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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0일 목요일

[조선일보]"北送 9명 중 8명이 내 친구들… 꼭 살리고 싶어"(2013.05.31)

'꽃제비'로 중국서 함께 생활, 작년 1월 한국 온 김강식씨
"11세 때부터 중국오가며 같이 구걸했던 아이들… 北送 직전에도 1명과 통화
평양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어… 국제사회가 도와달라"


 김강식씨 사진
북한 '꽃제비' 출신으로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작년 1월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김강식(가명·23·사진)씨는 30일 "이번에 북송된 9명 가운데 8명과 알고 지냈다"며 "평양에 간 이들이 다시 나오기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북송된 탈북자들이 북에서 나올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번에 북송된 9명과의 관계는?

"내가 양강도 혜산 출신인데 거의 대부분이 아는 친구들이다. 11세 때부터 북한에서 구걸 생활을 했다. 이후 중국에서 왔다갔다할 때 만났던 친구들이다. 일부는 같이 학교 다니고, 어린 시절부터 알던 친구도 있다. 꽃제비, 한국말로 하면 노숙자 생활하면서 쓰레기장에서 주워 먹고 도둑질하면서 살았다."

―언제 한국에 왔나?

"나는 2010년에 9명이랑 함께 북한에서 나왔다. 이후 중국에 와서 도와주시는 주 목사님을 만났다. 그다음에 6명이 더 합류해서 15명이 한집에서 지냈다. 15명 중에서 조(組)를 짜서 나를 포함해 3명이 먼저 (한국에) 입국했다. 12명이 남아 있었는데 미국으로 3명이 갔다. 나는 중국에서 1년 7개월 있다가 2011년 중국에서 나와 2012년 한국에 왔다. 이번에 북송된 9명 가운데 1명은 나 있을 때는 없었다. 모르는 아이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주 목사님이 도와주셔서 한집에 모여서 생활하면서 공부를 했다. 수학, 한글, 성경, 영어 등을 공부했다. 밖에 돌아다니기 어려우니까 쉬는 날에는 TV를 봤다."

―다른 아이들은 어땠나?

"탈북하다가 붙잡혔던 적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북에서 맞아서 머리에 상처가 있는 아이도 있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 상태가 나빠서 나이보다 키가 작다. 여자 아이들과는 친하지 않아서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는 못했다. 같이 지내다 보니까 남자 아이들끼리 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다. 몇은 수학, 영어 등에서 공부를 잘했다."

―아이 가운데 일본인 어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는?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었다. A(23) 어머니가 일본 여자였고 일본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평양에 산다더라. 본인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지나가는 소리로 언뜻 들었다. 아이들은 본인 이야기 잘 안 한다. 물어볼 수도 없었다. 평양에 살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A랑은 2010년에 만나서 이제 알아가는 중이었다."


 라오스·중국을 거쳐 한국에 오려다 최근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이 지난해 성탄절 이브 때 찍은 사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산타 모자를 쓰고 두 손을 든 발랄한 모습이다
라오스·중국을 거쳐 한국에 오려다 최근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이 지난해 성탄절 이브 때 찍은 사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산타 모자를 쓰고 두 손을 든 발랄한 모습이다. /MBC 제공
―9명과는 언제까지 연락했나?

"중국에서는 계속 연락했다. 통화할 때 한국에 간다고 들떠 있었다. 온다니까 좋아하면서 웃기도 했다. 이번에 북송된 9명 중 1명과는 지난 8일 무렵에도 전화 통화 했다. 한국에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드니까 그냥 '중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도 하더라."

―북송된 친구들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평양으로 가면 정말 나오기 힘들다. 나는 (탈북하다 붙잡혔을 때) 양강도에 있어서 6개월 만에 나왔지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오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처형될 가능성?

"30% 정도 될 같다."

―한국에 오려는 꽃제비들이 많나?

"많지만 혼자는 힘들다. 나도 좋은 사람 만나서 가능했다. 지금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중국, 동남아 등에 많이 있다."

―인터뷰에 응한 계기는.

"동생들을 사랑하고, 보고 싶고 살리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 국정원에도 전화하고 하나원에도 전화했다. 그쪽에서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에 바라는 바는?

"같은 사람인데, 한국에 오고 싶은 사람들인데, (한국이) 힘 좀 써주면 좋겠다."

