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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0일 목요일

[조선일보]"北送 9명 중 8명이 내 친구들… 꼭 살리고 싶어"(2013.05.31)

'꽃제비'로 중국서 함께 생활, 작년 1월 한국 온 김강식씨
"11세 때부터 중국오가며 같이 구걸했던 아이들… 北送 직전에도 1명과 통화
평양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어… 국제사회가 도와달라"


 김강식씨 사진
북한 '꽃제비' 출신으로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작년 1월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김강식(가명·23·사진)씨는 30일 "이번에 북송된 9명 가운데 8명과 알고 지냈다"며 "평양에 간 이들이 다시 나오기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북송된 탈북자들이 북에서 나올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번에 북송된 9명과의 관계는?

"내가 양강도 혜산 출신인데 거의 대부분이 아는 친구들이다. 11세 때부터 북한에서 구걸 생활을 했다. 이후 중국에서 왔다갔다할 때 만났던 친구들이다. 일부는 같이 학교 다니고, 어린 시절부터 알던 친구도 있다. 꽃제비, 한국말로 하면 노숙자 생활하면서 쓰레기장에서 주워 먹고 도둑질하면서 살았다."

―언제 한국에 왔나?

"나는 2010년에 9명이랑 함께 북한에서 나왔다. 이후 중국에 와서 도와주시는 주 목사님을 만났다. 그다음에 6명이 더 합류해서 15명이 한집에서 지냈다. 15명 중에서 조(組)를 짜서 나를 포함해 3명이 먼저 (한국에) 입국했다. 12명이 남아 있었는데 미국으로 3명이 갔다. 나는 중국에서 1년 7개월 있다가 2011년 중국에서 나와 2012년 한국에 왔다. 이번에 북송된 9명 가운데 1명은 나 있을 때는 없었다. 모르는 아이다."

―중국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주 목사님이 도와주셔서 한집에 모여서 생활하면서 공부를 했다. 수학, 한글, 성경, 영어 등을 공부했다. 밖에 돌아다니기 어려우니까 쉬는 날에는 TV를 봤다."

―다른 아이들은 어땠나?

"탈북하다가 붙잡혔던 적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북에서 맞아서 머리에 상처가 있는 아이도 있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 상태가 나빠서 나이보다 키가 작다. 여자 아이들과는 친하지 않아서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는 못했다. 같이 지내다 보니까 남자 아이들끼리 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다. 몇은 수학, 영어 등에서 공부를 잘했다."

―아이 가운데 일본인 어머니가 있다는 이야기는?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었다. A(23) 어머니가 일본 여자였고 일본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평양에 산다더라. 본인에게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지나가는 소리로 언뜻 들었다. 아이들은 본인 이야기 잘 안 한다. 물어볼 수도 없었다. 평양에 살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A랑은 2010년에 만나서 이제 알아가는 중이었다."


 라오스·중국을 거쳐 한국에 오려다 최근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이 지난해 성탄절 이브 때 찍은 사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산타 모자를 쓰고 두 손을 든 발랄한 모습이다
라오스·중국을 거쳐 한국에 오려다 최근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이 지난해 성탄절 이브 때 찍은 사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산타 모자를 쓰고 두 손을 든 발랄한 모습이다. /MBC 제공
―9명과는 언제까지 연락했나?

"중국에서는 계속 연락했다. 통화할 때 한국에 간다고 들떠 있었다. 온다니까 좋아하면서 웃기도 했다. 이번에 북송된 9명 중 1명과는 지난 8일 무렵에도 전화 통화 했다. 한국에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드니까 그냥 '중국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도 하더라."

―북송된 친구들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평양으로 가면 정말 나오기 힘들다. 나는 (탈북하다 붙잡혔을 때) 양강도에 있어서 6개월 만에 나왔지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오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처형될 가능성?

"30% 정도 될 같다."

―한국에 오려는 꽃제비들이 많나?

"많지만 혼자는 힘들다. 나도 좋은 사람 만나서 가능했다. 지금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중국, 동남아 등에 많이 있다."

―인터뷰에 응한 계기는.

"동생들을 사랑하고, 보고 싶고 살리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 국정원에도 전화하고 하나원에도 전화했다. 그쪽에서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에 바라는 바는?

