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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4일 일요일

[조선일보][속보]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오늘 오전 돌연 자진 사퇴(2013.03.25)


한만수/조선일보DB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25일 자진사퇴했다.

한 후보자는 그간 김앤장과 율촌 등 대형 로펌에서 23년간 근무하며 주로 대기업 등 재벌과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변호해왔다는 야권과 시민단체 일각의 비판에 시달려왔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고위 인사 중 최대에 달하는 100억원대의 재산 역시 주요 검증 대상이었다.

특히 이날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해외 비자금 계좌 의혹이 한 후보자의 사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신문은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의 인터뷰를 빌어 한 후보자가 해외에 수십억대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수억원대의 세금을 탈루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비자금은 로펌에 근무하며 외국계 기업의 소송을 맡은 한 후보자가 외국에서 직접 받은 수임료일 가능성이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제출 자료를 통해 2011년 7월 2006년~2010년간 발생한 종합소득세 1억7767만원을 뒤늦게 납부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그해 국세청이 국외 금융계좌 잔액의 합계가 10억원을 하루라도 넘을 경우 관할 세무서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했는데, 한 후보자가 뒤늦게 납부한 종합소득세는 해외 비자금 관련 세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회 앞에서는 25일 한 후보자가 김앤장 등의 변호사로 재직할 당시 대기업이 고용한 ‘한만수 변호사’에게 패소한 50여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 철회 호소’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다. 이같은 악화된 여론도 한 후보자의 사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재벌을 옹호해온 한 후보자가 경제 검찰에 해당하는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되는 것을 비판하며 줄곧 사퇴를 주장해왔다.

이날 한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면서 최대석 대통령직인수위원부터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 등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낙마한 고위급 각료만 벌써 7번째에 달하게 됐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 총체적인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3년 3월 21일 목요일

[조선일보][단독] 청와대, 김관진 현 국방장관 유임하기로(2013.03.22)


    
청와대는 22일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가 전격 사퇴함에 따라 김관진 현 국방장관을 유임시킬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안보 상황이 시급해서 더이상 국방 수장 자리를 공백으로 남겨두기 어렵다”며 “김 장관이 그동안 장관직을 성실하게 수행해 왔으므로 그 업무를 계속 이어나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 같은 방침을 김 장관에게 전달했으며, 김 장관은 고사끝에 이를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병관 후보자는 이날 박근혜 정부 초대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뒤 38일 만에 전격 사퇴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전 11시 국방부를 통해 낸‘사퇴의 변’에서 “국방부장관 후보자로서 그 동안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이 시간부로 국방부장관 후보자 직을 사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당면한 안보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우리 국방이 더욱 튼튼해지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그동안 무기중개업체 고문재직과 위장접입 등 30여건의 의혹이 제기돼 야당에서 자진사퇴를 촉구해왔다.
최근에는 특혜 의혹을 받아온 미얀마자원개발업체 KMDC 주식 보유 신고 누락 등으로 위증 논란까지 제기되면서 여당 내에서도 지명철회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2013년 3월 14일 목요일

[동아일보][광화문에서/하종대]정직은 국가경쟁력이다(2013.03.15)

“나, 이 벌점 받으면 운전면허 취소되는데 당신이 대신 받으면 안 돼?”

“그러지 뭐. 난 그거 받아도 면허 취소는 안 되니까.”

영국의 촉망받는 중견 정치인이자 차기 영국 지도자로 꼽혀온 크리스 휸 하원의원(58). 10년 전 그는 과속으로 벌점이 초과돼 면허정지 위기에 처하자 아내와 상의한 뒤 벌점을 떠넘겼다.

하지만 7년 뒤 남편의 불륜으로 파경을 맞은 부인 비키 프라이스 씨(60)는 이혼한 뒤 이를 폭로했다. 휸 의원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장관직까지 그만뒀지만 영국 검찰은 법적 책임을 추궁했다. 그는 ‘사법정의 교란’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벌점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사법정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사소한’ 부정(不正)이라도 얼마나 가혹하게 처벌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에서는 집에서 전기를 쓰려 해도 사전에 돈을 내고 전기카드를 사야 한다. 이렇다 보니 미리 전기카드를 사서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재충전해야 한다. 카드 재충전을 게을리했다가 밤늦게 전기가 나가면 낭패다. 형광등이나 TV를 켤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재충전 시간이 늦어지면 냉장고의 음식이 모두 상할 수도 있다. 밤이나 주말엔 전기카드 파는 곳을 찾기도 어렵다. 국민을 괴롭히고 불편하게 만드는 제도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바꾸지 않는다. 사용량에 따라 매달 전기료를 납부하는 사후 정산 방식으로 바꿨다가는 전기료를 떼먹고 도주하는 사람이 속출할까봐 두려워서다. 부정직(不正直)과 불신이 낳은 대표적인 비능률이다.

정직은 그 사회를 판단하는 핵심 요소다. 2007년 일본에 갔을 때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거리가 너무 깨끗한 데 깜짝 놀랐다. 허름한 골목에 들어가도 어디 한 곳 몰래 버린 쓰레기가 없었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 갔을 때 차를 몰며 쓰레기를 밖으로 던지는 택시운전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쓰레기를 그렇게 밖에 던져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메이스(沒事·괜찮다는 뜻)”라는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선진국과 선진국이 아닌 나라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는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마다 후보자의 별의별 비리와 비행이 쏟아져 나온다. 이명박 정부 시절 오죽하면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 기피, 세금 탈루, 표절 등 5가지가 ‘고위 공직을 맡기 위한 5대 필수조건’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이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남의 논문을 거의 베끼다시피 한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부터 전국을 무대로 부동산 투기를 한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부정과 비리에 대해 여전히 눈을 감거나 심지어 ‘관용’을 베풀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는 데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5만 달러인 선진국은 거저 달성되는 게 아니다. 정직하고 양심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혜택을 주고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가혹하리만치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나라의 세금은 잘 떼먹는 사람이 유능하고, 국가의 복지 혜택은 온갖 요술을 부려서라도 타먹어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회여서는 절대 안 된다. 지하철은 무임승차만 해도 30배의 요금을 물리고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람에게는 겨우 2∼5배만 벌금을 물려서도 안 된다.

정직은 훌륭한 사람만이 갖춰야 할 성품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갖춰야 할 도덕적 기준이다. 나아가 사회 및 국가의 경쟁력의 원천이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직을 바탕으로 한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와 협력관계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명명한 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좌우하는 제3의 자본”이라고 설파했다.

2013년 3월 5일 화요일

[동아일보][단독] 김종훈 “사퇴쇼? 아내가 울고 있다”(2013.03.06)

미래창조장관 후보 사퇴前… 朴대통령과 주변에 토로 “가족들 파렴치한 취급받아”


“아내가 (미국으로) 돌아가자며 울고 있습니다. 정말 힘듭니다.”

