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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5일 화요일

[동아일보][단독] 김종훈 “사퇴쇼? 아내가 울고 있다”(2013.03.06)

미래창조장관 후보 사퇴前… 朴대통령과 주변에 토로 “가족들 파렴치한 취급받아”


“아내가 (미국으로) 돌아가자며 울고 있습니다. 정말 힘듭니다.”

4일 사퇴한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사진)는 3일 오후 자신의 사퇴 결심을 전하며 강하게 만류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밟혀 (미래부와 새 정부가) 힘을 받는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며 “다른 좋은 사람이 와서 미래부를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뜻도 전달했다.

동아일보는 5일 김 전 후보자의 손위 처남인 정크리스토퍼영 회장이 운영하는 키스톤글로벌의 핵심 관계자 A 씨를 만나 김 전 후보자의 전격 사퇴 후 심경과 행적을 전해 들었다. 김 전 후보자는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뒤 정 회장과 2, 3일에 한 번꼴로 만나 신변 문제를 상의했다. 사퇴 발표 직후에도 정 회장과 3시간 가까이 점심 식사를 하며 고충을 털어놓고 조언을 들었다. A 씨는 이날을 포함해 대부분의 자리에 배석했다.

A 씨는 “김 전 후보자가 사퇴한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 깨질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보자가 된 이후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자 김 전 후보자는 정 회장에게 여러 차례 “(각종 루머 때문에) 가족이  파렴치한 취급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 전 후보자의 이 같은 발언은 정치권의 발목잡기 공세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가족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괴로워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A 씨는 “사퇴 기자회견 직후 점심 식사 자리에서 김 전 후보자는 답답한 심정을 억누르지 못해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김 전 후보자가 사퇴를 최종 결심한 것은 2일 저녁이다. 하루 전에도 그는 밤늦게까지 교육과학기술부, 방송통신위원회 공무원들과 창조경제 정책을 구상하며 열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일부 매체에 김 전 후보자의 부인이 소유한 건물에 성매매 업소가 있다는 기사가 실린 것이 결정타였다. 이를 보고 충격받은 두 딸이 울면서 “이게 정말이냐”고 물은 것이다. 김 전 후보자는 “다른 업체에 관리를 맡겨 우리는 어떤 업소가 입주해 있는지 잘 모르는데도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성매매나 조장하는 나쁜 사람처럼 몰고 갔다”고 털어놨다.

▼ “이상하게 보고 뒷말 많고… 설 자리 없었다” ▼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딩. 이 건물 지하에 세 들어 있는 유흥업소 때문에 김 전 후보자와 가족은 ‘성매매 조장’ 논란에 시달렸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창업한 회사에 큰딸의 이름을 넣을 만큼 각별한 가족사랑을 과시했던 그로서는 이러한 논란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아내가 ‘무엇 하러 이런 수모 겪으면서까지 한국에 있느냐. 그냥 돌아가자’고 수차례 설득했다”고 정 회장에게 말했다.

스파이 논란에 대해서도 억울해했다. 김 전 후보자는 “만약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중요한 일을 맡았다면 미국이 나를 놓아주려 했겠느냐”며 “설령 내가 고급 정보를 갖고 있었더라도 그 정보를 한국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을 스파이로만 몰아갔다”고 어이없어 했다. 그는 “(정부) 내부에서도 (나를) 이상하게 보는 눈이 있어서 힘들었다”며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자리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만 같았다. 수장이라고 불러 놓고는 말만 많고, 내 설 자리는 없는 것만 같았다”고 하소연했다.

















































