"같은 사람인데, 한국에 오고 싶은 사람들인데, (한국이) 힘 좀 써주면 좋겠다."

―친구들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북한 가면 못 만난다고 하지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중앙일보]북, 탈북자 압송 전격 작전 … 납북 일본인 아들 숨기기?(2013.05.31)

일본 언론 “마쓰모토 아들 가능성”
스가 관방장관 “관계국과 확인 중”
탈북 도운 선교사와 친한 인권단체
“1년 함께 지내면서 그런 말 안 해”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즐기던 탈북 청소년 9명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체류하던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찍은 북한 청소년 9명의 사진. 휴대전화로 촬영했으며 신변 보호를 위해 얼굴을 가렸다. 이들의 한국행 시도를 도왔던 선교사는 사진 공개가 우리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 MBC]

마쓰모토 교코

지난 28일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 가운데 납북 일본인의 아들 문철(23)씨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30일 제기됐다. 동아일보는 이날 “한국 정부가 이런 첩보를 입수해 진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교도통신과 TV아사히 등은 동아일보가 이런 보도를 했다면서 문씨에 대해 “1977년 납북된 일본인 여성 마쓰모토 교코(松本京子)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77년 당시 29세이던 마쓰모토는 돗토리(鳥取)현 요나고(米子)시 자택에서 뜨개질 학원을 가던 중 납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이 ‘북한 당국에 의해 납치된 피해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납북자로 공식 지목한 17명 중 한 명이다.

 문씨가 마쓰모토의 아들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북한의 이례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북한은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 억류되고 있는 동안 요원을 파견하고 친북 인사를 라오스 이민국 심사에 참여시켜 관련 정보까지 캐갔다고 한다. 지난 20∼24일에는 라오스 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라오스 대표단을 평양으로 초청해 탈북청소년 귀환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탈북자를 북송하는 루트나 수단도 달랐다. 그동안에는 육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나 이번 경우엔 라오스 비엔티안→중국 쿤밍→중국 베이징→북한 평양으로 비행기를 세 차례나 갈아타면서 24시간 이내에 북송작전을 전격적으로 마무리했다. 탈북 청소년 9명에 대해 관용여권 소지자 등 다수의 인원을 붙여 철저히 감시하면서다. 뭔가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 불가피한 이유가 납북 일본인 문제가 국제사회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게 일부 일본 언론의 주장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아직까지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움직인 정황은 많지만 문씨와 마쓰모토 간의 연관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북송된 탈북 고아 중 납북된 일본인의 아들이 포함됐느냐”는 질문에 “우리 정부가 아는 바는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당국자도 “그런 소문은 들었지만 정확한 정보는 없다”고 했다.

 물론 문씨가 납북 일본인의 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도 있다. 탈북 청소년 9명을 탈출시킨 선교사 주모씨와 긴밀히 연락해 온 정베드로 북한인권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주 선교사가 1년 이상 문씨를 데리고 있었는데도 납북 일본인의 자녀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납북 일본인 자녀가 있었다면 일본 쪽을 통한 탈출 방법도 강구했을 텐데 그런 적이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일본과 관련이 있었다면 당연히 중국 선양 주재 일본 대사관에 진입하거나 일본 측 외교관과의 접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란 얘기다. 라오스 정부가 조사 과정에서 일본인 납치와 관련한 정황을 파악했다면 이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일본인 납북은 재일동포 북송사업 와중에서 불거졌다. 59년 시작된 북송사업으로 20여 년간 9만3000여 명이 북한으로 갔다. 이 중엔 일본인 처 1800여 명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들은 9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고향인 일본을 방문했으나 2002년 이후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북·일 간 갈등 요소로 떠오르면서 중단됐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탈북 청소년들은 6개월에서 수년간 국경 근처에서 먹을 것 없이 떠돌던 이들로 북한 당국이 특별 관리하는 납북자일 가능성은 낮다”며 “ 문씨가 일본인의 자녀라고 해도 마쓰모토의 자녀가 아닌 다른 북송 일본인의 자녀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납치 일본인과 북송 일본인 처는 현격히 다르다”며 “탈북 청소년들이 라오스까지 탈북에 성공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통제가 엄격할 납치 일본인의 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본은 관련 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TV아사히를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관련 보도가 사실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오전 브리핑에서 “관계국과 연결을 취하는 등 외교 루트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이 시점에서 (사실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답변드리기는 힘들다”면서 “어쨌든 정부로선 모든 납치 피해자의 생존을 전제로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탈북자 9명 평양 압송… 유엔 '중대한 우려' 성명(2013.05.31)