4일 사퇴한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사진)는 3일 오후 자신의 사퇴 결심을 전하며 강하게 만류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밟혀 (미래부와 새 정부가) 힘을 받는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며 “다른 좋은 사람이 와서 미래부를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뜻도 전달했다.

동아일보는 5일 김 전 후보자의 손위 처남인 정크리스토퍼영 회장이 운영하는 키스톤글로벌의 핵심 관계자 A 씨를 만나 김 전 후보자의 전격 사퇴 후 심경과 행적을 전해 들었다. 김 전 후보자는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뒤 정 회장과 2, 3일에 한 번꼴로 만나 신변 문제를 상의했다. 사퇴 발표 직후에도 정 회장과 3시간 가까이 점심 식사를 하며 고충을 털어놓고 조언을 들었다. A 씨는 이날을 포함해 대부분의 자리에 배석했다.

A 씨는 “김 전 후보자가 사퇴한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 깨질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보자가 된 이후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자 김 전 후보자는 정 회장에게 여러 차례 “(각종 루머 때문에) 가족이  파렴치한 취급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 전 후보자의 이 같은 발언은 정치권의 발목잡기 공세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가족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괴로워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A 씨는 “사퇴 기자회견 직후 점심 식사 자리에서 김 전 후보자는 답답한 심정을 억누르지 못해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김 전 후보자가 사퇴를 최종 결심한 것은 2일 저녁이다. 하루 전에도 그는 밤늦게까지 교육과학기술부, 방송통신위원회 공무원들과 창조경제 정책을 구상하며 열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일부 매체에 김 전 후보자의 부인이 소유한 건물에 성매매 업소가 있다는 기사가 실린 것이 결정타였다. 이를 보고 충격받은 두 딸이 울면서 “이게 정말이냐”고 물은 것이다. 김 전 후보자는 “다른 업체에 관리를 맡겨 우리는 어떤 업소가 입주해 있는지 잘 모르는데도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성매매나 조장하는 나쁜 사람처럼 몰고 갔다”고 털어놨다.

▼ “이상하게 보고 뒷말 많고… 설 자리 없었다” ▼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딩. 이 건물 지하에 세 들어 있는 유흥업소 때문에 김 전 후보자와 가족은 ‘성매매 조장’ 논란에 시달렸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창업한 회사에 큰딸의 이름을 넣을 만큼 각별한 가족사랑을 과시했던 그로서는 이러한 논란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아내가 ‘무엇 하러 이런 수모 겪으면서까지 한국에 있느냐. 그냥 돌아가자’고 수차례 설득했다”고 정 회장에게 말했다.

스파이 논란에 대해서도 억울해했다. 김 전 후보자는 “만약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중요한 일을 맡았다면 미국이 나를 놓아주려 했겠느냐”며 “설령 내가 고급 정보를 갖고 있었더라도 그 정보를 한국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을 스파이로만 몰아갔다”고 어이없어 했다. 그는 “(정부) 내부에서도 (나를) 이상하게 보는 눈이 있어서 힘들었다”며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자리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만 같았다. 수장이라고 불러 놓고는 말만 많고, 내 설 자리는 없는 것만 같았다”고 하소연했다.

















































































사퇴 하루 만에 美출국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워싱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미래부 업무를 놓고 여야가 논쟁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외신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정부가 방송을 장악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만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수년 동안 아이디어를 모아 뒀던 수첩들을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들춰 보면서 ‘뭘 할까, 어떻게 해볼까’ 생각하느라 참 설렜는데, 이것도 전부 소용없게 됐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A 씨는 김 전 후보자가 장관직을 제안받은 뒤 미국 측으로부터 국적 변경에 문제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국적포기세 등 세금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납부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돈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얘기도 했다. 국적이나 세금 문제 때문에 장관직을 포기했다는 사람들의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정 회장은 국내에 지인이 거의 없는 김 전 후보자의 유일한 상담 상대였다. 하루 10번가량 통화하며 상담할 정도로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그때마다 “한국 분위기가 미국과 좀 다르다. 예상치 못한 데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너무 신경 쓰거나 상심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김 전 후보자는 4일 정 회장을 만난 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처제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정 회장은 사퇴 발표 바로 다음 날 출국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말렸지만 한국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워낙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후보자의 부인은 먼저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후보자는 정 회장에게 “당분간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서) 다른 일도 맡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벨연구소에서 ‘일이 잘 안 풀리면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쪽에도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사퇴를 ‘쇼’라고 해석하는 시선에 대해서는 “쇼할 만큼의 여유도 없다. 나중에 책을 남긴다면 이번 사퇴를 ‘정치적 쇼’라고 보는 시선에 대한 억울함을 꼭 밝히겠다”고 했다.

인터뷰를 허락한 A 씨는 기자에게 “김 전 후보자와 나눈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며 “김 전 후보자에 관한 의혹들을 꼭 풀어 달라”고 당부했다.

[기자수첩] 김종훈의 '조국 헌신'… 이렇게 가벼운 것이었나(2013.03.06)


정우상·정치부
김종훈 전(前)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4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명령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웠다"고 했다. 5일 출국길에는 "한국에 언제 다시 오느냐"라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했다.

김 전 후보자의 사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에 봉사하려 했던 기업가의 뜻을 꺾어버린 한국의 정치 문화에 대한 환멸이다. 그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통과되지 못해 국회 인사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내정 후 보름 동안 이중국적과 미국 CIA 자문위원 경력 관련 의혹 제기가 잇따랐다. 말이 의혹 제기였지 "너의 진짜 조국은 어디냐"는 거친 질문이었다.
또 하나는 "조국에 헌신하겠다"던 다짐이 단 보름 만에 포기되고 산산조각 날 만큼 가벼운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조국'과 '헌신'이라는 말의 무게에 비해 장관 자리를 받아들이고 중간에 사퇴하는 과정이 너무 가볍지 않으냐는 시선이다. 조국에 헌신하는 길이 굳이 독립열사들처럼 비장할 필요는 없다. 군 복무를 위해 훈련소로 떠나는 청년, 불구덩이에 갇힌 어린이를 구하는 소방관들은 '조국' '헌신' 같은 거창한 말 대신 묵묵히 살아가는 자체로 헌신하고 있다.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5일 오전 10시 30분쯤(현지 시각)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해“큰일을 하고 오진 못했지만, 우리 국민이 이중국적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후보자는 기자 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한마디만 하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임민혁 특파원
김 전 후보자가 살았던 미국은 인사 검증을 위해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나선다. FBI 조사관은 이웃들에게 후보자의 평판까지 묻는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인사검증은 거칠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더 엄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김 전 후보자는 회사로 치면 모든 신입 사원이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인 '극기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쓴 경우다. '조국'과 '헌신'은 대한민국 장관들이 모두 이겨냈던 극기 훈련을 중도에 포기한 사람이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릴 말이 아닌 것 같다. 

