히 증가하는 것 아닌가.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북한은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북한정권 차원에서는 실패했다고 본다. 북한이 점점 어려운 길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3차에 이어 4차, 5차 핵실험을 하다 보면 국가의 미래 차원에서는 막가는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국가도 단독플레이가 힘든 시대가 아닌가. 유아독존이었던 나라들도 이제는 협력이 필요하다. 북한도 혼자 살 수 없으니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실패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

―추가 핵실험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나. 국방부가 3차 핵실험 후 72시간 내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할 수 있겠지. 이미 한 번 했으니까. 북한이 통보를 하고 3차 핵실험을 했으니 또다시 하려고 할 때에는 미리 통보하지 않을 것이다. (추가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돼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인데 ‘앞으로 72시간’ 하는 것이 정확한 예측은 아니다.”

―한국의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여론을 어떻게 보는가.

“지금은 세계와 공존해서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럴 때 우리가 핵무장을 하겠다고 하면 맞지 않다. 한국 정부가 핵 보유 방침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정부의 비핵화 방침은 분명하다. 다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애국적 생각은 높이 평가한다. 그런 발언을 함으로써 북한이나 중국에 대한 경고가 되는 측면도 있으니까. 우리 사회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남북 간 핵 불균형에 대한 문제 제기가 거세지고 있다.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를 논의할 때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역대 정부에서는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레짐 체인지라는 말을 기피했고 북한인권 문제도 전혀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에도 좋다 좋다만 하면 점점 버릇이 나빠지는 법이다. 따끔하게 함으로써 아이를 바른길로 인도할 수 있다. 인권 문제도 그렇고 핵 문제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통일 준비를 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이 중심이 되고 다른 주변국들과도 논의해야 한다. 중국은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자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고 했고 러시아도 그것이 동북 시베리아 개발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공식적으로 말은 못해도 그런 분위기가 있다. 목표는 평화적 통일이다. 정말 언제 올지 모르는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핵 문제 해결의 종착점이다.”

▼ “우리도 쥐도새도 모르게 北 타격할 수 있지만…” ▼

아, 천안함


―재임기간에 가장 가슴 아팠던 때가 언제인가.

“천안함 폭침사건 때다. 느닷없이 46명의 젊은 아이들이…. 그들을 찾아내려고 했던 한주호 준위의 순직도 정말 가슴 아프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판단에 이르렀을 때 북한을 때리겠다는 생각도 했나.

“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이, 북한이 천안함 소행을 저지른 것처럼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준비가 돼 있다. 정박 중인 북한 잠수함에 들어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있는데도 참은 것이다. 천안함 관련 조사단을 편성할 때 스웨덴 같은 나라들까지 부른 것은 틀림없이 종북 세력들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떠들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런 요청에 대해 한 외국 정상이 ‘조사 안 하면 북한 소행인 것을 모르느냐. 뭘 조사까지 하려고 대통령이 애를 쓰느냐’고 묻더라. 그때 이야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종북 세력에 대한 설명을 해가면서 우리 사정을 이야기할 수도 없고…. ‘역사에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고만 대답했다.”

―동아일보가 천안함 희생자들처럼 나라를 위해 애쓰다 순직한 사람들을 위해 ‘영예로운 제복상’을 제정해서 시상하고 있다. ‘제복 입은 사람들(MIU·Men In Uniform)’을 위한 사회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맞다. MIU상 제정 정말 잘했다. 그동안 그 사람들이 너무 대우를 못 받았다. 한주호 준위는 당시 내가 수색 현장에서 만났는데 ‘조심하라’고 했더니 ‘내 후배들이 물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추워도 들어가야 한다’고 하더라. 대전묘지 갔을 때 46명의 장병과 한 준위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불렀다. 통일이 오면 그 46명과 한 준위까지 모두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전부 부르려 한다.”

2013년 2월 4일 월요일

이명박 대통령 인터뷰 전문(2013.02.05)


이명박 대통령 本紙 인터뷰… 퇴임 앞두고 임기 5년의 소회 말하다

[한반도와 중국]

"北 핵실험땐 시진핑에 악영향… 中정부 주도 투자 끊어질 것
韓·中 관계, 언론보도 이상으로 좋지만 北·中은 그 이하"

오는 24일로 임기를 마치는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본지 양상훈 편집국장, 박두식 정치부장과 2시간 10분 동안 인터뷰를 가졌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중국이 약 1년 전부터 우리나라와 한반도 통일 이후에 대한 이야기에 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막는 데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북·중 관계는 어떻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중국에 관한 한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한·중 관계는 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으로 좋고, 북·중 관계는 언론에 보도된 것 이하다. 작년 4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패 후에 중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김정은' '지도자' 이런 말을 안 하더라. (김정은을) '젊은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데 깜짝 놀랐다. (중국 사람들과) 사석에서 통일에 관한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상상할 수 없는 변화다. 중국 사람들은 '통일'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하나가 됐을 때'로 얘기한다. 이런 진지한 대화가 한·중 간에 이뤄진 건 1년 정도 된다. 그전엔 그런 비슷한 얘기만 해도 (중국 측이) 말을 돌렸었다. 중국 내에서 '대한민국 중심으로 통일이 되는 게 중국 국익에 반하지 않는다'는 논문이 통용되고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중 정부 차원보다는 신뢰할 만한 민간 차원에서 모여 (통일 후)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대화를 할 때가 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2008년부터 임기 5년간 발생했던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작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패 직후인 5월 중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김정은을 ‘지도자’ 대신 ‘젊은 사람’이라고 지칭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북한이 중국의 반대에도 3차 핵실험을 하면 북·중 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북 핵실험은) 처음 출발하는 시진핑 총서기에게 상당히 나쁜 영향을 줄 거다. 겉으로는 북·중 관계가 끊어진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중국은 앞으로 정부 차원의 대북 투자를 하지 않을 거다. 중국에선 정부가 투자하지 않으면 민간도 투자하지 않는다. 북한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그렇게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과 안보 문제에서 협력은 어느 정도로 이뤄지고 있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후 합동참모본부에 가서 '우리 영토를 공격받으면 발원지는 물론이고 지원 세력까지 육·해·공으로 공격하라'고 했다. 당시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은 절대 보복을 못한다'고 믿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에 이런 지시를 내렸다. 이 방침을 정한 뒤 내가 중국에 통보하고, 중국 쪽에 '북한에도 통보해달라'고 했다. 이에 중국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북한에 가서 통보한 뒤 나한테 와서 북에 통보한 사실을 알려줬다. 국방부를 통해서 미국에도 이 방침을 알렸다. 그러자 미국 쪽에서 '발원지 외에 지원 세력까지 공격하면 문제가 확대되지 않겠나'라고 했으나 내가 강하게 얘기해서 미국이 이해했다. 그것이 북한의 도발 억제에 도움이 많이 됐다. 북한 같은 호전적 세력엔 협상과 구걸로 (평화를) 살 수 없고 결국 우리가 더 강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의지를 보여야 도발을 못 한다."

[노무현·김정일 대화록]
"盧·金 대화록 봤다… 國格 떨어질 내용이라 밝히기가 참…"

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논란이 됐던 2007년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의 대화록에 대해서 "안 밝혀지는 게 낫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후,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 나눈 대화록을 보고 분노했다는 말이 있었다. 어떤 내용이었나.
"격분하거나 화를 낸 것은 아니다. 다만 국격(國格)이 떨어지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안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그 내용은 국격이라고 하기에도 좀…. (대화록에는) 한·미 관계 얘기도 있고 남북 관계 얘기도 있다. 이제 검찰(수사 과정)에서 일부는 나왔으니까 NLL 문제는 밝혀지겠지. 취임하고 보니 '안 밝혀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엔 밝혀지면 국민에게도 안 좋을 것 같다."