라오스의 송환 조치 조사중
朴대통령, 시진핑에 '탈북자 보호' 요청할 듯

유엔난민기구(UNHCR)의 안토니오 구테레스 최고대표는 30일 라오스 경찰에 적발된 '꽃제비' 출신 탈북자 9명이 북송(北送)된 것에 대해 '중대한 우려(grave concern)'를 표명하고 이들의 안전 보장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구테레스 대표는 이 성명에서 "UNHCR은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들이 망명 심사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을 우려한다"며 모든 국가들이 난민을 박해받을 위험이 있는 국가로 추방 또는 송환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킬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구테레스 대표는 이 성명에서 UNHCR이 라오스 정부의 송환 조치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테레스 대표의 성명은 9인의 탈북자가 북송된 후 유엔에서 나온 첫 번째 조치다.


 슬프도록 짧았던 자유… 다시 北으로 끌려간 아이들… 이들에게 한국은 너무 먼 나라였다. 중국, 라오스를 거쳐 한국에 오려다 강제 북송된‘꽃제비(탈북 고아)’출신 탈북자들이 작년 여름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중국의 한 도시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중 신체 대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한 6명은 이미 한국 등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이고,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한 탈북자 8명은 이번에 북송됐다. 이들 8명과 사진에 없는 1명 등 총 9명이 이번에 북으로 끌려갔다. 사진은 중국에서 이들과 함께 1년7개월 동안 생활한 탈북자 김강식(가명)씨가 TV조선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김씨는“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같은 나이의 한국인보다 키가 작다”고 말했다
슬프도록 짧았던 자유… 다시 北으로 끌려간 아이들… 이들에게 한국은 너무 먼 나라였다. 중국, 라오스를 거쳐 한국에 오려다 강제 북송된‘꽃제비(탈북 고아)’출신 탈북자들이 작년 여름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중국의 한 도시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중 신체 대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한 6명은 이미 한국 등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이고,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한 탈북자 8명은 이번에 북송됐다. 이들 8명과 사진에 없는 1명 등 총 9명이 이번에 북으로 끌려갔다. 사진은 중국에서 이들과 함께 1년7개월 동안 생활한 탈북자 김강식(가명)씨가 TV조선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김씨는“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같은 나이의 한국인보다 키가 작다”고 말했다. /중국서 함께 지냈던 탈북자 제공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탈북자 9명이 북송됐다는 보고에 몹시 안타까워했으며, 6월 말 방중(訪中) 때 탈북자 보호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30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탈북자 북송) 보고를 받고 마음 아파했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할 때 전반적인 탈북자 문제를 의제로 올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한·중 양국은 6월 말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고 의제를 최종 조율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달 초 방미(訪美) 중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탈북자 북송은 "인도적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중국이 남한으로 보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탈북자를 직접 북한 당국자들에게 넘긴 라오스에 대해서는 외교부를 통해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라오스를 통한 탈북 경로는 그동안 비교적 잘 유지돼 왔는데 북한이 보통 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인 배경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동아일보][준비해야 하나 된다/굶주리는 북녘]<상>사선을 넘는 아이들(2013.05.30)

배곯는 北어린이, 南보다 19cm 작아… ‘다른 인종’ 우려





《 북한을 탈출한 15∼23세 꽃제비 9명이 라오스에서 중국으로 추방됐다가 곧바로 강제 북송된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 부모 없는 고아인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왜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일까. 이들은 라오스 이민국의 조사 과정에서 “북한에서 배고파 죽느니, 죽을 각오로 한국에 가려고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아일보는 북한의 대표적 취약계층인 어린이 및 영유아, 임산부 등의 참담한 현실을 진단하는 상하 시리즈를 마련했다. 동아미디어그룹의 연중기획 ‘준비해야 하나 된다-통일코리아 프로젝트’ 7대 다짐 중 하나인 ‘북한 어린이는 통일코리아의 미래다’를 실천하려는 의지도 담았다. 이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다. 》