사퇴 하루 만에 美출국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워싱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미래부 업무를 놓고 여야가 논쟁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외신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정부가 방송을 장악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만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수년 동안 아이디어를 모아 뒀던 수첩들을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들춰 보면서 ‘뭘 할까, 어떻게 해볼까’ 생각하느라 참 설렜는데, 이것도 전부 소용없게 됐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A 씨는 김 전 후보자가 장관직을 제안받은 뒤 미국 측으로부터 국적 변경에 문제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국적포기세 등 세금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납부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돈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얘기도 했다. 국적이나 세금 문제 때문에 장관직을 포기했다는 사람들의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정 회장은 국내에 지인이 거의 없는 김 전 후보자의 유일한 상담 상대였다. 하루 10번가량 통화하며 상담할 정도로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그때마다 “한국 분위기가 미국과 좀 다르다. 예상치 못한 데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너무 신경 쓰거나 상심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김 전 후보자는 4일 정 회장을 만난 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처제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정 회장은 사퇴 발표 바로 다음 날 출국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말렸지만 한국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워낙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후보자의 부인은 먼저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후보자는 정 회장에게 “당분간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서) 다른 일도 맡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벨연구소에서 ‘일이 잘 안 풀리면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쪽에도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사퇴를 ‘쇼’라고 해석하는 시선에 대해서는 “쇼할 만큼의 여유도 없다. 나중에 책을 남긴다면 이번 사퇴를 ‘정치적 쇼’라고 보는 시선에 대한 억울함을 꼭 밝히겠다”고 했다.

인터뷰를 허락한 A 씨는 기자에게 “김 전 후보자와 나눈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며 “김 전 후보자에 관한 의혹들을 꼭 풀어 달라”고 당부했다.

[기자수첩] 김종훈의 '조국 헌신'… 이렇게 가벼운 것이었나(2013.03.06)


정우상·정치부
김종훈 전(前)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4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명령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웠다"고 했다. 5일 출국길에는 "한국에 언제 다시 오느냐"라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했다.

김 전 후보자의 사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에 봉사하려 했던 기업가의 뜻을 꺾어버린 한국의 정치 문화에 대한 환멸이다. 그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통과되지 못해 국회 인사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내정 후 보름 동안 이중국적과 미국 CIA 자문위원 경력 관련 의혹 제기가 잇따랐다. 말이 의혹 제기였지 "너의 진짜 조국은 어디냐"는 거친 질문이었다.
또 하나는 "조국에 헌신하겠다"던 다짐이 단 보름 만에 포기되고 산산조각 날 만큼 가벼운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조국'과 '헌신'이라는 말의 무게에 비해 장관 자리를 받아들이고 중간에 사퇴하는 과정이 너무 가볍지 않으냐는 시선이다. 조국에 헌신하는 길이 굳이 독립열사들처럼 비장할 필요는 없다. 군 복무를 위해 훈련소로 떠나는 청년, 불구덩이에 갇힌 어린이를 구하는 소방관들은 '조국' '헌신' 같은 거창한 말 대신 묵묵히 살아가는 자체로 헌신하고 있다.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5일 오전 10시 30분쯤(현지 시각)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해“큰일을 하고 오진 못했지만, 우리 국민이 이중국적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후보자는 기자 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한마디만 하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임민혁 특파원
김 전 후보자가 살았던 미국은 인사 검증을 위해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나선다. FBI 조사관은 이웃들에게 후보자의 평판까지 묻는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인사검증은 거칠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더 엄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김 전 후보자는 회사로 치면 모든 신입 사원이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인 '극기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쓴 경우다. '조국'과 '헌신'은 대한민국 장관들이 모두 이겨냈던 극기 훈련을 중도에 포기한 사람이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릴 말이 아닌 것 같다. 