―친구들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북한 가면 못 만난다고 하지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조선일보]탈북자 9명 평양 압송… 유엔 '중대한 우려' 성명(2013.05.31)

라오스의 송환 조치 조사중
朴대통령, 시진핑에 '탈북자 보호' 요청할 듯

유엔난민기구(UNHCR)의 안토니오 구테레스 최고대표는 30일 라오스 경찰에 적발된 '꽃제비' 출신 탈북자 9명이 북송(北送)된 것에 대해 '중대한 우려(grave concern)'를 표명하고 이들의 안전 보장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구테레스 대표는 이 성명에서 "UNHCR은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들이 망명 심사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을 우려한다"며 모든 국가들이 난민을 박해받을 위험이 있는 국가로 추방 또는 송환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킬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구테레스 대표는 이 성명에서 UNHCR이 라오스 정부의 송환 조치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테레스 대표의 성명은 9인의 탈북자가 북송된 후 유엔에서 나온 첫 번째 조치다.


 슬프도록 짧았던 자유… 다시 北으로 끌려간 아이들… 이들에게 한국은 너무 먼 나라였다. 중국, 라오스를 거쳐 한국에 오려다 강제 북송된‘꽃제비(탈북 고아)’출신 탈북자들이 작년 여름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중국의 한 도시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중 신체 대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한 6명은 이미 한국 등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이고,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한 탈북자 8명은 이번에 북송됐다. 이들 8명과 사진에 없는 1명 등 총 9명이 이번에 북으로 끌려갔다. 사진은 중국에서 이들과 함께 1년7개월 동안 생활한 탈북자 김강식(가명)씨가 TV조선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김씨는“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같은 나이의 한국인보다 키가 작다”고 말했다
슬프도록 짧았던 자유… 다시 北으로 끌려간 아이들… 이들에게 한국은 너무 먼 나라였다. 중국, 라오스를 거쳐 한국에 오려다 강제 북송된‘꽃제비(탈북 고아)’출신 탈북자들이 작년 여름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중국의 한 도시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중 신체 대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한 6명은 이미 한국 등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이고,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한 탈북자 8명은 이번에 북송됐다. 이들 8명과 사진에 없는 1명 등 총 9명이 이번에 북으로 끌려갔다. 사진은 중국에서 이들과 함께 1년7개월 동안 생활한 탈북자 김강식(가명)씨가 TV조선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김씨는“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같은 나이의 한국인보다 키가 작다”고 말했다. /중국서 함께 지냈던 탈북자 제공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탈북자 9명이 북송됐다는 보고에 몹시 안타까워했으며, 6월 말 방중(訪中) 때 탈북자 보호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30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탈북자 북송) 보고를 받고 마음 아파했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할 때 전반적인 탈북자 문제를 의제로 올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한·중 양국은 6월 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고 의제를 최종 조율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달 초 방미(訪美) 중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탈북자 북송은 "인도적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중국이 남한으로 보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탈북자를 직접 북한 당국자들에게 넘긴 라오스에 대해서는 외교부를 통해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라오스를 통한 탈북 경로는 그동안 비교적 잘 유지돼 왔는데 북한이 보통 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인 배경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동아일보][준비해야 하나 된다/굶주리는 북녘]<상>사선을 넘는 아이들(2013.05.30)

배곯는 北어린이, 南보다 19cm 작아… ‘다른 인종’ 우려





《 북한을 탈출한 15∼23세 꽃제비 9명이 라오스에서 중국으로 추방됐다가 곧바로 강제 북송된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 부모 없는 고아인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왜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일까. 이들은 라오스 이민국의 조사 과정에서 “북한에서 배고파 죽느니, 죽을 각오로 한국에 가려고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아일보는 북한의 대표적 취약계층인 어린이 및 영유아, 임산부 등의 참담한 현실을 진단하는 상하 시리즈를 마련했다. 동아미디어그룹의 연중기획 ‘준비해야 하나 된다-통일코리아 프로젝트’ 7대 다짐 중 하나인 ‘북한 어린이는 통일코리아의 미래다’를 실천하려는 의지도 담았다. 이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다. 》