[노무현 前 대통령 죽음]
"갑작스러운 死去 소식 듣고 믿기지 않아
어디 중병 걸렸나 생각해 두차례나 확인"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전임인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그의 갑작스러운 사거(死去) 등에 대해서도 소회를 털어놨다.

―노 전 대통령 사거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나.

"난 믿기지 않았다. 혹시 뭐 아파서 어디 중병에 걸렸나 생각해서 확인을 두 차례나 했다. '어떻게 돌아가셨나?' 하니까 '떨어졌다'고 하더라. 믿지 못하겠더라."

―지금 생각할 때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 후회되는 점은 없나.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노 전 대통령을 서울로 불러서 조사한다고 해서 내가 민정수석에게 '방문 조사를 하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내가 검찰에 명령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때는 전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있을 때였다. 내가 수사를 중지하라고 하면 자칫 대통령이 초법적으로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못 했다. 민정수석에게 (봉하마을로) 방문 조사를 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권유를 했었다. 전날까지 (그런 권유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노 전 대통령 본인이 서울로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교통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대통령) 전용 기차를 쓰라고 했더니 (노 전 대통령이) 버스를 타겠다고 해서 청와대 버스를 보내줬다."  

[세종시]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조선일보 양상훈(오른쪽) 편집국장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이 대통령은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40분을 넘긴 2시간10분 동안 인터뷰에 응했다. /이진한 기자
―대통령은 세종시 이전에 반대했다. 지금 이전이 시작된 상황에서 보면 어떤가.

"그 문제는 (이미 착수한 이상) 어떻게 생각한다 하는 게 이제 의미가 없다. 지금 여러가지 문제가 이야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빨리 (세종시를) 안정시키는 게 중요하다. 내가 최근에 한 번 가봤다. 가보니까 정말 공직자는 공직자대로 불편하고 그렇더라. 또 그런 (불편)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더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 효율 문제다. 행정도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데 그 점이 제일 걱정이다. 총리도 일주일에 세 번 네 번 왔다갔다 한다는데 5일 근무하면 그중에 실제 근무하는 건 왕복하는 시간 빼면 한 3일 근무하는 정도 아닌가.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예 내려가질 않는다고 하더라."

―김황식 총리도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걸 어떻게 정상화시키느냐로 생각해야지 지나간 이야기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반대할 당시에) 내 생각에는 남북통일이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고 봤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 남북통일이 되겠구나라고 생각됐다. 통일이 된다고 하면 개성 쪽 가까운 북한 땅에 하면 국유지니까 돈이 안 들지 않느냐. 그리고 거기에선 서울에 오는데도, 평양에 가는 데도, 그리고 인천공항을 가는 데도 몇십분씩밖에 안 걸린다. 그래서 내가 그때 '통일수도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던 거다."

[퇴임 후 계획은]

"위대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돼 대단한 보람
나라에 부담은 안주면서 도움될 일 할 것"

오는 24일로 5년 임기를 마치는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구상에 대해 "나라에 부담은 안 주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아주 조용하게 하며 지내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해외 굴지의 컨설팅 회사가 (퇴임 후에) 이런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계획서를 만들어서 보내주기도 하더라"며 "어떤 정상은 '재임 중에 휴가를 같이 못 갔으니 퇴임 후에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단정적으로 딱 뭘 하겠다고 결정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서 "대한민국은 참 위대한 나라이고 이런 위대한 나라의 대통령이 됐다는 것에 나도 대단한 보람을 느낀다"며 "우리 국민이 때로는 시끄럽고 말이 많은 것 같아도 참으로 대단한 국민"이라고 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청와대에서 최금락 홍보수석과 박정하 대변인이 배석했다.

[국민 평가 낮은데…]
"난 세계서 가장 열심히 한 대통령… 억울하단 생각안해
대기업을 바꾸려면 총수 문화부터 바꾸는게 매우 중요"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자신의 재임 기간에 대한 평가에 대해 "두 번의 경제위기를 극복해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국내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 스스로 억울하다 생각하지 않고, 나 스스로 평가할 때 경제위기를 맞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한 대통령이라는 자부를 갖고 있다"고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먼저 극복했고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등급도 일본과 같거나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섰다. 국내에선 이런 부분을 평가받지 못하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하나.

"내가 취임했을 때는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던 시점이었다. 우리 정부에서 빈부 격차 개선 성과가 가장 좋고 중산층도 줄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중산층이 계속 무너졌다고 주장한다(이 대목에서 이 대통령은 중산층 관련 수치와 도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이건 정치적·이념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 됐지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지난해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모임에 가서 예상치 못한 큰 환대를 받았다. 500명 정도가 모여서 정말 반기더라. 지금은 아니더라도 세상의 판단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재임 중 '부자 정권'이라는 말이 계속 따라다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정책을 훨씬 더 신경 쓰고 집중했다. 경제위기 때는 아무래도 실적이 대기업이 훨씬 좋으니깐 (나보고) 대기업 위주로 했다고 한다. 위기 때 대기업을 죽일 건가? 나라를 살려놓고 봐야지. 대기업 정책, 중소기업 정책 다 해야 한다."

―대기업 CEO 출신으로 우리나라 재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볼 땐 대기업 문제는 기업 총수의 문화를 바꾸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청와대에서 회의를 열어 겁을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된다. 기업들은 해외로 다 빠져나가려고 하고,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견디자고 해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재벌 총수 12명을 모아 당부했다. 그들에게 하청업체의 대표들을 불러놓고 고맙다고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이해를 시켰더니 여러 대기업에서 납품업자들 불러서 회의도 하고 실질적으로 많이 바뀌었다는 보고를 들었다."
    
 (왼쪽)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 직후인 2010년 4월‘, 천안함 46용사’분향소를 찾아 헌화한 뒤 돌아서고 있다, (가운데)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10일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한 모습.‘ 한국령’이라고 쓰인 암반 비석을 만져보고 있다, (오른쪽)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4대강 사업 비판에…]
[Q: 4대강 사업, 한꺼번에 안하고 단계적으로 할 수는 없었나? ]
"다른 지역서 가만있겠나… 단계적으론 50조 들여도 못해"
― 4대강 사업은 꼭 그렇게 임기 중에 한꺼번에 했어야 했나.

"나눠서 하는 건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다. 민주당에선 영산강을 먼저 하라고 했고 낙동강변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토목, 물 문제와 관련된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 어느 한 곳을 먼저 해서 잘 되면 다른 곳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했으면 정치적 부담도 덜하지 않았겠나.

"4대강에 22조원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식(단계적)으로 하면 50조원을 들여도 다 못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비슷한 사업을 추진했었고, 각각 70조원·48조원 든다고 나왔었다. 내가 집권한 초기에 경제위기를 맞았다. 안 그래도 공공근로에 (한 해) 4조~5조원씩 들여야 했다. 그걸 하느니 4대강을 하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 골고루 딱 맞는 거다. 정치적으로도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민주당에서도 운하만 아니면 반대 안 한다고 했었다."

―대운하를 못 한 것이 아쉬운가.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강 자체를 생산적인 데 쓰지 않고 하수구처럼 쓰는 나라는 없다. 콩고에 가도 큰 강을 따라 원자재 수송한다. 네덜란드에서 그리스까지 운하를 통해서 가더라. 그래서 운하를 만들면 좋겠다 생각한 거지.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 당선되고 이 문제에 대한 국민 인식이 달라졌을 때 추진하든가 할 문제다. 내가 이제 와서 뭐라 말할 수는 없다."

―최근 감사원이 4대강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화가 나지 않았나.

"공무원들은 물일(물과 관련된 공사)을 이해 못 한다. 물일은 홍수 한번 만나면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빨리 해야 한다. 감사원에서 환경 하는 사람들은 물일에 대한 이해가 없다. 감사원도 모두 정부 산하인데 내 입장에서 뭐라고 할 수 있겠나."