2012년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 13세 유진이(가명)는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콩나물을 팔았다. 2006년 돈을 벌어오겠다며 나간 엄마의 소식이 끊긴 후 학교를 더 다닐 수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이모의 집에 얹혀살면서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늘 배가 고팠다. 하루 세 끼를 먹은 날이 기억에 없다. 한두 끼도 불린 국수나 강냉이밥으로 때운 적이 많다. 아예 끼니를 거르는 날도 적지 않았다. 사흘을 내리 굶어 힘없이 누워만 있었던 적도 있다. 팔고 있던 생콩나물을 씹어보기도 했다. 장마당에서 파는 ‘인조고기밥’은 그저 쳐다만 봤다. 콩을 고기처럼 갈아 넣고 만든 인조고기밥은 유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유진이는 지난해 말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먼저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엄마가 8번째 시도 만에 탈북 브로커를 통해 딸을 북한에서 빼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유진이는 먹고 싶은 음식을 묻는 엄마에게 제일 먼저 “인조고기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 김정은보다 무서운 굶주림

북한의 식량 사정은 2012년 김정은 체제의 본격 출범 이후 나빠지는 추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북한의 식량부족량을 약 50만 t으로 예상했으나 올해 2월 이를 65만7000t으로 늘려 잡았다. 만성적인 식량난이 계속될 경우 280만 명의 주민이 끼니를 거르는 식량부족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5월 초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발표한 대북사업 평가보고서도 올해 1분기(1∼3월) 조사대상 북한 가정(87개)의 80%가 영양부족 상태를 겪고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북한의 영유아를 비롯한 취약계층은 이런 식량부족 문제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올해 3월 유엔아동기금(UNICEF)과 WFP 등이 공동 발표한 북한식량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북한 어린이의 27.9%인 47만5868명이 만성화된 영양결핍 문제를 겪고 있다. 이 중 8.4%는 심각한 상태였다.

엄마와 함께 탈북한 후 대안학교 ‘물망초학교’에 다니는 5세 박재원(가명) 군은 입학 초기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굴러서 교사들을 당황하게 했다. 허기진 생활에 익숙해 있던 박 군이 갑자기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은 뒤 장에 탈이 난 것. 이 학교를 운영하는 박선영 물망초재단 이사장은 “아이들의 장 기능이 크게 떨어져 있어 소화 문제가 자주 생기고 병원에서 관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북한 어린이들은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동시에 영양부족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도 시달린다. 북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다 지난해 말 탈북한 8세 김진혁 군의 경우 최근 건강검진에서 결핵 판정을 받았다. 과거 장마당에서 음식찌꺼기를 주워 먹으며 험한 생활을 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 이대로 가면 ‘같은 민족, 다른 인종’의 비극 온다

영양이 부족해 성장하지 못하는 북한 어린이들의 몸집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유진이(13)의 체구는 남한 어린이 9, 10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래 평균(156cm)보다 키가 무려 30cm가량 작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의 2011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남한의 만 11세 남자 어린이 평균 키는 144cm, 몸무게는 39kg인 반면 북한 어린이는 125cm, 23kg에 머물렀다. 남북의 키 차이가 19cm, 몸무게 차이는 16kg에 이른다. 

서울대 윤지현 교수는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같은 5대 기본 영양소나 비타민과 철분 요오드 같은 미량원소가 부족하면 아이들의 성장 발달은 물론이고 인지발달과 학습 능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남북한 어린이의 영양상태 및 이에 따른 발달 격차가 장기화되면 사실상 인종이 바뀐다고 느낄 만큼 심각한 편차가 생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후생유전학(epigenetics)’ 혹은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이를 설명할 수 있다.