2012년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 13세 유진이(가명)는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콩나물을 팔았다. 2006년 돈을 벌어오겠다며 나간 엄마의 소식이 끊긴 후 학교를 더 다닐 수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이모의 집에 얹혀살면서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늘 배가 고팠다. 하루 세 끼를 먹은 날이 기억에 없다. 한두 끼도 불린 국수나 강냉이밥으로 때운 적이 많다. 아예 끼니를 거르는 날도 적지 않았다. 사흘을 내리 굶어 힘없이 누워만 있었던 적도 있다. 팔고 있던 생콩나물을 씹어보기도 했다. 장마당에서 파는 ‘인조고기밥’은 그저 쳐다만 봤다. 콩을 고기처럼 갈아 넣고 만든 인조고기밥은 유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유진이는 지난해 말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먼저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엄마가 8번째 시도 만에 탈북 브로커를 통해 딸을 북한에서 빼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유진이는 먹고 싶은 음식을 묻는 엄마에게 제일 먼저 “인조고기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 김정은보다 무서운 굶주림

북한의 식량 사정은 2012년 김정은 체제의 본격 출범 이후 나빠지는 추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북한의 식량부족량을 약 50만 t으로 예상했으나 올해 2월 이를 65만7000t으로 늘려 잡았다. 만성적인 식량난이 계속될 경우 280만 명의 주민이 끼니를 거르는 식량부족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5월 초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한 대북사업 평가보고서도 올해 1분기(1∼3월) 조사대상 북한 가정(87개)의 80%가 영양부족 상태를 겪고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북한의 영유아를 비롯한 취약계층은 이런 식량부족 문제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올해 3월 유엔아동기금(UNICEF)과 WFP 등이 공동 발표한 북한식량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북한 어린이의 27.9%인 47만5868명이 만성화된 영양결핍 문제를 겪고 있다. 이 중 8.4%는 심각한 상태였다.

엄마와 함께 탈북한 후 대안학교 ‘물망초학교’에 다니는 5세 박재원(가명) 군은 입학 초기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굴러서 교사들을 당황하게 했다. 허기진 생활에 익숙해 있던 박 군이 갑자기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은 뒤 장에 탈이 난 것. 이 학교를 운영하는 박선영 물망초재단 이사장은 “아이들의 장 기능이 크게 떨어져 있어 소화 문제가 자주 생기고 병원에서 관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북한 어린이들은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동시에 영양부족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도 시달린다. 북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다 지난해 말 탈북한 8세 김진혁 군의 경우 최근 건강검진에서 결핵 판정을 받았다. 과거 장마당에서 음식찌꺼기를 주워 먹으며 험한 생활을 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 이대로 가면 ‘같은 민족, 다른 인종’의 비극 온다

영양이 부족해 성장하지 못하는 북한 어린이들의 몸집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유진이(13)의 체구는 남한 어린이 9, 10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래 평균(156cm)보다 키가 무려 30cm가량 작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의 2011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남한의 만 11세 남자 어린이 평균 키는 144cm, 몸무게는 39kg인 반면 북한 어린이는 125cm, 23kg에 머물렀다. 남북의 키 차이가 19cm, 몸무게 차이는 16kg에 이른다. 

서울대 윤지현 교수는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같은 5대 기본 영양소나 비타민과 철분 요오드 같은 미량원소가 부족하면 아이들의 성장 발달은 물론이고 인지발달과 학습 능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남북한 어린이의 영양상태 및 이에 따른 발달 격차가 장기화되면 사실상 인종이 바뀐다고 느낄 만큼 심각한 편차가 생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후생유전학(epigenetics)’ 혹은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이를 설명할 수 있다.

아주대병원 의학유전학과 정선용 교수는 “(분단 이후) 60여 년밖에 안 흘렀기 때문에 남북 간에 유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양상태의 차이에 따라 어떤 유전자는 발현이 더 잘되고 안 되고 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北은 군사작전하듯 탈북자 압송… 정부는 쳐다만 봐(2013.05.30)

[정부, 탈북자 9명 평양에 들어간줄 모르고 中 공항서 그들을 찾고 있었다]

정부, 어제 오전까지 북송 몰라 - 평양행 탑승객 명단 확보 못해
베이징 공항서 육안으로 탑승객 확인하다가 놓쳐

라오스에서도 무기력 - 기다리라는 말만 믿고
억류 18일간 면담 한번 안해… "北이 라오스 압박" 변명

중국 협조도 못 받아 - 9명 신원 통보했지만 평양행 비행기 탑승 못 막아

라오스 정부가 북한으로 넘긴 '꽃제비' 출신 탈북자 9명이 28일 이미 북송(北送)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우리 정부의 무기력하고 무성의한 대응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붙잡혀 가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을 뿐 아니라 어떤 작용도 하지 못했다.