[사면·측근 비리에…]
[Q: 특별사면 국민 비난 받을것 알면서 왜 했나?]
"임기중 발생 비리 사면않겠단 약속은 지켜"
"먼저 정치한 이상득 의원 출마 막을 수 없어"
―얼마 전 실시한 특별사면은 비판받을 것이 분명하고, 대통령도 그걸 알았을 텐데 왜 했나.

"사실 떠날 때 (마지막으로) 하려고 작년 8·15와 연말 때 사면을 안 했다. (이번 7번째 사면 전까지) 우리 횟수가 6번인가 했다. 보통 (전임 대통령들은) 8~9회 했다. 사면했다는 걸로 욕을 먹지만, 내 임기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는 안 하겠다는 약속만은 지켰다. (이번에) 민간인 사찰, 이런 건 사면 안했다. 최시중씨 같은 사람은 그 (임기 시작되기) 이전의 문제니까. 원칙은 몇 가지 지켰다. 측근 사면이라고 하는데 사실 진짜 측근은 안 했다.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2008년 총선 때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출마를 막았어야 했다는 후회는 없나.

"이상득 의원은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정치를 하고 있었다. 내가 취임하기 전에 이미 국회부의장 하고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다 했는데, 내가 대통령이 된 후에 정치 들어왔으면 모르겠지만, (이 전 의원의 출마가)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이 대통령은 인터뷰 내내 '이상득 의원'이라고 불렀다)."

―임기 중 벌어진 민간인 사찰 문제는 정말로 몰랐나.

"몰랐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정치적 거물을 사찰한 것도 아니고 신문에 난 거 파일링한 거더라. 그런 건 수석이나 실장한테 (보고)할 것도 아니더라. 과거에 하던 스타일대로 한 거다."

['고·소·영' 인사 논란에…]
Q: 첫 수석 전원이 서울·영남, 잘못 아닌가?
"고·소·영 인사라는 비판엔 동의 못해"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강부자'(강남 땅부자)라는 비판이 있다. 첫 청와대 비서진 인선 때는 서울 아니면 영남 출신들만 기용했는데, 지역 안배 같은 고려를 하지 않은 건가.

"나는 지역을 고려해서 인사를 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난 지방색이 없다. 기업에서 일할 때도 그런 것 따지지 않았다. 언젠가 주요 자리에 4명을 인사하는데 3명이 호남 사람이었다. 그랬더니 (내 얘기를 소재로 했던) 드라마에서 전북 군산 사람으로 나온 것을 가리켜 내가 호남 출신이라는 말이 나오더라. 이 정부에서 전남 출신 국무총리도 처음 나왔고, 전남 출신 국방장관도 처음 나왔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동시에 호남 출신인 적도 처음이다. 나는 각자 그 사람의 적성에 맞게 쓸 뿐이다. 인사는 첫째, 능력 위주로 해야 한다. 둘째는 생각이 다르지 않고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과 같은 대학 출신들을 중용했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난 '기왕이면 고려대 출신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지금 농림장관이 고대 출신인데, 난 거기 나온 줄 몰랐다. 내 인선이 '고소영'이란 주장은 좀 억지라고 본다."

―대통령 5년을 하고 나서 보니 지역 안배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됐는가, 그렇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도 안 된다고 본다. 처음 당선된 직후에는 우리한테 자료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씨가 '모든 자료를 대통령 기록원에 넘겼다'고 하더라. 정말 막막했다. 지금은 2만명에 대한 자료가 있다. 이를 다음 정부에 모두 넘겨줬다."

[내곡동 사저 의혹에…]
Q:퇴임 후 사저 꼭 서울이어야 했나?
"경기도 땅도 찾아 헤맸다고 들었다"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은 특검 수사까지 이어졌다. 서울이 아닌, 서울 근교 경기도에 사저 부지를 매입하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나.

"경기도에서도 땅을 많이 찾아봤다. 경호처에서 경기도 일대를 헤매지 않은 데가 없다. 그곳도 땅값이 비싸더라. 그리고 경호처 사람들은 경호상 문제가 없는 땅을 우선해서 찾은 것이다. 난 사실 고향 같은 논현동 (자택으로) 가고 싶었지. 거기서 CEO (최고경영자)도 되고 서울시장도 되고 대통령이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경호처가 경호상 이유로 반대해서 다른 곳을 찾았다."

―내곡동 사저 부지를 본인 이름으로 구입하지 않았는데….

"(경호처에서) 대통령 이름으로 하면 주변 땅값이 올라 구입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역대 대통령들이 그렇게 했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아들 명의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살 수 있지 않았나.

"내 생각엔 건축 허가를 받으면 어차피 내 이름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들(시형씨)에게 재산으로 물려줄 것도 아니고, 내가 평생 죽을 때까지 살 집인데…."

    
[천안함·연평도]
"천안함 수색작업 현장서 한주호 준위 만났었는데… 숨졌다는 소식 듣고 큰 충격
연평도때 '확전 말라' 지시? 공군한테 때리라고 하니 軍출신들이 안된다고 하더라"
이명박 대통령은 4일 본지 인터뷰에서 임기 5년 중 가장 가슴 아픈 일로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을 꼽았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당한 뒤에 자작극이라는 소리가 나왔을 때 특히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천안함 폭침 초반 정부에서 "(사건 원인에 대해) 예단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다. 북의 공격이 아니라 우리 군의 실수로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떻게 군의 실수로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날 수 있겠나. (천안함을 침몰시킨 북한 어뢰를 찾아낸 건) 우리 국운(國運)이었다고 생각한다. 1번이란 글씨가 적혀 있는 어뢰를 찾아냈을 때 미국도 놀라더라. 그런데 (일부에서) 이걸 가짜라고 하더라. 나는 이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본다. 좌파 진보라기보다는 종북(從北) 세력이라고 봐야지. 이번에 은하 3호를 건져냈을 때 거기에도 번호가 나왔는데, 여기에 대해선 가짜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쐈다고 발표했으니까 아무 소리도 없는 것 같다."

―두 동강 난 천안함을 건져올릴 때 심정이 어땠나.

"오죽했으면 (사건 직후 직접) 현장에 갔겠나. 그때 한창 수색 작업 중이던 한주호 준위를 만났다. 내가 '무리하지 말라. 물이 차고 깊으니 조심하라'고 했는데 '괜찮습니다'라고 하더라. 그런데 천안함 46용사에 이어 한 준위까지 숨져 내가 충격을 두 번 받았다. 한 준위 아들은 학교 선생님이 됐고, 전사자의 한 어머니는 받은 포상금을 함정 기관총을 사는 데 보탰다. 나는 그런 분들이 계셔서 종북 세력이 있어도 우리나라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시 청와대에서 "확전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확전하지 말라고 얘기 안 했다. '공군 뒀다 뭐하냐'고 했다. 당시 (국가위기관리센터 긴급회의에) 배석했던 한 인사가 청와대 대변인한테 개인적인 의견을 전한 거다. 그 후 나도 책임 추궁을 했다. 군 출신들은 확전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공군 지원에 대해 말하니 당시) 군 고위관계자가 교전 규칙을 얘기하면서 '확전하면 안 된다. 미군과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길로 합참과 국방부를 찾아가서 '교전 규칙은 지켜야겠지만 이건 우리 영토를 침범당한 사건이다. 국토를 지키는 건 교전 규칙과 관계없다'고 명령했다. 나중에 보니 교전 규칙에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못하게 했으니 그랬던 거다. 공군한테 때리라고 하니까 우리 군이 놀라더라. 그때 이후 (북 도발 시) 현장에서 적극 대응하고, 보고는 나중에 하라고 했다. 우리 영토를 공격받으면 발원지와 지원 세력까지 육·해·공으로 공격하라고 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군이 많이 변화했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천안함 폭침을 "재임 중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이라며 "(퇴임 이후) 앞으로도 (천안함·연평도 사건 전사자들의) 묘지를 자주 찾아갈 것"이라고 했다.
[광우병 촛불 시위]