2013년 3월 3일 일요일

[김진의 시시각각] 국군 대장의 길(2013.03.04)

청문회를 하든 안 하든, 결과가 어떻든 박근혜 대통령은 김병관 후보자를 국방장관에 임명할 것이다. 그러면 파동은 잠잠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일까.

 이번 파동은 한국 사회에 ‘국군 대장의 길’이란 문제를 던지고 있다. 대장은 4성장군이자 국군 최고 계급이다. 군 사령관 3명,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참모총장 3명 그리고 합참의장 등 8명이다. 육군 대장은 제1·3 야전군이나 2군 사령관을 거친다. 야전군 사령관은 10만~20만 명을 호령한다. 참모총장이 안 돼도 육군 대장은 그 자체로 무인(武人)의 꽃이요 최고 영예인 것이다.

 그 때문에 육군 대장은 한국군의 상무(尙武)정신을 상징해야 한다. 대장은 군복을 벗어도 예비역이 아니다. ‘영원한 현역’이다. 그런 점에서 김 후보자는 전역 후 처신에 문제가 있었다. 그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다음날 골프를 쳤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예비역이었고 북한 소행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애도기간 중에도 골프장에 나갔다.

 국군 대장 출신이라면 직감적으로 사건이 북한 소행일 거라고 판단했어야 한다. 더군다나 그는 대표적인 병법·무기 전문가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이가 북한의 잠수함 작전능력이나 보복 전략을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강릉과 여수 앞바다를 헤집었던 잠수정 특수부대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건가. 많은 민간인도 북한 소행이라 짐작했는데 ‘손자병법 1인자 별 넷’이 몰랐단 말인가.

 대장 출신이 무기중개업체 고문이었던 것도 신중하지 못했다. 그는 무기 납품 로비가 아니라 탱크엔진 합작사업 쪽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용 못지않게 이미지도 중요하다. 국민은 군 무기 도입에 대해 충격적인 추억을 갖고 있다. 노태우 시절 무기 도입과 관련해 돈을 받은 혐의로 1993년 전직 국방장관 2명과 전직 해군·공군 참모총장이 감옥에 갔다.

 무기중개업체가 과연 김 후보자의 능력만 기대했을까. 아닐 것이다. 업체는 ‘별 넷’이란 상징성도 구입한 것이다. ‘4성장군 고문’으로 독일 회사에 업체의 파워를 과시하려 했을 것이다. 김 후보자가 받은 2억원은 ‘별 넷’에 대한 대가라고 봐야 한다. 일종의 전관예우인 것이다.

 국방장관은 능력 못지않게 상징성이 중요하다. 한국이나 이스라엘 같은 상시 안보위협 국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국가안보 지휘부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어야 유사시에 국민이 따르는 것이다.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1972년 벤구리온 공항 인질 구출에 투입된 특공대 지휘관이었다. 페레스 대통령은 국방장관이던 1976년 엔테베 구출작전을 지휘했다. 지도부의 특공정신이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다.

 2013년 대한민국 국방장관은 각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 북한 핵무장으로부터 국민을 구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강력한 도덕성과 지휘력으로 안보의 선봉장이 돼야 한다. 외교·통일장관이 ‘신뢰 프로세스’를 얘기하고 대화를 주장해도 국방장관만은 눈을 부릅뜨고 북한을 봐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핵무장은 막아야 한다. 군은 대통령이 명령하면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야 한다.

 김 후보자는 도덕적 멍에와 현실적 능력이라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상당수 전직 국방장관·참모총장은 그의 신중하지 못한 처신을 질타한다. 동시에 많은 이가 병법·무기·동맹에 대한 그의 능력을 칭찬한다.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공개된 서신에서 그를 “최고의 국방장관 후보”라고 묘사했다.

 장관이 되면 김 후보자는 능력과 헌신으로 국민에게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 그는 ‘전쟁 전문가’로 자칭한다. “군을 전투 전문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인양 전문, 행정 전문, 홍보 전문 군대를 ‘전투 전문, 응징 전문’으로 바꿔야 한다. 거기에 국군 대장의 길이 있다. 거기에 김병관의 존재 이유가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사퇴(2013.03.04)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4일 전격 사퇴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으려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사퇴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변했다. 김 후보자는 "미국 국적을 포기했느냐", "미국으로 돌아가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김 후보자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어제 대통령께서 제안한 여야 회담 무산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다"며 "제가 미국에서 일군 모든 것을 버리고 마지막으로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일생 바치고자 돌아온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창조경제에 달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그러나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논란과 혼란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한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며 "조국을 위해 바치려 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절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부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와 국민이 힘을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지난달 17일 박근혜 정부의 핵심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김 후보자는 38살이던 1998년 자신이 창업한 벤처기업 '유리시스템즈'를 루슨트테크놀로지에 7280억원에 팔면서 유명세를 탔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유력지들이 김 장관 후보자의 ‘아메리칸 드림’을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 후보자의 기자회견 전문.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어제 대통령께서 제안한 여야 영수회담 무산을 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열심히 연구하고 도전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가지고 미국에서 인정받는 한국인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수많은 노력과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미국에서 일궈온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저를 낳아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남은 일생을 바치고자 돌아왔습니다. 그 길을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박 대통령이 말씀하시는 창조경제에 달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과학과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생산적으로 융합해서 새로운 일자리와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비전에 공감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한 대통령의 설득에 감명받아 동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정부조직개편안 논란과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의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조국을 위해 바치려고 했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제 저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마지막으로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들 미래를 위해서 박 대통령이 꿈꾸는 창조경제가 절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와 국민 여러분이 힘을 주길 부탁드립니다.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사설]김종훈과 통진당, 누가 애국자인가(2013.02.21)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올드 보이’로 가득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사의 파격이자 백미(白眉)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민 1.5세로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후보 지명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신청해 14일자로 회복했고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절차도 밟고 있다. 그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면 미국에 세금 1000억 원을 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결단이 아니다.

김 후보자도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야 하겠지만 자질 및 능력과는 상관없이 국적 문제를 장관직 수행의 결격 사유로 꼽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김 후보자에 대한 국적 시비가 반미종북(反美從北) 코드의 통합진보당에서 나오는 것은 씁쓸하다. 어느 나라든 진보 세력은 이민자와 이중국적에 관대하다. 그런데도 통진당 이상규 이석기 의원은 김 후보자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문을 지낸 경력을 문제 삼으며 지명 철회를 주장했다. 자체 행사에서 애국가도 부르지 않았던 통진당이 무슨 염치로 김 후보자의 국적을 문제 삼는가. 평생 쌓은 지식과 경험을 살려 모국에 봉사하겠다는 성공한 벤처기업인이 애국자인가, 아니면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북한 핵실험에도 침묵하는 통진당이 애국자인가.