2013년 3월 3일 일요일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사퇴(2013.03.04)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전격 사퇴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으려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사퇴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변했다. 김 후보자는 "미국 국적을 포기했느냐", "미국으로 돌아가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김 후보자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어제 대통령께서 제안한 여야 회담 무산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다"며 "제가 미국에서 일군 모든 것을 버리고 마지막으로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일생 바치고자 돌아온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창조경제에 달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그러나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논란과 혼란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한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며 "조국을 위해 바치려 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절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부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와 국민이 힘을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지난달 17일 박근혜 정부의 핵심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김 후보자는 38살이던 1998년 자신이 창업한 벤처기업 '유리시스템즈'를 루슨트테크놀로지에 7280억원에 팔면서 유명세를 탔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유력지들이 김 장관 후보자의 ‘아메리칸 드림’을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 후보자의 기자회견 전문.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어제 대통령께서 제안한 여야 영수회담 무산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열심히 연구하고 도전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가지고 미국에서 인정받는 한국인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수많은 노력과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미국에서 일궈온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저를 낳아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남은 일생을 바치고자 돌아왔습니다. 그 길을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박 대통령이 말씀하시는 창조경제에 달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과학과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생산적으로 융합해서 새로운 일자리와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비전에 공감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한 대통령의 설득에 감명받아 동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정부조직개편안 논란과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의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조국을 위해 바치려고 했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제 저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마지막으로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들 미래를 위해서 박 대통령이 꿈꾸는 창조경제가 절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와 국민 여러분이 힘을 주길 부탁드립니다.

2013년 2월 25일 월요일

[글로벌 아이] ‘제2, 제3 김종훈들’의 울분(2013.02.23)

워싱턴포스트는 내년 1월에 임기가 끝나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후임으로 스탠리 피셔 전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가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피셔는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한국에 대한 구제금융을 다뤄 우리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그의 이력은 특이하다. 원래는 아프리카 잠비아 태생이다. 17살 때 미국으로 이민 와 시민권자가 됐다. MIT 교수를 지냈고,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했다. 그런 그를 피도 섞이지 않은 이스라엘은 2005년에 삼고초려해 중앙은행 총재직을 맡겼다. 이스라엘 국적을 딴 건 물론이다. 이스라엘은 피셔와 함께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그를 다시 미국이 데려다 중앙은행 총재를 맡기려 한다는 얘기다. 피셔의 국적을 놓고 시비를 벌였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요즘 교민들을 만나면 온통 화제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 얘기다. 그의 성공담에서 시작된 대화는 대부분 울분으로  끝난다. 성격 급한 사람은 “장관이고 뭐고 나라면 당장 때려친다. 그만한 재산을 가지고 편하게 살지, 뭣 하러 말년에 고국에 가서 애먼 욕을 먹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나라의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을 검증하는 건 당연하다. 그 잣대는 냉정하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이중국적 논란 속에서 빛난 건 야권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이다. 그는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글 순 없다. 김종훈씨만이 아니라 외국의 훌륭한 인재가 있다면 한국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그릇이 다르긴 다르다.

 미 중앙정보국(CIA) 논란도 ‘팩트(fact, 사실)’보다는 ‘의혹’이 먼저 내달리고 있다. 제임스 울시·조지 태닛 등 CIA 국장들과 김 후보의 관계는 꽁꽁 숨어 있던 게 아니다. 구글과 CIA 홈페이지에서 김 후보 이름만 치면 고스란히 뜬다. 1991년 김 후보가 딴 박사 학위는 위성시스템의 신뢰도와 내구성에 관한 연구다. 통신분야 전문가인 그를 CIA가 더 필요로 했다고 한다. 미국의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일도 다뤘을 게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은 ‘CIA 커넥션’이라는 용어도 쓴다. 사실상 스파이 취급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김 후보가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할 경우 오히려 몸이 다는 건 CIA 쪽이다.

 김종훈 논란의 또 다른 유감은 박근혜 당선인이다. 데려온 게 아니라 모셔왔다면 처음 인선 발표 때 직접 이런저런 설명을 했어야 한다. 인수위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140개를 발표했다. 정보통신 최강국 건설 등 미래창조과학부와 관련된 게 많다. 하지만 그 수장이 될 사람은 지금 벌판에서 홀로 물어뜯기고 있다. 그런데도 당선인은 침묵만 하고 있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제2, 제3의 김종훈들은 매정한 조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사설]김종훈과 통진당, 누가 애국자인가(2013.02.21)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올드 보이’로 가득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사의 파격이자 백미(白眉)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민 1.5세로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후보 지명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신청해 14일자로 회복했고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절차도 밟고 있다. 그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면 미국에 세금 1000억 원을 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결단이 아니다.