아주대병원 의학유전학과 정선용 교수는 “(분단 이후) 60여 년밖에 안 흘렀기 때문에 남북 간에 유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양상태의 차이에 따라 어떤 유전자는 발현이 더 잘되고 안 되고 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北은 군사작전하듯 탈북자 압송… 정부는 쳐다만 봐(2013.05.30)

[정부, 탈북자 9명 평양에 들어간줄 모르고 中 공항서 그들을 찾고 있었다]

정부, 어제 오전까지 북송 몰라 - 평양행 탑승객 명단 확보 못해
베이징 공항서 육안으로 탑승객 확인하다가 놓쳐

라오스에서도 무기력 - 기다리라는 말만 믿고
억류 18일간 면담 한번 안해… "北이 라오스 압박" 변명

중국 협조도 못 받아 - 9명 신원 통보했지만 평양행 비행기 탑승 못 막아

라오스 정부가 북한으로 넘긴 '꽃제비' 출신 탈북자 9명이 28일 이미 북송(北送)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우리 정부의 무기력하고 무성의한 대응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붙잡혀 가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을 뿐 아니라 어떤 작용도 하지 못했다.

정부 北送 사실도 확인 못 해

정부는 29일 오전까지 탈북자 9명이 북송됐는지에 대해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어제(28일) 우리 측 여러 명이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나가 4시간 동안 평양행 고려항공 탑승객 동향을 관찰했는데 (탈북자들이) 비행기 타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이미 베이징을 떠나 평양으로 들어가 있던 시각까지 우리 정부는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인권단체 회원들이 29일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을 막지 못한 것 등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북한인권단체 회원들이 29일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을 막지 못한 것 등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정부는 29일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여러 방법으로 사실관계를 점검해본 결과 탈북자들이 북송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공항에서는 못 봤는데, 다른 방법으로 이들이 고려항공 비행기를 타고 북으로 갔다는 정황이 감지됐다"고 했다. 정부는 고려항공 탑승객 명단을 확보하기 어려워 베이징 공항에서 육안으로 탑승객들을 확인하다가 이들을 놓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27일 이번 사건 대응을 위해 외교부 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 24시간 가동에 들어갔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북송 여부조차 몰랐던 것이다.

라오스에서도 안이한 대응

정부는 '꽃제비'들이 중국을 거쳐 라오스 국경을 넘은 10일부터 이들의 존재를 인지했다. 하지만 라오스 정부가 이들을 북한 당국에 넘기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정부는 라오스 정부의 '비협조'를 이유로 들었다. 정부 관계자는 "라오스 정부가 '20일쯤 탈북자들을 곧 (우리 쪽에) 인도하겠다'고 하다가 전격적으로 북한에 넘겨줬기 때문에 사태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라오스 주재 한국 대사관은 탈북자들이 라오스 정부에 억류돼 있는 18일(10~27일) 동안 단 한 번도 이들을 면담하지 않았다.

탈북자 9명의 동선과 외교부 대응 그래픽
탈북자 단체들은 "라오스 정부의 '기다리라'는 말만 믿고 우리 정부가 너무 안이했다"고 했다. 그 사이 북한 대사관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국 대사관 직원을 가장해 탈북자들을 면담한 일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탈북 단체 관계자는 "라오스 이민국 억류 당시인 16일, 탈북자들이 외출할 기회를 얻자 인솔자가 한국 대사관에 연락해 '탈출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한국 대사관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했다.

정부는 탈북자들이 중국으로 압송된 후에도 "9명의 신원을 중국측에 통보하고 북송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지만 평양행 비행기를 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중국 정부는 북한측 요청에 따라 탈북자들에게 중국 도시들을 경유할 수 있는 단체비자를 발급해주는 등 북송을 사실상 묵인했다.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정부의 안이함과 외교적 무능이 빚은 참극"이라며 "관련자들을 문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과 벌인 외교전에서 이처럼 밀린 데 대해 "우리 대사관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북측이 이례적으로 라오스 정부를 강하게 압박한 특수 사례일 뿐"이라고 하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이번 사건을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국제기구에 제기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꽃제비
집과 부모를 잃고 장마당 등을 떠돌며 구걸로 연명하는 북한 어린이·청소년을 말한다. ‘유랑’ ‘떠돌이’를 뜻하는 러시아어 ‘코체비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여러 명(10명 이내)이 몰려다니며 각자 역할을 나눠 구걸·소매치기·날치기·도둑질을 한다. 1990년대 중·후반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두만강·압록강 주변을 중심으로 북한 전역에서 출현했다.