이상규 의원은 어제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군 복무가 완전한 미국인으로서의 통과의례라고 말했던 사람이 진정한 한국인이 될 수 있느냐”며 김 후보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한국인 이민자가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미군에 복무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장에 캐나다인이 임명된 데서 보듯 국가안보 이외의 분야에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필요한 사람을 기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중국은 “과학자에게는 사상도, 당성(黨性)도 묻지 않는다”며 재미(在美) 과학자를 영입해 오늘날 우주 개발의 토대를 마련했다.

유학이나 결혼 이민으로 국경의 의미가 무색해진 글로벌 시대에 국적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국적은 달라질 수 있어도 학적은 못 바꾼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어릴 적 이민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이민 세대들은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다문화에 대한 수용력이 뛰어나다. 대다수 선진국은 양국을 아우르는 이들의 잠재력을 이용하기 위해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미래부는 부처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어 미래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새로운 개념의 정부조직이다. 이런 부처를 이끌 책임자에는 도전정신과 개방적 자세를 갖춘 김 후보자가 적격일 수 있다. 김 후보자의 국적 시비에 미국 한인사회도 격분하고 있다. “백인도, 흑인도 아닌 우리 동포의 국적을 문제 삼은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유진철 미주총련 회장의 말처럼 낡고 편협한 국가관으로는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

2013년 2월 18일 월요일

[국민일보]새 정부 총리·장관 후보자 “불교는 되고 기독인은 안돼”… 불교계의 또다른 종교편향 논리(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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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창조과학부가 ‘창조과학’을 연상시킨다며 종교편향 논리를 폈던 불교계가 이번엔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와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상대로 황당한 종교편향 주장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기독교인의 종교편향을 우려하면서도 국방부 장관, 교육부 장관,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선 불교 신도라며 적극 두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계가 두 후보자를 종교편향으로 몰아가는 근거는 ‘골수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정 후보자는 분당 할렐루야교회 안수집사로 과거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 담당변호사로 활동했으며, 황 후보자와 함께 기독교계 로펌 법무법인 로고스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또 황 후보자는 검찰 신우회를 주도하고 재단법인 아가페 이사로 활동했으며, 교회법 서적을 출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교계는 이처럼 기독교 신자로 활발한 활동을 했기 때문에 “국무총리와 법무부장관까지 기독교 신자라면 차기 정부의 공직자 종교편향이 불 보듯 뻔한 것 아니냐”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불교계는 불교 신도인 후보자들에 대해 과거 포교 활동 등을 소개하며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군불교총신도회장을 역임한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는 조계종 불자대상을 수상한 독실한 불교신자로 2007년 12월 현직 장군 신분으로 군복을 입고 근무시간에 반야심경을 직접 강의한 바 있다. 불교계는 교육부 장관 후보자인 서남수 위덕대 총장에 대해선 “위덕대는 1996년 진각종이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종립대학”이라며 “서 총장이 30년 전 인천 용화사를 통해 불교를 접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법회에 참석하고 불교공부를 하는 등 불자의 삶을 이어갔다”고 치켜세웠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여성불자 108인’ 중 한 명으로 2010년 한국불교문화사업단과 공동으로 템플스테이 발전세미나를 주최한 바 있다. 조 후보자는 과거 한나라당 전통문화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불교계와 정부 여당을 잇는 소통의 메신저’로 활동했다.

불교의 이 같은 이율배반적인 종교편향 논리가 계속되자 교계에선 종교차별과 종교평화를 앞세워 기독교를 공격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박명수 서울신대 교수는 “공직자라 할지라도 개인의 종교는 사적 영역인데 그것을 가지고 공직 적합 여부를 따지는 것은 정교분리 사회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면서 “불교는 자신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침해당하면 종교편향·종교평화라는 이름으로 개인과 상대종교를 공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교회언론회는 18일 논평에서 ‘고위공직자가 불교 신자면 오케이고 기독교인이면 안 된다’는 식의 불교 언론의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교회언론회는 “국가를 위해 봉사할 고위공직자를 선출하는데 어찌 종교가 기준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정부가 공직자를 선출할 때마다 종교계가 후보자의 종교를 문제 삼아 공격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며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기독교계는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사찰 기부금 관련 의혹이 제기됐을 때 문제 삼지 않았다”면서 “불교계는 더 이상 기독교를 흠집 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들의 마음으로부터 종교가 멀어지게 하는 자가당착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했다.

백상현 천지우 기자 100sh@kmib.co.kr

[횡설수설/박용]김종훈 vs 안철수(2013.02.19)


 

세계적인 스타 벤처기업인이 태평양을 건너 고국에 돌아왔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인 김종훈 미국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사장은 미국 이민 1.5세대다. 38세에 미국 400대 부자에 들 정도로 성공한 벤처기업인이다. 경력만 놓고 보면 토종 벤처기업인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 전 대선후보와 여러모로 겹친다. 

▷김 후보자는 1960년 서울, 안 씨는 1962년 부산 출생이다. 김 후보자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를, 안 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공계 출신이다. 김 후보자는 1992년 큰딸 이름(유리)을 따 미국에서 통신장비 벤처인 유리시스템스를 창업했고, 안 씨는 이보다 3년 뒤인 199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정보보안 회사인 안철수연구소를 세웠다. 김 후보자가 메릴랜드대 교수, 안 씨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등으로 학계에서 활동한 것도 비슷하다. 김 후보자는 스탠퍼드대 한국학 강좌에 2004년 2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고, 직원들에게 주식 40%를 나눠 줬다. 둘째딸의 이름을 딴 ‘주리 재단’도 만들었다. 안 씨도 초기 컴퓨터 백신을 무료로 배포했고 직원들에게 주식을 무상 배분했다. 지난해 2월 안철수재단을 설립하고 보유 주식의 절반을 내놓았다. 

▷출신 배경, 활동 무대와 규모를 놓고 보면 두 사람의 차이가 드러난다. 김 후보자가 1975년 이민을 떠나 메릴랜드의 빈민촌에서 신문 배달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죽기 살기로 공부한 자수성가형이라면 안 씨는 ‘엄친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김 후보자는 1998년 유리시스템스를 10억 달러에 매각했다. 안 씨가 1997년 세계 최대 백신회사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는 금액이 1000만 달러였으니 규모 면에서 약 100배의 차이가 있다. 김 후보자는 한국 문화와 언어에 서툴고, 안 씨는 ‘우물 안 벤처기업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안 씨의 귀국설과 출마설이 흘러나오면서 두 사람을 비교하는 사이버 설전(舌戰)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 논객 변희재 씨는 16일과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종훈 이분, 장관으로선 모르겠으나 민간 시장에서의 경력으로 보면 안철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글로벌 리더”라고 포문을 열었다. ‘안철수를 사랑하는 모임’은 트위터에서 “그들의 종미(從美) 근성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예측 가능하다”고 맞섰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안 씨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고, 성장동력이 꺼져 가는 한국 경제가 구원투수로 김 후보자를 불러들였다. 김 후보자는 건너온 다리를 진심으로 불사르고 고국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김종훈, 美국적 포기로 세금 1000억원 낼수도(2013.02.19)

■ 미래부 장관후보의 고국 사랑 




17일 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우리나라’라는 말이었다. ‘한국’이라고 하지 않았다. 18일에도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를 ‘바깥사람’이라고 불렀다. 비록 미국 국적이었지만 마음은 한국에 두고 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장관직을) 하려고 마음먹었으니까 모든 것을 처리하고 (미국 시민권을 포기)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실 김 후보자는 한국에 진저리를 낼 법한 삶을 살았다. 다섯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에게 맡겨졌으나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 부권(父權)을 우선시하는 한국의 관행 탓이었다. 미국에 이민 가서도 빈민가에서 가족과 심각한 갈등을 겪으며 자랐다. 그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생활을 “바닥까지 쳤다. 자살까지 고민했다”라고 회고했다.