정부 北送 사실도 확인 못 해

정부는 29일 오전까지 탈북자 9명이 북송됐는지에 대해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어제(28일) 우리 측 여러 명이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나가 4시간 동안 평양행 고려항공 탑승객 동향을 관찰했는데 (탈북자들이) 비행기 타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이미 베이징을 떠나 평양으로 들어가 있던 시각까지 우리 정부는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인권단체 회원들이 29일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을 막지 못한 것 등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북한인권단체 회원들이 29일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을 막지 못한 것 등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정부는 29일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여러 방법으로 사실관계를 점검해본 결과 탈북자들이 북송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공항에서는 못 봤는데, 다른 방법으로 이들이 고려항공 비행기를 타고 북으로 갔다는 정황이 감지됐다"고 했다. 정부는 고려항공 탑승객 명단을 확보하기 어려워 베이징 공항에서 육안으로 탑승객들을 확인하다가 이들을 놓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27일 이번 사건 대응을 위해 외교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 24시간 가동에 들어갔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북송 여부조차 몰랐던 것이다.

라오스에서도 안이한 대응

정부는 '꽃제비'들이 중국을 거쳐 라오스 국경을 넘은 10일부터 이들의 존재를 인지했다. 하지만 라오스 정부가 이들을 북한 당국에 넘기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정부는 라오스 정부의 '비협조'를 이유로 들었다. 정부 관계자는 "라오스 정부가 '20일쯤 탈북자들을 곧 (우리 쪽에) 인도하겠다'고 하다가 전격적으로 북한에 넘겨줬기 때문에 사태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은 탈북자들이 라오스 정부에 억류돼 있는 18일(10~27일) 동안 단 한 번도 이들을 면담하지 않았다.

탈북자 9명의 동선과 외교부 대응 그래픽
탈북자 단체들은 "라오스 정부의 '기다리라'는 말만 믿고 우리 정부가 너무 안이했다"고 했다. 그 사이 북한 대사관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국 대사관 직원을 가장해 탈북자들을 면담한 일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탈북 단체 관계자는 "라오스 이민국 억류 당시인 16일, 탈북자들이 외출할 기회를 얻자 인솔자가 한국 대사관에 연락해 '탈출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한국 대사관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했다.

정부는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압송된 후에도 "9명의 신원을 중국측에 통보하고 북송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지만 평양행 비행기를 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중국 정부는 북한측 요청에 따라 탈북자들에게 중국 도시들을 경유할 수 있는 단체비자를 발급해주는 등 북송을 사실상 묵인했다.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정부의 안이함과 외교적 무능이 빚은 참극"이라며 "관련자들을 문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과 벌인 외교전에서 이처럼 밀린 데 대해 "우리 대사관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북측이 이례적으로 라오스 정부를 강하게 압박한 특수 사례일 뿐"이라고 하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이번 사건을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국제기구에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꽃제비
집과 부모를 잃고 장마당 등을 떠돌며 구걸로 연명하는 북한 어린이·청소년을 말한다. ‘유랑’ ‘떠돌이’를 뜻하는 러시아어 ‘코체비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여러 명(10명 이내)이 몰려다니며 각자 역할을 나눠 구걸·소매치기·날치기·도둑질을 한다. 1990년대 중·후반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두만강·압록강 주변을 중심으로 북한 전역에서 출현했다.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조선일보][오늘의 세상] 라오스, 탈북자 9명 추방… 北이 비행기 태워 中으로 '압송'(2013.05.29)

15~23세인 탈북고아 '꽃제비' 출신 9명, 北送될 위기
한국측, 1~2주내 인도하던 관례 믿고 안이한 대응한 듯
北인권단체 "대사관, 18일간 탈북자 한번도 면회 안해"
탈북 단속 강화한 김정은 정권
라오스에 외교총력전 편 듯


 북송위기 탈북자 9명 이동 경로 지도
'꽃제비(탈북 고아)' 출신 탈북자 9명이 지난 10일 중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에 도착했으나 라오스 정부가 이들을 강제 추방 형식으로 북한 관계자들에게 넘긴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남북한은 탈북자 9명이 라오스에 도착한 직후부터 이 사건을 인지하고 외교전을 벌였으나, 라오스 정부는 북한 편을 들어줬다. 북한은 27일 탈북자들을 인계하자마자 이례적으로 비행기에 태워 중국으로 이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이번 탈북자 중에 북한이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넘겨줘서는 안 될 사람이 포함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외교전에서 北에 밀려