"취임 초로 돌아가도 美와 쇠고기 협상할 것"
"세계가 다 먹는 쇠고기인데… 협상 반대는 상식 밖의 일
촛불때 경찰청장 불러 말했다, 절대 사람 안 다치게 하라고
그랬더니 컨테이너 쌓더라"

―광우병 촛불 시위가 없었다면 임기 5년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촛불 시위는 계획적으로 한 거라 피할 수 없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진보 단체들이 다 모였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까 이미 그 사람들이 '이걸(시위를) 크게 한번 해서 정권을 뒤흔들겠다'는 계획이었다고 들었다. 몇 명 다치면 정권을 바꿀 수 있다고도  했다. 내가 경찰청장 불러서 '절대로 사람이 안 다치도록 하라' '(경찰이) 후퇴해도 좋고 (시위대가) 청와대 들어와도 좋으니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라'고 지시했다. 정권 초반이어서 경찰이 과잉 대응을 할 수도 있고, 시위가 격해지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시위대가 유모차까지 끌고 나오니 (경찰이)컨테이너 박스를 광화문에 쌓아놓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내가 독재자도 아니고 군사정권도 아닌데 사람이 다치는 일이 벌어져서야 되겠나. 또 세계가 어떻게 보겠나. 그랬더니 한쪽에선 너무 약하게 대응했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심하게 했다고 하더라."

―취임 초로 다시 돌아가면 그래도 미국과 쇠고기 협상 타결할 것인가.

"난 했을 거다. '글로벌 코리아' 하려면 FTA를 해야 하는데, 전 세계가 다 먹는 쇠고기를 안 먹는 국가(의 지도자)가 그게 무슨 지도자인가. 그거(쇠고기 협상) 안 하면 내가 대통령 자격이 없지. 그런 상식 바깥의 일(쇠고기 협상 반대)을 대통령이 된 사람이 타협하는 건 맞지 않다."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손태규의 ‘직필직론’]이 대통령과 이 후보자의 관행(2013.01.31)

출입금지 잔디밭에 난 무단횡단 길
지도자가 ‘관행대로’ 그길 따라간다면 국민들이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인데 왜 나만 갖고 이러는가.”

공교롭게도 특별사면을 강행한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문회에서 갖가지 의혹에 시달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항변이 거의 똑같아 보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인들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을 사면해 준 사실을 상기시켰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을 전례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면을) 필요할 때는 임기 중에 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고 이전 정부 때도 그렇게 해왔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른바 ‘관행’이라는 의미이다. 

이 후보자도 출장비용으로 부인의 여행경비를 충당했느냐는 지적에 “100%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해외 출장 때 부인 동반에 대해서도 “관례였다”고 말했다.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비슷한 태도로 변명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 이 후보자 모두 관행에 대해 잘못된 생각과 태도를 갖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국민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관행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관행이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설사 법에 어긋나지 않더라도 도덕이나 윤리의 기반이 희박한 관행은 이기심과 편의주의와 다르지 않다. 멀쩡한 길을 놔두고 조금 둘러 간다고 해서 곱게 깔린 잔디밭이나 꽃밭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이 많다. 자연이 망가져도 사람들은 ‘출입금지’ 팻말까지 무시하며 순간의 편리함을 선택한다. “그깟 잔디나 꽃이 무슨 대수냐”며…. 그렇게 용기(?) 넘치는 사람들을 보며 사람들은 께름칙한 기분을 느끼지만 결국 너도 나도 그 뒤를 따른다. 그래서 보기 흉한 길이 새로 생긴다. ‘관행’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바람직하지 않고 나쁜 일이라도 자기 목적을 위해 쉽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남까지 용서하며 ‘관행’을 만든다. 보통 국민들이야 그렇다고 치자.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최고법원의 수장 후보자가 관행임을 내세우며 잔디밭이나 꽃밭을 가로질러 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얍삽한 행동을 보면서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할 국민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관행이 잘못된 것이면 하지 않으면 된다. 나쁜 관행은 좋은 관행으로 바꾸면 된다. 대통령이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미국에는 1947년부터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전국칠면조협회’와 ‘전국 가금류와 달걀 위원회’가 대통령에게 살아있는 칠면조 한 마리를 기증하는 행사를 백악관에서 여는 관행이 있다. 전국에 공개되는 그 칠면조는 추수감사절에 대통령이 먹는 것이다. 그러나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각하, 맛있게 드십시오’라는 글이 적힌 팻말을 목에 두른 칠면조를 보면서 “그냥 살려줍시다”라는 한마디로 오랜 관행을 깨버렸다. 언론은 다음 날 “케네디 대통령이 칠면조를 사면했다”고 보도했다. 또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양심 속에 살아있을 개념 있는 행동”이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선물 받은 칠면조를 먹는 관행 대신에 사면하는 관행이 정착되기까지에는 20년이 더 걸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6년 임기 동안 갱 두목 등 926명의 범죄자를 사면했으나 칠면조는 한 번도 사면하지 않았다. 언론은 “그가 선물 받은 칠면조는 악당이란 말인가”라고 비꼬기도 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역시 민주당 당사를 도청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 대통령은 사면했으나 선물인 칠면조는 사면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이 ‘사면’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칠면조를 먹은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공식으로 칠면조를 사면하는 관행을 세웠다. 백악관 인근에서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이 칠면조는 지금부터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다”고 선언했다. 이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관행을 이어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해 추수감사절 때 선물 받은 칠면조를 사면한 뒤 관례대로 워싱턴 인근의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 생가 농장으로 보냈다. 

미국에서 칠면조 선물은 오랫동안 용기와 격려의 전국적인 상징이다. 하지만 한 해에 2억5000만 마리의 칠면조가 도살당한다. 그래서 일부 미국 사람들은 대통령들의 칠면조 사면을 위선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극도로 고통 받는 동물에 대한 조롱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비리를 저지른 측근을 풀어주는 정치 목적의 특별사면을 지극히 자제하는 대통령들이기에 대부분은 이를 즐거운 볼거리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쿠바에 장거리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던 옛 소련의 기도를 막았던 케네디 대통령이 용기와 결단력을 다시 발휘해 칠면조의 생명을 연장시켜주기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을 단절하는 과감한 대통령, 그 관행을 누구도 납득하는 상쾌하고 유쾌한 새로운 ‘사면 관행’으로 정착시키는 대통령들. ‘칠면조 사면’ 정치를 하는 미국 대통령들과 ‘친인척 사면’ 정치를 하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중세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천국에 가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지옥에 가는 길을 잘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의 시오노 나나미는 이 말을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기를 각오해야만 국민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고 해석했다. 비록 인격에 문제가 있더라도 국민을 잘살게 해주는 큰 목적만 이루면 좋은 지도자라는 것이다. 결과만 좋으면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이 정치라는 마키아벨리 식 사고는 뜨거운 역사적 논쟁거리이다.

이 대통령은 특별사면을 강행한 뒤 “법과 원칙에 맞는 사면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그 결단(?)을, 국민을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 지옥행을 감수했다고 여기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이 대통령이 오로지 자신의 정치 목적을 위해 나쁜 관행을 고집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야말로 국민을 위하는, 누가 봐도 명분 있는 일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꽃밭이 아니라 경부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할지라도 나무라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칠면조 사면에 비해 한참 부끄러운 친구·인척 사면 때문에 한국 정치는 한참 뒷걸음질 치고 있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시론] 북한이 을이라는 착각(2013.01.29)

최근 북한의 강경 대응을 보노라면 한반도에서 갑을관계를 의심케 한다. 이명박 정부가 주장한 남북관계 정상화는 잘못된 갑을관계를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시혜를 베푸는 쪽이 우리인 만큼 남북관계에서 명백히 북이 을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당한 기다림의 전략을 구사하면 대남 의존적인 북은 반드시 고개를 숙이고 굴복해 나올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북이 항상 을이라는 인식은 경제 사정이 곤궁한 탓에 외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원한다는 전제에서다. 특히 김정은 체제는 정치적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외부의 경제적 지원이 더더욱 절박하다는 분석이다. 그 때문에 북한은 남쪽에 손을 벌리고 남북대화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정책적 결론은 남측이 먼저 손을 내밀 필요가 없다는 데로 모아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런 가정은 북한이 경제적 지원을 꼭 남쪽에만 의존할 때에야 가능하다. 남쪽이 아닌 대체재가 존재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던 것도 갑을관계를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갑의 위치를 고수하려는 이명박 정부에 북은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았고, 오히려 대체재를 찾아 중국으로 달려갔다. 북은 남측에 굴복하지 않고 군사적 도발로 응수했다.