○ 한국을 바라보다

그런 김 후보자를 일으킨 것은 자신의 집 지하실을 내주며 학업을 이어 가라고 격려해 준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었다. 한국에서 건너간 인재에게 미국 대학은 장학금을 줬고, 그는 ‘미국 사회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미군에 자원 입대했다.

하지만 그는 조국을 잊지 않았다. 1998년 루슨트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 유리시스템스를 10억 달러에 매각한 뒤에도 기회가 닿는 대로 한국을 찾아 강연하고 언론 인터뷰도 했다. 벨연구소 사장이던 2009년에는 벨연구소 서울연구소를 설립했고, 지난해에는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광통신기술 관련 업무제휴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자신의 위치에서 한국에 도움이 될 일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한국 투자도 활발히 검토했다. 결과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1997년 한국에 유리코리아라는 법인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투자회사인 유리자산운용을 설립했다. 개인적인 관심도 이어졌다. 2004년 스탠퍼드대에 200만 달러를 기부해 한국학 석좌교수직을 신설했고,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어려움을 겪는 조흥은행에 2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의 한반도 핵 관리 정책 ‘페리 프로세스’를 입안한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과 막역한 사이다. 군사용 통신기술을 개발한 유리시스템스의 이사로 페리 전 장관을 영입했고 이후에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스탠퍼드대 한국학 석좌교수 자리도 페리 전 장관의 이름을 따 만들었으며 2007년에는 그와 함께 북한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도 했다.

○ ‘미국 국적 포기세’ 낼 수도

김 후보자가 미국 국적을 포기할 경우 미국 정부에 막대한 금액의 ‘국적 포기세(稅)’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고소득자가 탈세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적 포기 시점에 모든 재산을 처분한 것으로 간주해 세금을 매기는 제도다. 수천억 원의 재산가로 알려진 그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면 1000억 원이 넘는 세금을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김 후보자는 “‘나라를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하겠다’는 당선인의 강한 뜻에 굉장히 감명 받았다”라고 미국 국적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김 후보자가 과거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설립한 인큐텔 창립에 관여했다”라며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인큐텔 창립 당시 미국 벤처업계의 전문가로서 참여해 이사를 지냈지만 그런 경력이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인큐텔은 CIA가 최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세운 비영리 목적의 벤처캐피털이다.

김상훈·정지영 기자·워싱턴=정미경 특파원 sanhkim@donga.com 

2013년 2월 15일 금요일

[교회언론회 논평] 불교 언론의 소모적이고 이중적인 잣대(2013.02.15)


2월 13일 박근혜 당선인은 새 정부에서 일할 6개 부처의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였다. 국민들은 후보자들이 대체적으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안정되게 국정을 운영해 나갈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때를 맞춰 불교계 언론에서는 장관 후보자들의 종교를 밝히면서, 교육부장관과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독실한 불교 신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장관에 내정된 서남수 총장은 불교계 학교인 위덕대 총장이다. 또 국방부장관 물망에 오른 김병관 후보는 국군불교총신도회 회장을 역임했고, 2007년에는 조계종에서 수여하는 ‘불자대상’을 받았다고 자랑한다.

불교 언론은 또 7일에는 김진태 대검차장이 검찰총장 후보에 추천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수월 선사’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출간할 정도로 불심이 깊고, 불교 전문가로 꼽힐 정도의 법조인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불교계의 자랑으로 봐줄 대목이다.

그런데 장관 후보자 기사와 맞물려서,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와 황교안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골수 기독교인이며, ‘종교편향’의 우려가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국가를 위해 봉사할 고위 공직자들이 불교계 인사이면 ‘오케이’가 되고, 기독교인이면 종교편향 우려가 있어 ‘안 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위 공직자를 선출하는데 어찌 종교가 기준이 되겠는가? 공직자의 종교는 개인의 자유이고, 중요한 것은 능력과 공직자로서의 자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공직자를 선출할 때마다 종교계가 나서서 공직자의 ‘종교’를 문제 삼아 공격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며,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올랐다가 41일 만에 자진 사퇴한 이동흡 후보자는 여러 사찰에 기부금을 낼 정도로 독실한 불교신자이며, 심지어 사찰에 냈다는 기부금의 ‘실제 납부’에 대한 의혹이 제기 되었어도 이에 대하여 기독교계는 문제 삼지 않았다. 국민을 위해 봉사할 고위공직자 선출 기준이 종교가 아니고, 능력과 도덕성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불교계 언론은 지난 2011년에는 MB 정권에서의 장·차관급 72명 가운데 불자가 7명이고, 기독교 신자가 29명으로, 기독교계 인사가 월등히 많다고 보도하였다. 이것을 ‘종교편향’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기독교인 공직자가 많다고 하여 기독교를 위해 협조하거나 편향한 일도 없고, 오히려 현 최광식 문광부장관과, 불교 언론이 천주교인으로 분류한 정병국 전 문광부장관은 불교계를 돕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종교계에서 이런 공직자 인선을 개인의 종교를 두고 ‘선긋기’하는 것은 중단해야 한다. 오히려 이런 문제의 원인은 불교계에 있음을 알아야한다. 기독교는 조선이 망해가는 시점부터, 기독교 학교를 세워 민족을 깨우고, 인재들을 키우고, 민족과 국가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데 헌신한 것이다.