28일 탈북자 단체 등에 따르면, 문모(23)씨 등 15~23세 남자 7명, 여자 2명은 한국인 목사 장모씨 부부의 지원을 받아 북한을 탈출했다. 이들은 지난 10일 중국 남부에서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가다 경찰에 붙잡혔다. 장 목사는 체포된 직후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에 구명을 요청했으나 대사관에서는 "우리가 해결하겠다. 일단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말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목사와 탈북자 일행은 16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으로 이송됐다. 라오스 정부는 보통 탈북자를 체포한 후 1~2주 내에 우리 측에 신병을 넘기던 과거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 이후 라오스 정부는 27일 문모씨 등 탈북자 9명을 '출발지인 인근국(중국)'으로 강제 추방했다고 우리 대사관에 사후 통보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 북한인권단체들은 "탈북자들이 이민국에 18일간 수용돼 있는 동안 주라오스 한국 대사관에서는 단 한 차례 면회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탈북자들은 27일 오후 중국 윈난성 쿤밍(昆明)에 도착했으며 현재 베이징에 머물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 소식통은 "북한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여러 사람이 탈북자들과 함께 이동 중"이라며 "북한 당국자들이 직접 호송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 측은 라오스를 떠나기 전 탈북자들에게 합법적 여행 증명서와 여권 등을 소지하게 했다. 이에 따라 이들이 조만간 북송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라오스 이례적으로 비행기 압송 허용, 왜?

북한이 탈북자 문제에 신속하게 개입해서 이들을 인계한 후, 비행기에 태워 데려간 것은 이례적이다. 라오스 정부도 관례를 깨고 공항에서 바로 비행기에 태워 나가는 것을 허용했다.

북한 소식통은 "과거 김정일은 탈북자들에 대해 '배신자는 갈 테면 가라'는 식이었으나 김정은이 들어선 이후로는 단속과 통제가 심해졌다"며 "라오스 주재 북한 대사관이 이런 변화에 맞춰 열심히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입국 탈북자 수는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 2706명을 기록했으나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 1509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3월 현재 320명 선에 그치고 있다.


 탈북자들이 2007년 8월 중국과 라오스의 국경 지역을 넘고 있다. 이번에 라오스에서 붙잡힌 탈북자 9명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탈북자들이 2007년 8월 중국과 라오스의 국경 지역을 넘고 있다. 이번에 라오스에서 붙잡힌 탈북자 9명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용호 AD
이번 사건 배경에는 북한과 라오스의 전통적 우호 관계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우리 정부 당국이 평소처럼 인계될 것으로 보고 안이한 대응을 해서 탈북자들을 북송 위기에 빠뜨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탈북자들의 90%가량이 '북한→중국→라오스(이후 태국까지 가는 경우도 있음)' 경로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탈북자 송환에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등 북한인권단체들은 이날 저녁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 정부는 이들의 체포 소식을 전해 듣고도 18일 동안 이들을 방치했으며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탈북자 9명이 현재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이들이 북송된다면 심각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특별취재 탈북’ 제작 PD들의 뒷얘기(2013.01.16)


10개월짜리 아기를 업고 탈북한 여성은 “힘들지 않느냐”는 PD의 질문에 “힘들어도 가야죠. 이미 떠난 길인데”라며 각오를 다졌다. 채널A ‘특별취재 탈북’은 15명의 집단 탈북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채널A 방송화면.

"먹먹한 가슴으로 손에 땀을 쥐며 봤습니다."


"방송을 보고 울고 또 울다 밤잠을 못 잤습니다."

채널A가 방송한 탈북 다큐멘터리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13일 방송한 '특별취재 탈북' 1부 '강을 건넌 사람들', 2부 '마지막 국경'은 방송 이후 더욱 화제가 됐다. 제작진 앞으로 탈북자들을 돕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했다. 특히 일곱 살 꽃제비 진혁이를 후원하고 싶다는 시청자가 많았다.
15명의 집단 탈북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프로그램의 제작 주역은 탈북자들과 20일간 동행한 양승원 PD(36)와 강태연 PD(31)였다. 15일 만난 두 PD는 "언제든 잡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잡혀도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며 방송에 다 담지 못한 뒷얘기를 꺼냈다.