 더욱이 최근 북한은 대외전략의 전환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북한의 대외전략은 체제 인정과 안전보장을 미국에 담보받고 경제적 지원과 협력은 한국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0여 년간 지속된 이 노선이 최근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거에 의해 주기적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그로 인해 힘겨운 협상과 대립을 반복해야 하는 미국과 한국보다 중국에 북한의 안보와 경제를 의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한 중국도 북한의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일정하게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 천안함 사태 당시 미 항모의 서해 진입을 중국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북한의 입장을 시종일관 두둔한 사례는 이제 안보를 미국 아닌 중국에 의존해도 가능하다는 방증이었다.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압박 역시 북·중 경협의 확대로 충분히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남북경협의 빈자리에 황금평 위화도가 대체되었고, 남북교역의 감소만큼 정확히 북·중 교역이 증가했다. 굳이 미국에 읍소하지 않아도 한국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안보와 경제적 필요를 나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역설적으로 북이 얻은 교훈이었다면 과장일까?

 한국과 미국에 의존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북한의 입장은 금년 신년사에서도 잘 드러났다. 연설문 전반에 녹아 있는 분위기는 상당한 ‘자신감’이었다. 강성대국 원년의 활기찬 평양의 모습, 고층 아파트와 나아진 전력 사정 등은 방북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연말 은하3호 발사 성공도 북의 자신감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신년사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한반도 비핵화 등 미국을 겨냥한 적대적 혹은 우호적 입장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점이나 대남과 관련해 기존의 원칙적 입장만을 재확인하고 있음도 북이 먼저 입장을 정하지 않고 미국과 한국에 공을 넘기는 전략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안보리 결의 이후 북의 강경한 제멋대로도 같은 맥락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북이 을임을 강조하는 안이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잘못된 정세 인식은 그릇된 정책 선택으로 귀결된다. 아쉬운 것은 북쪽이니 우리가 나서서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다.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자의적 갑을관계론에 매몰된다면 남북관계는 시작부터 가시밭길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종교인 과세방안 빠른 시일 내 발표할 것”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2013.01.28)

  
크고 작은 국책 과제를 총괄하며 MB 정부 5년을 함께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선진일류 국가로의 도약을 내걸고 출범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유로존 위기 등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수비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며 “선방했다고 자부하지만 청년실업과 서민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퇴임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이명박 정부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났다. 그는 현 정부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고용노동부 등 임기 5년을 이 대통령과 함께했다. 인터뷰는 23일 서울 집무실인 명동 은행연합회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 중독’이라던데 맞나.

“지금까지 정부 기업 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는데 모셨던 분 가운데 가장 열심히 일하는 분이란 점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웃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청와대 수석 시절이었다. 토요일 새벽 5시에 물 먹으려고 일어났다가 휴대전화를 보니 간밤에 전화를 세 번이나 하신 것 아닌가.”

―대통령 전화는 발신자 이름에 뭐라고 뜨나.

“‘VIP입니다’라고 찍힌다. 요즘에는 ‘MBtious’(‘야망이 있는’이란 뜻의 ambitious와 동음)로 뜬다(웃음). 부속실장이 관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전화가 걸려온 게 오후 11시 반, 0시, 오전 1시였다. 토요일 대통령 행사가 많아 점심 후 통화가 이뤄졌는데 내용인즉슨 ‘간밤에 본 TV 시사토론에서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패널이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했다’면서 ‘중요한 토론이 있으면 제대로 된 팩트를 미리 전달하라’는 지시였다. 어떤 날은 오전 6시 반에 ‘신문 의견광고에 정부 정책에 대한 오해가 담겨 있다’는 전화를 한 적도 있다. 그런 식으로 미디어를 통해 국민과 ‘암묵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MB정부, 두차례 경제위기 겪으며 수비 급급 

―하지만 현 정부는 임기 내내 ‘불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할 말은 있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반성한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라든지 녹색기후기금(GCF) 본부 유치를 따낼 때처럼 소통에서도 목숨 걸고 노력했어야 했는데….”


―박근혜 정부 역시 ‘불통 정부’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소통이란 게 상당히 기술적 기능적 측면이 크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장차관들이 워크숍 등을 통해 소통의 노하우도 전하고 토론도 하며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기자들 입장도 생각해 봐야 한다. 뉴스를 주지 않으면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알아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메시지 기획이나 관리라는 게 상당히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야기를 경제 쪽으로 돌렸다.

―MB는 경제대통령을 내세워 집권했지만 지난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3.2%는 역대 정권 중 최악이다. 

“예기치 않은 글로벌 금융위기, 유로존 위기 등 세계경제 위기가 두 차례나 왔다. 지난 5년간 세계경제는 MB정부 전 10년 동안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우리는 이번 불황이 오기 전 5년간 성장률이 세계경제 성장률보다 0.4%포인트 낮았는데 불황이 시작된 2008년부터는 오히려 0.5%포인트 정도 앞질렀다. 경제 규모도 11%(2011년 기준)나 커졌다. 중국과 인도를 빼면 우리 성장률이 1위다. 미국 일본 유럽은 마이너스다.”

―대기업 위주 수출드라이브로 덩치는 커졌을지 몰라도 서민 생활은 힘들었다. 

“다른 나라와의 순위는 높아졌는데 (절대적인) 기록이 안 좋았기 때문에 서민 생활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 패턴을 보면 경제위기가 오기 전에는 유가가 급등하고, 위기가 지나가면 급락했다. 그런데 2010∼2011년부터는 유가가 100달러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곡물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와 곡물 수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서민들의 물가고통이 심했다.” 

―그런 외부요인 말고도 성장의 온기가 서민들에게까지 안 미쳤다는 게 문제 아닌가. 

“실제로 기업은 부자가 됐지만 가계는 가난해졌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전에 비해 가계저축은 낮아졌지만 기업저축은 높아졌다. 자본이 노동으로 분배되는 ‘노동 분배율’도 조금씩 낮아졌다. 소득 증가율보다 임금 상승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비정규직 임금 상승 비율이 여전히 낮다.”

복지지출 비중, 이미 OECD 평균 근접 가능성 

―그래서 양극화가 커졌나.

“부익부 빈익빈을 나타내는 게 지니계수인데 우리의 경우 계속 악화되어 오다 이 정부 들어 주춤했다. 보수정부 부자정권이라 하지만 MB정부에서 분배가 개선됐다.”

―그런데 왜 서민들은 양극화가 커졌다고 생각할까.

“앞서 말한 에너지와 식량·곡물 가격 상승 외에 1인가구가 크게 늘어난 점도 원인이다. 지니계수는 가구 간 소득편차를 보는데 우리는 1인가구가 2010년 현재 414만2000가구로 10년 전보다 86.2%나 늘었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3.9%나 된다. 1인가구는 대체로 가난하다. 이런 가구 구성 변화가 전체 소득 분배 변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나 된다.”