2013년 5월 16일 목요일

[동아일보]대법 “부부간에도 강간죄 성립”… 43년만에 판례 뒤집어(2013.05.17)

흉기위협해 성관계한 남편 유죄 확정


정상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상태라도 남편이 아내를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면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실질적 부부관계가 유지될 때는 강제 성관계를 맺었다 해도 처벌할 수 없다”는 1970년 3월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세 차례 강제 성관계를 맺은 혐의(특수강간 등)로 기소된 강모 씨(45)에게 징역 3년 6개월에 신상공개 7년,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16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형법상 강간죄의 대상인 ‘부녀(婦女)’는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상관없이 여성을 가리킨다”며 “법률에 아내를 부녀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이 없는 만큼 아내도 강간죄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1995년 형법이 개정되면서 강간죄를 포괄하는 죄목이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바뀌었는데 이는 법이 보호하려는 권리가 ‘여성의 정조 또는 성적 순결’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며 “민법상 동거의무에 성생활 의무가 포함됐다고 하더라도 폭행·협박에 의해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까지 포함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강 씨는 2001년 결혼한 아내와 불화를 겪던 중 2011년 11월 밤늦게 귀가한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성관계를 맺는 등 한 달간 3차례에 걸쳐 강제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번 판결은 남편이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강제 성관계를 맺은 개별 사건에 대한 판단이지만 비슷한 유형의 사건에서 기소 및 유무죄 판단에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한 궁금증을 Q&A 형식으로 풀어봤다.

Q. 남편 강 씨는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강제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먹으로 아내를 폭행하거나 폭언을 해 강제 성관계를 맺었을 때도 똑같이 처벌받나요?

A. 부부 강간죄를 인정할 수 있는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강간 범죄와 비슷한 기준(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 △성관계 의무를 포함하는 혼인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일반적인 강간보다 더 심한 폭행이나 협박에 한해 강간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 △부부간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더 큰 만큼 폭행 및 협박이 심하지 않아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이번 판결은 ‘부부간 강간’도 법원이 처벌할 수 있다는 대원칙을 세운 것일 뿐 어떤 행위가 강간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흉기를 사용한 사건이라면 이번 판결처럼 유죄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지만 주먹으로 때리거나 폭언을 한 사건에 대해서는 향후 관련 사건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고 구체적인 판례가 쌓여야 처벌 여부를 따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Q. “정상적인 혼인관계라도 부부 강간을 처벌할 수 있다”고 했는데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혼 상태의 부부인 경우에는 어떻게 되나요? 또 이혼을 앞둔 부부는 어떤가요?

A. ‘정상적인 혼인관계’라는 것은 배우자 양측의 이혼 의사가 합치되지 않은 상태로 법률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배우자 중 어느 한쪽이 이혼 의사를 가지고 있어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정상적인 혼인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부부’이기 때문이지요. 사실혼의 경우 민사소송에서 혼인관계에 준해 판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부간 강간’과 같은 형사사건에 이런 원칙을 동일하게 적용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또한 관련 사건에 대한 소송이 제기돼 법원의 엄밀한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는 확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혼 의사가 합치된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를 폭행 또는 협박해 강제 성관계를 맺었다면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는 이미 있습니다. 대법원이 2009년 2월에 내린 판결이지요.

Q. 아내가 남편을 강간한 경우에도 처벌을 받나요?

A. 지난해 12월 개정된 형법에 따라 6월 19일부터 형법 297조에 규정된 강간죄의 주체가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에서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로 바뀝니다. 강간죄의 대상이 ‘부녀’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6월 19일부터는 남편을 폭행하거나 협박해 강제 성관계를 맺은 아내도 똑같이 강간죄로 처벌됩니다. 그 전까지는 아내만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Q. 부부 강간죄를 처벌하는 데 반대 견해는 없었나요?

A.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이상훈 김용덕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강간의 사전적 의미는 ‘강제적인 간음’인데 ‘간음’은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이어서 아내를 강간죄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 대법관은 ‘부부간 강간’을 폭행이나 협박죄로 처벌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습니다.