반면에 불교는 어떤 일을 했는가? 대부분의 불교계가 친일(親日)행위를 하지 않았는가? 그런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국민들은 이런 사실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고위 공직자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다고 하여, ‘종교편향’을 한다는 주장은 불교계 스스로 부끄러움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지금도 불교계는 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재정을 받아 내는 것에는 열중하면서도, 사회와 국가 발전을 위해 하는 일은 얼마나 되는가? 불교계는 더 이상 기독교를 흠집 내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들의 마음으로부터 종교가 멀어지게 하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

우리 국가의 미래는 국민들이 얼마나 단합하고, 소통하고, 통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종교계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런데 종교계가 지나치게 종교 외적인 면에 치중하고, 공직자 개인의 ‘종교’와 ‘신앙’을 비난의 꼬투리로 삼아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국가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김승동 목사)

2013년 2월 14일 목요일

[크리스천투데이]황교안 내정자, “교회법>사회법” 발언? 사실과 달라(2013.02.15)


지난해 펴낸 저서에서 일부만 발췌해 왜곡 보도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
오는 25일 출범할 새 정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황교안 前 부산고검장(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이 지난해 펴낸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요단)>에 대해, 사실과 다른 내용이 일부 언론들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한 언론은 황 후보자의 관련 내용을 “세상법보다 교회법을 우위에 두는 듯한 발언”으로 보도했으나, 확인 결과 이는 사실과 다르며 교묘하게 왜곡한 내용이었다. 교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언론들의 행태에 대해 “최근 ‘교회 때리기’ 분위기에 편승한 악질적 왜곡”이라는 격앙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황 후보자는 책 속 ‘교회법과 세상법, 어떤 것이 우선될까?’에서 교회법과 세상법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 서로 다른 경우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교회법이 우선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법은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교회 내부에서 발생하여 교회 내부에서만 효력이 발생하는 문제는 세상법이 교회분쟁에 대한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교회 외부에 대하여 발생한 법률문제나 교회 내부 문제라도 교회 외부에 영향을 주거나 관련을 갖는 사안에 대해 세상법은 이를 일반사항과 동일하게 세상법의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다만 종교단체 관련 사안이라는 점을 참작한다고 덧붙였다.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
황 후보자는 또 “세상법 우선적용 자체는 기독교인 입장에서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기독교인도 역시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활동하므로 헌법 37조에 따라 그러한 바람이 다 충족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적어도 종교의 자유를 상당한 정도로 보장하고 있으므로, 일단 국가의 법질서를 존중하고 그 범주 안에서 종교활동과 신앙생활을 하면 된다”며 “이것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눅 20:25)’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교훈에도 부합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가 말하는 교회분쟁과 화해’를 부제로 하고 있는 이 책의 서문에서 황 후보자는 “법을 미리 알면 교회분쟁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만일 교회 안에 분쟁이 발생했더라도 일단 법을 알면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며 “하나님을 섬기는 법조인으로서 교회분쟁을 바라보는 안타까움 속에 책을 저술하게 됐고, 모쪼록 이 작은 노력이 교회를 질서있게 하고 교회분쟁을 예방하여 성도들이 편안하게 교회생활을 하는 데 이바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 소개된 프로필에 따르면 황교안 후보자는 재단법인 아가페와 침례신문, 세진회와 YFC 이사, CBS 자문위원 등을 지냈으며, 검사 재직시 각 검찰청 신우회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추천사를 쓴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는 그를 “평소 종교문제를 많이 다룬 종교법 전문가”로 소개했다. 황 후보자는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신학대에 편입해 졸업했던 경력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책은 이밖에도 ‘이단을 비판한 것도 명예훼손이 될까?’, ‘예배방해죄란 무엇일까?’, ‘교회 차의 교통사고, 누가 책임져야 할까?’ 등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손태규의 ‘직필직론’]이 대통령과 이 후보자의 관행(2013.01.31)

출입금지 잔디밭에 난 무단횡단 길
지도자가 ‘관행대로’ 그길 따라간다면 국민들이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인데 왜 나만 갖고 이러는가.”

공교롭게도 특별사면을 강행한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문회에서 갖가지 의혹에 시달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항변이 거의 똑같아 보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인들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을 사면해 준 사실을 상기시켰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을 전례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면을) 필요할 때는 임기 중에 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고 이전 정부 때도 그렇게 해왔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른바 ‘관행’이라는 의미이다. 

이 후보자도 출장비용으로 부인의 여행경비를 충당했느냐는 지적에 “100%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해외 출장 때 부인 동반에 대해서도 “관례였다”고 말했다.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비슷한 태도로 변명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 이 후보자 모두 관행에 대해 잘못된 생각과 태도를 갖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국민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관행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관행이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설사 법에 어긋나지 않더라도 도덕이나 윤리의 기반이 희박한 관행은 이기심과 편의주의와 다르지 않다. 멀쩡한 길을 놔두고 조금 둘러 간다고 해서 곱게 깔린 잔디밭이나 꽃밭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이 많다. 자연이 망가져도 사람들은 ‘출입금지’ 팻말까지 무시하며 순간의 편리함을 선택한다. “그깟 잔디나 꽃이 무슨 대수냐”며…. 그렇게 용기(?) 넘치는 사람들을 보며 사람들은 께름칙한 기분을 느끼지만 결국 너도 나도 그 뒤를 따른다. 그래서 보기 흉한 길이 새로 생긴다. ‘관행’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바람직하지 않고 나쁜 일이라도 자기 목적을 위해 쉽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남까지 용서하며 ‘관행’을 만든다. 보통 국민들이야 그렇다고 치자.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최고법원의 수장 후보자가 관행임을 내세우며 잔디밭이나 꽃밭을 가로질러 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얍삽한 행동을 보면서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할 국민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관행이 잘못된 것이면 하지 않으면 된다. 나쁜 관행은 좋은 관행으로 바꾸면 된다. 대통령이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미국에는 1947년부터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전국칠면조협회’와 ‘전국 가금류와 달걀 위원회’가 대통령에게 살아있는 칠면조 한 마리를 기증하는 행사를 백악관에서 여는 관행이 있다. 전국에 공개되는 그 칠면조는 추수감사절에 대통령이 먹는 것이다. 그러나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각하, 맛있게 드십시오’라는 글이 적힌 팻말을 목에 두른 칠면조를 보면서 “그냥 살려줍시다”라는 한마디로 오랜 관행을 깨버렸다. 언론은 다음 날 “케네디 대통령이 칠면조를 사면했다”고 보도했다. 또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양심 속에 살아있을 개념 있는 행동”이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선물 받은 칠면조를 먹는 관행 대신에 사면하는 관행이 정착되기까지에는 20년이 더 걸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6년 임기 동안 갱 두목 등 926명의 범죄자를 사면했으나 칠면조는 한 번도 사면하지 않았다. 언론은 “그가 선물 받은 칠면조는 악당이란 말인가”라고 비꼬기도 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역시 민주당 당사를 도청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 대통령은 사면했으나 선물인 칠면조는 사면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이 ‘사면’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칠면조를 먹은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공식으로 칠면조를 사면하는 관행을 세웠다. 백악관 인근에서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들이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이 칠면조는 지금부터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다”고 선언했다. 이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관행을 이어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해 추수감사절 때 선물 받은 칠면조를 사면한 뒤 관례대로 워싱턴 인근의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 생가 농장으로 보냈다. 