―결과적으로, 현 정부의 과(過)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멀리 내다보고 금융 서비스 분야 등에서 구조개혁을 해야 할 이슈들이 많았는데 발등에 불 끄느라 제대로 못했다. 또 취임 첫해 촛불집회가 있었고 바로 경제위기가 닥쳐 동력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수비에 급급했다. 이제 대외건전성도 많이 좋아졌고, 체질도 개선되었다. G2(미국, 중국)도 좋아지고 있고 유로존 국가들도 ‘뼈를 깎는’ 개혁을 통해 조금씩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새 정부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박 장관은 그동안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싸우겠다”는 등 소신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선거 전 무상복지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재정정책 책임자로서 수용 불가 입장을 명확히 해 미국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사설에서 ‘한국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맞서는 장관’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새 정부는 복지 확대 정책을 내걸고 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 내 복지비중이 10% 정도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0%에 비해 절반이므로 계속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복지비중만 갖고 보면 안 된다. 복지는 세금을 내는 능력 즉 ‘담세력’으로 결정된다. 우리의 경우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복지비용이 OECD 평균의 82% 정도다. 복지 지출은 노인인구 비중과 비례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OECD 평균 72%에 달한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적정경로를 가고 있는 중이다. 걱정되는 것은 지출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거다. 선진국들이 최근 복지 지출을 줄이고 있는 등 이런저런 요소를 감안하면 한국은 이미 OECD 평균에 근접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양도 양이지만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닌가.

“노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보다 우대받으면 안 된다. 이미 기초생활수급자 사이에서 초과근무 야근 다 채우고도 공장에서 일하면 월 150만 원인데,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게 낫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가야 한다. 집 있는 사람에게 주거 혜택을 주거나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 병원 혜택을 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복지는 계층마다 다른 욕구를 정확히 포착해야 하기 때문에 설계를 잘해야 한다. 한 번 주면 뺏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시작할 때 지속가능한 정책인지도 따져야 한다.”

주택거래 정상화 급해… 가계빚 문제는 과장 

―평소 건전재정을 강조했는데 경기침체기에 균형재정 강박에 갇혀 돈쓰기를 주저했던 것은 아닌가.

“누구나 빚을 지면 불안하다. 정부도 빚을 진다. 가계와 기업도 빚을 진다. 하지만 가계 기업 정부 중 가장 효율성이 떨어지는 게 정부다. 가계는 자기 돈이니까 온갖 계산을 다하면서 지출을 하지만 나랏돈은 주인의식이 없다 보니 책임이 없다. 대통령이 임기 중에 나랏돈을 펑펑 쓰면 좋겠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이유다. 따라서 정부의 빚은 가장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두 가지 위험요소가 있다. 첫째가 고령화다. 지금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젊은 나라지만 2050년에는 세 번째로 늙은 나라가 된다. 여기에 북한 변수까지 있다. 남북통일은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국제적으로는 GDP 대비 나랏빚 비율이 60%대가 바람직하다고 하지만 한국은 30%가 좋다. 현재 34%다. 더 낮춰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 등 여러 현안이 있다. 무엇이 가장 큰 걱정인가?

“주택거래 정상화다. 매매가 안 되니 전세금만 올랐다. 거래를 옥죄는 규제들인 분양가 상한제나 재건축 초과이익부담금 등을 빨리 국회와 새 정부에서 풀어야 한다. 깡통주택이나 하우스푸어에 대해 정부가 도와줄 거라는 심리가 팽배한데 빚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에는 구제해야겠지만 현재 국제 금융기구나 신용평가사, 투자은행(IB)들의 공통적 견해는 한국의 하우스푸어는 공적자금을 투입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그는 “가계부채 문제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로 스트레스 테스트(외부충격에 대한 금융사의 위기관리 능력 평가 프로그램)를 해보았는데 은행 위기 등 시스템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저소득층이나 다중채무자들, 노인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금리를 낮춰준다든지 하는 맞춤형 대책은 필요하지만 빚 탕감으로 도덕적 해이를 만연시킬까 우려된다”고도 했다.

기업들 몸사려… 설비투자 감소 가장 큰 걱정 

―일본처럼 장기 불황으로 갈 가능성은….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 우리는 2035년까지 가구 수가 계속 늘어나는 성장하는 경제다. 일본처럼 거품이 많이 낀 것도 아니다. 미국, 스페인, 아일랜드처럼 부동산 가격이 대폭락할 것이라는 것도 지나친 걱정이다.”

―그렇다면 비관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나.

“기업의 투자 감소가 가장 걱정된다. 건설투자는 마이너스였다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고 내수도 지지부진하지만 마이너스는 아니다. 수출도 그런대로 회복되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크게 줄고 있다. 국내에서 더이상 수익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총선 대선 등 큰 정치 일정 때문에 불확실성이 커져 몸을 사린 측면도 크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모델이 중요하다. 종합편성채널만 해도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이처럼 투자가 되는 신수익 모델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 기업과 기업가에 대해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은 해주었으면 한다. 그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종교인 과세 문제는 물 건너갔나. 

“철회가 아니라 유예다. 중소 규모 종교시설에 종사하는 분들이 과세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준비기간을 줘야 한다. 빠른 시일 안에 과세방안을 발표할 거다. 과세 시기는 협의할 것이다.” 

―퇴임을 앞두고 소회가 있다면….

“경제 살리기, 선진 일류국가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위기관리로 대체된 점이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영광된 시간이었지만 서민들 생각하면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다.”

그는 퇴임후 대학(성균관대)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4대강 사업이나 인사 문제 등에서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해 갖는 아쉬움은 크다. 그러나 지난 정부를 부정하고 무조건 딛고 일어서는 게 새 정부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때가 됐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의 연속성 없는 개혁은 비용과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권교체 경험도 많아졌다. 경제정책에 관한 한 감정을 앞세워 흑백논리로 보지 말고 MB정부의 공과를 냉정하게 봐야 할 시점이다. 

2013년 1월 17일 목요일

[사설]되냐 안 되냐보다 얼마가 드는지부터 정확하게(2013.01.18)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어제 기자회견을 자청해 “대선 공약들은 실현 가능성과 재원 마련 가능성 등에 대해 관계자들과 충분히 논의하면서 진정성을 갖고 정성껏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수위의 인수 작업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공약에 대해 지키지 마라, 폐기하라든지, 공약을 모두 지키면 나라 형편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에 대한 도리에 어긋난다”고 부연했다. 최근 정치권과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선 공약의 수정 보완론이나 속도 조절론, 폐기론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긴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의중이 담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약은 원래 이행을 전제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 당선인이 공약 이행 의지를 재확인한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공약 중에는 무리하게 이행해서 얻는 득보다 손실이 훨씬 큰 경우도 있다. 세종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박 당선인이 약속을 지키겠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수정안을 끝까지 반대해 관철시켰지만, 지금 세종시는 행정의 비효율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박 당선인에게 도움이 됐을지 모르나 국가적으로는 손실이 크다. 

국정 최고 책임자는 공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정 형편도 고려해야 한다. 박 당선인의 공약 실현에 필요한 재정 소요액이 적게 계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4대 중증질환 무료 진료만 해도 박 당선인 측은 6조 원가량이 든다고 했으나 보건복지 관련 4개 학회 및 연구기관이 공동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21조8000억 원이 든다는 추계가 나왔다. 박 당선인의 모든 공약을 이행하는 데 새누리당이 추계한 131조 원(5년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 수 있다는 얘기다. 