Q.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었나요?

A. 반대 의견 가운데는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우려된다” “부부 강간죄가 배우자에 대한 감정적 보복 수단이나 이혼 및 재산 분할에서의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가정 붕괴를 가속화시키고 부부간 신뢰관계를 파괴한다”는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하지만 “법리  논의를 거친 결과 강간죄의 대상이 되는 ‘부녀’에 아내가 포함되는 데다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와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시대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게 됐다”고 대법원은 밝혔습니다.

Q. 외국은 부부 강간죄를 인정하나요?

A. 미국 대부분 주와 영국 프랑스 독일은 부부간 강간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은 “혼인관계의 실질적인 파탄이 없는 한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대법원 "부부 간에도 강간죄 인정된다"(2013.05.16)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을 경우 강간죄로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부인을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특수강간, 집단·흉기 등 폭행 등)로 기소된 A(46)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6월에 정보공개 7년,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1년 10월 부인 B(42)씨와 다투다 부엌칼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에도 A씨의 흉기 위협과 강제 성관계는 두 차례 더 있었다. A씨는 B씨 친정식구들의 신고로 그해 11월 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법은 A씨에게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상 특수강간죄를 적용, 징역 3년6월과 10년간의 전자발찌 부착을 선고했다.

형법 297조에 따르면 강간범죄는 ‘폭력ㆍ협박을 동원해 부녀(婦女)를 간음했을 때’ 성립한다. 특수강간은 흉기나 집단으로 강간범죄를 저지른 경우 적용한다. 대법원은 그동안 파탄이 이르는 등 실질적인 부부관계라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부부강간죄를 인정해 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관계에서도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18일 ‘부부간 강제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는가’를 두고 공개변론을 열기도 했다.

2012년 12월 13일 목요일

[크리스천투데이]북한, 44년 전 대한항공 납치자들 “강제실종 아니다” 주장(2012.12.13)


북한인권시민연합, 답신 공개… “북한에는 강제·비자발 실종 단 한 명도 없다” 억지

44년 전 북한으로 납치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지난 1969년 대한항공 납치 피해자들에 대한 북한 정권의 공식 답변이 돌아왔다고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윤현, 이하 시민연합)이 밝혔다.

시민연합은 지난 2010년 유엔 강제실종실무그룹(이하 실무그룹)에 ‘1969년 대한항공 여객기 YS-11의 납북 피해자 3명(2010년 6월 16일: 황원, 10월 19일: 이동기, 11월 19일: 최정웅)’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실무그룹은 이에 지난해 8월 이 세 사람의 생사확인 요청서를 북한 정권에 발송했고, 북한에서 이에 대한 답신을 보내온 것이다.

북한은 이 답신에서 “이 세 명은 강제실종에 해당되지 않는다. 북한에는 강제적·비자발적 실종 또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억류되어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며 “이러한 사례들은 북한에 반한 적대세력의 날조된 음모이기 때문에, 실무그룹의 인도주의에 입각한 임무와는 상관이 없다”고 강변했다.

시민연합은 납치일인 12월 11일 이같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북한 정부의 답변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실무그룹에 기 진정된 3명의  생사여부를 다시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납치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도 “북한 정부의 답변은 매우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라고 전했다.

실무그룹은 이와 함께 납북 피해가족인 최성용 씨의 요청을 받아 지난 1967년 연평도에서 어로작업을 하다 북한 무장선에 의해 납북된 최씨의 부친 최원모 씨(납치 당시 57세)의 생사여부 확인서를 북한 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2012년 12월 9일 일요일

[박지웅 목사의 시편] 하늘의 만족감(2012.12.09)

언젠가 우리 교회의 부교역자 초빙을 위한 이력서를 받는데 특이한 이력서 한 통이 있었다. 지원자는 40대 초반의 탈북하신 여전도사님이었는데, 그의 자기소개서가 나의 눈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함경도 청진에서 교수생활을 하던 엘리트였지만 90년대 말 전염병이 북한을 휩쓸고 가던 때 교수 월급으로도 살 수가 없어서 돈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했다.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봐주던 기독교인들에 의해 마음이 열려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다롄공항에서 그만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북송을 당하게 된다.