김 후보자도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야 하겠지만 자질 및 능력과는 상관없이 국적 문제를 장관직 수행의 결격 사유로 꼽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김 후보자에 대한 국적 시비가 반미종북(反美從北) 코드의 통합진보당에서 나오는 것은 씁쓸하다. 어느 나라든 진보 세력은 이민자와 이중국적에 관대하다. 그런데도 통진당 이상규 이석기 의원은 김 후보자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문을 지낸 경력을 문제 삼으며 지명 철회를 주장했다. 자체 행사에서 애국가도 부르지 않았던 통진당이 무슨 염치로 김 후보자의 국적을 문제 삼는가. 평생 쌓은 지식과 경험을 살려 모국에 봉사하겠다는 성공한 벤처기업인이 애국자인가, 아니면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북한 핵실험에도 침묵하는 통진당이 애국자인가.

이상규 의원은 어제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군 복무가 완전한 미국인으로서의 통과의례라고 말했던 사람이 진정한 한국인이 될 수 있느냐”며 김 후보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한국인 이민자가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미군에 복무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장에 캐나다인이 임명된 데서 보듯 국가안보 이외의 분야에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필요한 사람을 기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중국은 “과학자에게는 사상도, 당성(黨性)도 묻지 않는다”며 재미(在美) 과학자를 영입해 오늘날 우주 개발의 토대를 마련했다.

유학이나 결혼 이민으로 국경의 의미가 무색해진 글로벌 시대에 국적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국적은 달라질 수 있어도 학적은 못 바꾼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어릴 적 이민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이민 세대들은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다문화에 대한 수용력이 뛰어나다. 대다수 선진국은 양국을 아우르는 이들의 잠재력을 이용하기 위해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미래부는 부처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어 미래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새로운 개념의 정부조직이다. 이런 부처를 이끌 책임자에는 도전정신과 개방적 자세를 갖춘 김 후보자가 적격일 수 있다. 김 후보자의 국적 시비에 미국 한인사회도 격분하고 있다. “백인도, 흑인도 아닌 우리 동포의 국적을 문제 삼은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유진철 미주총련 회장의 말처럼 낡고 편협한 국가관으로는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

2013년 2월 18일 월요일

[횡설수설/박용]김종훈 vs 안철수(2013.02.19)


 

세계적인 스타 벤처기업인이 태평양을 건너 고국에 돌아왔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인 김종훈 미국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사장은 미국 이민 1.5세대다. 38세에 미국 400대 부자에 들 정도로 성공한 벤처기업인이다. 경력만 놓고 보면 토종 벤처기업인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 전 대선후보와 여러모로 겹친다. 

▷김 후보자는 1960년 서울, 안 씨는 1962년 부산 출생이다. 김 후보자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를, 안 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공계 출신이다. 김 후보자는 1992년 큰딸 이름(유리)을 따 미국에서 통신장비 벤처인 유리시스템스를 창업했고, 안 씨는 이보다 3년 뒤인 199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정보보안 회사인 안철수연구소를 세웠다. 김 후보자가 메릴랜드대 교수, 안 씨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등으로 학계에서 활동한 것도 비슷하다. 김 후보자는 스탠퍼드대 한국학 강좌에 2004년 2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고, 직원들에게 주식 40%를 나눠 줬다. 둘째딸의 이름을 딴 ‘주리 재단’도 만들었다. 안 씨도 초기 컴퓨터 백신을 무료로 배포했고 직원들에게 주식을 무상 배분했다. 지난해 2월 안철수재단을 설립하고 보유 주식의 절반을 내놓았다. 