선거가 끝난 뒤 공약 이행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사실 잘못이다. 공약을 만들 때 소요액까지 면밀하게 계산해야 하고, 선거 전에 충분한 사전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작년 4·11총선 때 기획재정부가 공약 소요 금액에 대한 사전 검증을 시도했으나 중앙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제동을 거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재정부가 인수위의 요청에 따라 이달 말까지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정부에만 맡겨 놓는 것은 한계가 있다. 차제에 부문별 전문가 그룹과 정부, 인수위가 참여해 공약 이행에 필요한 정확한 예산 규모를 객관적이고도, 투명하게 산출해 내고, 이를 국회에 설명하는 절차를 거치면 논란이 줄어들 것이다. 그 후에 공약의 수정이나 폐기 또는 우선순위의 조정, 재원 조달의 구체적 방법을 논의하는 게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한마당-박병권] 서번트 리더십(2013.01.15)

근대 민족국가 탄생 이래 학자들 사이에 가장 많이 연구되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리더십이다. 심지어 리더로 성공하려면 흔히 하는 말로 ‘제 잘난 맛에 사는’ 특유의 기질이 있어야 한다는 연구도 있다. 1997년 미국의 심리학자 델루가 로널드 레이건까지 39명의 역대 미 대통령을 분석한 결론이다. 리더십 연구는 전공을 묻지 않는다. 가정이나 기업을 확대한 것이 국가 아니겠냐는 기본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리더십 연구의 기본은 바로 전통적인 설득이론이다. 연구 분야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론이 있지만 정치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은 설득 방법에 따른 분류다. 합리적, 권위적, 보상적 설득으로 대별된다. 지나친 단순화가 문제이긴 하지만 이해하기 쉬워 최근까지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민주적 지도자는 합리적 방법을, 독재자는 권위적인 방법을, 포퓰리스트는 보상적 방법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국가에서 합리적 설득이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지사이며 대표 선수격이 바로 서번트 리더십(servent leadership)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각광받았던 리더십이기도 하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미국의 로버트 그린리프가 1970년대 처음 주창한 서번트 리더십의 핵심은 존중과 희생으로 요약된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선생님을 연상하면 된다. 요컨대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하인이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구성원들을 섬겨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학자들은 ‘대장금’을 서번트 리더의 전형으로 많이 거론한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도 교만하지 않았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자세를 높이 산 것이리라.

실패한 리더십으로는 ‘바사호’의 비극이 자주 거론된다. 스웨덴 왕 구스타프 2세가 해상권 장악을 위해 군함의 포를 2층으로 배치하고 구경도 키웠지만 무게 때문에 처녀 출항 때 좌초해 40여명이 익사한 바사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전문가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성과에 급급해 덩치만 큰 초대형 군함을 만든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독일의 리더십에 정통한 이대 김성국 교수의 ‘인적자원관리 5.0’에 나오는 이야기다. 새로 출범할 박근혜 정부가 밑바닥을 착실하게 다져 큰 파도에도 휩쓸리지 않고 안전하게 항해하길 바란다.

2013년 1월 13일 일요일

[김진의 시시각각] MB, 독한 맘으로 사면 안 해야(2013.01.14)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이명박(MB) 대통령은 72년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형님·멘토·친구·처사촌 4인에 대한 사면 문제다. 이 결정은 한국 사회의 수준, MB정권에 대한 평가, 그리고 퇴임 후 MB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MB가 국가지도자인지 아니면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인지도 정해질 것이다.

 ‘인간 이명박’의 고심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형님 이상득은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MB가 대통령이 되는 걸 결정적으로 도왔다. 형님 친구 최시중은 MB가 오랫동안 마음을 의지했던 또 하나의 형님이다. 친구 천신일은 가족끼리 어울리는 대학 동기이며 대선 때 MB에게 특별당비 30억원을 빌려주었을 정도로 가깝다. 부인 김윤옥 여사를 생각하면 MB는 처 사촌오빠 김재홍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MB가 개인적인 정서에 치우쳐선 안 된다. 정치인이나 측근을 사면하는 건 오랜 관행이라고 MB는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잘못된 관행을 끊는 게 역사 발전이다. 노태우는 군사반란 동지이자 오랜 친구인 전두환을 백담사로 귀양 보냈다. 김영삼은 하나회를 척결해 ‘권력 군인’이란 관행을 잘라버렸다. 김대중은 박정희 기념사업으로 ‘정적(政敵) 죽이기’란 관행에서 탈출했다. 노무현은 대기업으로부터 대선자금을 우려내는 관행을 파괴했다. 이런 결단들은 MB의 사면 문제보다 결코 쉽지 않다.

 사면에 항복하면 MB는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2010년 8·15 연설에서 MB는 ‘공정한 사회’를 새로 들고 나왔다. 수개월 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이 카드로 정국을 돌파하려 한 것이다. MB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는 며칠 전 “옛날에도 임금이 바뀌면 옥문을 열었다”고 했다. 왕조시대 얘기를 이용해 MB가 사면으로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방향이 틀렸다. 왕조시대엔 주로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풀어주었다. 반면 MB 정권의 옥문은 친인척과 측근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게 MB가 주창한 공정 사회인가.

 혹자는 4인이 모두 70 넘은 고령이라며 사면을 옹호하기도 한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심장수술을 받았다며 건강 문제를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노쇠한 노인들이 버티기에 1인실 감방이 매우 비좁다는 동정론도 있다. 그러나 그들만 노약하고 그들만 갑갑하나. 한국 사회에선 70세 이상 중 빈곤층이 40%가 넘는다. 가난한 노인 중 상당수가 쪽방에서 약봉지를 생명줄처럼 잡고 산다.

 서민층 노인 대부분은 평생 돈다발은 거의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명절을 살았지만 평생 100만원 떡값 한번 받아보질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형님은 장롱에 7억원 돈다발이 있었다. 형님 친구는 100억원 가까운 재산가인데도 권력을 이용해 개발업자로부터 수억원을 받았다. 대통령 친구는 일급 여행사를 거느린 재력가인데도 위세를 이용해 수십억원을 또 챙겼다. 생계를 위해 물건을 훔친 노인들은 감옥에 있고 상위 0.1% 재력·권력가 노인들은 풀려나려 한다. MB의 ‘공정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려 한다.

 2008년 MB가 취임할 때 국민은 분명히 요구했다. 전임자들 실패가 너무도 생생하므로 형님은 출마하지 말고 측근들은 조심하라고 국민은 요청했다. 그건 요청이 아니라 차라리 절규였다.

 MB 정권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신들만 절규를 못 들었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국민에게 또다시 배신감을 안긴 잘못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 MB는 이·최·천·김 4인을 감옥에 그대로 두고 정권을 인계해야 한다. 4인은 MB 실패의 생생한 증거로 인계돼야 한다. 그래서 박근혜 권력의 친인척과 측근들에게 서슬 퍼런 경고장이 돼야 한다.

 MB는 퇴임 후 녹색성장 지원이나 사회봉사 같은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면을 택하면 MB는 그런 일에 제약을 받을 것이다. 사익(私益)을 위해 권력을 행사한 대통령, 공정하지 못한 대통령, 지도자가 아니라 필부 같은 대통령을 국민이 과연 존경하겠는가.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손규태 칼럼]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우리 시대의 징조(2012.12.21)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이번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들어난 수많은 표제어들 가운데 단연 가장 새로운 개념은 “시대의 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정치행태와 함께 가장 잘못된 반민중적 경제정책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혁신과 함께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선거의 표제어들과 공약을 산출해 냈었다. 특히 경제민주화라는 화두가 대선의 중심공약으로 부상한 것은 1990년 소련의 패망과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체제. 즉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인해서 등장한 80대 20사회 혹은 99/1의 사회에서의 99%의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1%의 부자들의 무제약적 공격이 극한에 도달한 것에서 기인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체제와 거기에 편성한 한국의 재벌경제에 굴복한 경제정책은 김영삼 정부로부터 시작해서 국민의 정부를 내세운 김대중 정부, 참여정부를 자처한 노무현 정부에서도 계속되었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그 절정에 달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정권교체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체제와 거기에 편승한 재벌경제체제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약간의 개혁시도가 있었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거의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는 반성의 열망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와 거기에 편승한 재벌중심의 경제정책의 결과로 오늘날 한국정부와 공기업의 부채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약 1천조에 달하게 되어 대한민국은 가히 부채공화국이라 불릴 만하다. 서민들이 걸머진 가계부채의 이자는 대충 계산해도 매년 60-70조에 달하고 정부와 공기업의 부채까지 계산하면 그 이자는 매년 약 150내지 160조에 달할 것이다. 정부와 공기업의 부채도 결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 국민들이 부담하는 세금들은 앞으로 부채탕감에만 사용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 엄청난 국가부채, 공기업부채, 그리고 가계부채의 채권자들은 누구인가? 채무자가 있으면 채권자가 있게 마련인데 그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그들은 한마디로 한국의 금융 자본가들과 외국의 금융 자본가들일 것이다. 그들은 매년 모든 한국 사람들로부터 약 150조에 달하는 이자를 받아갈 것이다. 이렇게 정부와 공기업이 막대한 부채에 시달림으로 인해서 그동안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복지정책을 확대해 나갈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들에서 일률적으로 지원하던 노인들의 교통수당마저 박탈해갔다. 여기에 대해서 대한노인회가 항의했다는 소식을 들은바가 없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정책에 충실했던 한국의 역대정부들은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의 돈(이자)을 빼앗아서 부자들을 원조하는 매우 전도된 세상을 만들었다.