미국에서 칠면조 선물은 오랫동안 용기와 격려의 전국적인 상징이다. 하지만 한 해에 2억5000만 마리의 칠면조가 도살당한다. 그래서 일부 미국 사람들은 대통령들의 칠면조 사면을 위선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극도로 고통 받는 동물에 대한 조롱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비리를 저지른 측근을 풀어주는 정치 목적의 특별사면을 지극히 자제하는 대통령들이기에 대부분은 이를 즐거운 볼거리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쿠바에 장거리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던 옛 소련의 기도를 막았던 케네디 대통령이 용기와 결단력을 다시 발휘해 칠면조의 생명을 연장시켜주기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을 단절하는 과감한 대통령, 그 관행을 누구도 납득하는 상쾌하고 유쾌한 새로운 ‘사면 관행’으로 정착시키는 대통령들. ‘칠면조 사면’ 정치를 하는 미국 대통령들과 ‘친인척 사면’ 정치를 하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중세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천국에 가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지옥에 가는 길을 잘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의 시오노 나나미는 이 말을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기를 각오해야만 국민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고 해석했다. 비록 인격에 문제가 있더라도 국민을 잘살게 해주는 큰 목적만 이루면 좋은 지도자라는 것이다. 결과만 좋으면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이 정치라는 마키아벨리 식 사고는 뜨거운 역사적 논쟁거리이다.

이 대통령은 특별사면을 강행한 뒤 “법과 원칙에 맞는 사면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그 결단(?)을, 국민을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 지옥행을 감수했다고 여기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이 대통령이 오로지 자신의 정치 목적을 위해 나쁜 관행을 고집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야말로 국민을 위하는, 누가 봐도 명분 있는 일을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꽃밭이 아니라 경부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할지라도 나무라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칠면조 사면에 비해 한참 부끄러운 친구·인척 사면 때문에 한국 정치는 한참 뒷걸음질 치고 있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황호택 칼럼]一人獨走의 참변, 朴 당선인에겐 ‘쓴 약’(2013.01.31)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주변에서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선이 발표된 직후 ‘1타(打) 5매(枚)’라는 ‘고스톱 해설’이 나왔다. 김 후보자 한 명으로 다섯 가지를 한꺼번에 얻었다는 뜻이다. 첫째, 김 후보자가 장애인이어서 우리 사회의 소외 집단을 대표한다. 둘째, 부친의 고향이 충남 부여이니 대선 때 밀어준 충청인들이 반가워할 것이다. 셋째, 총리가 고령이어서 대선 때 높은 투표율과 지지율을 보여준 노장층을 배려하는 의미가 있다. 넷째, 선거대책위원회와 인수위원회에서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다. 다섯째, 헌법재판소장과 대법관을 지내 법질서의 표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해설성 자화자찬(自畵自讚)은 언론의 검증이 시작되면서 악몽(惡夢)으로 바뀌었다.

한 법조인은 채널A 생방송에 출연해 김 후보자가 법조계에선 “공사다망(公私多忙)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나 있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2명이 한방을 쓰는 바람에 셋이서는 전화통화 내용까지 들을 수 있었다. 김 후보자 가족이 보유한 토지의 긴 목록으로 보건대 이 땅들을 둘러보고 사들이고 관리하고 되팔자면 사적으로도 바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 후보자와 함께 땅을 보러 안성에 간 적이 있다는 법원 서기의 증언도 나왔다. 검증 과정에서 법조계의 평판을 들어봤더라면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아들이 체중 미달과 통풍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이나 부동산 거래 목록은 공부(公簿)만 들춰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김 후보자가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했으니 인사청문회를 거쳤다고 착각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전(事前)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고위층 자녀의 병역은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지켜보는 사안이다. 체중 미달은 덜 먹어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통풍은 너무 잘 먹어 생기는 병이다. 한 집안에서 형제가 상반된 이유로 군대를 가지 않은 것이 흥미롭다. 김 후보자도 통풍 환자다. 재판하는 날 통풍 발작으로 불편한 다리에다 극심한 통증이 겹쳐 법원 직원의 등에 업혀 법정에 들어간 적도 있다. 통풍은 대개 40대 이후의 비만한 사람에게 잘 걸리는 병이다. 이 병은 직접 유전되지 않지만 둘째 아들은 부친을 통해 이 병에 관한 정보를 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김 후보자는 역량과 건강 측면에서도 따져볼 구석이 많았다. 그는 19세 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22세 때부터 평생 법관으로만 살았다. 행정 경험이 없어 직접 각 부의 업무를 조정하고 통할하는 능력은 미지수다. 그는 고령(75세)에 거동이 불편해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현장 방문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청력이 약해 보청기를 끼고 있어 국회 답변이나 국무회의 주재도 걱정스러웠다. 차기 정부의 첫 총리로 지명된 뒤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잘 알아듣지 못할 때마다 배석한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이 단상에 올라가 부연 설명했다.

결정적 시기에 직언(直言)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박 당선인이 시급히 보완해야 할 점이다. 측근들은 모두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휴대전화를 끄고 잠수(潛水)를 타기에 바빴다. 박 당선인의 일인독주(一人獨走) 인사에 한마디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촉새’로 찍혀 눈 밖에 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 당선인이 내놓은 정부조직 개편안이나 인사 스타일을 보면 아버지와 닮은 대목이 많다. 박정희를 알면 박근혜가 보인다는 말이다.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한다든가 경제부총리의 부활도 그렇지만 국무총리 인선에서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 박 대통령의 사전(辭典)에 국무총리와 권력을 나누는 제도는 있을 수 없었다. 명목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박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었다. 박 당선인도 결국 2인자로 크지 않을 ‘상징 총리’나 ‘의전 총리’에 집착해 널리 의견을 구하지 않거나 검증을 소홀히 여겼을 수도 있다.

박 당선인이 퍼스트레이디 대행 역할을 하며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정치를 배운 것은 유신 시대였다. 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는 널리 의견을 들었지만 유신 이후에는 달라졌다. 그 시절에는 박 대통령의 결심이 서면 중앙정보부라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골치 아픈 일은 척척 정리해버렸다. 국회와 언론도 침묵했다. 박 당선인이 아버지의 정치에서 부정적인 것은 버리고, 배울 것을 취한다면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박 당선인의 인선 방식은 때로 아버지보다 더 폐쇄적인 것 같아 걱정이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에서 “제가 약속하면 여러분이 지켜야”라고 한 발언도 설득과 소통의 리더십이라고 볼 수 없다.