▷출신 배경, 활동 무대와 규모를 놓고 보면 두 사람의 차이가 드러난다. 김 후보자가 1975년 이민을 떠나 메릴랜드의 빈민촌에서 신문 배달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죽기 살기로 공부한 자수성가형이라면 안 씨는 ‘엄친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김 후보자는 1998년 유리시스템스를 10억 달러에 매각했다. 안 씨가 1997년 세계 최대 백신회사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는 금액이 1000만 달러였으니 규모 면에서 약 100배의 차이가 있다. 김 후보자는 한국 문화와 언어에 서툴고, 안 씨는 ‘우물 안 벤처기업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안 씨의 귀국설과 출마설이 흘러나오면서 두 사람을 비교하는 사이버 설전(舌戰)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 논객 변희재 씨는 16일과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종훈 이분, 장관으로선 모르겠으나 민간 시장에서의 경력으로 보면 안철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글로벌 리더”라고 포문을 열었다. ‘안철수를 사랑하는 모임’은 트위터에서 “그들의 종미(從美) 근성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예측 가능하다”고 맞섰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안 씨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고, 성장동력이 꺼져 가는 한국 경제가 구원투수로 김 후보자를 불러들였다. 김 후보자는 건너온 다리를 진심으로 불사르고 고국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김종훈, 美국적 포기로 세금 1000억원 낼수도(2013.02.19)

■ 미래부 장관후보의 고국 사랑 




17일 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나라’라는 말이었다. ‘한국’이라고 하지 않았다. 18일에도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를 ‘바깥사람’이라고 불렀다. 비록 미국 국적이었지만 마음은 한국에 두고 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장관직을) 하려고 마음먹었으니까 모든 것을 처리하고 (미국 시민권을 포기)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실 김 후보자는 한국에 진저리를 낼 법한 삶을 살았다. 다섯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에게 맡겨졌으나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 부권(父權)을 우선시하는 한국의 관행 탓이었다. 미국에 이민 가서도 빈민가에서 가족과 심각한 갈등을 겪으며 자랐다. 그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생활을 “바닥까지 쳤다. 자살까지 고민했다”라고 회고했다.

○ 한국을 바라보다

그런 김 후보자를 일으킨 것은 자신의 집 지하실을 내주며 학업을 이어 가라고 격려해 준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었다. 한국에서 건너간 인재에게 미국 대학은 장학금을 줬고, 그는 ‘미국 사회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미군에 자원 입대했다.

하지만 그는 조국을 잊지 않았다. 1998년 루슨트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 유리시스템스를 10억 달러에 매각한 뒤에도 기회가 닿는 대로 한국을 찾아 강연하고 언론 인터뷰도 했다. 벨연구소 사장이던 2009년에는 벨연구소 서울연구소를 설립했고, 지난해에는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광통신기술 관련 업무제휴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자신의 위치에서 한국에 도움이 될 일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한국 투자도 활발히 검토했다. 결과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1997년 한국에 유리코리아라는 법인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투자회사인 유리자산운용을 설립했다. 개인적인 관심도 이어졌다. 2004년 스탠퍼드대에 200만 달러를 기부해 한국학 석좌교수직을 신설했고,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어려움을 겪는 조흥은행에 2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의 한반도 핵 관리 정책 ‘페리 프로세스’를 입안한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과 막역한 사이다. 군사용 통신기술을 개발한 유리시스템스의 이사로 페리 전 장관을 영입했고 이후에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스탠퍼드대 한국학 석좌교수 자리도 페리 전 장관의 이름을 따 만들었으며 2007년에는 그와 함께 북한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도 했다.

○ ‘미국 국적 포기세’ 낼 수도

김 후보자가 미국 국적을 포기할 경우 미국 정부에 막대한 금액의 ‘국적 포기세(稅)’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고소득자가 탈세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적 포기 시점에 모든 재산을 처분한 것으로 간주해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수천억 원의 재산가로 알려진 그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면 1000억 원이 넘는 세금을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김 후보자는 “‘나라를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하겠다’는 당선인의 강한 뜻에 굉장히 감명 받았다”라고 미국 국적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김 후보자가 과거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설립한 인큐텔 창립에 관여했다”라며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인큐텔 창립 당시 미국 벤처업계의 전문가로서 참여해 이사를 지냈지만 그런 경력이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인큐텔은 CIA가 최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세운 비영리 목적의 벤처캐피털이다.

김상훈·정지영 기자·워싱턴=정미경 특파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