18세기 리카도(Ricardo)로 대변되는 구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은 누가복음 16장에 등장하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예로 들어 부자들의 밥상이 풍부해야 거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많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도 그것들로 배불리 먹고 살게 된다고 하면서 이것이 경제학의 자연법칙이라고 주장했다. 즉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으로 경제 원리를 설명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그와는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지원하는 것을 경제학의 원리라고 주창한다. 엄밀히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원조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이 금융체제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착취해가는 것이다.

경제개발을 시작한 박정희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역대정부와 그 수반들인 대통령들도 정치, 군사, 외교에서 친미자본주의 정책을 견지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에서도 한국전쟁이후 미국의 원조경제체제로부터 시작된 자유 시장경제체제의 충실한 추종자들이었다.

그러면 박정희가 시작한 경제개발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실상 60년대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한계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출구정책이었다. 말하자면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경기호황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딜레마에 직면한다. 첫째는 이념국가들, 즉 소련을 필두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존재로 인한 제한된 시장규모로 인한 생산된 물건들의 판매제약과 함께 둘째는 과도하게 축적된 자본의 활용을 위한 자본시장의 제약 등이 그것들이었다. 당시 세계자본주의체제는 우선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를 통한 상업 세계시장의 확대를 꾀하는 동시에 남아도는 축적된 자본을 제3세계의 근대화를 통해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미국이 자본시장확대를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이른바 제3세계의 근대화 혹은 산업화 전략이다. 미국은 남미와 아시아 국가들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권위주의적 정권(군사정권)을 지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근대화(산업화)를 통해서 국민들의 지지기반을 확보해 준다는 명목 하에 자본시장을 확대하고 동시에 낡아서 처분 곤란한 산업시설들을 처분하는 일거양득의 정책을 추동한다.

따라서 박정희가 추동한 근대화, 산업화는 실은 내재적 필요성도 존재했지만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과도하게 축적한 금융자본의 해소와 함께 낡은 산업시설의 처분이라는 외적 필연성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박정희가 아니고 다른 지도자가 집권했어도 산업화 내지 근대화는 이룩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근대화 혹은 산업화를 박정희의 독자적인 치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세계 인식에 기인한 것이고 동시에 그만이 산업화를 이룩해낸 지도자로 칭송하는 것은 다분히 한국의 보수 세력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기인한 것이다.

다른 한편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은 이렇게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필연성에 의해서 시작된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는 어떤 특정 지도자나 특정한 대기업들에 의해서만 추동된 것이 아니라 자기 헌신적 노동자들에 의해서 달성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공평한 시각적 판단일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박정희정권과 결탁한 지금의 대기업들을 통한 경제발전을 위해서 제도적 측면에서나 실질적 차원에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왔다. 그들은 산업화 초기에 노동자로서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열악한 환경에서 낮은 임금으로 희생을 감수함으로써 한국의 산업화에 기여했다. 오늘날 그들의 희생을 통해서 성장한 대기업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으며 그 희생의 강도는 1997년 김영삼 대통령시절 비정규직법과 근로자 파견법이 통과된 이후에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의 산업화는 처음부터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성에서 출발했고 또 권위주의적 정권의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인해서 노동자들의 희생이 강요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산업화에 성공해서 경제 강국의 대열에 서게 되었지만 노동자들과 경제적 약자들의 삶은 더욱더 처참해지고 따라서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는 심화되어가고 있다. 그 양극화가 이제는 극에 달해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생존의 벼랑에 서게 되어 자살로 삶을 마감하여 OECD 국가 중에 자살률 제1위 국가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투자처를 찾지 못해서 현찰을 몇 10조씩 은행에 쌓아놓고 있는데 서민들은 삶의 한계선 상에서 신음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정리해고 당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거리를 헤매면서 정부와 가진 자들을 원망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위협당하는 처지에 도달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회 혁명적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에서 선거운동을 돕는 김종인씨가 제시하는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도 이러한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현실을 염두에 두고 제시한 대안으로 필자는 이해한다. 경제영역에서 지금과 같이 부자들의 독식과 가난한 자들의 권리박탈이 계속된다면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가 더 이상 존속될 수 없고 조만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니 신자유주의적 세계자본주의체제는 이미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그 붕괴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에서 거대은행들과 금융기관들의 몰락은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를 경고하는 것이고 얼마 전 미국 뉴욕에서 벌어졌던 99%  1%의 사회에 대한 거대한 저항운동도 그 징표의 하나이다. 현금에 라틴적 유럽 국가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금융위기도 모두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체제의 붕괴를 드러내는 징표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것은 모두가 부자들의 탐욕과 독식, 가난한 사람들의 무제약적 착취를 자행하는 금융자본주의의 폐해가 가져온 결과들이다.

이번 한국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체제가 가져온 처참한 결과들이 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라는 표제어를 통해서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나 심지어 새누리당까지도 정권교체를 넘어서 시대교체를 주창한 것은 이러한 세계현실의 징조를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승리한 정당이거나 패배한 정당이거나 그리고 투표한 국민 모두가 인식해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체제는 이제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금의 골목상권까지를 점령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밥그릇까지를 빼앗으려고 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젖은 대기업의 총수들도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참회하여 탐욕을 버리고 정직하게 기업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새누리당은 승리에 만취해서 이전처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계속하면서 경제민주화라는 공약을 폐기하거나 희석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본인들이 말한 것처럼 “시대교체”라는 표제어가 암시하는 “새로운 시대의 징표”가 우리 앞에 다가왔고, 국민들 모두가 여기에 공감하고 그 실현을 염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실패한 민주당도 패배에만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되며 새 시대의 징표를 보다 정확하게 읽고 자기성찰과 자기쇄신에 철저할 때 국민에게 봉사하는 일이요 미래를 약속받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든지 민주당을 지지하든지 모두 새로운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공공성이 보장되는 정의롭고 공동체적 경제 질서가 새롭게 동터오는 시대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 질서에서는 부자들은 무제약적 탐욕을 버려야 하고 가난한 자들은 먹고 입을 것 걱정 없이 공의롭게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19세기 중엽 유럽 특히 영국에서 산업자본주의 모순이 극에 달했을 등장한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시대의 징표”를 읽고 쓴 그의 “자본주의 이론” 초판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영국 성공회는 그들의 39개 신앙 항목들 가운데 38개를 공격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그들의 수입가운데 39분의 1이라도 빼앗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1850년대 영국의 성공회는 그들의 신앙고백서를 부정하더라도 약자들로부터 적은 것이라도 탐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에서 1990년대 초반 영국 성공회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은 노동당에 입당하여 보수당의 부자중심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며 영국 사회에서의 정의로운 경제정책 실현을 위해서 투쟁했었다.
이러한 전통은 주전 8세기 아모스 예언자에게서 볼 수 있다. 그는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의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정치세력과 거기에 결탁한 종교 세력의 타락에 의해서 망하게 될 것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당시 부자들은“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종교지도자들까지 “모든 제단 옆에서 (가난한 자들로부터)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성전에서 (가난한 자들로부터) 벌금으로 받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아모스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