끔찍한 시간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공포에 떨고 있는데 놀라운 기적이 벌어졌다. 자기를 구금했던, 악랄하기로 유명한 북한 경찰 간부가 친히 보증을 서면서 풀어주더라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 경찰 간부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그가 예수를 믿게 된 과정이었다.

그가 고문했던 한 청년이 죽음의 고문을 받으면서도 예수를 전하더라는 것이다. 가소로운 마음에 말할 기회를 줬더니 청년은 성경을 줄줄 외면서 전도를 하더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말을 하는 바람에 재판도 없이 총살을 시켜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죽어가면서 전했던 청년의 말이 이 고문 경찰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특별히 그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린 것은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평안함과 만족감이었다. ‘마음의 심연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평안과 만족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문 경찰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결국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결신을 하면서 신앙을 갖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죽인 청년을 생각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살리는 사람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얼굴에 비취는 하늘의 만족감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다. 언젠가 영화 속에 나온 한마디 대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나를 버리고 딴 여자를 만나는 것도 배신이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하고 슬퍼하는 것, 이 또한 배신입니다.” 그렇다. 배신에는 두 종류가 있다. 상대방을 차버린 것도 배신이지만 상대방의 사랑 안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 역시 배신이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 이 역시 배신이다.

마더 테레사가 신임 수녀들을 뽑을 때 선발 기준이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만족감이 참 신자의 표지라는 통찰력 때문이다. 나의 얼굴에는 하늘의 만족감이 있는가? 그것이 없다면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의 배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기고/김영호]한국정부가 북한인권문제 주도해야(2012.11.14)

최근 인권대사로서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67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참석했다. 이를 계기로 북한 인권 관련 민관 지도자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는데 현재 유엔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위원회에서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보고서를 통해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에도 정치범 수용소와 연좌제, 출신 성분에 따른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등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회원국들의 지지를 받았다. 또 영국 대표는 북한이 선군정치가 아닌 민생 우선의 정책을 펼 것을 촉구해 공감을 얻었다.

논란도 있었다. 중국 대표는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이 정치나 사상적 차이로 탄압을 받는 난민이 아니라 경제 문제로 국경을 넘은 불법 입국자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즉, 탈북자들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불법 입국한 멕시코인들과 같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다르다. 예컨대 탈북자들은 경제적 목적으로 국경을 넘었다고 해도 강제 송환될 경우 5년 넘게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다. 반면 국경을 넘다 적발돼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진 멕시코인들은 고문당하거나 수용소로 가지 않는다. 탈북자가 난민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다. 미국에서 만난 북한 인권 관련 민간 단체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 중국 정부가 ‘강제 송환 금지 원칙’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운동을 국제 사회와 연대하여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다루스만 보고관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등 인권 탄압 현장을 유엔 차원에서 직접 조사할 수 있는 장치(mechanism)를 만들 것을 회원국들에게 제안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의 인권 유린을 막을 수 있도록 강제력을 가진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북한 인권 관련 비정구기구(NGO)들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북한 인권 관련 NGO 연합인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자행되는 인권 탄압이 ‘반인도적 범죄 행위’라면서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 설립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바 있다.

다루스만의 보고서는 12월 유엔총회에서 결의로 채택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로써 북한 인권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2005년부터 계속적으로 유엔이 대북 인권 결의를 채택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 개선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데 대한 특단의 조치로 해석된다.

이런 국제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한국 정부의 북한 인권 외교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유엔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는 등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한 덕분에 2010년 결의안 찬성 국가는 100개국을 넘었고 작년에는 123개국에 달하게 됐다. 또한 금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북한 인권결의안을 표결에 부치지 않고 의견일치를 통해 채택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인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국제 사회는 이제 대한민국을 주변 강대국들의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디지털 기술로 무장하고 국력이 부상(浮上)하는 신흥 강국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한국의 역할은 더 커진 셈이다. 비단 북한 인권뿐 아니라 보편적 인권에 대한 국가적 관심은 국격(國格)과도 관련이 깊다. 북한 인권법안 통과를 비롯해 우리 정치권이 북한 인권에 대한 공감대를 하루빨리 형성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인권대사