당선인이 너무 보안에 신경을 쓰는 나머지 좋은 사람을 고른다는 인사의 본질마저 흐려지고 있다. 요즘 박 당선인의 표정과 눈매가 후보 때와는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사람 고르기가 정말 어렵고, 어렵게 골라놓아도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김 후보자의 낙마가 쓴 약이 된다면 나라를 위해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과 내일/송상근]팩트만 따라가겠습니다(2013.01.31)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 소식을 들으면서 편집국 부장회의가 떠올랐습니다. 회의는 하루 다섯 번 열립니다. 여기서 동아일보 부장들은 지면에 대해 의견을 나눕니다. 기사의 비중, 내용의 정확성, 표현의 적절성을 논의합니다. 자기 부서는 물론이고 다른 부서의 사안까지 하나하나 따집니다.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인사검증이었습니다. 취재기자들의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김 후보자에 관해 어떻게 보도할지 고민했습니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한 시기는 ‘허니문 기간’이라 하여 지나친 비판을 자제하는 국내외 언론의 암묵적 관행을 의식해서입니다. 여러 말이 오갔지만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있는 대로 쓰자고.

의혹 보도에 칭찬 비판 걱정 쏟아져


독자 여러분은 △두 아들 軍면제-증여, 청문회 쟁점으로(26일자 A1면) △장남 8세-차남 6세 때 서초동 674m² 땅 취득…증여세 탈루 의혹(26일자 A4면) △매입 전 법원서기와 땅 보러 갔었다(28일자 A1면)는 동아일보 기사를 읽으셨을 겁니다. 김 후보자에 대한 일련의 보도는 현장 취재→데스크 확인→부장회의 토론을 거쳐서 나왔습니다.

주말 이후 사내외의, 언론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잘한다는 의견과 심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박근혜 당선인의 신경을 동아일보가 너무 거스르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이 모든 칭찬, 비판, 걱정에 저희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팩트(사실)만 따라갔다고.

하지만 언론 비평지인 ‘미디어오늘’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의 김용준 비판과 관련해 언론계에서는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주목을 끄는 건 시장주의다. 매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과 대립각을 세워야 장사가 된다는 걸 아는 상업주의 언론의 생존방식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

미디어오늘 기자는 동아일보와 공동취재에 나선 채널A의 기획홍보팀에 28일 오후 4시경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은 좋은 걸로 여쭤보겠다”면서 질문했다고 합니다. 통화가 끝나고 20분 정도 지나서 이 매체의 웹사이트에 시장주의, 장사, 상업주의라는 주장이 들어간 기사가 게재됐습니다.

사실이 궁금해서 취재하고, 내용을 확인하고 토론하며 만든 특종을 시장주의, 장사, 상업주의라고 표현했습니다. 동아일보가 인사검증을 포기하면 뭐라고 비판할지 궁금합니다. 보수언론이 보수정권의 편을 든다고 하지 않을까요. 박근혜 정부의 눈치를 본다거나, 종합편성채널의 새 당근을 기대하며 침묵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후배들은 추운 날씨 속에, 주말을 반납하며 취재했습니다. 대부분 사회부의 막내입니다. 이렇게 인사검증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동아일보의 DNA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러니까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전후의 조각(組閣)검증에서 시작된 전통입니다.

인사검증 보도는 언론의 책무

당시 동아일보 보도로 청와대 정책수석비서관 내정자는 정식 발령 전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법무부 장관은 취임 9일 만에, 서울시장은 취임 1주일 만에 물러났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펴낸 ‘한국을 뒤흔든 특종’에 실린 내용이기도 합니다.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동아일보 조각검증 이후에 생긴 제도입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에 두 명의 국무총리 서리(장상, 장대환)가 낙마하는 데도 동아일보를 포함한 언론의 검증보도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영화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딥 스로트(Deep Throat)가 말합니다. Follow the money! 대통령 참모의 지시로 민주당 선거사무실에 도청장비를 설치하다가 붙잡힌 이들의 자금을 계속 따라가라는 조언입니다. 현직 대통령 사임이라는 특종의 출발이었습니다. 저희는 팩트만 따라가겠습니다.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사설] 당선인이 총리 후보자 자진 사퇴에서 느껴야 될 일(2013.01.29)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29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통해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 후보자 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발표에 앞서 박근혜 당선인과 면담을 갖고 사퇴 의사를 전했다.

새 정권의 첫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장에 서기도 전에 사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김 후보자는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여론의 검증(檢證)을 겪으며 지금 우리 사회의 뼈대를 이루는 세대가 40년 전에는 누구나 별다른 의식 없이 행했던 일들을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잣대를 보며 세대 간에 건너기 힘든 격절(隔絶)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덕망 높았던 김 후보자가 그런 과정 속에서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원했던 일도 아닌 총리 자리에 대한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본인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고 큰 허물이 없이 살아온 사회의 원로(元老) 한 분을 이렇게 떠나 보내는 우리 역시 적지 않은 손실을 본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박 당선인이 인사비밀이 새 나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보다 보안(保安)을 우선한 데 있을 것이다. 모든 나라 모든 대통령이 인사의 비밀이 지켜져 인사가 발표됐을 때 국민이 신선한 느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대통령제를 우리보다 170년 가까이 앞서 실시한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조각(組閣)과 개각(改閣) 과정의 상당 부분을 적극적으로 언론에 노출하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통령 당선인 또는 대통령의 나라 사랑의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하다 해도 그의 판단이 상식적 국민 판단보다 반드시 옳고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경험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통령의 인선(人選)을 반의도적(半意圖的)으로 언론에 노출해 행여 인사권자의 판단에 있을지도 모를 미비점(未備點)을 여론에 비추어 사전에 보완하려 한 것이다. 사실 인사가 일단 발표되고 나면 신선함의 효과란 며칠을 지탱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국사(國事)의 어려움을 정리하고 헤쳐나가는 지명된 사람의 능력이다.

검증을 통해 드러난 문제와는 별개로 김 후보자가 과연 박 당선인이 '책임 총리제' 공약을 옮기는 데 최적격 인선(人選)이었느냐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김 후보자는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거치며 법조계에서 존경받아 온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연령과 건강을 고려할 때 새로 출범하는 정부, 더구나 총리실을 비롯한 16개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는 시점의 총리직을 맡아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대통령과 이견을 조율하고 내각을 지휘하는 격무를 감당할 수 있겠는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만일 박 당선인이 총리 후보 인선에 앞서 몇몇 식견(識見) 있는 인사들과 자신의 인사 구상에 관해 의견만 나눴더라도 그런 지적이 제기됐을 것이다.

박 당선인이 취임과 동시에 내각을 출범시키려면 20일가량이 소요되는 인사 청문 과정을 고려해 2월 5일까지는 장관 인선을 마무리해야 한다.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인물은 찾기 힘들고, 인사 검증 시스템은 불완전하며, 시간은 촉박하다. 이제 당선인과 당선인을 만든 여당은 합심(合心)해서 정부의 공적(公的) 인사 검증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가며 새 정부의 출범 일정에 맞춰 인사를 대과(大過) 없이 마무리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이번 인사 파문을 우연(偶然)이 마련해준 재출발과 자기 교정(矯正)의 기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