●탈북자들과 생사를 함께 하다
 

2012년 11월 말, 양 PD는 중국 압록강변에서 일곱 살 꽃제비 진혁이가 강을 건너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예정된 날짜가 지나도록 진혁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못 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던 날 밤, 진혁이는 기적적으로 강을 건너 양 PD와 만났다.

이 때 강 PD는 먼저 강을 건너온 성인 탈북자 그룹과 중국 모처에 마련한 안전가옥(안가)에 은신하고 있었다. 불빛이 새나갈까 커튼으로 창문을 꼼꼼히 가리고 주민들이 수상히 여겨 신고할까봐 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황에서도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의 위기를 담담히 준비하는 탈북자들의 모습은 강 PD에게는 충격이었다. "안가를 떠나기 전에 잡히면 죽겠다며 면도칼을 종이에 싸서 준비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죠."

강 PD는 성인 탈북자들과 함께 버스로 A국 국경까지 이동했다. 버스를 갈아 탈 때마다 곳곳에 깔린 중국 공안들을 피해 다녔다. 3일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신분이 노출될까봐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하루 한 번씩 들르는 휴게소에서였다. 탈북 여성과 차에서 내린 강 PD에게 공안이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했다. 다행히 탈북자는 중국어를 할 줄 알았고 강 PD는 여권을 소지하고 있어 위기를 넘겼다. 강 PD는 "만약 버스에 여권을 두고 내렸다면 신분증이 없다는 점을 수상히 여긴 공안에게 버스 안 탈북자들이 발각될 수 있었다"고 했다.

A국으로 들어간 두 PD와 15명 탈북자들의 다음 목적지는 B국이었다. 양 PD는 탈북자들과 함께 B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밀림을 건넜다. 일행 중에는 10개월짜리 아기를 업은 여성도 있었다. 현지 안내인은 아기가 울면 군인들에게 들킨다며 수면제를 먹이자고 했다. 탈북자들과 안내인의 중재 역할까지 했던 양 PD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다행히 아기는 밀림을 빠져나오는 4시간 동안 울지 않았다. 양 PD는 "아기 엄마가 장화를 신고도 밀림에서 제일 잘 뛰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위대한 모성애였다"고 전했다.

밀림은 30cm 앞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불을 함부로 켤 수도 없었다. 카메라의 녹화(REC) 버튼에 들어오는 빨간 불까지 씹던 껌으로 가릴 정도였다. 카메라를 든 양 PD는 수도 없이 넘어지고 일행에 뒤쳐져 길을 잃을 위험도 여러 번 겪어야 했다.

새벽 4시가 돼서야 밀림을 빠져나온 일행. 양 PD는 약속장소에 대기하고 있던 강 PD에게 그동안의 촬영 영상을 담은 메모리칩을 인계하고 다시 밀림을 거슬러 A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B국에서는 그도 밀입국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 군인에게 들킬 수 있는 상황. 그는 밀림을 뛰어 2시간 만에 A국으로 되돌아가는데 성공했다. 흙이 섞인 시냇물을 마시며 환호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 같더라고요."

20일간 함께 생사를 넘나든 PD들은 탈북자들과 친구가 됐다. 강 PD는 또래 여성 탈북자들에게 "한국이 생각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닐 수 있다. 경쟁도 굉장히 치열하다"고 말했다. 돌아온 답변은 "어디라도 북한보다는 낫다. 노력한만큼 살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양 PD는 진혁이의 아빠 역할을 하며 실제 부자지간처럼 가까웠다. "TV에서 보면 진혁이가 동글동글 통통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곱 살은커녕 서너 살 정도로 보일만큼 작아요. 그래도 참 똑똑하고 예쁘죠."

'특별취재 탈북'은 양 PD가 진혁이에게 한국에 가면 뭘 하고 싶냐고 묻는 장면으로 끝난다. 진혁이의 대답은 '일' 이었다.

"일곱 살 아이가 일을 하고 싶다는 게 가슴이 아팠어요. 그 나이에 얼마나 치열하게 살 방법을 고민해왔는지 보여줬기 때문이죠."

두 PD는 "아직 과제가 남아있다"고 입을 모았다. "제3국에 머무르고 있는 진혁이와 탈북자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어떻게 적응하고 살 수 있을까…. 그 다음 얘기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